(13) 지성수 - 강동원 증조할아버지 친일파 논쟁- . 알고 보니 '배우 강동원의 친일파 조상 논란'은 나와 전혀 상관이...

지성수 updated his status.
7 March 2017 ·
강동원 증조할아버지 친일파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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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니 '배우 강동원의 친일파 조상 논란'은 나와 전혀 상관이 없는 문제가 아니었다.
이유인 즉은 문제가 된 강동원의 증조할아버지인 이종만이 친구이자 페친인 박세진 교수의 외할아버지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한 번도 만나본 일은 없지만 박세진 교수에게 강동원은 조카가 되는 셈이다.
이쯤만 해도 나와는 상관이 없을 만한 일인데 이종만의 딸 고 이일선(남순) 여사가 2010년에 쓴 이종만의 일대기가 소개된 ‘나는 이렇게 평화가 되었다.” 의 서평을 쓴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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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간의 사연 때문에 워낙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종만이란 인물은 한국 근대사에 단 한 사람도 같은 길을 걸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기인이라 할 만큼 흥미로운 길을 걸어 갔던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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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많이 저축해 둔 분들을 위하여 당시에 쓴 내 서평을 소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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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을 매우 냉정한 시각에서 비판적으로 읽었다. 물론 기본적으로 모든 평론이 그렇듯 서평도 그 대상과 얼마간의 거리를 두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특히 이 책은 기독교인들의 간증처럼 전적으로 주관적인 관점으로 쓰기 쉬운 자기 고백적인 내용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줄곧 염상섭의 ‘삼대’ 떠올랐다.
‘삼대’는 1920-30 년대 사이를 무대로 조 씨 집안의 3대에서 벌어지는 문화적 충돌과 사회적인 병화의 일제에 대한 저항, 남녀간의 애정, 재산 상속 등의 사건으로 복잡하게 전개되는 장편소설이다.
‘삼대’가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 한 집안이 몰락하는 퇴행적 분위기를 보여주는 소설이라면 이 책은 3대에 걸쳐 시대를 거스르는 개척적 삶을 살아온 이야기이다. 소설 3대의 무대를 이루고 있는 바로 그 시기에 시작 되어 아직도 현재 진행형인 이 책의 이야기는 이종만이라는 한 인간의 동작 보다는 실루엣이 3 대에 걸쳐 드려지고 있다. 책의 형식은 비록 이남순의 자전적 일기 형식이지만 내면을 흐르고 있는 것은 아버지 이종만의 사상과 삶의 잔형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책에서 구한 말 한 지사형 사업가에서 시작하여 오늘날 전세계로 흩어져 생활하거나 활동하고 있는 그의 손자 손녀들까지 3대가 근대사를 거쳐 세계화되고 있는 한국인의 발자취를 읽을 수 있다. 따라서 20 세기 한반도에 불어 닥친 격랑과 굴곡의 역사를 헤쳐간 한 가족사를 통하여 한국의 현대사를 적나라하게 실감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되기도 하다.
나로서 가장 관심이 있었던 부분은 이남순이 평양에 가서 아버지를 만나고 온 이후에 북미에서 통일운동을 벌이던 70년대 후반의 시기였다. 그러나 통일 운동가로서의 이남순이 의당히 겪었을 고난은 비교적 매우 건조하게 그려졌다.
그 시절이 어떤 시절이던가? 북한에 대해서는 정부 발표 이외의 어떤 생각을 하는 것조차 금기였던 시대가 아니었던가? 북한 사회를 처음으로 다룬 재미 동포들의 방북기 <분단을 뛰어 넘어>가 처음으로 출판 된 것이 1984년이었다. 그것도 ‘6월 시민 항쟁’ 이듬 해인 1988년에야 서울에서 정식으로 출간되기 전까지 몇 해 동안 ‘불법 복사물’의 형태로 손에서 손으로 건네지면서 읽혀야 했었다. 이런 시절에 본국 보다 더 막무가내 보수적인 해외 교민 사회에서 이남순이 통일운동을 했다는 것은 목숨을 내놓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더욱이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맹렬한 정치활동을 전개했다는 것은 부러질지언정 구부러지지 않는 그녀의 강인한 인간성을 말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책에서 이남순이 맹렬한 통일 운동가에서 갑자기 추상적, 관념적으로 보일 수 있는 영성 추구로 방향을 바뀌는 과정이 매우 모호하게 설명되고 있다. 실제로는 이남순이 주변에 극렬한 반대와 공격으로 신체적으로 쇠약해서 6개월 간 식물인간 상태로 있다가 회복되는 난 후에 큰 변화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책에서는 이 부분이 생략되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해하는 일에 어려움을 주고 있다.
또 다른 옥의 티라고 할만 한 부분은 이종만의 친일을 다룬 부분이다.
자긍심을 높이 가질 만한 선조를 둔 후손들로서 이종만의 친일 부분은 밝혀야만 하는 문제이기에 자료를 확보하여 그 부분은 설명하려고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 과정에서 문인들의 작품과 친일행적을 구분도 할 줄 모르는 초등학생 수준의 글을 보충자료로 첨부한 것은 매우 적절치 못했다고 생각 된다.
나는 오히려 이종만의 친일은 감추어야 될 일이 전혀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종만은 지사이기 이전에 사업으로 뜻을 이룰 목표를 가진 사업가였기 때문이다. 혹독한 일제강점기의 수탈적 구조 속에서 사업을 하는 사업가로서 친일이 아니면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이종만이 투신한 광산업 자체가 총독부의 지휘감독을 철저히 받을 수밖에 없는 직종이었다. 그러므로 그가 일제 강점 구조 속의 사업가로서 친일인사명단에 등재되지 않았다면 그것이 오히려 정상이 아닐 것이다.
사업가인 그로서는 구더기가 무서워 장을 담그지 못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는 구더기가 생김에도 불구하고 맛있는 장을 담근 것이다. 이종만이 가지고 있었고 추구하려 했던 ‘사상’과 사업가로서의 친일행적은 구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친일은 친일로 그가 남긴 업적은 업적으로 기록되어야 하는 것이 타당한 일이라고 생각 한다.
이종만의 생애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은 왜 북을 택했는가 하는 것이다. 물론 무질서한 해방공간에서 자본주의 좌파로 분류되는 이종만이 추구하는 높은 이상이 부정부패와 혼란한 남쪽 보다 일사천리 쾌도난마 식으로 문제를 해결해가고 있는 것으로 보였던 북쪽의 사회체제를 택하게 되었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볼 때 신이 그에게 미래를 볼 수 있는 눈을 허락했다면 남쪽에서 매판 자본이 아닌 민족 자본가로 성장하여 큰 공헌을 남길 수 있지 않았겠는가 하는 아쉬움인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종만의 영웅적인 삶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은 저자도 긍정 했듯이 그가 선택했던 북이 실패함으로 그의 인생은 29전 30기가 아니라 30전 30패가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의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가치판단에서의 잘못이라는 뜻이 전혀 아니다. 이종만 같이 비범하고 출중한 인물이 북으로 가지 않고 남에서 계속 활동을 했더라면 오명을 누린 체 부를 쌓은 이병철이나 정주영 같은 인물들의 반면교사로 시사해줄 바가 많았을 터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종만은 한 마디로 타인지향적인 성찰적 삶을 살아 온 사람이기 때문이다.
만일 기량 높은 작가가 자료집 성격의 형태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을 잘게 썰어서 소설화 할 수 있다면 박경리의 대하 소설 토지에 비할 만큼 시대를 관통하는 대작이 될 소재가 충분하다고 본다. 토지 이후 한 가정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통하여 시대의 변화를 보여주는 자료로서 이만한 책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독자들이 이 책에서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이남순이 영세중립통일론을 펴는 점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녀가 국제법상 중립의 제도를 몰라서가 아니라 이종만으로 내려온 대동사상 속에서 중립화 통일의 사상적·역사적인 맥락을 찾은 탓이다. 그러므로 영세중립통일론은 그녀에게 종교적 열망과 같은 것으로 이해된다.
브라질, 캐나다를 거쳐 이민 생활을 하는 동안의 육체적 고생과 성장하는 자녀들과의 갈등, 긴장, 창조적 해결 등의 과정은 700 만에 이르는 해외 동포 역사 속에서 많은 가정이 겪는 예의 모델이라고 생각된다.
비록 본인은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한인회가 ‘장한 어머니상’을 수여한 이유처럼 그녀의 자녀 세대가 이룬 성취를 보고 부러워할 사람도 있겠지만 같은 시대 국내에서 살면서 ‘고생을 하더라도 성취할 수 있는 기회’ 조차 가져 보지 못한 이들에게는 크게 감동거리가 되지 못할 수도 있다.
이 책의 특이점은 이남순과 그녀의 자녀들이 이룬 성취에도 불구하고 snobbism에 빠지지 않고 어떻게 어머니와 자녀들이 함께 도반의 길을 걸어가고 있을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때로는 타의로, 때로는 자의로 격변하는 세월 속에서 개척적으로 살아온 이남순이라는 한 개인의 삶의 이야기가 아니라 결코 이루어 질 수 없는 ‘젖과 꿀이 흐르는’ 세상을 이루기 위한 투쟁과 혼란 속에서 일제강점, 분단, 전쟁, 이민을 거친 3대에 걸친 또 다른 utopianism을 향한 순례의 이야기로 읽혔다.
47You, Dong Kwan Kim, songsoonhyun and 44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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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ho Moon 좋은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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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jin Pak 이렇게 다시 읽게 될 줄은 몰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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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수 나도 이 글을 다시 올릴 일이 있을 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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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조 이분의 가족사 좀더 알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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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수 replied · 2 replies
Gyuhan Gombo Kim 이남순 여사의 삶을 반추할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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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윤경 여기에 밝히기는 어렵지만 저에게도 유사한 가족사가 있습니다. 지목사님도 참, 여러가지 근현대사의 굴곡에 감초대장 역할을 하셨군요 ^^ 강동원이란 이름으로 인해 역사의 극적국면 하나가 문제제기된 것이 반갑기까지하고 이 책을 구해보고 싶은 맘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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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수 replied · 2 replies
백선기 네 목사님! 귀한 분의 역정을 일별해서 봤습니다 그 분의 삶과 활동이 여러 사람들과 역사에 공유되었으면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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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na Kim Hansen 이분의 가족사를 좀 더 알고 싶으신 분들을 위하여 알려드립니다. 도서 나는 이렇게 평화가 되었다 전자책이 있고 무료 다운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다운 받으실 곳은 생명모성의 길 - Daum 카페 입니다. 저는 이남순의 둘째딸 김반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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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na Kim Hansen "지성수님의 생각에 동의합니다. 잘 보관하시고 평전에 포함하시기 바랍니다. 정말 소설의 좋은 소재입니다. 평전에 이어 소설이 나오면 금상첨화이지요." 이 말은 한반도 중립화 통일 협의회 강종일 회장님이 하신 말입니다. 우리 형제들이 지금 만들고 있는 이종만 평전에 지목사님의 글도 포함할 수 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가능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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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수 replied · 5 replies
변기수 지목사님의 평전으로 또다른 현대사를 마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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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재 일선님의 "나는 이렇게 평화가 되었다" 를 아주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저의 짧은 언어로는 도저히 그 감동을 표현하기가 힘들어...그냥 강추 하겠습니다.
허나 한가지 말하고 싶은 건,
이종만 어르신 같은 분이 참 애국자라고 생각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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