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시민신문] `평화가 된` 일선 이남순님, 세상을 뜨다
'평화가 된' 일선 이남순님, 세상을 뜨다
14일 이남순님 운명 '견성성불'남겨...16일 장례치뤄
김삼석 기자
기사입력 2013-03-18
한 어르신이 돌아가셨다. 향년 91세. 그녀는 평화와 영성을 사랑했던 일선 이남순님.
그녀가 마지막 가는 날. 지난 14일부터 16일 오전까지 제주대병원 영안실에는 중국에서, 일본에서, 서울에서, 수원에서, 분당에서, 제주 곳곳에서 조문객들이 비행기를 타고 그녀를 참배했다.
딸 반아와 아들 유진과 그 가족들, 에미서리 회원들이 마지막 가는 일선 이남순님을 곁을 지켰다.
▲ 16일 오전 딸 반아님이 일선 이남순님께 조화를 바치고 있다. © 수원시민신문
일제시대 금광왕이었고, 49년 월북해 북에서 광업부 고문까지 맡은 뒤 유일한 남한 자본가 계급으로서 애국열사릉에 묻힌 아버지 리종만님의 막내딸. 이남순은 그리운 아버지를 77년 평양에서 마지막으로 만나 헤어진 뒤 다시 헤어져야했다. 그뒤 하나된 조국에서 만나지 못하고, 하늘나라에서 만나게 된 셈이다.
유족들과 조문객들은 차분하면서도 조용하게 고 이남순님을 양지공원에서 화장한 뒤 조이빌에 모신뒤 이후 수목장으로 안내한다고 전했다.
아들 유진은 발인자리에서 “어머니는 평화를 사랑했던 사람이라며 견성성불(見性成佛-참된 자기를 깨닫고 앎으로써 깨달은 자가 되는 것)을 마지막으로 남겼다”고 밝혔다.

▲ 일선 이남순님이 제주 양지공원 화장장에서 화장되고 있다. © 수원시민신문
■ 한겨레에 따르면 이남순은
2007년 4번째 방북 때 평양 애국열사릉의 부친 묘소를 참배한 이남순과 둘째딸 김반아(오른쪽)씨.
1922년 현재 울산광역시인 경상남도 울산군 대현면 용잠리 바닷가 마을에서 1남4녀 중 막내로 태어나 12살 때 서울로 올라왔다. 동덕여고를 거쳐 일본여자대학 사범과를 졸업하고 44년에 돌아와 해방 전까지 모교에서 육아과목을 가르치다 그해 여섯살 많은 박상철씨와 결혼했다. 호남 명문가 자손으로 도쿄제대 공학부를 나온 수력기계 전문가였던 남편과의 사이에 옥경·은명(반아)·세진·유진 2남2녀를 두었다.
한국전쟁 이후 남편의 사업을 돕다 4·19 혁명과 5·16 쿠데타의 혼란기를 겪은 뒤 64년 브라질로 이민을 했다. 맨손으로 떠나와 4년간 재봉사로 일하다 68년 캐나다로 재이민해 38년간 살았다. 84년 남편과 사별한 뒤 토톤토에서 지내다 2006년 84살 때 영구귀국해 제주도에 정착했다.
그는 50대에는 캐나다 한인사회를 무대로 사회주의 성향의 통일운동에 참여하기도 했으나 환갑 무렵인 80년대 초반 영성공동체인 에미서리와 인연을 맺은 이래 영적 수행의 길을 걷고 있다.
평범한 주부이자 어머니로 살던 그가 중년 이후 거듭 극적인 반전을 하게 된 전환점은 75년 평양에서 이뤄진 ‘27년 만의 부녀 상봉’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조선 최고의 금광왕이자 대동주의자였던 이종만씨다
■ 한겨레에 따르면 이남순씨 부친 이종만은
1885년 경남 울산에서 태어나 병으로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했으나 독학으로 문물을 깨쳤다. 1912년 일제가 토지조사령을 공포한 직후부터 사업을 시작해 대동광업주식회사를 만들어 광석 채굴에 나섰으나 실패를 거듭하다 30년 만에 27전28기, 53살에 조선 제일의 금광왕이 됐다. 36년 금강산 부근 장진광산에서 조선 초대의 금광개발권을 확보하고 기존의 영평금광을 매각해 155만원(현재가치 1500억원대)을 확보했다.
하지만 그는 그 가운데 80만원을 사회에 환원한 통 큰 씀씀이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50만원을 출연해 재단법인 대동농촌사를 설립하고, 개인 소유 토지의 소작료를 기존의 절반인 3할만 받기로 했다. 대동공업전문학교(지금의 북한 김책공업대)·대동광산조합·대동출판사 등으로 ‘대동콘체른’을 만들어 대동세상의 이상을 실천에 옮겼다.
49년 평양에서 열린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결성대회에 참가하러 갔다가 북에 남은 그를 두고 김일성은 ‘애국적 기업가’라고 치하했다. 이후 광업부 고문으로 자원개발에 기여하고, 최고인민회의 대의원과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의장을 지냈다. 77년 93살에 타계한 그는 평양 애국열사릉에 묻힌 유일한 자본가이기도 하다
이남순님의 책. <나는 이렇게 평화가 되었다>에 이남순님의 일대기와 아버지 리종만에 대해서 잘나온다. 또 리종만 선생이 이루고자 했던 '대동콘체른'에 대해서는 <선각자 송강 이준열의 삶>이란 책에 잘 나온다.
'평화가 된' 일선 이남순님, 세상을 뜨다
14일 이남순님 운명 '견성성불'남겨...16일 장례치뤄
김삼석 기자
기사입력 2013-03-18
한 어르신이 돌아가셨다. 향년 91세. 그녀는 평화와 영성을 사랑했던 일선 이남순님.
그녀가 마지막 가는 날. 지난 14일부터 16일 오전까지 제주대병원 영안실에는 중국에서, 일본에서, 서울에서, 수원에서, 분당에서, 제주 곳곳에서 조문객들이 비행기를 타고 그녀를 참배했다.
딸 반아와 아들 유진과 그 가족들, 에미서리 회원들이 마지막 가는 일선 이남순님을 곁을 지켰다.
▲ 16일 오전 딸 반아님이 일선 이남순님께 조화를 바치고 있다. © 수원시민신문
일제시대 금광왕이었고, 49년 월북해 북에서 광업부 고문까지 맡은 뒤 유일한 남한 자본가 계급으로서 애국열사릉에 묻힌 아버지 리종만님의 막내딸. 이남순은 그리운 아버지를 77년 평양에서 마지막으로 만나 헤어진 뒤 다시 헤어져야했다. 그뒤 하나된 조국에서 만나지 못하고, 하늘나라에서 만나게 된 셈이다.
유족들과 조문객들은 차분하면서도 조용하게 고 이남순님을 양지공원에서 화장한 뒤 조이빌에 모신뒤 이후 수목장으로 안내한다고 전했다.
아들 유진은 발인자리에서 “어머니는 평화를 사랑했던 사람이라며 견성성불(見性成佛-참된 자기를 깨닫고 앎으로써 깨달은 자가 되는 것)을 마지막으로 남겼다”고 밝혔다.
▲ 일선 이남순님이 제주 양지공원 화장장에서 화장되고 있다. © 수원시민신문
■ 한겨레에 따르면 이남순은
2007년 4번째 방북 때 평양 애국열사릉의 부친 묘소를 참배한 이남순과 둘째딸 김반아(오른쪽)씨.
1922년 현재 울산광역시인 경상남도 울산군 대현면 용잠리 바닷가 마을에서 1남4녀 중 막내로 태어나 12살 때 서울로 올라왔다. 동덕여고를 거쳐 일본여자대학 사범과를 졸업하고 44년에 돌아와 해방 전까지 모교에서 육아과목을 가르치다 그해 여섯살 많은 박상철씨와 결혼했다. 호남 명문가 자손으로 도쿄제대 공학부를 나온 수력기계 전문가였던 남편과의 사이에 옥경·은명(반아)·세진·유진 2남2녀를 두었다.
한국전쟁 이후 남편의 사업을 돕다 4·19 혁명과 5·16 쿠데타의 혼란기를 겪은 뒤 64년 브라질로 이민을 했다. 맨손으로 떠나와 4년간 재봉사로 일하다 68년 캐나다로 재이민해 38년간 살았다. 84년 남편과 사별한 뒤 토톤토에서 지내다 2006년 84살 때 영구귀국해 제주도에 정착했다.
그는 50대에는 캐나다 한인사회를 무대로 사회주의 성향의 통일운동에 참여하기도 했으나 환갑 무렵인 80년대 초반 영성공동체인 에미서리와 인연을 맺은 이래 영적 수행의 길을 걷고 있다.
평범한 주부이자 어머니로 살던 그가 중년 이후 거듭 극적인 반전을 하게 된 전환점은 75년 평양에서 이뤄진 ‘27년 만의 부녀 상봉’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조선 최고의 금광왕이자 대동주의자였던 이종만씨다
■ 한겨레에 따르면 이남순씨 부친 이종만은
1885년 경남 울산에서 태어나 병으로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했으나 독학으로 문물을 깨쳤다. 1912년 일제가 토지조사령을 공포한 직후부터 사업을 시작해 대동광업주식회사를 만들어 광석 채굴에 나섰으나 실패를 거듭하다 30년 만에 27전28기, 53살에 조선 제일의 금광왕이 됐다. 36년 금강산 부근 장진광산에서 조선 초대의 금광개발권을 확보하고 기존의 영평금광을 매각해 155만원(현재가치 1500억원대)을 확보했다.
하지만 그는 그 가운데 80만원을 사회에 환원한 통 큰 씀씀이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50만원을 출연해 재단법인 대동농촌사를 설립하고, 개인 소유 토지의 소작료를 기존의 절반인 3할만 받기로 했다. 대동공업전문학교(지금의 북한 김책공업대)·대동광산조합·대동출판사 등으로 ‘대동콘체른’을 만들어 대동세상의 이상을 실천에 옮겼다.
49년 평양에서 열린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결성대회에 참가하러 갔다가 북에 남은 그를 두고 김일성은 ‘애국적 기업가’라고 치하했다. 이후 광업부 고문으로 자원개발에 기여하고, 최고인민회의 대의원과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의장을 지냈다. 77년 93살에 타계한 그는 평양 애국열사릉에 묻힌 유일한 자본가이기도 하다
이남순님의 책. <나는 이렇게 평화가 되었다>에 이남순님의 일대기와 아버지 리종만에 대해서 잘나온다. 또 리종만 선생이 이루고자 했던 '대동콘체른'에 대해서는 <선각자 송강 이준열의 삶>이란 책에 잘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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