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 Congress approves China sanctions over Uighur crackdown | China News | Al Jazeera
US Congress approves China sanctions over Uighur crackdown
US House passes bill authorising sanctions against Chinese officials over the mass incarceration of Muslim Uighurs.
28 May 2020
Rights groups say at least one million Uighurs and other Turkic Muslims have been incarcerated in camps in China's Xinjiang province [File: Umit Bektas/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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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US House of Representatives has overwhelmingly approved legislation calling for sanctions on Chinese officials deemed responsible for the oppression of Uighur Muslims, sending the bill to the White House for President Donald Trump to veto or sign into law.
The Uighur Human Rights Act passed by a 413-1 vote on Wednesday and came hours after Secretary of State Mike Pomp notified Congress that the administration no longer considered Hong Kong autonomous from 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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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ill calls for sanctions against those responsible for the repression of Uighurs and other Muslim groups in China's Xinjiang province, where the United Nations estimates that more than a million Muslims have been detained in camps.
It singles out the region's Communist Party secretary, Chen Quanguo, a member of China's powerful Politburo, as responsible for "gross human rights violations" against them.
"Beijing's barbarous actions targeting the Uighur people are an outrage to the collective conscience of the world," Speaker Nancy Pelosi, a Democrat, told the house in support of the bill.
INSIDE STORY | Is China detaining Uighur Muslims in secret camps? (25:11)
The message was bipartisan, with Michael McCaul, the top Republican on the House Foreign Affairs Committee, accusing China of "state-sponsored cultural genocide".
Beijing is out to "completely eradicate an entire culture simply because it doesn't fit within what the Chinese Communist Party deems 'Chinese'," McCaul said. "We can't sit idly by and allow this to continue... Our silence will be complicit, and our inaction will be our appeasement."
'Meaningful action'
The near-unanimous support in Congress - the Senate passed the bill by unanimous consent - puts pressure on Trump to impose human rights sanctions on China.
Although Trump's fellow Republicans in Congress said they expected he would sign the bill, the White House has not yet indicated whether he will do so. Aides did not respond to requests for comment.
Relations between Trump and China's government have become increasingly tense in recent weeks as Trump has blamed Beijing for worsening the coronavirus pandemic.
Uighur activists welcomed the bill's passage.
China's Uighurs: State defends internment camps (3:32)
"We urge President Trump to sign the Uyghur Human Rights Policy into law as a matter of priority and take immediate steps to implement it," said Dolkun Isa, president of the World Uyghur Congress, in a statement.
"Our community needs the US government and governments around the world to take real, meaningful action, as is provided for in this act. After years of suffering and frustration, the Uighur people need hope."
China denies mistreatment and says the camps provide vocational training.
Uighur activists and human rights groups have countered that many of those held are people with advanced degrees and business owners who are influential in their communities and have no need for any special education.
People in the internment camps have described being subjected to forced political indoctrination, torture, beatings, and denial of food and medicine, and say they have been prohibited from practising their religion or speaking their language.
While China has denied these accounts, it refuses to allow independent inspections.
After an earlier version of the law passed in December, the Chinese foreign ministry accused the US of hypocrisy in its own "counter-terrorism" efforts.
"This bill deliberately smears the human rights condition in Xinjiang, slanders China's efforts in de-radicalization and counter-terrorism and viciously attacks the Chinese government's Xinjiang policy," said foreign ministry spokeswoman Hua Chunying, urging the US to stop the law.
2020-05-31
「米中どっちにつく?」米紙WSJの直球質問に安倍首相「米国は唯一の同盟国」「中国は責任ある対応を」(夕刊フジ) - Yahoo!ニュース
「米中どっちにつく?」米紙WSJの直球質問に安倍首相「米国は唯一の同盟国」「中国は責任ある対応を」(夕刊フジ) - Yahoo!ニュース
「米中どっちにつく?」米紙WSJの直球質問に安倍首相「米国は唯一の同盟国」「中国は責任ある対応を」
5/26(火) 16:56配信
25日の記者会見で安倍首相は、対中姿勢も明確にした
新型コロナウイルスの世界的大感染(パンデミック)を受け、10万人に近い犠牲者を出した米国と、発生国である中国の対立が高まっている。両国は、香港や台湾、東・南シナ海の問題、世界保健機関(WHO)などをめぐっても、一触即発の状況だ。安倍晋三首相は25日夕、新型コロナウイルスの緊急事態宣言解除を受けて官邸で記者会見を開いたが、直球の質問が投げかけられた。
【表】WHO・テドロス事務局長の主な発言 「今、米国と中国がウイルスなどをめぐり激しく対立している。日本はどっち側につくでしょうか?」 米ウォールストリート・ジャーナルの記者は突然、こう質問した。それまで、緊急事態宣言解除や、黒川弘務前東京高検検事長に関する質問が続いていただけに、安倍首相は少し苦笑いして、次のように語り始めた。
「現在、米国と中国の間で、新型コロナウイルスの発生源をめぐり、激しく議論が行われている。日本の立場は『ウイルスが中国から世界に広がった』のは事実だと考えている。
今後の日本の役割は、今回のようなパンデミックが起こったとき、『世界がどう行動すべきか』について提示していくことだ。こういうときは、世界中が協力しなければならない」 安倍首相は、一呼吸置いて続けた。
「ただ、日本の外交・安全保障の基本的立場としては、米国は日本にとって唯一の同盟国である。『自由と民主主義』『基本的人権』『法の支配』という基本的価値を共有している。日本は米国と協力しながら、さまざまな国際的な課題に取り組んでいきたい」 そして、中国についても語った。 「中国も、世界において極めて経済的にも重要な国であり、プレーヤーだ。それにふさわしい責任も果たしていただきたい。国際社会は『日本と中国がそれぞれ、地域や世界の平和や安定、繁栄に責任ある対応を取っていくこと』を期待している。中国がそういう対応を取ってくれることを期待したいと思っている」 新型コロナ後の混迷する世界における、日本の立ち位置を明確に語った回答に思える。不思議なことに、26日の一部新聞は、この発言を取り上げていなかった。都合が悪かったのか!?
「米中どっちにつく?」米紙WSJの直球質問に安倍首相「米国は唯一の同盟国」「中国は責任ある対応を」
5/26(火) 16:56配信
25日の記者会見で安倍首相は、対中姿勢も明確にした
新型コロナウイルスの世界的大感染(パンデミック)を受け、10万人に近い犠牲者を出した米国と、発生国である中国の対立が高まっている。両国は、香港や台湾、東・南シナ海の問題、世界保健機関(WHO)などをめぐっても、一触即発の状況だ。安倍晋三首相は25日夕、新型コロナウイルスの緊急事態宣言解除を受けて官邸で記者会見を開いたが、直球の質問が投げかけられた。
【表】WHO・テドロス事務局長の主な発言 「今、米国と中国がウイルスなどをめぐり激しく対立している。日本はどっち側につくでしょうか?」 米ウォールストリート・ジャーナルの記者は突然、こう質問した。それまで、緊急事態宣言解除や、黒川弘務前東京高検検事長に関する質問が続いていただけに、安倍首相は少し苦笑いして、次のように語り始めた。
「現在、米国と中国の間で、新型コロナウイルスの発生源をめぐり、激しく議論が行われている。日本の立場は『ウイルスが中国から世界に広がった』のは事実だと考えている。
今後の日本の役割は、今回のようなパンデミックが起こったとき、『世界がどう行動すべきか』について提示していくことだ。こういうときは、世界中が協力しなければならない」 安倍首相は、一呼吸置いて続けた。
「ただ、日本の外交・安全保障の基本的立場としては、米国は日本にとって唯一の同盟国である。『自由と民主主義』『基本的人権』『法の支配』という基本的価値を共有している。日本は米国と協力しながら、さまざまな国際的な課題に取り組んでいきたい」 そして、中国についても語った。 「中国も、世界において極めて経済的にも重要な国であり、プレーヤーだ。それにふさわしい責任も果たしていただきたい。国際社会は『日本と中国がそれぞれ、地域や世界の平和や安定、繁栄に責任ある対応を取っていくこと』を期待している。中国がそういう対応を取ってくれることを期待したいと思っている」 新型コロナ後の混迷する世界における、日本の立ち位置を明確に語った回答に思える。不思議なことに、26日の一部新聞は、この発言を取り上げていなかった。都合が悪かったのか!?
미국? 중국? 어느 편 할래, 선택 기로에 놓인 세계
미국? 중국? 어느 편 할래, 선택 기로에 놓인 세계
미국? 중국? 어느 편 할래, 선택 기로에 놓인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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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2020.05.31. 오후 5:24
[머니투데이 강기준 기자]
원본보기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 /AFPBBNews=뉴스1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내달 예정됐던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9월 이후로 연기하면서 한국, 호주, 인도, 러시아 등을 초청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들과 중국 문제에 대해 논의하겠다고 밝힌만큼 세계는 미국이냐 중국이냐,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압박감이 커지게 됐다.
트럼프 "G7는 구식…G10·G11 형태로 개최할 것"
원본보기/AFPBBNews=뉴스1
30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플로리다주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진행된 민간 유인 우주선 발사를 참관한 뒤 백악관으로 돌아오는 전용기 에어포스원에서 "현재의 G7은 매우 '구식(Outdated)'의 국가 그룹"이라면서 "G7이 현재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적절히 대변한다고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과 호주, 러시아, 인도를 초대하고 싶다"면서 이번 모임이 'G10 또는 G11'형태로 개최될 것이라고 했다.
현재 G7국가는 캐나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 영국, 미국이다.
올해 G7 의장국인 미국은 오는 6월 워싱턴DC에서 대면회의를 열자고 제안했었는데 이날 올 가을 이후로 연기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구체적인 개최 시기에 대해서는 오는 9월15일 뉴욕 유엔총회 전후나 11월3일 미 대선 이후가 될 수 있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알리사 파라 백악관 전략소통담당 국장은 "중국 문제를 두고 앞으로 어떻게 대처할지 전통적인 동맹국들을 규합해 논의 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을 비롯한 4개국을 초청한 것은 무역전쟁, 코로나19, 홍콩보안법 등 미중간 갈등이 극대화하는 가운데 인접 국가들에게 지지를 요청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G7 정상회의 개최를 두고 일본과 프랑스 외엔 별다른 참여 의사를 밝히지 않는 데다가, 독일이 참석을 거부하며 분노한 트럼프 대통령이 새 판을 짜려는 의도일 수도 있다.
트럼프의 F4...중국 포위할 국가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등 4개국을 G7 회의에 포함시키려는 것은 중국을 둘러싼 각국을 설득해 포위망을 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트럼프 대통령의 초청에 즉각 환영 의사를 밝힌 호주는 중국의 코로나19 기원을 밝히는 조사를 하자고 요구하면서 중국으로부터 경제보복을 당해 불만이 큰 상황이다. 호주는 여기에 파이브 아이즈(미국·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 등 5개국으로 이뤄진 기밀정보 첩보 동맹) 소속이기도 하다.
한국도 코로나19 방역 등으로 국제적 위상이 올라가면서 미국과 중국 양쪽으로부터 지지 요청 압박이 거세지는 상황이기도 하다.
인도는 중국과 이달들어 국경문제를 두고 군사 대치 상황을 이어오는 등 갈등이 커져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재를 제안한 것을 인도가 거부하긴 했지만, 중국과의 최근 감정은 매끄럽지 않은 상황이다.
러시아는 중국과 관계가 가깝지만, 코로나19 환자가 폭증하면서 40만명에 육박, 세계에서 세번째를 기록하며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다만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G10, 혹은 G11 형태를 언급한 만큼 여의치 않으면 러시아가 빠질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미 '미국편' 선포한 영국·일본
원본보기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AFPBBNews=뉴스1
코로나19 사태로 중국에 감정이 상한 유럽은 이미 탈(脫)중국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이중 가장 적극적인 건 영국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의 전 편집장 라이오넬 바버는 니혼게이자이(닛케이)신문 기고에서 "중국과의 '황금시대'는 막을 내렸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과 아시아 동맹국들에게 미중 갈등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하도록 요구하는 데다가, 중국 정부마저 홍콩보안법을 통과시키는 등 초강수를 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영국이 미국편에 서는 것은 유럽연합(EU) 탈퇴 때문이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조기체결을 목표로 삼고 있는데, 트럼프 행정부는 이 점을 이용해 FTA에 중국을 배제하는 항목을 포함하려고 한다.
레너드 전 편집장은 "존슨 행정부는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의료용품 등의 중국 의존도를 종료하고, 5세대 이동통신(5G) 통신 설비도 현재 중국 화웨이 제품 일부 허용에서 2023년에는 화웨이를 제거할 의향"이라고 전했다.
마가렛 대처 전 총리의 전기를 쓴 작가 찰스 무어도 최근 텔레그래프지에 "영국이 이제 (중국)아부 외교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면서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는 뻐꾸기 같은 중국 대신 일본이나 한국, 핀란드, 스웨덴과 기술 제휴를 맺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범유럽 싱크탱크인 유럽외교관계협회(ECFR)는 "유럽의 중국몽은 끝났다"면서 이같은 흐름이 EU 전반으로 퍼지고 있다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코로나19로 중국에 대한 신뢰도가 깨지고, 중국 의존 경제의 허점마저 드러나면서 EU도 무역, 경제, 외교 등 중국을 벗어나는 작업에 착수했다는 얘기다.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 역시 트럼프 대통령이 제안한 G7 정상회의에 가장 먼저 참석하겠다고 하는 등 미국편에 섰다. 지난 25일에는 "미국이 유일한 동맹국"이라면서 "바이러스가 중국에서 퍼진 것은 사실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강기준 기자 standard@mt.co.kr
미국? 중국? 어느 편 할래, 선택 기로에 놓인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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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2020.05.31. 오후 5:24
[머니투데이 강기준 기자]
원본보기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 /AFPBBNews=뉴스1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내달 예정됐던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9월 이후로 연기하면서 한국, 호주, 인도, 러시아 등을 초청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들과 중국 문제에 대해 논의하겠다고 밝힌만큼 세계는 미국이냐 중국이냐,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압박감이 커지게 됐다.
트럼프 "G7는 구식…G10·G11 형태로 개최할 것"
원본보기/AFPBBNews=뉴스1
30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플로리다주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진행된 민간 유인 우주선 발사를 참관한 뒤 백악관으로 돌아오는 전용기 에어포스원에서 "현재의 G7은 매우 '구식(Outdated)'의 국가 그룹"이라면서 "G7이 현재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적절히 대변한다고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과 호주, 러시아, 인도를 초대하고 싶다"면서 이번 모임이 'G10 또는 G11'형태로 개최될 것이라고 했다.
현재 G7국가는 캐나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 영국, 미국이다.
올해 G7 의장국인 미국은 오는 6월 워싱턴DC에서 대면회의를 열자고 제안했었는데 이날 올 가을 이후로 연기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구체적인 개최 시기에 대해서는 오는 9월15일 뉴욕 유엔총회 전후나 11월3일 미 대선 이후가 될 수 있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알리사 파라 백악관 전략소통담당 국장은 "중국 문제를 두고 앞으로 어떻게 대처할지 전통적인 동맹국들을 규합해 논의 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을 비롯한 4개국을 초청한 것은 무역전쟁, 코로나19, 홍콩보안법 등 미중간 갈등이 극대화하는 가운데 인접 국가들에게 지지를 요청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G7 정상회의 개최를 두고 일본과 프랑스 외엔 별다른 참여 의사를 밝히지 않는 데다가, 독일이 참석을 거부하며 분노한 트럼프 대통령이 새 판을 짜려는 의도일 수도 있다.
트럼프의 F4...중국 포위할 국가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등 4개국을 G7 회의에 포함시키려는 것은 중국을 둘러싼 각국을 설득해 포위망을 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트럼프 대통령의 초청에 즉각 환영 의사를 밝힌 호주는 중국의 코로나19 기원을 밝히는 조사를 하자고 요구하면서 중국으로부터 경제보복을 당해 불만이 큰 상황이다. 호주는 여기에 파이브 아이즈(미국·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 등 5개국으로 이뤄진 기밀정보 첩보 동맹) 소속이기도 하다.
한국도 코로나19 방역 등으로 국제적 위상이 올라가면서 미국과 중국 양쪽으로부터 지지 요청 압박이 거세지는 상황이기도 하다.
인도는 중국과 이달들어 국경문제를 두고 군사 대치 상황을 이어오는 등 갈등이 커져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재를 제안한 것을 인도가 거부하긴 했지만, 중국과의 최근 감정은 매끄럽지 않은 상황이다.
러시아는 중국과 관계가 가깝지만, 코로나19 환자가 폭증하면서 40만명에 육박, 세계에서 세번째를 기록하며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다만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G10, 혹은 G11 형태를 언급한 만큼 여의치 않으면 러시아가 빠질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미 '미국편' 선포한 영국·일본
원본보기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AFPBBNews=뉴스1
코로나19 사태로 중국에 감정이 상한 유럽은 이미 탈(脫)중국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이중 가장 적극적인 건 영국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의 전 편집장 라이오넬 바버는 니혼게이자이(닛케이)신문 기고에서 "중국과의 '황금시대'는 막을 내렸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과 아시아 동맹국들에게 미중 갈등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하도록 요구하는 데다가, 중국 정부마저 홍콩보안법을 통과시키는 등 초강수를 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영국이 미국편에 서는 것은 유럽연합(EU) 탈퇴 때문이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조기체결을 목표로 삼고 있는데, 트럼프 행정부는 이 점을 이용해 FTA에 중국을 배제하는 항목을 포함하려고 한다.
레너드 전 편집장은 "존슨 행정부는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의료용품 등의 중국 의존도를 종료하고, 5세대 이동통신(5G) 통신 설비도 현재 중국 화웨이 제품 일부 허용에서 2023년에는 화웨이를 제거할 의향"이라고 전했다.
마가렛 대처 전 총리의 전기를 쓴 작가 찰스 무어도 최근 텔레그래프지에 "영국이 이제 (중국)아부 외교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면서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는 뻐꾸기 같은 중국 대신 일본이나 한국, 핀란드, 스웨덴과 기술 제휴를 맺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범유럽 싱크탱크인 유럽외교관계협회(ECFR)는 "유럽의 중국몽은 끝났다"면서 이같은 흐름이 EU 전반으로 퍼지고 있다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코로나19로 중국에 대한 신뢰도가 깨지고, 중국 의존 경제의 허점마저 드러나면서 EU도 무역, 경제, 외교 등 중국을 벗어나는 작업에 착수했다는 얘기다.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 역시 트럼프 대통령이 제안한 G7 정상회의에 가장 먼저 참석하겠다고 하는 등 미국편에 섰다. 지난 25일에는 "미국이 유일한 동맹국"이라면서 "바이러스가 중국에서 퍼진 것은 사실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강기준 기자 standard@mt.co.kr
누가 이용수 할머니의 분노에 ‘불순물’을 섞는가 - 경향신문
누가 이용수 할머니의 분노에 ‘불순물’을 섞는가 - 경향신문
누가 이용수 할머니의 분노에 ‘불순물’을 섞는가
심윤지 기자
2020.05.31 17:34 입력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가 지난 25일 대구 한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
“단순한 ‘위안부’ 피해자로 생각해선 안 된다.” “특별대우를 안 해줘서 삐진 것이다.” “저쪽 진영에 세뇌가 되신 것 같다.”
정의기억연대(정의연)와 정의연 전 이사장인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의 후원금 의혹을 처음 제기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92)에 대한 2차 가해가 확산하고 있다.
31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할머니의 인지능력을 의심하는 ‘치매설’부터 정권 반대 세력이 배후에 있다는 ‘정치공작설’까지 이 할머니의 기자회견 의미를 깎아내리는 발언들이 다수 올라왔다.
한 유튜버는 지난 26일 ‘이용수 할머니 기자회견 옆에 있던 정체’라는 제목의 동영상을 올려 이 할머니의 2차 기자회견장에 보수성향 유튜버가 있었다며 배후설을 제기했다. 이 동영상은 26만회의 조회수를 기록했고,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를 중심으로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정치공작” “치매” “노욕”
피해자 겨냥해 ‘2차 가해’
정치인들이 되레 불붙여
위안부 운동 본질 흐리고
할머니들 발언 어렵게 해
이 할머니가 2012년 비례대표를 신청했고, 윤 의원이 이를 만류하는 녹취록이 지난 27일 공개되자 이 할머니의 비난 여론이 더 커졌다. 회견 동기를 국회의원직을 둘러싼 개인적 분노로 축소하는 것이다.
누리꾼들은 이러한 녹취록 내용을 공유하며 “본인이 국회의원 되고 싶었는데 남이 먼저 하니 부숴버리려는 것 같다” “구순이 넘은 나이에 노욕이 발동했다” 등의 인신공격성 댓글을 남겼다. 이 할머니의 출신 지역을 언급하며 지역혐오성 발언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여권 정치인들이 이러한 2차 가해 발언에 불을 붙였다.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의원은 지난 27일 기자들과 만나 이 할머니가 기자회견에서 윤 의원을 비판한 것을 두고 “(윤씨가 2012년 할머니의 국회의원 출마를 반대해) 할머니의 분노를 유발한 것이 동기가 됐다. 할머니의 분노는 ‘내가 정치를 하고 싶었는데 나를 못 하게 하고 네가 하느냐, 이 배신자야’로 요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26일 방송인 김어준씨는 이 할머니가 배포한 회견문과 실제 말투가 다르다며 “(회견문 작성에) 7~8명이 협업한 것”이라며 배후설을 제기했다.
민주당과 합당한 비례정당 더불어시민당 대표를 지낸 우희종 서울대 교수(수의학)도 지난 8일 “할머니가 주변에 계신 분에 의해 조금 기억이 왜곡된 것 같다”고 했다. 정의연 역시 이 할머니의 최초 문제제기 당시 “할머니가 고령으로 기억력에 착오가 있었던 것 같다”는 해명을 내놨다.
이 할머니는 이러한 배후설이나 치매설에 대해 “나는 치매도 바보도 아니다. 백번 천번 얘기해도 나 혼자했다”(CBS <김현정의 뉴스쇼>)고 일축했다.
이 할머니의 인지능력이나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는 발언들은 지난 30년간의 일본군 ‘위안부’ 운동 방향을 돌아보자는 요구의 본질을 가린다. 2차 가해성 발언이 위안부 피해자들의 주체적인 말하기를 더욱 어렵게 할 우려도 있다.
한 위안부 연구자는 “이 할머니의 기자회견은 위안부 운동방식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싶다는 피해자의 주체적인 선택”이라며 “김학순 할머니가 1991년 최초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했을 때도 정대협이라는 조력자가 있었지만 조력자를 배후라고 주장하고 그 발언의 가치를 깎아내리지 않듯, 이 할머니의 주장도 진지하게 경청해야 한다”고 말했다.
누가 이용수 할머니의 분노에 ‘불순물’을 섞는가
심윤지 기자
2020.05.31 17:34 입력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가 지난 25일 대구 한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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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위안부’ 피해자로 생각해선 안 된다.” “특별대우를 안 해줘서 삐진 것이다.” “저쪽 진영에 세뇌가 되신 것 같다.”
정의기억연대(정의연)와 정의연 전 이사장인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의 후원금 의혹을 처음 제기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92)에 대한 2차 가해가 확산하고 있다.
31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할머니의 인지능력을 의심하는 ‘치매설’부터 정권 반대 세력이 배후에 있다는 ‘정치공작설’까지 이 할머니의 기자회견 의미를 깎아내리는 발언들이 다수 올라왔다.
한 유튜버는 지난 26일 ‘이용수 할머니 기자회견 옆에 있던 정체’라는 제목의 동영상을 올려 이 할머니의 2차 기자회견장에 보수성향 유튜버가 있었다며 배후설을 제기했다. 이 동영상은 26만회의 조회수를 기록했고,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를 중심으로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정치공작” “치매” “노욕”
피해자 겨냥해 ‘2차 가해’
정치인들이 되레 불붙여
위안부 운동 본질 흐리고
할머니들 발언 어렵게 해
이 할머니가 2012년 비례대표를 신청했고, 윤 의원이 이를 만류하는 녹취록이 지난 27일 공개되자 이 할머니의 비난 여론이 더 커졌다. 회견 동기를 국회의원직을 둘러싼 개인적 분노로 축소하는 것이다.
누리꾼들은 이러한 녹취록 내용을 공유하며 “본인이 국회의원 되고 싶었는데 남이 먼저 하니 부숴버리려는 것 같다” “구순이 넘은 나이에 노욕이 발동했다” 등의 인신공격성 댓글을 남겼다. 이 할머니의 출신 지역을 언급하며 지역혐오성 발언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여권 정치인들이 이러한 2차 가해 발언에 불을 붙였다.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의원은 지난 27일 기자들과 만나 이 할머니가 기자회견에서 윤 의원을 비판한 것을 두고 “(윤씨가 2012년 할머니의 국회의원 출마를 반대해) 할머니의 분노를 유발한 것이 동기가 됐다. 할머니의 분노는 ‘내가 정치를 하고 싶었는데 나를 못 하게 하고 네가 하느냐, 이 배신자야’로 요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26일 방송인 김어준씨는 이 할머니가 배포한 회견문과 실제 말투가 다르다며 “(회견문 작성에) 7~8명이 협업한 것”이라며 배후설을 제기했다.
민주당과 합당한 비례정당 더불어시민당 대표를 지낸 우희종 서울대 교수(수의학)도 지난 8일 “할머니가 주변에 계신 분에 의해 조금 기억이 왜곡된 것 같다”고 했다. 정의연 역시 이 할머니의 최초 문제제기 당시 “할머니가 고령으로 기억력에 착오가 있었던 것 같다”는 해명을 내놨다.
이 할머니는 이러한 배후설이나 치매설에 대해 “나는 치매도 바보도 아니다. 백번 천번 얘기해도 나 혼자했다”(CBS <김현정의 뉴스쇼>)고 일축했다.
이 할머니의 인지능력이나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는 발언들은 지난 30년간의 일본군 ‘위안부’ 운동 방향을 돌아보자는 요구의 본질을 가린다. 2차 가해성 발언이 위안부 피해자들의 주체적인 말하기를 더욱 어렵게 할 우려도 있다.
한 위안부 연구자는 “이 할머니의 기자회견은 위안부 운동방식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싶다는 피해자의 주체적인 선택”이라며 “김학순 할머니가 1991년 최초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했을 때도 정대협이라는 조력자가 있었지만 조력자를 배후라고 주장하고 그 발언의 가치를 깎아내리지 않듯, 이 할머니의 주장도 진지하게 경청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 베트남난민 18년사 Hermod Kim Shidu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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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mod Kim Shidu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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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베트남난민 18년사
The 18 years of Vietnamese Refugees in Busan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1. 부산입항 1975년 베트남난민과 한국사회
난민은 오랫동안 베트남과 한국을 연결하는 고리였다. 양자적 관계를 설정하지 못한 전근대 시기에도 난민이 서로의 연안으로 표류해 들어가면서 문화교섭의 계기가 만들어지곤 했다. 1975년 베트남난민도 양국 간의 외교단절기에 교류의 공백을 메워주는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더 중요하게는 1975년 베트남난민은 한국이 역사상 처음이자 최대 규모로 외국인 난민을 구조하고 우리사회 안으로 통합시키고 제3국으로의 이주를 알선했던 경험을 안겨주었다. 이 경험에 대한 사실적인 이해가 필요하기에 본문에서는 베트남난민의 구조・정착・재정착에 대한 정부의 정책과 이들의 정착과 이주의 추세에 초점을 맞추어 1975년 베트남난민의 제모습을 복원하고자 했다. 본문에서는 다루지 못했지만 특히 정착한 베트남난민에 대한 면밀한 추적 연구가 더 필요하다. 왜냐하면 1975년 베트남난민의 수용은 당시에는 아무도 의식하지 못했으나 사실상 한국의 다문화사회로의 진입을 알리는 계기였기 때문이다.
본문에서는 LST난민과 쌍용호난민의 성격과 특징을 세 차원에서 가름해 보았다. 첫째는 한국과의 관련성에서 보면 LST난민은 유사 이래 처음 있었던 해외교포 해상철수 작전이라는 성격을 띠는 동시에 베트남전쟁은 물론 남베트남과의 우방관계 설정에서 비롯된 유연고 베트남난민을 구조하는 작업이었다. 이에 따라 난민에 대한 구조는 적극적인 성격을 가지며 이때 구조된 난민은 한국역사에서는 전무후무한 정착의 대상이 되었다. 둘째는 1975년 베트남난민의 국제정치학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맥락에서 한국에 들어온 베트남난민의 성격과 특징을 짚어내려고 했다. 한국의 베트남난민 구조는 적극적인 행위이었을지라도 독립적인 행동은 아니었다. 1975년 베트남난민의 구조는 베트남전쟁과 마찬가지로 미국이 주도하고 베트남전쟁 참전국과 국제기구가 공조하는 가운데 한국이 그 일원으로 참여하면서 이루어졌다. 셋째는 1975년 베트남난민을 유출한 근원지인 남베트남에서 난민이 생겨나게 된 상황과 그 규모, 국내에서의 피난민의 흐름은 물론 국외 난민으로의 전화과정을 ‘준비된 난민’이라는 용어로 설명했다. 이를 통해 1975년 베트남난민의 성격이 보다 분명하게 드러나고 이후 발생하게 될 선상난민의 연원이나 그 방향과 규모까지도 가름하고자 했다. 이러한 특징은 상호작용이 극대화된 현대세계에서 난민문제가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트랜스내셔널한 측면을 드러내준다.
1975년 베트남난민과 한국사회의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모양이나 정도는 관점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먼저 정부를 비롯하여 위로부터 본다면 이는 일방적인 이해나 이용의 대상이기 쉬웠다. 냉전의 체제에서 국민국가의 메카니즘이 강력하게 작동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미국에 책임을 묻고 미국의 태도를 비판하는 한편 자유・민주・인도주의 실현의 주체로서의 한국을 강조하고 자주국방이나 안보체제의 강화 내지는 사회질서의 확보 필요성이 강조되었다. 그러나 본 논문에서는 다루지 않았지만 아래로부터 본다면 1975년 베트남난민으로 인해 작지만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음은 분명하다. 베트남난민의 삶에 대한 공감과 이들의 문화에 대한 관심은 자원봉사, 불우이웃돕기나 베트남풍속도를 통한 기금마련 등과 같이 보이는 행동을 통해서뿐만 아니라 드라마, 소설, 영화를 통해 우리의 문화 속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또한 1975년 베트남난민은 한국 사회에 인도주의나 난민문제라는 커다란 과제를 안겨주었다.
2. 바다의 디아스포라, 보트피플: 한국에 들어온 2차 베트남난민(1977~1993) 연구
1977년 9월 15일 부산시 재송동에 마련된 베트남난민보호소가 개소하자마자 처음으로 입소한 베트남난민은 1989년 8월 16일을 마지막으로 13년 동안 36차례에 걸쳐 1,382명(출생자 66명 포함)에 달했다. 이는 13년간 매년 평균 106명이 넘는 베트남난민이 부산에서 임시보호를 받았음을, 1차례 들어온 규모는 평균 38명이 약간 넘었음을 뜻한다. 바로 1977년부터 1989년까지 해상에서 구조되어 한국에 들어왔던 난민, 통상 선상난민(Boat People)이라고 알려져 있는 이들을 1975년 남베트남의 패망 바로 전후를 배경으로 발생했던 1차베트남난민과 구별하여 2차베트남난민이라 부른다. 2차베트남난민은 사망자2명을 제외하고 모두 제3국에 정착했다. 1977년 9월 23일을 시작으로 1993년 5월 17일까지 17년간 1,380명의 베트남난민이 140차례에 걸쳐 부산을 떠났다. 이는 매년 평균 81명이 넘는 난민이, 1차례에 9명 정도가 재정착을 위해 15개국으로 향했음을 의미한다.
베트남 선상난민의 참상이나 교훈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다. 17년간 1,382명의 2차베트남난민이 국내에 유입되어 부산의 난민보호소에서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7년 가까이 삶을 살았다는 사실이나, 통계가 보여주는 연도별 입출소와 재정착지 관련 통계 또한 한국에서의 베트남난민에 관심을 가진 연구자라면 모를 리 없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베트남난민보호소에 입소하게 된 이들이 어떻게 한국의 해항도시에 들어오며 그들은 누구인지 그리고 어떤 맥락에서 어디에 재정착하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연구 성과는 단 하나도 없다. 게다가 베트남난민보호소 운영 책임을 맡고 있던 부산시의 자료 중 많은 부분이 문서보존기간이 지나 폐기되었으며, 베트남난민 구호업무를 담당한 대한적십자사 부산지부가 생산한 관련 문건 또한 사라져 버렸다.
본 논문은 남아있는 베트남난민 관련 부산시 기록관 자료와 1977년부터 1993년까지의 신문자료를 대조・보완하여 베트남⟶남중국해⟶동중국해⟶한국⟶서구로의 선상난민의 행로를 자료가 허용하는 한 세밀하게 복원하고자 했다. 특히 3가지 측면에 초점을 맞추었다. 첫 번째 측면은 2차베트남난민이 구조된 시점과 지점부터 입항하는 해항도시와 부산 베트남난민보호소 입소까지이다. 두 번째는 이들이 언제 어디로 재정착하며 재정착을 결정지은 요인들은 무엇인지이다. 세 번째 측면은 한국의 해항도시에 들어오고 나간 이들에게 영향을 미친 한국 밖의 환경과 맥락이다. 이 세 가지 측면은 합하여 우리 안에 들어온 베트남난민의 모습을 다각적으로 드러내고 그 변화상과 함의를 이해하도록 도와줄 것이다. 이를 위해 본문은 1983년을 기준으로 두개 장으로 나뉘어 각각의 측면을 분석했다. 1983년은 13년간의 2차베트남난민 유입사의 중간 지점일 뿐만 아니라 앞 표에서 보이듯이 이전에 들어온 난민이 모두 해소되었으며 새로 유입되어 보호받던 인원도 가장 적었던 해이다. 보다 중요하게는 1983년은 1987년에 이르면 명백해지는 새로운 형태의 선상난민이 우리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시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본문은 13년 동안 우리의 7개 해항도시로 들어와 부산베트남난민보호소에 머물렀던 베트남난민 1,382명의 여로를 추적해 보았다. 이들에 대해 UNHCR이 체제 비용은 물론 관계국과의 교섭・제3국 재정착을 책임졌던 반면, 한국은 베트남난민에 대해 제3국 송출시까지 임시 보호라는 비교적 한정된 기능을 담당했다. 게다가 베트남난민을 수용했던 부산의 보호소는 전형적인 ‘닫힌 캠프’로 베트남난민의 한국사회와의 상호작용은 최소화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베트남난민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과 관여는 소극적이었으며, 직접 교류의 양상도 제한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트남난민을 맞이하면서 한국 사회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새로운 변화를 경험했다. 이 중에서 인도주의와 냉전은 2차베트남난민과 관련하여 한국을 변화시킨 중요한 키워드라고 할 수 있다.
3. 한국문학의 베트남 선상난민 형상화와 존재양태
본 논문은 베트남난민이 한국문학에서 어떻게 표상되었는가라는 문제제기에서 비롯되었다. 일반적으로 선상난민(boat people)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베트남난민은 1975년부터 20여 년간 전 세계적 이슈였을 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에도 그 존재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1975년부터 18년 동안 3,000여명의 베트남난민이 한국에 들어왔으며 그 중 500여명은 우리사회에 정착했다. 해상에서의 난민의 구조와 부산 베트남난민보호소에서의 구호, 그리고 문화와 민족이 다른 이들의 수용 모두 우리사회가 처음 경험해 보는 일이었다. 또한 베트남난민은 한국의 베트남전쟁에의 관여가 빚은 과거사, 그리고 남북분단 상황에서 공산의 위협을 느끼고 있던 한국사회에 닥칠지도 모를 미래사와 연결되면서 우리사회에 복잡다단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한국문학은 베트남난민을 둘러싸고 전개되었던 이런 현실을 마냥 비켜가지 않았다. 그러나 베트남난민에 시선을 두고 그 존재를 드러낸 문학 작품은 많은 편이 아니다. 여기에 더하여 베트남난민을 다룬 한국문학의 전체상을 파악해 보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때문에 여기에서 말하는 한국문학이란 한국의 언어, 즉 글을 표현 수단으로 한 소설, 희곡, 영화 시나리오, 방송극 극본을 모두 포함한다. 이들은 모두 언어적 재현 양식으로 표현되어 있다는 점에 더하여 우리사회의 베트남난민에 대한 나름의 이해이자 해석이기에 그 형태를 불문하고 분석의 범주에 넣었다.
베트남난민을 소재로 한 한국문학 작품은(서두에 놓인 이혜선의 시 한 편을 제외하고) 6편 정도로 파악된다. 문학의 형태로 본다면 소설로는 『시간의 문』(이청준, 1982)과 「보트피플」(천금성, 1986), 영화 시나리오로는 「사랑 그리고 이별」(이희우, 1983), 「처녀 아리랑」(이종택, 1992), 희곡으로는 「제3의 신」(이청준, 1982), 방송극 극본으로는 「빨간 아오자이」(김혜린, 1992)가 있다. 1982년부터 1992년까지 10년 동안 집중적으로 쓰인 이들 작품들은 형태가 다른 만큼이나, 사실 이 보다 더욱 더 다양한 시각과 수준에서 베트남난민을 드러내고 있다. 게다가 베트남난민 관련 문학작품에 대한 기존의 연구가 없는 상황에서 이들을 범주화하여 분석하기에는 곤란함이 따르는 것도 사실이다.
본 논문은 베트남난민을 형상화한 위 6편의 문학작품이 크게 관계로서의 베트남난민과 실존으로서의 베트남난민을 다루고 있다고 본다. 「사랑 그리고 이별」,「처녀 아리랑」 , 「빨간 아오자이」세 편의 작품을 통해서는 한국인과의 관계에서 베트남난민이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지를 읽어낼 수 있다. 이에 대한 분석이 2장의 내용을 구성한다. 반면『시간의 문』「보트피플」「제3의 신」에서는 한국사회와 직접적인 관계성은 없으나 실체와 실존적 존재로서의 베트남난민을 만날 수 있다. 이에 대한 분석은 3장의 내용을 구성한다. 본문을 통해 한국문학이 사건으로서의 베트남난민에 대해 어떤 관계와 존재를 재현해내는가라는 문제가 분명해 질 것이다. 또한 베트남난민을 둘러싼 역사적 사실이 어떻게 문학적 진실로 구현되는지도 드러날 것이다.
베트남난민을 형상화하고 있는 6편의 한국문학 작품은 관계와 존재의 차원에서 베트남난민에 접근하고 있음을 보았다. 전자는 한국 사회 적어도 한국인과의 관계 속에서 베트남난민의 초상을 반추하는 행위이며 후자는 실존적 존재로서의 베트남난민에 대한 성찰이라고 할 수 있다. 베트남난민을 주제로 한 문학작품에 누락되거나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지적한 평가는 다른 측면에서 보면 베트남난민을 주제로 한 문학작품이 성취한 성과이기도 하다. 문학이라는 공간에서 베트남난민에 관한 어떤 특정 흔적이 기억, 저장, 재구성되고 있는지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있었던 그대로의 사실보다는 그 허구 쪽에서 오히려 더 깊게 개별자로서의 베트남난민과 대화를 하고 진실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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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earch Achievements L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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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Articles
Vietnamese Refugees and East Asia
International Institute of Maritime Affairs | 해항도시문화교섭학 pp.73~114 문학
Source research tasks : 부산 베트남난민 18년사
2. Articles
A Study on the 1975 Vietnamese Refugees of Busan
노영순 | The Institute for the Study of History | 史叢(사총) | (81호) | pp.329~364 | 2014-01-01 | 기타역사일반
Source research tasks : 부산 베트남난민 18년사
3. Reports
(결과보고)부산 베트남난민 18년사
노영순 | 2015-10-29 | 기타역사일반
Source research tasks : 부산 베트남난민 18년사
PDF(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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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M.OR.KR
부산 베트남난민 18년사
Hermod Kim Shidu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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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베트남난민 18년사
The 18 years of Vietnamese Refugees in Busan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1. 부산입항 1975년 베트남난민과 한국사회
난민은 오랫동안 베트남과 한국을 연결하는 고리였다. 양자적 관계를 설정하지 못한 전근대 시기에도 난민이 서로의 연안으로 표류해 들어가면서 문화교섭의 계기가 만들어지곤 했다. 1975년 베트남난민도 양국 간의 외교단절기에 교류의 공백을 메워주는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더 중요하게는 1975년 베트남난민은 한국이 역사상 처음이자 최대 규모로 외국인 난민을 구조하고 우리사회 안으로 통합시키고 제3국으로의 이주를 알선했던 경험을 안겨주었다. 이 경험에 대한 사실적인 이해가 필요하기에 본문에서는 베트남난민의 구조・정착・재정착에 대한 정부의 정책과 이들의 정착과 이주의 추세에 초점을 맞추어 1975년 베트남난민의 제모습을 복원하고자 했다. 본문에서는 다루지 못했지만 특히 정착한 베트남난민에 대한 면밀한 추적 연구가 더 필요하다. 왜냐하면 1975년 베트남난민의 수용은 당시에는 아무도 의식하지 못했으나 사실상 한국의 다문화사회로의 진입을 알리는 계기였기 때문이다.
본문에서는 LST난민과 쌍용호난민의 성격과 특징을 세 차원에서 가름해 보았다. 첫째는 한국과의 관련성에서 보면 LST난민은 유사 이래 처음 있었던 해외교포 해상철수 작전이라는 성격을 띠는 동시에 베트남전쟁은 물론 남베트남과의 우방관계 설정에서 비롯된 유연고 베트남난민을 구조하는 작업이었다. 이에 따라 난민에 대한 구조는 적극적인 성격을 가지며 이때 구조된 난민은 한국역사에서는 전무후무한 정착의 대상이 되었다. 둘째는 1975년 베트남난민의 국제정치학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맥락에서 한국에 들어온 베트남난민의 성격과 특징을 짚어내려고 했다. 한국의 베트남난민 구조는 적극적인 행위이었을지라도 독립적인 행동은 아니었다. 1975년 베트남난민의 구조는 베트남전쟁과 마찬가지로 미국이 주도하고 베트남전쟁 참전국과 국제기구가 공조하는 가운데 한국이 그 일원으로 참여하면서 이루어졌다. 셋째는 1975년 베트남난민을 유출한 근원지인 남베트남에서 난민이 생겨나게 된 상황과 그 규모, 국내에서의 피난민의 흐름은 물론 국외 난민으로의 전화과정을 ‘준비된 난민’이라는 용어로 설명했다. 이를 통해 1975년 베트남난민의 성격이 보다 분명하게 드러나고 이후 발생하게 될 선상난민의 연원이나 그 방향과 규모까지도 가름하고자 했다. 이러한 특징은 상호작용이 극대화된 현대세계에서 난민문제가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트랜스내셔널한 측면을 드러내준다.
1975년 베트남난민과 한국사회의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모양이나 정도는 관점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먼저 정부를 비롯하여 위로부터 본다면 이는 일방적인 이해나 이용의 대상이기 쉬웠다. 냉전의 체제에서 국민국가의 메카니즘이 강력하게 작동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미국에 책임을 묻고 미국의 태도를 비판하는 한편 자유・민주・인도주의 실현의 주체로서의 한국을 강조하고 자주국방이나 안보체제의 강화 내지는 사회질서의 확보 필요성이 강조되었다. 그러나 본 논문에서는 다루지 않았지만 아래로부터 본다면 1975년 베트남난민으로 인해 작지만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음은 분명하다. 베트남난민의 삶에 대한 공감과 이들의 문화에 대한 관심은 자원봉사, 불우이웃돕기나 베트남풍속도를 통한 기금마련 등과 같이 보이는 행동을 통해서뿐만 아니라 드라마, 소설, 영화를 통해 우리의 문화 속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또한 1975년 베트남난민은 한국 사회에 인도주의나 난민문제라는 커다란 과제를 안겨주었다.
2. 바다의 디아스포라, 보트피플: 한국에 들어온 2차 베트남난민(1977~1993) 연구
1977년 9월 15일 부산시 재송동에 마련된 베트남난민보호소가 개소하자마자 처음으로 입소한 베트남난민은 1989년 8월 16일을 마지막으로 13년 동안 36차례에 걸쳐 1,382명(출생자 66명 포함)에 달했다. 이는 13년간 매년 평균 106명이 넘는 베트남난민이 부산에서 임시보호를 받았음을, 1차례 들어온 규모는 평균 38명이 약간 넘었음을 뜻한다. 바로 1977년부터 1989년까지 해상에서 구조되어 한국에 들어왔던 난민, 통상 선상난민(Boat People)이라고 알려져 있는 이들을 1975년 남베트남의 패망 바로 전후를 배경으로 발생했던 1차베트남난민과 구별하여 2차베트남난민이라 부른다. 2차베트남난민은 사망자2명을 제외하고 모두 제3국에 정착했다. 1977년 9월 23일을 시작으로 1993년 5월 17일까지 17년간 1,380명의 베트남난민이 140차례에 걸쳐 부산을 떠났다. 이는 매년 평균 81명이 넘는 난민이, 1차례에 9명 정도가 재정착을 위해 15개국으로 향했음을 의미한다.
베트남 선상난민의 참상이나 교훈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다. 17년간 1,382명의 2차베트남난민이 국내에 유입되어 부산의 난민보호소에서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7년 가까이 삶을 살았다는 사실이나, 통계가 보여주는 연도별 입출소와 재정착지 관련 통계 또한 한국에서의 베트남난민에 관심을 가진 연구자라면 모를 리 없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베트남난민보호소에 입소하게 된 이들이 어떻게 한국의 해항도시에 들어오며 그들은 누구인지 그리고 어떤 맥락에서 어디에 재정착하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연구 성과는 단 하나도 없다. 게다가 베트남난민보호소 운영 책임을 맡고 있던 부산시의 자료 중 많은 부분이 문서보존기간이 지나 폐기되었으며, 베트남난민 구호업무를 담당한 대한적십자사 부산지부가 생산한 관련 문건 또한 사라져 버렸다.
본 논문은 남아있는 베트남난민 관련 부산시 기록관 자료와 1977년부터 1993년까지의 신문자료를 대조・보완하여 베트남⟶남중국해⟶동중국해⟶한국⟶서구로의 선상난민의 행로를 자료가 허용하는 한 세밀하게 복원하고자 했다. 특히 3가지 측면에 초점을 맞추었다. 첫 번째 측면은 2차베트남난민이 구조된 시점과 지점부터 입항하는 해항도시와 부산 베트남난민보호소 입소까지이다. 두 번째는 이들이 언제 어디로 재정착하며 재정착을 결정지은 요인들은 무엇인지이다. 세 번째 측면은 한국의 해항도시에 들어오고 나간 이들에게 영향을 미친 한국 밖의 환경과 맥락이다. 이 세 가지 측면은 합하여 우리 안에 들어온 베트남난민의 모습을 다각적으로 드러내고 그 변화상과 함의를 이해하도록 도와줄 것이다. 이를 위해 본문은 1983년을 기준으로 두개 장으로 나뉘어 각각의 측면을 분석했다. 1983년은 13년간의 2차베트남난민 유입사의 중간 지점일 뿐만 아니라 앞 표에서 보이듯이 이전에 들어온 난민이 모두 해소되었으며 새로 유입되어 보호받던 인원도 가장 적었던 해이다. 보다 중요하게는 1983년은 1987년에 이르면 명백해지는 새로운 형태의 선상난민이 우리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시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본문은 13년 동안 우리의 7개 해항도시로 들어와 부산베트남난민보호소에 머물렀던 베트남난민 1,382명의 여로를 추적해 보았다. 이들에 대해 UNHCR이 체제 비용은 물론 관계국과의 교섭・제3국 재정착을 책임졌던 반면, 한국은 베트남난민에 대해 제3국 송출시까지 임시 보호라는 비교적 한정된 기능을 담당했다. 게다가 베트남난민을 수용했던 부산의 보호소는 전형적인 ‘닫힌 캠프’로 베트남난민의 한국사회와의 상호작용은 최소화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베트남난민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과 관여는 소극적이었으며, 직접 교류의 양상도 제한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트남난민을 맞이하면서 한국 사회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새로운 변화를 경험했다. 이 중에서 인도주의와 냉전은 2차베트남난민과 관련하여 한국을 변화시킨 중요한 키워드라고 할 수 있다.
3. 한국문학의 베트남 선상난민 형상화와 존재양태
본 논문은 베트남난민이 한국문학에서 어떻게 표상되었는가라는 문제제기에서 비롯되었다. 일반적으로 선상난민(boat people)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베트남난민은 1975년부터 20여 년간 전 세계적 이슈였을 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에도 그 존재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1975년부터 18년 동안 3,000여명의 베트남난민이 한국에 들어왔으며 그 중 500여명은 우리사회에 정착했다. 해상에서의 난민의 구조와 부산 베트남난민보호소에서의 구호, 그리고 문화와 민족이 다른 이들의 수용 모두 우리사회가 처음 경험해 보는 일이었다. 또한 베트남난민은 한국의 베트남전쟁에의 관여가 빚은 과거사, 그리고 남북분단 상황에서 공산의 위협을 느끼고 있던 한국사회에 닥칠지도 모를 미래사와 연결되면서 우리사회에 복잡다단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한국문학은 베트남난민을 둘러싸고 전개되었던 이런 현실을 마냥 비켜가지 않았다. 그러나 베트남난민에 시선을 두고 그 존재를 드러낸 문학 작품은 많은 편이 아니다. 여기에 더하여 베트남난민을 다룬 한국문학의 전체상을 파악해 보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때문에 여기에서 말하는 한국문학이란 한국의 언어, 즉 글을 표현 수단으로 한 소설, 희곡, 영화 시나리오, 방송극 극본을 모두 포함한다. 이들은 모두 언어적 재현 양식으로 표현되어 있다는 점에 더하여 우리사회의 베트남난민에 대한 나름의 이해이자 해석이기에 그 형태를 불문하고 분석의 범주에 넣었다.
베트남난민을 소재로 한 한국문학 작품은(서두에 놓인 이혜선의 시 한 편을 제외하고) 6편 정도로 파악된다. 문학의 형태로 본다면 소설로는 『시간의 문』(이청준, 1982)과 「보트피플」(천금성, 1986), 영화 시나리오로는 「사랑 그리고 이별」(이희우, 1983), 「처녀 아리랑」(이종택, 1992), 희곡으로는 「제3의 신」(이청준, 1982), 방송극 극본으로는 「빨간 아오자이」(김혜린, 1992)가 있다. 1982년부터 1992년까지 10년 동안 집중적으로 쓰인 이들 작품들은 형태가 다른 만큼이나, 사실 이 보다 더욱 더 다양한 시각과 수준에서 베트남난민을 드러내고 있다. 게다가 베트남난민 관련 문학작품에 대한 기존의 연구가 없는 상황에서 이들을 범주화하여 분석하기에는 곤란함이 따르는 것도 사실이다.
본 논문은 베트남난민을 형상화한 위 6편의 문학작품이 크게 관계로서의 베트남난민과 실존으로서의 베트남난민을 다루고 있다고 본다. 「사랑 그리고 이별」,「처녀 아리랑」 , 「빨간 아오자이」세 편의 작품을 통해서는 한국인과의 관계에서 베트남난민이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지를 읽어낼 수 있다. 이에 대한 분석이 2장의 내용을 구성한다. 반면『시간의 문』「보트피플」「제3의 신」에서는 한국사회와 직접적인 관계성은 없으나 실체와 실존적 존재로서의 베트남난민을 만날 수 있다. 이에 대한 분석은 3장의 내용을 구성한다. 본문을 통해 한국문학이 사건으로서의 베트남난민에 대해 어떤 관계와 존재를 재현해내는가라는 문제가 분명해 질 것이다. 또한 베트남난민을 둘러싼 역사적 사실이 어떻게 문학적 진실로 구현되는지도 드러날 것이다.
베트남난민을 형상화하고 있는 6편의 한국문학 작품은 관계와 존재의 차원에서 베트남난민에 접근하고 있음을 보았다. 전자는 한국 사회 적어도 한국인과의 관계 속에서 베트남난민의 초상을 반추하는 행위이며 후자는 실존적 존재로서의 베트남난민에 대한 성찰이라고 할 수 있다. 베트남난민을 주제로 한 문학작품에 누락되거나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지적한 평가는 다른 측면에서 보면 베트남난민을 주제로 한 문학작품이 성취한 성과이기도 하다. 문학이라는 공간에서 베트남난민에 관한 어떤 특정 흔적이 기억, 저장, 재구성되고 있는지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있었던 그대로의 사실보다는 그 허구 쪽에서 오히려 더 깊게 개별자로서의 베트남난민과 대화를 하고 진실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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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베트남난민 18년사
The 18years of Vietnamese Refugees in Busan
Researchers have entered the information directly to the NRF of Korea research support system
Program 신진연구자지원사업(인문사회)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
Project Number 2013S1A5A8026035
Year(selected) 2013 Year
Research period 2 Year (2013년 05월 01일 ~ 2015년 04월 30일)
chief of research 노영순 [ NRF 인문사회 연구책임 3회 수행 / 공동연구 5회 수행 / 학술논문 20편 게재 / 저역서 4권 저술 / 총 피인용 40회 ]
Executing Organization 한국해양대학교
the present condition of Project 종료
Research Summary
Goal
본 논문은 ‘보트피플’(Boat People)로 더 잘 알려진 베트남 해상난민, 특정하게는 1975년부터 1993년까지 18년간 한국 사회에 들어와 일부는 정착하고 대다수는 제3국으로 재정착지를 찾아 떠난 2,800여명의 베트남난민을 다룬다.
전쟁사의 이면에서든 냉전사의 경험에서든 부산난민보호소에 수용되었던 베트남 해상난민에 대한 면밀한 이해는 기본적인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그 내용에 대해서는 후술하는 것으로 하고 여기에서는 본고와 같이 부산난민보호소의 베트남 해상난민에 대한 연구가 갖는 의의를 크게 세 가지로 기술하고자 한다. 부산에 들어온 베트남난민에 대해 이해를 높일 수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도 가장 큰 논문의 의의이다. 종교, 직업, 계층적 특질을 포함하여 어떤 사회적 배경을 가진 이들이 부산에 입항했으며, 어떤 경유로 해상난민화 되고 구조되어 남지나해와 동지나해를 지나왔는지에서 시작하여 부산에서의 이들의 일상을 재구성하는 작업을 통해 베트남 해상난민에 대한 이해를 높일 뿐만 아니라, 이를 근거로 하여 이제까지 통용되었던 베트남난민 유출과 유입에 관한 제설을 비판적으로 재검토하고 베트남난민에 관한 오해를 바로 잡을 수 있다. 대표적으로 ‘베트남난민’에는 민족적으로 베트남인이 아니라 중국인(화교)이 다수였으며, 문화적으로 베트남전통에 속한 이들이 아니라 가톨릭교도들이 커다란 집단이었으며, 후기로 갈수록 중국인밀항자들이 베트남난민 속에 대거 유입하게 되었다.
둘째는 연구를 통해 우리 사회와 관련하여 베트남 해상난민이 남긴 일종의 유산이나 영향을 바로 인식할 수 있다. 사실상 정착한 베트남난민은 한국사회의 다문화화를 이끈 소리 없는 주역이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사람에게 음식이든 명절이든 언어이든 혼혈의 문제이든 이문화와의 면대면 접촉은 바로 이 베트남난민을 통해 보다 실제적으로 체험되었다. 인도주의라는 보편주의를 타자를 향해 의식적으로 발휘한 것도, 난민지위에 관한 국제 협약과 의정서에 조인함으로써 인도주의적 국제질서에 명시적으로 들어간 것도 모두 베트남난민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지거나 얻은 것들이었다. 여기에 더하여 우리 사회가 주로는 정치적으로 베트남난민과 행해온 상호작용을 보다 분명히 성찰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 베트남난민은 망국이라는 비극적 서사의 주인공으로 반공이나 총화단결, 국론통일, 민족주의 강화라는 매우 정치적인 맥락에서 사용되기도 했다.
셋째는 베트남난민의 역사는 전세계적 규모의 베트남디아스포라의 형성 역사이기도 하다. 물론 부산의 난민보호소에 있던 베트남난민은 그 중 아주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동북아시아만 보더라도 중국과 일본은 한국 보다 훨씬 더 많은 베트남난민을 수용하고 재정착시켰다. 규모의 차이에 더하여 한중일 삼국은 각기 베트남난민에 대응하는 기구, 장소, 의식 등도 달랐다. 부산의 베트남 해상난민에 대한 기본적인 연구는 중국이나 일본의 그것과 비교하는 틀을 제공할 수 있는 의의가 있다.
Expectation Effectiveness
본 연구의 결과는 향후 연구의 시작점으로써의 역할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본 계획에 따라 부산난민보호소를 거쳐서 한국에 정착했거나 제3국에 재정착한 베트남난민에 대한 연구를 수행한 이후의 연구 방향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베트남난민으로 인해, 더 정확히 말하면 베트남난민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예술로 창조되는지를 보고자 한다. “처녀아리랑”(이종택 감독), “사랑 그리고 이별”(변장호 감독)과 같이 스크린을 통해, “제3의 신”(이청준 작)과 같이 연극무대를 통해, 혹은 『이상한 바다』(천금성 작), 『랍스타를 먹는 시간 』(방현석 작),『강물은 모두 바다로 흐르지 않는다』(박충훈 작) 등의 소설을 통해 베트남난민이 어떻게 표현되는지? 어떤 함의를 갖는지? 예술적인 표상과 문화의 교류나 교섭은 어떤 관계에서 설정되는지에 대한 질문에 답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다른 하나는 본 연구를 바탕으로 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일본과 중국에 기착한 베트남난민의 특징을 잡아내고 이들이 베트남난민을 다루는 방식을 연구하여, 궁극적으로는 한중일 동아시아 3국과 베트남난민과의 관계를 비교사적으로 접근하고자 한다.
이상의 연구는 직간접적으로 한국에서의 다문화사회의 형성을 이해하고 그 발전을 도모하는 방향으로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아울러 북한난민 문제에 대해서도 좀 더 심도 깊은 방향을 제시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
Summary
『부산 베트남난민 18년사』라는 제목으로 신청한 연구과제는 2년간 2편의 논문을 통해 실현될 것이다. 최소한 2편의 논문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한국에서의 베트남난민에 대한 연구의 공백을 충실하게 채우기 위해 보다 전론적인 연구가 필요해서이다. 그리고 다음 장의 결과 활용방안에서 제시한 바처럼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향후의 연구에 활용되기 위해서는 보다 충실하고 구체적인 연구 내용이 확보되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이 연구에 기반하여 궁극적으로는 한중일 동아시아 3국과 베트남난민과의 관계를 비교사적으로 접근하고자 한다.
『부산 베트남난민 18년사』를 구성할 두 연차의 가제목과 잠정목차는 아래와 같으며, 각 논문의 주요 장에서 다룰 6가지 소주제의 내용은 바로 후술하게 된다.
목 차
1년차: 한국의 베트남난민 수용과 베트남난민의 해상 표류와 구조 경로
I. 문제제기
II. 한국의 베트남난민 수용 배경과 수용 체제
III. 베트남의 항구에서 부산 난민보호소로의 여정
IV. 한국에서의 정착과 제3국으로의 재정착 실태와 의미
V. 맺음말
2년차: 베트남난민의 일상적, 사회적, 정치적 삶에 대한 연구
I. 문제제기
II. 부산난민보호소 난민의 사회적 계층 분석
III. 부산난민보호소에서의 생활과 민족적・종교적 갈등
IV. 베트남난민의 정치적 역할과 문화적 영향
V. 맺음말
2.2.1 한국의 베트남난민 수용 배경과 수용 체제
본 장은 한국의 베트남난민 수용 배경과 체제를 다룸에 있어서 미국과 유엔난민고등판무관(UNHCR), 국제적십자가 그림을 그리고 역할한 커다란 틀과 한국정부, 한국적십자사를 비롯한 한국의 NGO단체들과의 연관성에 초점을 두어 분석하고자 한다. 이에 더하여 당시 난민보호에 관한 국제규약과 의정서에 조인하지 않은 우리 정부는 베트남난민을 법적으로 난민이라기보다는 재난상륙자 혹은 무국적자로 다루었는데, 그 함의가 무엇인지, 한국은 제1망명지(First Asylum)의 기능을 수행했지만 홍콩과 아세안 창립5개국(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필리핀)과는 달리 조약법상의 자격은 가지고 있지 않았는데, 한국의 난민정책・전략과 관련하여 그 함의는 무엇인지도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해항도시 부산이 베트남난민을 수용하는 공간으로 결정된 이유와 부산의 역할, 부산 난민보호소의 실제적인 구조와 기능, 관리 그리고 기타 수용 체제를 분석이 이 장에서 다루어질 것이다.
2.2.2 베트남의 항구에서 부산 난민보호소로의 여정
1차와 마찬가지로 2차 베트남난민의 규모와 시기별 변동, 그리고 그 성격의 변화를 규명하면서 이에 영향을 미친 베트남난민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응, 베트남에서의 변화, 그리고 중월전쟁의 전개 과정과의 관련성이 분석된다. 무엇보다도 이 장에서는 한국에 오게 된 베트남난민이 구조된 해상의 위치와 시기, 구조한 선박의 종류, 한국에서의 첫 입항지와 부산으로의 재집결 그리고 이들에 대한 여론의 분석에 집중한다. 1975년에서 1989년 사이 베트남난민이 구조된 해상의 위치는 점차 북상을 하게 되며 시기는 계절풍이 부는 때에 주로 발생했다. 구조한 선박의 국적지와 선박 소유자 국적지는 난민의 정착이나 제3국으로의 재정착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보인다. 베트남난민은 부산뿐만 아니라 인천, 평택, 군산, 목포, 신안, 제주, 여수의 항구를 첫 기항지로 했다. 마지막으로 다룰 베트남난민에 대한 여론은 자체로도 흥미로운 주제이고 다음 장과의 연관성하에서도 의미가 깊다.
2.2.3 한국에서의 정착과 제3국으로의 재정착 실태와 의미
1980년대 말에 이르면 베트남난민에 대한 여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처음으로 등장한다. 베트남난민의 강제추방과 입항 소식이 각계각층의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제까지 제3국으로의 재정착을 움직일 수 없는 원칙으로 삼고, ‘내몰 수도 없지만 더욱이 받아들일 수는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던 정부도 베트남난민의 한국사회에서의 정착 문제를 고민했던 시점이었다. 그 과정은 충분히 의미 있었으나 결론은 제3국으로의 재정착이었다. 2차 베트남난민이 이 범주에 속했다. 이 장의 절반은 바로 2차 베트남난민의 재정착과 일부 1차 베트남난민의 재정착을 다루고 그 관련성에 주목한다.
2.2.4 부산난민보호소 난민의 사회적 계층 분석
앞으로 기술할 세 장은 2차년도의 연구내용이 되는데 기본적인 질문은 어떤 베트남난민이 우리 사회에 들어왔으며 시간의 길이에 상관없이 이들이 살았던 한국에서의 삶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한국에서 어떻게 이용 혹은 역할했는지가 연구의 주요 질문이다
Research Summary
Korean
1. 부산입항 1975년 베트남난민과 한국사회
난민은 오랫동안 베트남과 한국을 연결하는 고리였다. 양자적 관계를 설정하지 못한 전근대 시기에도 난민이 서로의 연안으로 표류해 들어가면서 문화교섭의 계기가 만들어지곤 했다. 1975년 베트남난민도 양국 간의 외교단절기에 교류의 공백을 메워주는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더 중요하게는 1975년 베트남난민은 한국이 역사상 처음이자 최대 규모로 외국인 난민을 구조하고 우리사회 안으로 통합시키고 제3국으로의 이주를 알선했던 경험을 안겨주었다. 이 경험에 대한 사실적인 이해가 필요하기에 본문에서는 베트남난민의 구조・정착・재정착에 대한 정부의 정책과 이들의 정착과 이주의 추세에 초점을 맞추어 1975년 베트남난민의 제모습을 복원하고자 했다. 본문에서는 다루지 못했지만 특히 정착한 베트남난민에 대한 면밀한 추적 연구가 더 필요하다. 왜냐하면 1975년 베트남난민의 수용은 당시에는 아무도 의식하지 못했으나 사실상 한국의 다문화사회로의 진입을 알리는 계기였기 때문이다.
본문에서는 LST난민과 쌍용호난민의 성격과 특징을 세 차원에서 가름해 보았다. 첫째는 한국과의 관련성에서 보면 LST난민은 유사 이래 처음 있었던 해외교포 해상철수 작전이라는 성격을 띠는 동시에 베트남전쟁은 물론 남베트남과의 우방관계 설정에서 비롯된 유연고 베트남난민을 구조하는 작업이었다. 이에 따라 난민에 대한 구조는 적극적인 성격을 가지며 이때 구조된 난민은 한국역사에서는 전무후무한 정착의 대상이 되었다. 둘째는 1975년 베트남난민의 국제정치학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맥락에서 한국에 들어온 베트남난민의 성격과 특징을 짚어내려고 했다. 한국의 베트남난민 구조는 적극적인 행위이었을지라도 독립적인 행동은 아니었다. 1975년 베트남난민의 구조는 베트남전쟁과 마찬가지로 미국이 주도하고 베트남전쟁 참전국과 국제기구가 공조하는 가운데 한국이 그 일원으로 참여하면서 이루어졌다. 셋째는 1975년 베트남난민을 유출한 근원지인 남베트남에서 난민이 생겨나게 된 상황과 그 규모, 국내에서의 피난민의 흐름은 물론 국외 난민으로의 전화과정을 ‘준비된 난민’이라는 용어로 설명했다. 이를 통해 1975년 베트남난민의 성격이 보다 분명하게 드러나고 이후 발생하게 될 선상난민의 연원이나 그 방향과 규모까지도 가름하고자 했다. 이러한 특징은 상호작용이 극대화된 현대세계에서 난민문제가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트랜스내셔널한 측면을 드러내준다.
1975년 베트남난민과 한국사회의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모양이나 정도는 관점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먼저 정부를 비롯하여 위로부터 본다면 이는 일방적인 이해나 이용의 대상이기 쉬웠다. 냉전의 체제에서 국민국가의 메카니즘이 강력하게 작동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미국에 책임을 묻고 미국의 태도를 비판하는 한편 자유・민주・인도주의 실현의 주체로서의 한국을 강조하고 자주국방이나 안보체제의 강화 내지는 사회질서의 확보 필요성이 강조되었다. 그러나 본 논문에서는 다루지 않았지만 아래로부터 본다면 1975년 베트남난민으로 인해 작지만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음은 분명하다. 베트남난민의 삶에 대한 공감과 이들의 문화에 대한 관심은 자원봉사, 불우이웃돕기나 베트남풍속도를 통한 기금마련 등과 같이 보이는 행동을 통해서뿐만 아니라 드라마, 소설, 영화를 통해 우리의 문화 속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또한 1975년 베트남난민은 한국 사회에 인도주의나 난민문제라는 커다란 과제를 안겨주었다.
2. 바다의 디아스포라, 보트피플: 한국에 들어온 2차 베트남난민(1977~1993) 연구
1977년 9월 15일 부산시 재송동에 마련된 베트남난민보호소가 개소하자마자 처음으로 입소한 베트남난민은 1989년 8월 16일을 마지막으로 13년 동안 36차례에 걸쳐 1,382명(출생자 66명 포함)에 달했다. 이는 13년간 매년 평균 106명이 넘는 베트남난민이 부산에서 임시보호를 받았음을, 1차례 들어온 규모는 평균 38명이 약간 넘었음을 뜻한다. 바로 1977년부터 1989년까지 해상에서 구조되어 한국에 들어왔던 난민, 통상 선상난민(Boat People)이라고 알려져 있는 이들을 1975년 남베트남의 패망 바로 전후를 배경으로 발생했던 1차베트남난민과 구별하여 2차베트남난민이라 부른다. 2차베트남난민은 사망자2명을 제외하고 모두 제3국에 정착했다. 1977년 9월 23일을 시작으로 1993년 5월 17일까지 17년간 1,380명의 베트남난민이 140차례에 걸쳐 부산을 떠났다. 이는 매년 평균 81명이 넘는 난민이, 1차례에 9명 정도가 재정착을 위해 15개국으로 향했음을 의미한다.
베트남 선상난민의 참상이나 교훈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다. 17년간 1,382명의 2차베트남난민이 국내에 유입되어 부산의 난민보호소에서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7년 가까이 삶을 살았다는 사실이나, 통계가 보여주는 연도별 입출소와 재정착지 관련 통계 또한 한국에서의 베트남난민에 관심을 가진 연구자라면 모를 리 없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베트남난민보호소에 입소하게 된 이들이 어떻게 한국의 해항도시에 들어오며 그들은 누구인지 그리고 어떤 맥락에서 어디에 재정착하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연구 성과는 단 하나도 없다. 게다가 베트남난민보호소 운영 책임을 맡고 있던 부산시의 자료 중 많은 부분이 문서보존기간이 지나 폐기되었으며, 베트남난민 구호업무를 담당한 대한적십자사 부산지부가 생산한 관련 문건 또한 사라져 버렸다.
본 논문은 남아있는 베트남난민 관련 부산시 기록관 자료와 1977년부터 1993년까지의 신문자료를 대조・보완하여 베트남⟶남중국해⟶동중국해⟶한국⟶서구로의 선상난민의 행로를 자료가 허용하는 한 세밀하게 복원하고자 했다. 특히 3가지 측면에 초점을 맞추었다. 첫 번째 측면은 2차베트남난민이 구조된 시점과 지점부터 입항하는 해항도시와 부산 베트남난민보호소 입소까지이다. 두 번째는 이들이 언제 어디로 재정착하며 재정착을 결정지은 요인들은 무엇인지이다. 세 번째 측면은 한국의 해항도시에 들어오고 나간 이들에게 영향을 미친 한국 밖의 환경과 맥락이다. 이 세 가지 측면은 합하여 우리 안에 들어온 베트남난민의 모습을 다각적으로 드러내고 그 변화상과 함의를 이해하도록 도와줄 것이다. 이를 위해 본문은 1983년을 기준으로 두개 장으로 나뉘어 각각의 측면을 분석했다. 1983년은 13년간의 2차베트남난민 유입사의 중간 지점일 뿐만 아니라 앞 표에서 보이듯이 이전에 들어온 난민이 모두 해소되었으며 새로 유입되어 보호받던 인원도 가장 적었던 해이다. 보다 중요하게는 1983년은 1987년에 이르면 명백해지는 새로운 형태의 선상난민이 우리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시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본문은 13년 동안 우리의 7개 해항도시로 들어와 부산베트남난민보호소에 머물렀던 베트남난민 1,382명의 여로를 추적해 보았다. 이들에 대해 UNHCR이 체제 비용은 물론 관계국과의 교섭・제3국 재정착을 책임졌던 반면, 한국은 베트남난민에 대해 제3국 송출시까지 임시 보호라는 비교적 한정된 기능을 담당했다. 게다가 베트남난민을 수용했던 부산의 보호소는 전형적인 ‘닫힌 캠프’로 베트남난민의 한국사회와의 상호작용은 최소화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베트남난민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과 관여는 소극적이었으며, 직접 교류의 양상도 제한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트남난민을 맞이하면서 한국 사회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새로운 변화를 경험했다. 이 중에서 인도주의와 냉전은 2차베트남난민과 관련하여 한국을 변화시킨 중요한 키워드라고 할 수 있다.
3. 한국문학의 베트남 선상난민 형상화와 존재양태
본 논문은 베트남난민이 한국문학에서 어떻게 표상되었는가라는 문제제기에서 비롯되었다. 일반적으로 선상난민(boat people)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베트남난민은 1975년부터 20여 년간 전 세계적 이슈였을 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에도 그 존재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1975년부터 18년 동안 3,000여명의 베트남난민이 한국에 들어왔으며 그 중 500여명은 우리사회에 정착했다. 해상에서의 난민의 구조와 부산 베트남난민보호소에서의 구호, 그리고 문화와 민족이 다른 이들의 수용 모두 우리사회가 처음 경험해 보는 일이었다. 또한 베트남난민은 한국의 베트남전쟁에의 관여가 빚은 과거사, 그리고 남북분단 상황에서 공산의 위협을 느끼고 있던 한국사회에 닥칠지도 모를 미래사와 연결되면서 우리사회에 복잡다단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한국문학은 베트남난민을 둘러싸고 전개되었던 이런 현실을 마냥 비켜가지 않았다. 그러나 베트남난민에 시선을 두고 그 존재를 드러낸 문학 작품은 많은 편이 아니다. 여기에 더하여 베트남난민을 다룬 한국문학의 전체상을 파악해 보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때문에 여기에서 말하는 한국문학이란 한국의 언어, 즉 글을 표현 수단으로 한 소설, 희곡, 영화 시나리오, 방송극 극본을 모두 포함한다. 이들은 모두 언어적 재현 양식으로 표현되어 있다는 점에 더하여 우리사회의 베트남난민에 대한 나름의 이해이자 해석이기에 그 형태를 불문하고 분석의 범주에 넣었다.
베트남난민을 소재로 한 한국문학 작품은(서두에 놓인 이혜선의 시 한 편을 제외하고) 6편 정도로 파악된다. 문학의 형태로 본다면 소설로는 『시간의 문』(이청준, 1982)과 「보트피플」(천금성, 1986), 영화 시나리오로는 「사랑 그리고 이별」(이희우, 1983), 「처녀 아리랑」(이종택, 1992), 희곡으로는 「제3의 신」(이청준, 1982), 방송극 극본으로는 「빨간 아오자이」(김혜린, 1992)가 있다. 1982년부터 1992년까지 10년 동안 집중적으로 쓰인 이들 작품들은 형태가 다른 만큼이나, 사실 이 보다 더욱 더 다양한 시각과 수준에서 베트남난민을 드러내고 있다. 게다가 베트남난민 관련 문학작품에 대한 기존의 연구가 없는 상황에서 이들을 범주화하여 분석하기에는 곤란함이 따르는 것도 사실이다.
본 논문은 베트남난민을 형상화한 위 6편의 문학작품이 크게 관계로서의 베트남난민과 실존으로서의 베트남난민을 다루고 있다고 본다. 「사랑 그리고 이별」,「처녀 아리랑」 , 「빨간 아오자이」세 편의 작품을 통해서는 한국인과의 관계에서 베트남난민이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지를 읽어낼 수 있다. 이에 대한 분석이 2장의 내용을 구성한다. 반면『시간의 문』「보트피플」「제3의 신」에서는 한국사회와 직접적인 관계성은 없으나 실체와 실존적 존재로서의 베트남난민을 만날 수 있다. 이에 대한 분석은 3장의 내용을 구성한다. 본문을 통해 한국문학이 사건으로서의 베트남난민에 대해 어떤 관계와 존재를 재현해내는가라는 문제가 분명해 질 것이다. 또한 베트남난민을 둘러싼 역사적 사실이 어떻게 문학적 진실로 구현되는지도 드러날 것이다.
베트남난민을 형상화하고 있는 6편의 한국문학 작품은 관계와 존재의 차원에서 베트남난민에 접근하고 있음을 보았다. 전자는 한국 사회 적어도 한국인과의 관계 속에서 베트남난민의 초상을 반추하는 행위이며 후자는 실존적 존재로서의 베트남난민에 대한 성찰이라고 할 수 있다. 베트남난민을 주제로 한 문학작품에 누락되거나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지적한 평가는 다른 측면에서 보면 베트남난민을 주제로 한 문학작품이 성취한 성과이기도 하다. 문학이라는 공간에서 베트남난민에 관한 어떤 특정 흔적이 기억, 저장, 재구성되고 있는지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있었던 그대로의 사실보다는 그 허구 쪽에서 오히려 더 깊게 개별자로서의 베트남난민과 대화를 하고 진실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English
1. A Study on the 1975 Vietnamese Refugees of Busan
Based on the Busan archive materials and newspaper information as well as published sources, this article intends to provide a comprehensive account of the 1975 Vietnamese refugees in Korea. The description and analysis are focused on the three aspects of the 1975 Vietnamese refugees in Korea; Korean government efforts to relief, settlement in Korea and resettlement in the third countries; the characteristics of the LST-refugees and Twin Dragon-refugees anchored at Busan; and interactions between the 1975 Vietnamese refugees and Korean society as a whole.
The article discovers that whereas the second Vietnamese refugees from 1977 to 1989 in Korea shared the common characteristic with "Boat People" in general, the 1975 Vietnamese refugees were very special because they were either overseas residents or Vietnamese having connections with Korean who had worked in Vietnam. It led the Korean government to rescue them by dispatching two LSTs, implemented settlement programs including job-finding, housing allowance, supplementary living allowance. Also, the article traces the origin of the 1975 Vietnamese refugees in the context of the deteriorating South Vietnam, Vietnam war and international politics, which would have revealed the symptom of the continuous flows of the Vietnamese refugees until the 1990s. Finally, the article highlights the way that this very first resettlement experience of the Vietnamese refugees with different culture transformed the Korean society.
2. Diaspora at Sea: Boat People in Korea (1977~1993)
This article is the study of the Vietnamese boat people in Korea from 1977 to 1993. Consulting primary sources housed in the Archives of Busan City and reading through various newspaper accounts, it illuminates the harsh journey of the Vietnamese boat people passing through the coast of Vietnam, the South China Sea, the East China Sea, and 7 seaport cities of Korea. Functioning as a de facto First Asylum, Korea government tried to assure the resettlement of the Vietnamese refugees in the western countries as well as provided provisional refugee camp in Busan for 1,382 Vietnamese refugees. Refugee policy and resettlement arrangement of Korea government are discussed in detail in the later part of the article.
3. A Study on Imagery and Figuration of the Vietnamese Boat People in Korean Literature
This study aims to find how Korean literature represents the Vietnamese refugees who have been known as Boat People. Among six literature dealing with Vietnamese refugee issues, "Love and Farewell", "Virgin Arirang", "Red Ao-dai" describe them in the context of relationship with Korean society and culture. Through conflict and reconciliation the Vietnamese refugees become assimilated into 'single people' society. However, these works just indifferent to the Vietnamese refugees without Korean family.
"Door of Time," "Boat People", and "Third God" figurate the Vietnamese refugee issues as the existence. These works is pursuing the literary truth about the Vietnamese refugees while questioning why and how did tragic plight happen. They also bring the light on the salvation and self-salvation. However, in these work, historical facts are not treated fairly because history without question is imposed on the existence and fate of the Vietnamese refugees.
Research result report
Abstract
『부산 베트남난민 18년사』는 ‘보트피플’(Boat People)로 더 잘 알려진 베트남 해상난민, 특정하게는 1975년부터 1993년까지 18년간 한국 사회에 들어와 일부는 정착하고 대다수는 재정착을 위해 제3국으로 떠난 2,800여명의 베트남난민을 연구 대상으로 한다. 부산난민보호소에 수용되었던 베트남 해상난민에 대한 연구가 목적하고 있는 바는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부산에 들어온 베트남난민에 대해 이해를 높이고자 한다. 종교, 직업, 계층적 특질을 포함하여 어떤 사회적 배경을 가진 이들이 한국에 입항했으며, 어떤 경유로 해상난민화 되고 구조되어 남지나해와 동지나해를 지나왔는지에서 시작하여 부산난민보호소에서의 이들의 일상을 재구성하는 작업을 통해 베트남 해상난민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자 했다.
둘째는 연구를 통해 우리 사회와 관련하여 베트남 해상난민이 남긴 일종의 유산이나 영향을 바로 인식할 수 있다. 사실상 정착한 베트남난민은 한국사회의 다문화화를 이끈 소리 없는 주역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사람에게 음식이든 명절이든 언어이든 혼혈의 문제이든 이문화와의 면대면 접촉은 바로 이 베트남난민을 통해 보다 실제적으로 체험되고 문학적으로 표상되었다. 여기에 더하여 우리 사회가 주로는 정치적으로 직접 베트남난민과 행해온 상호작용을 보다 분명히 성찰할 수 있다.
셋째는 베트남난민의 역사는 전세계적 규모의 베트남인/중국인 디아스포라 형성의 역사이기도 하다. 물론 부산의 난민보호소에 있던 베트남난민은 그 중 아주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동북아시아만 보더라도 중국과 일본은 한국 보다 훨씬 더 많은 베트남난민을 수용하고 재정착시켰다. 부산의 베트남 해상난민에 대한 기본적인 연구는 중국이나 일본의 그것과 비교하는 틀을 제공할 수 있는 중요한 연구가 될 것이다.
이상의 연구 목적 하에서『부산 베트남난민 18년사』연구과제는 당초 2년간 연구할 내용을 1차년도와 2차년도 연구내용으로 구성했다. 1년차 연구는 대체로 당초 연구계획(I장 부분)의 목적, 방법, 내용에 기반 하여 충실히 수행되었다고 볼 수 있다. 연구를 구체화 시키는 과정에서 당초의 연구계획을 크게 수정한 부분이 있었다면, 1975년에 부산난민보호소에 들어온 1차 베트남난민과 1977년부터 1992년에 걸쳐 부산에 들어온 2차 베트남난민은 성격, 구조, 정착과 재정착 그리고 한국사회에 미친 영향에서 각기 매우 다른 까닭에 두 개의 별도 논문, 즉 「부산입항 1975년 베트남난민과 한국사회」「바다의 디아스포라, 보프피플: 한국에 들어온 2차 베트남난민 (1977~1993) 연구」로 구성했다. 즉 당초의 연구계획에서 밝힌 1년차 연구의 가제목 “한국의 베트남난민 수용 그리고 베트남난민의 해상 표류와 구조 경로”는 1차 베트남난민 연구와 2차 베트남난민 연구로 세분화된 셈이다. 또한 당초 연구계획에서 밝힌 제목과 목차에도 일정한 변화가 있었다. 1차년도 연구의 결과에서 드러난 연구의 제목과 목차는 당초 연구계획에서 밝힌 연구의 목적과 내용을 반영하고 있는 데에는 변함이 없으며 당초 연구계획에서 밝힌 제목과 목차는 실제의 연구 내용으로 편입되었음은 물론이다. 연구의 구체적인 내용은 아래의 연구요약문과 논문을 참조할 수 있다.
당초 연구계획에서 2차년도에는 부산 난민보호소에 수용되었던 베트남난민의 일상적, 사회적, 정치적 삶을 규명할 수 있도록 다음과 같이 본문을 3장으로 구성했다. 1장에서는 부산 난민보호소 난민의 사회적 계층 분석, 2장에서는 부산 난민보호소에서의 일상생활과 민족종교적 갈등, 그리고 3장에서는 베트남난민이 우리 사회에서 한 정치적 역할과 문화적 영향을 다루고자 했다.
2차년도 연구를 수행 과정에서 정치적인 영향은 물론 베트남난민으로 인해 생긴 문화적 영향력이 많음을 인지할 수 있었다. 가장 먼저는 베트남난민 문제로 인해 한국 사회는 인도주의의 세례를 받았으며, 민족의 자긍심에 근간을 둔 민족주의를 강화시킬 수 있었다. 행동철학자 사르트르의 행동과 글을 통해 한국의 지식인들은 베트남난민을 마음으로 수용하게 되었다.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민족주의 또한 베트남난민 사태를 보면서 강화된 측면이 있다. 그 외에도 베트남난민을 통해 우리 사회는 베트남의 음식, 문화와 친숙하게 되었으며, 특히나 한국인 아버지와 베트남인 어머니를 둔 혼혈아 문제를 인식하게 되었다. 특히 베트남난민의 문화적 형상화에 천착하게 되면서 「한국문학의 베트남 선상난민 형상하와 존재양태」라는 논문을 발표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더하여 전체 연구 주제인 『부산 베트남난민 18년사』에 수렴될 수 있도록 한국의 베트남난민 수용 사례를 다른 동아시아 국가의 그것들과 비교하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Research result and Utilization method
1. 1차년도 (2013.5.1.~2014.2.28.) 연구결과
1.1 학술지 게제 및 논문 발표
(1) 「부산입항 1975년 베트남난민과 한국사회」, 『사총』(고려대학교 역사연구소) 81 (2014.01.30), pp. 329-364. [본 연구지원에 대한 사사표기]
(2) 「바다의 디아스포라, 보트피플: 한국에 들어온 2차베트남난민(1977~1993) 연구」, 『디아스포라연구』(세계한상문화연구단)제7권제2호(제14집) (2013.12.15), pp. 75-108.
(3) 월례발표회, 한국해양대학교 국제해양문제연구소, 2013년 5월
(4) 연구분과세미나, 한국해양대학교 국제해양문제연구소, 2013년 7월, 9월
1.2. 인력양성 실적
(1) 박사과정 중국인 학생 장학금 지원, Liang Yin Jing, 한국해양대학교 박사과정(행정학) [당초 연구계획서 상에는 연구보조원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음]
1.3. 지식확산 성과
(1) 교양서 발간:「베트남난민과 부산」,『부산의 재발견』(도서출판 선인, 2014년 5월)
(2) 시민을 위한 강좌:「부산의 베트남난민」(2014년 10월 시민강좌, 또따또까)
(3) 뉴스레터 기고: 「휴머니즘으로의 초대, 부산의 베트남난민」,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제연구소, 뉴스레터 (2014.02)
2. 2차년도 (2014.3.1.~2015.4.30.) 연구수행 결과
2.1. 학술지 게제 및 논문 발표
(1) 「한국문학의 베트남 선상난민 형상화와 존재양태」, 『해항도시문화교섭학』(한국해양대학교 국제해양문제연구소) 10 (2014.4.30), pp. 181-211.
(2) 월례발표회, 한국해양대학교 국제해양문제연구소, 2014년 5월
2.2. 지식확산 사업
(1) 연구공간 수이제, 인문학 강좌, 「한국문학 속에서 읽는 부산의 베트남난민」(2014년 봄)
2. 활용방안
본 연구의 결과는 향후 연구의 시작점으로써의 역할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본 계획에 따라 부산난민보호소를 거쳐서 한국에 정착했거나 제3국에 재정착한 베트남난민에 대한 연구를 수행한 이후의 연구결과 활용의 방향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본 연구를 통해 확보한 내용과 한층 발전된 문제의식을 가지고 한국, 일본, 중국은 물론 동남아시아를 포함하여 동아시아에 기착한 베트남난민의 특징을 잡아내고 이들 국가와 그 시민이 베트남난민과 대면하는 방식을 연구하여, 궁극적으로 『동아시아와 베트남난민』(가제)이라는 제목으로 단행본을 출판할 계획이다. 이렇듯 동아시아로까지 확대된 연구를 통해 난민의 아시아적 공조 프레임에 이를 수 있는 가능성을 타진해 봄으로써 학문・사회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으리라 보인다. 즉 냉전을 비롯한 국제환경의 변화, 난민 유출국과 유입국간의 적대감 약화, 아시아 연대와 공동체 의식의 강화, 다문화에 대한 인식 변화, 문제의식의 공유 등과 같은 난민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평가하여 베트남난민 수용의 경험이 앞으로의 난민에 대한 아시아적 프레임워크를 만드는 데에 어떻게 활용될 수 있을지를 밝히게 될 것이다.
본 연구결과의 두 번째 활용방안은 난민 연구의 확장에 있다. 본 연구의 대상은 베트남난민에 한정되었지만, 본 연구에 바탕을 두고 향후에는 아시아의 난민문제 특히나 해상난민에 대한 연구에 천착하려고 한다. 여기에는 1970년대 말부터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로힝야난민, 우리 사회와 직접적인 관련성을 가진 북한난민이 포함된다. 항상적으로 해상에는 4천만명의 난민이 존재하고 있다고 추산되듯이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국제사회의 여러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지중해 난민, 시리아 난민에 대한 보도가 연일 이어지듯이, 해상난민의 수는 상당하며 발생장소도 거의 전지구적이다. 그러나 향후의 연구는 이 중에서도 아시아에서 발생하는 해상난민에 초점이 있다. 아시아적 시각에서 주체적으로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그러하다. 아시아 난민 문제는 아시아가 다문화성과 공생을 위한 공명공간으로 발전하는 데에 새로운 창의적인 발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아울러 특정하게는 북한난민 문제에 대해서도 좀 더 심도 깊은 논의와 방향성을 제시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
Index terms
부산 베트남난민 보트피플 해상난민 1975 베트남난민 2차 베트남난민 한국문학 사랑 그리고 이별 빨간 아오자이 처녀 아리랑 시간의 문 제3의 신 상륙함 쌍용호 정착 재정착(이주) 부산난민보호소 인도주의 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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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earch Achievements L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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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Articles
Vietnamese Refugees and East Asia
International Institute of Maritime Affairs | 해항도시문화교섭학 pp.73~114 문학
Source research tasks : 부산 베트남난민 18년사
2. Articles
A Study on the 1975 Vietnamese Refugees of Busan
노영순 | The Institute for the Study of History | 史叢(사총) | (81호) | pp.329~364 | 2014-01-01 | 기타역사일반
Source research tasks : 부산 베트남난민 18년사
3. Reports
(결과보고)부산 베트남난민 18년사
노영순 | 2015-10-29 | 기타역사일반
Source research tasks : 부산 베트남난민 18년사
PDF(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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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M.OR.KR
부산 베트남난민 18년사
2016 영광 정(丁)씨 고택지킴이 정길상 1946년생 - 아버지 정해룡 삼촌 정해진
아부하고 고개 숙여 정승 판서 나오면 뭐하냐
등록 :2016-09-23
[토요판] 이진순의 열림
영광 정(丁)씨 고택지킴이 정길상
“외세에 빌붙어서 아부하고 고개 숙여서 정승·판서 나오면 뭐합니까? 우리 민족을 위해서 얼마나 훌륭한 일을 했는지 그걸 자랑해야지.” 전남 보성의 영광 정(丁)씨네 종가 고택을 지키고 있는 정길상 선생이 전남 보성군 회천면 봉강리 정씨 고택 거북정(전라남도 문화재자료 261호) 사랑채에서 파란만장한 가족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보성/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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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희한한 집안 얘길 들었다. “선대로부터 당대의 자손들까지 이어지는 가계도를 그려서 8쪽짜리 병풍에 모셔두었다”는 것이었는데, 그것뿐이라면 그다지 대수로운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몇 대조 할아버지가 높은 벼슬을 하고 몇 분이 공신록에 이름을 올렸다는 족보 자랑은 어느 집안에서나 흔히 들을 수 있는 ‘가문의 전설’이니까.
이 집안의 가계도 병풍이 남다른 이유는, 그것이 가문의 영광과 출세의 이력을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멸문(滅門)이 될 경우를 대비해서, 자손들로 하여금 선대의 족적을 잊지 말라는 뜻에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폐족의 위기를 맞아 뿔뿔이 흩어지는 자식들 손에 황급히 쥐여주는 가문의 증표처럼…. 항일운동과 혁신계 정치운동, 통일운동으로 문중의 수십명이 체포되고 투옥되고 사살당하고 사형당한 내력을 촘촘히 기록해둔 가계도는, 그 어떤 대하소설보다도 비장하고 파란만장하다. 그것은 가문의 성취와 과시가 아니라, 패배와 상처의 처연한 기록이다.
남도에서 손꼽히는 천석지기 부농이었으나 일제강점기 민족교육과 항일운동에 거액을 희사하고, 노비문서를 불태워 토지를 무상분배하고, 기근으로 고통받는 빈민들에게 수백석의 구휼미를 풀어서, 스스로 빈한한 가구가 되었던 덕망 높은 가문. 그러나 해방 이후 친일파, 친미파들이 득세하는 세상에 맞서다가 급기야 1980년 ‘보성 가족간첩단 사건’으로 한 집안에서 32명이 체포되고 사형과 징역을 받아 풍비박산이 난 집안. 전남 보성의 영광 정(丁)씨네 이야기다. 종가 고택을 지키고 있는 정길상(70) 선생은 1946년생으로, 해방 이후 수난의 가족사 속에서 살아남은 증인이다.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그는 1980년 11월 가족간첩단 사건으로 구속되어 7년간 징역살이를 했다. 같은 사건으로 형 춘상씨는 사형을 당했고, 어머니와 두 형은 감당하기 힘든 정신적 충격에 마음을 다쳐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다.
그에게 가족이란 무엇일까? 교도소 출소 뒤 생계를 위해 외지에 머물던 그가 폐가가 된 고향집으로 다시 돌아온 이유는 무엇일까? 오욕과 상처로 얼룩진 가족사 속에서 그가 끝내 지키고자 하는 것, 되찾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추석 명절을 앞둔 지난 6일, 보성군 회천면 봉강리의 정씨 고택으로 그를 찾아갔다.
“역사의 죄인이 되지 말라”는 가훈
바다가 지척인데 마을 제일 안쪽에 위치한 고택은 산사처럼 고즈넉했다. 매처럼 날개를 펼친 매봉산 자락 아래, 400년 전부터 15대를 이어 살아온 정씨 고택은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261호로 지정이 될 만큼 유서 깊은 가옥이다. 뒷산에서 내려오는 정갈한 약수가 사랑채 앞 연못으로 낙수하며 떨어지게 설계되어 있었다. 연못은 한반도 모양으로 생겼는데, 정길상의 부친인 봉강(鳳崗) 정해룡 선생(1913~1969)이 직접 설계해 만든 것이라 했다.
-그럼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거로군요.
“그래요. 한반도 모양으로 이 연못을 만들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겠습니까? 지금 산에서 내려오는 물줄기가 두만강처럼 (수로를 가리키며) 여기서 쏟아지면 이게 한반도 모양으로 흐르는데, (연못 가운데 세워진 돌들을 가리키며) 이게 민족의 고도 평양, 여기가 서울, 여기가 광주입니다. 이 아래 제주도도 만들고 그 밑으로 물이 빠지게 해놨어요.”
-그냥 인부들한테 맡겨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었겠네요.
“직접 일일이 감독을 하셨겠죠. 우리나라가 동쪽이 높고 서쪽이 완만한데, 연못 바닥도 일부러 그렇게 해놓았지 않았습니까? 동쪽은 깊고 서쪽 바닥은 완만하게….”
사랑채 마루에 걸터앉으니 연못 너머로 푸른 남도바다가 내려다보였다. 연못 주변엔 오군자(五君子)를 뜻하는 매화, 난초, 국화, 소나무, 대나무가 골고루 심어져 있는데, 나무둥치가 심하게 휘었다가 다시 위로 뻗어나간 소나무 한 그루가 유독 시선을 끌었다.
-저 소나무는 특이하게 생겼는데요.
“이걸 알아보시네. (나무 아래 바위를 가리키며) 여기 뿌리를 보세요. 이 큰 바위틈에서 어린 묘목이 났단 말입니다. 90살 넘은 우리 누님 얘기론, 이 소나무 묘목을 아버님이 어찌나 아끼셨는지 소나무 꺾인다고 이 근처엔 오지도 못하게 했다고 해요.”
-묘목이 다칠까봐서요?
“그렇죠. 소나무가 자라면서 이 바위를 두 동강 내지 않았습니까? 이 나무가 우리 민족의 끈기, 바위를 뚫고 생명을 틔울 만큼 5천년 외세에 버티고 살아나온 지구력, 그걸 닮지 않았나요?”
본격적인 인터뷰를 위해 사랑채에 들어서는데, 머리 위로 큼지막한 액자가 눈에 들어왔다.
-(액자 속의 한자를 읽으며) 물위역사죄인(勿爲歷史罪人)?
“‘역사에 죄인이 되지 말라’는 뜻이죠. 봉강 선생(부친)이 누누이 이르던 우리 집 가훈입니다. 아무리 험한 세상이라도 역사에 죄짓지 말아야 한다고요.”
-이런 유서 깊은 집에 오게 돼서 영광입니다.
“아이고, 역적 집에 오셔가지고…(웃음) 역적 집이죠.”
그가 껄껄 웃으며 예사로이 말했다. 시대의 풍랑은 그들을 “역적”으로 낙인찍었지만, “역사에 죄를 짓지 말라”는 가훈을 거스르진 않았다는 당당함이 배어 있는 웃음이었다.
남도의 3천석지기 부농 집안
일제강점기 항일운동에 몸담아
노비문서 태우고 토지 나눠주며
빈한한 삶 택한 덕망 높은 가문
8쪽짜리 병풍에 새긴 가계도는
가문의 출세 이력 자랑이 아닌
멸문(滅門)에 대비한 가문의 증표
수십명 투옥 내력 등 촘촘히 기록
매처럼 날개를 펼친 매봉산 자락 아래, 400년 전부터 15대를 이어 살아온 정씨 고택은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261호로 지정이 될 만큼 유서 깊은 가옥이다. 뒷산에서 내려오는 정갈한 약수가 낙수하며 떨어지도록 설계된 사랑채 앞 한반도 모양의 연못 옆에 정길상 선생이 앉아 있다. 보성/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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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떤 가문인데 친일을 하나?
정길상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을 보좌했던 정경달의 14대손이다. 조선대 사학과 김경숙 교수에 따르면, 정경달은 문과에 급제해서 경북 선산 부사로 부임한 뒤 임진왜란을 맞아 선산이 함락되자, 인근 금오산을 중심으로 의병을 모아 일본군 수백명을 참수한 인물이다. 그 소식을 듣고 이순신은 정경달을 종사관으로 임명했는데, 이순신이 누명을 쓰고 투옥되었을 때는 “유능한 장군을 죽이면 국운이 위태롭다”고 선조에게 직간을 서슴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훗날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정경달을 “지방 수령의 모범”으로 높이 평가한 바 있다.
-정경달의 유훈이 가풍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까?
“이 동네 애들은 세살 먹어서부터 할아버지 무릎에서 하늘 천, 따 지를 배우는데 그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게 듣는 얘기지. 너는 정경달의 몇 대 손이냐? 정경달은 무엇을 했느냐? 충무공하곤 어떤 관계냐?… 아버님도 충무공 탄신기념일이 되면, 꼭 집안에서 탄신기념을 하고 식사 때 여러 가지 이야길 하셨어요.”
-아, 충무공 탄신기념일도 집안 의례로 치르셨다고요?
“네, 4월28일이지요. 식사하면서 우리들한테 이런저런 이야길 하시는데, 병자호란 때 삼학사(청나라에 결사항전을 주장하다가 참형당한 홍익한·윤집·오달제) 이야기를 하면서, ‘주화파가 옳으냐? 주전파가 옳으냐? 너희 생각은 어떠냐?’ 묻기도 하시고.”
-자녀들한테 역사논쟁을 시키셨네요.
“그런 거지.(웃음)”
정길상에게 정해룡은 단순한 아버지가 아니라 그의 사상적 스승이자 삶의 모범이다. 봉강 정해룡은 7살 때 부친을 여의고 조부인 정각수 아래서 성장했다. 그에겐 2살 터울의 동생 정해진이 있었다. 종손인 정해룡은 조부의 가르침에 따라 한학을 배우며 집안을 지켰지만, 동생에게는 할아버지의 반대를 피해 신학문을 익히게 했다. 총명한 동생은 광주고보를 우등으로 졸업하고 경성제대 예과를 거쳐 동경제대 철학과에 입학했다. 형 해룡도 틈틈이 와세다대학 강의록으로 공부하며 소정의 과정을 이수했다.
-증조부(정각수) 대까지도 3천석지기 부농집안이었는데, 그 뒤로 가산이 계속 줄어든 거죠?
“증조부가 돌아가시기 전부터 상해 임시정부의 외교책임자인 문창범한테 거금을 건네거나 민립대학 건립운동을 하던 인촌 김성수한테 거액의 후원금을 전달하곤 했어요. 노쇠해진 증조부를 대신해서 우리 아버님이 실제로 결정하신 일이라고 봐야지.”
-그럼 정해룡 선생도 인촌과 같은 우파 민족주의자였나요?
“중간에 인촌하고는 결별한 셈이지요. 그래서 본인이 직접 민족교육기관으로 1937년에 양정원을 설립한 거예요. 한글하고 역사 가르치도록 땅 내놓고 선생 모시고 해서….”
-김성수가 1932년 보성전문학교(오늘날 고려대) 인수할 때까지도 거액을 지원하셨는데.
“그땐 뜻이 같았으니까. 그 뒤로 교류가 없어졌지.”
-실제로 30년대 후반쯤 되면 민족주의 계열이 친일로 많이 돌아서고 그랬잖아요.
“이 집안에선 그럴 수가 없어. 저 가훈, 이 집안의 전통과 정경달, 정명열, 정남일… 그리고 정각수가 유훈으로 남긴 ‘삼의당의 정신’(마땅히 해야 할 세가지 선비의 도리)까지….”
정길상 선생(왼쪽)이 이진순씨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이 땅에서, 백성에게서 찾은 해답
주전자 물이 끓고 있었다. 녹차 잎을 우리는 동안 그는 미리 준비해둔 학술자료며 1930~1940년대 신문기사의 복사본, 오래된 흑백 사진 등을 펼쳐놓고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앉은 사랑채와 연못을 배경으로, 내로라하는 당대 지식인들과 우국지사들이 찍은 기념사진도 적지 않았다. 거북정을 다녀간 많은 이들 가운데, 어떤 이는 대한민국 원로 정치인, 우파의 거두가 되었고 어떤 이는 월북해서 고위직에 올랐으며, 어떤 이는 빨치산으로 입산해 죽었다. 집안 대소사에 모여 기념사진을 찍었던 문중 사람 중에도 체포되거나 사살된 이가 수십명이다.
-문중 사람들이 사회주의 사상에 접하게 된 건 숙부 정해진을 통해서인가요?
“그 양반이 동경제대 다닐 때 방학이 돼서 고향에 온다고 기별이 오면, 보성역에 군수, 경찰서장이 미리 사열해 있다가 깍듯이 절을 했대요.”
-하긴 그 시절에 동경제대에 다닌다는 건 이미 고위 관료가 된다는 보증수표나 다름없었겠지요.
“근데 그 양반들이 여기 오면 그냥 앉아서 술 먹고 바둑 두고 하는 게 아니라 뒷산에 지게 지고 올라가서 풀을 베는 거예요.”
-그 귀한 도련님들이?
“풀 베어서 지게 지고 가요. 그래서 앞 논에다가 부리고, 논둑 고치고, 못줄 잡고, 작두 해서 퇴비 썰고, 일꾼들하고 같이 말이여. 그런 거를 우리 아버지는 다 알지. 그리고 자기 동생이 하는 걸 100% 후원했다고. 광주학생 사건의 주모자인 정해두도 우리 집안 사람이고 그 사람들이 사회주의운동을 하고 있다는 건 집안에서도 다 알고 이 근방 주민들도 다 알았어요.”
-그래서 집안 노비도 다 풀어준 건가요?
“해방 직전에 20여명 노비를 바로 이 자리에 다 앉혀놓고 봉강이 선언을 했답니다. ‘세상이 변했으니 이제 당신들도 자유롭게 떠나라’고. 중농 이상으로 살 수 있게 토지를 챙겨주고 호적에 입적시켜서 법적으로도 조치를 다 취해주고, 되도록 (노비 내력을 모르는) 먼 고장으로 떠나 살라고 그랬대요. 그러니까 노속들이 통곡을 했답니다. ‘서방님, 우리를 버리실랍니까?’ 하고. (간첩)사건 나기 전까지도 명절 무렵만 되면 그분들이 우리 집에 인사하러 오곤 했어요.”
-아버지는 선영을 지키고 한학을 하신 분이고, 숙부는 동경제대생으로 사회주의 물 먹은 사람인데, 이런 일들을 의논할 때 형제간에 갈등은 없었어요?
“아니야, 두 분이 거의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걸로 보여요. 아버님은 몽양 여운형 계열이고 그 동생은 동경에서 국제공산당에 입당한 사회주의자였지만 이 민족을 구해야겠다, 이 나라를 살려야겠다는 생각엔 차이가 없었어요.”
-단순한 형제 관계를 넘어서서….
“동지적 형제지.”
-민족주의자들이 하나둘 친일로 훼절하는 걸 보면서 두 분은 다른 돌파구로 좌파운동을 보게 된 걸까요?
“피할 수 없는 질문을 해버리시네.(웃음) 삼촌이 자기 동문들하고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방향이 무엇일까?’ 찾겠다고 여러 명사들을 초청해서 강의를 들었답니다. 도산 안창호, 이광수, 안재홍, 서재필… 그런데 청년들이 보기에, 그 어른들도 정확한 좌표를 못 찾고 있더래요. 별 도움이 안 되는구나 해서, 여기 율포 앞바다에서 배를 타고 떠납니다. 다도해로 해서 여수, 부산으로… ‘우리가 갈 좌표는 우리 국토에서 찾자. 선현들, 우리 유적, 이 땅에서 찾자, 이 백성들에게서 찾자’ 하고.”
-감동적이네요. 그래서 찾았나요?
“다도해 다 거치고 육상을 거쳐 만주까지 간 거야. 그리고 거기서 무장투쟁을 벌이는 항일유격대 모습을 본 거지. ‘아, 이제 답을 찾았다’ 그랬다는군. 정해진이 돌아와서 그 얘길 형에게 한 거예요.”
-그래서 정해룡도 개량주의 노선을 버리고 무장투쟁 노선으로….
“어디 숨어서 삐라나 뿌려쌓고 그래 가지고는 문제 해결이 되겠냐고, 전투를 해야지. 일본의 심장에 총을 겨눠야 되는 게 아니냐고 생각한 거지.”
선대로부터 당대의 자손들까지 이어지는 가계도를 그려서 8쪽짜리 병풍. “멸문(滅門)이 될 경우를 대비해서, 자손들로 하여금 선대의 족적을 잊지 말라는 뜻에서” 만들어졌다고 정길상 선생은 설명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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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꿈꾼 미래
그 뒤로는 험난한 세월의 연속이었다. 해방 이후 정해룡은 몽양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와 근로인민당 중앙위원으로 참여한 이후 줄곧 혁신계 정당운동에 몸담다가 두 차례나 옥고를 겪었고, 정해진은 동경제대를 그만둔 뒤 노동자가 되어 사회주의운동을 하다가 한국전쟁 중에 월북했다. 문중에서 여덟명은 빨치산 활동을 하다가 사살되었고 연좌제에 걸린 가족들은 원하는 학교나 직장에 들어가는 데도 큰 좌절을 겪어야 했다.
정씨 고택도 경찰의 습격에 불타 모두 소실될 뻔했다. 안채 마당의 감나무는 시커멓게 타다 남은 밑둥치를 그대로 드러낸 채 용케 살아남았다. 청년 정길상의 삶도 그 감나무처럼 신산했다. 천석지기 옥답은 독립운동자금과 사회운동자금으로 모두 처분하고 그가 중학에 입학할 무렵엔 학비는커녕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선생님이 중학교 때 아버님은 감옥에 계셨지요?
“몽양 여운형의 뜻을 이어 중도민족주의 혁신계 정당을 재건하려 했다는 혐의로 57년 투옥되었다가, 5·16 쿠데타가 일어나고 나서 혁신계 일제검거로 다시 수감되었지요. 내가 보성중학교에 입학했을 무렵인데 석 달을 못 다녔어. 납부금을 못 내 가지고.”
-그래서 목포 해양고등학교에 진학하신 거예요? 전액 무료로 다닐 수 있는 데라서?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고. 관비로 공부시키니까.”
-그땐 그럼 꿈이 뭐였어요?
“목포 해양고등학교로 가니까 아버님이 ‘장하다’고 하셨어요. 너는 배는 못 타니까 졸업장만 받아오라고.”
-배를 왜 못 타요?
“집안 연좌제 때문에 여권이 안 나오지. 배 몰고 이북 올라갈까봐….(웃음)”
학교는 졸업했지만 취업할 길이 막막해서 다시 교원양성소 시험을 보고 들어갔다가 74년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그러나 그의 교사생활은 길지 못했다. 80년 보성가족간첩단 사건으로 그의 형 정춘상, 친척 정종희 등과 함께 구속된 것이다. 월북했던 숙부 정해진이 65년과 67년 두 차례 고향집을 찾아와 정해룡과 정춘상, 정종희를 만나고 고정간첩의 임무를 맡겼다는 이유였다. 아버지 정해룡은 67년 작고했고, 정길상은 북에서 숙부가 내려왔었단 사실을 한참 뒤인 75년에 알았다.
-숙부는 내려와서 뭘 부탁하고 간 거죠?
“그건 자기 형(정해룡)밖에 모르지. 두 사람만 이야기를 주고받았다니, 그 깊은 내용을 아는 사람은 없어요.”
정춘상은 사형이 확정되어 85년 불귀의 객이 되었고, 정종희는 12년(이후 8년으로 감형), 정길상은 7년형을 언도받았다. 만기 출소 뒤, 정길상은 다시 교직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집안의 웃어른들이 독립운동을 하거나 사상운동을 하면 그 자손들은 심각한 상처를 입는 게 우리 현실입니다. “당신들은 당신들이 원하는 걸 해서 좋은지 모르지만, 우리는 당신 자식으로 사느라 너무 힘들었다.” 이런 원망을 하는 경우도 많지요. 그 많던 재산을 다 탕진해서 교육비도 못 대주고, 끝내 간첩 멍에까지 지워주고 떠난 아버님이 원망스러웠던 적 없습니까?
“없어요. 어떻게든 그 양반은 ‘내가 할 수 있는 건 뭐라도 해보겠다’ 그랬던 거 같아. 어떻게든지 이 민족을 구하려고 별 약을 다 써봤지 않습니까? 동생을 통해서도 써봤고, 몽양 계열을 통해서도 써봤고, 그다음에 몽양 작고하신 뒤에 혁신계 김성숙, 이동화를 통해서도 힘을 써봤고. 혁신계 다 죽어버리고 한 사람도 말할 사람이 없어지니깐, 보수 우익하고 손잡고 대중당도 해보고. 백방의 약을 다 써본 거야.”
-아버님이 꿈꾸었던 미래는 뭘까요?
“민족자주와 민주주의 아니겠어요?”
-아버님은 좌파입니까, 우파입니까?
“아버님 사상의 핵심은 홍익인간의 정신 같아. ‘세상을 넓게 이롭게 하라’ 그런 정신에서 노비들을 해방하고 빈민 구제하고. 그건 우파, 좌파하고 따질 문제가 아니라고 봐요. 그래서 아버님이 죽을 고비에 처할 때에도 우파 사람들이 도와준 경우가 여러 번 있었어요. 좌·우파 폭넓게 교유하고 덕을 베푸셨어요.”
-아버님에 대해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시는 점이 있다면요?
“일찍 돌아가셨다는 거. 모든 에너지를 다 소진하고 결국에는 용돈이 없고 집에 먹을 식량까지 떨어져버린 상태에서 돌아가셨거든. 내가 교편 잡고 조금 더 사셨더라면 용돈 드리고 했을 건데, 자식들이 하나같이 불행한 상태에서 돈 없이 돌아가시게 한 것이 가장 안타깝지. 3천석 재산을 들었다 놨다 하던 분이 밥을 굶는 상태가 되어도 그 누가 돈 한 닢 써보시라고 손에 못 쥐여준 거, 그게 한이 되죠.”
자랑할 걸 자랑해야지
87년 정길상은 징역을 마치고 세상에 나왔지만, 간첩 전과자를 써주는 직장은 없었다. 먹고살기 위해서 그는 항타기(말뚝박는 중장비) 기술을 배워 건설 현장에서 막일을 했다. 기름 덩어리를 뒤집어쓰고 흙 범벅이 되어 하루 21시간씩 일을 하다가, 못 견디게 힘들 때는 통곡을 하고 운 적도 있다. 그렇게 20여년을 일했다. 다행히 집안의 풍파 속에서도 용케 견뎌준 아내 덕에 슬하의 세 딸도 잘 자라서 각자 제자리를 찾았다. 그는 다시 정씨 고택으로 돌아왔다.
-그사이에 집은 누가 관리했나요?
“20년간 비어 있었지. 마당에도 지붕에도 발 디딜 수 없을 만큼 풀이 자라고… 자려고 안채에 누웠는데 천장이 뻥 뚫려서 하늘이 보이고 흙덩이가 부슬부슬 떨어지고 처음엔 아주 볼 수가 없었어요.”
-정말 흉가가 되어 있었던 거네요.
“간첩 집이라고 하니까 도둑도 얼씬을 안 했다니까. 우리 집에 선대로부터 내려온 고서적이 500여권이 있고 고문서도 3천~4천개가 있었는데, 간첩이라니까 도벌꾼도 얼씬하지 않은 거요.(웃음) 문서고 집기고 그대로 있더라고. 덕분에 고서적은 전남대 도서관에 무사히 위탁할 수 있었지.”
-근데 왜 이 폐가에 돌아오셨어요?
“역사에 남겨야 하니까. 지난 400년간 이 집에서 무엇을 했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여기 부친이 앉으셨던 자리에 앉아서 연못을 내다보면 무슨 생각이 드세요?
“내가 좀 되물읍시다. 당신이 나라면 어떤 생각이 들겠어?”
-에고, 좀 편히 살걸….(웃음)
“예끼! 거짓말하지 말고.(웃음) 부친은 저 한반도 지도를 보면서 얼마나 분이 났겠어. 남북은 막혀 있고.”
-인생 잘못 산 것 같다, 후회한 적은 정말 없으세요?
“(펄쩍 뛰며) 아유, 왜 잘못 살아요?”
-좀 편안히 사실 수도 있었을 텐데.
“남산 취조실에서 고문당할 때 경관들이 그럽디다. ‘저놈들은 생물(生物)이 아냐, 아무것도 안 하고 그늘 속에만 있어도 장관, 국회의원 다 할 놈들이, 얼마나 욕심이 많으면 스스로 쥐구멍에 기어들어 가냐?’고. ‘그래서 사람 죽고 집안 망하고 재산 없어지니 어떠냐?’고 내게 물어봅디다.”
-뭐라고 하셨어요?
“우리는 우리대로 사는 것이니 당신은 당신대로 사시라고 했지.”
-그러느라고 가족들한테는 어쩜 무책임한 가장이 되었을 수도 있잖아요. 선생님한테 가족이란 뭡니까?
“대만 사법고시에 이런 문제가 나왔어. 정치란 무엇인지 간단히 쓰라고. 정치란 무엇인가? 경제를 위한 것이다. 경제(먹고사는 일)는 내 가족과 직결되는 것 아닙니까? 그럼 가족을 위해서 최고 상위 가치는 정치예요.”
-이런 파란만장한 가문의 지킴이 역할을 하는 게 부담스럽진 않으세요?
“왜 부담스러워요? 그 책임이 막중한 것이 옳지. 우리 선현들이 어떻게 살았는데. 정경달부터….”
-저 사실,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우리 가문에 정승·판서 몇 나오고…’ 이런 족보 자랑 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하는데, 오늘 선생님 가문 얘기는 재밌게 잘 들었습니다.(웃음)
“외세에 빌붙어서 아부하고 고개 숙여서 정승·판서 나오면 뭐합니까? 우리 민족을 위해서 얼마나 훌륭한 일을 했는지 그걸 자랑해야지. 민(民)을 얼마나 사랑했느냐 그걸 자랑해야지. 그리고 거기서 머물지 않고 현실에서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방향을 찾아야지. 죽은 송장 치켜들고 뭘 할 것이여. 허허허.”
녹취 심지연
▶ 이진순 풀뿌리정치실험실 ‘와글’ 대표. 언론학 박사. 새로운 소통기술과 시민참여가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지 연구하는 것을 주업으로 삼는다. 사람 사이의 수평적 그물망이 어떻게 거대한 수직의 권력을 제어하는지, 평범한 사람들의 따뜻함이 어떻게 얼어붙은 세상을 되살리는지 찾아내는 일에 큰 기쁨을 느낀다. ‘열린 사람들과의 어울림’(열림)을 격주로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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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토요판] 이진순의 열림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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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 - 김정아 소설집
김정아 (지은이)클2017-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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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가
9.2100자평(0)리뷰(9)
248쪽
152*225mm
445g
ISBN : 9791185502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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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인권영화제 프로그래머 김정아의 첫번째 소설집. 소설은 언제나 고통에 처해 있는 인간을 주인공으로 삼는다. 소설집 <가시>의 등장인물 역시 파업에 실패한 비정규직 노동자, 철거에 내몰린 국숫집 할머니, 부모가 가출해버린 소녀, 혐오의 시선을 받는 전과자 등 '생의 난처함에 발목 잡힌' 사람들이다.
작가는 오랜 인권운동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 우리 사회가 배제해버린 소수자들을 현장감 있게 그러나 전혀 진부하지 않게 형상화한다. 그들이 고단한 하루하루를 겪으면서도 삶의 존엄성을 잃지 않고 주체적인 삶으로 발걸음을 옮겨가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려낸다.
김정아의 소설은 민중적 리얼리즘의 전통을 잇고 있지만, 한때 그런 성격의 소설들이 빠지곤 했던 도식적 구성이나 비약적 결말, 과장된 소재주의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일상의 섬세한 결을 훑어나간다. 문학평론가 이성혁은 김정아 소설의 이런 특징을 두고 "소수자의 삶 속에 내재해 있는 어떤 잠재력, '시적인 것'을 끌어올린다"고 평가한다.
목차
마지막 손님
곡우
석류나무집
몽골 낙타
전수택 씨의 감자
도토리 한 줌
가시
헤르메스의 선물
꿈틀대는 삶의 현장에서 ‘시적인 것’을 길어올리는
2017년 새로운 리얼리즘 소설의 등장
소설은 언제나 고통에 처해 있는 인간을 주인공으로 삼는다. 김정아의 첫번째 소설집 <가시>의 등장인물 역시 파업에 실패한 비정규직 노동자, 철거에 내몰린 국숫집 할머니, 부모가 가출해버린 소녀, 혐오의 시선을 받는 전과자 등 ‘생의 난처함에 발목 잡힌’ 사람들이다. 작가는 오랜 인권운동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 우리 사회가 배제해버린 소수자들을 현장감 있게 그러나 전혀 진부하지 않게 형상화한다. 그들이 고단한 하루하루를 겪으면서도 삶의 존엄성을 잃지 않고 주체적인 삶으로 발걸음을 옮겨가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려낸다.
김정아의 소설은 민중적 리얼리즘의 전통을 잇고 있지만, 한때 그런 성격의 소설들이 빠지곤 했던 도식적 구성이나 비약적 결말, 과장된 소재주의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일상의 섬세한 결을 훑어나간다. 독자들은 김정아가 노련하게 풀어내는 이야기들을 담담하게 따라가다가 어느새 마음의 울림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이성혁은 김정아 소설의 이런 특징을 두고 “소수자의 삶 속에 내재해 있는 어떤 잠재력, ‘시적인 것’을 끌어올린다”고 평가한다.
현장에서 글쓰기를 실천하는 작가 김정아의 <가시>에 실린 단편들은 문학의 힘으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들을 소중히 기록하는 새로운 리얼리즘 소설의 등장을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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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를 모티프로 한 작품 <마지막 손님>은 철거 위기에 놓인 시장 사람들의 불안한 분위기가 배경이다. 그러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국숫집 노인 선례 씨와 가게 한편에서 커피 배달 장사를 하는 남순 씨의 연대는 자신들의 처지, 즉 배제된 사람들의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누구를 흉내 낸 것이 아닌 그들 방식의 더 큰 연대를 준비한다.
<곡우>는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해왔던 유서 깊은 가문이자 보성 가족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고초를 겪은 정 씨 일가의 이야기를 봄날 보성의 아름답고 생명력 넘치는 자연과 배치한 독특한 소설이다. 작품의 주요 소재가 되는 녹차 채취와 제조 과정에 대한 꼼꼼한 묘사는 이 소설만의 향긋하고 쌉쌀한 매력을 더한다.
1970년대 중후반, 화자의 가난했던 유년시절이 잔잔하게 펼쳐지는 <석류나무집>은 무엇보다 읽는 맛이 빼어난 작품이다. 여러 세대가 함께 모여살았던 개량 한옥을 배경으로 나무와 우물, 집과 화단, 텔레비전과 변소 등을 둘러싼 일화들, 배추 납품과 외제물건 밀수 등의 시대적 풍경이 차분하게 펼쳐지는데, 이 모든 추억도 결국 철거라는 폭력으로 무너지고 만다.
알코올중독자 할머니와 함께 사는 10대 소녀를 작중 화자이자 주인공으로 내세운 <몽골 낙타>는 가난한 청소년의 복잡한 내면을 매우 섬세하게 표현해내는 작가적 촉각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김정아는 음울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면서도 독특한 몽상적 분위기를 가미해 주인공 소녀의 억눌린 욕망을 해방시키고 잠재해 있는 주체성에 길을 터준다.
마트에서 파업과 농성 투쟁을 하다가 실패하고 택배기사로 일하는 혜선이 더운 날 힘들여 산동네까지 배달을 하는 물건이 바로 <전수택 씨의 감자>이다. 삶의 시련에 도망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맞서는 한 여성의 ‘힘’, 그 생명력이 작가 김정아 특유의 현실감 있는 스케치로 독자에게 전해진다.
<도토리 한 줌>은 한 여인의 생에 포개진 역사의 무게를 우아하게 그리고 있다. 빨치산에 가담했다가 오랫동안 감옥살이를 해야 했던 강 여사이지만 작중 화자인 ‘나’와의 1박2일 동행은 작품의 제목만큼이나 명랑하고 건강하다. 작가가 빚어낸 개성적인 인물 강 여사의 반듯함과 강인함이 오래 기억되는 작품이다.
이 소설집의 표제작인 <가시>의 주인공 윤미희는 다수자의 세상에 의해 철저히 짓밟힌, “가시 덩굴에 떨어져 온몸에 가시가 박힌” 사람이다. 그는 상처받은 만큼 상처로 돌려주는 데 익숙해져 주변 사람들도 등을 돌리고 만다. 생생한 묘사와 대사로 윤미희를 둘러싼 이야기를 능숙하게, 때론 능청맞게 이끌어가던 작가는 문득 독자들에게 우리의 연대는 어디까지인가 하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마지막에 실린 <헤르메스의 선물>은 ‘하데스와 페르세포네’라는 신화적 상징을 활용한 일종의 ‘예술가 소설’이다. 성폭력 피해자들의 상담을 해주던 주인공이 피폐해진 심신을 이끌고 시골의 작업실로 내려와 예술가로서 자신을 세우는 과정을 담았다. 이 작품은 상처를 품고 살아가는 소수자들의 삶에서 ‘시적인 것’이 발현되는 순간을 포착하는 김정아의 작가적 선언으로 읽히기도 한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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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가시
저는 국내소설을 고르는 기준이 물론, 다른 북플지기님도 저마다의 기준이 있겠지만 제일 먼저보는 것이 출판사(제가 생각하는 5대출판사가 있지요.
출판사계의 대기업인 문학동네, 영광의 빨간 딱지 문학과지성사, 독특한 외래어 표기법이 인상적인 창비,
젊은 작가 시리즈로 유명한 민음사, 그리고 자음과모음이 해당되는 데, 여기에 간혹 국내소설을 출간하는 은행나무, 현대문학, 실천문학, 한겨레출판정도 될 것 같아요.)를 보고요.
그 다음에 보는 것이 작가님. 제가 이전에 작품으로 읽어봤던 작가님인지를 보게 되고요.
그 다음이 북플친구들이 올린 리뷰나 책이 출간된 소식을 보고 읽어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앞서 읽은 김살로메작가님의 첫 소설집「라요하네의 우산」도 여기에 해당되네요.)
그 밖에도 책의 앞부분을 보거나 (알라딘에도 미리보기가 있지만 없는 책들도 많더군요.) 출판사에서 올린 책 소개를 보고 구매를 하기도 하지만
사실, 이건 책을 구매하고 읽는 경로였고 책을 구매하지 않고 도서관에서 빌려보던 시절에는 딱 한가지 기준 밖에 없었어요. 바로 인상적인 표지인가.
물론 양장본같은 경우에는 책 겉표지는 보통 도서관에서는 제거하고 비치하지만 인상적인 표지나 제목을 선택하게 됩니다. 사실 도서관에서 빌릴 때에도 책의 내용은 잘 안 읽어본 것 같아요.
오늘 읽은 김정아작가님의 첫 소설집 「가시」는 ‘클‘이라고 하는 조금 생소한 출판사에서 출간했고
김정아라는 작가님의 작품을 이전에 본 적도 없고 들어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순전히 책의 표지와 제목을 보고 구매하게 되었습니다.
일러스트가 있거나 사진이 있는 것은 아닌 데 가시라는 글자가 위아래로 떨어져있고 그 중간에 가시에 베인 상처인듯 곡선으로 표현한 것이 전부인 데 인상적이었고 흥미로웠습니다.
표제작 (가시)를 포함하여 총 8편의 단편이 실렸는 데
주로 힘있는 다수에 의해 상처받고 가시돋힌 소수자의 시선을 다루고 있습니다. 먼저 실린 (마지막 손님)은 재래시장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고 떠나야할 위기에도 용역들에게 국수를 삶아주는 잔치이모라 불리는 귀가 잘 안들리는 선례씨와 그 옆에서 커피를 만들고 배달하는 남순씨가, 녹차를 만드는 과정을 상세하게 보여주는 (곡우)에서는 역사깊은 가문이 보성간첩단으로 억울하게 몰려 하루아침에 몰락하게 되는 사연이,
(석류나무집)에서는 일은 가족들이 했으나 정작 이익은 이모할머니와 새로 결혼한 이모할아버지만 갖게 되는 불공평한 경우가, (몽골 낙타)에서는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부모가 외국으로 떠나버려 술을 자주 마셔 정신이 온전하지 못하는 할머니와 같이 사는 딸이 다큐멘터리감독에게 부자들에게는 돈을 얻고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이야기만을 얻는 다는 말을 하는 등 권력이나 다수에 의해 상처받은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나머지 4편 또한 부당해고를 한 마트에서 시위(전수택 씨의 감자)하거나 시위를 하다 징역을 살아 교도소에 수감(가시)되고 전쟁으로 인해 절에 숨어 살며 동료들에게 음식과 소식을 전하는(도토리 한 줌) 등 다양하면서도 가시돋혀 있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이야기입니다.
솔직히 읽을 때는 잘 읽혀졌는 데 그 것을 글로 쓰려고 하니 막상 떠오르지 않아 고민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작가님의 작품들을 읽을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작가님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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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구마 2017-01-29 공감(8)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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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
대한민국 사회에 사라지고 있는 건 '정겨움'이다. 이웃과 나 사이에 존재하는 정겨움은 믿음으로 이어진다. 나의 적이 아닌 나의 편이 되고, 힘들고 아플 때 나 자신에게 약을 건네주는 도우미가 된다. 그 정겨움이 사라지고 있다. 사회를 움직이는 정치권력과 자본이 더해져 , 대한민국 사회의 다수자는 소수자들에게 돈으로서 강제하고, 상처를 입히게 된다. 이 소설은 대한민국 사회의 소수자로 존재하는 이들의 삶을 비추고 있으며, 지금 대한민국이 당면한 문제는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첫번째 이야기 마지막 손님, 한강로 1가 앞에 보이는 재래시장은 언제부터인가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이면서 철거 명령이 떨어지게 된다. 시장 상인들에게 용역 깡패가 동원되고, 그들을 몰아내는 모습들, 여기서 시장에서 길거리 커피를 파는 용다방 남순씨와 잔치굿수를 파는 노인 선례씨의 삶이 교차하고 있다. 깡패들은 두 사람을 제외하고 철거 진행을 하고 있으며, 그들은 용역 깡패들을 밥벌이 삼아서 장사를 하고 있다. 소수자를 철거하는 용역 깡패와 그들이 필요한 용다방 남순씨와 잔치국수집 선례씨의 모습은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며, 그들의 팍팍함을 느끼게 된다.
다섯번째 이야기 전수택 씨의 감자는 학창 시절 키가 크다는 이유 하나로 배구선수가 되었던 주인공 혜선씨가 등장한다. 사회에 나와 마트에서 일하는 혜선씨의 모습, 마트에서 파업과 농성 투쟁을 하는 혜선씨는 화타 언니로 통한다.하지만 마트 농성이 실패로 끝나고 택배일을 시작한 혜선은 마트에서 함께 일했던 김여사를 보게 되는데, 김에서는 폐지를 팔아 근근히 살이가고 있었다. 전수택씨 집에 감자를 택배 배달하는 혜선의 모습 속에서 감자 배달에 실패하고 다시 들어가게 되는데, 옷에 배여있는 내음새를 지우려는 혜선의 마음 속 응어리진 아픔을 엿보게 된다.
이 소설에서 인권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걸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우리가 말하는 인권존중이란 생존을 추구하고, 보호와 안전을 말하는 건 아닐런지, 자본을 우선하는 사회 시스템은 언제나 변화를 원하고 있으며,변화 과정에서 누군가의 희생을 요구한다. 희생은 언제나 사회적 소수자를 향하고 있으며, 소수자들은 자신의 희생에 대해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한채 밀려나게 된다. 소설은 그들이 가진 것들이 상실됨으로서 응어리진 상처의 실체가 무엇인지,우리에게 사회적 연대가 왜 필요한지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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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도리 2017-03-15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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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
장편소설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 단편소설을 틈새시간에 읽게 되었습니다.
김정아님의 귀한 소설 가시를 통하여 1970~80년대의 모습을 보게 되는데 그 당시 저는 학교에 다니면서 공부하던 시절이라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이후로 정국이 혼란한 가운데 데모을 하고 한창 힘든 시절이었습니다.
물론 현실에서도 대통령 탄핵으로 정국이 어지러운 시절이지만 지금과 예전의 그 시절은 또 다른 모습이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작가님은 인권영화제 프로그래머로 일을 하시면서 틈틈이 소설을 집필 귀한 소설 가시를 출판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물론 소설이란 행복하고 사랑하고 우리가 원하는 모습보다는 힘들고 괴롭고 어지러운 시간을 어떻게 지내고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가를 그려내는 것이 소설이라고 봅니다.
우리 나라가 한창 산업화가 되어가면서 부동산경기가 살아나고 재개발지역의 어지러운 모습을 마지막손님을 통하여 느낄수가 있었는데 지금도 지역에 따라서는 재개발 되어가는 곳이 있지만 80년대의 부동산경기와는 비교할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을 하여도 갑과 을이 있고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있듯이 마지막손님을 통하여 예전에 건설현장과 용역직원들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아 마음이 답답하면서도 어렵게 사는 모습을 느낄수가 있었습니다.
또한 가시소설을 보자면 한창 산업화시절 지방에서 올라와 방을 구하면서 어려웠던 과거가 생각이 나게 합니다.
곰팡이가 피고 이쪽 저쪽 물이 새고 막히고...
그러나 우리들이 이렇게 힘들게 수고를 하여 지금 이 시간 이렇게 잘 살게 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비록 현실속에 어떤 여자 한 사람으로 인하여 과거로 후퇴를 할까 국민의 한 사람으로 걱정은 하지만 우리 대한 민국 국민들은 또 일어서고 하나가 되고 뭉칠수가 있을 것이가 사려됩니다.
가시를 읽으면서 산업현장에서 일어나는 일들 시장에서 일어나는 일들 가정에서 일어나는 여러 일들을 통하여서 현실 속에 사는 사는 젊은 친구들은 잘 모를 수가 있겠으나 베이부머세대의 한 사람으로 마지막 손님의 인권이 유린되는 모습 가정에서의 남자라는 생리적인 것을 통하여 억압하고 무시하는 모습, 지금은 거의 자녀들이 하나 둘이지만 베이비부머세대였던 우리들로서는 콩나물학교에서 학교 공부를 해야하였고 길거리에는 아이들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지만 현실은 어르신들의 목소리 달라고하는 권리주장만 난무하는 이 시대 가시를 통한 소설속에서의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을 통하여 과거와 현실을 비교할 수가 있었습니다.
저의 경우에도 순진하여 남자라고하여 모든 것을 다하고 다 잘하는 만능인이고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인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한 남성과 결혼하여 살다보니 나약하고 의무보다 권리를 더 요구하고 자기는 하지않고 다른 사람에게 의무를 강요하며 폭력을 휘두르는 남성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런 남성들속에서 살다보니 이제는 남자와 여자가 무엇이 다른가 즉 생리적인 조건만 틀리지 무엇을 하든지 다 같이 할 수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즉 부모가 되기위해 자녀를 생산할 때 생리적인 조건 외에는 물론 사고 방식에서 결단력과 이성 감성을 조절 하는 능력을 따진다면 조금은 차별화가 될 수가 있으나 결론은 모두가 같다고 즉 남여가 같다고 생각됩니다.
산업화시절의 70~80년대시절 많은 사람들이 인권이 유린 되었었고 전두환대통령이 되기전 삼청교육대나 그전에 유신헌법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차별화를 받았고 인권유린되었을 시절이 있었던 것처럼 가시를 통한 경험과 행동이 지금 이 시절에는 향수처럼 느껴지고 느낄수가 있어 현재를 본다면 모두가 나쁘고 모두가 좋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귀한 시간 귀한 향수를 느낄수가 있어 행복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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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감자 2017-03-11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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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리얼리즘 소설의 등장 ˝가시˝
"가시"
책은 표지부터 가시를 품고있는듯 날카롭다.
소설은 작가의 첫작품이라고 한다,오랜시간 인권영화제 프로그래머로
10년이라는 시간을 일하면서 어릴적부터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으로
쓰기 시작한 책이 출간이 되었다.인권영화제부터 인권중심 사람까지
인생에서 가장 치열한 삼사십대를 인권운동과 함께 보낸 저자는
낮은 자들에 대한 깊은 생각들로 그들의 현실을 직접적으로 대면하며
살아온 시간들을 책속에 스며들게 한 부분도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치열하게 살아가는 삶속에서 리얼리즘을 말하고자하는 그에 소설속으로
들어가 애기를 들어보자.
저자에 이력만큼이나 소설에서는 파업에 실패한 비정규직 노동자
철거에 내몰린 국숫집 할머니 ,부모가 가출해버린 소녀,혐오의 시선을 받는
전과자등...이 세상에 흔하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우리 주변에 멀기도
가까이 존재하기도 하는 이야기들로 생의 한가운데란 미로속에 갇힌
사람들에 이야기로 이루어져있다.오랜 인권운동을 한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가 잊어버리고 잊으려 애쓰는 소외된 계층에 존재하는 사회속에
스며들지 못하는 사람들에 이야기를 생동감이 존재하고 현장감이
느껴지도록 이야기는 구성해 놓아서 전혀 지루하지 않게 글을 읽어
내려갈수 있었다.그래서인지 책속에는 그저그런 이야기들로 꾸며진
가식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그들이 하루를 살아가면서 겪는 순간들을
잘 나타내고 있으며 삶이란 큰 맥락속에서 자신의 존엄성을 잃지 않고
주체적인 삶으로 발걸음을 디딜수 있도록 그 과정들을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어서 책은 삶이란 이런것이구나 하는 여운을 남겨준다.
단편으로 이루어진 이책은
마지막 손님
곡우
석류나무집
몽골 낙타
전수택 씨의 감자
도토리 한 줌
가시
헤르메스의 선물
이렇게 이루어져 있다.
흔하지 않은 내용을 다루지 않은 소설답게 단편집으로 이루어진
주제들도 참 다양하고 특이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대목이다.
그중에서도 인상 깊었던 단편은 제목이 주는 특이함으로 눈길을
끈 몽골 낙타라는 단편이었다.알코올 중독자인 할머니와 함께 살아가는
10대 소녀가 등장하는 이 단편에서는 가난하고 희망이라고는 없어보이는
.소녀의 복잡하고도 섬세한 표현으로 그려낸 순간순간들이 참 좋았던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음울한 현실을 마주하며 살아가는 그들에 모습을
드러내면서도 독특하고도 몽환적인 분위기를 더하여 주인공 소녀가
살아오면서 늘 억눌리고 참아야만 했던 삶속에서 그 욕망들을 표출하고
잠재해 있는 자신에 주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단순한듯 단순하지 않은 내용들과 결말로 이루어진 책은 그래서
더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든다.흔히 볼수 있는 것들이 아니라서
그러리라...
저자는 책속에 대중적이고 민중적인 리얼리즘속 전형적인 면모를
이루고 있지만..그런 그도 한때는 그런 성격의 소설들에 빠지고 도식적
구성이나 비약적인 결말로 끝을 맺는 책들에 실망을 하고는 한 경험에
과장되고 가식적인 내용으로 이루어진 틀에서 벗어나 일상의 섬세한
감정들속에 빠져들기를 바라고 쓴 책같다.이렇게 책을 읽으면서 담담하게
글들을 읽어내려가다가 어느 순간 마음속에 무언가가 존재하듯
쿵하는 소용돌이에 빠져들기도 한다.
자신이 일하는 곳 어딘가에서 글쓰기를 실천하고 살아가는 한순간 순간들이
글을 쓰기위한 하나의 장을 만들어가는...책이란 존재로 다가온다.
우리가 기억하고 잊지말고 살아야할 기억들을 소중히 기록해 놓은
새로운 책한권 "가시"이책은 우리에게 새로운 의미를 선물해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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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우웅 2017-03-17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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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
평상시에 나는 얼마나 내 주변을 돌아보며 살았을까? 가난하고, 병들고, 힘도 없고, 아프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는 있을까? 그저 나 자신만을, 내 가족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만을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김정아의 소설 <가시>는 내게 이런 화두들을 던졌다.
김정아 작가는 삼사십대를 인권운동으로 보내고 현재도 서울시 성북구 인권센터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래서였는지 모르겠지만 이 책에 수록된 작품 하나, 하나가 모두 우리 주변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소수자들의 모습을 리얼하게 전달한다.
소설집 <가시>에는 8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개발이라는 명목 아래 철거 위기에 놓인 시장 상인들, 싱글맘으로 택배기사를 하며 살아가는 여성, 노동 현장에서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여성 등 우리 사회에서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한 채 하루하루의 삶을 힘겹게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이 대표작 <가시>처럼 우리의 마음을 콕콕 찌른다.
작가가 그려낸 이들의 모습이 너무 담담해서일까? 더욱 내 마음이 아팠던 이유는. 또 열심히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에 얼마나 내 자신이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이들의 아픔은 누구의 책임일까? 국가의 책임? 기업가의 책임? 지역 공동체의 책임? 아마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에게 조그마한 관심조차도 가지지 못했던 내게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건 아닐까?
소설의 역할은 우리를 깨우는 것이다. 깨워서 일어나 행동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내 속에 작은 씨앗 하나를 뿌렸다. 이웃을 향한 관심과 사랑이라는 가장 큰 나무로 성장하게 될 그런 씨앗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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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ra6363 2017-03-17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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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 - 김정아 소설집
김정아 (지은이)클2017-01-10
미리보기 전자책으로 미리 읽기
정가
9.2100자평(0)리뷰(9)
248쪽
152*225mm
445g
ISBN : 9791185502601
--------------
책소개
인권영화제 프로그래머 김정아의 첫번째 소설집. 소설은 언제나 고통에 처해 있는 인간을 주인공으로 삼는다. 소설집 <가시>의 등장인물 역시 파업에 실패한 비정규직 노동자, 철거에 내몰린 국숫집 할머니, 부모가 가출해버린 소녀, 혐오의 시선을 받는 전과자 등 '생의 난처함에 발목 잡힌' 사람들이다.
작가는 오랜 인권운동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 우리 사회가 배제해버린 소수자들을 현장감 있게 그러나 전혀 진부하지 않게 형상화한다. 그들이 고단한 하루하루를 겪으면서도 삶의 존엄성을 잃지 않고 주체적인 삶으로 발걸음을 옮겨가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려낸다.
김정아의 소설은 민중적 리얼리즘의 전통을 잇고 있지만, 한때 그런 성격의 소설들이 빠지곤 했던 도식적 구성이나 비약적 결말, 과장된 소재주의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일상의 섬세한 결을 훑어나간다. 문학평론가 이성혁은 김정아 소설의 이런 특징을 두고 "소수자의 삶 속에 내재해 있는 어떤 잠재력, '시적인 것'을 끌어올린다"고 평가한다.
목차
마지막 손님
곡우
석류나무집
몽골 낙타
전수택 씨의 감자
도토리 한 줌
가시
헤르메스의 선물
----
해설: 소수자의 ‘소수자 되기’를 통해 발현되는 ‘시적인 것’ _이성혁 (문학평론가)
작가의 말
책속에서
“네 생각을 그냥 말하면 돼.”
감독은 렌즈에 고정시킨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나는 움직이는 감독의 입술을 그녀가 렌즈를 보는 것처럼 바라보았다.
“선생님이 얘기해보세요.”
감독이 초조한 듯 혀로 입술을 축였다. 나는 다시 책장을 넘겼다. 갑자기 만화책의 이야기가 너무 궁금해졌다.
“똑바로 앉아.”<...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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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 동아일보 2017년 1월 14일자 '책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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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신문 2017년 1월 26일자
저자 및 역자소개
김정아 (지은이)
저자파일
최고의 작품 투표
신간알림 신청
수상 : 2017년 신동엽문학상
최근작 : <너의 빛나는 그 눈이 말하는 것은>,<가시> … 총 4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해설: 소수자의 ‘소수자 되기’를 통해 발현되는 ‘시적인 것’ _이성혁 (문학평론가)
작가의 말
책속에서
“네 생각을 그냥 말하면 돼.”
감독은 렌즈에 고정시킨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나는 움직이는 감독의 입술을 그녀가 렌즈를 보는 것처럼 바라보았다.
“선생님이 얘기해보세요.”
감독이 초조한 듯 혀로 입술을 축였다. 나는 다시 책장을 넘겼다. 갑자기 만화책의 이야기가 너무 궁금해졌다.
“똑바로 앉아.”<...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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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김정아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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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아 (지은이)
저자파일
최고의 작품 투표
신간알림 신청
국내 다큐멘터리 영화제 중에 가장 인지도 높았던 인권영화제 프로그래머로 10년을 일하면서 소설을 쓰려는 어린 시절 꿈을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다. 1997년 인권영화제부터 2013년 인권중심 사람까지 인생에서 가장 치열한 삼사십대를 인권운동과 함께 보냈다. 인권운동은 소수자, 즉 낮은 자들에 대한 깊은 성찰과 함께 그들의 현실을 목도하는 경험을 가져다준다. 현재도 서울시 성북구인권센터장으로 일하며 소수자들의 삶의 지위에 대해 여전히 고민하고 있다. 이러한 성찰과 경험은 작가 김정아가 매진하려는 리얼리즘 문학의 마중물이 되어주었다. 인권운동을 하며 실제 만나고 다큐멘터리를 통해 알게 된 낮은 자들의 이야기가 첫번째 소설집 『가시』에 담겨 있다. 접기
수상 : 2017년 신동엽문학상
최근작 : <너의 빛나는 그 눈이 말하는 것은>,<가시> … 총 4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꿈틀대는 삶의 현장에서 ‘시적인 것’을 길어올리는
2017년 새로운 리얼리즘 소설의 등장
소설은 언제나 고통에 처해 있는 인간을 주인공으로 삼는다. 김정아의 첫번째 소설집 <가시>의 등장인물 역시 파업에 실패한 비정규직 노동자, 철거에 내몰린 국숫집 할머니, 부모가 가출해버린 소녀, 혐오의 시선을 받는 전과자 등 ‘생의 난처함에 발목 잡힌’ 사람들이다. 작가는 오랜 인권운동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 우리 사회가 배제해버린 소수자들을 현장감 있게 그러나 전혀 진부하지 않게 형상화한다. 그들이 고단한 하루하루를 겪으면서도 삶의 존엄성을 잃지 않고 주체적인 삶으로 발걸음을 옮겨가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려낸다.
김정아의 소설은 민중적 리얼리즘의 전통을 잇고 있지만, 한때 그런 성격의 소설들이 빠지곤 했던 도식적 구성이나 비약적 결말, 과장된 소재주의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일상의 섬세한 결을 훑어나간다. 독자들은 김정아가 노련하게 풀어내는 이야기들을 담담하게 따라가다가 어느새 마음의 울림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이성혁은 김정아 소설의 이런 특징을 두고 “소수자의 삶 속에 내재해 있는 어떤 잠재력, ‘시적인 것’을 끌어올린다”고 평가한다.
현장에서 글쓰기를 실천하는 작가 김정아의 <가시>에 실린 단편들은 문학의 힘으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들을 소중히 기록하는 새로운 리얼리즘 소설의 등장을 알리고 있다.
*
용산참사를 모티프로 한 작품 <마지막 손님>은 철거 위기에 놓인 시장 사람들의 불안한 분위기가 배경이다. 그러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국숫집 노인 선례 씨와 가게 한편에서 커피 배달 장사를 하는 남순 씨의 연대는 자신들의 처지, 즉 배제된 사람들의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누구를 흉내 낸 것이 아닌 그들 방식의 더 큰 연대를 준비한다.
<곡우>는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해왔던 유서 깊은 가문이자 보성 가족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고초를 겪은 정 씨 일가의 이야기를 봄날 보성의 아름답고 생명력 넘치는 자연과 배치한 독특한 소설이다. 작품의 주요 소재가 되는 녹차 채취와 제조 과정에 대한 꼼꼼한 묘사는 이 소설만의 향긋하고 쌉쌀한 매력을 더한다.
1970년대 중후반, 화자의 가난했던 유년시절이 잔잔하게 펼쳐지는 <석류나무집>은 무엇보다 읽는 맛이 빼어난 작품이다. 여러 세대가 함께 모여살았던 개량 한옥을 배경으로 나무와 우물, 집과 화단, 텔레비전과 변소 등을 둘러싼 일화들, 배추 납품과 외제물건 밀수 등의 시대적 풍경이 차분하게 펼쳐지는데, 이 모든 추억도 결국 철거라는 폭력으로 무너지고 만다.
알코올중독자 할머니와 함께 사는 10대 소녀를 작중 화자이자 주인공으로 내세운 <몽골 낙타>는 가난한 청소년의 복잡한 내면을 매우 섬세하게 표현해내는 작가적 촉각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김정아는 음울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면서도 독특한 몽상적 분위기를 가미해 주인공 소녀의 억눌린 욕망을 해방시키고 잠재해 있는 주체성에 길을 터준다.
마트에서 파업과 농성 투쟁을 하다가 실패하고 택배기사로 일하는 혜선이 더운 날 힘들여 산동네까지 배달을 하는 물건이 바로 <전수택 씨의 감자>이다. 삶의 시련에 도망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맞서는 한 여성의 ‘힘’, 그 생명력이 작가 김정아 특유의 현실감 있는 스케치로 독자에게 전해진다.
<도토리 한 줌>은 한 여인의 생에 포개진 역사의 무게를 우아하게 그리고 있다. 빨치산에 가담했다가 오랫동안 감옥살이를 해야 했던 강 여사이지만 작중 화자인 ‘나’와의 1박2일 동행은 작품의 제목만큼이나 명랑하고 건강하다. 작가가 빚어낸 개성적인 인물 강 여사의 반듯함과 강인함이 오래 기억되는 작품이다.
이 소설집의 표제작인 <가시>의 주인공 윤미희는 다수자의 세상에 의해 철저히 짓밟힌, “가시 덩굴에 떨어져 온몸에 가시가 박힌” 사람이다. 그는 상처받은 만큼 상처로 돌려주는 데 익숙해져 주변 사람들도 등을 돌리고 만다. 생생한 묘사와 대사로 윤미희를 둘러싼 이야기를 능숙하게, 때론 능청맞게 이끌어가던 작가는 문득 독자들에게 우리의 연대는 어디까지인가 하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마지막에 실린 <헤르메스의 선물>은 ‘하데스와 페르세포네’라는 신화적 상징을 활용한 일종의 ‘예술가 소설’이다. 성폭력 피해자들의 상담을 해주던 주인공이 피폐해진 심신을 이끌고 시골의 작업실로 내려와 예술가로서 자신을 세우는 과정을 담았다. 이 작품은 상처를 품고 살아가는 소수자들의 삶에서 ‘시적인 것’이 발현되는 순간을 포착하는 김정아의 작가적 선언으로 읽히기도 한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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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가시
저는 국내소설을 고르는 기준이 물론, 다른 북플지기님도 저마다의 기준이 있겠지만 제일 먼저보는 것이 출판사(제가 생각하는 5대출판사가 있지요.
출판사계의 대기업인 문학동네, 영광의 빨간 딱지 문학과지성사, 독특한 외래어 표기법이 인상적인 창비,
젊은 작가 시리즈로 유명한 민음사, 그리고 자음과모음이 해당되는 데, 여기에 간혹 국내소설을 출간하는 은행나무, 현대문학, 실천문학, 한겨레출판정도 될 것 같아요.)를 보고요.
그 다음에 보는 것이 작가님. 제가 이전에 작품으로 읽어봤던 작가님인지를 보게 되고요.
그 다음이 북플친구들이 올린 리뷰나 책이 출간된 소식을 보고 읽어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앞서 읽은 김살로메작가님의 첫 소설집「라요하네의 우산」도 여기에 해당되네요.)
그 밖에도 책의 앞부분을 보거나 (알라딘에도 미리보기가 있지만 없는 책들도 많더군요.) 출판사에서 올린 책 소개를 보고 구매를 하기도 하지만
사실, 이건 책을 구매하고 읽는 경로였고 책을 구매하지 않고 도서관에서 빌려보던 시절에는 딱 한가지 기준 밖에 없었어요. 바로 인상적인 표지인가.
물론 양장본같은 경우에는 책 겉표지는 보통 도서관에서는 제거하고 비치하지만 인상적인 표지나 제목을 선택하게 됩니다. 사실 도서관에서 빌릴 때에도 책의 내용은 잘 안 읽어본 것 같아요.
오늘 읽은 김정아작가님의 첫 소설집 「가시」는 ‘클‘이라고 하는 조금 생소한 출판사에서 출간했고
김정아라는 작가님의 작품을 이전에 본 적도 없고 들어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순전히 책의 표지와 제목을 보고 구매하게 되었습니다.
일러스트가 있거나 사진이 있는 것은 아닌 데 가시라는 글자가 위아래로 떨어져있고 그 중간에 가시에 베인 상처인듯 곡선으로 표현한 것이 전부인 데 인상적이었고 흥미로웠습니다.
표제작 (가시)를 포함하여 총 8편의 단편이 실렸는 데
주로 힘있는 다수에 의해 상처받고 가시돋힌 소수자의 시선을 다루고 있습니다. 먼저 실린 (마지막 손님)은 재래시장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고 떠나야할 위기에도 용역들에게 국수를 삶아주는 잔치이모라 불리는 귀가 잘 안들리는 선례씨와 그 옆에서 커피를 만들고 배달하는 남순씨가, 녹차를 만드는 과정을 상세하게 보여주는 (곡우)에서는 역사깊은 가문이 보성간첩단으로 억울하게 몰려 하루아침에 몰락하게 되는 사연이,
(석류나무집)에서는 일은 가족들이 했으나 정작 이익은 이모할머니와 새로 결혼한 이모할아버지만 갖게 되는 불공평한 경우가, (몽골 낙타)에서는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부모가 외국으로 떠나버려 술을 자주 마셔 정신이 온전하지 못하는 할머니와 같이 사는 딸이 다큐멘터리감독에게 부자들에게는 돈을 얻고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이야기만을 얻는 다는 말을 하는 등 권력이나 다수에 의해 상처받은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나머지 4편 또한 부당해고를 한 마트에서 시위(전수택 씨의 감자)하거나 시위를 하다 징역을 살아 교도소에 수감(가시)되고 전쟁으로 인해 절에 숨어 살며 동료들에게 음식과 소식을 전하는(도토리 한 줌) 등 다양하면서도 가시돋혀 있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이야기입니다.
솔직히 읽을 때는 잘 읽혀졌는 데 그 것을 글로 쓰려고 하니 막상 떠오르지 않아 고민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작가님의 작품들을 읽을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작가님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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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구마 2017-01-29 공감(8)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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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
대한민국 사회에 사라지고 있는 건 '정겨움'이다. 이웃과 나 사이에 존재하는 정겨움은 믿음으로 이어진다. 나의 적이 아닌 나의 편이 되고, 힘들고 아플 때 나 자신에게 약을 건네주는 도우미가 된다. 그 정겨움이 사라지고 있다. 사회를 움직이는 정치권력과 자본이 더해져 , 대한민국 사회의 다수자는 소수자들에게 돈으로서 강제하고, 상처를 입히게 된다. 이 소설은 대한민국 사회의 소수자로 존재하는 이들의 삶을 비추고 있으며, 지금 대한민국이 당면한 문제는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첫번째 이야기 마지막 손님, 한강로 1가 앞에 보이는 재래시장은 언제부터인가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이면서 철거 명령이 떨어지게 된다. 시장 상인들에게 용역 깡패가 동원되고, 그들을 몰아내는 모습들, 여기서 시장에서 길거리 커피를 파는 용다방 남순씨와 잔치굿수를 파는 노인 선례씨의 삶이 교차하고 있다. 깡패들은 두 사람을 제외하고 철거 진행을 하고 있으며, 그들은 용역 깡패들을 밥벌이 삼아서 장사를 하고 있다. 소수자를 철거하는 용역 깡패와 그들이 필요한 용다방 남순씨와 잔치국수집 선례씨의 모습은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며, 그들의 팍팍함을 느끼게 된다.
다섯번째 이야기 전수택 씨의 감자는 학창 시절 키가 크다는 이유 하나로 배구선수가 되었던 주인공 혜선씨가 등장한다. 사회에 나와 마트에서 일하는 혜선씨의 모습, 마트에서 파업과 농성 투쟁을 하는 혜선씨는 화타 언니로 통한다.하지만 마트 농성이 실패로 끝나고 택배일을 시작한 혜선은 마트에서 함께 일했던 김여사를 보게 되는데, 김에서는 폐지를 팔아 근근히 살이가고 있었다. 전수택씨 집에 감자를 택배 배달하는 혜선의 모습 속에서 감자 배달에 실패하고 다시 들어가게 되는데, 옷에 배여있는 내음새를 지우려는 혜선의 마음 속 응어리진 아픔을 엿보게 된다.
이 소설에서 인권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걸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우리가 말하는 인권존중이란 생존을 추구하고, 보호와 안전을 말하는 건 아닐런지, 자본을 우선하는 사회 시스템은 언제나 변화를 원하고 있으며,변화 과정에서 누군가의 희생을 요구한다. 희생은 언제나 사회적 소수자를 향하고 있으며, 소수자들은 자신의 희생에 대해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한채 밀려나게 된다. 소설은 그들이 가진 것들이 상실됨으로서 응어리진 상처의 실체가 무엇인지,우리에게 사회적 연대가 왜 필요한지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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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도리 2017-03-15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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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
장편소설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 단편소설을 틈새시간에 읽게 되었습니다.
김정아님의 귀한 소설 가시를 통하여 1970~80년대의 모습을 보게 되는데 그 당시 저는 학교에 다니면서 공부하던 시절이라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이후로 정국이 혼란한 가운데 데모을 하고 한창 힘든 시절이었습니다.
물론 현실에서도 대통령 탄핵으로 정국이 어지러운 시절이지만 지금과 예전의 그 시절은 또 다른 모습이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작가님은 인권영화제 프로그래머로 일을 하시면서 틈틈이 소설을 집필 귀한 소설 가시를 출판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물론 소설이란 행복하고 사랑하고 우리가 원하는 모습보다는 힘들고 괴롭고 어지러운 시간을 어떻게 지내고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가를 그려내는 것이 소설이라고 봅니다.
우리 나라가 한창 산업화가 되어가면서 부동산경기가 살아나고 재개발지역의 어지러운 모습을 마지막손님을 통하여 느낄수가 있었는데 지금도 지역에 따라서는 재개발 되어가는 곳이 있지만 80년대의 부동산경기와는 비교할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을 하여도 갑과 을이 있고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있듯이 마지막손님을 통하여 예전에 건설현장과 용역직원들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아 마음이 답답하면서도 어렵게 사는 모습을 느낄수가 있었습니다.
또한 가시소설을 보자면 한창 산업화시절 지방에서 올라와 방을 구하면서 어려웠던 과거가 생각이 나게 합니다.
곰팡이가 피고 이쪽 저쪽 물이 새고 막히고...
그러나 우리들이 이렇게 힘들게 수고를 하여 지금 이 시간 이렇게 잘 살게 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비록 현실속에 어떤 여자 한 사람으로 인하여 과거로 후퇴를 할까 국민의 한 사람으로 걱정은 하지만 우리 대한 민국 국민들은 또 일어서고 하나가 되고 뭉칠수가 있을 것이가 사려됩니다.
가시를 읽으면서 산업현장에서 일어나는 일들 시장에서 일어나는 일들 가정에서 일어나는 여러 일들을 통하여서 현실 속에 사는 사는 젊은 친구들은 잘 모를 수가 있겠으나 베이부머세대의 한 사람으로 마지막 손님의 인권이 유린되는 모습 가정에서의 남자라는 생리적인 것을 통하여 억압하고 무시하는 모습, 지금은 거의 자녀들이 하나 둘이지만 베이비부머세대였던 우리들로서는 콩나물학교에서 학교 공부를 해야하였고 길거리에는 아이들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지만 현실은 어르신들의 목소리 달라고하는 권리주장만 난무하는 이 시대 가시를 통한 소설속에서의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을 통하여 과거와 현실을 비교할 수가 있었습니다.
저의 경우에도 순진하여 남자라고하여 모든 것을 다하고 다 잘하는 만능인이고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인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한 남성과 결혼하여 살다보니 나약하고 의무보다 권리를 더 요구하고 자기는 하지않고 다른 사람에게 의무를 강요하며 폭력을 휘두르는 남성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런 남성들속에서 살다보니 이제는 남자와 여자가 무엇이 다른가 즉 생리적인 조건만 틀리지 무엇을 하든지 다 같이 할 수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즉 부모가 되기위해 자녀를 생산할 때 생리적인 조건 외에는 물론 사고 방식에서 결단력과 이성 감성을 조절 하는 능력을 따진다면 조금은 차별화가 될 수가 있으나 결론은 모두가 같다고 즉 남여가 같다고 생각됩니다.
산업화시절의 70~80년대시절 많은 사람들이 인권이 유린 되었었고 전두환대통령이 되기전 삼청교육대나 그전에 유신헌법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차별화를 받았고 인권유린되었을 시절이 있었던 것처럼 가시를 통한 경험과 행동이 지금 이 시절에는 향수처럼 느껴지고 느낄수가 있어 현재를 본다면 모두가 나쁘고 모두가 좋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귀한 시간 귀한 향수를 느낄수가 있어 행복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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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감자 2017-03-11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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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리얼리즘 소설의 등장 ˝가시˝
"가시"
책은 표지부터 가시를 품고있는듯 날카롭다.
소설은 작가의 첫작품이라고 한다,오랜시간 인권영화제 프로그래머로
10년이라는 시간을 일하면서 어릴적부터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으로
쓰기 시작한 책이 출간이 되었다.인권영화제부터 인권중심 사람까지
인생에서 가장 치열한 삼사십대를 인권운동과 함께 보낸 저자는
낮은 자들에 대한 깊은 생각들로 그들의 현실을 직접적으로 대면하며
살아온 시간들을 책속에 스며들게 한 부분도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치열하게 살아가는 삶속에서 리얼리즘을 말하고자하는 그에 소설속으로
들어가 애기를 들어보자.
저자에 이력만큼이나 소설에서는 파업에 실패한 비정규직 노동자
철거에 내몰린 국숫집 할머니 ,부모가 가출해버린 소녀,혐오의 시선을 받는
전과자등...이 세상에 흔하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우리 주변에 멀기도
가까이 존재하기도 하는 이야기들로 생의 한가운데란 미로속에 갇힌
사람들에 이야기로 이루어져있다.오랜 인권운동을 한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가 잊어버리고 잊으려 애쓰는 소외된 계층에 존재하는 사회속에
스며들지 못하는 사람들에 이야기를 생동감이 존재하고 현장감이
느껴지도록 이야기는 구성해 놓아서 전혀 지루하지 않게 글을 읽어
내려갈수 있었다.그래서인지 책속에는 그저그런 이야기들로 꾸며진
가식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그들이 하루를 살아가면서 겪는 순간들을
잘 나타내고 있으며 삶이란 큰 맥락속에서 자신의 존엄성을 잃지 않고
주체적인 삶으로 발걸음을 디딜수 있도록 그 과정들을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어서 책은 삶이란 이런것이구나 하는 여운을 남겨준다.
단편으로 이루어진 이책은
마지막 손님
곡우
석류나무집
몽골 낙타
전수택 씨의 감자
도토리 한 줌
가시
헤르메스의 선물
이렇게 이루어져 있다.
흔하지 않은 내용을 다루지 않은 소설답게 단편집으로 이루어진
주제들도 참 다양하고 특이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대목이다.
그중에서도 인상 깊었던 단편은 제목이 주는 특이함으로 눈길을
끈 몽골 낙타라는 단편이었다.알코올 중독자인 할머니와 함께 살아가는
10대 소녀가 등장하는 이 단편에서는 가난하고 희망이라고는 없어보이는
.소녀의 복잡하고도 섬세한 표현으로 그려낸 순간순간들이 참 좋았던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음울한 현실을 마주하며 살아가는 그들에 모습을
드러내면서도 독특하고도 몽환적인 분위기를 더하여 주인공 소녀가
살아오면서 늘 억눌리고 참아야만 했던 삶속에서 그 욕망들을 표출하고
잠재해 있는 자신에 주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단순한듯 단순하지 않은 내용들과 결말로 이루어진 책은 그래서
더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든다.흔히 볼수 있는 것들이 아니라서
그러리라...
저자는 책속에 대중적이고 민중적인 리얼리즘속 전형적인 면모를
이루고 있지만..그런 그도 한때는 그런 성격의 소설들에 빠지고 도식적
구성이나 비약적인 결말로 끝을 맺는 책들에 실망을 하고는 한 경험에
과장되고 가식적인 내용으로 이루어진 틀에서 벗어나 일상의 섬세한
감정들속에 빠져들기를 바라고 쓴 책같다.이렇게 책을 읽으면서 담담하게
글들을 읽어내려가다가 어느 순간 마음속에 무언가가 존재하듯
쿵하는 소용돌이에 빠져들기도 한다.
자신이 일하는 곳 어딘가에서 글쓰기를 실천하고 살아가는 한순간 순간들이
글을 쓰기위한 하나의 장을 만들어가는...책이란 존재로 다가온다.
우리가 기억하고 잊지말고 살아야할 기억들을 소중히 기록해 놓은
새로운 책한권 "가시"이책은 우리에게 새로운 의미를 선물해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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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우웅 2017-03-17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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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
평상시에 나는 얼마나 내 주변을 돌아보며 살았을까? 가난하고, 병들고, 힘도 없고, 아프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는 있을까? 그저 나 자신만을, 내 가족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만을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김정아의 소설 <가시>는 내게 이런 화두들을 던졌다.
김정아 작가는 삼사십대를 인권운동으로 보내고 현재도 서울시 성북구 인권센터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래서였는지 모르겠지만 이 책에 수록된 작품 하나, 하나가 모두 우리 주변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소수자들의 모습을 리얼하게 전달한다.
소설집 <가시>에는 8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개발이라는 명목 아래 철거 위기에 놓인 시장 상인들, 싱글맘으로 택배기사를 하며 살아가는 여성, 노동 현장에서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여성 등 우리 사회에서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한 채 하루하루의 삶을 힘겹게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이 대표작 <가시>처럼 우리의 마음을 콕콕 찌른다.
작가가 그려낸 이들의 모습이 너무 담담해서일까? 더욱 내 마음이 아팠던 이유는. 또 열심히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에 얼마나 내 자신이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이들의 아픔은 누구의 책임일까? 국가의 책임? 기업가의 책임? 지역 공동체의 책임? 아마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에게 조그마한 관심조차도 가지지 못했던 내게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건 아닐까?
소설의 역할은 우리를 깨우는 것이다. 깨워서 일어나 행동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내 속에 작은 씨앗 하나를 뿌렸다. 이웃을 향한 관심과 사랑이라는 가장 큰 나무로 성장하게 될 그런 씨앗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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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ra6363 2017-03-17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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