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5-15

Park Yuha - 다 아는 얘기인데도 무시되고 있는 이재명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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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Yu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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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아는 얘기인데도 무시되고 있는 이재명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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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렴'한 정약용에 자신을 빗댄 이재명
<그런데 다산을 찬양한 정치인의 현실은 어떨까. 이재명 후보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뇌물,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부패방지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상태다. 대장동 개발 비리 사건으로 성남도시개발공사에 4,895억원의 손해를 끼친 배임 혐의, 성남FC 후원금 관련 제3자 뇌물죄 등 여러 혐의가 그를 향하고 있다.>

어쩌면 김문수는 진영의 덧없음을 우리보다 빨리 깨달았던 것 아닐까?
<이러한 김문수의 태도는 이재명 후보 주변의 수많은 '의문사'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국민의힘 박수영 의원은 이재명 의원의 주변 또는 관련 인물 중 소위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 8명이나 된다고 주장했다. 
"과문한 탓인지 세계 정치인 주변 또는 관련 인물 중 이렇게 많은 극단적 선택이 있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고 말할 정도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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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g Rock Lee

흠결없는 완전한 인간이란 절대 불가능하다는 점을 전제하고, 우리 사회는 최소한의 도덕과 윤리의 잣대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물론 김문수도 인간이니 흠결이 당연히 있지만, 살아 온 삶이나 드러난 성품은, 이재명과 비교할 때는 성인이라 칭해야 할만큼, 능력이 있고 올곧은 인물입니다. 기회가 그에게 주어지면 좋겠습다.


Seong Hwan Park

어찌보면 한덕수를 동원한 국힘 지도부의 무뇌성 자해행위가 김문수와 윤석열을 어느 정도 디커플링시켜주는 순기능이 김문수에게 있었던 것 같습니다. 김문수가 계엄을 옹호하고 나선 것 때문에 계엄 옹호자는 안된다는 반감이 중도쪽에 컸을텐데 윤이 김문수를 무리수를 둬가며 쳐내려고 시도한 일로 그 반감이 희석되었겠죠. 김문수는 윤 극렬 지지자들의 마음을 다치게 하지 않으면서 계엄옹호 그림자도 덜어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수행해야 할텐데 아마 안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권성동을 축출하면 친윤이 돌아서서 당이 내홍에 빠질거구요. 놔두면 중도가 김문수를 지지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죠.


Park Yuha

박성환 결국 결론이 먼저 있는 문제들이죠. 지지할 이유가 있으면 긍정적으로 보려 할테고 그 반대면 뭐든 나쁘게 볼 거구요.
계엄과 탄핵에 대한 태도는 물론 중요하지만, 너무 거기에 시선이 쏠려 있어서 정작 원인을 만든 민주당이 단죄되지 않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토록 문제 많은 이재명이 대통령으로 당연시되는 걸 보노라니 상황 바꿔 봐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Seong Hwan Park

그나저나 윤을 보면 인간도 아닌 것 같습니다. 김문수도 계엄 옹호에 정치적 리스크가 없지 않았을텐데 고마워하긴 커명 그렇게 추잡하게 윤핵관과 협잡해서 경선 통해 어렵게 대선후보로 선출된 사람을 부당하게 내치려한다? ㅎㅎㅎ


Park Yuha

박성환 그러게 말입니다. 한덕수도 마찬가지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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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없이 가볍다, 스텝 꼬이는 민주당
박주현 칼럼리스트
등록 2025-05-13

원칙과 대안, 장기적 안목의 상실
네거티브와 조롱으로 똘똘 뭉친 진영논리의 바닥
민주당의 가벼운 처신이 스스로 운신을 제한한다 (AI생성)


대선을 앞두고 희극이 펼쳐지고 있다. 무대는 한국, 시간은 2025년이다. 더불어민주당이 공들여 준비한 공격 시나리오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모습은 마치 함정을 파놓고 자신이 빠지는 우화와 같았다.

민주당은 처음부터 철저했다. 한덕수 전 총리를 공격하기 위한 자료를 수집하고, 그의 부인이 무속에 심취했다는 소문까지 퍼뜨렸다. 한 라디오 방송에서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한 전 총리 부인은 서울신문 인터뷰에서 '살면서 고민이 많아 사주와 관상을 배웠다'고 한 발언이 있다"며 '무속 의혹'을 제기했다. 심지어 민주당 김민석 상임 공동선대위원장은 김문수를 "청빈한 삶을 추구하며 20억원 이상의 당비를 오랜 기간 꾸준히 내오다 합법적 경선 절차를 거쳐 선출된 후보"라고 칭송하기까지 했다. 국민의힘 내부의 분열을 조장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그런데 벌어진 반전. 국민의힘 내부 갈등 끝에 한덕수가 아닌 김문수가 최종 대선 후보로 확정되었다. 여기서부터 민주당의 시나리오는 삐걱거렸다.

김문수 후보를 파헤쳐보니 공격할 만한 약점이 거의 없었다. 오히려 그는 이재명 후보가 표방하는 이상적 정치인의 모습과 놀랍도록 유사했다. 경북 영천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서울대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이후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며 두 차례나 제적당했고, 노동 운동에 뛰어들어 피복공장 재단보조공으로 일하고 전국금속노조 한일도루코 노조위원장을 맡기까지 했다.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그는 노동·민주화 운동가에서 보수 정치인으로 변신한 독특한 궤적을 그렸다.

김문수 후보에 대한 몇 안 되는 논란거리였던 '119 사건'마저도 파헤쳐보니 오히려 미담이었다. 2011년, 그는 췌장암으로 투병 중이던 노동운동 1세대 최한배 씨를 문병한 자리에서 췌장암 환자였던 최 씨의 이송체계를 문의하고자 119에 전화를 걸었다. "나는 도지사 김문수입니다"라고 소개했지만, 당시 상황실에서는 총 8번에 걸친 통화시도를 장난 전화로 오인했다. 이 사건은 수차례 언론의 질타를 받았고 그의 '꼰대'이미지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지만, 김 후보는 자신의 친구가 위중한 상태였다는 사실이나 그를 돕기 위한 선의의 시도였음을 공개적으로 해명하지 않았다. 소방관들이 받을 비난을 걱정하고, 아픈 동지를 논란의 방패막이로 삼지 않겠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그의 동지는 결국 두 달 후 세상을 떠났다.

이러한 김문수의 태도는 이재명 후보 주변의 수많은 '의문사'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국민의힘 박수영 의원은 이재명 의원의 주변 또는 관련 인물 중 소위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 8명이나 된다고 주장했다. "과문한 탓인지 세계 정치인 주변 또는 관련 인물 중 이렇게 많은 극단적 선택이 있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고 말할 정도였다.

민주당은 지금 심각한 딜레마에 빠져 있다. 한덕수를 공격하기 위해 준비했던 전략은 무용지물이 되었고, 김문수라는 예상치 못한 후보에게는 통상적인 네거티브 전략이 효과를 발휘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민주당이 공개한 소위 김문수의 '망언집'마저도 그의 청백리 이미지를 훼손하기엔 역부족이다.

정치에서 네거티브 전략은 "상대 후보의 약점을 부각시켜 '공직후보자로 적합하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김문수에 대한 공격은 오히려 그의 이미지를 강화하는 역효과를 낳을 가능성이 높다.

한때 대한민국 정치에서 가장 치열한 이념적 대립각을 세웠고 같은 경기도지사를 역임한 두 인물, 김문수와 이재명이 대선에서 맞붙게 된 상황은 그 자체로 한국 정치사의 독특한 우화다. 민주당이 준비했던 각본은 뒤집어졌고, 이제 그들은 새로운 시나리오를 써야 한다.

그간 민주당과 민주당 지지자들은 이재명의 욕설도, 비리혐의도, 때론 거친 행동 조차 '어렵게 자라서 그래, 힘들게 살아서 그래' 이렇게 합리화하면서 이미지를 쌓았는데, 어찌보면 그를 훨씬 뛰어넘을 만큼 어렵고, 힘들게 살았음에도 도덕성과 인성에 관한한 한 점의 논란도 없이 '너보다 더한 환경도 견디었다.'고 일성을 남길만한 국민의 힘의 유일한 후보가 김문수가 아닐까?.

우연 속에 감춰진 필연이 있다면, 이 정치적 아이러니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고민에 빠지게 된다. 어쩌면 정치는 우리가 기획한 대로가 아니라, 가장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본질을 가진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흐름 앞에서 우리는 언제나 무력하다. 그리고 진보에게서 느껴지는 이 '참을 수 없는' 경솔함이 선거를 어디로 끌고 갈지가 나만의 이번 대선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관련기사'청렴'한 정약용에 자신을 빗댄 이재명
두려움에 떠는 승리자는 없다
정치는 이제 스포츠가 되었다
놀랄것 없다. 이건 시작일 뿐이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 투표
거대한 유아, 민주당T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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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렴'한 정약용에 자신을 빗댄 이재명
박주현 칼럼리스트
등록 2025-05-12

정약용을 빌린 정치인의 자기합리화
목민심서가 비추는 오늘의 아이러니

다산의 거울과 현대 정치인의 그림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어제 다산 정약용의 유배지 강진을 찾아 "정약용 선생의 18년 유배는 제가 당한 10년보다 길다"며 자신의 정치적 고난을 다산의 삶에 빗대었다. 역사적 위인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시도는 정치인들의 오래된 전술이지만, 때로는 그 선택이 의도치 않은 아이러니를 만들어낸다.

목민심서와 청렴의 가치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는 지방관이 백성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에 대한 철학적 지침서다. 그 핵심에는 '청렴'이라는 가치가 굳건히 자리하고 있다. "청렴은 목민관 본연의 자세이고, 모든 선한 일의 근원이며, 모든 덕의 근본"이라고 다산은 단언했다. 그에게 공직자의 청렴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다산은 『목민심서』에서 "목민관이 백성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가, 아니면 백성이 목민관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단호하게 답한다. "절대로 그렇지 않다. 목민관이 백성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18세기 조선의 관리가 던진 이 질문은 오늘날 우리 정치 현실에도 날카롭게 꽂힌다.

부패 혐의와 정치적 방어막

그런데 다산을 찬양한 정치인의 현실은 어떨까. 이재명 후보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뇌물,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부패방지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상태다. 대장동 개발 비리 사건으로 성남도시개발공사에 4,895억원의 손해를 끼친 배임 혐의, 성남FC 후원금 관련 제3자 뇌물죄 등 여러 혐의가 그를 향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다산이 『목민심서』에서 경계했던 바로 그 행위들-탐관오리의 횡포와 착취, 뇌물수수, 탐욕-이 현대적 형태로 변주되어 오늘날 정치인의 기소 내용으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시대는 바뀌었지만 권력자들의 유혹은 변하지 않았다.

당헌을 넘어 법률 개정과 자기보호의 아이러니

더욱 역설적인 것은 이재명 후보의 소속 정당이 그를 보호하기 위해 '기소시 직무정지' 조항을 삭제하는 당헌 개정을 단행했다는 사실이다. 또한 당헌 개정을 넘어 당선시 재판중지법, 허위사실 유포의 개정을 통해 '행위'를 삭제하려 시도하는 장면은, 다산이 『목민심서』에서 "스스로 직위를 구하지 않는 것"을 덕목으로 꼽았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현대의 정치 현실에서는 권력을 지키기 위해 제도마저 변형시키는 모습이 연출된다.

이재명의 측근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받을 때, 재판부는 이를 "뿌리 깊은 부패 고리"라고 표현했다. 다산이 "청렴하지 않고서 목민을 할 수 있었던 자는 일찌기 없었다"고 단언했던 것을 상기시키는 대목이다.

강진의 두 사람, 다른 유산

정약용이 강진에서 18년간의 유배 생활을 하며 『목민심서』를 집필할 때, 그가 상상했을 미래의 정치인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아마 다산은 자신의 글이 200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관련성을 가질 것이라는 사실에 씁쓸한 웃음을 지었을지도 모른다. 더 씁쓸한 것은 자신의 이름을 들어 자신이 그토록 비판했던 행태를 정당화하려는 시도를 목격했을 때의 표정일 것이다.

이재명 후보가 "정약용 선생은 편을 가르지 않고 소속한 집단을 넘어서 끊임없이 소통했다"고 칭송했지만, 정작 그가 간과한 것은 다산이 목민심서에서 강요한 내용중에 불행히도 소통은 없다. 가장 중요시했던 가치-청렴과 백성을 위한 봉사-였다. 그와 함께 애민, 근면, 애졸(부하 사랑), 예산(돈이 아니라 손님을 잘 다루는 법 지금으로 따지면 외교로 보면 될것이다.), 식견, 수신, 공정, 인재등용등이 주요골자인데, 목민심서만 한정해서 보면 이재명 후보의 전력에 비춰 하나도 도움이 안 될 내용들 뿐이다.

다산이 권력자들에게 가장 강조했던 메시지는 뜬금없는 21세기형 '소통과 통합'이 아니라, 모든 권력은 백성을 위해 존재한다는 근본적인 통찰이었다. 오늘날 강진을 찾는 정치인들이 다산의 유적지를 둘러보며 진정 배워야 할 것은, 정치적 위기 때 자신을 합리화하는 수사가 아니라, 권력을 가진 자가 지켜야 할 근본적인 도리다. 다산이 "목민관이 탐학질을 하면 탐관이고, 아전들이 부정한 행위를 하면 오리"라고 했던 단순하지만 강력한 진실을 말이다.

만약 다산이 오늘날의 정치 현실을 본다면, 아마 그는 『목민심서』의 원고지를 한 장 더 꺼내 이렇게 덧붙이지 않았을까. "정치인이여, 나의 이름을 빌리기 전에 나의 책을 먼저 읽으라."

거울과 그림자

역사는 단지 끌어다 쓰는 전시품이 아니라 비추어 보는 거울이다.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거울을 바꾸려 하지 말고, 자신의 행동을 바꾸는 것이 현명한 정치인의 자세일 것이다. 다산이 유배지에서 빛을 찾았다면, 오늘날의 정치인들은 그 빛에 비추어 자신의 그림자와 마주해야 할 시간이다.

청렴은 시대를 초월한 공직자의 기본 윤리이며, 목민심서는 그 길을 안내하는 나침반이다. 이재명 후보가 자신을 정약용에 빗대며 정치적 동지애를 구하려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비유는 가장 뼈아픈 대조를 드러내고 말았다. 다산의 청렴함과 나열하기도 힘들 만큼의 혐의를 받는 정치인의 모습 사이에 놓인 깊은 계곡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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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김문수는 진영의 덧없음을 우리보다 빨리 깨달았던 것 아닐까?
박주현 칼럼리스트
등록 2025-05-13

진보의 허상과 내 안의 편견
김문수와 이재명 사이에서

김문수를 향한 내 반감은 세월을 거스르는 일종의 거울이었다. 그가 노동운동가에서 보수 정치인으로 돌아선 것을 배신이라 불렀던 나는, 이재명이라는 인물을 지켜보며 서서히 깨달았다. 김문수는 그저 나보다 30년 먼저 진보의 허상을 본 사람일 뿐이었다.

김문수의 이름이 신문 지면에 나올 때마다 혀를 차며 페이지를 넘기던 버릇이 있었다. 손가락 끝에 묻어나는 인쇄잉크처럼 자연스러운 습관이었다. 그런데 그 습관이 사실은 불편한 진실에 대한 회피였다는 것, 그가 나보다 먼저 '진보의 허상'을 간파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기 위한 방어선이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는 세 번의 불면의 밤이 필요했다.

내가 진보정치에 품었던 믿음은 봄날의 모래성이었다. 파도가 밀려오자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나 역시 김문수를 만날 때마다 '보수'라는 이름표만 보았다. 이름표가 사람 전체를 대변하는 것처럼. 출근길 지하철에서 스치는 낯선 사람들의 얼굴을 단 한 번의 시선으로 판단하듯이. 그가 무슨 말을 하든, 어떤 행동을 하든, 그 이름표 너머를 보려 하지 않았다.

"풍요롭게 하는 것이 진보이지, 가난하게 하는 것이 진보인가. 가짜 진보를 확 찢어버리고 싶다."

김문수의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저녁 식사 도중 갑자기 누군가 테이블 위에 생선뼈를 뱉어놓은 것처럼 불편했다. 텔레비전 볼륨을 낮추고 싶었다. 방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또 시작이군.' 귀를 막고 눈을 감았다.

그 순간 이재명이라는 사람을 되새겨보면서, 그 생선뼈가 사실은 중요한 메시지를 담은 쪽지였음을 깨달았다. 잠자던 라디오가 갑자기 선명한 방송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잡음처럼 들리던 소리가 점점 또렷한 목소리로 변해갔다. 마치 외국영화의 자막이 갑자기 이해되기 시작하는 순간 같았다.

대장동 의혹, 위증교사 사건,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 이 단어들을 모아놓으면 한 편의 스릴러 영화 포스터가 된다. 그 주연배우가 이재명이었다. 노트북으로 뉴스를 보며 커피를 마시던 어느 아침, 비상계엄 당시 윤석열을 풍자하다가 무안공항 사고 직후 부적절한 글을 올렸던 장면이 떠올랐다. 커피잔을 내려놓으려는 순간, 손목시계의 유리는 이미 금이 가있었지만 무언가 바스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시계는 그대로였지만, 시간을 알려주던 내 신념의 도구가 더 이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진보라는 단어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불평등 해소와 약자 보호를 외치는 정치세력이 권력을 이용해 또 다른 기득권을 만들어내는 순간, 그 무게는 한없이 가벼워진다. 조국 사태가 그랬고, 안희정, 박원순, 김경수도 마찬가지였다. 결정적으로 이재명. '진보=선(善)'이라는 등식이 깨지는 순간들이 줄을 이었다. 윤미향의 이야기는 더 말할 필요조차 없다. 정의를 외치던 사람들이 정의를 훼손한 순간. 마치 1970년대 계급투쟁을 외치던 이들이 1990년대 재벌이 된 한국 현대사의 아이러니처럼, 정의의 배신은 순환하고 있었다.

김문수는 1970년대 노동운동가로 두 차례나 구속됐다. 한일도루코 노조위원장 시절과 인천 5·3 민주항쟁 과정에서였다. 노동운동의 전설이 1994년 보수정당에 입당했을 때, 많은 이들이 그를 배신자라 불렀다. 나 역시 그 합창에 목소리를 보탰다.

이제 생각해보면, 그는 단지 먼저 깨달았을 뿐이다. 진보정치가 구호와 달리 구조적 비리와 권력욕에 물들어가는 과정을 목격했고, 자신만의 개혁 방식을 찾아 떠난 것이리라. 물론 그의 극우적 성향과 거친 발언들은 여전히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그의 정치적 전향 자체에 대한 나의 비난은 거울 앞에 선 나를 향한 손가락질과 다르지 않았다.

우리는 언제부터 이런 행동을 눈감아주는 사회가 되었을까. 진보진영의 일원이라는 이유만으로, 비윤리적 행위와 위선을 용인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 그것이 과연 진정한 진보일까. 김문수는 아마 이런 질문을 30년 전에 이미 던졌을 것이다.

이재명을 지켜보며 느낀 불편함은, 잘못을 저질러도 진영 논리에 의해 보호받는 구조에 대한 것이었다. 이는 1970년대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맹목적 충성이 요구되던 시기와 묘하게 닮아 있다. 다만 과거에는 독재에 맞서는 정당한 이유가 있었지만, 지금은 단지 정치적 이익을 위해 그런 맹목성이 요구된다는 점이 다르다.

진정한 진보는 자기반성과 함께한다. 민주와 평등이라는 가치를 외치면서 내부적으로는 권위주의와 특권을 누리는 모순을 경계해야 한다. 대법원장 청문회를 앞두고 여야가 대립하는 상황도 마찬가지다. 법원의 독립성보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우선되는 현실이 과연 진보적인가.

대학 시절 철학책 첫 페이지에 형광펜으로 밑줄 그었던 쇼펜하우어의 구절이 떠올랐다. "모든 진리는 세 단계를 거친다. 처음에는 조롱당하고, 다음에는 격렬한 반대에 부딪히며, 마지막에는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형광펜 자국은 오래되어 바랬지만, 그 문장은 이제야 비로소 빛나기 시작했다. 그간 수많은 말과 글을 통해 진영의 벽을 넘어야 한다 외쳐왔지만, 깊은 내면에는 아직도 김문수에 대한 '진영의 색안경'이 늦은 밤 귀가길의 가로등처럼 희미하게 내 앞에 서 있었다. 나는 '진보'라는 단어에 너무 많은 소망을 담아두었던 것이다. 마치 작은 금고에 평생의 꿈을 모두 넣으려 한 것처럼.어쩌면 김문수는 진영의 덧없음을 우리보다 빨리 경험했던 것 아닐까? (AI이미지 생성)

이제 나는 안다. 내 안의 김문수 혐오는 사실 그가 나보다 먼저 깨달은 진실 때문이었다는 것을. 진보의 내로남불과 구조적 비리를 그는 먼저 보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대응했다. 그의 방식이 옳았는지는 역사가 판단할 문제지만, 적어도 그의 각성 자체를 비난할 자격이 나에게는 없다.

진보진영의 내로남불은 이제 너무 익숙한 풍경이 되었다.

정치적 성향과 무관하게 권력의 부패를 감시하고, 진영논리를 넘어서는 공동체 의식이 필요하다. 김문수와 이재명 사이에서 방황하던 나는 이제 깨닫는다. 중요한 것은 어떤 진영에 속하느냐가 아니라, 자신의 신념에 얼마나 정직하게 행동하느냐는 사실을.

나는 여전히 김문수의 모든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 사이에는 여전히 한강만큼이나 넓은 정치적 간극이 있다. 하지만 이제는 이해한다. 그가 말하는 '사필귀정(事必歸正)'과 '민주영생(民主永生)'이란 단어들이 단순한 보수 이데올로기의 포장지가 아니라, 그가 밟아온 인생의 흙먼지가 묻은 신발 같은 것임을.

어릴 적 좋아했던 책 '괴물들이 사는 나라'에서 주인공 맥스는 자신이 두려워하던 괴물들과 함께 지내며 그들을 이해하게 된다. 나 역시 그렇게 내가 '괴물'이라 여겼던 정치적 타자를 마주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역설적으로 내가 그토록 신봉했던 '진보'의 허상이 더 선명하게 보인다. 가장 무서운 괴물은 언제나 내 안에 있었던 것이다.

당신이 오랫동안 믿어왔던 것을 의심하는 순간은, 마치 추운 겨울날 따뜻한 이불을 박차고 나오는 것처럼 고통스럽다. 하지만 그 고통 이후에 찾아오는 맑은 공기의 상쾌함은 묘한 해방감을 준다. 내 안의 편견을 인정하는 일은 거울 앞에서 자신의 주름을 처음 발견하는 것만큼이나 충격적이었다. 그러나 그 인정을 통해, 나는 이제 이념의 포장지가 아닌 그 안에 담긴 내용물을 보려 한다. 진보든 보수든, 결국 우리가 마시는 것은 그 안에 담긴 음료니까.

때로는 가장 익숙한 적은 내가 만들어온 허상일 때가 많다는 놀라운 진실을 배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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