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인's post
SNU-Next 창간호에 실린 제 인터뷰 내용을 공유합니다 담당 연구원이 참 잘 정리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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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며 불안한 사회에서, 지속 가능한 성장을 다시 묻는다.
박상인 교수는 자신을 스스로 노동 전문가라고 소개하지 않는다. 그의 출발점은 산업조직론이다. 산업 구조와 혁신의 방식, 공정경쟁과 규제 같은 문제를 통해 경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연구해 온 학자다.
다만 그는 한국 경제의 구조를 살펴보는 과정에서, 이러한 논의가 노동의 문제와 불평등과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함께 보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산업이 어떻게 설계되어 있는지, 경쟁이 공정하게 작동하는지에 따라 사람들이 어떤 조건에서 일하게 되는지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 교수는 노동 문제를 따로 떼어내기보다, 산업 구조와 경제 구조 전반의 맥락 속에서 함께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노동의 불안이나 불평등, 지속가능성에 대한 논의 역시 이러한 구조적 조건과 분리해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왜 우리는 ‘지속하기 어려운 사회’에서 일하고 있다고 느낄까
많은 시민은 지금의 한국 사회를 ‘지속 가능하다’기보다 오히려 ‘지속하기 어려운 사회’로 느낀다. 박상인 교수는 그 이유를 개인의 불안감이나 심리적 요인에서 찾기보다, 경제 구조가 삶에 대한 예측 가능성을 충분히 제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특히 노동의 관점에서 보면 문제의 핵심은 분명해진다. 사람들이 한 직장에서 얼마나 오래 일할 수 있는지, 다시 말해 근속연수가 안정적으로 보장되지 않는 구조에 있다는 것이다. 근속연수가 짧아질수록 소득의 지속성은 약해지고, 노후 준비나 주거, 가족계획까지 함께 불확실해진다. 그 결과 개인은 자신의 삶 전체를 장기적으로 설계하기 어려워지고, 이러한 불확실성이 ‘이 사회는 과연 지속 가능한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박 교수는 이 불안을 이렇게 표현한다.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이 사회가 경제 생애에 대한 예측 가능성을 주지 못하기 때문에 생깁니다.”
열심히 일해도 노후 빈곤을 피할 수 있을지, 건강 문제나 갑작스러운 퇴직과 같은 위험 앞에서 자신의 삶이 큰 흔들림 없이 이어질 수 있을지 확신하기 어렵다는 점이 시민들이 체감하는 불안의 핵심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개인의 선택이나 태도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산업 구조와 경쟁 방식이 안정적인 노동 경로를 전제로 설계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그는 본다.
또 하나의 문제는, 이러한 구조적 원인이 시민들에게 충분히 설명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일반 시민들은 당장의 월급, 연금 고갈에 대한 뉴스, 주변 세대의 경험을 통해 불안을 체감하지만, 그 불안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까지 연결해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박 교수는 이 지점을 전문가와 언론의 역할로 짚는다. 구조적 원인을 설명하고 사회적 논의로 연결해야 할 주체들이 현 구조에서 이득을 누리는 기득권 집단과의 충돌을 우려해 그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시민들은 현상을 통해 불안을 느끼지만, 그 불안을 낳는 구조 자체를 인식하거나 바꾸는 데까지 나아가기 어려워진다.
그가 말하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라는 체감은, 바로 이처럼 경제 생애 전반에 대한 예측 가능성이 사라진 사회에서 축적된 경험의 결과다.
성장은 계속되었지만, 누구의 삶이 나아졌을까
“성장률이 나쁘지 않다는 말이, 노동의 조건이 좋아졌다는 뜻은 아닙니다.”
성장은 숫자로 기록된다. GDP 성장률, 취업자 수, 실업률 같은 지표는 경제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노동의 안정과 존엄은 이런 평균치 통계보다 삶의 체감으로 남는다.
박상인 교수는 “성장률이 나쁘지 않다”러는 평가가 곧바로 “노동의 조건이 좋아졌다”라는 뜻은 아니라고 말한다. GDP 성장률이나 실업률 같은 지표는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누가’ 어떤 방식으로 성장의 결과를 가져갔는지, 그리고 사회에 어떤 구조가 남았는지를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보기에 지속가능발전목표(SDGs)가 던지는 질문은 “얼마나 성장했는가”가 아니라, 성장이 어떤 경로로 만들어졌고 그 성과와 위험이 어떻게 배분되었는가에 가깝다.
그가 강조하는 단어는 ‘맥락’이다.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구조 개혁을 통해 체질을 바꾸기보다, 빠른 회복과 효율에 초점을 둔 성장 전략을 택했다.
2000년대의 중국 특수와 ICT 특수처럼 외부 환경이 우호적이었던 덕분에 성장은 가능했지만, 외환위기 극복과 회복 과정에서 산업이 독과점 구조로 굳어지고 대기업 중심의 전속 하청 관계가 강화됐다고 본다.
이 구조에서는 원청과 하청 사이의 수익률 격차가 커지고, 그 격차가 다시 임금·복지·안전망의 격차로 이어지기 쉽다. 성장은 이어졌지만, 그 성과가 사회 다수의 삶에서 체감되지 못한 이유를 박 교수는 이러한 구조적 경로에서 찾는다.
일본·독일은 무엇이 달랐을까 – 성장의 ‘맥락’을 비교하다
박상인 교수는 한국 경제를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가장 경계해야 할 점으로 ‘맥락 없는 비교’를 꼽는다. 단순히 성장률이 더 높거나 실업률이 더 낮다는 수치만으로는 노동의 조건이나 불평등의 정도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독일 사례를 언급한다. 독일은 산별 교섭이 강하게 작동하는 구조로 되어 있어, 같은 일을 하는 노동자라면 기업 규모가 달라도 임금과 노동조건의 격차가 과도하게 벌어지지 않도록 조정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 임금 차이가 존재하더라도, 이는 하청 구조를 통한 비용 전가라기보다 지역과 생활비 차이를 반영한 결과에 가깝다. 그 결과 생활 수준의 격차는 상대적으로 완화된다.
일본과 서유럽의 경험은 또 다른 교훈을 준다. 이들 국가 역시 과거에는 ‘내셔널 챔피언’을 키우는 발전 전략을 통해 성장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대기업이 기득권으로 굳어지고 새로운 산업의 등장이 어려워지는 문제가 나타났다. 박 교수는 한국의 경우 이들 국가들과 유사하게 새로운 산업의 등장이 어렵다는 문제에 더해 독과점 구조, 전속 하청, 비정규직 확산이 결합하면서, 성장의 성과가 사회 전반으로 확산하기보다 격차로 더 강하게 고착됐다고 설명한다. 이 비교의 핵심은 “어느 나라가 더 잘했다”라는 평가가 아니다. 성장의 성과와 위험이 어떤 구조를 통해 이루어졌고, 그 구조가 노동과 삶의 조건에 어떤 차이를 만들어냈는지를 보라는 것이다.
‘좋은 일자리( Decent Work)’란 무엇인가
취업자 수는 증가했지만, 그 일자리가 삶을 지탱할 만큼 충분히 ‘좋은 일자리’인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박상인 교수는 ‘좋은 일자리’를 하나의 조건으로 정의하기보다, 삶 전체를 지탱할 수 있는 경로를 제공하는 일자리로 설명한다.
“Decent 한 일자리는 특별히 좋은 직장이 아니라, 어떤 일을 하더라도 인간다운 대우를 받는 상태를 말합니다.”
임금이 높거나 고용 상태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일이 소득의 지속성, 노후와 위험에 대한 대비, 삶의 다음 단계로 이어질 수 있는 안정성을 함께 제공하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 사회에서 ‘좋은 일자리’ 논의가 임금 수준이나 정규직 여부 같은 단일 기준에 지나치게 집중됐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실제로 중요한 것은 그 일자리가 개인의 삶을 장기적으로 설계할 수 있게 해주는지 아닌지다.
지금의 노동 환경에서는 이러한 조건을 충족하는 일자리가 일부 대기업이나 공공 부문에 집중되어 있고, 다수의 노동자가 속한 중소기업이나 하청 구조에서는 임금뿐 아니라 안전과 복지, 전망까지 함께 취약해지기 쉽다.
그 결과 ‘좋은 일자리’는 사회 전체의 기준이 아니라, 소수만 접근할 수 있는 예외처럼 인식되고 있다.그는 SDGs가 말하는 ‘Decent Work’를 단순히 고용의 양을 늘리는 목표가 아니라, 대다수의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일자리가 삶을 유지하고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는지를 묻는 기준으로 해석한다.
노동을 통해 ‘지속 가능한 NEXT’를 그릴 수 있으려면
박상인 교수는 청년들이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망설이게 되는 현실을 개인의 소극성이나 눈높이 문제로 보지 않는다. 지금의 노동 환경이 노동을 통해 미래를 그릴 수 있다는 신호를 충분히 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많은 청년이 느끼는 불안의 핵심은 “열심히 일하면 괜찮아질 수 있는가”에 대한 확신이 사라졌다는 데 있다. 취업하더라도 그 일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삶의 다음 단계로 이어질 수 있을지, 노후까지 안정적으로 연결될 수 있을지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노동은 더 이상 희망의 경로로 인식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청년들은 자연스럽게 위험을 회피하는 선택을 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정년이 보장되거나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소수의 직종에 과도하게 몰리거나, 아니면 노동시장 안팎에서 계속 대기하며 다음 선택을 미루게 된다. 이는 개인의 판단이라기보다, 현재의 노동 구조가 만들어낸 합리적인 반응에 가깝다고 그는 본다.
그가 보기에 지금 바꿔야 할 노동의 모습은 ‘더 열심히 일하라’는 요구가 아니라, 노동이 다시 삶의 장기적 경로로 작동할 수 있도록 만드는 조건이라고 말한다. 일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그 노동이 축적되고 다음 단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신뢰가 있을 때, 노동은 불안의 원인이 아니라 미래를 설계하는 기반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박 교수가 말하는 ‘지속 가능한 NEXT’란, 특정 세대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미래가 아니라 노동을 통해 오늘과 내일이 연결된다고 믿을 수 있는 사회이다.
불안을 개인의 문제로 남겨두지 않기 위해
박상인 교수는 지금의 문제를 거창한 사명감이나 도덕적 당위로 접근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다만 눈앞의 개인적 이익만을 좇는 선택이 결국은 사회 전체를 약화시키고, 그 결과가 다시 개인에게 돌아온다는 점은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청년들의 불안, 노동의 불안정, 지속 가능하지 않은 구조를 외면한 채 각자도생을 택하면, 그 사회는 결국 누구에게도 안전하지 않은 사회가 된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사회를 위해서’이기 이전에,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필요한 선택이라는 설명이다.
박 교수는 특히 학생들이 이 사실을 먼저 인식하고, 문제를 개인의 무능이나 불안으로만 받아들이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사회 구조의 문제를 이해하고, “이건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기 시작하는 지점에서 비로소 변화의 가능성도 함께 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불안을 질문으로 연결하는 매개가 되기를
SNU NEXT가 지식을 전달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지금 우리가 어떤 사회에 살고 있는지 함께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매개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학생과 시민, 연구자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느끼는 불안을 개인의 문제로만 남겨두지 않고, 서로의 언어로 연결해 보는 자리가 되었으면 한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문제를 함께 인식하고, 연대의 가능성을 상상해 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그는 덧붙인다. 큰 충격이 오기 전에, 지금의 불안을 출발점으로 삼아 조금이라도 더 지속 가능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도록 말이다.
<Side box : 편집자 노트>
유니콘 기업이 늘어나면, 산업은 정말 달라질까
“유니콘의 개수보다 중요한 것은, 그 성장이 지속 가능한 산업 구조로 이어지고 있는냐는 질문이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자주 언급되는 ‘유니콘 기업’ 담론에 대해 박상인 교수는 다른 관점에서 접근한다. 유니콘 기업의 수는 일반적으로 한 국가의 혁신 역량이나 창업 환경을 보여주는 지표로 활용된다. 기업가치 1조 원을 넘는 비상장 스타트업이 많다는 사실은 투자와 창업 활동이 활발하다는 신호로 해석되기 쉽다. 그러나 그는 유니콘 기업의 숫자만으로 산업의 구조적 변화를 판단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한다.
그가 주목하는 지점은 유니콘 기업이 시장에 진입한 이후의 성장 경로다. 새로운 기업이 등장하더라도, 그 성장이 기존 대기업 중심의 거래 관계나 인수합병 구조 안으로 편입된다면 산업의 기본적인 질서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외형상 기업의 수는 증가하지만, 산업 구조 자체는 기존 체계가 유지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유니콘 기업은 산업의 전환을 이끄는 주체라기보다, 기존 산업 구조를 보완하는 역할에 머무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그는 분석한다. 혁신이 새로운 시장 질서를 형성하기보다는, 기존 기업의 사업 확장이나 전략적 선택지로 흡수되는 경로가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유니콘 담론에서 중요한 질문은 기업의 수가 아니라, 그 기업들이 산업 구조에 어떤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는지에 있다. 새로운 기업의 등장이 시장 진입과 경쟁을 촉진하고 기존 산업의 질서를 재편하는 방향으로 작동하는지, 혹은 기존 구조 안에서 조정·흡수되는 데 그치고 있는지를 구분해 볼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유니콘 기업은 혁신의 성과라기보다, 현재 산업 구조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로 해석된다. 유니콘 기업이 증가했다는 사실만으로 산업의 지속가능성을 판단하기는 어렵고, 그 성장 과정과 구조적 위치를 함께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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