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3-12
09 [인터뷰] <한국진보세력 연구> 펴낸 南時旭 前 문화일보 사장 : 월간조선
[인터뷰] <한국진보세력 연구> 펴낸 南時旭 前 문화일보 사장 : 월간조선
[인터뷰] <한국진보세력 연구> 펴낸 南時旭 前 문화일보 사장
“1980년대 좌파세력의 뿌리는 남로당과 빨치산”
배진영
“권위주의 정권, 급진 혁명세력이 사회민주주의 등장 가로막아”
⊙ “李承晩, 趙素昻의 사회당 창당대회 참석, 축사”
⊙ “빈곤·소외·환경 등 인류의 근본문제 남아 있는 한 진보의 가치는 여전히 유효”
⊙ “한국 진보세력의 변화는 북한의 변화와 맞물려서 진행될 것”
南時旭
⊙ 1938년 경북 의성 출생.
⊙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서울대 대학원 외교학 석사.
⊙ 동아일보 정치부장·편집국장·논설실장·상무이사,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회장,
문화일보 사장 역임.
⊙ 現 고려대 석좌교수, 세종대 언론홍보대학원 석좌교수.
⊙ 저서: <항변의 계절> <체험적 기자론> <인터넷 시대의 취재와 보도> <한국보수세력연구>
<한국진보세력연구>.
⊙ 수상: 위암 장지연상, 임승준자유언론상, 인촌상 등.
취재지원 : 李根平 月刊朝鮮 인턴기자
1948년 12월 1일 서울 YMCA 강당에서 독립운동가 趙素昻(조소앙)을 당수로 하는 사회당 창당대회가 열렸다. 사회당은 창당선언에서 공산주의를 ‘무산계급 독재’로, 자본주의를 ‘日帝(일제)의 엄호 아래서 성장 발전되어 자산계급의 특권을 연장하는 것’으로 규정하는 한편, “일체 민족진영과 보조를 같이하여 현실을 통하여 대한민국의 자주독립과 남북통일을 완성하고 정치·경제·교육상 완전 평등한 균등사회 건설에 일로 매진할 것”을 선언했다.
이 창당대회에는 李承晩(이승만) 대통령도 참석했다. 이 대통령은 축사를 통해 “공산당과 싸우는 나라에서는 사회당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우익 정당 일색인 마당에 사회당이 생긴다니 반갑고, 더구나 조소앙 선생이 이 당을 한다니 반갑다”고 말했다.
조소앙은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잘만 됐으면 우리나라에서도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인정하고 공산주의는 배격하면서 평등과 분배를 기치로 내건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보수정당과 善意(선의)의 경쟁을 벌이는 모습이 전개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후의 한국현대사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됐다. 영국의 노동당이나 독일의 사회민주당처럼 사회민주주의 혹은 민주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정당은 이 땅에서 발을 붙이지 못했다. 그들의 자리를 대신 차지한 것은 세습독재와 기아, 인권유린으로 얼룩진 金正日(김정일)집단을 추종하는 主思派(주사파)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린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추구하는 철 지난 국가사회주의자들이었다. 왜 이런 왜곡현상이 벌어진 것일까?
南時旭(남시욱) 전 문화일보 사장이 최근 펴낸 <한국진보세력 연구>는 이런 의문에서 출발한 책이다. 그는 광복 직후 출현한 건국준비위원회(건준)와 조선공산당에서부터 시작해 지난 60여 년간 명멸했던 사회주의 정당들과 좌파 단체들, 金大中·盧武鉉(김대중·노무현) 정권의 좌파정책들을 두루 살피면서 “1980년대 신군부 통치시기에 싹이 돋은 좌파 학생운동권의 혁명적 열기가 모든 이성적 토론을 집어삼키면서 이미 1920년대부터 싹이 튼 한국의 온건한 사회민주주의 운동도 사라져 갔다”고 지적한다.
‘진보’라는 용어의 참 뜻
남 전 사장은 지난 2005년에는 <한국보수세력 연구>를 펴냈다. 이 책에서 그는 舊韓末(구한말) 발간된 <漢城旬報(한성순보)>에서부터 舊(구) 소련 기밀문서, 근래에 나온 뉴라이트 관련 논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자료를 종횡으로 섭렵하면서 우리나라 보수주의의 뿌리를 구한말 개화파에서 찾았다. 이번에 나온 <한국진보세력 연구>는 그 책의 후속편인 셈이다. 남 전 사장이 말하는 <한국진보세력 연구>의 집필 동기다.
“2005년 <한국보수세력 연구>를 펴냈는데, 보수라는 개념은 진보를 전제로 한 상대적인 개념 아닙니까? 우리나라의 경우, 1920년대부터 사회주의 사상이 들어왔고, 민족주의 진영에서도 사회주의가 유행했었습니다. 때문에 ‘보수에 대한 연구뿐 아니라, 진보에 대한 연구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주변 분들도 ‘진보세력에 관한 책도 써 보라’고 권했어요.”
하지만 <한국진보세력 연구>라는 책의 제목이 마음에 걸린다. 김일성주의, 스탈린주의의 아류들이 주류를 이루는 한국의 좌파세력들을 ‘진보세력’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들의 실체와도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용어싸움에서 한 수 접어 주고 들어가는 셈이기 때문이다. 종전에는 무의식적으로 ‘진보’라는 표현을 해 오던 언론에서도 근래 들어서는 ‘좌파’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 점을 지적하자 남 전 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정부 수립 이후 사회민주주의 경향의 정당까지도 일반 국민들로부터 기피대상이 됐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유당~5공 시절까지는 혁신, 그 이후에는 진보라는 말이 널리 쓰였습니다.
하지만 진보라는 말이 그동안 전혀 없던 것은 아니에요. 예컨대 1950년대 후반, 曺奉岩(조봉암)은 진보당을 만들었습니다. 1945년 9월 후일 한국민주당을 창당하게 되는 宋鎭禹(송진우) 등은 呂運亨(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에 대항하기 위한 국민대회 창설준비위원회를 만들었는데, 그 강령을 보면 ‘(향후의 한국정치를 위해) 보수·진보 두 갈래의 정당을 만들어 민주주의 방식에 의한 정당정치를 실현한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그는 “미국의 집권당인 민주당 일각에서도 최근 스스로를 가리키는 말로 ‘리버럴’이라는 말 대신 ‘프로그레시브(진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레이건 이래 보수세력이 장기간 집권하면서 미국 민주당 사람들이 내세웠던 ‘리버럴’이라는 말은 조롱의 대상이 됐어요. ‘리버럴=정부 지출 자유주의’라는 식으로 말이죠. ‘큰 정부 만들고 돈 마구 쓰자는 것이 리버럴’이라는 비아냥거림이죠. 그래서 민주당 사람들은 ‘리버럴’ 대신 ‘프로그레시브(진보)’를 내세우기 시작했어요. 미국의 ‘新(신)민주당’이라는 것이 바로 ‘진보’를 핵심으로 합니다. 당내에 진보정책연구소를 만들고, 오바마가 그것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한국의 진보세력은 ‘낡은 진보’ 내지 守舊”
<한국진보세력연구>.
―하지만 보수·진보라는 표현보다는 좌·우파라는 표현이 사회과학적으로 더 정확한 표현 아닐까요.
“보수·진보라는 것은 사상적인 좌표를 말하는 좌·우와는 다른 개념입니다. ‘좌다, 우다’하는 것도 사실 상대적 개념이죠. 객관적으로 쓰려면, 사회주의·자본주의라고 써야겠죠.
역사적으로 봐서 진보라는 개념은 마르크스가 헤겔의 변증법을 유물론에 적용하면서 탄생한 겁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필연적으로 사회주의를 거쳐 공산주의 사회로 나간다’는 것이었죠. 하지만 그러한 유물론적 진보사관은 1990년대 초 소련의 붕괴로 완전히 끝나버렸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우리는 ‘낡은 진보’라고 부릅니다.”
남 전 사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라는 개념은 여전히 유용하다”고 말했다.
“‘진보’는 ‘좌파’보다 넓은 개념이에요. 옛날의 진보가 ‘자본주의 국가를 부수고,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자’는 것이었다면, ‘새로운 진보’는 제도권 사회 안에서 ‘어떻게 하면 인간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사상입니다.
아무리 경제발전이 이룩되어 풍요한 사회가 되고 사회복지가 확대되더라도 빈곤·노령·소외·착취·억압·환경오염·생태계 파괴 등으로부터의 인간해방이라는 인류의 근본문제는 여전히 남습니다. 당장 우리 사회만 해도 실업자·비정규직·워킹 푸어(working poor·열심히 일하지만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계층) 등의 문제를 안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 한, 진보사상은 소멸되지 않을 것입니다. ‘새로운 진보’는 사회주의뿐 아니라 ‘이 세상을 좋은 방향으로 바꾸어보자’는 생각은 다 포괄합니다.”
남 전 사장은 “대처나 레이건이 ‘보수의 元祖(원조)’처럼 돼 있지만, 그들보다 더 보수적인 입장에서 볼 때 그들은 ‘진보적’일 수 있다. 누구를 ‘진보다, 보수다’하는 것은 항상 상대적인 개념”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소위 한국의 진보세력들은 여전히 자본주의 타도를 주장하고, 북한 인권문제 등에는 침묵하는 수준의 세력입니다. 그들을 과연 ‘진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것이 바로 ‘낡은 진보’죠. 그들은 북한 정권을 추종하고, 북한의 인권탄압에 대해서는 침묵함으로써 아주 守舊的(수구적)인 모습이 돼 버렸습니다. 그런 세력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이미 국민들로부터 버림을 받았다고 봐야죠. 민노당의 지지율이 추락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시회민주주의의 선구자 조소앙과 이동화
사회당을 창당했던 독립운동가 趙素昻 선생.
<한국진보세력 연구>에는 광복 후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부터 시작해 크고 작은 좌파 정당, 1980년대 이후의 급진좌파단체, 2000여 명에 달하는 좌파인사들의 이름이 등장한다. ‘진보세력을 통해 본 한국현대사’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이들 가운데는 진보당이나 통일사회당 등 예외도 없지 않지만, 대부분은 남 전 사장도 지적하듯이 ‘남한에 인민정권을 세우고 궁극적으로는 공산사회를 이룩하려는’ 세력들이었다. 영국의 노동당이나 독일의 사회민주당 같은 건강한 사회민주주의 세력은 찾기 힘들다.
우리나라에는 사회민주주의의 전통은 없었던 것일까? 있었다면 그들은 왜 사라져 버린 것일까?
남 전 사장은 우리나라 사회민주주의의 선구자로 이 기사 첫머리에서 언급한 조소앙을 꼽았다.
“조소앙 선생은 1920년대에 혁명 초기의 소련을 방문했고, 유럽 사회민주주의 정당 지도자들과도 만났기 때문에 공산주의는 안된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았습니다. 일제시대에는 三均主義(삼균주의: 정치·경제·교육에서 균등한 권리를 보장할 것을 내용으로 하는 조소앙의 독립운동 및 건국 방략)로 자신의 사상을 정리했죠.
조소앙 선생은 1948년 남북협상 당시 金九(김구) 선생과 함께 북한에 다녀왔지만, 그 후 김구 선생과 손을 끊었습니다. 그리고 그해 말 사회당을 만들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사회당 창당대회에 참석해서 ‘공산주의와 싸우는 국가에서는 반드시 사회당이 있어야 한다’며 축하해 주었죠. 이런 걸 보면 이승만 대통령은 일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형편없는 수구가 아니라 굉장히 식견이 있는 분이에요.”
남 전 사장은 우리 현대사에서 기억할 만한 사회민주주의자로 李東華(이동화·전 대중당 대표최고위원 권한대행)를 꼽았다.
“이동화는 동경제대 정치학과를 나온 우수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프랑크푸르트 선언(1951년 사회주의인터내셔널대회에서 영국 노동당과 독일 사회민주당 등이 주동이 되어 채택한 선언. 정식명칭은 ‘민주사회주의의 목적과 임무’로 동구 공산주의와의 차별성을 강조)의 영향을 받아 아주 반공적인 사회민주주의자였습니다. 사실 유럽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은 反(반)스탈린적·반공적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그렇지 않기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광주사태 이후 혁명적 좌파 등장
빨치산 출신 경제학자로 운동권에 많은 영향을 준 朴玄埰 전 조선대 교수.
하지만 조소앙에서 이동화로 이어진 사회민주주의의 전통은 결국 우리 정치사에서 사라졌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남시욱 전 사장의 말이다.
“결국 朴正熙(박정희) 대통령의 권위주의 정치, 全斗煥(전두환)의 신군부 정권과 같은 시대적 영향으로 인해 사회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발전할 수 없었던 거죠. 광주사태를 겪은 당시 시대상황 속에서 사회민주주의는 너무 온건하거나, 심지어 정권에 협조적인 세력으로 비쳤습니다. 그래서 국민들로부터 외면을 받은 것이죠.
오늘에 이르기까지 활동하는 좌파진영 인물들은 광주사태 직후부터 비밀서클을 만들고 지하에서 투쟁하던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혁명적입니다. 그때는 바야흐로 레닌의 시대였어요. 일부는 金日成(김일성)을 존경하기도 했죠. 거기에서 PD(민중민주)파, NL(민족해방)파가 생겨났습니다.”
한때 ‘반공을 國是(국시)의 제1의’로 삼았던 나라에서 그런 ‘빨갱이’들이 어디서 나타났을까. 남 전 사장은 그들의 뿌리를 광복 후 활동했던 남로당과 빨치산, 북한에서 찾는다. 광복 후에 활동한 남로당 계열, 심지어 빨치산 출신 인물들이 얼마 전까지 좌파 진영에서 상당한 역할을 했으며, 1980년대 이후 급진좌파세력의 혁명적 열기 뒤에는 1960년대 초반부터 줄기차게 전개된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지원이 있었다는 것이다.
‘남로당, 빨치산 출신자들과 이후 운동권 간에 직접적으로 人的(인적)인 연결고리가 있느냐’는 질문에, 남 전 사장은 단호하게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는 그 예로 朴玄埰(박현채) 전 조선대 교수와 李鍾麟(이종린) 범민련(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명예의장을 예로 들었다.
“민족경제론과 사회구성체 이론으로 1960~80년대 지식인들과 운동권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던 박현채는 중학생 시절 남로당의 비밀 외곽조직인 민애청(조선민주애국청년동맹)의 세포총책으로 활동하다 1950년 10월, 16세의 나이로 산에 들어가 1952년 8월까지 빨치산으로 활동했습니다.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에 나오는 ‘위대한 戰士(전사) 조원제’의 모델이 바로 박현채입니다. 빨치산 활동 중 복부관통상을 입고 하산하다가 경찰에 체포됐던 그는 석방 후 서울대를 졸업하고 한국농업문제연구회 간사, 서울대 강사 등으로 일하면서 박정희 정권의 수출주도형·외자의존 경제정책을 비판한 <민족경제론>을 써서 이름을 날렸습니다.
1964년 제1차 인혁당 사건, 1979년 통혁당 재건위 사건 등에 연루되어 투옥되기도 했던 그는 1970년대 초반까지도 월남에서와 같은 유격전에 의한 통일투쟁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박현채와 함께 통혁당 재건위 등 지하운동을 벌인 임동규는 ‘박현채가 당시에 학생·노동·농민·여성 등 각 분야의 운동 책임자들에게 투쟁방향을 지도함으로써 남한 변혁운동에 보이지 않는 사령탑 역할을 했다’고 증언한 바 있습니다.
1990년대 이후 소위 통일운동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해 온 이종린은 광복 후 좌익청년단체인 민청(조선민주청년동맹)과 남로당에 가입해 활동했고, 4·19 후에는 민자통(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 중앙상임위원을 지내다가 5·16 후 다시 투옥됐던 인물입니다.”
“민노당은 1940년대 남로당 같아”
1970~80년대 민주화운동 과정에 등장한 ‘진보인사’ 가운데 일부는 정치권으로 진출해 아직까지도 활동하고 있다. 諸廷坵(제정구·전 국회의원·작고)·李富榮(이부영·전 열린우리당 당의장)·李在五(이재오)·張琪杓(장기표)·金槿泰(김근태·전 열린우리당 당의장)씨 등이 그들이다. 남 전 사장은 이들을 진보세력 신세대 1기로 분류한다. 이들은 사회주의를 얼마나 깊게 받아들였을까. 남 전 사장의 말이다. “1980년대 중반 <실천문학> 좌담회에서였어요. 앞에서 언급한 인사 가운데 한 명이 그 자리에서 ‘민중혁명을 해서 완전한 변혁을 이루자’고 주장했어요. 700만 노동자, 800만 농민이 주된 세력이 되고, 학생·인텔리가 보조세력이 돼 민중혁명을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은 미국에 종속돼 있고, 정통성이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습니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운동권에 다양한 이념적 분파가 존재했었다. 심지어 트로츠키주의자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운동권의 주류를 장악한 것은 NL 주사파였다. NL세력이 우리 사회 좌파 세력의 주류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디 있을까? 남 전 사장은 그 이유를 1980년 광주사태에서 찾았다.
“광주사태는 反美(반미) 자주화를 주장하는 NL파의 주장을 정당화시켜줬습니다. ‘신군부가 광주를 피바다로 만들었는데, 작전권을 가진 미국이 승인해 주지 않았다면 그것이 가능했겠느냐’는 논리였죠. 이를 통해 NL파는 민족해방의 논리를 젊은이에게 침투시킬 수 있었던 거죠.”
남 전 사장은 “초기 학생운동의 주류를 형성했던 PD파는 소련권 붕괴와 함께 몰락했지만, ‘민족해방과 통일 문제는 사회주의의 내재적 모순과는 별개 문제’라고 보는 NL파는 그 후에도 살아남았다”고 말했다.
북한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NL파가 여전히 목소리를 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남 전 사장은 “소위 내재적 접근으로 북한을 동정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빈궁하고 어려운 것은 미국의 봉쇄정책 때문이라는 것이죠. 그것을 이론화한 이론가도 있었고,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그런 이론가들을 등용하기도 했습니다.”
2008년 2월 3일 민노당 임시전당대회장 앞에서 평등파 당원들(왼쪽)과 자주파 당원들(오른쪽)이 선전전을 벌이고 있다.
“민노당은 제도권 안에 만들어진 북한의 교두보”
―NL파의 주장이 젊은 세대에게 계속 먹혀 들어갈까요.
“지금 대학생 세대는 다르겠지요. 그들은 실용주의자입니다. 문제는 386세대죠.”
NL 주사파는 일찍부터 정계·시민운동·법조·언론·출판·문화예술계 등 사회 각 부문으로 진출하는 것을 적극 장려했다. 정치권에서 그들의 교두보 역할을 하는 것은 민주노동당이다.
남 전 사장은 “전국연합(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과 민노총 출신들이 만든 민노당은 처음에는 PD파(평등파)가 주도했지만, 나중에 NL파(자주파)가 주도권을 잡았다”고 말했다.
“나중에 진보신당을 만든 평등파 사람들은 ‘민노당은 대한민국의 정당이라기보다, 대한민국 제도권 안에 설치된 북한의 교두보처럼 행동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민노당 내 從北(종북)주의자들의 의식은 지금도 1980년대의 반미투쟁, 수정주의 역사관, 종속이론에 머물러 있어요. 조금 더 심하게 말하면 1940년대 후반 남로당과 생각이 같아요.”
남 전 사장은 “그러다 보니까, 제17대 국회에서 10석이었던 의석이 지난번 선거에서 5석으로 줄게 된 거 아니냐”면서 “민노당은 발전된 서구민주주의 국가의 사회민주주의 정당처럼 國政(국정) 파트너로서의 진보세력, 좌파세력이 될 수 없는 세력”이라고 못박았다.
사회민주주의연대를 만든 周大煥 전 민노당 정책위원장.
민노당의 종북주의는 내부에서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 결국 작년 총선을 앞두고 종북주의 청산안건이 전당대회에서 부결되자 평등파는 민노당을 탈당했다. 이들 가운데 沈相女丁(심상정)·魯會燦(노회찬) 전 의원은 진보신당을 창당했고, 周大煥(주대환) 전 민노당 정책위원장은 사회민주주의연대를 만들었다.
―진보신당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진보신당의 정강정책을 보면 민노당 강령에 나오는 ‘사회주의적 이상과 원칙을 계승 발전시켜 새로운 해방공동체를 구현한다’는 식의 표현은 빠졌지만, ‘인류 역사의 다양한 진보운동을 계승한다’거나 ‘남과 북 양 체제를 지양하는 진보적 통일’ 같은 애매한 표현이 있어요.
진보신당은 올 3월 개정한 강령을 보면 폐쇄적 민족주의를 탈피하려는 노력이 보여요. 하지만 여전히 자본주의는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지금은 지식정보화 시대입니다. 자본이 생산의 주된 요소였던 애덤 스미스나 마르크스 시절과는 많이 달라졌는데도 여전히 그런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은 문제입니다.”
―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대표가 쓴 <대한민국을 사색하다>를 읽었더니, 대한민국의 정통성이나 성취를 긍정하고 있더군요.
“주대환 대표는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경제발전을 인정하면서 서구식 사회민주주의로 나아가자는 운동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그밖에 진보 이론을 가지고 각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새로운 싹이 보이고 있는 거죠.”
―하지만 주대환 대표의 책을 보면 아직도 경쟁이나 세계화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더군요.
“세계화는 엄연한 현실입니다. 따라서 진보세력에도 세계화 시대의 치열한 경쟁 아래서 국가를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에 대한 전략이 있어야 합니다. 성장 전략과 분배 전략이 동시에 필요한 거죠. 영국의 토니 블레어, 독일의 슈뢰더처럼 우리의 진보도 과감하게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중도좌경 정권”
―김대중 정권은 진보정권이었다고 보십니까.
“김대중씨가 앤서니 기든스의 <제3의 길>에 동의한 것을 보면 그는 중도좌파입니다. 무조건적 복지 대신 ‘생산적 복지’를 주장했던 것을 보면 다분히 대처리즘의 영향을 받은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러면서도 김대중씨는 對北(대북)관계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親北的(친북적)인 자세를 보였습니다. ‘북한에 무슨 약점을 잡힌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김대중씨는 ‘중도좌경’ 정도였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노무현 정권은 어떻습니까.
“노무현씨는 스스로 좌파 자유주의라고 말한 적이 있지만, 그건 말이 안되는 얘기고 ‘중도좌경’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노무현 정권이 좌파진보 정권이었다면 한미 FTA를 추진하지는 않았겠지요.”
1979년 대처 집권 이래 18년간 야당이었던 영국 노동당은 ‘제3의 길’ ‘신노동당’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1997년 정권을 탈환했다. 이는 교조주의적인 사회주의 이념을 고집하다가는 만년 야당 신세를 면할 수 없다는 自省(자성)의 결과였다. 결국 보수세력이 잘해야 반대편에 있는 진보세력도 자극을 받아 스스로를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다는 얘기겠다.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된 진보세력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은 보수세력에도 잘못이 있는 것 아닙니까. 보수세력이 잘하지 못하니까 진보세력은 스스로를 개혁하기보다는 ‘보수 흠집 내기’로 그럭저럭 연명해 가는 것 아닌가요.
“맞습니다. 보수세력의 잘못이 큽니다. 자기가 지킬 가치를 지키면서 온건하고 신중하게 개혁을 해 나가는 것이 보수인데, 우리나라의 보수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李明博(이명박) 정부를 보십시오. 강부자 내각이니 뭐니 하면서 초반부터 얕보인 거 아닙니까.”
―스스로를 중도실용이라고 강조하는 것을 보면,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을 보수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강남좌파식 사고방식을 가진 건 아닐까요?
“知的(지적) 허영이죠. 이명박 대통령이야 절대로 공산주의자가 될 수 없는 사람이지만, 확고한 소신이 없어서 그래요. 자꾸 대중영합이나 하고 있고. 그리고 주변 참모들 가운데는 좌파적 사고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실용주의를 강조하는 것도 이상한 얘기예요. 실용주의는 대개가 좌파가 우경화할 때 하는 소리거든요.”
“한국 진보세력의 변화는 북한의 변화와 맞물려서 진행될 것”
남 전 사장은 <한국진보세력 연구>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현재 기로에 서 있는 한국의 진보세력은 더 이상 사회주의 사회의 도래를 꿈꾸는 낡은 진보사관이나 어떤 통일이라도 좋다는 식의 맹목적 민족지상주의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대적 조류에 적응할 수 있도록 거듭 태어나지 않으면 안된다”고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얘기일까?
그는 “한국 진보세력의 변화는 북한의 변화와 맞물려서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일이 정치무대에서 사라지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좌파는 상당한 영향을 받을 겁니다. 김일성-김정일 정통론이 끝나는 셈이니까요. 북한에 실용주의적인 중국식 개혁개방 정권이 들어선다면 당연히 우리나라의 좌파도 달라지겠죠. 시간이 걸리겠지만, 지금부터라도 진보 지식인, 운동가들이 노력하면 우리나라 진보도 달라지지 않을까요.”⊙
사진 : 서경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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