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07

알라딘: [전자책] 공터에서

알라딘: [전자책] 공터에서
[eBook] 공터에서
김훈 (지은이)해냄2017-02-01

























































































7.0100자평(154)리뷰(87)




제공 파일 : ePub(28.38 MB)
TTS 여부 : 지원

종이책 페이지수 356쪽, 약 16만자, 약 4만 단어
편집장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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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김훈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


아버지의 죽음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마동수는 1979년 12월 20일 서울 서대문구 산외동 산18번지에서 죽었다." 기사라고 해도 무방할 건조한 언어로, 아버지 마동수의 전(傳)이 이어진다. 아버지가 출생한 1910년부터 그의 두 아들이 살아간 1980년대까지, 현대사의 바람은 아버지와 아들들을 자꾸 집에서 몰아낸다. 그렇게 만주와 길림, 상하이와 서울, 흥남과 부산 그리고 베트남, 미크로네시아를 떠나고 되돌아 온다. 모멸과 비애를 견디며 하루를 가차없이 살아내지만, 끝내 돌아올 수밖에 없다.




김훈 장편소설. 작가 본인의 아버지의(언론인이자 소설가인 김훈의 아버지 김광주는 1910년 태어나 1973년 사망했다.), 혹은 자신의 이야기라고 해도 좋을 이야기를 김훈다운 문장으로 그린다. 전쟁을 앞둔 장군의 고독을 묘사할 때처럼 (<칼의 노래>), 신앙을 포기하지 못해 도달한 유배지 흑산 바다에서 눈앞의 물고기를 바라보는 이의 고통을 말할 때처럼 (<흑산>) 묘사는 지독하고, 가차없는 고통조차 숨김이 없다. 죽음을 마주한 시점, 아버지 마동수는 독립운동 혐의로 남산경찰서에서 매를 맞고 나온 형과 함께 마주한 어린 시절의 국밥집을 떠올린다. "그때, 세상은 무섭고, 달아날 수 없는 곳이었다."고 이미 깨달은 그 어린 날을. 달아날 수 없는 삶을 끝내 살아야 했던 아버지와 아들들, 그 남루한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에 대해 다시 김훈이 썼다.


- 소설 MD 김효선 (2017.02.03)

책소개


김훈 장편소설. 192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우리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굵직한 사건들을 배경으로 한다. 이러한 사건들은 마씨 집안의 가장인 아버지 마동수와 그의 삶을 바라보며 성장한 아들들의 삶을 통해 드러난다. 작가는 만주와 길림, 상하이와 서울, 흥남과 부산 그리고 베트남, 미크로네시아 등에서 겪어낸 등장인물들의 파편화된 일생을 고스란히 보여주며 그 신산스러운 삶을 바라보는 서늘한 시선을 드러낸다.




일제시대, 삶의 터전을 떠나 만주 일대를 떠돌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가 겪어낸 파란의 세월, 해방 이후 혼란스러운 시간과 연이어 겪게 되는 한국전쟁, 전후의 피폐한 상황 속에서 맺어진 남녀의 애증과 갈등, 군부독재 시절의 폭압적인 분위기, 베트남전쟁에 파병된 한국인들의 비극적인 운명, 대통령의 급작스런 죽음, 세상을 떠도는 어지러운 말들을 막겠다는 언론통폐합, 이후 급속한 근대화와 함께 찾아온 자본의 물결까지 시대를 아우르는 사건들이 마씨 집안의 가족사에 담겨 있다.




광야를 달려야 할 말이 고삐에 걸려 있던 자리로 되돌아와야 하는 것처럼,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의 고삐에 삶이 얽매여 있는 이들의 비참하고 비애로운 이야기들을 통해 작가는 이다지도 막막한 세상에서 몸 비빌 수 있는 작은 거점이 존재하는가를 처절하게 되묻는다.




목차


아버지|동부전선|“난 괜찮다”|세느주점|하관(下棺)|남산경찰서|상해(上海)|공습|압록강|흥남|서울|부산|낙동강|아가미|미크로네시아|베트남|결혼|첫날밤|해직|당신의 손|국립묘지|오토바이|어머니|덫|편지|형제|기별|누니|린다|억새|말|귀향|봄 … 작가 후기|주석




책속에서





첫문장


마동수(馬東守)는 1979년 12월 20일 서울 서대문구 산외동 산18번지에서 죽었다.



마동수(馬東守)는 1979년 12월 20일 서울 서대문구 산외동 산18번지에서 죽었다. 마동수는 1910년 경술생(庚戌生) 개띠로, 서울에서 태어나 소년기를 보내고, 만주의 길림(吉林), 장춘(長春), 상해(上海)를 떠돌았고 해방 후에 서울로 돌아와서 625전쟁과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의 시대를 살고, 69세로 죽었다. 마동수가 죽던 해에,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대통령 박정희를 권총으로 쏘아 죽였다. 박정희는 5, 6, 7, 8, 9대 대통령을 지냈다. 박정희는 심장에 총알을 맞고 쓰러져서, ‘괜찮다, 나는 괜찮아……’라고 중얼거렸다. 마동수의 죽음과 박정희의 죽음은 ‘죽었다’는 사실 이외에 아무 관련이 없다. 마동수의 생애에 특기할 만한 것은 없다.
마동수는 암 판정을 받은 지 3년 만에 죽었다. 간에서 시작된 암은 위와 창자로 퍼졌고 등뼈 속까지 스몄다. 뼈가 삭아서 재채기를 하다가 관절이 어긋났다. 마동수의 암은 느리고 길었다. 몸이 무너져갈수록 암의 세력은 번성했고, 마동수의 숨이 끊어진 후에도 암은 사체 속에서 사흘 동안 살아 있다가 사체가 화장될 때 소멸했다. 마동수의 암은 인체에 기생하지만 인체와는 독립된 별도의 생명체였다.
―「아버지」 중에서 접기


마차세는 대대본부 행정반에서 휴가증을 받았다. 비상계엄에 따른 휴가 정지가 해제된 후 처음 받는 휴가이므로 시국의 엄중함을 인식하고 휴가 기간 중에도 군기를 엄수하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비상 연락망을 숙지하고 귀대 시간을 엄수하라고 선임하사가 말했다. 십이월 이십이일……. 마차세는 선임하사 앞에서 귀대 날짜를 세 번 복창하고 행정반을 나왔다.
보급계 사무실에서 오장춘(吳長春) 상병이 달려 나왔다. 오장춘은 마차세의 팔을 끌어서 휴게실로 들어갔다. 휴게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장춘이 흰 봉투 한 개를 내밀었다.
―야, 이거, 휴가 가서 술이나 한잔해라.
―너, 이래도 되니?
―니미……. 야, 누가 보겠다. 빨리 집어넣어.
오장춘이 준 봉투에는 2만 원이 들어 있었다. 상병 월급의 여섯 배가 넘었다. 오장춘은 대대본부 보급계에서 연료 담당 하사관의 조수 노릇을 하고 있었다. 운전병들이 제출하는 차량 운전 일지와 상부에 보고하는 서류 사이의 차이만큼의 연료가 암시장으로 새어 나가고 있었다.
―「동부전선」 중에서 접기


주점 안은 곱창 굽는 연기가 자욱했고, 술 취한 말들이 부딪쳤다. 다들 뭐라고 지껄였고, 말들이 들끓어서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마차세는 편지를 접어서 윗주머니에 넣었다. 편지 속의 새를 생각했다. 주점에 모여든 사람들이, 불안해서 잠 못 드는 새 떼처럼 한 마리가 버스럭거리면 수천 마리가 일제히 날아오를 것처럼 보였다. 편지 속의 새들은 모여 있지만 따로따로였다. (……)
―휴가 나왔니? 추웠지. 서울이니?
라고 말했다. 박상희의 목소리는 늘 비음(鼻音)이 섞여 있었다. ‘휴가 나왔니?’라고 말할 때 ‘니?’가 코 속에서 울렸다. 코 속이 아니라, 몸속의 깊은 동굴에서 울리는 소리처럼 들렸다. ‘니?’는 말하는 사람의 몸속을 통과해 나온 물기로 젖어 있었다. 박상희의 ‘니?’를 그림으로 그리자면 물 위에 번지는 동심원(同心圓)이 되겠지. 그 동그란 파문이 전화선을 타고 와서 마차세의 귀를 통해 몸속으로 들어왔다. ‘니?’는 동부전선 산악 고지와 서울 간의 거리를 단숨에 뛰어넘어서 마차세를 ‘니?’ 앞으로 몰아세웠다.
―「세느주점」 중에서 접기


―난 아버지를 묻을 때 슬펐지만 좋았어. 한 세상이 참 힘들게 갔구나 싶었지. 이런 인생이 다시는 태어나지 않기를 빌면서 흙을 쾅쾅 밟았어. 형은 그 힘들게 지나간 자취가 너무 힘들어서 견딜 수 없는 거지. 형은 아버지를 피해 다니려다가 또 다른 수렁에 빠져가고 있는 게 아닐까? 난 여기서 살 거야. 나도 결혼했으니까 아버지가 되... 더보기


이도순은 벽 쪽으로 돌아누워서 울었다. 터져 나오는 울음과 울음을 누르려는 울음이 부딪치면서 울음이 뒤틀렸다. 입 밖으로 새어 나온 울음이 몸 속에 쟁여진 울음을 끌어냈다. 몸 밖의 울음과 몸 안의 울음이 이어져서 울음이 굽이쳤고, 이음이 끊어질 때 울음이 막혀서 끽끽거렸다. - 새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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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북한산 서쪽 언저리 바람받이 마을에 살고 있는 마동수는 전방 GOP에 복무 중인 상병 마차세가 정기휴가를 받고 집에 와 잠시 여자친구를 만나러 외출한 사이에 홀로 세상을 떠난다. 마동수는 3년째 암 투병 중이어서 쇠약할 대로 쇠약해진 상태였고, 그의 아내 이도순은 연탄 두 장을 들고 얼어붙은 산비탈을 오르다 넘어져 고관절에 금이 가 병원에 입원 중이었다. 첫째 아들 장세는 베트남전쟁 참전 후 전역해 괌에 정착해 있어 마동수의 장례는 둘째 아들 차세 혼자서 치른다. 장세는 아버지의 부음을 받고도 항공편이 맞지 않는다며 오지 않는다. 장례식에는 생전 처음 보는 아버지의 옛 동지라는 남자들이 찾아와 술판을 벌이고 종잡을 수 없는 말들을 지껄이는데…….
죽음이 눈앞에 다가왔을 때 마동수는 열 살 위의 형 남수가 미국 국회의원단의 행렬을 보러 나갔다가 일본 경찰에게 잡혀 밤새 매를 맞은 남산경찰서 앞에서 형을 기다렸던 날의 기억을 떠올린다. 마동수는 59년 전 그날 새벽, 남산경찰서 뒷골목 해장국집의 누린내 나는 김 속에서 국밥을 먹던 피투성이 사내들의 허기와 괜찮다, 너 돈 가졌냐, 밥 먹자, 배고프다던 형의 목소리와 함께 마지막 며칠을 견딘다. 어린 나이의 마동수에게도 세상은 무섭고, 달아날 수 없는 곳이었다. 변변치 않은 집안 살림임에도 일본 유학을 준비하던 고등보통학교 출신의 형 남수가 일본 경찰들에게 매 맞고 난 다음 친척집에서 요양하다 갑자기 사라진 지 10년 후, 동수는 형의 연락을 받고 서울에 어머니를 남겨두고 길림으로 향하는데…….







1948년 서울 출생.

2000년까지 여러 직장을 전전.

소설 『공터에서』, 산문 『라면을 끓이며』 외 여럿.


수상 : 2013년 가톨릭문학상, 2007년 대산문학상, 2005년 황순원문학상, 2004년 이상문학상, 2001년 동인문학상
최근작 : <자전거여행 (합본 특별 한정판)>,<연필로 쓰기>,<남한산성> … 총 128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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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막막한 세상에서 몸 비빌 수 있는 작은 거점은 어디인가?
적막한 세상을 응시하는 깊은 눈, 김훈 장편소설

“세상은 무섭고, 달아날 수 없는 곳이었다”
20세기 한국 현대사를 살아낸 아버지와 그 아들들의 비애로운 삶!

김훈의 신작 장편소설 『공터에서』는 192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우리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굵직한 사건들을 배경으로 한다. 이러한 사건들은 마씨(馬氏) 집안의 가장인 아버지 마동수와 그의 삶을 바라보며 성장한 아들들의 삶을 통해 드러난다. 작가는 만주와 길림, 상하이와 서울, 흥남과 부산 그리고 베트남, 미크로네시아 등에서 겪어낸 등장인물들의 파편화된 일생을 고스란히 보여주며 그 신산스러운 삶을 바라보는 서늘한 시선을 드러낸다.
일제시대, 삶의 터전을 떠나 만주 일대를 떠돌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가 겪어낸 파란의 세월, 해방 이후 혼란스러운 시간과 연이어 겪게 되는 한국전쟁, 전후의 피폐한 상황 속에서 맺어진 남녀의 애증과 갈등, 군부독재 시절의 폭압적인 분위기, 베트남전쟁에 파병된 한국인들의 비극적인 운명, 대통령의 급작스런 죽음, 세상을 떠도는 어지러운 말들을 막겠다는 언론통폐합, 이후 급속한 근대화와 함께 찾아온 자본의 물결까지 시대를 아우르는 사건들이 마씨 집안의 가족사에 담겨 있다.
광야를 달려야 할 말이 고삐에 걸려 있던 자리로 되돌아와야 하는 것처럼,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의 고삐에 삶이 얽매여 있는 이들의 비참하고 비애로운 이야기들을 통해 작가는 이다지도 막막한 세상에서 몸 비빌 수 있는 작은 거점이 존재하는가를 처절하게 되묻는다.
장편소설 『공터에서』는 두렵고 무섭지만 달아나려 해도 달아날 수 없는 현실에서 우리 자신이 어떤 삶을 꾸려나갈 수 있을까를, 우리의 영혼을 쉬게 할 작은 거점이 어디인가를 돌아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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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책


2017 올해의 책 : 이 책을 선택한 이유


시대의 아버지 모습을 떠올리게 했음 - 리나
김훈의 담백한 문체에 담긴 사유의 흔적을 찾아서 - 무진無盡
인간이 절박한 죽음보다 더 막다른 골목이 무엇인가를 느끼게 했습니다. - 우보
저는 <공터에서>를 먼저 읽고, <라면을 끓이며>를 읽었는데 <라면을 끓이며>에서도 김훈 작가님은 꼭 이 책을 써야지하는 마음의 다짐이 대단하셨더라고요. 아버지에 대한 애정과 존경, 아버지 세대 사람과 그 시대에 대한 이해. 아무튼 스펙트럼이 남다른 멋진 작품, 역시 김훈 작가님 작품이었습니다. - 얄라알라북사랑
이 소설을 읽으면서, 어쩌면 나의 삶도, 우리의 삶도, 이토록 비루한 삶일지라도, 소설이 될 수 있고, 예술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 Tom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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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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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작가 신작 공터에서 초판본 두 부를 예약 주문했다. 현대사 질곡을 다뤘다. 하근찬 작가의 수난이대가 연상되기도. 출간일 2월 2일이 기다려진다. 개인적으로 작가강연회를 찾아간 몇 안되는 김훈 작가님. 삶이 주는 고단함과 비루함 속에서도 긍정이 보이는 작품들. 신간아 빨리 오너라!! 
캐모마일 2017-01-14 공감 (24) 댓글 (1)

김훈의 소설치고는 상당한 정도로 실망스럽다.
요 몇년 사이에 그가 기력이 쇠하여서 그런지, 이야기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용두사미격으로 이야기가 진부해진다.
그가 의도한 본인 부친시대의 세월과 자신의 경험을 녹여서 우리 시대를 조망하려 하였으나, 의도 알겠으나 그 실상은 정말 실망스럽다. 

청허 2017-02-16 공감 (17) 댓글 (0)


마차세 일가의 삶이 우리가족 또는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이웃의 삶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Conan 2017-12-08 공감 (11) 댓글 (0)


맛깔나는 글냄새를 가진 김훈 언제 봐도 그의 글은 살아숨쉬는 것 같다 
징가 2017-04-16 공감 (10) 댓글 (0)


김훈의 근작들은 단조롭다. ‘세상은 불가해하고 모순적 공간이다‘와 ‘인간은 밥먹고 살아가야한다‘라는 두 명제를 서사에 반복/강박적으로 담기 때문이다. 이러한 반복/강박은 유치한 국뽕류 영화(˝국제시장˝)보다 더 나은 서사를 만드는 데는 일조하나 대가의 깊이를 획득하는 과정에선 걸림돌이 된다 

수다맨 2017-02-10 공감 (10)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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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겹고 더럽네요
'딸아이의 작은 성기가 추위에 오므라져 있었는데 그 안쪽은 따스해 보였다.' 아기를 여자라고 성적인 존재로 그려내다니 진짜 토나오고 역겹네요. 제정신입니까?? 아동성추행적인 표현으로 신고하고 싶네요. 이게 책으로 나왔다는것도 놀랍습니다. 진짜 수준떨어져서...책에다 토 백만번했습니다
rlawjddbs115 2017-02-08 공감(67)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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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도 슬퍼했고, 아팠다
“cyrus씨의 리뷰가 불량합니다. 저항기가 있군요. C급입니다.”[1]

인생 여정의 중간 혹은 종착점에 이르면 자기가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달려온 길이 고통스러워도, 현재의 삶이 가치 있다고 느끼면 뒤돌아보고 싶은 충동은 더욱 강렬하다. 부모님 세대는 청년기에 경험한 전쟁의 참혹한 기억을 잊지 못한다. 그 지옥의 시간은 이미 소설이나 영화 속 과거가 되었다. 그리하여 이제 그런 시대를 얼마간 편안한 마음으로 보며 추억하고 있다. 50~70년대 시절 부모님 세대가 겪었던 분산된 기억들을 끄집어내 영화와 소설이라는 문화적 메커니즘을 통해 조직하고, 그리하여 개인들의 체험이 보편적인 경험으로 확대되고, 세대 차원의 공통된 기억으로 자리 잡게 하는 의미가 있다. 우리의 근대사는 감히 눈을 똑바로 뜨고 바라볼 수 없었던, 힘의 논리와 저항으로 일관됐던 ‘부자(父子) 관계’의 연속이었다. 그것을 용서하기 위해서는 향수(鄕愁)의 힘이 필요했다.





《공터에서》는 마씨 집안의 삶을 통해 우리 시대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마동수는 6 ․ 25전쟁 때 이도순을 만나 고생 끝에 가정을 이룬다. 그들이 낳은 자식 마장세와 마차세도 시대의 그림자에 벗어나지 않았다. 마장세는 복역 중에 월남전에 파병되었고, 제대한 후에 괌으로 건너가 사업을 한다. 그는 자신을 가족으로부터 격리된 삶을 산다. 장남의 빈자리는 자연스럽게 마차세가 이어받는다. 마차세는 아버지의 사망과 가난 때문에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다. 학업을 포기하고 신문기자로 취업했지만, 언론통폐합 조치로 펜을 내려놓게 되고 물류회사에 재취업하여 오토바이 배달을 한다. 고달픈 시련 속에서 마차세는 박상희의 내조에 힘입어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 착실하게 살아간다.





작가는 현대사의 주요 계기들 속에서 무기력했지만, 묵묵히 시대를 감내하며 살아온 부모님 세대에 대한, 쓸쓸하면서도 애정 어린 연민을 보여준다. 소설에서 그려진 아버지상은 그런 역사의 질곡을 다시 바라보려는 과정에서 나온 타협의 산물이다. 이 소설이 불러일으키는 폭넓은 공감은 이 시대의 고통과 상처를 되돌아보는 계기를 제공해준다. 공동의 기억을 토대로 세워지는 상상의 공동체는 모든 세대를 하나로 묶는 데 크게 이바지할 것이다. 인간은 미래에 대한 전망보다 과거에 대한 공동의 기억으로 더 잘, 더 쉽게 하나가 되게 마련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진부한 징후들 속에서 음습하게 스며 있는 구시대의 늙은 유령의 그림자를 함께 본다. 김훈은 소설을 통해 ‘아버지와 자신이 살아온 시대’를 그리려 했다고 말한다.[2] 그 표면적 서사 밑에 독자들, 특히 중장년층 남자 독자들을 강하게 끌어당기는 또 하나의 흐름이 들어 있다.[3] 인내심과 책임감 그리고 힘으로 상징되는 가부장제에 대한 매혹이 그것이다. 부모님 세대들의 영혼 깊은 곳에 유령처럼 스며들어 있는 건 전쟁의 공포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가부장제 사회에 대한 향수는 현대에 들어 힘과 권위를 상실해가고 있는 중장년층 아버지들의 어깨를 다독여주는 환상의 그림자다.






이 소설에서 가장 의아한 장면이 있다. 마차세가 일자리를 잃어 백수로 지내고 있을 때, 박상희가 그에게 집안일을 맡겼다. 마차세는 아내의 요구를 순순히 응한다.






박상희는 마차세가 실직한 동안에 집안일의 일부를 남편에게 맡겼다. 마차세는 가끔씩 빨래를 널고 유리창을 닦고 싱크대를 청소했다. 박상희는 그 사소한 노동으로 남편의 마음이 일상에 정착하기를 바랐다. 마차세는 아내의 마음을 짐작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195쪽)






박상희가 미대 출신이라서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여성으로 보일 수 있다. 이에 대한 반론은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착시에 가깝다. 그러나 국가가 가부장적 권위를 강요하던 사회적 분위기를 생각해보시라. 1970년대의 여성은 보수적 분위기로 인해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흡수될 수밖에 없었다. 가부장적 가치관을 등에 지고서 억척같이 밖에서 일했던 아버지들은 이 장면을 어떻게 볼지 무척 궁금하다. 아버지들은 집안일은 '아내라면 당연히 해야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내를 존중하는 마차세의 배려심에서 비롯된 것처럼 그려지지만, 아무래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페미니스트에게 호되게 당한 적 있는 작가가 의도적으로 여성성을 강조하고 싶은 걸까. 작가 입장에서는 이런 표현을 시도해볼 수 있지만, 조금은 생뚱맞게 느껴진다.





세대 갈등은 ‘아버지와 아들의 불화(不和)’에 비유되곤 한다. ‘아버지 부정(否定)’은 누구나 한 번쯤 겪는 진통이다. 마차세는 아버지의 자리에 서면서 비로소 아버지를 이해하고 화해하게 된다. 박상희는 산파가 산모의 출산 과정을 돕듯, 마차세의 마음을 옥죄이는 아버지의 존재감을 떨쳐낼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런데 그녀의 역할은 마동수의 아내이자 마장세 · 마차세의 어머니 이도순의 존재감을 위축시킨다. 이도순은 숨 가쁘게 달려온 현대사의 그늘에서 인고와 희생으로 우리 가정과 사회를 지탱해온 우리네 어머니들의 원형이다. 70년대엔 인내 · 순종 · 희생의 어머니상이 지배적이었다. 이도순은 마장세에게 보낸 편지에 자신의 고통을 언어로 호소한다.






너의 아버지라는 사람은 무슨 헛것이 씌었는지 도통 밖으로만 싸지르고 두어 달에 한 번씩 집에 오는데, 왜 오는지 모르겠다. 내가 그 인간하고 살을 섞고 살아서 너희들을 내지른 세월을 생각하면 내 가슴에서 벌레가 끓고 들불이 인다. 너는 힘들고 쓸쓸하면 너보다 더 쓸쓸한 이 어미를 생각해라. 그게 내가 하려는 말의 전부다. (170쪽)






가부장제의 큰 피해자는 ‘아내’와 ‘어머니’의 역할을 맡은 여성이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은 개인이 되지 못했고, 자기 언어를 가질 수 없었다. 그러나 여성을 무겁게 짓누르는 가부장제 사회에 도전하고, 반항하는 소수의 목소리들도 있었다. ‘가족’이라는 명목으로 자행되는 여성에 대한 가부장제의 압력 앞에서 개인의 존엄을 지켜내기 위한 목소리이다. 그런데 박상희는 ‘힘들고 쓸쓸한’ 이도순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다. 소설 속 박상희는 ‘마차세의 아내’로서의 역할을 보여줄 뿐이다.






박상희 : “어머니는 어땠어?”


마차세 : “그저 그래. 잠든 거 보고 왔어.”


박상희 : “어머니보다 당신이 더 가엾어.”






(245쪽)


박상희는 치매에 시달리는 어머니를 홀로 돌보는 남편의 정신적 부담감을 이해한다. 그녀는 마차세를 ‘어머니보다 더 가엾은 남편(아들)’으로 바라본다. 그녀의 시선은 홀로 사는 어머니와 가족을 충실히 돌보는 가장의 고통을 부각할 뿐, 어머니의 고통을 외면한다. 이러한 박상희의 시선은 사회적 가부장제의 전형을 보여준다. 바로 남성 중심의 이데올로기가 그대로 반영됨을 의미한다. 박상희는 무의식적으로 가부장제 유지의 정당성에 가담하고 있다.

아버지, 아들로 이어지는 수직적인 가부장제 위계구조는 아들들을 또 다른 가부장으로 만든다. 마차세는 ‘빈약한 물적 토대’를 세워야하는 가부장이 된다. ‘머뭇거리고, 두리번거리고, 죄 없이 쫓겨 다니는’[4] 마동수와 마차세는 지금 현실에서 강력한 권위를 가진 가부장을 갈망하는 중년 남성들의 무의식의 초상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40대 남성 독자들이 김훈의 소설에 찬사를 보내는 것이다. 그렇지만 《공터에서》는 모든 독자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실패한 소설이다. 김훈은 과거 가부장제의 환상에서 깨어날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는 이번 신작 소설을 통해 ‘남루한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고 밝혔지만, ‘여성도 슬퍼했고, 아팠다’라고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1] 원문은 김훈 《공터에서》 193쪽

[2] <소설가 김훈, 장편 ‘공터에서’ 출간 “70년간 갑질의 시대…아버지와 내가 살아온 야만의 시대를 그렸다”> 경향신문, 2017년 2월 6일자


[3] <김훈 ‘공터에서’ 베스트셀러 종합 1위…“40대 남성 독자 지지”> 아시아경제, 2017년 2월 24일
[4] “나의 등장인물들은 늘 영웅적이지 못하다. 그들은 머뭇거리고, 두리번거리고, 죄 없이 쫓겨 다닌다. 나는 이 남루한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 (작가 후기, 《공터에서》 353쪽)

cyrus 2017-02-27 공감(34) 댓글(8)


아기다리고기다리던 신작 <공터에서> 



김훈 작가님의 신간이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온라인 서점 예약판매 보고 이모저모 보지 않고

2권 구매했습니다. 책 사고 보름 정도 기다렸네요.

한 권은 소장용. 한 권은 독서용으로 구비했습니다.

피규어 매니아분이 소장품 모으는 식으로요. ㅎㅎㅎ


이번 신작은 현대사의 굴곡을 다룬 장편소설이라고 합니다.

띠지에 "막막한 세상에서 몸 비빌 수 있는 작은 거점은 어디인가?"

공감했고, 먹먹했고, 그래서 갖고 싶었습니다.

"공터에서"란 제목과 어울리네요.

제가 작가 강연회는 <미생> 윤태호 작가님,

<흑산> 출판 기념 김훈 작가님 두 분입니다.

막막하고 혹독한 세상.                                                                                                                                                         
사람 살이와 신념,
 
그리고 작위적이지 않은 희망이 좋습니다.

현대사를 견뎌낸 부자(父子) 이야기가 줄기라고 합니다.


아직 책장을 넘기진 않아서 그런지






하근찬 작가님 "수난이대"가 떠오릅니다.






요즘 '믿고 보는' 수식어가 유행인데요.






'믿고 보는 황정음'이라 '믿보황'이라죠.






출연작 고르는 안목이 뛰어나서 붙인 별명이라더군요.






'믿보훈'. '믿고 보는 김훈 작가님 역사소설'






해냄 출판사 블로그에서 맛보기용 연재중이고,






댓글 이벤트도 하고 있습니다.






이미 2권 구매한지라 패스했습니다.






























어쩌다보니 신간 홍보글이 됐네요.






주객전도 송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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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모마일 2017-02-01 공감(29) 댓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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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공터에서




[아이가 남편의 등에서 오줌을 쌌다. 남편이 처네를 풀었다. 이도순은 보따리에서 기저귀를 꺼냈다. 딸아이의 작은 성기가 추위에 오므라져 있었는데 그 안쪽은 따스해 보였다. 거기가 따뜻하므로 거기가 가장 추울 것이었다. ]
다른 리뷰에서 이 부분을 이미 읽었고 논란이 된 것이라 알고 있었다.
안 본 눈을 사고 싶지만 최대한 처음 읽는거야라고 생각하며 읽었다.
정말 안 봤다면 어땠을까.

저 부분을 읽으면서 역겹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굳이 아이를 놓고 저런 표현을 한 이유가 뭘까라는 의문은 들었다.
그리고 그게 김훈이 아니라 다른 작가였다면 어떻게 되었을지도 궁금하다.
필요하다고 생각했는지 순수한 문학적 표현이였는지 논란이 될걸 알고 의도한건지 무의식적인 작가의 사상이 들어있는건지는 작가만 알겠지.

‘나도 여자지만 이게 왜 이상하다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여자, ‘뭐가 논란이 될만한 것이냐‘는 남자도 있다.
하지만 성별에 따라서, 딸을 가진 엄마이거나 그냥 미혼여성으로서, 사회에서 어떤 경험을 했느냐에 따라서 또는 남녀를 떠나 개인의 성향같은 여러 이유로 부분은 기분 나쁘게 다가오거나 반대로 아무렇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걸 놓고 문학적 표현을 이해 못한다, 억지 스럽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본인들 생각이 그런것 처럼 다른 사람도 다를 수도 있다는걸 알아야 한다.

아이한테 젖을 주기위해 차갑게 언 젖을 부볐다는 부분도 있는데 소설 전체적으로나 김훈 스타일로보나 참 잘 들어맞는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훈스러웠다.

간결 문체 간결 문체하듯이 술술 잘 읽혔지만 논란이 된 부분을 떠나서도 옛날엔 이랬다는 아재의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느낌들이 와닿지 않고 불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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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기쉐기몽쉐기 2017-03-13 공감(2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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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공터에서 




개인적으로 역사의식을 지닌 작가를 좋아한다. 지극히 개인의 취향 문제겠지만 개인의 소소한 일상과 감상만을 다루는 작금의 현대 소설에는 그다지 눈길이 가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대하소설이나 역사소설에 끌리는 모양이다. 이점이 나를 김훈의 매니아로 만드는 모양이다.

이번 김훈의 글, <공터에서>는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책이다. 마동수 - 마장세/마차세로 이어지는 2대에 걸친 비극의 가족사가 그 중심이다. 일제 치하의 한반도, 중국에서의 독립운동, 한국전쟁, 피난 생활, 가족 해체, 가난, 베트남 파병, 부모의 죽음 등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흐름과 가족은 대응은 한 개인에게는 견디기 벅찬 것이었다. 그래서일까 굴절된 개인사는 남은 가족들에게 숨쉬기조차 힘든 환경을 만들어준다. 어쩌면 이 글은 긍정적 현대사를 강조하며 이승만, 박정희 시대를 찬양하는 이들에게 그 반대의 증거를 미시적으로 보여준다고도 볼 수 있겠다.

2대에 걸친 아픔이라고 쓰니 갑자기 하근찬의 <수난이대>가 떠올랐다. 일제 징용과 한국전쟁으로 인한 이대에 걸친 수난. <공터에서>도 다르지 않다. 한국전쟁을 계기로 한 가족이 만들어졌지만 그들의 피난생활과 가난은 가족을 해체시키고 비정상적으로 만든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좀머씨 이야기처럼> 마동수는 세상을 헤매인다. 아내 이도순은 치매에 걸려 망각한 아픔을 새록새록 기억하며 힘들게 죽음을 맞이한다. 이 시대를 살아낸 한 세대의 슬픈 퇴장인 셈이다. 지금의 나로서는 할아버지 - 할머니 세대인 그들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장면이다. 물론 그들의 다음 세대에게도 세상은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았다. 두 아들들의 인생도 파란만장하여 장-차남 모두 전쟁과 가난의 굴레에서 아파하며 일상은 견디어낸다. 가족와 연을 끊고 싶어하는 장남, 가족의 아픔을 모두 안고 살아가야 하는 차남. 골곡 많은 이땅의 현대사만큼이나 개인사 역시 치열했고 아픔은 충만했다. 그렇다고 좌절만으로 끝낼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일까? 저자는 막내 마차세에게 안식을 주는 아내 박상희를, 희망의 상징 딸 누니를 주었다.

이렇게 책을 덮자니 표지에 <공터에서>라는 제목이 써 있다. 이게 무슨 뜻일까? 저자는 왜 이런 제목을 붙였을까 곰곰이 생각해본다. 사실 잘 모르겠다. 그의 의도를 . 다만 공터에서 느낄 허무함을 그리 표현했겠거니 생각했다. 착각이겠지만.

김훈의 문체는 명불허전이다. 묘사와 표현은 나로서는 전혀 흉내낼 수 없는 것들이다. 인간 심리와 자연에 대한 그의 관찰은 남다른 것이어서 그의 글을 이해하려 몇 번이나 되풀이해서 읽어야만 했다. 그렇다. 김훈의 소설은, 소설이지만 내용이 무겁고 깊어서 무난히 살아온 나같은 범인들은 추체험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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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ulp 2017-02-10 공감(2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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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터에서 - 김훈










아버지의 죽음으로 시작하는 소설은 시종일관 우울함을 내비쳤다. 아버지 마동수를 간호했던 아들이 외출해 여자를 만나러 갔던 사이에 홀로 죽은 아버지. 싸늘한 시체가 되어있는 아버지를 바라보는 아들의 마음이 안도였던가. 아, 끝났구나, 끝났어... 라고 한숨을 내쉬었으니. 귀대 날짜 이틀을 남겨두었던 안차세는 군대 당직사관에게 전화를 해 휴가를 더 며칠 받고, 멀리 괌에 있는 형에게 아버지의 죽음을 알렸다. '니가 고생이 많겠구나' 라고 말한 형은 돈만 부쳐주었을 뿐 찾아오지 않았다.







마동수가 죽던 해에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에 의해 죽었다. 마동수가 죽던 해가 1972년이었다. 마동수의 혼백이 빠져나갔다 다시 들어왔다가 다시 빠져나가던 그 찰나의 시간에 물을 건너고 있었고, 너머에는 죽음의 세계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머물렀던 시간 속 눈 덮인 만주의 길림 혹은 상해의 시간으로 흘러갔다. 소설의 시간은 마동수와 차남인 마차세의 시간과 교차된다. 마차세가 휴가 나오기 전 GOP에서의 시간, 휴가 나오기 전 받았던 박상희로부터의 편지. 그 편지를 들고 박상희를 만나러 갔던 시간까지 흐른다.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했던 시대의 이야기들이다. 우리들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걸어왔던 이야기. 어느 것 하나 특별하지 않고 저 밑바닥에서 생활할 수 밖에 없었던 우리 아버지들의 자화상을 만날 수 있는 소설이다. 광복이 되는 시점과 이어지는 한국전쟁의 아픔을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 북에서 피난을 가던 사람들은 부부 혹은 아이와도 단절되는 삶을 살았다. 한국전쟁 속 피난민들의 생활이야 뻔하다. 피묻은 군복을 빨거나 해서 하루하루를 버텼다. 죽지 못해 살았다고 해도 맞겠다.

















대학을 다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복학을 하지 못했던 오차세와 베트남 전쟁시 파병되었던 오장세가 살기 위해 낙오된 장병을 사살했던 기억으로 한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괌 근처를 떠돌았던 형제의 이야기는 질곡진 삶의 한 부분을 보여주고 있었다. 변화하는 세상에서 멈춰있는 듯한 사람들의 삶. 그 사람들은 자기 목소리 하나 크게 내지 못했다.







'이 작은 소설은 내 마음의 깊은 바닥에 들러붙어 있는 기억과 인상의 파편들을 엮은 글이다' 라고 했다. 어쩌면 작가의, 작가의 아버지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다. 작가가 들었던 이야기, 사진 자료, 신문 자료를 참고해 쓰여진 이야기는 우리의 어두운 현실을 나타냈다.







저자 김훈이 말했던 것처럼 그의 소설에서는 영웅이 나오지 않았다. 비루한 삶을 살고 있는 어느 거리의 골목길 안쪽, 그들의 다 내보여주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삶은 이들의 모습처럼 비루한 것일지도 모른다. 살기 위해 버티고, 버티다보니 살게 되었다. 가슴속에 숨겨둔 감정들, 지난 기억들은 차라리 말하지 않는게 더 좋은. 아픈 기억이 떠올라 돌아가지 못하는 고국과 가족들. 벗어나고 싶으면서도 벗어나지 못했던 마장세나 그러한 형을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로 이해하지 못했다. 삶이란 그런 것이다.







오랫동안 묵혀두었던 감정의 갈래들을 글로 쓰고 작가는 마음을 내려놓았을까. 책에서 느껴지는 허무함이 작가의 감정인양 느껴졌다. 책 속에서의 감정들은 독자에게까지 전해져 왔고, 우리는 이 감정을 견디어가며 우리의 삶을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깊고 어두운 감정들의 갈래 앞에서 지난 날의 삶을 생각해본다. 우리 아버지들의 삶을. 아버지의 아버지의 삶이 조각조각 머리속을 떠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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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eeze 2017-02-09 공감(21) 댓글(0)


[마이리뷰] 공터에서 

작은도서관에 책을 기증해주신 물고구마님 덕분에 잘 읽었어요. 김훈 작가의 인간에 대한 따뜻함이 느껴졌어요. 특히 마차세의 부인 박상희가 남편을 안쓰러워하며 따뜻한 이해와 애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참 좋아보였어요!객지에 나가 있는 남편 - 마차세.박상희 부부와는 다르게 내편 같지 않아서 무늬만 부부라고 생각하는 - 에게 날이 새면 안부전화라도 걸어야겠어요! ^♥^젊은 사람보다는 지지고볶으며 살아온 부모세대나 중년은 지났을 부부에게 더 공감 받을 작품이라 생각됐어요.


순오기 2017-03-27 공감(20) 댓글(0)

어젯밤 꿈 속에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이모가 나왔다. 이모는 꿈 속에서도 몸이 아팠던 기억을 가지고 있었지만 정결한 숲에서 얼굴을 보여준 이모는 우려했던 것보다 훨씬 건강해 보이고 예뻤다. 안심이 되기도 했지만 문득 잠에서 깨니 역시 마음 한곳이 아려왔다. 이모에게 제대로 된 작별 인사, 감사를 전하지 못했다. 죽음 앞에서 생은 어찌 이다지 하찮고 허무하게 스러지고 마는 것인가. 죽고 나면 우리 같은 평범함은 때로 하찮음과 망각으로 치환되어 서럽다. 기억하는 사람이 남는다고 해서 생이 더 유의미해지고 무거워지는 것은 아닐진대 오늘이 영원할 것처럼 마치 발이 단단히 이 지구t상에 못박혀 있는 것처럼 일상 속의 사람들은 싸우고 끄달리고 욕망하고 붙잡는다.

"2017년 설", 작가의 사인은 힘찬데 어쩐지 조금 아릿하다. 내가 기억하는 김훈은 영원한 오십 대인데 작가는 벌써 칠십 대에 접어들었단다. 우연히 옆에 있던 딸아이가 작가의 후기를 읽다 "엄마, '늙기가 힘들어 허덕지덕하였대'."라고 뜻도 이해하지 못한 말을 슬며시 옮긴다. 작가보다 한참 어린 나인데 그 '허덕지덕'의 무게를 실감한다. 시간의 경과가 늙음과 동의어는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늙어지지만 늙음을 내면화하는 일은 별개의 일이다. 거죽은 풍화하는데 내면에 생의 기운과 젊음의 추억은 차곡차곡 쌓이니 그것들을 내칠 용기를 차마 내지 못한다. 어느 날 서 있을 초로의 여인과 나를 동일시하기란 쉽지 않다.                                                                                                                                                                                                                                                                                                                                 

"마동수는 1979년 12월 20일 서울 서대문구 산외동 산18번지에서 죽었다."


이러한 첫문장으로 들어갈 때 이야기의 하중이 절로 다가와 다리가 갑자기 무겁게 느껴졌다. 생으로 시작하지 않고 죽음으로 풀어나가는 이야기. 이 이야기는 필연적으로 다시 그 사람의 삶으로 가는 역순환적 순서로 갈 것을 예고하는 것은 아니다. 마동수의 삶은 결국 그가 낳은 형제 마장세와 마차세를 이야기하기 위한 출발점이 되기도 하고 그들의 이야기가 결국은 만날 접점이 되기도 하고 마침내 그들의 이야기가 종결될 복합적인 지점이다. 세상에 발붙이지 못한 부박한 아비의 삶은 결국 죽음을 설명하기 위한 하나의 전제이자 출발, 도착점이 된다. 형제는 아버지처럼 살고 싶지 않아 분투하지만 결국은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게 되고 그의 삶을 닮게 되는 생존의 그 지엄하고 가혹한 본질에 가 닿는다.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했고 이미 늙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오해했던 시간은 시간의 결을 따라 제대로 해석되고 때에 따라서는 나의 것이 되기도 한다.

"아버지가 죽어 홀가분했다."는 차남 마차세만의 문장이 아니었다. 형 마장세는 일치감치 베트남전의 참전을 로 빌미로 그의 던적스러운 삶에서 도망치려 하지만 결국 그가 타지에서 벌였던 불법적인 사업으로 인해 아버지 만큼 추락한다. 형과는 달리 동생 마차세는 늘 아버지와 어머니의 삶과 죽음을 지척에서 지켜보게 되지만 그 또한 신산하고 초라하고 때로 비겁한 그들의 생존에서 멀리 떨어지려 시도해도 결국은 다시 떨어지는 진자 추처럼 생으로 귀환한다.






억새꽃이 부풀었고, 가을빛이 자글거렸다. 시든 줄기가 바람에 끄달리면서 바람을 버티고 있었고 꽃씨들은 바람 속으로 흩어졌다. 억새는 꽃이 아니라 꽃의 혼백처럼 보였다.


-p,311

전쟁통에 전남편과 젖먹이를 잃어야 했고 평생 방황하는 남편을 두고 형제를 키워내야 했고 말년은 치매로 요양원에서 보내야 했던 형제의 어머니를 화장하고 내려오는 길의 묘사는 눈부시다. 그것은 비단 어머니 김도순의 삶의 은유로만 해석될 것이 아니다. 누구나의 삶인들 이러지 아니할까. 충분히 나이든 김훈의 삶의 결을 간파해내는 문장들은 가슴의 결에 아로새겨질듯 간명하면서도 처절하다. 그의 문장은 끌로 판 듯 치열하고 또렷해서 차마 흘려보내지 못할 듯하다.

우리의 삶은 지극히 사적이지만 공적인 큰 파도 속에서 부유하며 그 사사로움을 잠식 당한다. 누군가의 삶도 결국 개인적인 서사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이유다. 사사롭지만 사소하지 않은 그 모든 것들을 언어로 도열하면 삶의 지고하고 처절한 순간들이 드러난다. 개인과 사회와 역사, 욕망과 의지와 이상과 좌절의 겹쳐진 그 틈새를 간파한 작가의 필력은 그가 살아 낸 생의 기억들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늙고 사는 일을 실감한다. 무겁고 무섭지만 신비로운 일이다.


여성혐오가 가득 담긴 책

진짜 웃기지도 않아서 이런 책을 지금 보라고 홍보하는 겁니까?
zhzh40000 2017-03-10 공감(18) 댓글(0)


격동의 현대를 살아온 사람들을 소설을 통해 보다


사람들은 말한다. 자신의 삶을 소설로 쓰면 대하소설은 충분히 된다고. 그렇게 우리네 삶은 모두들 자기만의 이야기를 지니고 있다.

특히 격랑의 한국 현대사를 살아온 사람들은 소설보다도 더 진한 이야기를 살아온 사람들인데, 이들의 이야기가 곳곳에서 소설로, 영화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때로는 진한 슬픔을, 때로는 가벼운 웃음을, 때로는 쓴 웃음을 지닌 그런 이야기들이 우후죽순처럼 나오고 있는데...


김훈이 쓴 이 소설 역시 우리나라 현대사를 살아온 가족의 이야기다. 마동수-마차세 부자를 중심으로 소설이 전개되는데...

일제시대에 태어나 박정희가 죽은 해에 죽은 마동수는 흥남철수 때 가족과 헤어진 이도순과 만나 마장세, 마차세를 낳는다. 그러나 마동수는 한 곳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머무를 곳을 찾지 못해 평생을 떠도는데, 그래도 정기적으로 집에는 들어오지만 그가 정착했다고는 할 수 없다.
죽음의 순간에도 홀로 죽어가는 그는 평생을 제 자리를 찾지 못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어렸을 때는 일제시대라 제 장소를 찾지 못했고, 해방이 되어서는 전쟁이다 뭐다 하여 다시 변방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삶.

이도순 역시 마찬가지다. 피란민이라는 존재는 이미 밀려난 존재다. 이들은 자신들이 영원히 머무를 장소를 마련하지 못한다. 비록 남쪽에서 가정을 꾸렸을지라도 정신을 잃어가는 치매 상태에서 이도순은 피란 올 때 잃어버린 딸을 찾기만 한다.

죽을 때까지 살아온 남쪽이 이도순에게는 정착한 장소가 아니라 언제든 비워주어야 할 공간에 불과했던 것이다.
본래 살던 곳이 서울이었던 마동수가 일제시대와 전쟁을 통해 장소를 잃었다면, 이도순은 피란으로 장소를 잃었다.

장소를 잃은 사람들이 잠시 머무르던 곳, 그 공터에서 태어난 형제, 마장세-마차세. 이들 역시 부모들의 삶과 다를 것이 없다.
본디 가진 것이 없으면 정착하기 힘들다. 큰아들 마장세는 베트남 전쟁으로 인해 고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외국에 남아 산다. 그에게 한국은 '거기'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가 살고 있는 동남아 역시 그가 머무를 장소는 되지 못한다.

그곳 역시 그에게는 '공터'에 불과하다. 잠시 머무는 곳. 그래서 그는 한국으로 압송되어 감옥으로 가게 되는데.. 이것이 그의 귀향이다. 귀향이라고 해도 그는 역시 머무르지 않는다. 교도소가 평생을 사는 곳도 아니고, 이곳 역시 머무르다 떠나야 할 공터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그래도 끊임없이 장소를 확보하려는 노력을 보이는 이가 바로 둘째 아들 마차세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그는 자신에게 얽혀 있는 인연의 끈들로 인해 괴로워하지만, 그렇다고 형처럼 그 끈을 끊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공터'를 '장소'로 만들어가야 할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이 바로 자신의 아내가 되는 박상희와 첫딸인 '누니'다.

하얀 눈이 오는 날 태어났다고 해서 누니라고 붙인 이름. 그 아이가 살아갈 세상은 세상의 때를 덮는 눈처럼 맑고 깨끗한 세상이어야 한다. 그렇게 그들은 자신들의 공터를 '장소'로 만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이 역시 쉽지는 않다. 마차세가 직업을 잃고 임시직으로 다시 배달일을 하는 데서 소설이 끝나는 것은 이들이 공터를 장소로 만드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를 암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소설 제목은 '공터에서'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이때 공터는 바로 우리가 살아온 우리나라, 그리고 우리나라 현대사인 것이다. 이것이 장소가 아니고 공터인 것은, 우리 모두 이 공터의 주인인 것처럼 살아왔지만, 실상 우리는 잠시 머물다 떠나는 사람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공터는 곧 빈곳이고 진공이다. 무엇이나 다 빨아들이는 진공, 그러나 진공은 다시 뱉어내야 자신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러므로 '공터'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누구도 머물 수 없는 곳이다. 우리 역사 역시 마찬가지다. 역사의 주인이라는 것은 자만에 불과하다. 우리는 잠시 머물다 갈 뿐이다.


그걸 모르고 자신이 그 공터의 주인인 양 행세했던 마차세의 친구이자 사장이었던 오장춘의 최후는 비참할 뿐이다. 역사에 영원히 머무를 수는 없으니, 그는 죽음으로 퇴장할 수밖에 없다.


이런 공터에서 가족이라는 인연으로 묶인 끈은 무엇보다도 질기다. 쉽게 끊기지도 않고 변하지도 않는다. 마장세가 그토록 부정하고 버리고 싶었지만 버리지 못했던 것, 마차세 역시 그 관계를 버릴 수가 없다.


공터가 이어주는 그런 관계들, 역사들... 그 속에서 조금씩의 변화는 일어나겠지만 공터가 없어지는 변화가 일어나기는 힘들다. 그러니 힘겨운 삶을 사는 사람들이 계속 힘들게 살 수밖에.


이게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민중들이 살아온 모습이다. 그런 모습을 김훈은 그의 간결한 문체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문체의 간결성, 전혀 끈적거림이 없는 그의 글들로 인해 마치 한 편의 파노라마, 그것도 현재진행형이 아닌 이미 끝난 과거의 일들을 아무 감정 없이 그대로 전달해주는 느낌을 받게 하는 소설이다.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거리를 두고 살필 수 있는 소설이라고나 할까. 소설의 인물들에게 감정이 들어설 수 없게 만들고 차분히 우리나라 현대사를 살아온 사람들의 모습을 멀찍이 떨어져서 보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소설이다.

kinye91 2018-01-15 공감(17)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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