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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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흑산 - 김훈 장편소설
김훈 (지은이)학고재2011-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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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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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페이지수 408쪽


책소개
<남한산성> 이후 4년 만에 새 역사 소설로 돌아온 김훈. 김훈 작가는 집을 떠나 2011년 4월 경기 안산시 선감도에 들어갔고, 칩거 5개월 만에 원고지 1,135매 분량으로 탈고했다. 이제까지 펴낸 소설 중 가장 긴 분량이다. 연필로 한 자 한 자 밀어내며 쓴 지난한 과정 가운데 틈틈이 흑산도, 경기 화성시 남양 성모성지, 충북 제천시 배론 성지 등을 답사했다.

<흑산>은 18세기 말과 19세기 초 조선 사회의 전통과 충돌한 정약전, 황사영 등 지식인들의 내면 풍경을 다룬다. 당시 부패한 관료들의 학정과 성리학적 신분 질서의 부당함에 눈떠가는 백성들 사이에서는 '해도 진인'이 도래하여 새 세상을 연다는 '정감록' 사상이 유포되고 있었다. 서양 문물과 함께 유입된 천주교는 이러한 조선 후기의 혼란을 극복하고자 한 지식인들의 새로운 대안이었던 셈이다.

작가 김훈은 천주교에 연루된 정약전과 그의 조카사위이자 조선 천주교회 지도자인 황사영의 삶과 죽음에 방점을 찍고 <흑산>을 전개한다. 정약전은 한때 세상 너머를 엿보았으나 다시 세상으로 돌아온 배반의 삶을 살았다. 그는 유배지 흑산 바다에서 눈앞의 물고기를 들여다보며 실증적인 어류생태학 서적 <자산어보>를 썼다.

황사영은 세상 너머의 구원을 위해 온몸으로 기존 사회의 질서와 이념에 맞섰다. 조정의 체포망을 피해 숨은 제천 배론 산골에서 그는 '황사영 백서'로 알려진, 북경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썼다. 비단 폭에 일만 삼천삼백여 글자로 이루어진 이 글에서 황사영은 박해의 참상을 고발하고 낡은 조선을 쓰러뜨릴 새로운 천주의 세상을 열어달라고 호소했다. 그리고 1801년 11월 배론 토굴에서 사로잡힌 그는 '대역부도'의 죄명으로 능지처참된다.

소설은 정약전이 흑산도로 유배를 떠나는 뱃길에서 시작해서 절해고도 흑산에서 정약전이 마을 주민들과 함께 아이들을 가르칠 서당을 세우고 새로 부임하는 수군 별장을 맞는 장면으로 끝난다.


목차


선비 007
사행 032
마노리 038
사공 049
손 싸개 056
박차돌 071
섬 080
육손이 091
하얀 바다 110
방울 세 개 118
게 다리 127
감옥 133
제 갈 길 137
백도라지 142
새우젓 가게 154
마부 164
흙떡 175
날치 183
고등어 189
여기서 197 더보기



책속에서



P. 22 백성은 말한다
이 작은 마을에 지난 일 년 동안 현감이 네 번 바뀌어서 서너 달에 한 번씩 수령의 행차를 보내고 또 맞느라고 마을은 결딴이 나고 백성들은 두 발로 설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가을에 또 현감이 바뀌어서, 갈 때 세우는 송덕비를, 갈 사람과 올 사람을 합쳐서 두 개를 한꺼번에 세우게 되니 끼니거리도 없는 마을 어귀에 송덕비 스무 개가 즐비하게 들어섰습니다. 백성들이 버리고 떠난 마을에서 신관 사또는 송덕비를 상대로 수령 노릇을 하시렵니까.
바라옵건대 백성의 가냘픈 팔목을 비틀어 손에 쥔 밥을 빼앗지 마시옵고, 선정인지 악정인지는 소인들이 입에 담을 바 못되오니 신관 사또가 오래 머물도록 하여 주십시오……. 소인들이 글월을 올린 일을 소란스럽다 하여 벌하신다면 가랑잎같이 메마른 소인들은 곤장 한 대에 바스러져버릴 뿐입니다. (22쪽, 구례 강마을 백성들이 관찰사 앞으로 올린 소장) 접기
P. 28 신하는 아뢴다
저 하천下賤들을 살려내도 인간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이요, 관곡을 풀어서 거두어 먹인다 해도 강물에 좁쌀 한 줌이요 산불에 물 한 바가지니 곡식만 축내다가 결국은 죽을 것이옵니다……. 인피를 쓰고 태어난 것들을 구태여 없애는 것은 왕정王政이 아니로되, 스스로 죽어 없어지려 할 때 그 가랑잎 같은 목숨들을 가엾이 여길 수는 있으나 애써 구할 까닭도 없는 것이옵니다……. (28쪽, 비변사 당상관들이 어전에 올리는 말) 접기
P. 121 대비는 명한다
아, 백성들아, 떠도는 지아비와 지어미들아, 그 어린 자식들아, 너희들은 나에 의지해서 고향으로 돌아가라. 가서 땅에 붙어서 살아라. 큰물이 지면 지아비는 도랑을 파서 물을 빼고 가물면 물을 가두어서 논밭을 축여라. 지어미는 천을 짜서 늙은이를 덮어주고 밤에는 아이에게 젖을 물리면 아름답지 않겠느냐. 해와 달의 운행이 곡식을 빚어내니, 모자라면 또 다음 해에 갚아주는 이치는 어찌 모르느냐. 떠도는 길은 죽을 길이고 돌아가서 서로 거두고 돌보는 것만이 살길임을 알아라. (121쪽, 대왕대비가 백성들에게 내린 자교) 접기
P. 18 정약전은 생각한다
웃으면서 목이 잘린 동생 정약종의 죽음은 몇 달 전의 일이었지만, 전생의 꿈처럼 멀어졌고 멀수록 더욱 선명했다. 한때의 황홀했던 생각들을 버리고, 남을 끌어들여서 보존한 나의 목숨으로 이 세속의 땅 위에서 좀 더 머무는 것은 천주를 배반하는 것인가. 어째서 배반으로서만 삶은 가능한 것인가. 죽은 약종이 말했듯이, 나에게는 애초에 믿음이 없었으니 배반도 없는 것인가. 그런가, 아닌가. (18쪽, 정약전이 정약종의 죽음을 회고하는 장면) 접기
나는 흑산(黑山)을 자산(玆山)으로 바꾸어 살려한다.
정약전은 종이에 검을 玆를 써서 창대에게 보여주었다. 창대가 고개를 들었다.
-같은 뜻일 터인데......
-같지 않다. 자는 흐리고 어둡고 깊다는 뜻이다. 흑은 너무 캄캄하다. 자는 또, 지금, 이제, 여기라는 뜻도 있으니 좋지 않으냐. 너와 내가 지금... 더보기 - 멋진사람


줄거리
배반의 삶을 감당하는 자, 정약전
구원을 향해 피 흘리며 나아가는 자, 황사영

1801년, 장판杖板 위의 지옥에서 헤어진 형제들
1800년 정조의 죽음은 노론 벽파의 득세를 가져왔다. 그들은 나이 어린 순조의 섭정을 맡은 대왕대비 김씨를 부추겨 정조의 총애를 받았던 정약용, 이가환 등의 남인 세력을 몰아내고자 했다. 그리고 이벽, 이가환, 정약용 등이 천주학을 받아들여 국본을 뒤흔들었다며 천주학에 물든 ‘사학죄인’으로 몰았다. 의금부 국청 마당은 정약전, 약종, 약용 형제의 운명을 가르는 지옥이 되었다. 의금부 장대에 묶인 정약용은 천주교를 서슴없이 배반했다. 그는 조카사위 황사영을 밀고했고 천주교도 색출을 위한 방도까지 일러주었다. 정약종은 순교의 길을 끝까지 걸어갔다. 약종의 죽음은 나머지 형제들의 죽음을 면해주었다.

정약전, 왜 삶은 배반으로써만 가능한가?
소설은 정약전이 흑산도로 유배를 떠나는 뱃길에서 시작한다. 약전은 막막한 흑산 바다 앞에서 “여기서 살자, 고등어와 더불어…… 섬에서 살자”(200쪽)고 되뇌며 창대 소년과 함께 물고기를 들여다보고 순매와 살림을 차린다. 함께 천주 교리를 공부하며 세상 너머를 엿보았지만 정약전은 두 동생처럼 단호하게 제 갈 길을 가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다만 세상 너머로 간 약종과 다시 세상으로 돌아간 약용, 그리고 조카사위 황사영을 생각하며 기진맥진할 뿐이었다. 그가 들여다본 물고기들의 이름과 행태는 <자산어보>라는 책이 될 것이다.

황사영, 세상 너머를 꿈꾸며 돌아오지 못할 길을 가다
정약전이 흑산 바다의 물고기를 들여다보며 여기의 새 삶을 기약할 때, 약전의 조카사위 황사영은 바다 너머 새 세상의 소식을 꿈꾸고 있었다. ‘사학의 거흉’으로 지목된 후 체포망이 좁혀오자 황사영은 제천 배론 마을의 토굴로 피신한다. 황사영은 16세에 장원급제하여 정조가 친히 등용을 약조할 만큼 앞길이 창창한 인물이었다. 정조가 잡은 손목에 붉은 비단을 감았던 황사영은 하얀 비단을 풀어 박해의 전말과 박해자들을 물리칠 큰 배에 대해 써내려간다. 배교한 유의儒醫 이한직의 소개로 황사영의 밀사가 된 마부 마노리가 북경 교회의 구베아 주교에게 이 편지를 전해주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구베아 주교에게 영세를 받고 황사영을 만나러 오던 마노리가 의주에서 체포됨으로써 황사영 또한 발각되고 만다. 소설은 절해고도 흑산에서 정약전이 마을 주민들과 함께 아이들을 가르칠 서당을 세우고 새로 부임하는 수군 별장을 맞는 장면으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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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김훈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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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서울 출생.
2000년까지 여러 직장을 전전.
소설 『공터에서』, 산문 『라면을 끓이며』 외 여럿.


수상 : 2013년 가톨릭문학상, 2007년 대산문학상, 2005년 황순원문학상, 2004년 이상문학상, 2001년 동인문학상
최근작 : <자전거여행 (합본 특별 한정판)>,<연필로 쓰기>,<남한산성> … 총 128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새 역사 소설로 돌아온 김훈,
신작 장편 <흑산>은 어떤 소설인가?

<남한산성> 이후 4년
김훈, 세상의 마지막 섬 흑산도로 가다
2011년 김훈의 새로운 역사 소설 <흑산>이 출간됐다. 2001년 출렁거리는 휘모리 문체로 허무주의적 영웅의 내면을 그린 <칼의 노래>(100만 부 판매)로 ‘한국 문학에 내린 벼락같은 축복’으로 불렸던 김훈. 그는 2007년 병자호란의 참담했던 역사를 다룬 <남한산성>(60만 부)으로 또 한 번 평단의 상찬과 대중적 인기를 한 몸에 누리는 역사 소설가로서 확고히 자리매김한다. 1636년 조국의 치욕을 감당해야 했던 남한산성의 겨울은 고 박완서 작가로 하여금 “김훈의 냉정한 단문이 날이 선 얼음조각처럼 살갗을 저몄다”며 감기 몸살을 앓게 했고 한미 FTA 협정 등 당대의 사회적 이슈와 결부되며 커다란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또한 <남한산성>의 대중적 성공은 역사 소설에 강한 김훈 문학의 본령을 확인하게 했다.

천주교에 매혹된 조선 지식인들
19세기 조선을 뒤흔들다
김훈의 신작 장편소설 <흑산>은 18세기 말과 19세기 초 조선 사회의 전통과 충돌한 정약전, 황사영 등 지식인들의 내면 풍경을 다룬다. 당시 부패한 관료들의 학정과 성리학적 신분 질서의 부당함에 눈떠가는 백성들 사이에서는 ‘해도 진인’이 도래하여 새 세상을 연다는 <정감록> 사상이 유포되고 있었다. 서양 문물과 함께 유입된 천주교는 이러한 조선 후기의 혼란을 극복하고자 한 지식인들의 새로운 대안이었던 셈이다. 작가 김훈은 천주교에 연루된 정약전과 그의 조카사위이자 조선 천주교회 지도자인 황사영의 삶과 죽음에 방점을 찍고 <흑산>을 전개한다. 정약전은 한때 세상 너머를 엿보았으나 다시 세상으로 돌아온 배반의 삶을 살았다. 그는 유배지 흑산 바다에서 눈앞의 물고기를 들여다보며 실증적인 어류생태학 서적 <자산어보>를 썼다. 황사영은 세상 너머의 구원을 위해 온몸으로 기존 사회의 질서와 이념에 맞섰다. 조정의 체포망을 피해 숨은 제천 배론 산골에서 그는 ‘황사영 백서’로 알려진, 북경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썼다. 비단 폭에 일만 삼천삼백여 글자로 이루어진 이 글에서 황사영은 박해의 참상을 고발하고 낡은 조선을 쓰러뜨릴 새로운 천주의 세상을 열어달라고 호소했다. 그리고 1801년 11월 배론 토굴에서 사로잡힌 그는 ‘대역부도’의 죄명으로 능지처참된다.

<흑산>, 20여 명의 등장인물
얽히고설킨 삶과 인연의 고리를 이루다
<흑산>을 쓰기 위해 김훈 작가는 집을 떠나 올해 4월 경기 안산시 선감도에 들어갔고, 칩거 5개월 만에 원고지 1,135매 분량으로 탈고했다. 이제까지 펴낸 소설 중 가장 긴 분량이다. 연필로 한 자 한 자 밀어내며 쓴 지난한 과정 가운데 틈틈이 흑산도, 경기 화성시 남양 성모성지, 충북 제천시 배론 성지 등을 답사했다.『비변사등록』등 사료와 천주교사 연구서 등 책 뒤에 붙은 참고 문헌은 작가가 당시를 그리기 위해 쏟은 고투를 보여준다.
<흑산>의 등장인물들은 20여 명이 넘는다. 이 또한 김훈 소설 가운데 최다 등장인물이다. 정약전과 황사영의 이야기를 한 축으로, 조정과 양반 지식인, 중인, 하급 관원, 마부, 어부, 노비 등 각 계층의 생생한 캐릭터들이 엮어가는 이야기가 <흑산>의 장관을 이루는 또 다른 축이다. 천주교도들을 도륙하라며 다급히 자교를 내리는 대왕대비 김씨, 황사영을 체포하기 위해 전직 포도청 비장 박차돌을 이용하는 우포도대장 이판수, 유배지 흑산에서 왕과도 같은 권력을 휘두르는 수군진 별장 오칠구 등이 전통과 근왕주의적 질서를 지탱하려는 인물이다. 반면 어부 장팔수를 비롯해 조 풍헌, 정약전 형제의 맏형 정약현 집안의 면천 노비로서 황사영을 돕는 김개동과 육손이 등은 조선 후기 신분 질서의 해체상과 혼돈을 드러내는 인물들이다. 실제 천주교 탄압의 빌미가 되기도 했던 여신도들의 활약은 소설 속에서 길갈녀와 강사녀 등의 헌신으로 형상화된다.
특히 마부 마노리는 북경 사행을 따른 길잡이의 경험으로 북경 교회와 황사영을 잇는 밀사로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또한 배교한 천주교도이자 전직 포도청 비장 박차돌이 이중 첩자로서 쫓는 자와 쫓기는 자를 오가며 벌이는 역할과 여동생 박한녀와의 비극적인 해후와 이별은 극적 긴장감을 불어넣으며 소설적 재미를 만끽하게 만든다. 이렇듯 흑산은 마치 대하소설의 스케일을 방불케 하는 높은 완성도와 서사 구조로 독자들의 이목을 끝까지 붙들고 놓지 않는다.

백성들의 살을 바르는 박민剝民의 참상과
참위설에 기대 말세를 노래하는 민초들
작가 김훈은 <흑산>의 조선 민초들의 참상을 소름끼치는 묘사력으로 그려낸다. 서너 달에 한 번씩 바뀌는 수령을 위해 송덕비를 세우다 농사를 작파하게 된 백성들의 상소(22쪽), 흙떡을 쪄먹고 공납을 피해 어린 소나무 뿌리를 뽑아 던지는 흑산 주민 장팔수의 절규(196쪽), “주여, 우리를 매 맞아 죽지 않게 하소서. 주여, 우리를 굶어 죽지 않게 하소서”(본문 58쪽)라고 기도하는 오동희의 언문 기도문에서 조선의 민초들은 차마 눈뜨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피폐한 삶을 견뎌간다. <흑산>의 곳곳에서 말세와 새로운 세상을 노래하는 <정감록> 등 도참의 주문이 천주교의 구원과 지복에 대한 간절한 염원과 겹쳐지는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 관련 자료

황사영과 황사영 백서 사건
황사영은 1791년 16세의 어린 나이로 진사시에 합격했다. 정조는 그를 친히 궁으로 불러 손목을 어루만지며 치하했고 황사영은 어수가 닿은 손목에 붉은 비단을 감고 다녔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황사영은 당대의 석학들을 만나 학문을 넓히던 중 다산 정약용 일가를 만나고 정약전 형제의 맏형 정약현의 사위가 된다. 처가인 마재 정씨 집안으로부터 천주교 교리에 대해 전해들은 황사영은 벼슬길을 마다하고 조선 천주교회의 지도자가 됨으로써 고난의 길을 걷는다.
황사영은 1801년 신유박해가 터짐과 동시에 서울을 빠져 나와 충청도 제천 산골 배론으로 숨어든다. 교도들에 대한 탄압과 주문모 신부의 처형 소식을 들은 그는 낙심과 의분으로 북경 교회의 구베아 주교에게 보내는 탄원서를 적는다. 하지만 백서(비단에 쓰였기에 ‘백서帛書’로 불린다)를 품고 북경으로 향하던 황심이 붙잡히고 황사영도 대역 죄인으로 능지처참의 극형에 처해진다. 이때가 그의 나이 27세였다. 이 사건으로 그의 홀어머니는 거제도로, 부인 정명련은 제주도로, 외아들 경한은 추자도로 각각 유배된다.
백서의 원본은 1백여 년 동안 의금부 창고 속에 방치되어 있다가 1894년에야 비로소 빛을 본다. 뮈텔 주교는 1925년 한국 순교자 79위 시복식 때 이를 교황 비오 11세에게 봉정했고, 현재는 바티칸에 소장돼 있다. 백서는 하얀 비단에 가로 62센티미터, 세로 38센티미터 크기이며, 122줄 13,384자가 극세필로 깨알처럼 작고 단정하게 쓰였다. 그 내용은 대략 3부분으로 되어 있다. 먼저 당시의 천주교 교세와 중국인 주문모 신부의 활동, 신유박해 사실과 이때 죽은 순교자들의 약전을 기록하고, 다음에는 주문모 신부의 자수와 처형 사실, 끝으로 당시 조선 국내의 실정과 이후 포교하는 데 필요한 방안들을 제시하고 있다. 외세를 끌어들이려 했다는 점에서 ‘황사영 백서’는 민족 감정에서 나오는 공격의 대상이 되어왔지만, 한편 교회의 평등주의라는 원칙과 당시 조선사회에 미친 혁명적인 영향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 일부 역사가들의 주장이기도 하다.

신유박해
천주교에 대해 비교적 온건한 정책을 펴왔던 정조가 죽자 1801년(순조 1) 대왕대비 김씨는 천주교 신자들을 색출해 역률로 다스리라는 금교령을 내린다. 이때 정약종이 천주교 서적을 옮기다 발각되는 사건이 일어났고 이 사건은 대대적인 박해의 도화선이 되었다.
중국인 신부로서 조선에 잠입해 전도하던 주문모 신부가 이해 5월 참수되었고 11월 황사영 등이 체포되고 12월에 처형됨으로써 박해는 일단락된다. 신유박해라 불리는 이 최초의 대규모 천주교도 박해 사건은 성리학적 질서와 전통을 고수하려는 세력과 새로운 사회를 열망한 민중과 지식인의 충돌이었다. 이 사건으로 위축된 천주교 세력은 지식인 중심에서 중인과 선교사 중심의 포교로 재편되고 향후 더 큰 대규모 박해를 예고하게 된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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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이름만으로 믿음이 가는
재는재로 2011-10-10 공감 (1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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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선생님의 글의 바람같은 뼈 냄새를 맡으며 아껴가며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appletreeje 2011-11-04 공감 (1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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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도하』 이후로 1년에 1권씩 출간하는 그의 "다급한" 창작력이 정말로 궁금하다.
Tomek 2011-10-12 공감 (1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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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무겁다

그러면서도 읽힌다

참담하지만 삶이란 그런거니까
parkcourage 2015-02-22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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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잘 쓴다는 게 이런 거구나 절감했습니다. 극히 간결하고 담담한 문체인데도 그 많은 사람들의 통한이 느껴지는 작품이었습니다.
harpi 2012-03-23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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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文)을 주고 생선을 얻다.








글(文')을 주고 생선'을 얻다.

클림트'에 빠져든 적이 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첫사랑 때문에 그녀가 좋아하던 화가의 그림을 좋아하게 된 것이다. 사실 나는 클림트'보다는 에곤 쉴레'를 더 좋아했다. 클림트는 꽃 ( 봄 ) 이었고, 쉴레는 잎 ( 가을 ) 이었다. 꽃 진 자리'보다 잎 진 자리'를 좋아한 탓이다. 나는 에곤 쉴레의 그림을 볼 때마다 아, 바닥을 보게 된다. *가을에는 바닥이 잘 보인다. ( 문태준, [ 바닥 ] ) 내가 김훈이 쓴 < 칼의 노래 > 를 읽었을 때 느꼈던 첫인상은 에곤쉴레'가 그린 그림 이미지'였다. 바짝 마른 문체. 최대한 수식을 배제한 단정한 단문은 에곤 쉴레가 그린 그림 속 벌거벗은 오브제를 닮았다.



하지만 놀랄 만한 데뷔'는 종종 오랜 슬럼프'를 겪기 마련이다. < 현의 노래 > 에서부터 시작된 기시감은 내내 김훈이 쓴 소설'에 달라붙었다. 거문고'는 칼'이라는 단어'와 겹쳤고, 우륵은 이순신과 겹쳤다. 동어반복이 주는 피로감은 김훈에 대한 호기심을 상쇄시켰다. 그 후 몇 년이 흘렀다. 그의 소설은 지겼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꼬박꼬박 읽었다. 여전히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기에 여전히 지겨웠다. 다시 < 흑산 > 을 읽었다. 곰곰 생각했다. 그리고는 < 흑산 > 을, 다시 읽었다.



김훈은 변함이 없다.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진보가 인간과 미래'에 대해 희망을 거는 진영이라고 한다면 김훈은 철저한 보수'다. 그가 보기엔 역사는 진화'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김훈의 반대말은 사르트르'다. 농담을 섞어 말하자면 김훈은 레비스트로스-주의자'에 가깝다. 김훈은 역사적인 진보에 대해, 그리고 인간에 대해 늘 회의적이었다. 역사는 대책없이, 혹은 주책없이 반복된다. 세계는 인간 없이 시작되었고 또 인간 없이 끝날 것이다. ( 레비스트로스, 슬픈열대 ) 그는 조선시대 민초의 비참에 대해 말하지만 사실은 현대인에 대한 비참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소설 < 흑산 > 은 < 자산어보 > 를 쓴 정약전이 머문 유배지'이다. 김훈은 < 칼의 노래 > 첫 문장에서 "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 라고 썼지만, 유배된 섬 흑산은 그나마 꽃조차도 피지 않는 캄캄한 섬'이었다. 명민한 학자였던 정약전은 바로 이곳에서 59세의 나이로 쓸쓸하게 죽어간다. 인간에 대한 희망은 버린 채 비린내나는 물고기를 관찰하다가 생을 마감한 것이다. 그는 왜 인간에 대한 탐구가 아니라 어류 생태에 대한 글을 썼을까 ? 그것은 인간에 대한 깊은 환멸이 아니었을까 ?



어부의 자식들은 정약전에게서 글을 배웠다. 배움이 얕은 어부의 아이들에게 가르친 것은 천자문과 < 소학 > 이 전부였다. 정약전은 아이들에게 글( 語,文,學)을 가르쳤고, 어부는 자기 자식에게 글을 가르쳐준 대가로 생선을 주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말(語)과 물고기(魚)는 서로 등가교환이 성립된다. 결국 말'이란 밥(벌이)보다 가치가 높지도 낮지도 않다. 말은 밥이다. 인간답게 살기 위한 배움은 그것으로 족하다. [ 소학 ]의 가르침은 물 뿌려서 마당 쓸고 부르면 응답하는 것이다. 이치와 도리, 그리고 배움은 이처럼 간단한 것이다. 하지만 권력을 탐하는 자는 말을 배워刀로 쓰거나 말에서 力을 얻으려고 한다. 물 뿌리고, 마당 쓸고, 부르면 방긋 웃으며 답하는 것으로 족한 것을 말이다.



한 사내가 있었다. 그는 하루종일 비린내나는 물고기와 놀았다. 흑산은 봄이 오면 꽃 피지 않았으나 가을에는 공중에도 소리가 있어 잎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가을에는 바닥이 잘 보인다. 문태준 시인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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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3-06-28 공감(16) 댓글(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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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소설이 아니다.




지난 주에 카인을 읽은 이후로 갑자기 소설에 꽂혔다. 난 소설을 잘 안 읽는 편이다. 소설보다는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쪽의 책을 선호하는 편인데 예전에 사놓고 아직도 읽지 않았던 흑산이 눈에 들어왔다. 김훈의 소설 중에서 남한산성과 칼의 노래에 대한 기억이 꽤 좋았기 때문에 흑산에 대한 기대도 어느 정도 있었다. 게다가 천주교의 박해를 다룬 이야기이기 때문에 어떻게 이 종교적인 문제들을 풀어나가려나 궁금하기도 했다.



한장한장 넘겨가면서 무엇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흑산이라는 제목이 붙었기 때문에 나는 흑산도에 유배되었던 정약전의 일대기를 다룬 이야기겠거니 생각했다. 평소 순교하면서 신앙을 지킨 정약종보다는 다산 정약용에 대한 PR을 더 많이 하는 천주교의 모습이 이상하게 느껴지던 차에 도대체 김훈이라는 사람은 도대체 천주교의 박해에 대해서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나갈 것인가 궁금했는데 이 책은 정약용은 물론 정약전에 대해서도 그렇게 비중있게 다루지 않는다. 정약용은 소설에서 잠시 스쳐가는 사람으로 등장하며, 순교로 자신의 신앙을 지켰던 정약종도 그렇게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물론 흑산도에 유배되었던 정약전의 삶도 그다지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고 있다. 마지막까지 정약전의 이야기가 등장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본다면 곁다리일 뿐이다. 오히려 김훈은 천주교의 이름모를 신자들, 천주교를 고발하기 위해 잠입했고, 자신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자기 여동생마저도 죽이는 선택을 한 박차돌의 삶에 대해서 자세하게 이야기한다. 길갈녀, 아리, 강사녀와 같은 민초에 대해서 비중있게 다룬다.



김훈이 비중있게 다루는 것은 민초만이 아니다. 대비에 대해서도 생각보다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중간중간 끼어드는, 어찌보면 빼버려도 이야기의 흐름에 큰 지장을 주지 않는 대비의 교서와 언행에 대해서 자세하게 다룬다. 또한 흑산도의 별장이라는 쥐꼬리만한 권력을 가지고 마음껏 휘두르고 있는 오구칠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다룬다. 책의 절반이 넘어갈 무렵, 나는 이 책은 소설이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다. 소설의 형태를 띄고 있지만 그 어느 책보다도 더 묵직한 정치적인 메시지를 던진다. 칼의 노래가 그랬고, 남한산성이 그러했듯이 말이다.



이 책의 묵직한 메시지는 206페이지의 아래의 대목에 명확하게 드러난다.



대비전의 조회는 대체로 그렇게 끝났다. 대비는 자신의 말의 간절함으로 세상을 바로잡을 수 있고 백성을 먹일 수 있다고 믿는 모양이었다. 신료들은 그렇게 느꼈다. 대비의 말은 곡진하고 다급했다. 대비는 자신의 그 다급한 말과 간절한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을 이해할 수가 없는 듯했다. 신료들은 대비가 내린 자교를 읽으면서 눈물겨웠다.



왜 그럴까? 이 책을 읽으면서, 대비를 보면서 누군가 생각이 나는 것은? 같은 여자라서가 아니다. 사고의 틀과 주장하는 형태가 정말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간곡한 말과 생각으로 간절히 원한다면 우주가 나서서 도와줄 것이라는 사고 방식을 대비를 통하여 보게 된다. 자신은 그렇게 간절히 원하고, 백성들을 잘 다스리려고 하는데 왜 현실이 바뀌지 않는가? 이 부분에 대해서 다른 각도에서 생각하지도 못하고, 밑에 있는 신하들이 아뢰지도 못한다. 혼자 끙끙 싸매다가 머리가 너무 아픈 나머지 짱아지와 굴비만 들이라는 대목에서는 속에서 불이 올라온다. 신하들은 "대비마마 통촉하여 주시옵소서."라는 말을 지껄이겠지. 무엇을 통촉해야 한다는 말인가?



문득 정약현이 사위 황사영에게 했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잊지 말거라. 육손이는 그의 아비와 어미가 낳은 아들이다." 곤장을 맞고, 주리를 틀리면서도, 목이 베어지면서도 믿음을 포기하지 못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리라. 언제 한번 사람 대접 받아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사람 대접해준다는 것! 한번 이런 대접을 받으면 평생 떠나지 못하겠지? 김개동이와 육손이가 그랬던 것처럼...



이야기가 잠시 곁으로 샜지만, 갑갑하다. 정약전의 마음을 내리 누르는 흑산이 여기에 있는 것 같고, 박차돌을 이용하면서도 끊임없이 의심하는 포도대장이 여기있는 것 같다. 백성들의 삶을 돌아보지 못하고 동떨어진 간곡한 말만 해대는 대비가 여기 있는 것 같고, 대비의 전교를 전하는 세 방울의 딸랑 거리는 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 같다. 더 암울한 것은 흑산을 자산으로 바꿀만한 조짐이 지금 우리에게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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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6-05-11 공감(16)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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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자의 실존




전작주의는 아니지만 김훈 작가의 작품은 나름 꽤 읽어 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던 것이 <내 젊은 날의 숲>을 끝으로 한동안 그의 작품을 읽지 못했다. 나는 그 작품을 읽기도 했지만 출간 당시 강연회도 참석 해서 거기서 작가의 다음 작품에 관해 들을 수가 있었는데 그게 바로 <흑산>이었다. 물론 그때는 구체적으로 제목을 언급했던 것은 아니지만, 천주교 박해 관한 소설을 쓰게 될 것 같고, 쓰게 된다면 죽음을 각오하고 신앙을 지키는 쪽이 아닌, 목숨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신앙을 버릴 수밖에 없는 사람의 입장을 쓸 것이라고 했다. 그때 나는 확실히 작가답다고 생각했다. 들어나지 않는 이면의 것을 쓰는 것이 김훈 작가의 글 쓰는 방식은 아닌가. 독자는 자신과 너무 동떨어져 있어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만만히 보이는 작가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아무튼 그런 내가 <내 젊은 날의 숲> 이후로 그의 작품을 읽지 않게 되었다. 그는 약속을 지키듯 <흑산>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물론 나의 게으름 탓도 있지만, 난 왠지 <내 젊은 날의 숲>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도 오래 전에 읽어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뭔가 미흡하고, 미진했다. 게다가 <흑산>에 대한 평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읽었던 작품이 마음을 채우지 못하면 아무리 좋아하는 작가여도 다음 작품을 선택하기란 꺼려진다. 그런 내가 몇 년만에 그의 작품을 읽는다.



읽고나서 역시 김훈이다 했다. 작가는 살아 있었다. 아마도 그는 역사 소설을 쓸 때가 가장 그답지 않나 싶다. ‘화장’도 좋고, ‘언니의 폐경’도 좋은데 다 그것에는 못 미친다. 하지만 그가 역사 소설만 썼다하면 따라오는 오명이 있는데 그것은 ‘마초’다. 여자가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나와도 그저 작품의 부속품 정도로 나온다고 해서 마초라고 해야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렇게도 찌질한 마초도 다 있을까?



인간의 세계에서 신앙을 가진 게 죄라면 죽음으로 그 죄값을 치르는 것도 좋은 일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그 또한 마초가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찌 사내대장부가 죽음을 두려워 할까. 그러나 그렇게 해서 죽는 거라면 그건 허세일 뿐이지 진정한 의미에서의 순교는 아닐 것이다. 어찌 사람의 생과사를 마초에 비할까. 그래서 살면 마초가 아닌 것이고, 죽으면 마초가 되는 것인가? 그것처럼 어리석은 이분법이 어디 있겠는가. 그는 말했다. 마초는 허세로서 자신의 문학을 단순히 그렇게 부르지 말아 달라고. 이건 모르긴 해도 초기 그의 문학을 평했던 평론가들이 부르기 좋은 말로 그렇게 불렀던 것은 아닐까 싶다. 그러므로 마초하면 김훈이란 등식은 이제 성립하지 않는다. 그저 남성의 고독한 실존을 그렸을 뿐이다.



남들은 순교라는 이름으로 죽어갈 때, 그 누군가는 배교로 목숨 하나를 구했다. 그리고 순교하는 신도를 지켜 본다는 게 마음 편한 일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작가는 바로 이 점을 주목하여 본 것이다. 그렇게 구차한 목숨 하나 구했다고 어찌 배교했다고, 비겁하다 할 수 있을까? 나도 신앙인이지만 박해로 인해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면 쉽게 그렇게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오히려 이렇게 교회 다니기 좋은 시대에 그 안에서 온갖 비리의 냄새를 풍기고도 그것이 배교인지도 모르고 교회를 다니는 게 더 문제는 아닐까.



책을 읽다보니 내가 미처 생각해 보지 못한 것이 있는 것을 알았다. 배교했다고 해서 다 살아남는 것도 아니라는 것. 배교는 배교대로 하고 끝내 목숨을 잃는 사람도 있더라는 것. 그들은 이승에서도 구원을 받지 못하지만, 저승에서도 구원을 받지 못한다. 그 영혼은 또 얼마나 비참하고 불쌍한 것인가. 나는 어떨까? 나는 신잉인으로 죽으면 부활을 믿고, 천국의 소망이 있지만 그런 박해의 시대에 감히 야소를 믿었다는 이유만으로 사학죄인이 되기를 기꺼워 할 수 있을까? 감히 상상할 수가 없다.



지금도 이 지구 어디에선가는 예수 믿는데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곳이 있다. 즉 순교자가 있다는 말이다. 나는 가끔 교회 다니는 게 비정상 같다는 생각도 든다. 교회는 병든 사람이 위로 받자고 다니는 건데 죽기를 강요 받고, 겁박하는 곳이 교회여야 한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래서 박해가 일어나면 가장 먼저 배교할 사람이 나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순교는 확실히 신비다. 그것을 아무리 이해 하려고 해도 이해할 수가 없다. 때로 믿음을 이해의 영역에서 어떻게든 해결해 보려고 하는 건 얼마나 무모한가.



복음이 전파되려면 그곳에 먼저 피의 순교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참 무서운 분 같다. 그리고 순교의 터 위에 교회는 세워졌다. 내가 죽어야 구원을 받을 뿐만 아니라 나의 후손과 공동체가 구원을 받는다. 아마도 이 마음 가지고 순교하지 않았을까? 생명은 나 하나만을 생각하면 결코 버릴 수 없는데, 나의 후대와 공동체를 생각하면 버릴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리고 이를 몸소 보여주신 분이 또한 예수가 아닌가.



배교하고 살았다고 그를 쉽게 비겁자라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때는 박해를 피하려고 배교가 불가피 했는지 모르지만 모든 건, 이 또한 지나간다. 박해 후 또 신앙을 회복했는지 누가 알겠는가. 아니 그는 배교했을지라도 그의 후손은 신앙을 받아 들였는지 알 수 없다. 그건 그저 그 사람의 실존인 것 같다. .



소설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배교자로서 순교자와 배교자들을 지켜 본 정약전은 그냥 그 시대를 담담히 살아낸 실존주의자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배교자가 되어 가정을 지켜내는 가장이길 바랐을 뿐이다. 그것이 실질적인 명분이었는지 아니면 살기 위한 핑계였는지 우리는 알 수가 없다. 아무튼 그것이 김훈이 말하는 마초와 가부장의 차이일 것이다. 그는 또 말했다. 가부장이 오늘 날 잘못 왜곡되어서 그렇지 진정한 가부장은 가문과 식솔들을 지켜낸다고. 그 옛날 가장들은 가정과 식구를 지켜내지 못한 것을 치욕이요 불명예로 여겼다. 눈 앞에서 오랑캐에 끌려가는 자신의 아내와 누이와 어린 자식을 지켜보면서 울부짖지 않을 가장이 어디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의 가부장은 나름의 독특함으로 발전하고 왜곡되어져 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책을 읽으면서 잠시 세월호 선장을 생각했다. 점점 바다속으로 빠져들어가는 갑판의 끝에 매달려 구조 받던 그 선장은 지금 어떻게 됐을까? 그는 책임자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한 건 심판 받아 마땅하지만, 난 그때 그것을 보면서 왠지 그의 앞날이 걱정스러웠다. 이해관계를 떠나 그는 본능적이고 원초적으로 살고 싶어했을 것이다. 그건 누구라도 마찬가지다. 비난을 받던, 벌을 받던 그건 나중의 일이다. 그가 바보가 아니라면 구조 받던 그 순간 자신이 앞으로 어떻게 될 건지를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을 감수하고라도 살고 싶었을 것이다. 살아야 그 다음도 도모할 수 있다. 아니면 얻어 걸렸다고 수장됐어야 할 목숨이 얼떨결에 구조되었던 걸까?



아무튼 그는 세월호의 희생자수만큼이나 죽어 마땅하지만 생으로 귀환한 그는 누군가의 남편이고, 아비며, 늙은 부모의 자식일 것이다. 다른 사람은 그를 비난하고 욕해도 그의 가족들은 그를 비난할 수 없고, 그렇게라도 살아 있음을 다행으로 여길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그들을 어떻게 비난할 수 있을까. 심판 이후 모든 것은 그와 그의 가족들이 감당해야 할 몫일뿐 우리는 어떤 것도 그에게 그 이상도, 그 이하의 것도 바랄 수가 없다. 모르긴 해도 그는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 세월호 희생자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그게 그에게는 앞으로의 실존이고, 삶의 몫인 것이다. 배교자는 배교자의 삶이 있는 것처럼.



난 김훈의 문체를 좋아한다. 그의 문체는 아름다운 것도, 시적이지도 않다. 특히 이 작품은 피와 살점이 툭툭 패이는 것만 같다. 또한 적절히 녹아있는 성애장면이 묘한 대조를 이룬다. 그런 것을 보면 사극 같은데서 등장인물이 추국을 당하고 그 다음 장면에서 사지육신 멀쩡한 것으로 나오는 걸 보면 참 이미지가 문자를 못 따라 가는구나 싶기도 하다.



그의 문장은 한번도 성공한 사람을 대변하거나 표현해 준 적이없다. 쓰는 것마다 실패하는 자를 대변하고 그의 고독하고도 처절한 실존을 표현해 왔다. 어설픈 성공보다 차라리 처절한 실패가 더 났다는 말은 그의 작품을 두고 하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그는 실패하는데 성공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작가다. 그는 독자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그래서 난 그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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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6-08-07 공감(14) 댓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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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큰 얘기




어떤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 사람이 하는 이야기의 내용이 아니라 그 사람의 목소리가 귀와 마음, 머리 전체를 채울 때가 있다. 그것은 좋다, 나쁘다,의 가치 판단과는 동떨어져 있다. 그냥 조용히 나는 귀를 기울이고 그 사람의 소리에 잠긴다.

사랑도 그렇게 시작될 때가 있다. 전화선 너머 미성은 정작 만났을 때 복실복실한 외모와 어긋났지만 그래도 그것으로 족했다. 눈은 보라고, 귀는 들으라고, 코는 냄새 맡으라고 주어졌으니 그것에 충실한 것을 근시안적이고 감각적이라고 폄하할 일이 아니다. 그 사람이 너무 이뻐서, 몸에서 나는 향내가 좋아서, 목소리가 근사해서 사랑에 빠지는 일이 그러하다.

김훈이 <칼의 노래>로 나타났을 때 문단은 벼락을 맞은 느낌이었다고 한다. 그의 문장 하나 하나는 곰이 동굴에서 100일을 마늘로 버텼듯이 철저하게 벼리고 또 벼린 쌉쌀한 맛이 났다. 그의 목소리를 빌리면 이야기는 하나의 완강한 사실이 되어 눈 앞에 떠올랐다. 그는 언제나 사실을 보고하고 고발하는 지점에서 물러나려 하지 않았다. 문체가 서사를 앞지른다,는 말은 칭찬이기도 하고 한계점에 대한 비판이 되기도 했다. 유독 그의 문체가 빛을 발한 작품들이 역사적 사실들을 소재로 한 경우가 많았다는 점은 이를 방증한다.

처음 이 작품을 접했을 때 신유사옥으로 흑산도에16년간 유배되었다 그곳에서 생을 마친 정약전의 얘기가 주를 이룰 것으로 기대했다. 물론 정약용의 형인 약전의 얘기는 중심 가지를 이룬다. 하지만 그 곁가지들에 김훈의 시선은 가 있다. 시대 너머, 이 생 너머를 기약하는 지점에 천주학을 걸어 놓고 부단히 이 생에서 투쟁하다 때로 꺾이고 스러져간 이름 없는 이들에 대한 얘기. 왜 살아야 하는지 왜 죽어야 하는지 자문하는 것은 언제나 조금은 위험하다. 단순하고 명료한 진리들 앞에서 매혹당해서는 왜 안 되는지를 미처 묻기도 전해 숱한 이들이 그 질문 속에 묻히고 말았다. 그들이 산화한 지점에서 우리는 타락한 것들에 후달리고 있다.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것은 가장 쉬운듯하면서 용단이 필요한 일이다.

김훈은 언제나처럼 버석거린다. 때로 그의 목소리가 너무 도드라져서 그것이 싸안을 이야기들이 울툭불툭 비어져 나온다. 그래서 아쉽기도 하고 그래서 그답다,고 수긍하기도 한다. 숱한 목숨이 내던져진 절두산 아래 닿아 있는 자유로를 달려 귀가하며 그는 이 이야기를 구상했다, 고 한다. 언어의 한계를 직시하고 그 너머로 부단히 시선을 던지는 작가의 진정성이 담보된 이야기다. '나는 말이나 글로써 정의를 다투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그의 고백은 뭉클하기도 하고 실망스러운 것이기도 하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그러한 것처럼 조금씩 밖에 더 나아갈 수 없는 우리들은 실재라고 믿는 것을 향해 생을 내어던질 수 있는 그들의 얘기 앞에서 감히 말을 잃고 만다. 너무나 큰 얘기. 언제 누가 들어도 가슴 저릿한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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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1-11-15 공감(24) 댓글(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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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김훈의 숙명적 현실주의에 대하여








지난 연말 김훈의 <黑山>을 읽었다. 그의 <내 젊은 날의 숲>을 읽으면서 이제 더 이상 김훈은 장편을 쓰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그 소설은 김훈의 창작소설이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이다. 탁월한 문장에 비해 그에게는 서사적 상상력이 매우 빈곤하다. 하지만, 이번 소설 <흑산>은 역사적 사실로부터 출발하는 김훈식 장편의 특장이 다시 한번 발휘되고 있다. <칼의 노래>에서 <현의 노래>, <남한산성>으로 이어지는 김훈식 역사소설. 고독한 무사(이순신)에서 패배한 예술가(우륵), 그리고 불가피하게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정치가들(최명길 등)에 이어 유배자들(정약종, 정약전, 정약용 형제들)을 불러와 또다른 김훈식 인물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순신이 남긴 <난중일기>, 궁녀가 쓴 <산성일기>가 전작들의 밑그림이 되었듯이, 이번 소설은 조선후기의 천주교 탄압의 상징적 인물인 황사영이 남긴 <황사영 백서>가 밑그림이 되고 있다. 인터넷에서 쉽게 번역 전문을 구할 수 있는 황사영 백서는, 일종의 탄원서이기는 하지만 분량으로 보나 내용으로 보나 거의 장편소설이다. 허구라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내력이 주된 내용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황사영 백서를 읽으면서 그의 기록과 사람에 대한 열정에 새삼 놀랐다. 아마도 목숨이 달린 문제, 그것도 여럿의 생과 사가 갈리는 절박의 순간에 쓰여진 글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글에 감동이 없을 수 없다.




<흑산>에서 다시 한번 도드라지는 것은 ‘숙명적 현실주의’라고 명명해야할 김훈식의 세계관이다. 정약용 형제들이 생존하던 당시 조선의 봉건적 질서는 일종의 자연적 질서다. 자연적 질서속에서 뭇 생명들은 제각기 제 몫의 삶을 살게 마련이다. 불합리한 현실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극복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적응하고 수용할 수 있을 뿐이다. 인간의 의지와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저 준엄한 자연의 질서. 김훈의 인물들은 바로 그러한 자연적 질서를 ‘숙명’으로 수락하며, 그 안에서 제 몫의 삶을 살아간다. 어떤 명분과 가치를 내세워 이 질서를 전복시키거나, 그 현실을 초월하려는 의지는 모두 헛된 시도다. 사람이 봄이 오면 꽃이 피고 가을이면 열매를 맺는 자연적 질서를 거스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천주교 탄압에 나서는 대비가 “사학의 요설이 들불처럼 펴져서 군왕을 능멸하고 신주를 불살라서 제사를 폐하고 있다”며 신자들을 죽이고 가족을 멸하는 것도 마땅한 노릇이다. 조선 봉건사회의 지배자로서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흑산도에 유배된 정약전은 고독하고 격절된 유배생활을 그에게 주어진 남은 삶으로 알고 살아간다. 그러니, 가서 바다를 보고 물고기를 살펴 제 몫의 삶이 낳은 결과로서 <자산어보>를 펴내고, 과부와 통정하고 아이를 낳고 산다. 천주교 신자인 황사영은 하느님의 종으로서 어린 양들을 위해 북경의 신부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백서를 쓴다. 노비였던 육손이와 마부 마노리도 신분적 질서의 맨 끝에 위치한 자들답게 주어진 노동을 하다 죽는다. 천주교가 극심한 탄압을 받던 조선후기의 이 땅은 앞이 안보이는 캄캄한 세상[黑山]이지만, 이러한 삶들이 당대가 허용한 삶의 최대치이므로 어찌할 도리가 없이 그저 살아가는 것이다.




김훈이 서슬퍼런 5공화국 당시에 당시 신군부를 빨아주는 기사를 아무런 저항 없이 혼자 다 썼다고 고백하거나, 시사저널 사태가 났을 때 파업하는 기자들을 제치고 발행인이 알바들을 고용해 짝퉁 시사저널을 펴냈을 때, 발행인으로서는 불가피한 “결호방지용”이라고 말할 때, 개발바닥의 굳은 살을 보며 맨발로 다녀야 하는 개의 숙명을 사유할 때, 자전거를 끌고 제 발과 허벅지의 힘으로 페달을 밟을 때, 불륜을 다룬 소설을 읽고 한번도 외간 여자와 인연을 만들지 못했다는 것을 고백할 때, 김훈의 삶과 소설이 보여주는 그의 세계관은 한치의 빈틈없이 일치한다.




그의 숙명적 현실주의가 나쁘다는 게 아니다. 전망 부재라거나 극복의지가 없다고 타박하려는 게 아니다. 그렇다고 그의 현실주의가 훌륭하다는 것 역시 아니다. 그냥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김훈이라는 얘기다. 그의 소설을 읽고 어떤 답답함이 느껴졌다면 아마도 그것은 소설의 바탕을 이루는 이러한 세계관 때문이 아닐까라는 것이다. 거창한 명분과 거짓 선지자가 득세하고, 과장된 수사와 삶에 대한 미화가 미덕처럼 여겨지는 상황에서라면, 김훈의 현실주의는 차라리 우뚝할 수 있다. 정약종이 참수되고, 황사영이 능지처참을 당하는 상황에서 동생 정약전은 흑산도의 포구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 “소학의 가르침은 물 뿌려서 마당 쓸고 부르면 응답하는 것이다. 元亨利貞은 하늘의 법칙이고 仁義禮智는 인간의 본성이다.” 하늘의 법칙과 그에 대응한 인간의 본성, 자연의 질서(숙명)과 인간의 삶(현실주의)는 그렇게 이 책의 결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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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사이 2012-01-05 공감(23) 댓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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