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타니 고진, 칸트 사유로 마르크스를 읽다]
입력 : 2013.10.10 10:01:13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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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크리틱'…8년 만에 새 번역본 출간
일본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사상가이자 비평가인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72)의 주저 가운데 하나인 '트랜스크리틱'이 번역돼 나왔다.
한동안 국내 학자들이 가장 많이 인용한 외국 학자로 꼽혔던 가라타니는 '인문학계의 무라카미 하루키'로 불린다.
이 책은 2001년 일본에서 출간되자마자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2005년 우리말로 옮겨졌고, 그간에 수정된 내용을 반영해 8년 만에 새로운 번역본이 출간됐다.
이 책은 비평가로서가 아닌 사상가로서의 가라타니가 본격적으로 자신만의 독창적인 이론적 체계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는 저술이다.
직역하면 '초월론적 비판'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책은 '칸트와 맑스'라는 부제가 가리키듯 칸트와 마르크스라는 대단히 이질적인 두 철학자를 소통시키려는 시도다.
가라타니는 이 책에서 칸트로 마르크스를 읽고 또 마르크스로 칸트를 읽는 작업을 감행한다. 요컨대 관념론의 대가와 유물론의 대부를 결합시킨다.
가라타니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급격하게 부정하면 그보다 훨씬 지독한 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면서 "20세기에 공산주의가 초래한 비참한 귀결을 잊어서는 안 되고 그 오류를 우연적인 것으로 간주해서도 안 된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경제학자들이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단지 경제학 책으로만 본다는 사실과 루카치나 알튀세르 같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자본론'을 자신들의 철학적 관심으로 환원해버리는 데 대해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자본주의 경제·국가에 대한 계몽적 비판이나 문화적 저항에 만족하지 않고, 근본적으로 자본주의를 사유하는 과정에서 칸트를 재발견했다는 그가 시도한 일은 마르크스를 칸트적 '비판'에서 다시 생각하는 것이다.
칸트의 논의에서 사회주의적 야심을 확인한 가라타니는 칸트와 마르크스를 잇는 연결선을 찾으려는 시도 속에서 '자유롭고 평등한 생산자의 연합사회'라는 '가능한 코뮤니즘'을 꿈꾼다.
"이 책에서 나는 국가가 단순한 상부 구조가 아니라 자율성을 가진 주체라고 쓰고 있다. 그것은 국가가 무엇보다도 우선 다른 국가에 대해 존재한다는 점에서 온다. 따라서 다른 국가가 있는 이상 국가를 그 내부로부터만 지양할 수는 없다. 그런 까닭에 한 나라만의 혁명은 있을 수 없다. 맑스도 바쿠닌도 사회주의 혁명은 '세계 동시 혁명'으로서만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중략) 칸트의 '영원한 평화'를 위한 구상은 단순한 평화론이 아니라 이를테면 '세계 동시 혁명'론으로서 구상되었던 것이다."('지은이 후기'에서)
슬로베니아 출신의 세계적인 철학자 슬라보이 지제크는 이 책에 대해 "현대 자본 제국에 대한 대항의 철학적·정치적 기초를 다시 주조하는 가장 독창적인 시도 가운데 하나"라고 평가했다.
프레더릭 제임슨은 "이 책은 맑스주의와 아나키즘을 새롭게 종합함과 동시에 맑스와 칸트를 새롭게 연결시킨 지극히 야심적인 이론적 대작"이라고 말한다.
도서출판 b가 펴내는 '가라타니 고진 컬렉션' 아홉 번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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