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03

한국현대문학의 언어, 그리고 ‘포스트 포스트콜로니얼’ 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

한국현대문학의 언어, 그리고 ‘포스트 포스트콜로니얼’
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

1. ‘포스트콜로니얼’이라는 아포리아

지난 20년 동안 한국의 현대문학연구는 이른바 탈식민주의, 포스트콜로니얼리즘에 의해 ‘조
정’되어 왔다. 그러나 이 말은 확실히 불완전한 것이, 동시에 국문학계는 새로운 식민주의에 의해서, 즉 일본은 한국보다 앞서 근대화를 이룬 사회이고 이 등급과 서열은 고정적이며 한국 은 일본이 이룬 근대를 따라가며 모방하고 있을 뿐이라는, 마찬가지로 한국현대문학이라는 것 도 일본근대문학의 모방, 틀림없이 미달이거나 과잉인 ‘차이화’일 뿐이고, 더 나아가서는 서양 근대가 세계를 균질화 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후행적 현상일 뿐이라는 시각이, 한국현대문학의 고유성, ‘특이성singularity’을 탐구하려는 시각에 비해 ‘우세종’인 것처럼 취급되어 왔기 때문 이다.
현대시 연구자 신범순은 사석에게 필자에게 한국현대문학이 일본근대문학의 아류일 뿐이라
고 사고하는 것, 또는 일제시대 한국 문학인들이 현대탄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보는 시각은 그 연구자의 콤플렉스를 일제시대 문학인들에게 투사한 것일 뿐이라고 강하게 주장한 다. 한국이 일본보다 열등하며 한국현대문학은 일본현대문학 또는 일본을 경유해 들어온 서구 근대문학의 모방 또는 차이화에 지나지 않는다는 콤플렉스는 일제시대 문학인들의 것이 아니 라 바로 이 시대의 그 연구자들의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필자는 신범순의 생각에 ‘거 의 전적으로’ 동의해 마지않는데, 오늘날 일제시대 한국현대문학을 일본문학의 모방, 아류로, 일제말기 문학을 일본적 논리를 내면화한 것으로 이해하는 방식, 일제시대의 언어적 상황을 이중어diaglossia 시대로 인식하는 데서 더 나아가 일제말기에 나타난 일본어 소설을 국책문 학, 어용문학의 허위적 이데올로기가 현현된 것으로 보려 하지 않고 그 어떤 내면적 심연 또 는 문학적 진실을 품은 것으로 진지하게 분석하는, 그리하여 일제 말기를 일본 국민문학의 지 방화를 보여주는 단계로 간주하고 이 제국적 문학 체제가 얼마나 심층적으로 진행되어 왔는가 를 ‘세밀하게’ 논증하려는 연구들은 그들이 공식적, 비공식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어떤 위계의 이념, 그 윗단을 일제와 동시대 일본이 차지하고 아랫단을 한국이 할당받았다는 신념에 의해 추동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만만찮은 추진력으로 인해 오랫동안 한국현대문학 연구의 거대 프로젝트 공모들을 이 연구들이 차지한 것은 물론이고, 여러 부대 현상들 속에서 일제시대 한 국문학연구는 일본현대문학의 한 지방문학연구처럼 취급되는 양상까지도 나타났던 것이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이름난 저술 『오리엔탈리즘』을, 지배는 지배할 수 있다는 의식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므로 이것을 끝내는 일 역시 의식으로부터 비롯되어야 한다는 취지의 경구로 시 작한다. 의식이냐 무의식이냐를 따질 것 아니라 위계의 인식, 지배할 수 있다는 인식, 그들은 ‘근본적으로’ 우월하다는 인식, 식민지민은 지식인, 문학인들도 모방과 차이화 외에는 어떤 다 른 창조를 이루기 어렵다는 인식은 한국현대문학을 독자적인 현상으로 취급할 수 없게 할 것 이  물론이다. 그리고 지금 한국현대문학연구는 이러한 연구 경향에 의해 ‘오염’되어 있다.

『탈식민주의 이론 An Introduction to Post-colonial theory』(1997)의 저자들(피터 차일 즈Peter childs, 패트릭 윌리엄스Patric Williams)은 그들이 처음부터 거론하고 있는 『포스트 콜로니얼 문학이론 The Empire Writes Back』의 저자들(빌 애쉬크로프트Bill Ashcroft, 개레 스 그리피스Gareth Griffiths, 헬렌 티핀Helen Tiffin)보다는 담대하지 ‘못해’ 보인다. 그러나 그들은 한편으로 탈식민주의 담론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를 시도하면서 ‘탈식민’은 언제인가? 어디인가? 누구인가? 무엇인가? 등등의 질문을 전개하여 그 답을 구한다. 필자가 이 글에서 이들의 논의를 참조하고자 하는 것은 언제인가? 하는 문제와 관련해서다. 그들은 “탈식민이라 는 용어의 명백한 함의는 식민주의의 종말 이후에 도래한 시기를 가리킨다는 것”이라는 말로 시작하지만 문제가 보다 복잡함을 드러낸다. 그들은 『포스트콜로니얼 문학이론』의 저자들의 시기 개념에도 만족스러워하지 않는다. 그 저자들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포스트콜로니얼’이라는 용어는 식민주의 시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제국 주의적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모든 문화를 포괄하는 통칭적 개념으 로 사용된다. 왜냐하면 ‘포스트콜로니얼’이라는 용어는 유럽의 제국주의적 침략 이 촉발한 일련의 유럽적 야심을 역사적 과정을 통해 반영하는 용어일 뿐만 아 니라 근자에 출현한 새로운 ‘통문화적 비평 Cross-cultural criticism’과 그 담 론의 구성적 특질을 드러내는 데 가장 적합한 용어이기 때문이다.1)

“식민주의 시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라는 표현은 이 저자들이 품고 있는, 식민주의에 대한 철저한 반감 내지 ‘근본주의적’ 태도를 나타내지만 대신에 피터 차일즈 등이 논의하듯이 너무 단순하다거나, 광범위해서 실질적인 효용성이 없다는 비난에 직면할 수도 없지 않다. 피 터 차일즈 등은 잔모하메드Abdul JanMohamed가 이 긴 시기를 ‘지배적인dominant’ 시기와 ‘헤게모니적 Hegemonic’ 시기라는 두 개의 ‘단계’로 나누기도 했음을 지적한다. ) 그들은 『포 스트콜로니얼 문학이론』의 저자들이 “연대기적인 용어로 고정시키기 어려워 보이는 글쓰기 형 태로서의 탈식민주의를 선호한다는 점에서 모더니즘(그리고 그 뒤를 이은 포스트모더니즘)이 하나의 역사적 시기로 이해될 수 있는지, 아니면 문학적, 문화적 스타일로 이해될 수 있는지 에 관련된 오래된 논쟁을 상기시킨다” )라고 한다. 

그들은 1950~60년대에 많은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들이 유럽 직접 지배에서 독립한 후에도 
지속된 식민주의에 관해서 신식민지의 등의 개념을 활용하여 논의한 뒤 탈식민주의의 시간성 에 관해 다음과 같이 논의한다.

“탈식민성은 언제 끝날 것인가? 탈식민은 얼마나 오랫동안 계속될 것인가?” 이는 적절한 질문이며, 시기 구분의 문제를 포함한 것이다. 만약 ‘탈식민은 언제 인가?’로 시작한 질문에 대한 ‘명백한’ 대답이 ‘지금’이라면, 그리고 『제국은 되 받아 쓴다』(=『포스트콜로니얼 문학이론』)의 ‘어려운’ 대답이 ‘그때와 지금’이라면, 대안적인 대답은 ‘아직’ 완전히는 ‘아니다’일 것이다. 우리가 이미 말했듯이, 탈 식민주의는 어떤 의미에서든 완전히 성취된 상태라고 간주될 수 없다.4)
그들은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앤 매클린턱Anne McClintock, 프레드릭 제임슨 Frederic Jameson, 가야트리 스피박 Gayatri Chakravorty Spivak 등의 논의를 인용하고 있으며, 나아가 이러한 식민성의 잔여적 ‘지속’을 설명하기 위해 ‘구조주의-후기구조주의’ 식 의 논법을 이끌어 들이기도 한다.

후기 구조주의 역시 ‘포스트’가 정당하게 포함하고 있을지 모르는 ‘아직 완전
히는 아님 not-quiteness’의 의미를 제공한다. 『글쓰기와 차이』에서, 주도적인 후기 구조주의 사상가 자크 데리다 Jacques Derrida는 구조주의가 특수한 ‘전망 vision’이나 질문을 정식화하는 방식을 재현하고 있는 한, 우리는 여전히 구조주 의 ‘내부’에 있다고 말한다. 구조주의와 식민주의를 등치하려는 사람은 분명 아 무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망’이나 강력한 이데올로기로서의 식민주의는 여전히 우리와 함께 심지어 잔인한 형태로 존재하는 한편(최근 몇 년에 걸쳐 영 국과 미국의 신문과 잡지에서 볼 수 있는 아프리카의 재식민화를 요청하는 많은 기사들이 그 증거이다), 서구의 우월성과 중재권이라는 관념은 약화되기는 했지 만 여전히 많은 제국주의적 활동의 근본 가정이다.5)

 이러한 논변은 접두어 ‘post’의 용법과 관련하여 명백하고도 다양한 선례들을 갖고 있고, 필자 자신도 포스트모더니즘이 전적으로 새로운 문화적, 문학적 현상이 아님을 주장하기 위해 그러한 함축을 활용하기도 했다. 이 ‘포스트’가 때로는 ‘탈’로, 또 때로는 ‘후(기)’로 번역되는 것도 그 이중적 함의 때문이다. ‘단절되는 것 같지만 여전히 지속하고 있음’ 같은 ‘양가성’, 
‘동시 존재성’ 같은 현상이나 스타일을 표현하기에 이 ‘포스트’라는 접두어는 유효적절해 보인
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설정 방식은 ‘그때’도, ‘지금’도 매번 일어나는 ‘탈식민적’ 실천을 무위로 돌리거나 나아가 ‘탈식민’ 사회의 역사 자체를 타자화 할 위험을 안고 있다. 이 점에서 『탈식민주의 이론』의 저자들은 자신들이 비판을 가한 『포스트콜로니얼 문학이론』의 저자들만 큼이나 식민주의의 끈질긴 지속을 논변하는 듯하다. 반면에 필자는 단절되는 것 같으면서 지 속되는 ‘탈식민’ 대신에 어느 시점에는 더는 작동하지 않을 ‘탈식민’에 관심이 있다. 

때로는 어떤 책에 인용된 다른 사람의 문장이 매력적으로 보일 때가 있다. 『탈식민주의 이
론』의 저자들은 아이자즈 아마드Aijaz Ahmad를 비판적으로 인용하고 있지만 필자는 오히려 
이 인용된 책 『The Politics of Literary Postcoloniality』(1995)를 읽어보고 싶다. 여기서 아 그는 다음과 같이 논의한다.

전-식민, 식민, 탈식민이라는 세 개의 항으로 역사를 구분하면서 '탈식민 비평' 의 개념적 장치는 식민주의의 역할을, 그 역사를 구조화하는 원리로서 특권화하 게 된다. 따라서 식민주의 이전의 모든 것은 고유한 전사prehistory가 되고 그 후에 온 것은 무엇이건 무한한 여파intinite aftermath로서만 살게 될 수 있다는 점을 논평하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치있는 일이다.6) 실제로 ‘탈식민주의’라는 말은 식민지적 경험을 ‘경유’해 온 사회의 모든 사회, 문화, 역사적 
 
4) 피터 차일즈 외, 『탈식민주의 이론』, 김문환 옮김, 문예출판사, 2004, 28쪽.
5) 위의 책, 29쪽. 6) 30쪽.
현상을 그것에 결부시킴으로써 ‘식민주의’의 영향력을 특권화 하는 경향을 띌 수 있다. 그 사 회의 역사는 식민지 시대를 중심으로 ‘전-식민’ 시대와 ‘탈식민’ 시대로, ‘식민’ 시대를 중심으 로 재해석, 재구조화 된다. 그럼으로써 식민지적 경험을 경유한 사회는 디페시 차크라바르티 Dipesh Chakrabarty가 말한 바 유럽 이외 지역의 역사들은 “유럽의 역사라고 불릴 수 있는 주인 서사master narrative의 변종” ) 서사로 취급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는 한국사가 서구 와 마찬가지로 ‘고대ㅡ중세ㅡ근대’의 삼분법을 그대로 채택하는 등의 현상을 통해서도 방증된
다. 로마 가톨릭의 천년 왕국의 존재를 전후로 하여 고대와 근대를 ‘배치’한 유럽사의 모델을 따라 한국사 연구자들은 왕년에 그와 유사한 삼분법을 취해 왔다. 유일신교로서의 가톨릭이 존재하지 않았던 한국사에서 이 근대는 서양 근대 또는 일본을 경유한 일본 근대의 수용과 더 불어 시작되는 것으로 취급되곤 했다. 한국과 달리 오랜 식민지 경험을 가진 아프리카, 아시 아 사회들에서도 근대는 식민 통치 시기와 ‘겹쳐지는’ 것으로 간주된다. 마르크스는 인도 문제 에 관해 논의하면서 영국에 의한 인도지배가 그곳에서 낡은 생산양식을 해체하고 자본주의적 근대를 도입한 점에서 무조건적으로 진보적이라고 언급하는데, 이는 영국에 의한 인도 식민화 를 유럽적 의미의 근대사 과정의 시작점으로 보는 시각을 드러낸 것이다.

이들 사회에서 근대가 식민화 과정과 동일시된다면 탈식민은 탈근대의 과정과 병행적인 현 상으로 취급되어야 할 텐데, 탈근대를 근대로부터의 단절이자 지속으로 보는 형이상학적 사유 는 바로 그러한 의미에서 탈식민을 결코 쉽게 끝나지 않을 불변의 지속적 과정으로 간주하게 한다. 포스트모던이 모던으로터의 단절이자 지속으로서 끝나지 않는 모더니티의 권능을 역설 적으로 인증해 주듯이 포스트콜로니얼은 콜로니얼리즘으로부터의 단절이자 동시에 그 부단한 지속으로서 콜로니얼리즘의 위세와 그 부단한 재귀의 의미를 함축하면서 포스트콜로니얼한 사 회의 역사를 유럽사라는 중심서사의 변종 또는 귀속으로 해석하게 한다.

2. 포스트콜로니얼리즘과 한국사의 ‘예외성’

이렇게 식민을 근대와 탈식민을 탈근대화 구조적으로 단단히 결부시키는 유럽적 근대의 특 권화는 탈근대처럼 탈식민 역시 끝나지 않는 지배와 피지배, 우세종과 열등종의 구조적 불변 성에 대한 믿음으로 연결된다. 아프리카, 아시아의 탈식민은 직접적 통치의 식민주의에서 간 접적 통치 또는 지배의 새로운 방식으로서의 신식민주의에, 그리고 시대적 여건의 변화를 따 라 현상을 달리해서 전개될 또다른 제국주의적 지배 방식에 의해 종료될 수 없는 과정으로 남 는다. 

한국현대문학연구는 영미 비평 이론이나 일본현대문학 연구 방법론을 직수입, 일방 적용하
는 태도가 너무 일반화되어 있어 학문의 ‘식민성’에 깊이 침습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 아니다. 그러나 식민성의 탈각을 겨냥한 비평이론이라는 포스트콜로니얼리즘조차도 그와 같은 양상을 띠는 것은 정말 아이러니하다. 한국현대문학, 특히 개화계몽기로부터 일제 강점기에 이르기까 지 문학을 서구근대문학의 비서구 지역으로의 공간적 확산 또는 서구 근대의 전지구적 균질화 의 시각에서 분석, 평가하려는 경향은 포스트콜로니얼리즘과는 차라리 관계가 없는 것이지만, 한국현대문학 연구자들은 그런 연구 방식조차 포스트콜로니얼한 것으로 ‘착각’할 뿐 아니라 한국문학 연구에서 포스트콜로니얼한 문제의식이 긴요하다고 보는 연구자들조차도 한국현대문 학의 형성, 전개 과정에서의 특이성에 주목하고 이를 본격적으로 규명하려는 시도를 찾아보기 는 극히 힘들다. 
 
과연 통상적인 포스트콜로니얼 비평이론으로, 그러니까 인도의 아시아나 케냐 등의 아프리 카, 그리고 카리브 해 등의 포스트콜로니얼 문학이론을 한국현대문학 연구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까? 이 문제는 한국현대문학의 특이성에 착목하는 ‘새로운’ 한국학을 구축하는 문제와 밀접히 관련된다. 필자는 한국현대문학이 통상적인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의 접근법으로는 충당 될 수 없는, 적어도 두 가지 ‘예외성’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그 하나는 유럽 제국이 아닌 일본에 의한 ‘강점’된 피식민 기간이 지극히 짧았다는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유럽은 15세기부터 해외로 눈을 돌려 16세기 초에 이미 인도를 위시한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각국으로 진출하고자 하였으며 그로부터 몇 백 년에 걸친 인도의 불행한 근 대사가 시작된다. 이와 관련하여 한 연구자는 다음과 같이 썼다. “16세기 초에는 무갈인들이 육로로 인도를 정복하고 무갈제국이라는 모슬렘 왕조를 건설하였지만, 이보다 조금 앞서 1498 년에는 서구의 기독교인들이 조용히 해로로 인도에 도착하였다. 인도는 몇 세기에 걸친 모슬 렘 지배를 경험한 후, 이제 다시 유럽 기독교 세력에게 면모를 노출하게 된 것이다. 최근 인 도가 독립할 때까지 450년 동안 서구 세력과 맺어온 복잡하고 불행한 관계가 시작하는 첫 해 라는 의미에서 1498년은 인도사에서 하나의 중대한 전환점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 포르투 갈 장교 바스코 다 가마 Vasco da Gama는 1498년 세 척의 배로 리스본을 떠나 10개월 만 에, 아랍인들, 중국인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던 인도 서남해안 국제무역항 칼리커트에 Calicut 에 도착함으로써 인도항로를 개척했으며 이는 인도에 포르투갈 제국을 건설하고자 하는 총독 통치로 이어졌다. ) 그러나 인도 경영의 역할은 곧 홀랜드 등과의 각축을 거쳐 영국으로 바톤 이 넘겨진다. 1600년 말 런던 상인들이 당시 엘리자베스 왕으로부터 동인도 무역의 독점권을 인정받게 되는데 이것이 곧 영국 동인도 회사의 설립이다. 여기서 동인도란 동양 전체를 의미 했으며 이 회사는 그 후 몇 백 년 동안 존속하면서 영국의 제국주의 정책의 첨병 역할을 하게 된다. ) 홀랜드 동인도 회사도 1602년에 설립되어 의회로부터 영토 획득과 축성의 권한까지 부여받아 포르투갈과 치열한 대결을 펼쳤다. ) 영국은 포르투갈과 제휴하는 한편, 17세기 중 엽 이후 인도 패권을 쥐고 있던 홀랜드 세력을 18세기 중엽 이후 구축해 버리고 뒤늦게 진출 한 프랑스와의 대결에서도 승리를 거둠으로써 인도에서의 지배권을 확립할 수 있게 된다. 

영국은 동인도 회사 출범 이후 150년간은 직접 지배나 내정 간섭보다 무역을 통한 상업적 이득을 꾀하는데 머물렀으나 1757년의 플라시Plassey전투 승리를 계기로 인도에 대한 본격적 수탈로 나아간다.12) 동인도 회사의 가혹한 수탈과 벵골 지방의 미증유의 대기근 이래 1773년 의 ‘인도 통치 규제법the Regulating Act’에 따른 총독 정치와 더불어 영국 정부에 의한 긴 통치가 시작된다. 지금 인용하고 있는 『인도사』의 저자는 이후 역사 과정을 총독들의 정책사 로 서술해 나간다. 영국의 인도 통치는 다른 한편으로 버마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시크 전 쟁 등 인도 주위 지역들을 통합해 나가고 있으며 1857년의 세포이Sepoys 반란의 대폭동을 수반하는 것이었다. 이 폭동은 “양측이 모두 무차별한 학살과 무자비한 보복으로 맞선 엄청난 사건이었으며 영국 측에 의해 무력으로 진압되고 말았다.” ) 또, 빅토리아 여왕 치세이던 1858년에는 영국 정부가 직접 통치하는 총독 체제가 새로이 들어서지만 이는 철저히 중앙집 권적이자 일반 국민의 참여는 전혀 배제되었다.14) 1885년 12월 28일에는 인도 근대사에서 아 주 중요한 전환점이 될 ‘국민회의’가 출범하게 되고15) 세계 제1·2차 대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인도는 파키스탄과의 분리를 겪으며 마침내 1947년 8월 15일 독립하게 된다. 그러나 이 독립 은 하나의 ‘민족’이 종교가 다른 두 개의 ‘민족’으로의 분열을 노정한 비극적 과정이기도 했으 며 그 연원은 1903년 커즌 총독의 벵골주 분리조치로 거슬러 올라간다. 벵골주 분리 사태를 자세히 인용하는 것은 이 글의 주제로부터 다소 일탈하는 일일지도 모르지만 분단을 겪으며 두 개의 국가가 분립하고 있는 한반도 상황을 감안할 때 참작할 여지가 있을 뿐 아니라 무엇 보다 ‘민족’ 개념이나 그 함축에 대한 상고를 위해서도 쓸모가 없지만은 않을 것이라 생각한 다.

인도인의 대규모적인 저항운동을 불러일으켰던 사건은 커즌 총독의 벵골 주 
분리조치였다. 당시 벵골 주는 오늘날의 비하르, 오리싸, 벵골 및 동벵골(방글라 데시)을 포함하고 있는 지역이었다. 따라서 벵골 주는 한 사람의 지사가 다스리 기에는 너무나 광대한 지역이었으므로 벵골 주의 분리 문제는 자주 논의되어 왔 었다. 1903년 커즌 총독은 행정적 능률의 개선과 진정한 현실적 필요성을 강조 하면서 벵골 주의 분리계획안을 구체화 하였다. 분리 계획안에 따라 비하르와 오 리싸를 포함하는 서벵골 주와 아쌈을 포함하는 동벵골 주로 양분되었으며 총독 정부의 건의안이 1905년 브로드릭John Brodric 인도상에 의해 그대로 인가되었 다.
커즌 총독의 벵골 분리 조치는 행정적으로 보면 논리적일 수 있지만 정치적으 로는 현명하지 못한 처사였다. 그의 이른바 반동정책이 인도 민족주의 운동에 있 어서 새로운 전기를마련해 주었다. 벵골 분리 계획안이 처음 알려졌을 때부터 국 민회의를 비롯한 인도인 특히 벵골 주민의 반발이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총독의 조치는 민족분열을 획책하는 것으로 해석되었는데 그것은 종교적으로는 대립하 였을지라도 벵골인들은 같은 인종으로서 같은 언어를 사용하면서 항상 일체감을 느껴왔기 때문이었다.

힌두의 저항은 매우 강렬하게 나타났다. 벵골 주가 분리되기 이전에 주민의 다 수는 힌두였다. 분리된 상태에서도 서벵골에서는 힌두가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 지만 동벵골에서는 반대로 모슬렘이 다수를 점하는 결과가 나타났다. 동벵골의 힌두는 모슬렘에 비하여 소수로 전락한 데 대하 분노와 함께 지금까지 문명의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해 야만시해 왔던 아쌈인들과 병합한다는 것은 벵골인들의 자존심으로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따라서 인도인들에게는 총독이 추진하는 벵 골 분리의 진정한 목적이 힌두 다수의 서벵골 주와 모슬렘 다수의 동벵골 주로 양분함으로써 종교적 대립을 조장시켜 민족주의 감정이 가장 강렬한 벵골 주민 의 단합을 분열시키려는 데 있다고 생각되었다.16)

 벵골 주의 분리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인도 파키스탄 분리의 씨앗은 인도의 민족분열을 
겨냥한 영국의 ‘간계’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이후 동서로 나뉘어 있던 파키스 탄의 동쪽이 유혈 독립전쟁 끝에 1971년 독립함으로써 한때 버마까지 아우르던 영국령 인도 
 
14) 위의 책, 419쪽 및 486쪽. 
15) 위의 책, 446쪽.
16) 452~453쪽.

‘제국’은 결국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의 세 나라로 나뉘어 현재에 다다르게 된다.
이와 같이 인도의 피식민 역사는 플라시전투로부터 독립에 이르기까지 약 200년에 달하며, 가까운 필리핀은 무려 1565년부터 에스파냐 정복 아래 놓였다가 1898년 독립을 선언하지만 미국-에스파냐 전쟁으로 미국의 지배 아래 들어가 태평양전쟁 중에는 일본의 점령 통치까지 받고 종전 후에야 독립한다. 

멀리 중남미 아메리카의 경우에는 대부분 1810~1820년대에, 카리브 해 수역 국가들은 대체 로 1960~1980년대에 독립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는 1492년 컬럼버스가 카리브 해의 한 섬 에 도착함으로써 신대륙을 ‘발견’한 후 자메이카, 베네수엘라, 브라질 발견 등으로 이어지고, 스페인은 “1535년 오늘날 멕시코를 중심으로 설치한 누에바에스빠냐Nueva España 부왕청 Virreinato”, “1544년에는 페루 부왕청” ) 등 부왕청을 통한 총독 통치를, 포르투갈은 “군주 의 이익을 대변하고 권한을 대행할 수 있는 까삐따니아Capitania라는 제도” )를 1534~1536 년 경 브라질 지역에 실시하면서 시작된 식민 통치를, 거의 현대에 들어서야 끝낸 것이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의한 라틴 아메리카 지역의 식민화는 황무지에 수목을 이식시키는 방식 이 아니라 주지하듯이 마야문명, 칩차문명, 잉카문명 같은 고대로부터 전통적 문명들을 가혹 하게 붕괴시켜간 과정이기도 했다. 

한국의 경우 식민지화 과정은 1876년 강화도 조약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이해되 곤 하는데, 이로부터 1910년 한일합병까지의 34년 기간은 1910년부터 1945년 해방까지의 기 간과 거의 같다. 필자는 식민지근대화론을 기각함에 있어 이 개화계몽기의 성격을 새롭게 이 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시기는 일제에 의해 식민화를 향해 일방적으 로 나아간 수동적 과정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 설계를 향한 주체적인 노력이, 경인선, 경부선, 경의선, 경원선 등 잇따른 철도 부설 과정이 보여주듯이 일제의 무력과 계략에 의해 좌절, 무 력화 되는 과정이었다. 또, 같은 맥락에서 일제 35년 강점기 역시 그네들에 의한 지배와 수탈 로만 일관한 것이 아니라 엄혹한 조건 속에서도 한국인들 스스로 독립을 쟁취하고 문화를 창 조하기 위해 가열한 노력을 기울인 과정이었음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앞의 34년은 뒤의 35년과는 질적으로 완전히 구별되는 시기였다. 앞의 시기에 한국인들은 열강들의 침습 속에서도 스스로 새로운 세계를 열고자 몸부림쳤다. 이 능동성과 창조성의 분출과 좌절을 바 로 보지 않으면 일제의 폭력적 지배가 그대로 합리화될 수 있다. 바로 여기서부터 식민지 근 대화론이 서식하기 시작한다. 
약 200년부터 300년에 이르는 장구한 유럽식 식민 통치와 35년 일본의 ‘강점식’ 통치 상황 의 차이에 주목하지 않고 한국의 경험을 제국주의와 식민지라는 통상적인 구조적 개념으로 일 반화하는 것은 한국의 경험을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이라는 영미비평이론의 ‘일반성’ 속에 함몰 시키는 시발점이다. 영토 면에서 당시 조선은 인도 대륙과는 비교 안 될 정도로 작고 지리적 으로도 일본에 인접해 있어 비교대상은 오히려 영국과 아일랜드 사이에서 찾아야 할 수도 있 지만 영국이 아일랜드를 통치한 것은 무려 12세기부터라고 알려져 있고 아일랜드는 1921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아일랜드와 영국령 북아일랜드로 나뉘어 독립하게 된다. 이와 같은 피식민 기간의 차이는 단순히 양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른 피식민 경로들과는 전혀 다른 질적인 차별성을 갖는 것이라 보아야만 새로운 논의가 가능할 것이다.  

 3. 포스트콜로니얼 담론과 한국어, 한국어문학

 다른 하나의 차별성은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의 주요 연구 분석 대상인 언어(특히 문학언어)
와 문자의 문제다. 이 문제는 아주 중요한데, 이는 비평이론으로서의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의 문제의식이 바로 이 문제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애쉬크로프트를 위시한 『포스트콜로니얼 문학이론』의 공저자들은 자신들의 문제의식이 언어 문제에 대한 착목에서 비롯된 것임을 분명 히 한다.
언어란 권력의 계층구조를 영속시키는 매개일 뿐만 아니라 ‘진리’, ‘질서’, ‘리 얼리티’라는 개념들을 구축하는 중개자이다. 그러나 포스트콜로니얼한 담론의 출 현과 더불어 언어의 무한권력은 사라지고 만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포스트콜로 니얼리즘은 언어와 글쓰기가 어떻게 자신의 막강한 권력과 권위적인 의미작용을 이용하여 유럽의 지배문화권 내에서 그 존재를 영위해 왔는가를 탐색한다. 포스 트콜로니얼한 국가에서 영어가 사용되어 왔던 다양한 방식에 논의의 초점을 맞 추면서 그 각각의 방식이 환기하는 차별성을 정확하게 인식하기 위해서는, 영국 이라는 제국으로부터 전수된 ‘식민지 본국 영어English’와 포스트콜로니얼한 국 가에서 새롭게 태동한 ‘포스트콜로니얼한 영어english’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비록 영국의 제국주의가 지구촌에 한 언어, 즉 식민지 본국 영어의 팽창을 가져 오긴 했지만, 그것이 자메이카의 포스트콜로니얼한 영어를 비롯한 캐나다, 마오 리족 혹은 케냐의 포스트콜로니얼한 영어와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은 주지의 사 실이다. 표준적인 코드로 등장한 식민지 본국 영어(과거 제국주의 본국의 언어) 와 전세계에 걸쳐 몇 차례의 특징적 변이 과정을 거치면서 변종화된 포스트콜로 니얼한 영어를 철저하게 구분하여 사용함으로써 포스트콜로니얼한 세계에서 하 나의 언어가 각기 상이한 언어공동체에 의해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선용될 수 있는가를 드러내려고 한다.19)

이들에 따르면 대문자 ‘영어’와 소문자 ‘영어들’을 준별하고 그럼으로써 포스트콜로니얼한 
사회의 소문자 영어들로 이루어진 언어적, 문학적 '실천'을, 그 차이화 및 전복을 비평적 탐구 대상으로 설정하는 것이 바로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이라는 것이다. 이를 그들은 다른 곳에서 이 렇게도 표현한다.

피식민지 하에서 ‘문학’이라는 제도는 문학작품의 수용 가능한 형식을 공인하 면서 그것의 출판과 유통과정을 검문할 유일한 자격을 갖춘 제국주의 지배 계급 의 직접적인 통제를 받는다. 그러므로 텍스는 제한된 담론 내에서만 그리고 상이 한 관점의 주장을 기각하거나 제한하는 후원자 제도 같은 제도적 관행 내에서만 존재할 수 있었다. 결국 포스트콜로니얼한 문학의 독자적 발전을 이룩하기 위해 서는 이러한 통제 세력의 폐기와 더불어 그들의 언어와 글쓰기를 보다 신선하고 변별적으로 전유하는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전유는 현대의 포스트콜로니얼한 문학이 태동하는 데 있어서 가장 의미심장한 요소이기 때문이다.20)
 
19) 빌 애쉬크로프트 외, 앞의 책, 21~22쪽.
20) 16~19쪽.

포스트콜로니얼리즘에서 ‘전유 appropriation’라는 전략이 중요한 의미와 가치를 띠는 것은 
바로 이 대목이다.
전유라 한 언어가 자신의 문화적 경험을 ‘담보’하는 과정을 의미하거나, 혹은 라자 라오의 지적처럼 ‘모국어가 아닌 타자의 언어로 모국어의 정신을 전달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그것은 상호 이질적인 문화적 경험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전 달하기 위해서 언어를 하나의 도구로 차용 및 선용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이같은 이질성은 서로 동질적인 것처럼 보이는 문화권 내에서도 존재한다. 이런 의미에 서 모든 포스트 콜로니얼한 문학은 통문화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포스 트콜로니얼한 문학이 각 ‘국가’ 간의 간극을 오히려 조장하는 측면을 지니고 있 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간극을 통하지 않고서는 포스트콜로니얼한 문학적 실천 의 의미를 정의하고 규정하는 데 필수적인 전유와 폐기라는 동시다발적 과정에 대한 설명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포스트콜로니얼한 문학은 중심부 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기득권을 가진 식민지 본국의 언어, 즉 영어를 폐기하고 그 언어를 각 주변부 국가의 모국어의 영향력 안에 유치시키려는 전유 행위 사 이에 존재하는 긴장으로 쓰여지는 문학이라고 볼 수 있다. ) 

여기서 말하는 ‘전유’의 의미는 깊이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즉 포스트콜로니얼리즘에서의 
전유란 무엇보다 언어의 전유이며, 그것은 대문자 영어 대신에 “그 중심부 언어를 새로운 공 간에 어울리는 담론의 형식으로 교체하는 것”22)을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의 전유라는 것이 현 대 한국문학 또는 일제 강점기의 한국문학에서 그대로 수용, 적용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는 한국문학에서의 포스트콜로니리즘적 연구와 관련하여 반드시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될 사 안이다.
한국의 피식민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애쉬크로프트 등의 논자들이 개념화 하고 있는 ‘전유’
라는 것은 일제 강점기 한국문학에서는 결코 전형적, 일반적인 현상이 아니라는 사실에 먼저 주목할 수 있지 않을까? 

흔히 일제 강점기의 한국사회를 이중어 사회라고들 하는데, 포스트콜로니얼리즘에서 이 개
념이 기본적으로 문제시되는 것은 식민 사회에서 본국의 대문자 언어의 군림과 현지 언어의 위계적 공존, 그 속에서 본국의 대문자 언어를 전유한 식민 사회의 소문자 언어가 포스트콜로 니얼한 언어와 문학을 작동시켜 나가는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의 견지에서 (탈)식민지 사회의 언어적 상황을 세 가지 형태로 
유형화 한다. 단일어 그룹monoglossic group, 이중어 그룹diaglossic group, 다중어 그룹 polyglossic group 등이 그것이다. “단일어 그룹은 포스트콜로니얼한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 하는 단일어 사용지역을 의미한다. 백인 정착 식민지가 그 전형적인 예에 속한다……이중어 사용지역은 인도, 아프리카, 남태평양 같은 지역처럼 백인 정착민들이 식민지의 원주민들과 사회적 관계를 유지할 목적으로 2개 국어를 기본적으로 사용하고 있던 지역이거나 또는 캐나 다 퀘벡 문화처럼 2개 국어를 공식적인 모국어로 채택하고 있는 지역을 의미한다. 이중어 사 용 지역의 경우, 일반적인 행정과 통상 분야의 언어로는 포스트콜로니얼한 영어가 선용되고 있는 반면, 문학 분야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언어가 보다 공공연하게 사용된다. 다중어 혹은 ‘다중 방어’ 사용 지역으로 가장 두드러진 곳은 카리브 해 지역이다. 그곳에서는 다종 다기한 방언들이 서로 교차하면서 매우 포괄적인 언어적 콘티뉴엄을 형성한다.” ) 

그렇다면 일제 강점기의 한국 사회는 대체로 이중어 그룹 유형에 속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필자가 생각하기에 이 이중어 상황은 포스트콜로니얼한 일본어와 조선어의 공존이라기보다 “행정” “통상” 분야의 ‘공식’ 일본어와 조선어의 공존이었고, 특히 문학 분야에서 포스트콜로 니얼한 일본어의 문학이라는 것은 지극히 제한적인 현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포스트콜로니얼 한 ‘소문자’ 일본어문학은 일부 작가가 일본의 공식적 학교교육의 영향 속에서 습작기를 경과 할 때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거나 장혁주나 김사량 같은 1930년대 이후의 몇몇 작가들 이 일본어문학 제도에 접근해 가는 과정에서 나타난 제한적 현상이거나 집단적이기는 하되 일 제 말기에 국민문학론에 동조해서 나타난 국책문학, 어용문학, 정치주의 문학인 경우가 대부 분이었다. 애쉬크로프트 등이 본격적 탐구 대상으로 다룬 바 소문자 언어를 매체로 삼은 포스 트콜로니얼한 문학이란 일제강점기의 한국문학의 경우에는 지극히 주변적, 말단적 현상이었다 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건대 “모국어가 아닌 타자의 언어로 모국어의 정신을 전달하는 것”이라는 의미에 서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을 논의한다면, 한국문학은 그러한 비평이론의 예외적 대상으로 간주되 어야 하다. 그렇다면 한국문학은 어째서 이런 예외적 존재로서 독특한 포스트콜로니얼한 문학 을 처음부터 구성할 수 있었는가? 하면 이는 한글이라는 한국어를 표현, 전달할 수 있는 문자 체계가 이미 오래 전부터 한글문학이라는 ‘국어국자’ 문학의 내일을 준비해 왔다는 사실을 손 꼽아야 하겠지만, 그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일제 강점기를 전후로 한 한국근대문학의 본격 적 형성기 담지자들이 일본이라는 ‘이류’ 제국주의 언어를 처음부터 ‘용도 폐기’하고 ‘조선어 로 쓴 문학만이 조선문학’이라는 근본적인 태도로써 문학 제도를 구축하고자 하는 노력을 부 단히 기울여 왔다는 사실일 것이다.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의 견지에서 한국현대문학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그러므로 필자는 이른바 
개화계몽기라 이름 지어진 1876년부터 1910년에 이르는 시기와 1910년의 한일합병 이후 일 제 강점 말기에 이르는 시기의 한국어의 위상과 한국어문학의 포스트콜로니얼한 전략의 문제 를 새롭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 두 시기, 그리고 해방 이후 한국문학의 전개 양상은 한국 인들이 한국어와 그 표현매체로서의 한글을 근본적으로 상실하지 않았다는 의미에서 유럽 제 국의 식민 지배 아래 오랜 기간에 걸쳐 포스트콜로니얼한 소문자 영어나 그 밖의 소문자 언어 들을 통한 ‘전유’를 핵심적 ‘전략’으로 삼았던 나라들과 근본적으로 구별되는 ‘예외성’을 보여 준다고 할 만하다.

4. 포스트콜로니얼과 한국어문학의 위상

지난 십수 년 동안 필자는 이광수 문학에 대한 연구논문들을 지속적이라기보다는 그치지 않 고 써왔다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한편으로는 이광수 문학을 한국현대문학의 ‘진정한’ 개척자 로 간주하는 학문적 전통의 영향을 받은 때문이기도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조선문으로 쓴 문 학만이 조선문학이라는 이광수의 ‘근본주의적’ 태도가 가진 중요성에 대한 인식 때문이기도 했다. 그는 「조선문학의 개념」(『사해공론』, 1935.5)에서, 연전에 모 교수가 경성제대 조선문학 과에서 조선문학 연습용 교과서로 『격몽요결』을 사용한다는 이야기를 들어 기상천외하다는 비 난을 가하며 단정적인 어조로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어느 나라의 문학이라 함에는 그 나라의 문자를 쓰이기를 기초 조건으로 삼는 것이다. 지나문학이 한문으로 쓰이고 영문은 영문으로 쓰이고 일본문학은 일문으 로 쓰이는 것은 元亨利貞이다. 만일 일본문학이 독일어로 쓰이고 희랍문학이 범 어로 쓰이었다 하면 『격몽요결』을 조선문학이라는 膽大無學한 모 대학교수도 아 연실색할 것이다. 조선문학은 조선문으로 쓰이는 것이다. 조선문으로 쓰이지 아 니 한 조선문학은 마치 나지 아니 한 사람 잠들기 전 꿈이란 것과 같이 무의미 한 일이다. 

우에 말한 모 교수는 연전보다는 장족의 발전을 하야 조선문학 연습으로 『구 운몽』을 쓴다고 한다. 『격몽요결』보다 그 목적에 접근한 것은 물론이니 대개 『구 운몽』은 분명히 소설이오 딿아서 第一儀的인 문학이다. 그러나 이 모 교수가 아 직도 어떤 국민문학의 기초 요건이 그 국문이라는 원리를 깨닫기에는 전도가 요 원한 모양이다. 그의 가엾이도 어리석은 머리는 『구운몽』은 조선인이 쓴 문학이 니 조선문학이라고 추리하는 모양이다. 문학은 결코 그 작가의 국적을 딿아 어느 국문학에 속한 것이 아니오 오직 그 쓰여질 국문을 딿아 어느 국적에 속하는 것 이다. 말하자면 문학의 국적은 속지도 아니 속인(작가)도 아니오 속문(국문)이다. 
(중략)

그러면 『구운몽』은 어느 나라 문학인가? 그것은 물론 지나문학이다. 그  제재 가 지나에서라 하야 지나문학이 아니라 그 문학이 지나문이기 때문에 지나문학 이다. 다만 작자가 조선인일 따름이다. 허난설헌의 시도 지나문학이다. 한문으로 쓰인 모든 문학, 崔孤雲, 鄭圃隱 이하로 申紫霞, 黃梅泉에 이르기까지 모두 지나 문학 제작자엿섯다.  

그와 반대로 조선문으로 번역된 『삼국지』 『수호지』며 『해왕성』, 『부활』 같은 
것이 도리어 조선문학이다. 조선문으로 쓰인 까닭으로. 그러면 우리 선인들의 汗牛充棟할 시문은 전혀 지나문학일가? 물론 도저히 조선문학은 될 수 없을가? 잇 다. 조선문으로 번역하므로! 그러하기 전에는 그것은 다만 조선의 국토에 생 지 나문학이 될 뿐이다.24)
이러한 시각은 “조선문”, 즉 한글로 씌어진 문학을 조선문학의 절대 유일한 근거로 제시하
는 것으로 일제 강점 이전의 조선사회가 일종의 ‘양층 언어’, 즉 이중언어 사회였다는 사실을 언어민족주의적 시각으로부터 부인하는 듯한 인상마저 자아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을 취함으로써 이광수는 조선 한문학을 조선문학의 개념 바깥으로 ‘추방’함과 동시에 조 선문학, 즉 한국문학사의 전개과정을 그 질량 면에서 필요 이상으로 낮추는 일종의 편향적 태 도를 나타내게 된다. 

이두로 기록된 신라의 향가 수십 편과 정음으로 기록된 시조 천여 편은 실로 
조선문학의 연원이오 본체다. 형식, 운율, 사상, 정조, 생활⸻ 진실로 이것은 우 리에게 남겨진 조선혼의 유일한 기록이오 성전이다. 다만 문학적으로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인생관, 사회관을 가르치는 생의 철학으로도 우리 선대의 것을 찾을 곧은 정히 향가와 시조니 이것을 두고 다른 것은 없는 것이다. 세종 때에 정음이 

 
24) 이광수, 「조선문학의 개념」, 『사해공론』, 1935.5, 31~38쪽.

생기고 成三問, 朴彭年, 李塏 같은 이들도 음으로 시조를 썻으며 또 『용비어천 가』 같은 장편 시까지 勅撰되엇으니 참 의미의 조선문학이 발달할 조건도 구비 하엿건만 그 주릴 할 한학에 熓讀이 되어 심지어 換父易祖까지 하려는 고맙지도 아니한 假明人 鴻儒와 巨擘들이 輩出하니 조선의 문학은 조선의 민족혼과 함께 말라버리고 말앗다. 그래서 이씨조 말이 되도록 우에 말한 시조와 춘향전, 심청 전 등을 제한 외에 질로나 양으로나 국문학의 발달을 보지 못하고 말앗섯다. 만 일 어리석은 우리 선인들이 한문 공부를 그만두고 정음으로 사상, 감정을 발달하 기를 힘썼든들 조선의 문학은 가할 것이 많앗을 것을 되지 못하게 外國吏를 숭상하기 때문에 五流, 六流의 지나문 기십 권을 남기고 마는 가엾은 꼴을 보게 
된 것이다.25)

이광수의 시대에도 이러한 ‘극단론’과는 다른 견해가 엄연히 존재해서 박영희 같은 문학인 은 “朝鮮에 자기의 글이 없을 때 일이라면 漢文을 代用해서 작품을 썻다고 그것이 朝鮮文學 이 않이라고는 할 수 없다. 이러한 경우에 限해서는 獨特한 例가 되는 것이다. 타―골, 이예 츠…… 등은 英文學으로 取扱되는 때가 많다. 愛蘭 사람이 썻다는 것보다도 영어로 썻다는 것 이 문제되는 것이다.”26)라고 하여 한국 한문학을 인정하는 태도를 표명했다. 한편으로, 염상섭 은 더 나아가 언어만을 민족문학의 기준으로 삼을 수 없으리라는 견해를 보이기도 한다. 

한민족을 단위로 본 개성―쉽게 말하야 민족성을 표현하야 민족의 마음, 민족
의 혼, 민족의 獨異性을 表白하고 따라서 그 민족의 인생관, 사회관, 자연관들을 描寫表現한 것이면 그 민족만의 문학일 것이라고 하겟습니다. 그럼으로 첫재 문 제는 「쓴사람」의 문제일 것이요, 둘재는 작품의 담긴 내용에 따라서 결정될 경우 도 잇겟습니다. 그러고 語와 文은 한 표현수단 즉 器具와 가튼 것인가 합니다. 그럼으로 第一條件이 朝鮮 사람인 데에 잇고 외국어로 표현하얏다고 반듯이 朝鮮文學이 아니라고는 못 할 듯 합니다. 朝鮮의 작품을 번역하얏다고 今時로 외 국문학이 되지 안흠과 가티 외국어로 표현하얏기로 朝鮮 사람의 작품이 외국문 학이되리라고는 생각할 수 업습니다.27)

염상섭은 한글 및 향찰, 이두 등으로 쓴 문학만이 조선문학이라고 본 이광수와 달리 “그 민
족의 인생관, 사회관, 자연관”이 담겨 있다면 어떤 언어로 쓰인다 하더라도 그 민족의 문학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이러한 그의 생각에는 “語와 文은 한 표현수단 즉 器具와 가튼 것”이라는 언어 도구론적 관점이 개입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이광수의 논리에는 한글은 한국어의 정신, 또는 한민족의 정신을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둘도 없는 문자라는 관념이 전제되어 있는 셈이다. 다시 김광섭 역시 이광수와 같은 맥락에서 “어느 나라 문학을 勿論하고 그 나라의 문학되는 所以는 우선 그 나라의 언어에서 결정된다. 그 결정된 바 언어로써 그 나라 사람 즉 작가가 그 나라사람 즉 민중에게 그 나라 의 내용을 표현하는 데서 그 나라의 문학이 발생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朝鮮文學이라고 하면 朝鮮語로서 朝鮮 작가가 朝鮮人에게 朝鮮의 내용을 표현하는것에 不外할 것이다.”28)라고 주
 
25) 위의 글, 33쪽. 
26) 박영희, 「조선사람 읽을 것만이」, 『삼천리』, 1936.8, 84쪽.
27) 염상섭, 「언어는 제이차적」, 『삼천리』, 1935.8, 84~85쪽.
장했다. 
과연 ‘조선문’으로 쓴 문학만이 조선문학이라 할 수 있는가? 이광수는 한문과 한글을 본질 론적으로 구분하여 한문 문학은 조선문학일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염상섭과 같 은 생각이 반드시 부정될 수는 없으며, 또 이는 언어와 민족의 관계에 대한 최근의 견해에 비 추어 보아도 반드시 잘못된 견해라고만 볼 수는 없다. 다음과 같은 견해를 참조해 볼 수 있 다. 
언어는 그것을 쓰는 민족보다 소멸될 때가 더 많다. 사실 약 5만년에 걸친 유 럽의 인류사를 주도적으로 구성한 것은 유전학적 교체가 아니라 언어 교체 현상 이었다. 오늘날의 언어학 교과서에는 대략 5,000종의 언어가 있다고 나오지만, 약 4,000종만 실제로 쓰이고 그 수는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아마 22세기 초 엽까지 살아남을 언어는 1,000여종 미만일 것이다. 지금까지 인류사에서 사회 통 합이라든지 민족 해체 같은 현상은 언어 교체 현상보다 더 두드러지진 못했다. 언어는 늘 경제적, 문화적, 정치적, 종교적 이유에서 명멸했다. 소수민족의 언어 만 사라진 것은 아니다. 유럽의 다수 언어 대부분은 소수 동쪽으로부터의 다양한 양상의 침입을 통해 소수 언어인 인도 유럽어에 자리를 빼앗겼다. 언어의 멸종 위기는 현재 인류가 맞이한 가장 심각한 문화적 도전으로서 엄청난 과학적, 인도 주의적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29)

이 책의 저자들에 따르면 민족은 언어보다 더 장구한 생명을 영위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사실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과의 동일시를 통해 ‘국민’이라는 개념이 생겼다.”30)라는 말에서 단적으로 나타나듯이 민족 또는 국민과 언어의 관계를 긴밀하게 사유한다는 점에서 최 근 15년간 국문학계에서 ‘맹위’를 떨쳐온 베네딕트 앤더슨 등의 근대주의적 민족론과는 다른 견지에 입각해 있다. 그러나 그들은 동시에 언어와 민족은 반드시 생사를 같이 하지는 않는다 고 생각하며, 오히려 여러 조건과 필요 등에 의해서 어떤 민족이 사용하는 언어는 교체될 수 도 있느니만큼 그 표현매체로서의 문자에 대해서는 더욱 더 그러할 것이다. 한 번 더 그러나, 그들은 동시에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기원전 5세기 초반에 역사가인 헤로도토스가 ‘하나의 혈통과 하나의 언어를 가
진 전체적인 그리스인 공동체’에 대해 어떤 식으로 말했는가는 이미 언급한 바 있다. 사실 그의 견해는 의미심장하다. 인류사의 대부분 기간에 혈통은 언어였 다. 인구가 적었기 때문에 우리처럼 말하는 사람들은 바로 우리의 친척이었다. 1 만 년 동안 이 혈족 관계는 비슷한 언어가 수용하는 확신을 낳았다. 반대로 이질 적인 언어는 위협적인 존재이다. 비슷한 언어 사용자들의 공동체 여럿이 함께 모 이면서 도시국가, 공국, 국가가 차례대로 형성되자 이질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사 람들과 접촉은 대규모의 분쟁으로 비화되었다. 이로써 이웃들 사이의 한층 두드 러진 경계, 즉 공통의 언어가 없는 데 따른 경계가 결정되었다.31)
 
28) 김광섭, 「言語에서 決定된다」, 『삼천리』, 1935.8, 85쪽.
29) 스티븐 로저 피셔, 『언어의 역사』, 박수철·유수아 역, 21세기북스, 2011, 263~264쪽. 
30) 위의 책, 243쪽. 31) 책, 246쪽.
 
또한 어떤 민족이 본래의 언어를 버리고 다른 언어를 선택하게 되는 순간에도 그들은 어떤 
상실감에 시달리게 된다. 
언어교체가 가져오는 직접적인 소득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원래의 언어를 
포기하는 사람들은 예외없이 민족적 정체성을 상실한 느낌, 중심부나 자국의 중 앙 권력에 의한 패배감(과 거기에 따르는 열등감), 조상을 배신했다는 자책감 따 위를 갖게 된다. 이것은 전통·관습·행동양식뿐 아니라 구술 역사·합창곡·신화·종 교·전문 용어 등을 잃어버리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역사가 오래된 모든 사회는 분개하기 마련이고, 새로운 언어가 그에 따른 공백을 메우지 못할 때가 많고, 따 라서 이른바 ‘잃어버린 세대’가 새로운 정체성, 즉 ‘가치 있는 무언가’를 찾아 나
선다.32)

과연 민족문학과 언어는 어떤 관계에 놓이는 것인가? 하면 필자는 이광수와 염상섭의 시각
이 각기 다른 ‘정당한’ 근거 위에 서 있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조선문으로 쓴 문학만이 조선문’이라는 이광수 식의 전략과 노선이 일 제 강점기 한국문학의 가장 중요한 탈식민 전략으로 기능했고, 바로 이 때문에 비록 짧은 피 식민 기간이지만 일본문단과는 다른 조선문단의 성립과 전개, 확립이 가능했으며, 바로 이 때 문에 1940년 전후의 한국어, 한국어문학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한국문학은 그것을 ‘초극’하여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 넘어서기에는 이광수 자신의 언어적 ‘훼절’ 등과, 이윤재, 한징 같은 조선어학회 회원과 이상, 윤동주, 이육사 등과 같은 문학인들의 희생 이 수반된 것이었지만, 조선문과 조선문학을 하나의 궤로 엮는 전략으로 말미암아 해방 후 한 국문학은 한글 중심의 문학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1945년 8·15 해방이 되자 문학인들은 어떤 문자 체계를 추구할 것인가를 두고 치열한 탐구 를 행하게 되며, 이는 장용학과 유종호의 논쟁에서 볼 수 있는 1960년대 전반기의 한자 사용 론과 한글 전용론의 대립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이 대립은 일제 강점기 한복판에서 출생하여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시기에 학창시절을 보내며 일제말기의 일본어 ‘전용화’ 정책의 세례를 받은 이른바 ‘전중파’ 세대와, 앞선 세대로부터의 문화적, 사회적 단절을 시도한 4·19 세대 사 이의, 포스트콜로니얼한 문화적 ‘담론전’으로서의 의미를 갖는 논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유종호 세대의 한글 전용론은 한문 체계 및 한자와 가나를 함께 사용하는 일본어 문자 체계로 부터의 단절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으며 바로 이 점에서 이광수의 포스트콜로니얼한 문화 및 문학 노선을 이어받은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5. 조동일의 ‘새로운’ 포스트콜로니얼 문명사
한국문학과 언어, 민족의 관계를 보다 넓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조동일을 비롯한 
고전문학 연구자들이 제기한 문제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는데, 왜냐하면 1960년대 이래 새로 운 분과학문으로 ‘파생’해 나온 현대문학 연구는 그 ‘현대성’(근대성)이라는 개념적 주박에 사 로잡힌 듯한 현상을 지속적으로 드러낸 데 반해, 고전문학 쪽에서는 세계문학 속에서 한국문 학의 위상을 새롭게 이해하려는 문제의식을 일찍부터 독자적인 포스트콜로니얼리즘적 견지에
 
32) 책, 265쪽.

서 펼쳐 보였던 바, 조동일은 그 대표적 논자의 한 사람인 까닭이다.
조동일의 시각과 연구는 방대한 분량의 논문과 저술에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그 가운데 하
나의 논문에서 그는 문제를 새롭게 검토하기 위해서는 “한국문학과 세계문학의 관계를 접촉과 교류에 따라서만 이해해 왔던 것부터 반성할 필요가 있다” )며 “세계문학을 거시적이고 입체 적인 관점에서 파악” )할 것을, 그리고 “특정 문학을 세계문학이라고 전제했던 데 대한 반 성” )도 필요함을 주장한다. “한때는 중국이 천하의 중심이라 하고, 그 뒤에는 서구문학이 세 계문학이라 믿으면서, 그 외곽에 자리 잡은 한국문학은 어차피 모자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은 잘못”  )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명백히 탈식민적인 한국학, 한국문학 이해를 겨냥 하고 있지만 그의 새로운 세계문학 설계는 한국문학으로 돌아오자는 소박한 환원 대신 세계문 학사를 복수의 문명사의 전개 과정 속에서 새롭게 이해하고자 한 것이었다.

인류가 이룬 문학의 총체인 세계문학은 동북아시아 문학, 인도 및 동남아시아 문학, 아랍 문학, 유럽 및 북미 문학, 중남미 문학, 아프리카 문학, 대양주 문학 등을 모두 포괄한다. 그 판도를 두루 살피면서 한국문학의 위치를 가늠해야 하 지, 어느 한쪽의 문학과 한국문학 사이의 양자 관계로 논의를 한정할 일은 아니 다. 그뿐 아니라, 문학사 이해의 포괄적인 관점이 또한 필요하다. 세계문학은 문 학이 처음 생겨났을 때부터 시작해서 각 문명권에 따르는 공통적인 모습을 갖추 는 과정을 거쳐서, 서구문학이 특별히 두드러진 진출을 해서 생긴 문제에 부딪히 고, 마침내 민족의 해방과 각성을 촉구하기에 이르기까지 각 단계마다의 변화를 함께 겪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과정에서 민족문학과 세계문학의 관계가 계속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관심을 이렇게까지 넓혀야 한국문학의 위치와 구실을 세계문학과 함께 다룰 수 있는 넓은 시야가 열린다.37)
역저 『한국문학 통사』를 마무리하면서 그는 “지역적 변이의 총체이면서 역사적 축적의 총체 인 세계문학에 대한 포괄적인 정리” )를 향해 나아가고자 했고 민족과 국가의 관계에 유의하 면서 각 사회에서의 문학의 전개 양상을 논의하는 가운데 특히 문명권 전체를 공동 문어와 공 동 문어문학의 시대를 핵심적 특징으로 삼는 독특한 중세 개념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에 따르면 “한문, 사스크리트어, 고전아랍어, 라틴어 등은 원래 어느 종족의 언어를 기반
으로 해서 생겼으나, 세계 제국의 문어로 채택되고 문명권 전체에서 널리 쓰이게 되었다.” ) 이 공동문어를 중심으로 한 중세문학의 양상은 그러나 공동문어 문학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구어문학과 함께 존재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이중어 문학 상태를 보여주는 것이었고, 신라의 향찰문학처럼 “구어문학을 구비문학에 머물게 하지 않고, 문어의 문자를 변용시켜 그 나름대로 표기법을 개발하는 것도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었다.” ) 동아시아 문명권에서 중세 공동 문어문학으로서의 한문학과 병행해서 존재했던 구어문학들로는 중국의 백화문학, 신라와 고려의 향찰무학, 일본의 가나문학, 베트남의 쯔놈문학 등을 꼽을 수 있으며, 근대 민족문학은 그러한 구어문학이 성장하며 민족을 대표하는 문학으로 형성, 정립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것 이었다.
조동일의 이러한 시각은 특히 동아시아에서의 근대문학의 형성 과정을 서구 근대문학의 일
방적인 영향과 그 수용, 모방으로 설명하지 않고 문명사 전체와 중세문학의 보편적인 전개와 그 해체 과정으로 설명한다는 점에서 문학사 상의 콜로니얼리즘의 해체를 겨냥한 것으로 평가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문학사의 전개를 제국과 식민지의 구조적 서열 체계와 일방적 영향, 수용의 시각에서가 아니라 각 문명권의 중세 공동문학 시대의 해체 과정으로 설명한다는 점에 서, 또 이러한 세계문학의 중세 역시 공동 문어를 낳은 민족, 사회만을 특권화 하지 않는 ‘성 숙한’ 시각으로 접근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각별히 음미할 만하다. 

특히 조동일은 각각의 나라에서의 민족어문학의 발달 과정을 특정한 민족의 우월성이나 열 위성으로 설명하지 않고, 고대에서 중세 공동문어문학으로, 그리고 근대 민족어문학으로 나아 간 문명사의 전개 과정 속에서 각각의 사회가 처한 상황의 차이로 설명하고자 한다. 예를 들 어 일본이 일찍부터 가나를 통한 민족어문학을 발달시킬 수 있었던 것이, 일본이 특별한 민족 이어서가 아니라 중세 공동문어문학의 주변부에 처하여 이른바 중심의 압력을 가장 적게 받았 던 사정에서 기인한다면 그것은 일본은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봉건제가 완전하게 발달한, 그 래서 자본주의를 태내에서 준비할 수 있었던 유일한 아시아 사회라는 식의 마르크시즘과 결합 된 식민주의적 설명과는 전혀 성격이 다른 문명사적 설명이라 할 것이다.  
그의 이러한 문제의식은 다음과 같은 마르크시즘의 오리엔탈리즘 비판을 통해서도 다시 한 
번 확인된다. 

역사발전의 보편적인 법칙을 밝히는 목표는 버리지 않고 재확인해야 한다. 사 회사와 문학사의 관련은 미리 부정하지 말 실상대로 인식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 다. 유럽사에서 확인한 세계사 발전의 보편적인 법칙이라는 것을 동아시아에 일 방적으로 적용하려는 시도를 거부해야 할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사 또는 동아시 아 각국의 독자적인 전개를 그것대로 고찰하는데 그쳐서도 안된다. 사회사와 문 학사의 관계에 관한 마르크스주의 기존 이론을 믿고 따르지도 않고, 버리고 돌아 서지도 말고, 진지한 토론의 대상으로 삼아 그 한계를 극복하면서 결정적인 진전 을 이룩해야 한다.41) 그의 오리엔탈리즘적 연구에의 비판은 다른 편향에 대한 경계로 연결되는 것이기도 하다. 

유럽문명권 중심주의를 비판하고 그 대안으로 동아시아 중심주의를 내놓는다 면 비판하는 의의가 없어진다. 어느 문명권문학이 세계문학의 중심이라는 주장 자체를 부정해야 한다. 한국문학과 동아시아문학을 예증으로 삼 논의를 전개한 결과가 다른 민족의 문학 또는 다른 문명권의 문학을 예증으로 삼았을 때와 근 본적으로 동일하게 나타나게 될 것을 기대한다. 그래야만 보편적이 이론을 수립 할 수 있다. 보편적인 이론 수립을 목표로 해서 연구를 진행하면서, 보편성과 함 께 존재하는 특수에 관해서도 사실 차원의 비교를 하는데 힘써야 한다. 문학사를 서술하면서 자기 문학을 높이려는 것은 이제는 청산해야 할 낡은 애
 
41) 조동일, 「동아시아 근대문학 형성과정 비교론의 과제」, 『한국문학연구』 17집, 1995, 8쪽. 
 
국주의의 발상이다. 유럽문명권에서 그렇게 한 전례를 뒤늦게 따른다고 해서 선 진의 대열에 끼일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뒤떨어지고 만다. 애국주의 경쟁 은 학문 발전을 저해한다. 애국주의를 청산하고 보편주의를 이룩하는 것이 지금 절실하게 요망되는 새로운 과제이다. 그렇게 하는 데 앞장서겠다는 것을 또 하나 의 애국주의 경쟁이라고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그 점에 관해서 한국에서 하는 작업을 들어 가까이 있는 일본 학계에 자극을 주려고 하는 데 대해서 일본 특유 의 배타성이나 우월감에 의거애 방어를 한다면 적절하지 않다.42)
이와 같이 조동일의 접근법에서 유럽중심주의나 특정한 민족 우월주의는 부정되며 콜로니얼
한 근대는 특권화 되지 않고 공동 문어문학으로 특징지어지는 중세의 자기 전개 과정 속에서 설명된다. 같은 맥락에서 조동일의 민족론은 지난 20년간 한국사회에서 ‘우세종’처럼 유행해 온 근대주의 민족론과는 전혀 방향을 달리하고 있다. 

한국현대문학 연구는 서구비평이론이나 일본화 한 문학 이론들을 무분별하게 추수하는 경향
이 있는데, 최근 20년간에 걸쳐 선배들의 연구는 돌아보지 않고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 Imagined communities : reflections on the origin and spread of Nationalism』
(1976)나 그 한국문학 적용 판본인 앙드레 슈미드Andre Schmi의 『제국 그 사이의 한국 
1895~1919 (Korea between Empires, 1895~1919)』(2002) 같은 몇몇 저작들의 개념, 설명, 
주장에 의지해서 한국현대문학사에 대한 분석을 시도하고 그 모방적 판본을 만들어내는데 주 력하는 경향들은 한국현대문학 연구의 탈식민을 가로막은 가장 큰 장애물 가운데 하나였다.43)
 
6. 포스트 포스트콜로니얼, 그리고 ‘신채호’를 위하여 

한편으로, 문학사 속에서 일찍부터 이러한 사유의 혁명을 시도한 문학인으로서 신채호
(1880.11.7~1936.2.21)에 관해 논의하지 않을 수 없다. 고백적으로 말한다면, 근대문학 연구 자로 자처함에도 불구하고 문학인으로서 신채호의 존재 의의에 대하여 필자는 아는 바가 별로 없었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채호는 이광수 연구에의 필요성으로부터 역 전적으로 새롭게 발견된 것이었다. 그 사정은 다음과 같다. 김윤식의 역저 『이광수와 그의 시 대』는 이광수를 삼중의 고아로 특징화 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는데, 그는 일찍이 부모를 여읜 육친의 고아요, 나라를 잃은 조국 상실의 ‘고아’요, 일본에 유학 가 서구와 일본을 통하여 담 론을 익힌 사상의 ‘고아’라는 것이었다. 『이광수와 그의 시대』 전체를 통하여 이광수가 접한 안창호와 신채호의 존재는 그 빈번한 언급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사상적 지향의 실체는 명징한 모습으로 떠오르지 않는데, 이는 김윤식의 훌륭한 이광수 연구가 지닌 하나의 ‘맹점’과 같은 것이었다고도 판단된다. 그의 『한국근대문예비평사』가 ‘카프 비평’으로부터 시작함으로써 ‘근 대’라는 시대를 마르크시즘이라는 서양산 담론의 수입사로 이해하는 듯한 난점을 드러내고 있 듯이 『이광수와 그의 시대』는 이광수 이전의 선배 문학인, 활동가들의 존재를 ‘삭감’해 놓음으 로써 이광수의 문학사적 의의를 3중의 고아의식에 기반한 평지돌출형 대형 작가로 묘사해 놓 았던 것이다. 함부로 논단할 수 없지만 이 점에서 김윤식의 현대문학사 연구는 스스로 설정한 ‘근대’의 범주적 한계 안에 한국문학을 ‘위리안치’시키는 아쉬운 작업이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42) 조동일, 「한국문학사·동아시아문학사·세계문학사의 상관관계」, 『비교문학』 19집, 1994, 8쪽.
43) 방민호, 「‘민족’에 관하여 ―근대주의적 민족론에의 비판적 조명」, 『국제한인문학연구』, 2019, 155~211쪽, 참조. 

연구의 이러한 범주적 경계의 바깥에 존재한 사람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단재 신채호였으니 그는 죽음을 앞두고 ‘절세의 경륜’을 집약한 ‘동양평화론’의 안중근(1879.9.2~1910.3.26), ‘불 교 유신론’을 펼친 한용운(1879.9.2~1910.3.26), 유학적 이상과 기독교적 이상을 절합하여 ‘무 정·유정’의 사상을 주조한 안창호(1878.11.9~1938.3.10), 동학교도에서 계몽 교육가를 거쳐 안
창호와 함께 임시정부의 대들보 역할을 한 김구(1876.8.29~1949.6.26) 등과 함께 이광수의 한 세대 선배 그룹을 이루면서 사상적으로는 강렬한 민족주의적·아나키즘적 세계인식을 주조해 나가면서 문학적으로는 한국의 전통적인 문학 양식과 외부에서 들어오는 양식들을 접합 engraft시킴으로써 한국근대문학의 독특한, 새로운, 그만의 형식을 창조한 인물이었다. 필자는 특히 소설 쪽에서 한국문학의 현대성이 창출되어 간 과정을 몇 단계의 가설로서 설 명할 수 있다고 본다. 그 첫 단계는 이인직의 신소설로서 그는 『혈의 누』(1908)에서 볼 수 있 듯이 16,7세기 한문단편소설 양식을 ‘국문화’ 하면서 일본 정치소설 식의 메시지를 결합시켰 다. 

이인직 이후의 두 번째 현대소설 국면을 창조한 사람은 신채호이지만 그의 소설 창작 활동 
과정이나 전체 규모는 아직도 완전히 해명되었다고 볼 수 없다. 김주현에 의해서 『신채호 문 학 주해』(경북대 출판부, 2018) 및 『신채호 문학 연구초』(소명출판, 2012) 등의 중요한 실증적 인 검토가 이루어진 것이 그 가장 최근의 사건이다. 이러한 검토 작업의 도움을 빌려 필자가 보기에 신채호는 현대소설 형성사의 두 번째 국면을 이루는 것으로 그는 전통적인 문학 양식 과 외부에서 들어온 양식들을 다양한 형태로 접합시키는 시도를 이어간 작가였다. 

신채호는 일찍이 「익모초」(1908)에서 “설화적 형식” )에 ‘가정소설’이라는 양식명을 붙였다. 「디구셩미몽」(1909)은 몽유록 형식을 빌려 『대한매일신보』에 소설로 연재를 한 것으로 그 주인공인 ‘우셰자’는 “단군 이후 쳔여 년 시 사람” )으로 “잡지와 월보” )에 관여하다 세 상 주유에 나선 일종 시대의 광인 같은 사람이다. 그는 일찍이 교화가 밝지 못하고 풍속이 아 름답지 못한 것을 근심하여 청년을 교육하고 지사 되기를 권고하고 완고한 사람을 깨우치고자 하나 오히려 “광패”하고 “허황”한 사람으로 손가락질을 당한다. ) 또, 「꿈하늘」(1916)은 몽유 록 양식과 일본 사소설(또는 그 변형태로서의 심경소설) 양식을 접맥시키면서, ‘한놈’이라는 주인공이 당대의 시대 사조라 할 수 있는 안창호 류의 ‘무정·유정’의 사상에 귀착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는 단군 기원 사천이백사십 몃해 어늬 달 어늬 날”이요, “는 서울이던가, 시골이던가, 해외 어대던가, 도모지 기억할 수 업는대”라고 해서, ) 「디구셩미몽」의 환상소 설적 요소를 일층 강화하면서도 주인공 한놈은 작가 신채호 자신을 가리키도록 하는 자전적 소설식 설정을 함축하도록 했다. 즉 작중에서 화자는 “한놈이 일즉 내 나라 역사에 눈이 자 을지문덕을 숭배하는 마음이 간졀하나 그의 대한 전기를 짓고 십은 마음이 밧버 미처 모든 글 월에 고려하지 못하고, 다만 동사강목의 젹힌 바에 의거하야 필경 전기도 안이오, 논문도 안 인 『사천재제일위인을지문덕』이라 조고마한 책자를 지어 세상에 발포한 일이 잇섯더라”49)라고 함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이 한놈의 세상 주유 이야기가 작가 자신의 상상의 산물임을 의식 하도록 했다. 마지막으로, 1928년에 집필된 것으로 추정되는 「용과 용의 대격전」은 ‘미리(龍)’ 을 등장시킨 전통적인 설화 요소를 도입하면서도 1928년을 전후로 한 세계사적 상황을 알레 고리적으로 묘사하면서 ‘민중’들에 의한 혁명을 설파하고 있다. 이러한 양식적 접합에 앞서 신 채호는 일련의 역사전기 ‘소설’들, 즉 『을지문덕』(휘문관, 1908), 『수군제일위인 이순신』(『대한 매일신보』(1908.5.2.~8.18), 『동국 거걸 최도통』(『대한매일신보』 1909.12.5.~1910.5.27.) 등을 통하여 새로운 글쓰기를 실험했던 바, 신채호의 문학은 전통적인 문학의 문법에 익숙한 작가 가 한국적인 신문학 양식을 창조해 가는 실험적 과정을 풍부하게 드러내 보인 사례라 할 수 있다. 

필자가 생각하는 한국 현대소설 형성 과정의 제3 국면은 조중환의 『장한몽』(『매일신보』, 
1913.5.13.~10.1, 및 1915.5.25.~12.26)으로 대표되는 번안소설의 창작이며 그 다음 국면이 비로소 이광수의 장이지만, 이광수 자신은 그 자신의 문학사적 계보를 이인직과 조중환의 뒤 에 위치시킬 뿐 신채호의 존재는 아예 고려하지 못하는 ‘무의식적’ 삭제를 감행한다. 그러나 이 ‘인멸’은 단지 무의식적이라고만 볼 수는 없는 것이, 그는 안창호와 함께 신민회를 중심으 로 독립운동을 펼치다 상해로 망명했던 신채호의 존재를 결코 망각할 수는 없었다. 

나는 丹齋(단재 신채호)를 밑에 두고 五六年 前 上海에서 丹齋(단재 신채호)가 
허리와 고개를 빳빳이 누구 앞에도 이 허리와 고개는 아니 굽는다는 듯이 팔짱 을 끼고 冊肆로 돌아다니던 것을 回想하였다.

그는 料理를 자시고 술을 자시며 그동안 各地로 漂浪하던 이야기를 이것저것 別로 系統없이 말하였다. 海蔘威(블라디보스토크)에서 消化不良이 甚하여서 每日二千步式 걸음을 걸어서 좀 나았다는 말도 하고 지금도 트림이 난다는 말도 하 고, 또 李承晩(이승만) 博士의 맨데토리(mandatary, 위임통치)問題는 大義上 容恕할 수 없고, 安島山(도산 안창호)은 國民會(국민회)長으로 李(이승만) 博士를 代表로 任命 派遣하였으니 그래서 私分으로 무척 欽慕하건마는 찾지 아니하노라 고 말하고 「우리가 이제 남은 것이 무엇이오? 大義밖에 있소? 節介밖에 있소?」 하고 節介意識의 磨滅은 무엇보다도 무서운 것이라고 極論하였다.


그때에 내가 丹齋(단재 신채호)를 만난 主要한 理由는 李承晩(이승만) 博士를 
支持함이 大義에 合하다는 것을 說伏하여 丹齋(단재 신채호)로 하여금 내가 主幹하던 ○○신문의 主筆로 모시려 함이었다. 그러나 나는 丹齋(단재 신채호)를 說伏하기에 成功하지 못하였다. 그 結果로 丹齋(단재 신채호) ○○○이라도 李 (이승만) 博士를 首班으로 하는 ○○를 否認하는 新聞을 發行하게 되었는데 그 것은 나중 일이거니와 그보다 먼저 ○○○○을 조직할 때에도 丹齋(단재 신채호) 는 李(이승만) 博士의 首班을 反對하여 一座의 威脅·挽留도 듣지 아니하고 「나를 죽이구려」하고 벌떡 일어나서 悠悠히 會場에서 나가버리고 말았다. 그것은 己未年 四月 十日 그 前날 卽 九日부터 滿 二十四時間 不眠不休로 討議한 ○○○○ 成立의 날이었었다.
그는 熱血 있는 靑年 數人의 生命에 對한 威脅도 모른 체하고 初志를 굽히지 
아니하였다. 거기 丹齋(단재 신채호)의 不屈하는 性格이 가장 잘 나타났던 것이
다.
그後에 丹齋(단재 신채호)가 ○○○이라는 新聞에 ○○運動의 現在에 對하여 否認하는 論을 쓴 데 對하여, 나는 正面으로 그를 駁論하지 아니치 못할 處地에 있어서 이렇게 數次 論戰이 있은 後에는 그만 丹齋(단재 신채호)와 나와의 私的交分조차 끊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나의 丹齋(단재 신채호)에 對한 欽慕는 距今 二十六年 前 五山校에서 
서로 만났을 때에 始作된대로 오늘날까지 變함이 없었다.50)

이러한 이광수의 회상은 상해 임시정부 수립 전후로부터 시작된 이광수와 신채호의 노선 대 립을 드러내며, 이광수가 왜 신채호를 가리켜 “天生의 淸節을 탄 人物”이라고 추켜세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丹齋(단재 신채호)는 세수할 때에 고개를 숙이지 않고 빳빳이 든 채로 두 손으로 물을 찍어다가 바르는 버릇이 있었다. 그래서는 마룻바닥과 자기 저저고리 소매와 바 짓가랑이를 온통 물투성이를 만들었다.”51)라고 하여, 신채호의 ‘비현실적’ 기질을 은연중 비유 적으로 나타내고자 했는지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신채호의 『수군제일 위인 이순신』의 성과에 ‘기대어’ 자신의 『이순신』
(『동아일보』, 1931.6.26.~1932.4.3)을 연재할 수 있었으며, 그의 출세작 『무정』(『매일신보』, 1917.1.1.~6.14)이라는 것도 사실은 이 소설의 뒤에 논문으로 정리되는 섬메 안창호의 「無情 한 사회와 有情한 사회―情誼敦修의 의의와 요소」(『동광』, 1926.6)나 신채호의 「꿈하늘」 (1916)에 나타난 ‘무정·유정’의 사상에 젖줄을 대고 있었던 것이다.52) 그렇다면 조선문으로 쓴 작품이라야 조선문학이라 한 이광수의 극단적인 전략의 경우라면 어떠할까? 필자는 신채호의 논설들 가운데에서 그의 창작활동을 뒷받침해 주는 국문소설론의 존재를 발견한다. 

 夫 國文도 亦文이며 漢文도 亦文이거늘, 必曰 國文重 漢文輕이라 함은 何故 오. 曰 內國文 故로 國文을 重히 여기라 함이며, 外國文 故로 한문을 輕히 여기 라 함이니라. 此雖內國이나 高僧 了義 創造한 以後 至今 千載에 只是 閨閤 내에 存하며, 下等社會에 行하여 不經한 諺冊과 淫蕩한 歌詞로 人의 心德을 亂하였 고, 彼雖外國文이나 幾拾百年來로 학士大夫가 尊誦하며, 君臣上下가 一遵하여 此로 治民에 以하며, 此로 行政에 以하며, 此로 明倫講道에 以한 故로 此則 諺文이라 名하며, 彼則 眞書라 稱하였거늘 今忽輕重을 顚倒함은 何故오. 曰 漢文 은 弊害가 多하고 國文은 弊害가 無한 故니라.
(중략)
 嗚呼라! 此其原因을 推究하면 韓國의 國文이 晩出함으로, 其勢力을 漢文에 被奪하여, 一般 學士들이 漢文으로 國文을 代하며, 漢史로 國史를 代하여 國家思想을 剝滅한 所以라. 聖哉라! 麗太祖가 云하사되 我國風氣가 漢土와 逈異하니, 華風을 苟同함이 不可라 하심은 國粹保存의 大主義이시거늘, 幾百年 庸奴拙婢가 此家事를 誤하여, 小國 二字로 自卑하였도다. 然則 今日에 坐하여 尙且 國文을 漢文보다 輕視하는 者 有하면, 是亦 韓人이라 云할까.53)
한글을 창제한 사람이 세종대왕이라는 사실이 아직 규명되기 이전에 쓴 이 글은 비록 그것
을 “고승 요의”가 만들었다고는 하나 한문에 대하여 국문, 즉 한글을 중시할 것을 역설하고 있는 바, 이는 국문소설, 즉 신소설 작가들을 향하여 “소설은 국민의 혼”54)임을 주장하고, 국
 
50) 이광수, 「탈출 도중의 단재 인상」, 『조광』, 1936.4, ?쪽.
51) 위의 글, ?쪽.  
52) 방민호, 「단재 신채호의 문학사적 의미 -소설 「꿈하늘」에 나타난 ‘정’, ‘무정’과 관련하여」, 『서정시 학』, 2019.9, 130~144쪽, 참조. 
53) 신채호, 「국한문의 경중」, 『대한매일신보』, 1908.3.17.~19.

한문 혼용의 어지러운 실태를 적시하면서 문법의 통일을 역설하고,55) 나아가 다음과 같이 국 문연구회 회원들을 향하여 실질적인 사업을 통하여 사람들의 어문생활을 향상시킬 것을 권유 하는 것으로도 나타남을 볼 수 있다.

設令 此音此語가 十分的當할지라도 徒히 讀者의 腦際만 昏亂케 할 而已요, 壹毫도 民知發達에 利益이 無할 것이니 况音韻에도 不適하고 時宜에도 不適한 者 이오. 諸公의 不憚煩이 어찌 如此히 甚하뇨. 諸公은 此等 汗漫· 오怪·煩閙·胡亂· 無益의 事는 姑閣하고 民智發達에 有益한 辭書 或 字典의 編撰에 從事하되 字樣을 簡易케 하고 音韻을 均壹케 하여 讀者로 掌을 示함과 如히 함을 望하노 라.56)

이러한 글들은 비록 국한문으로 쓰여 있으나 순전한 국문 사용을 통한 문자 생활의 영위와 
새로운 문학 건설을 기약하고 있는 것으로서, 이광수의 ‘조선문·조선문학론’의 내발적 근거로 서 선재해 있었음을 깨닫게 한다.

『포스트콜로니얼 문학이론』의 저자들은 포스트콜로니얼한 글쓰기의 주요 전략으로 ‘폐기 abrogation’와 ‘전유appropriation’의 두 가지 방략을 제시한다. ‘전유’에 대해서는 이미 논 의했지만 이 ‘폐기’는 신채호에서 이광수를 거쳐 해방 후 한국현대문학의 언어 및 문자체계 선택 과정과 관련하여 시사하는 바가 있다. 

권력의 중개자로서 언어가 수행하는 중요한 기능 중의 하나는 포스트콜로니얼 한 저작을 통해서 중심부의 언어를 용도폐기하고 그 중심부 언어를 새로운 공간 에 어울리는 담론의 형식으로 교체하는 것이다. 이것을 제대로 실행하기 위해서 는 두 가지 독특한 공정 과정이 필요하다. 첫째로 식민지 본국의 언어, 즉 ‘영어’ 의 특권을 폐기하거나 거부함으로써 의사소통 과정에 개입하는 그 언어의 강제 로부터 벗어나는 것이고, 둘째로 중심부 언어의 전유와 재구성, 즉 그 언어를 새 로운 용례로 사용하는 방법을 확보하고 재조정함으로써 식민주의적 특권으로부 터 일탈을 시도하는 것이다. 

폐기란 제국의 문화, 미학 그리고 그것의 적용 범주―소위 가장 모범적이고 ‘오차 없이’ 사용된다고 하지만 기실 매우 황당무계한 기준을 가지고 있는―를 부정하는 것이다. 물론 그 부정은 각각의 단어 속에 ‘각인되어 있는’ 전통적이고 고차적인 의미의 토대를 거부하는 것을 의미한다. 언어를 탈식민지화 하면서 동 시에 ‘포스트콜로니얼한 영어’로 글을 쓰는 행위는 무척 짜릿하다. 그러나 만약 전유의 과정이 생략된다면, 식민지 본국의 언어를 페기한다는 것은 고작해야 과 거의 특권적이던 것, 전형적이던 것, 그리고 오차 없는 기술로 인정되던 것을 단 순하게 도치하는 행위 그 너머의 영역으로까지 확대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곧 과거의 것들이 새로운 용도로 이양되어 새로운 형태로 존속될 수 있 다는 가능성을 부인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57)
 
54) 신채호, 「근금 국문소설 저자의 주의, 『대한매일신보』, 1908.7.8.
55) 신채호, 『대한매일신보』, 1908.11.7.
56) 신채호, 문법을 통일」, 『대한매일신보』, 1908.11.14.
57) 빌 애쉬크로프트 외, 앞의 책, 65~66쪽.

이러한 문장들을 읽어나가며 필자가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는 것은 한국현대문학은 이 저
자들이 말하는 의미에서의 어떤 ‘폐기’나 ‘전유’도 필요로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일본어는 식민지 강점기에 들어서도 한국인들의 문학어로서 ‘일반적으로’ 채택된 적이 없으며, 따라서 한국문학의 탈식민주의적 실천을 위해서는 통상적인 의미에서의 식민 본국 언어의 폐기나 전 유와는 다른 차원의 의미 설정이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필자로 하여금 앞에서 논의했던 바 한국인들에게 있어 ‘탈식민’이란 무엇
이며 포스트콜로니얼한 문학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사고를 요구하는 듯하다. 필자는 앞에서 “단절되는 것 같으면서 지속되는 ‘탈식민’ 대신에 어느 시점에는 더는 작동하지 않을 ‘탈식민’ 에 관심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과연 35년이라는 일제의 강점을 경험한 한국사회와 문학에서 탈식민의 시기는 언제 어떤 방식으로 종막에 다다르게 되는 것일까?

한편으로 필자는 수사학적인 과장법을 사용하여, 그것은 한국 사회가 일본보다 확실히 나아 보이는 여러 국면들을 보여주고 있는 바로 지금, 그러한 ‘진보’의 방식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대유행을 하면서 세계 각국은 자신들의 내재적 능력을 공통의 시험대 위에 올리지 않을 수 없었는데, 바로 이 과정에서 한국은 다시 한 번 예의 그 ‘예외성’을 나타내면서 제국과 식민지의 ‘구조주의적’ ‘양극 체제’를 ‘허물어뜨리는’ 양상을 나타냈다. 때마침 한국은 일본과 일종의 강제 징용 배상 문제로부터 촉발된 경제전쟁 을 치르는 와중이었고 이 때문에 두 나라의 경제적 경쟁력 또는 잠재력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 어질 수밖에 없었고 필자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위안부(일본군 성노예) 운동 과정에서 일어난 ‘윤미향’ 사태도 한창 진행 중이기도 하다. 필자는 강제 징용 문제와 위안부 문제의 처 리 방향을 둘러싼 진통이 향후의 한국 사회의 포스트콜로니얼한 과제 해결뿐 아니라 그 포스 트콜로니얼로부터의 탈각의 방향까지도 새롭게 점칠 수 있게 해줄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제국-식민지 관계를 구조주의적으로 단단히 ‘묶여 있는’ 양극항이라고 보는 믿음을 잃어버
리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시선으로 보면 한국이 일본에 비해 아주 우수한 방역체제를 갖추고 있음이 드러나고, 일본 정부의 무능력과 부패, 언론 통제와 부자유, 일본 국민들의 낡은 수동 성과 애국주의 같은 문제들이 낱낱이 드러난다 해도 한국은 여전히 포스트콜로니얼한 단계 내 에 존재할 것이다. 그것은 끝내야 하지만 영원히 끝나지 않을 단계로서 한국인들의 전도를 가 로막는 아포리아로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변하지 않는’ 제국-식민지의 위상학을 이제 는 새롭게 심문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마르크시즘의 변증법적 논리 가운데에는 이 른바 ‘양질전화’라는 것이 있는데, 1990년을 전후로 한 한국 경제의 도약기에 정치경제학 잡 지 『현실과 과학』을 중심으로 한 마르크시즘 사회학자들 사이에서 한국이 ‘서브 제국주의’로 전화하고 있다는 논의가 제출된 바 있다. 이것은 마르크시즘에 내재된 오리엔탈리즘적, 콜로 니얼리즘적 요소를 ‘극복’하고자 한 이론적 시도의 일환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즈음 마르 크시즘적 정치경제학은 해체 기미를 보이는 한국의 ‘신식민지적’ 체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문제에 봉착해 있었다. 다가온 러시아 소비에트 혁명을 논리화 하고자 내놓은 레닌의 ‘얇은’  『제국주의론』에 기초한 이론적 논리들로는 한국 문제를 다 설명할 수 없었던 것이다.  

신채호로부터 이광수를 거쳐 해방 후 한국현대문학에 이르는 한국어문학, 한글문학의 독특
한 전통은 한국현대문학이 식민화 되기 이전부터 ‘포스트콜로니얼한’ 문학의 토대 위에 놓여 있었음을 다시 한 번 의식하게 한다. 이러한 ‘예외성’으로 인해 한국현대문학은 그 특이성에 걸맞는 접근 방법을 필요로 한다. 이 방법의 실험과 개척이야말로 한국현대문학 연구에 있어 포스트콜로니얼한 단계를 넘어 ‘포스트 포스트콜로니얼’로 나아가기 위한 요건이 될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필자는 식민지 강점 시대 이전에 이미 강력한 프로젝트로서 추진되어 간 ‘한국어문학’이라는 독특한 문학적 전략이 ‘제국-식민지’의 이항대립에 기초한 식민, 탈식민 문학을 초극하는 제3항으로 기능할 수 있음을 주장하고자 한다. 앞에서 언급한 『언어의 역사』 의 저자에 의하면 세계는 앞으로 나아갈수록 언어의 숫자는 급격히 감소되며 영어를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라고 한다. 이는 필자에게는 명백히 인류적 재앙으로 이해되는데, 사라져 가는 언 어들은 각각이 모두 인류적 경험의 정보 저장 장치들인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어는  또 다른 ‘예외’로서 얼마나 어디까지 지속될 수 있는가? 이것은 한국어라는 기억 장치의 능력 을 얼마나 극대화 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이는 한국어의 맥락에서는 ‘제국식민지’의 이항관계로 틀 지워진 통상적인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의 전략들로는 충당될 수 없는 문제들을 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어와 한글의 능력을 지속시켜가면서도 이를 그 바깥의 세계에 넓게 개방하는 열린 한국어와 한글을 통하여 한국 사회와 한국문학은 새로운 역사의 단계를 창출해 갈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고자 하며 이는 앞에서 필자가 언급한 ‘포스트 포스트 콜로니얼’한 단계가 될 것이다. 

이러한 역사의 창조를 가능케 할 수 있는 인식론적 논리가 무엇이냐 하는 것을 필자는 쉽게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현재의 한국인들에게 저 옛날의 신채호와 같은 새로운 창 조자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올해는 마침 1880년에 출생한 단재의 140주년이 되는 해다. 『조선상고사』를 비롯하여 그가 남긴 저작들은 민족적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며 일제의 식민주 의적 역사 해석에 맞서 수많은 역사 텍스트들을 섭렵하며 독창적인 민족사 인식, 세계사 인식 의 지평을 열어나간 사람이었다. 정태적, 수동적 사유에 머물지 않고 ‘상식’이라 강변되는 지 배의 언어를 넘어 자유의 천지로 나아가고자 했던 ‘한놈’ 신채호의 꿈과 이상을 생각한다. 그 는 ‘제국-식민지’ 체제로 점철된 ‘무정’ 세계를 ‘유정’하게 전변시키기 위해 자신의 사유부터 혁신해 나간 흔치 않은 지식인이었다. 필자는 최근 들어 이 신채호 세대의 ‘영웅’들, 안창호, 김구, 한용운, 안중근 등의 인물들, 그리고 이돈화(1884.1.10.~?) 같은 천도교 지식인이 전개 한 ‘의식 혁명’에 새롭게 눈 뜨고 있는데, 그들은 모두 전통적 세계의 낡은 지적 전통에 ‘정 통’하면서도 구각을 깨고 새로운 인식과 지식을 넓게 수용하여 새로운 ‘접합적’ 사유의 세계를 열고 이를 통하여 ‘제국-식민지’ 체제에 기반한 지배의 논리와 ‘역사’의 신화를 벗겨낸 사람들 이었다. 오늘 한국인들에게 바로 그와 같은 새로운 사유인들이 출현해야 한다.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