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때 팔다리 잃은 참전용사의 말, 잊히지 않았다"
[인터뷰] 국내외 6.25 참전용사를 무료로 촬영하는 라미 작가21.03.22 11:01
최종 업데이트 21.03.22 11:01▲ 지난 3월 19일 서울 잠실 롯데백화점 에비뉴엘 6층 아트홀에서 6.25 전쟁 국내외 참전용사를 대상으로 한 ‘라미’ 작가의 사진전이 열렸다 | |
ⓒ 정현환 |
"Thank you for your service(당신의 희생과 헌신에 감사드립니다)."
여기 한 사람이 있다. '라미(Rami)' 작가라고 알려진 현효제씨다. 국내와 해외 참전용사를 직접 찾아가 무료로 사진 촬영한 사실이 알려져 세간에 입소문을 탔다. 지난 1월 13일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 방영 이후 더욱 화제가 됐다.
그동안 라미 작가는 참전용사를 기억하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자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다른 대상도 많은데 왜 굳이 6. 25 참전용사였을까. 그가 세상에 남기고자한 기록과 가치는 무엇일까. 지난 19일 라미 작가를 서울 잠실 롯데백화점 에비뉴엘 6층 아트홀에서 만났다. 인터뷰는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준수한 가운데 이뤄졌다.
- 왜 참전용사를 촬영하는가?
"2016년에 군복 사진전을 했었다. 전시장에 미국 해병대 참전용사 살 스칼레토가 우연히 방문했다. '한국전쟁에 참전했었다'라는 그의 인상적인 말과 모습에 참전용사 존재에 대해 처음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궁금증은 조사로 이어졌고, 6.25 전쟁 참여국 22개국을 알게 됐다. 이들에 대한 제대로 된 기록물이 거의 없는 것 같아서 일일이 국내로 오기 힘든 참전용사를 직접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2017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해 참전용사 1400여 명 정도를 촬영한 것 같다."
"참전용사들은 스스로를 영웅이라 생각하지 않더군요"
▲ ‘라미’ 작가로 알려진 현효제 씨는 영국과 미국을 40여회 방문하며, 6.25 참전용사의 사진을 무료로 찍었다 | |
ⓒ 정현환 |
- 국내와 해외 참전용사를 찍으면서 느낀 점은?
"기쁘다. 일단 이 일이 즐겁다. 시간과 물리적 한계로 조금 있으면 못 만날 수도 있는 참전용사들을 만나서 촬영했다고 생각한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우리 다음 세대에서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참전용사와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물로 남기고, 이를 전달할 수 있는 '메신저'라고 스스로 여기면서 늘 촬영에 임한다.
막상 참전용사들은 만나면, 본인들을 스스로 '영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은 '진짜 영웅'은 자신들이 아니라, 6.25 전쟁 당시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전우라고 여긴다. 참전용사들은 그 진짜 영웅들에 비해 자신들을 오히려 '겁쟁이'라고 생각한다.
간혹 국내외 참전용사를 촬영할 때마다 질문을 받는다. 특히, 해외에서 '얼마냐?'라고 용사들이 매번 물어본다. 외국이 국내보다 다소 비싸게 사진을 촬영하는 풍토가 있기 때문이다. 액자까지 맞춰 직접 건네주니 더욱 그런 것 같다.
그럴 때마다 나는 참전용사에게 이렇게 대답한다. '그 비용은 이미 지불하셨습니다'라고. 1950년에서 1953년까지 참전한 이들은 이미 많은 대가와 비용을 치렀다. 과거 참전용사들의 지난 수고와 노고에 비하면, 현재 무료로 사진을 촬영하는 것은 아주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 참전용사를 어떻게 섭외하고 촬영하나?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한다. 지금은 개인으로 작업하고 있다. 자비를 들여서 참전용사를 무료로 촬영하고 있다. 내 돈 들여서, 내 시간 아껴가며 하면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주로 페이스북을 활용한다. 소셜미디어와 지인, 인맥 등을 활용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 참전용사를 만날 수 있는 접점이 생긴다. 2017년도부터 그 점과 점을 하나하나 연결해 소개에 소개를 받아 지금에 이르렀다.
종종 '사기꾼' 취급을 받기도 했다. 방법을 총동원해 어렵게 연락을 취하면,보이스 피싱으로 간주해, 소통을 피한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는데, 돈 얘기부터 꺼내며, 참전용사를 무료로 촬영하겠다는 시도를 믿어주지 않았다. 이른바 불신. '한 사람당 얼마냐?' '돈도 안 되는데 왜 하냐?' '예산타려고 하는 거냐?'는 오해를 간혹 받았었다.
해외가 아닌, 국군 참전용사 분들에게 처음 전화를 걸었을 때, 특히 더 보이스 피싱으로 받아들이셨다. 2017년 처음 촬영을 할 때까지 단 한 번도 이런 대우를 받아보신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직접 전시회장으로 모셔서 왜 이 사진을 찍는 건지, 어떻게 진행되는지 여러 차례 설명한 뒤에 몸소 느끼신 후 뒤늦게 처음 경계했던 태도를 많이 누그러트리신다."
▲ ‘라미’ 작가로 알려진 현효제 씨는 자비로 영국과 미국을 직접 방문해, 6.25 전쟁 참전용사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 |
ⓒ 정현환 |
"참전용사가 원하는 것은 잊히지 않는 것"
- 무료로 사진촬영을 하는데, 그 과정과 비용은?
"자부담이다. 2017년 영국 런던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약 3억~4억 원 정도를 썼다. 영국과 미국, 두 국가만 대략 40번 정도 방문했다. 최소한의 장비만 남긴 채 외국에 나갈 때마다 관리하기 힘들었던 스튜디오를 팔았다. 영국과 미국 참전용사 이외의 사진은 참전용사가 한국에 방문하셨을 때 직접 찾아가 찍었다. 현재까지 참전국 14~15개국을 촬영한 것 같다. 2023년까지 22개 참전국 모두를 찍는 것이 목표다.
한 번 외국을 방문할 때마다 평균 500만~600만 원 정도가 지출된다. 카메라와 조명 등의 장비를 직접 챙겨 해외를 방문하다보니 더러 힘든 순간이 찾아온다. 신기하게 그럴 때마다 도와주시는 분이 갑자지 나타났다. 참전용사 무료 촬영 소식을 듣고 무료로 재워주시고, 태우러 직접 와주신 분 등을 고려하면... 실제로는 그동안 4억 원, 그 이상의 돈이 쓰인 것 같다."
- 왜 액자에 사진을 담아, 직접 드리는가?
"사진 촬영을 하고 반드시 액자에 넣고 꼭 직접 건네 드린다. 예우이기 때문이다. 그게 참전용사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예의라고 생각한다. 찍는 그 순간순간이 기쁨이지만, 직접 건넸을 때 더 좋아하신다.
사진은 겉만 찍는 게 아니라 내면도 찍는 것이라는 철학을 갖고 있다. 드러난 면뿐만 아니라 내면을 촬영하게 '진짜 사진'이라고 여기고, 그래서 직접 촬영을 하고 건네 드린다.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는 참전용사의 표정에 마음을 읽는다. 그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다.
참전 이후 지금까지 스스로를 영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이들이, 촬영된 사진을 직접 받으며 자신도 영웅이었다고 비로소 실감하는 모습은 정말 감동적이다. 이 분들이 원하는 건 기록이고, 잊히지 않는 거다. 그거 하나다. 가족, 친구, 지인 등에게 사진으로 찍혀 기록물로 남겨지고 자랑할 수 있다는 사실에, 누군가가 봐주는 것에 큰 즐거움을 얻으신다."
▲ 6.25 참전용사가 찍힌 사진의 액자를 만드는 국가유공자 청년의 모습. 2021년 1월 13일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나온 라미 작가의 지난 활동에 감명을 받아, 이날 행사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했다 | |
ⓒ 정현환 |
- 가장 기억에 남는 참전용사는?
"한 명, 한 명 다 선명하다. 그중에 윌리엄 빌 웨버 대령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공수부대원으로 6.25 전쟁에 참전해 오른팔과 오른쪽 다리를 잃었다. 이 분이 말씀하시길 '자유에는 의무가 있는데, 군인은 자유를 뺏기거나, 없는 사람을 지켜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자기는 '자유인이자 동시에 전문적인 군인으로서, 한국에 갔었다'고, '자유를 뺏기지 않고, 지켜주기 위해 참전했었다'고 말했다.
그렇다. 군인은 제1, 2차 세계대전처럼 단순히 누구를 죽이거나 패배시키는 것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건 진짜 군인의 역할이 아니다. 군인은 '이기는 것보다 지키는 데서 온다'라는 웨버 대령이 '진짜 군인'이다. 실제로 만난 다른 국내외 참전용사들도 그랬다. '사람을 지켰다'라는 사실에 가장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웨버 대령은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다가 한쪽 팔과 다리를 잃었지만 '후회는 없다'고 했다. 아울러 한국인은 '빚진 게 없다'고 했다. 오히려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한국인들 스스로가 지게를 짊어지고 재건하는 모습을 그동안 목격했다'고 하며 '한국인이 다했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웨버 대령은 '우리가 더 잘 싸웠다면 통일이 됐을 텐데, 그러면 지금의 분단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2차 대전 참전용사이자, 6.25 전쟁에도 참여했던 그 분의 모습이 아직도 눈가에 선하다. 그 분의 가르침은 개인적으로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 윌리엄 빌 웨버 대령. | |
ⓒ 라미(현효제) 사진작가 제공 |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참전용사 콘텐츠 구상중"
- 끝으로 참전용사에게 하고 싶은 말은?
"참전용사 분들이 늘 기꺼이 촬영에 협조해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현재 몇 가지 목표가 있다. 2023년까지 6.25 전쟁에 참전한 22개국 모두를 방문할 예정이다. 해외 참전용사들을 직접 만나 감사함을 전달하고, 동시에 기록하고 싶다. 22개국 참전용사들의 모습과 사연을 아카이브로 만들어, 이 분들이 돌아가신 뒤에도 세상에 남겨진 사람들이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게 기여하고 싶다.
해외에서 보훈과 관련된 행사를 할 때 이렇게 한다. 참전용사와 군인들에게 참석 여부를 먼저 묻는다. 외국은 직접 찾아가 참전용사를 모셔온다. 보훈 이벤트와 관련, 모두에게 정보가 공개돼 있다. 굳이 참전용사가 아니더라도 이 문제에 관심 있는 어느 누구라도 제한 없이 참여할 수 있다.
흔히들 말한다. '미국은 군인을 존중한다'라고. 그 배경은 이렇다고 생각한다. 국민들이 군인을 존중하기에 앞서, 국가 기관과 사회 지도층에서부터 참전용사를 홍보하고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부에 참전용사를 많이 노출시킨다.
외국은 시마다, 주마다 그리고 마을마다 참전용사의 업적과 성과를 알린다. 언제든지 공개돼 있고 누구나 참석할 수 있게끔 한다. 그래서 참전용사가 군복을 입고 어디를 가도 대우를 받는다. 마주치는 사람마다 참전용사에게 감사한다는 말을 전한다. 해외 사례를 참고해 앞으로 참전용사와 군인과 연관된 내용을 더 많이 알리고 싶다.
아직 늦지 않았다. 그 시작은 일상에서부터 가능하다. 우리는 해외나 국내에서 참전용사를 볼 기회가 더러 있다. 버스나 지하철, 공공시설에서 이들을 보게 되면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먼저 건네 보는 게 어떨까 싶다. 그러면 참전용사 분들이 너무 좋아하실 거 같다.
끝으로 앞으로 할 예정이다. 참전용사 찍는 것뿐만 아니라, 어린이를 대상으로 참전용사를 알리는 교육을 하려고 추진 중이다. 한 분이라도 살아 계실 때, 조금이라도 국내외 참전용사의 사연을 알려, 세상을 바꾸는 데 기여하고 싶다."
현재 국내와 해외 참전용사를 대상으로 한, 라미 작가의 사진전은 3월 13일에 시작해 4월 25일까지 서울 잠실 롯데백화점 에비뉴엘 6층 아트홀에서 열린다(관란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백화점 휴무일 제외, 비용은 없음). 4월 25일 이후부터는 부산 롯데백화점 광복점에서 사진전이 열린다.
▲ 지난 3월 19일 서울 잠실 롯데백화점 에비뉴엘 6층 ‘Project Soldier’ 전시회장에서 6.25 참전용사 촬영이 진행됐다. 왼쪽부터 9사단 박창훈, 8사단 강재원, 야전공병단 1108 김학철, 2사단 안형근, 9사단 이형귀, 202병기단 이철옥 국가유공자다(제공: 현효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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