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석
Favourites · 27 m ·
글쓰는 게 너무 싫어서 계속 SNS에서 딴소리하고 있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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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석
Favourites · 40 m ·
애치슨 선언이 북조선의 오판을 가져와서 한국전쟁이 터졌다는 '신화'는 이미 좌우 학자들 모두에 의해 무너진지 오래이다. 제일 많이 오해를 받는 브루스 커밍스는 <한국전쟁의 기원> 2권에서 북조선의 언론 보도를 분석해 당시 북조선이 애치슨 라인을 한국을 미국이 버리는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부분은 계간지 창비에 발췌번역되어 한국어로도 읽을 수 있다. 그는 북조선이 애치슨의 발언을 오해해 전쟁을 결심했다는 발언과 달리 북조선의 언론보도들은 연일 애치슨을 제국주의자라 비난하며 애치슨 라인 또한 북조선을 비롯한 공산주의 세력에 맞서 한국을 방위하겠다는 적극적인 제국주의적 야심을 드러낸 것이라며 맹비난을 이어갔다. 커밍스는 이 점에서 애치슨의 남침유도에 북조선이 넘어갔다는 주장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고 단언한다.
이 점은 한국의 보수적 정치학자인 김영호와 김일영 등에 의해서도 반복되어 확인된다. 김일영은 <건국과 부국>에서 애치슨 라인은 절대로 한국을 포기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대단히 복잡다단한 정치적 계산 속에서 도출된 전략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에 따르면 애치슨 라인은 당대의 미국 정치사의 맥락을 이해해야 하는데, 미국 의회는 전후 질서의 재편 과정 속에서 군비 지출의 삭감을 강력하게 요구하며 미행정부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었다. 반대로 군부는 미행정부에게 대만 등의 수호를 강력하게 주장하며 되려 군비확장을 요구하고 있었는데 애치슨은 이런 국내정치적 상황을 고려하면서도 동시에 소련 공산주의 세력의 확장을 아시아에서 제어하는 것까지 고려해야만 했다. 마지막으로 대만으로 후퇴하고 있는 장제스 국민당 세력과 한국의 이승만이 보여주는 호전성 또한 애치슨에게는 상당히 곤란한 것이었다. 이 3가지 층위를 모두 고려하면서 나온 전략이 바로 애치슨 라인이었다.
애치슨은 한국과 대만을 직접적인 방위선에서 배제하여 미국 의회의 요구를 충족시켜주고 동시에 군부에게 효율적인 군비 분배를 추진한다는 퍼포먼스를 보여주어 그들은 만족시켰다. 또한 북진통일을 주장하는 이승만과 장제스 일파에게 명시적으로 경고의 메세지를 던져 무리한 전쟁모험을 제어하고 동시에 유엔을 끌어들여 국제적 평화질서 속에서 북조선 등의 공산세력까지 견제하려 했던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북조선을 비롯한 공산주의 세력은 이런 애치슨의 경고를 정확하게 이해하여 그가 아시아를 독점하려 한다며 제국주의자라 맹비난을 퍼부었던 것이다. 간교하고 노회한 노老독재자 스탈린은 이 모든 상황을 관망하며 김일성의 민족주의적 성향과 중국대륙의 공산화가 소련사회주의에 어떤 이익이 될지를 치밀하게 계산하고 있었다. 스탈린의 전략적 목표는 션즈화가 지적했듯이 한반도가 아닌 '만주'였다. 만주에 주둔한 소련군이 확고하게 만주를 장악하게 하면서 중국과 북조선이 소련의 자장 안에 있게 만들 수단을 스탈린은 고민하고 있었다.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의 핵심에는 앞서 논한 세 가지 층위가 지금도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애치슨 라인은 외교적 수단으로 그 세 층위 모두를 달성하려 한 심모원려에서 나온 수단이었지만 무력적 수단을 배제한 외교적 수단만으로는 평화를 유지할 수가 없었다. 결국 한국전쟁이 터지고 브루스 커밍스가 통탄하듯이 미국이 전시체제로 재편되어 아시아에 대규모 군대를 주둔시킨 뒤에야 세 가지 층위는 확실하게 충족될 수 있었다. 한국전쟁은 미국의 소극적 개입주의를 적극적 개입주의로 바꾸고 대규모 전시체제를 구축하게 한 중요한 전쟁이지만 "잊혀진 전쟁"이다. 김일영이 지적했듯이 미국은 '전정협정(공산주의 세력과의 전쟁 중단)' - '한미상호방위조약(북조선의 남침제어)' - '한미합의 의사록(한국의 북침제어)' + 주한미군 주둔이라는 "삼위일체+1"의 구조를 만들어 '긴 평화'를 유지해오고 있다.
이미 학계에서 이정도로 자세하게 논의가 정리된 상황에서 애치슨 라인이 북조선으로 하여금 오판을 하게 했다는 식의 설화를 아직도 믿으면서 중국이 미국의 의도를 오판하고 있다고 얘기하는 건 별로 설득력이 없다. 북조선이나 중국이 바보들이 아니다. 지금 한국 정부는 정전협정을 흔들고 있는데 위의 "삼위일체+1"의 구조를 어느 방향으로 바꿀 것인지에 대한 거시적인 관점을 한국 정부가 인민들한테 보여주고 있지 않다는 문제를 지적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문재인 정부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계속 유지할 것이라는 식으로 논의를 하는데 위의 구조 속에서 얼마나 설득력 있을 것인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북조선이나 중국이 오판을 한다면 그것이 그들의 지적 체계에 심각한 오류가 생겼다는 증거인만큼이나 이쪽의 오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여전히 애치슨 라인이 남침유도를 했다는 식의 지적 오류를 유지하는 인간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오판의 가능성은 커지고, 문재인 정부의 "오판"도 그런 지적 체계에서 비롯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 오판을 그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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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석
Favourites · 21t00lus2och48 ·
존나 웃기네. 페미와의 전투 어쩌고 하더니 지 와이프가 실질적인 위협을 받자 광분하는 남성연대ㅎㅎㅋㅋ 뒷걸음질 페미니스트 되겠어요.
메르스 갤러리 저장소4
10t 5J0l7s2orune6 ·
여자판n번방 여자 조주빈이라며 너무 신났던 한국남성들 광기로 청원20만명 달성하고, 유튜브 100만 조회수도 뽑고, 기사마다 여자라고 호들갑을 떨며 댓글을 달고 다니고, 심지어 여자라고 확신한 남기자들도 마치 신상공개 될 사람이 여성인 것 처럼 기사를 썼으나..
20대 남성이 범인으로 밝혀지자 그남들 아가리침묵에 전국이 조용해진 그 날 6.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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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석
Favourites · 21t00lus2och48 ·
최근에 리영희의 중국연구가 담긴 <전환시대의 논리>와 <우상과 이성>을 다시 읽어볼 기회가 있었는데 떠오른 생각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리영희의 중국연구는 중국 그 자체에 대한 분석보다는 중국을 경유해 한국 사회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인식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중국이라는 거울이 제대로 된 거울이 아니라는 비판은 그 자체로 물론 의미가 없을 수는 없겠으나 리영희의 관점 그 자체를 타격할 수 없다. 문화대혁명에 대한 그의 관점이 실증적으로 잘못됐다는 비판도 따져봐야 할 지점이지만 어쨌든 그렇다고 하더라도 리영희의 관점 자체를 논파할 수 없다는 점은 명확하다고 본다. 오히려 문제삼아야 할 지점은 그의 한국관이다.
리영희는 물질주의 대 인간주의의 관점에서 사회를 바라본다. 그는 루쉰, 문화대혁명, 베트남전쟁 등을 경유해 산업화가 낳은 물질주의, 권위주의, 반공주의 등의 비인간적 측면을 고발한다는 점에서 일관적이지만 그의 한국관은 한국의 발전 속에서 동요하고 있다. 즉 중국, 베트남전쟁 등의 '거울' 자체도 왜곡되어 있지만, 거기에 비춰지는 한국의 자화상 또한 왜곡되어 있다. 이 점을 좀더 비판해야 한다. 권위주의, 물질주의, 권위주의 등은 대단히 추상적인 것으로 어느 사회에나 그 내부에 있을 수밖에 없는 비인간적 경향이기 때문에 오늘날의 관점에서 리영희를 다시 읽더라도 얻을 수 있는 게 없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는 그러한 비인간적 경향과 길항관계를 이루는 인간적 경향이 한국 사회 '내부'에서 어떻게 창출되는지가 리영희에게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아마 그 자신도 자신의 이러한 한계를 알고 있었기에 자신의 저작을 '논문집', 연구서가 아닌 "평론"집이라 명명했으리라 생각된다.
둘째로 리영희의 문화대혁명에 대한 이해를 비판하는 대부분의 보수우파적 논의들의 문화대혁명에 대한 이해는 대단히 조야하다. 그저 대중들의 폭동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되는데 문제가 있다. 홍위병도 그 내부에서 조반파 등의 여러 갈래들로 나눠진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겠다. 이 지점에서 백승욱의 문화대혁명에 대한 이해는 분명히 인민대중 내부의 여러 '민주' 경향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다만 백승욱은 그것을 국가=정당과 인민 간의 관계라는 보다 보편적인 차원의 문제로 끌고 가버리는데 내가 보기에 중요한 건 그 지점도 물론 있지만 문화대혁명이 국가와 당의 인민에 대한 통제를 무너뜨려 시장경제로의 이행의 계기를 낳았다고 보는 한사오궁의 <혁명후기> 같은 관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억압적인 정치적 통제와 억압이 무너지는 곳에서 자유의 영역이 창출되고 시장경제가 회복되어 기능하며 개혁개방으로의 계기를 마련했다는 한사오궁의 지적은 대단히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앞서의 백승욱의 관점 또한 더 큰 의미를 지니게 되리라 본다. 정치적 자유, 민주의 확대가 시장경제와 같은 자유의 영역의 창출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권위주의적 정체들을 비판하는 준거점이 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문화대혁명을 소련의 전시공산주의의 해체와 비교해서 보는 것도 좋은 준거점을 제공해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관점이 단순히 시장경제를 긍정적으로만 보는 것으로 이어지는 것 또한 곤란하지만 내가 문화대혁명을 보는 관점은 그렇다.
이 두 가지 지점을 고려하면서 리영희의 '비판적' 중국연구를 백승욱 등이 어떻게 계승하고 있는지 보는 게 중요하다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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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석
Favourites · tg96870t08ns293g9uoreh ·
중요한 책이다. 중국식 법치주의에 대한 조영남의 3권의 연구서 중 2권을 갖고 있는데 마저 한 권도 빨리 사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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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석
Favourites · tg96870t08ns294g9uoreh ·
보수 성향의 인간들이 나한테 친추하는 이유를 모르겠네. 내가 받아줄거라 생각하는건가? 이해가 안되네. 무슨 자신감이야? 너무 나랑 맞는 성향들만 친구 받아주는 것 같아서 한동안 보수우파 자임하는 애들도 좀 받아봤는데 여기는 진짜.. 젊은 놈들이 더 심해. 차라리 60대 이상의 양동안 같은 사람들이 그래도 학자라고 공부해서 그럭저럭 봐줄만한데 젊은 것들은 무식한 것들이 자유시장경제, 자유민주주의 딱 이 두 개 단어만 외우면서 민주당을 비롯한 좌파들 욕만 한다. 진짜 보고 있으면 와 얘는 이렇게 세상을 납작하게 보는데 저쪽에서 유명하다는거야? 그 생각만 들어. 예전에 그 제자백가 연구한다던 애 누구였지? 와 걔도 진짜.. 무슨 한비자의 법가가 있었으면 법치주의, 근대를 제대로 했는데 유가가 이겨서 망했고 586세대는 사대부의 부활이고.. 유럽적 법치주의와 아시아적 법가의 기본적인 차이 자체를 인지를 못하면서 그저 정치적으로 누구 욕하기 바쁘니.. 아, 진짜 다 이런 수준의 인간들만 있으니.. 민주당이 정말 좀 잘해서 이런 애들 입 다물게 했어야 했는데.. 문재인 이 존나 무능한 인간..
12 comments
Snih Knawuglu
저는 어쩌다 손 선생님과....
· Reply · 4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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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석
친구요청은 안 하셨잖아요!ㅎㅎㅋㅋ
· Reply · 4 h
별김
혹시 임건순인가요ㅎ 저 그 사람 글쓰는 어투랑 내용만 보고 무슨 50~60대쯤인건가 했는데 81년생이래서 경악...
· Reply · 4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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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석
예 맞아요. 임건순. 주대환이 하도 대단하다 어쩐다 해서 궁금해서 요청 받아서 지켜보다가 너무 심해서 차단했네요..
· Reply · 4 h
Basara Bae
· Reply · 4 h
Hyun-ku Kim
법가가 소위 '근대'를 그렇게 제대로 했다면, 왜 꼰-사대부 유가에게 밀렸는가를 설명해야 할 터인데...으음...
· Reply · 4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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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석
유가가 586처럼 사람 냄시 나서 그렇대요ㅋㅋ 냉철한 법가와 근대성을 인민들이 이해를 못하다보니 그렇다는데서 꼴받아서 차단했네요ㅋㅋ
· Reply · 4 h
Hyun-ku Kim
ㅋㅋㅋㅋㅋㅋㅋㅋ하아...
· Reply · 4 h
YeongRak Park
법가하면 제 머리 속에 지금도 떠오르는 일화가 있습니다. 어느 진나라 왕이 병상에 누우니 관리와 백성들 몇몇이 걱정하면서 제사도 지내고 정성을 들여 결과적으로 왕이 쾌차했습니다. 이를 보고 왕은 오히려 '법가'에 따라 그들을 꾸짖고 벌했다고 하더군요. 군주를 향한 사랑, 인애에 따라 그를 따르는 것이 아닌, 철저히 왕이 가진 권세의 두려움으로써 따르게 하려는 목적이라고 이해하고 있어요. 이것만 봐도 공화적인 서구 법치주의랑은 완전 딴판임을 알 수 있죠. 예전에 강정인 교수님 마키아벨리 책 읽을 때 같이 하신 말씀을 살펴본 적이 있는데 민석님 말씀하신 것과 비슷하게 동양적 법가와 서구적 법치주의에 구분이 모호하단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 관련 기사 링크: https://www.donga.com/.../article/all/20190624/96147065/1)
“現정부 도덕 만능-前정권 법치과잉, 모두 패착”
DONGA.COM
“現정부 도덕 만능-前정권 법치과잉, 모두 패착”
“現정부 도덕 만능-前정권 법치과잉, 모두 패착”
· Reply · 3 h ·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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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석
이 양반은 마키아벨리를 그렇게 연구하고도 virtue하고 덕德하고 구별을 안 하는 걸 보면 참.. 어지간합니다.
· Reply · 3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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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석
Favourites · 16 h ·
마르크스의 <헤겔법철학비판>을 다시 읽으면서 새삼 윤평중이 얼마나 어설프게 이 책을 이해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마르크스는 시민사회가 어째서 대의제를 통해서만, 대의제 속에서만 정치적 의미를 획득하고 그바깥에서는 사적인 것으로만 존재해야 하냐고 따지고 있는데 윤평중은 마르크스가 시장을 몰라서 시장이 지니는 보편화의 가능성을 무시하고 시민사회를 사적이고 이해추구만 하는 영역으로 본다고 꾸짖는다. 마르크스로서는 황당한 소리이다. 그게 마르크스가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근대국가라는 ‘건축물’을 위해 시민사회가 항상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 못하고 근대국가에게 선택받기만을 기다려야 한다고 한탄하는데 이상한 소리를 해대니.. 참 왜들 이렇게 못 읽어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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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석
Favourites · 11St69on4002hal7grg0h ·
尹 "주52시간제·최저시급 철폐하겠다"...청년보좌역 공개 모집
https://www.ytn.co.kr/_ln/0101_202111301942282766_018
한국의 정치인들 중에서 뭘 없애겠습니다, 바꾸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은 많아도 지금 왜 그런 제도가 운용되고 유지되고 있는지를 논하는 사람은 없는듯하다. 거기서부터 출발해야 하는건데.
尹 "주52시간제·최저시급 철폐하겠다"...청년보좌역 공개 모집
YTN.CO.KR
尹 "주52시간제·최저시급 철폐하겠다"...청년보좌역 공개 모집
[앵커]이틀째 충청에 머물고 있는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7 comments
이계수
아무래도 폭탄주를 너무 많이 마신 거 아닌가 싶네요.
· Reply · 16 h ·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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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석
이계수 ^^p 인가요ㅎㅎㅋㅋ 그렇다면 여기까지입니다!
· Reply · 16 h
손민석
Favourites · 17 h ·
백승욱과 조영남의 논쟁을 상당히 재밌게 봤는데 조영남의 저작들을 읽느라 코멘트가 늦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조영남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백승욱은 조영남이 중국공산당이 이끈 개혁개방이 왜 성공했는지, 그 조건들을 탐구해야 한다는 문제의식 하에서 책을 쓴 게 문제가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아마 백승욱은 "성공"이라는 표현 자체가 일정한 가치판단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보고 있는 것 같고, 그 맥락에서 예컨대 박정희 시대를 "어떻게 일정한 성과를 낳으면서 유지되었는가"라는 차원에서 평가해야 하듯이 덩샤오핑 이후의 개혁개방도 그렇게 봐야 한다고 보는 것 같다. 본인 나름대로 아마 변증법적 사고를 염두에 둔 표현이라 생각된다. 성공이 이후의 나타날, 혹은 이미 나타나고 있는 '실패'의 계기를 내포하고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리라. 그렇기에 백승욱은 조영남이 노동의 문제, 문화대혁명의 해석의 문제, 민간의 이단사상의 문제 등을 다루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개혁개방의 와중에서 그것의 실패의 계기를 낳을 수 있는 요인들이라 보기 때문일 것이다. 전체의 운동과정에서 살펴보아야 한다는 백승욱의 입장 그 자체는 나는 동의할만한 것이라 생각한다. 확실히 조영남의 관점은 그의 현실전망과 깊게 연관되어 있다.
조영남은 중국공산당이 정치제도화를 상당히 잘 이뤄내면서 자기혁신을 거듭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적어도 한동안은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그러한 확신의 근거를 중국의 당=국가 체제가 나름의 확고한 민중적 지지기반과 제도적 기반 위에 놓여 있다는 점에서 찾고자 하며, 그 역사적 연원을 등소평의 개혁개방으로 소급해 해석하고 있다고 나는 이해했다. 다시 말해서 조영남은 백승욱이 지적한 여러 난제들이 분명히 대단히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임은 분명하지만 중국공산당이 그것에 의해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 본다. 그래서 그는 먼저 그러한 폐해에도 불구하고 무너지지 않을 체제의 안정성의 기반을 '성공'으로 파악하고 있다.
나는 이 조영남의 질문이 현재로서는 타당하다고 본다. 하나의 운동사적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는 백승욱의 지적이 옳은만큼이나 그의 지적이 지니는 하나의 난점이 있는데 바로 성공이 낳을 실패의 계기를 어떻게 인식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철학적 논의를 하자는 게 아니다. 실패의 계기는 성공의 요인이 무엇인지를 명료하게 파악하는데서 출발한다. 어제의 성공의 요인이 오늘의 실패의 요인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조영남은 중국의 당내민주라는 자기혁신이 이미 그 개념 자체에서부터 실패할 수밖에 없는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고 본다. 중국공산당의 일당지배를 부정할 수 없다는 본질적인 한계, 즉 다시 말해서 민주집중제에서 "집중"이 '민주'를 억압할 수밖에 없다는 한계로 인해 중국공산당의 자기혁신은 본질적으로 이미 그 한계를 노정하고 있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조영남도 나름대로 운동사적 관점 속에서 중국의 자기혁신을 보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모순은 그런 게 아니다. 내가 보기에 조영남의 연구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지켜봐야 하는 지점은 중국공산당의 정치제도화의 진전이 역설적이게도 중국공산당으로 하여금 재량의 영역을 줄이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싶다. 조영남은 시진핑이 모택동과 같은 일인독재, 지배를 행사하고 있지 않다고 누누이 강조한다. 정치제도화의 진전으로 그런 자의적인 권력행사는 상당한 수준으로 제한되어 있으며 엘리트들의 광범위한 합의 하에서 시진핑이 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시진핑의 권위가 상대적으로 이전의 지도자들에 비해 높아보인다고 할지라도 착시효과에 지나지 않는다고 그는 단언한다. 이 지점에서 근대사회의 보편적 모순이 중국공산당에게도 적용되는 것을 나는 발견하게 된다. 이미 막스 베버가 오래 전에 예언했듯이 우리는 근대성이라는 쇠우리 속에 갇혀 서서히 말라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중국공산당의 정치제도화는 그에게 안정성을 가져다주지만 동시에 그의 활동영역을 계속해서 제한하여 제도적 조건을 벗어난 합리성이 통용되기 어렵다는 한계를 노정하게 만든다.
바로 이 맥락에서만 앞서 백승욱이 지적한 문화대혁명의 기억, "민주"의 문제 등이 의미를 지니게 된다. 정치제도화 속에서 재량권을 점차 상실하고 있는 중국공산당의 난제가 보시라이의 경우와 같이 극좌적 운동 속에서 문화대혁명의 재현 가능성을 항시적으로 품고 있는 것이다. 민간의 이단사상, 노동의 문제(천안문도 노동자들이 가장 많이 죽었다), 문화대혁명의 기억, 모택동의 기억 등등이 의미를 지니는 것은 바로 이 정치제도화와 그것에 대항하는 인민주의적 폭동이라는 구도 속에서이다. 이 지점을 보다 명료하게 인식하기 위해서라도 조영남의 "성공"은 더 명확하게 나타날 필요가 있다. 중국공산당이 내세우는 개념이 처음부터 글러먹었다는 식의 비판으로는 공산당이 겪고 있는 역동적인 정치과정을 포괄적으로 이해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3 comments
Jun-woo John Kim
사실 그 조영남 선생이 서울대에서 전공불문하고 중국공부를 같이 했던 멤버들 이야기도 인상적이었어요. 그 후세대는 그런게 확 줄었다고 봐야겠죠. 사실 예전에는 유학이 보편화되기전이라 가능한 조건이었다고 저는 봅니다만^^
· Reply · 16 h · Edited
Author
손민석
예, 참 부럽더라고요. 학부시절에나 같이 모여서 책읽고 그러지, 연구자들끼리 그러기는 참 쉽지 않을텐데 부러웠습니다 하하. 수준은 제가 논할 바가 아닌 것 같고요ㅠㅎㅎ 저는 두분 연구를 많이 참고하는 편입니다ㅠ
· Reply · 16 h
손민석
Favourites · 0ti2a40g5m1nt75r7807hd7 ·
학교에서 페미니스트 누나들한테 존나 욕먹고 혼나면서 고치고 같이 공부하면서 싸우고 뭐하고 하고 나왔더니 인터넷 찌끄레기들이 한국 페미니즘은 이상하고 어쩌고 별 븅신 같은 소리들을 늘어놓는 걸 대체 언제까지 봐야 하나.. 힘들여 진도 빼놨더니 버러지들이 거기까지 나갈 필요없다고 해대니 내가 빡이 치겠어, 안 치겠어? 나하고 안 맞아! 흥! 하고 나왔더니 이건 뭐.. 진도 나가야 하는데.. 별.. 애새끼들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내앞에서 왜 남녀가 평등하죠? 따위의 말을 하게 된 지금 상황이 너무 빡쳐 진짜. 자유, 평등, 박애 개념도 다 다시 가르쳐야 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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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석
Favourites · 0ti2a40g5m1nt75r7807hd7 ·
이런 인간이 나한테 친구요청하는 걸 보면 존나 내가 잘못 살았나 싶다. 멍청함 옮을 것 같음. 댓글까지 전부 구역질 난다. 내가 무슨 글을 잘못 썼길래 이런 봉변을 당하나 자괴감이 들고..
수현정
249 t24Ng4oveomb5er at 1375:30re3 ·
[이수정 범죄심리학과 교수 영입 건에 대한 생각]
이걸 쓸까 말까 고민했는데 남긴다.
나도 지난주에는 영입 반대파였는데, 오늘 소식을 듣고, 그리고 인터뷰 기사를 읽어보며 괜찮은 인선일 수 있겠다 생각했다.
앞으로 어떤 활동 및 발언을 할지 지켜보아야 하겠지만.
이수정 교수는 적어도 보수의 가치에 어긋나는, 할당제로 대표되는 결과의 평등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있다면 제보 부탁드림.) 내가 2016년 하반기 이후로 탈페미, 비페미인 이유가 바로 페미니즘은 좌파 사상과 긴밀한 연관이 있으며 나는 좌파 사상에 동의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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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오늘자 인터뷰 중.)
'이 교수는 ‘여성 정책’이란 말이 나올 때마다 ‘약자 보호’라는 단어를 덧붙였다. “남성 정책과 여성 정책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정남규라는 연쇄살인범이 처음 연쇄살인을 시작한 성별은 남자 중학생 두 명이었다.”'
'민주당에는 이미 여성전문가들이 많다. 그런데 그분들이 왜, 지금 그런 문제들에 조용히 하고 계시는지 잘 이해가 안됐다. 사람을 스물 몇 번 찔렀는데, 데이트폭력이라고 발언했다는 데도 그 전문가라는 분들이 아무 말이 없지 않나. '
“래디컬리즘하고 페미니즘하고 혼동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하지만 모르는 거야 설명하면 되는 일이다. 페미니즘은 문제가 아니다. 그간 여성들은 세상에서 중심이 아닌 시절을 살았잖나.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로 살던 시절이 있었는데, 많은 여성들은 페미니즘을 누구의 보조적인 역할을 넘어 ‘나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논쟁은) ‘정남규가 죽인 남자 아동에게는 적용하지 말라는 얘기냐’, 이런 수준의 논쟁이다. 의미가 없다. 지금까지 나는 인구를 반으로 갈라서, 절반에만 유리한 정책 만들자고 호소했던 적이 없다. 약자를 보호해달라, 피해자 피해 회복되게 해달라, 아주 기본적 전제와 원칙 위해 노력해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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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민주당의 소위 페미니스트 정치인들은 이번에도 침묵하고 있다.
아무 노력 없이 결과의 평등만을 바라는 좌파식 정책은 반드시 막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안전 이슈까지 '없는 것' 취급하고 "우리나라는 치안이 좋다"로 끝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도 이수정 교수의 지난 발언 중 '동거할 경우 여자에게 용돈을 주지 않는 것은 경제적 학대' 발언이나 알페스에 대해서 표현의 자유(*내로남불) 운운한 부분은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 인터뷰를 보면 현재의 젠더 갈등에 대해 재보선 이전보다는 어느정도 인지하시는 것 같다. 안전 이슈를 벗어나 할당제 등의 좌파사상으로까지 발전한다면, 당내 다른 정치인들이 지금보다 반대의 목소리를 크게 내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올해 3월엔 노원에서 김태현 사건이, 올해 11월엔 김병찬 사건이 터졌다. 그래도 '범죄심리전문가'이기에, 먹물 페미니스트와 다르게 안전 이슈와 대책은 확실히 공론화 및 현실화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8 comments
이호중
ㅋㅋㅋ예전에 민석님 글보고 전향한 사람많아졌다는 한탄 생각나네요ㅋㅋㅋㅋ
· Reply · 17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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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석
왜 내게 이런 시련이..ㅠ
· Reply · 17 h
손민석
Favourites · 4Y1e0Sstteord8t4any at 3s18:ia35 ·
내가 노동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생산력발전을 이뤄내야 한다고 주장을 하면
항상 따라나오는 비판이 노동시간의 증대는 절대적 잉여가치의 증대에서 볼 수 있듯이 계급투쟁적 차원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좋은 지적이다. 나는 계급투쟁을 부정하지 않는다. 동일한 실질임금을 유지하면서도 얼마든지 노동시간 줄일 수 있고 줄여야 한다고 본다. 잔업을 없애고 과도한 야근 등의 회사 문화를 바꿔야 한다. 이런 투쟁들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런데 이렇게만 하면 곤란한 지점이 있다.
첫째로 월러스틴이 명료하게 표현했듯이 근대세계체제의 모순은 자본은 전세계적 규모로 운동하는데 반해 노동은 국내적으로만 운동한다는 데서 나타난다. 이 모순을 만들어내고 유지하는 상부구조가 바로 국가간체계이다. 자본은 잉여가치를 좇아 국가간체계를 순환하며 세계각지의 노동을 착취한다. 그래서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이 마르크스주의에 가하는 가장 근본적인 비판 중 하나가 일국적 관점을 넘어서지 못해서 국가간체계가 어떻게 자본의 전세계적 순환과 착취에 기여하는지를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여담이지만 월러스틴의 이론적 난점인 소련국가사회주의 체제 또한 이 국가간체계에 포섭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것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국가사회주의 체제의 성격도 자본주의적이라 규정하는데 나로서는 동의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어쨌거나 국가사회주의가 결국 자본주의적 세계체제 속으로 빨려들어갈 거라는 그의 예언은 현실로 나타났지만.
노동은 자본과의 관계에서 기울어진 운동장 위에 있다.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지적하고 칼 마르크스가 <경철수고>에서 받아들였듯이 계급투쟁에서 노동의 패배는 필연적이다. 다만 <공산당선언>에서 마르크스가 지적했듯이 그 패배는 더 큰 봉기를 위한 기반으로써만 의미 있는 것이다. 노동은 매번 패하지만 자본의 확장만큼이나 더 큰 규모로 다시 봉기한다. 마르크스는 그것이 전세계적 규모의 봉기로 이어질 것이라 믿었지만 앞서 말했듯이 월러스틴이 지적한 세계체제의 상부구조인 국가간체계 하에서는 각개격파 당하며 진압당할 가능성이 높다.
즉 국내에서 이뤄진 일정한 정도의 개선은 자본의 세계적 이동 속에서 쉽게 와해될 수 있다. 계급투쟁 속에서 힘의 관철을 통한 노동시간의 축소는 사실 그 자체로도 이미 상당한 세력의 소진을 요한다. 문재인 정부도 최저임금을 잔뜩 올려놓은 뒤에 곧바로 기업들의 해외투자, 자본유출이 엄청나게 이뤄지자 최저임금 인상을 최소한으로 제한해버렸다. 내가 문재인 정부에 비판적인 것은 그는 최저임금 정책을 펼치면서도 그것을 뒷받침할 정치세력화를 하지 않았다는 점 때문이다. 지지율 숫자놀음 하며 조직화에 무관심하다가 다 말아먹었다. 물론 정치적 지지기반이 든든했다고 해도 앞서 논한 조건에서 그가 얼마나 노동자의 편을 들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자본의 세계적 규모의 이동이라는 현대 사회의 조건 속에서 계급투쟁을 통한 개선은 '시지프스의 형벌'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둘째로 국제주의의 실천을 위해서는 생산력 발전이 필요하다. 앞서 논한 바와 같이 국내에서의 노동시간의 축소로 인해 도태되는 산업들을 단순히 자연도태되게 두는 것이 아니라 우리 국내의 노동자와 연대할 수 있는 다른 국가, 사회의 노동자들을 만들어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우리가 누구와, 어느 민족과 산업연관관계를 만들어낼 것인가? 더 나아가 그 과정에서 그 민족의 어떤 계급과 협력관계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구체화하여 하나의 국제적 연대를 만들어낼 것인가? 나는 후진국들에게 무언가를 줄 수 있어야 비로소 선진국으로서 한국이 혁명이 됐든 뭐가 됐든 할 수 있다고 본다. 한국인들은 그저 자기 손에 뭐 하나 쥐고 있는거 남한테 주면 큰일나는 줄 아는데 우리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부르주아지들이 국제적으로 한국의 지정학적 요인 등을 고민하면서 어떤 산업을 배치할 것인지, 누구와 협력할 것인지 등의 문제를 고민했기 때문이었다. 노동 세력이라고 그런 걸 하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
우리가 무언가를 주고 친구를 만들어내려면 생산력 발전을 이뤄내야 한다. 국내적으로 노동시간 줄이고 노동조건, 문화 등을 개선하는 작업과 함께 국외적으로 한국에서 도태되는 산업들을 어떻게 이동시키고 국내와 연관관계를 만들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엥겔스는 <고타강령 비판> 및 <에르푸르트 강령>에서 독일 사회민주당 세력이 지나칠 정도로 국내주의적으로만 생각한다고 비판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독일 노동자 집단을 해외로 파견할 것을 국제주의의 한 예로 제시하기도 했다. 나는 여기에 아예 이쪽이 노동자 계급을 만들어내는 과정 또한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생산력 발전은 그를 위한 최소한의 전제조건이다. 한국인들의 민족주의적 편견을 뚫어내기 위해서는 이쪽이 국내외적으로 동시에 향상과 함께 연대를 고민해야 한다. 누구와 동맹할 것인가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이러한 동맹의 결과로 만들어낼 대안으로 내가 계속해서 "한국의 미국화"를 제시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높은 생산력이 없으면 한국의 '미국화'는 불가능하다. 우리가 선도하려면 선도할 수 있는 생산력이 있어야 한다. 자본의 세계적 전개와 노동의 일국적 전개가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모순이라면 그 모순의 돌파는 반대로 자본의 세계적 전개를 통제하고 노동을 세계적 규모로 전개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여기에는 당연히 막대한 비용이 들고 그 비용은 생산력 발전 없이 감당할 수 없다.
생산력주의라고 비판할 수 있다고 보고 나는 실제로 생산력주의자가 맞다. 생산력 발전만이 모든 문제의 해결의 기초를 제공한다. 그렇지만 그 조건을 활용하는 건 우리의 선택이다. 어차피 국내외적으로 세력도 없는 상황에서 이런 얘기해봐야 별 의미도 없지만..
Sungwon Yoon
4Y1e0Sstteord8t4any at 3s17:ia31 ·
우리가, 전세계 노동자계급이 장시간 노동으로 인해 스스로를 가꾸고 돌아볼 여유를 낼 수 없는건, 저개발국가라면 모를까, 적어도 우리 사회에서는 생산력이 덜 발전했기 때문은 아니라고 본다. 마찬가지로 노동자 개인의 여가를 늘이려면 생산력이 더 발전해야한다는 믿음에도 동의하기 힘들다. 자본이 노동자들을 장시간 노동의 사슬에 묶어두는건 생산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그냥 그래야 여가시간을 뺏을 수 있기 때문 아닌가. 딴생각이나 작당모의 못하게. 이 지점에서 '생산력주의'는 어느 계급의 이익에 복무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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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석
Favourites · hY36es5terdttpa43y atlo 1r776:t23 ·
중국공산당은 소련공산당과 다르다. 우선 자본주의적 세계시장에 대한 입장이 다르다.
소련식 계획경제는 말그대로 이데올로기적으로 자본주의적 세계시장을 대체하는 새로운 사회구성체를 지향하는 경제였다면, 중국공산당은 자본주의적 시장경제 위에 사회주의적 국유경제가 올라탄 형국이다. 중국공산당은 그것을 사회주의라 설명하지만 국가자본주의라는 표현이 적합하다. 패러다임 자체가 자본주의적 세계시장 내에서 누가 보다 효율적으로 사회발전을 이루고 사회적 관리를 행하는지로 바뀌었는데 여전히 20세기의 전체주의 대 자유민주주의라는 패러다임, 그것도 비교정치학의 발전 속에서 권위주의적 정체에 대한 개념화가 이뤄져서 이미 1970년대에 낡아버린 패러다임을 갖고 중국공산당을 해석하려고 하면 별 의미가 없다. 증국공산당과 대결하려면 자유민주주의가 중국공산당만큼 효율적으로 기능한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그런데 아직도 전체주의 대 자유민주주의 패러다임이나 들고 나오니..
자본주의적 세계시장에 대한 입장 자체가 소련공산당과 다르다보니 미국, 서유럽 등의 국가들이 중국을 봉쇄하려고 하는 시도는 결코 성공할 수가 없다. 중국공산당은 너무나도 깊숙하게 전세계 경제에 포섭되어 있기 때문이다. 중국공산당은 일종의 부르주아 세계시장에 포섭되지 않기를 바라는, 부르주아 국가화를 거부하는 '의식적 운동'이다. 자본주의적 세계시장이 가져올 수 있는 자율성의 침해를 중국공산당이 최소화하여 국가의 자율성을 계속해서 확보하려는 하나의 자각적 운동으로 보아야 한다. 그렇게 확보된 자율성을 사회발전에 사용하고 있다. 소련은 의식적으로 자본주의적 세계시장 바깥에 위치하려 했지만 중국공산당은 세계시장 내부에서 국가의 자율성에 기초해 효율적인 통치를 행하는 것으로 자신의 지배정당성을 획득하려 한다. 당연히 소련과 이데올로기적 호구성 자체가 다르다.
소련식 국가사회주의가 세계적인 규모로 매력을 지녔던 건 대공황을 계획경제로 극복한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자유민주주의와 국가사회주의 모두의 적인 '파시즘'을 제거해 인류문명을 구했다는 업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공산당은 그런 세계사적 과제로 지배정당성을 획득하는 게 아니라 일국차원에서 효율적인 경제개발을 이뤄냈다는 업적에 기초해서 지배정당성을 획득했다. 기껏해야 1930년대 초반의 소련공업화 단계이다. 그들이 세계에 내세울 건 효율적으로 기능한 경제개발모델밖에 없다. 소련이 파시즘의 패망이라는 세계사적 과제를 수행해 국제공산주의를 이끌 자격을 획득했듯이 중국공산당도 그런 세계사적 과제를 수행한 뒤에야 비로소 비슷한 지위를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1945년 이후의 전후질서를 유지시킨 파시즘에 대한 단죄 같은 좌우 간의 합의는 오늘날에 존재하기 어렵다. 중국공산당이 소련공산당에 비해 이데올로기적으로 약한 건 민족국가 단위를 넘어선 사건이 나타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봉쇄가 불가능하고 세계시장 내에서의 국가기구의 효율성이 지배정당성의 기준이 되는 상황에서 중국공산당을 몇몇 산업에서 타격한다고 해서 과연 얼마나 유의미한 타격이 될까? 게다가 국제정세는 미국에게 결코 유리하지 않다. 중국공산당이 대만으로의 확장을 시도하는 과정과 러시아 푸티니즘이 우크라이나로의 확장을 시도하는 과정이 결합되고 있다. 우방이었던 독일은 가스전 문제 등에서 러시아에 호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미국 국내에서 대의제 기구는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바이든의 지지율은 연일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공화당은 바이든을 때리기 바쁘며 트럼프가 다시 집권할 가능성마저 무시할 수 없다. 정책적으로도 무리를 하고 있다. 동맹국과 그 기업들을 겁박해 내부정보까지 탈취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중무장과 남북평화를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미국의 묵인하에 한반도 역사상 최강의 무력집단을 만들어내며 도쿄와 베이징 모두를 타격범위 안에 두는데 성공했고 핵잠수함의 건조와 핵무장의 조건의 확보를 추진하고 있다. 한국은 경제적으로도 비록 흑자폭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무역흑자를 달성하며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다. 경제적 번영에 자신감을 갖고 남북관계의 개선도 적극적으로 추진해 중국을 종전선언장에 끌어왔다. 물론 그 의도에는 북조선과 마찬가지로 미군 철수를 꾀하는 전략이 있을 것이다. 일본이 반대하는 바로 그 이유. 욱일승천하는 한국의 국력과 그에 걸맞는 무장능력의 고도화는 현 상황에서 보자면 한국의 자위력의 증대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는 미중갈등을 활용하여 한국의 국익을 최대한으로 확보하고 독자적인 세력화의 무력적 기반을 확보하는 것에 몰두하고 있다.
좌파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방식으로 비판해야 하는가? 단순하게 국방비 비중의 증가와 평화건설의 요원함을 비판하며 국방비의 복지예산으로의 전용 등만을 주장하는 건 지나치게 일국적인 시각이라 본다. 평화운동을 함께 할 국제적 노동세력의 건설이 요원한 현 상황에서 한국의 좌파 세력이 지향해야 할 바는 무엇일까. 어떤 선택이 노동계급에게 이익이 될 것이며 국내의 계급관계를 보다 노동세력 친화적인 방향으로 이끌고 갈 수 있는가? 마르크스와 레닌의 저작을 오늘날의 한국에 적용해 창조적으로 독해하려면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뤄야 하는데 참고할만한 좌파 지식인이 없다. 좌파 정치인도 없다. 대체 우리는 뭘 하고 있는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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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석
Favourites · hY36es5terdttpa43y atlo 1r774:t52 ·
대선후보들이 뭘 하겠다는 게 없는데 중도층을 잡아야 하고 어쩌고 이미지가 저쩌고 하는 말들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건지 모르겠다. 그래서 뭘할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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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식
#이재명은_______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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