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일본의 굴레(Japan and the shackles of the east)』 서평: 현대 일본의 원형을 찾아서-(1)
1.
어렸을 때부터 일본으로 여행을 가고, 일본 애니메이션 등 문화를 즐기고, 대학에 들어와서는 일본어를 배우고 현재 역시 일본학을 전공으로 삼고 있지만 여전히 일본에 관해 사람들의 질문을 받으면 대답하기 난감한 경우가 많다. 현대일본에서 관찰되는 여러 시사문제는 서구의 주류 정치학이론이나 경제학 이론으로 설명되지 않은 부분이 분명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이후, 전 세계의 이목을 끈 일본인의 집단적 인도주의 조치는 단단한 사회적 결속력과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보여주었다. 한편, 자연재해에 취약한 국토 내에서 원자력 에너지 관리의 허술함을 보여준 지도층을 양산해내는 이 국가체제는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일각에서 주장하는, 가장 ‘우익’스러운 정부가 가장 ‘좌익’에 가까운 통화 및 재정정책을 발동하는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20세기 말 역사상 가장 눈부신 경제성장을 거둔 나라인 동시에 경직적인 관료주의 대명사이기도 하는 일본의 모습은 우연일까 필연일까?
2.
올해 대선후보들이 여과 없이 ‘반일감정’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듯이, 늘 한국에서는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일본에 대해 자신들의 입맛대로 활용한다. 그들이 지난 10년 동안 헌법 하나 개정 못해 군대를 갖지 못한 ‘극우’ 정부를 공격하고자 대선토론 때 ‘일본군’ 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야당후보를 공격한 모습은 낯설지 않다. ‘한-미-일’ 군사동맹은 제국주의의 망령이라는 듯이 뉘앙스를 풍기면서 야당후보의 사상검증을 요구하는 저 모습은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한 진보세력인지 의심스러울 따름이다.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단절이 아닌 연속성을 지닌 일련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라지만 제국주의의 국가로서의 일본과 민주주의 국가로서의 일본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현대 일본국가 체제의 역사적인 원형과 흐름을 학문적으로 해석하는 것과 전후 평화헌법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는 일본을 두고 지나친 정치적 과장과 선동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결코 같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제 3자가 바라본, 현대 일본의 조류를 관통하는 구조적 서사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일본에 오래 체류한 한 서구학자가 쓴 이 책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 국제 정치·경제학자이기도 한 저자 R.태카트 머피는 단순한 일본 국내정치 뿐만 아니라 미국의 외교안보전략과 연계된 일본의 국제정치 상의 위치나 경제체제 등에서도 조예가 깊다. 미국에 대해 비판적인 리버럴 성향의 학자인지라 보수주의적 경로의존성이 강한 일본의 여러 면에 대해 대체로 비판적인 편이지만 민족이나 역사 갈등에서 자유로운 제 3자적 시선에 기반을 둔 고찰들이라 더욱 뜻 깊은 기록이다.
과거 일본의 발전을 이끄는 한편 그 자리를 계속 구속하고 있는 여러 사회문화적 요인들에 대해 전반부에서는 에도막부가 설립된 근세이전부터 90년대 잃어버린 20년 시기 이전까지의 역사를 살피며 추적한다. 후반부에는 현대 일본의 정치경제적 구조와 미국 중심의 국제정세에 연동된 일본의 외교안보 역할, 전략 등에 대해 심도 있는 내용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3.
일본의 역사, 지리, 정치체제, 문화를 배우는 이유는 단순히 존재하는 보편적 이론의 범위를 넘어서는 여러 독특한 현상과 과제들을 이해하기 위해서이다.
일례로 근대 메이지 정부 이전, 에도 막부 시절에 존재했던 공식적인 국가시스템의 구조와 실제 사회 간의 ‘간극’ 은 수없이 지적되어온 현대일본에 내재하는 수많은 ‘모순’ 의 뿌리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기괴스러운 것은 과거의 일본인이나 현대의 일본인 모두 이 점을 본능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두고 일종의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간 ‘계급타협’ 의 한 산물이라고 나는 생각하는 데, 저자는 도쿠가와 막부부터 보여준, 잠재적인 반대 세력을 회유했던 정치문화가 현대 일본정치의 중요한 특징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서구에서 ‘부르주아 혁명’을 거쳐 자본주의 사회로 진화하기 위한 중요한 특징으로 꼽은 정교한 금융시스템, 낮은 문맹률, 높은 도시화비율, 상인계급의 성장 등이 일본 역시 갖추어졌지만 진정한 의미의 시민혁명은 일어나지 않았다. 기존의 권력구조에 노골적인 도전하지 않은 이상, 국가는 민간의 자생적 성장에 간섭하지 않았고, 상인계급도 근대적 개념에 부합하는 정치적인 이론이나 사상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체제 순응적 경향으로 정착되어 갔다.
그리고 이 모순은 여전히 메이지 유신 이후에도 제도로서 연속성을 띄게 되었는데 저자가 바라보는 근대시기의 모순은 두 가지의 제도적 허구에서 비롯된다. 하나는 천황제이고 또 하나는 입헌주의나 법치주의와 같은 서구의 정치이론이다. 서양에서 일본이 근대국가이자 제국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라면 마땅히 그에 걸 맞는 정치제도나 사상이 요구되었고 일정부분 실현된 건 사실이지만, 이 과정에서 의회의 감시나 통제로부터 벗어나 천황의 ‘칙령’을 받아 활동하는 관료의 역할이 증대되었다. 중요한 것은 천황이 실제로 누구를 임명하거나 주요 정치사항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란 점인데, 실제 정치적 의사결정을 내린 것은 막부를 전복시킨 사쓰마薩摩와 죠슈長州 번의 사무라이 계급(군인)이다. 이러한 지배구조의 중심적인 결함은 ‘정치적 책임구조’의 부재로 지적되는데 전후 일본체제에 대해 연구한, 저명한 정치철학자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真男의 이론을 차용한 측면이 적지 않다. 한마디로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에게 실제 책임과 권력이 집중된 것이 아닌 통제를 벗어나 여기저기 분산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일련의 과정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 1936년 2.26 급진적인 젊은 육군 장교들이 쿠데타를 벌여 기업간부와 장관을 암살한 일이다. 현실에 타협하는 세속적인 엘리트 계층에 대한 대중적 혐오는 ‘위협과 암살의 정치’를 낳았고 불안한 권력구조에서 정치세력 간 평화로운 교체나 분쟁을 해결하는 기제는 실질적으로 작동되지 않았다. 남은 것은 소모적이고 끝없는 살인적인 권력투쟁이었는데, 관료들도 군인들을 통제할 수 없었고 공포와 위협이 가득한 분위기 속에서는 합리적인 정세판단을 내릴 수 있는 엘리트들은 위축되었다. 그들은 도박이 아닌 전쟁의 수렁에 끌려들어간다고 느꼈다. 이러한 모순투성이의 체제 끝은 우리가 알다시피 태평양 전쟁의 시작과 파멸이었다.
4.
한편 전후 우리 한국인이 보고 싶지 않은 역사적 사실을 하나 직시하고자 한다.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내세웠던 개전의 이유는 식민주의의 종언과 서구로부터의 아시아 독립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일본에 의해 함락된 싱가포르는 대영 제국 종말의 서막을 알렸고, 프랑스는 베트남 인도차이나에서 물러났다. 네덜란드 역시 동인도라 불리던 인도네시아 열도에서 쫓겨났으며 미국의 유일한 식민지 필리핀도 시대의 압력에 따라 법적으로 독립을 얻게 되었다. 중국의 저우언라이周恩来 총리는 일본이 없었더라면 “신중국도 없었을 것” 이라 단언했다.
결국 역사에서 선과 악을 논하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그 당시 역사가 가지는 디테일한 과정이자 의의고 현대에 역시 그 함의가 지속될 수 있는지 여부이다. 이 시기에 이르러 일본은 서양으로부터 사상적-군사적-경제적 지배로부터 스스로 자유로워지기를 원했고 스스로의 운명을 통제하고자 했지만 실패했다. 이러한 패착적인 결과를 도출했던 내부 의사결정 과정의 ‘폐쇄성’은 제국주의나 파시즘 체제와 유사성이 있는 권위주의 정권 역시 안고 있는 문제다. 현재 미국에 맞서 두 세력균형을 이루는 주축인 중국과 러시아 모두 과거 일본과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서구가 지배하는 세계로부터 독립하고자 하는 이들 국가의 운명은 전전戰前 일본과 비교해 어떠한 말로를 걷게 될까. 한 동안 지켜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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