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4-25

김선주 - [십자가를 버리라, 그러면 보일 것이다 > 인간은 상징을 만들고 상징은 살인을 합니다. 문화의 발달은... | Facebook

김선주 - < 십자가를 버리라, 그러면 보일 것이다 > 인간은 상징을 만들고 상징은 살인을 합니다. 문화의 발달은... | Facebook


김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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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자가를 버리라, 그러면 보일 것이다 >

인간은 상징을 만들고 상징은 살인을 합니다. 문화의 발달은 상징을 만들고 활용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인간은 실제(Reality)가 아닌, 상징(Symbol)을 통해 신념과 가치체계를 구축해 왔습니다. 상징을 다룰 줄 아는 것은 직립보행이나 도구를 다루는 것에 비견될 수 없을 정도로 인간 정신의 차원을 높였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상징의 노예가 되면 폭력성을 띠게 됩니다. 실제보다 상징에 더 큰 의미와 가치를 둘 때, 인간은 실제를 파괴하고 상징을 우상으로 받듭니다.
태극기, 성조기, 일장기, 오성홍기 등은 한국, 미국, 일본, 중국 등 각 나라를 상징합니다. 욱일기는 일본 제국주의와 군국주의를 상징합니다. 초승달 문양은 이슬람을 상징합니다. 남근과 여근이 교합한 모양의 시바 링가(Shiva Linga)는 힌두교의 시바 신을 상징합니다. 하켄크로이츠 문양은 나치를 상징합니다. 비슷한 문양의 만(卍) 자는 불교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십자가는 기독교를 상징합니다.
그런데 상징을 실제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면 파괴적인 힘을 갖습니다. 국가 간의 분쟁이 있거나 저항 시위가 있을 때 적대국의 국기를 불태우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그것은 적대자에 대한 혐오의 표현입니다. 상징을 불태움으로써 상대에게 치욕을 안겨주는 것입니다. 상징을 자신의 정체성과 동일시하기 때문입니다. 상징과 실제가 동일시됩니다. 하지만 어떤 상징은 실제보다 더 우월한 지위를 갖습니다. 종교적 상징입니다.
종교적 상징은 유일신을 섬기는 종교에서 더 적극적으로 사용되며, 그 상징들을 통한 전쟁이 극렬하게 벌어지기도 합니다. 기독교와 이슬람이 그렇습니다. 십자군 전쟁에서 기독교는 흰 바탕에 붉은 십자가(성전기사단) 문양을 사용했고 이슬람은 초록색 바탕에 초승달과 별 문양을 사용했습니다. 십자군 전쟁은 자기 상징의 가치를 지키고 적대자의 상징을 파괴하기 위해 사람의 목숨을 도구로 사용한 종교전쟁이었습니다.
며칠 전 SNS에 레바논에 침략한 이스라엘군이 예수 동상의 머리를 망치로 내려치는 사진이 올라왔습니다. 이에 대해 많은 크리스천들이 분개하며 들끓었습니다. 신성모독이며 기독교에 대한 적대 행위라고 분노했습니다. 이스라엘 정부는 해당 병사를 징계하겠다고 했지만 바로 다음 날 레바논을 재침공하였습니다. 레바논 인구의 절반가량이 이슬람과 기독교로 양분돼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슬람과 기독교의 내분을 유도하기 위한 책략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피 흘리는 전쟁을 하지 않고도 상징 하나만 훼손하면 적대국에 내전을 유발할 수 있는 수준의 파괴력을 갖는 게 상징 훼손입니다. 이스라엘군이 이슬람 무장단체(정당) 헤즈볼라를 명분으로 레바논을 침략하여 기독교의 상징을 훼손함으로써 ‘헤즈볼라 때문에 공격당했다’고 생각하도록 기독교인들을 자극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견해가 설득력을 얻는 이유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보편적 인권 가치와 국제법적 질서를 기초로 이스라엘을 비판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한인회장 이강근 목사가 이재명 대통령을 비난하고 나섰습니다. “대통령의 발언 때문에 이스라엘에서 살아가는 한인들이 눈총을 받게 됐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이재명 대통령에게 “재판이나 받으라”는 식으로 공격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공격하여 7만 명이 넘는 팔레스타인 사람이 죽어갈 때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17만 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부상당하고 병원과 학교가 파괴될 때는 침묵하였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에서 기독교의 유적과 상징물을 구경시켜 주며 성지순례로 먹고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타인의 고통받는 실제보다 자신이 이익을 누리고 있는 상징을 더 고귀하게 여긴 것입니다. 종교가 타락하면 고통받는 실제를 외면하고 상징의 노예가 됩니다.
영화 <힌드의 목소리>는 여섯 살 소녀가 이스라엘군의 총격에 죽어가며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목소리를 두 시간 동안 들려줍니다. 그 목소리는 연출된 게 아니라 실제 전화 목소리를 영화에 삽입한 것입니다. 팔레스타인 사람을 향해 이스라엘군이 무차별적으로 총을 쏘는 소리와 탱크 소리가 아이의 전화 음성과 함께 그대로 전해집니다.
유대인의 국기는 흰색 바탕에 파란색 가로 줄 2개가 위아래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기도할 때 어깨에 두르는 탈리트(Tallit)를 나타내는데 이는 하나님의 영광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가운데 다윗의 별은 유대 민족이 다윗왕과 메시아의 후손임을 상징합니다. 이스라엘 국기가 폐쇄적 유일신 사상과 파괴적인 메시아니즘의 상징으로 읽히는 것은 그들의 야만적 행위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폴란드 의회에서는 이스라엘 국기에 다윗의 별 대신 하켄 크로이츠를 배치한 깃발을 들고 나온 의원이 있습니다. 상징을 조롱하고 이스라엘의 행태를 나치와 동일시하며 혐오한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상징이 아니라 실제로부터 출발한 종교입니다. 예수는 관념도 아니고 초월도 아닌, 인간의 몸으로 인간 실제의 극한에 이르러 타자의 고통을 체험합니다. 타자의 고통을 끌어안는 실제, 그것이 예수였습니다. 십자가 같은 상징물 따위로 실제를 외면하지 않는 종교, 그 종교는 고통받는 예수의 몸에서 왔습니다. 초기 기독교가 영지주의를 이단으로 분류한 이유가 그것입니다. 고통받는 타자의 고통이 없기 때문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상징을 버려야 합니다. 십자가 상징에는 예수가 없습니다. 고통받는 타자가 내 몸으로 들어올 때, 그때 내 안에 예수가 있습니다. 십자가를 버려야 참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나는 오늘 요한복음 8장 32절에 전하는 예수의 말씀을 다시 듣습니다. “상징을 버릴지니 실제가 너희를 구원하리라.”라고. 그리고 이런 말씀도 듣습니다. “십자가를 버리라, 그러면 예수의 실제가 너에게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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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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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author
    고통받는 타자가 내 몸으로 들어올 때 그 때 내 안에 예수가 있습니다 라고 하시는 목사님 말씀에 오백퍼 공감합니다 물론 전체 글 모두가 다 양식이 됩니다 🙏🙏 가장 중요한 말씀을 해 주신 목사님께 감사드리면서 상징을 버리고 실제 예수가 사람이 되어 치열하게 사셨던 그 분의 제자들인 우린 그 분 처럼 살아야 된다는 걸 늘 훈련하고 다짐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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