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4-27

선교지연구 파키스탄 차수열 (1-18) < 크리스찬타임스

선교지연구 파키스탄(4) < 선교 < 기사본문 - 크리스찬타임스

차수열 선교사
총회 세계 선교회 (GMS) 소속으로 14년간
파키스탄 선교사역 (1990-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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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연구 파키스탄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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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교 2012.08.27 22:02
    선교지연구 파키스탄(17)

    또한 각 가정에 절대 필요한 등 외에는 선풍기가 전부였기에 불만의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고 외국인인 우리 가정도 그것을 당연시 해서 전기 들어오는 시간에 맟추어 생활을 하게 했다.5, 6년 후에는 대형 수력 발전소가 개통되고 크고 작은 화력 발전소가 새로 생기면서 이러한 불편은 없어지고 거


    선교 2012.08.18 21:17
    선교지연구 파키스탄(16)

    △파키스탄 우르드어 오디오 성경 우리말과 어순이 비슷하며 단어도 제한되어 있고 문법 구조도 44개의 문법을 외우면 쉽게 말할 수 있어 한인들에게는 비교적 쉬운 언어이다. 현재에 많은 한인 선교사들이 유창하게 구사하여 사역에 임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어에 없는 매우 긴 모음과 특히 여러 개


    선교 2012.08.18 21:15
    선교지연구 파키스탄(15)

    기본 문법은 힌두어와 같다. 글자는 이란어(페르시아어)를 사용하고 있다. 필자도 이란어를 읽을 줄은 알지만 뜻은 이해 못 하는데 이는 우르드어의 글자(알파벳)가 이란어이기 때문이다. 종교적인 용어는 아랍어에서 인용해서 그대로 사용하고 현대적 용어는 영어를 그대로 사용한다.그 뜻대로 우르


    선교 2012.08.18 21:12
    선교지연구 파키스탄(13)

    개인마다 차이가 있다. 하지만 이러한 목회자는 현지 교회에서 검증된 지도자이다. 다른 선교 현장은 상황이 다르기에 모르지만 파키스탄의 현지 목회자는 현지에서 양육되어야 하며 외부에서 양육된 목회자는 현지 목회를 감당할 수 없음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외부에서 양육된 목회자는 자신이 현지


    선교 2012.08.18 21:12
    선교지연구 파키스탄(14)

    많은 집회기금을 받아 이 현지 목사는 노회장, 감독, 교단 지도자들을 돈으로 매수했다.12년전 일인당 1라크(십만 루피로 당시 돈으로 천 오백불)을 주었고(현지에서 라크의 단위는 매우 큰 것이다.) 각 교회 목사들을 교회 크기에 따라 매수 했다. 차량 수백대를 전세 내었고 오는 사람마다 돈을 주었다.


    선교 2012.07.20 02:35
    선교지연구 파키스탄 (12)

    20여년 전에 한국에서 극심한 노사 분규와 인건비 상승으로 제 3세계의 외국인 인력이 유입되어 3D 업종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현재에는 100만명이 넘는 외국인 인력이 일하고 있다. 초창기인 20여년 전에 이미 많은 파키스탄인이 한국에 유입되어 일하면서 기독교인들은 한국 교회에 출석하면서 친분을
    선교 2012.07.13 01:29
    선교지연구 파키스탄(11)

    지난 주에 미국 뉴스는 다시 파키스탄에 눈을 돌렸다. 그 이유는 파키스탄 정부가 아프가니스탄 가는 국경을 봉쇄하였기 때문이다. 파키스탄을 중심으로 스탄이 들어가는 중앙아시아는 이슬람 국가인 동시에 내륙 국가이다. 해변이 없기에 외국에서 물자가 들어가기가 용이하지 않다. 스탄의 용어의 스는 소유격으로 우리말의 “의”에 해당하는 단어이고 탄(딴)은 “땅”이라는 뜻이다. 그 앞의 단어는 종족의 명을 붙혀 사용하다. 파키스탄의 파키(현지에는 빠끼로 발음)는 종족의 이름이 아니라 거룩한 혹은 구별되다는 뜻으로 이슬람으로 구별된 거룩한 땅이라
    선교 2012.07.06 02:22
    선교지연구 파키스탄(10)

    파키스탄과 연관된 이야기에 탈레반이라는 단어를 종종 듣는다. 이슬람 테러단체쯤이라 생각할 정도로 이 탈레반에서 많은 테러와 인질 등을 자행해왔다. 그러면 탈레반이 테러단체의 이름인가? 오늘 이 지면을 통하여 탈레반을 살펴보려고 한다.파키스탄 공용어인 우르드어, 이란과 아프가니스탄이 공용어로 쓰는 페르시야어(이 언어는 파르시라 부른다). 그외 서남아시아 일부에서 사용되는 단어로 학생을 딸립 일름이라 한다. 딸립은 따르는자라는 뜻이고 일림은 학문이다. 합성어로 학문을 따르는 자라는 뜻이다. 즉 우리말로 학생이라는 단어이다. 딸립일름을


    선교 2012.06.30 09:40
    선교지연구 파키스탄(9)

    현대 선교전략 중 중요한 용어가 10/40 window이다. 즉 지구의 위도상으로 10도와 40도 사이에 거주하는 미 전도 족속을 향한 선교 전략이다. 이슬람을 믿는 무슬림들이 거의 이 지역에 거주한다. 파키스탄도 이 범주에 들어간다. 10/40에 가장 많이 거주하는 미전도 종족들은 무슬림이다. 거대한 무슬림을 향


    선교 2012.06.22 17:13
    선교지연구 파키스탄(8)

    △라호르 시내 남쪽에 위치한 코트 락파트(Kot Lakhpat) 지역에 있는 알리아스 바티 목사의 교회에서 세미나 후에 참석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지난 주에 이어 이번 주에도 선교 전략에 관한 것을 생각해보려고 한다.6.의료사역 : 전반적인 의료 서비스가 매우 낙후 되었기에 이 사역은 매우 긴밀


    선교 2012.06.16 11:23
    선교지연구 파키스탄(7)

    △파키스탄 연세성경학교 첫 졸업예배에서 졸업생과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파키스탄이 강력한 이슬람 국가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슬람으로 하나가 된 나라이기에 수많은 종족과 언어 관습이 다르지만 종교적으로 쉽게 뭉치며 이슬람 샤리아 법이 국법 위에 있는 존재하는 나라다. 살인


    선교 2012.06.08 16:48
    선교지연구 파키스탄(6)

    △1984년 순직한 정성균 선교사가 지은 구즈란왈라 신학교 전경 9세기 말부터 인도 대륙에 강한 성령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여 20세기 초반에는 교회사에 길이 남을 부흥의 물결이 강하게 몰아쳤다. 이는 당시에 영국 서부 지방의 웨일즈 부흥운동, 미국의 학생 자원운동(Students Volunteer Movement), 한국


    선교 2012.06.01 13:47
    선교지연구 파키스탄(5)

    100년간 영국 통치를 받으면서 국교인 영국 성공회에서 교회를 중심으로 학교를 세우고 서구식 병원을 설립하면서 서서히 복음이 전해졌다.당시에는 여러 종교와 인종들이 불협화음 없는 안정된 시기였다. 무슬림들이나 힌두교들에게는 복음 전파가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매우 어려웠다. 그러나 중간


    선교 2012.05.26 00:52
    선교지연구 파키스탄(4)

    기독교 선교 역사는 영국의 식민지와 병행을 이룬다. 현지인을 위한 선교 사역과 전략이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인도 대륙이 영국의 최대 식민지 국가가 되면서 많은 영국인들이 인도에 이주하게 되었다.크게 세부류로 식민지 정부의 관리와 거대한 군 조직을 이끄는 군 장교들을 포함한 정

    선교 2012.05.19 02:00
    선교지연구 파키스탄(3)

    이번 글에는 독자들과 함께 긴급 기도제목을 나누려고 한다.가장 큰 도시인 카라치에 한국 대학생 선교회(C.C.C.)가 세운 선한 사마리아 병원이 있다. 이 병원은 한국 선교사(宣敎史)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선교 병원이다. △파키스탄의 선한 사마리아 병원1980년에 역사적인 세계 복
    선교 2012.05.12 00:29
    선교지연구 파키스탄(2)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2000년 기독교 역사 가운데 기독교가 확장되었는지 알고 있다. 그런데 제2의 종교인 이슬람 확장에 대해서는 약간은 무지한 것 같다. 이곳 한 면을 할애하여 파키스탄의 이슬람화를 서술하려고 한다.파키스탄이라는 신생 독립국가의 이름은 다른 신생 독립국가처럼 2차 세계대전
    선교 2012.05.05 18:38
    선교지연구 파키스탄(1)

    파키스탄은 미국의 최정예 부대 SEAL 요원에게 사살된 오사마 빈 라덴이 은거했었고, 911 사건 이후 자주 세계 뉴스에 심심치 않게 올라오곤 한다.그래도 파키스탄은 아직도 우리에게는 베일 싸인 국가임에는 틀림이 없다. 몇 차례의 기고를 통하여 피 선교지 파키스탄을 알리려고 한다.파키스탄이라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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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교지연구 파키스탄(1)
    파키스탄 개요

    파키스탄은 미국의 최정예 부대 SEAL 요원에게 사살된 오사마 빈 라덴이 은거했었고, 911 사건 이후 자주 세계 뉴스에 심심치 않게 올라오곤 한다.
    그래도 파키스탄은 아직도 우리에게는 베일 싸인 국가임에는 틀림이 없다. 몇 차례의 기고를 통하여 피 선교지 파키스탄을 알리려고 한다.


    파키스탄이라는 국가가 생긴 것은 영국 식민지에서 벗어난 1945년 8월 15일이다. 즉 우리의 해방기념일과 같다. 영국이 인도대륙을 100년간 통치한 후 독립을 선언하면서 종교분쟁으로 인도는 하루 전일 8월 14일 에 독립되었고 이슬람 교도들이 자신들의 거룩한 땅이라는 이름의 뜻을 가진 파키스탄이라는 국호를 가지고 독립국가가 시작되었다.


    인도를 가운데 두고 동 파키스탄, 서 파키스탄으로 영토가 갈려져 있었지만 하나의 종교인 이슬람으로 하나의 국가였다.
    그러나 1971년에 인도와 전쟁을 치루면서 가운데에 있는 인도가 여러가지로 불편하게 되자 동 파키스탄을 부추겨 따로 독립하게 도와주어 동 파키스탄은 현 방글라데시로 국가가 탄생하게 되었고 서 파키스탄은 현재의 파키스탄이다.


    국토는 한반도의 4배쯤 되며 인구는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대략 1억 8천에서 2억으로 추산된다. 이는 브라질에 이어 여섯번째로 인구를 많이 가진 나라다.
    이슬람 교도들은 인도네시아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국가이다. 강력한 아슬람 공화국으로 헌법 위에 이슬람 법(샤리아 법)이 있다. 97%의 이슬람과 약 3%의 기독교인 있으며 그외 시크, 힌두교 등 매우 미미한 세력이 있다.


    언어는 다양한 종족이 어울려 살고 있기에 지역마다 언어가 다르다. 공용어인 우르드어는 전국에 통용되며 영국 식민지 영향으로 지식인층은 영어가 자유롭게 사용되고 있다.
    기독교인(약 3%로 6-7백 만명 추정)은 공동체를 이루어 살기에 기독교 마을에 방문하면 많은 기독교인을 만날 수 있으며 예배도 매우 활발하게 드리고 있다.


    이슬람 국가이지만 타종교의 종교 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헌법에 명시되어 있고 문화적, 사회적으로 용인되어 기독교인들이 신앙 생활하기에는 전혀 불편함이 없다. 기독교 상대로 사역하는 선교사의 생활과 사역도 자유롭다.


    그러나 이슬람 교도(무슬림)들의 개종이나 그들 상대로 하는 선교 사역은 죽음과 연결된 것이기에 많은 지혜와 인내가 필요하다. 헌법 295-C는 신성모독죄이므로 무고한 기독교인을 올무에 내몰아치기도 한다.
    하나님의 역사는 그곳도 동일하기에 지금도 선교 역사가 일어나고 있다.


    앞으로 파키스탄의 선교사역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강력한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에 어떻게 행하여지고 있는지 독자들과 나눌려고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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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교지연구 파키스탄(2)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2000년 기독교 역사 가운데 기독교가 확장되었는지 알고 있다. 그런데 제2의 종교인 이슬람 확장에 대해서는 약간은 무지한 것 같다. 이곳 한 면을 할애하여 파키스탄의 이슬람화를 서술하려고 한다.
    파키스탄이라는 신생 독립국가의 이름은 다른 신생 독립국가처럼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생긴 이름이며 이전에는 인도땅이었다.


    다니엘 시대의 페르시아 제국은 인도에서 구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현 인도의 전체가 아니라 남북으로 흐르는 인더스강을 중심으로 동편까지를 의미한다.
    이곳이 현재의 파키스탄이다. 인도의 동쪽과 북동쪽이 오늘날의 파키스탄이다. 편의상 여기서 인도라는 명칭을 쓰는데 이는 지역적으로 동쪽이 북동쪽을 의미한다.
    이곳은 불교의 강한 세력이 있던 곳으로 곳곳에 불교 유적이 남아있다. 또한, 이곳은 한국 불교계의 중요한 성지 순례지이기도 하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불상이 라호르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으며 역시 최고 오래된 바위 석상도 북쪽 길갓에 있다.
    도마가 인도에서 복음을 전하고 순교했다는 전설을 현 인도 남부지방인 마드라스에서 기존설로 믿고 있는데 인도로 가는 길에 현 파키스탄 수도인 이슬라마바드에서 가까운 고대도시였던 탁실라 박물관에는 도마의 흔적이 있다고 보존하고 있다.
    한때는 이곳이 힌두교와 불교가 성행했고 기독교의 복음도 전해진 곳이었다.


    특히 히말라야 산간지대에는 불교가 융성한 시대도 있었다. 지금은 불교는 흔적만 있고 불교 신자가 있다는 보도는 아직 듣지 못하였다.
    이슬람이 한 손에는 칼을 다른 손에는 꾸란을 들고 전 아라비아를 이슬람화 시키고 남쪽 아라비아를 건너 인도땅에 들어온 것은 11세기였다.
    500여 년동안 쉼없이 세력을 키워나가면서 1600년대에는 인도의 가장 강력한 이슬람 무굴제국이 세워졌다. 300년간의 무굴 제국을 통하여 탄탄대로의 이슬람을 확장하였다.


    한편 북쪽으로는 아라비아 상인들이 중국으로 가면서 생겨난 실크로드의 루트 중에 히말라야 산맥을 횡단하는 길이 여러 개가 있다.
    그 실크로드를 통하여 1년에 두 번씩 지나다니면서 자연스럽게 포교할동을 하여 점차로 이슬람화 하였다. 이곳이 이슬람화 된 것은 약 900년의 세월을 통하여 되어진 것이다. 이슬람의 포교는 때로는 칼과 꾸란으로 무차별 침략과 살생으로 이루어 나가기도 하고 오랫동안 포교 전략을 사용하기도 한다.
    80%를 차지하는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한 수니파는 20% 정도이다. 그외 이슬람에도 여러 종파로 나뉘어져 작은 종파의 이슬람도 있다.


    그 중에 주목할만한 것은 북쪽 길갓 지방과 힌두쿠쉬 산맥의 고산 지대에 사는 종족 중 이스마엘리 이슬람 종파가 있다. 매우 온건한 이슬람교도들이며 그들의 예배 중에는 기독교의 찬송과 같은 노래가 있다.
    복음의 수용성도 매우 좋아 선교사가 소수 사역하지만 활동이 활발하고 선교사와 사역에 대하여 호감을 갖는 사람들이 많다.


    또한 기독교로 개종자에 대한 태도도 타 이슬람과는 다르게 강한 핍박이나 살해에 대한 두려움도 상대적으로 매우 낮다. 이것을 파키스탄 정부가 인지하여 이 지역에 외국인이 장기 거주하는 것을 허락치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교사역은 전개되어지고 있으며 개종자가 늘어나고 있다.


    이곳에 사역하는 적은 수의 선교사들이지만 이 지역이 어떻게 이슬람화 되었는가를 잘 이해하기에 그들도 서두르지 않고 인내를 가지고 사역에 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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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교지연구 파키스탄(3)

                                                                
    이번 글에는 독자들과 함께 긴급 기도제목을 나누려고 한다.
    가장 큰 도시인 카라치에 한국 대학생 선교회(C.C.C.)가 세운 선한 사마리아 병원이 있다. 이 병원은 한국 선교사(宣敎史)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선교 병원이다.



    △파키스탄의 선한 사마리아 병원




    1980년에 역사적인 세계 복음화 대회를 여의도 광장에서 가졌는데 주 강사였던 고 김준곤 목사님께서 선교사로 헌신하기 원한 사람들을 초청했을때 수 많은 청년들이 일어나 헌신을 다짐했다.
    그 후 많은 기도와 노력끝에 1989년 12월에 13명의 의료 선교사를 처음으로 파키스탄에 파송하게 되었다. 의료팀이 파키스탄에 들어가 선한 사마리아 병원을 세우고 현재까지 많은 의료 사역을 하고 있으며, 현지의 열악한 사정과 매우 불안안 정세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23년간 장족의 발전을 해왔다.

    지난 2월 29일 출근하던 병원 밴이 무장 강도(탈레반)에 의해서 정지 당했다. 강도들은 문을 열고 코리안이 있냐고 소리쳤고 내부를 살펴보았다. 없는 것을 확인하자 현지 병원 직원 두 명을 자신들의 차에 태워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 상황이 와전되어 중국 신화통신이 처음으로 카라치에서 한국인 의사 두 명이 탈레반에게 납치 당했다고 보도했고 한국 언론은 신화통신 소식을 속보로 내 보냈다. 즉시 정부측에서는 카라치 총 영사관에 알아보았다.
    병원 원장이신 한국인 의사 선교사께서 정부 당국자와 여러 언론사 기자들과 전화로 상황 설명을 하자 다시금 정정 보도를 하게 되었다.

    현지에서는 한국을 돈 많은 부자 나라라고 소문이 나 있다. 이런 소문을 들은 탈레반에서 자금이 부족하자 한국인을 인질로 잡아 인질금을 챙길려고 하고 있다. 이 사건이 일어난 후 파키스탄 내에서 사역하는 한인 선교사 80여 가정들은 안전에 매우 조심하고 있다.
    현지 정부의 지원으로 병원 출퇴근하는 한인 선교들과 서양 선교사(두 분이 선교 병원에서 협력 사역하고 있음)들에게 무장 경찰들이 에스코트하고 있으며 경찰 병력들이 병원을 지켜주고 있다.

    납치된 두 현지인 형제는 병원과 함께 20년이 넘게 수고한 신실한 형제들이다. 재정과 총무일을 각각 맡고 있다. 그의 가족과 병원 온 직원들은 매일 금식과 기도로 그들이 살아서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지난 성 금요일(4월6일) 자정쯤에 탈레반들이 그 형제들을 트럭에 싣고 그들의 거점인 북쪽으로 이동하는 중에 톨게이트에서 차가 서서히 가자 한 형제가 용기있게 뛰어내려 근처의 경찰서로 피신하여 무사히 돌와 왔다.
    35일간 억류하면서 차량으로 계속 이동하였고 하루에 한 번 적은 양의 식사만 주었고 눈을 24시간 가리웠다고 한다.
    뛰어내리면서 발목 골절과 타박상을 입었고 먹지 못해 몹시 야위었다 고 한다. 다른 형제는 용기도 힘도 없어서 같이 뛰어내리지 못하였다. 다음과 같이 긴급 기도를 부탁한다.

    1. 납치된 형제가 속히 돌아올 수 있도록
    2. 한인 선교사들이 지혜롭게 사역 하며 신변 안전을 위해
    3. 선한 사마리아 병원 한국인 선교사들과 서양 선교사들의 안전을 위해
    4. 돌아온 형제의 건강회복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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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교지연구 파키스탄(4)
    기독교 선교 역사

    기독교 선교 역사는 영국의 식민지와 병행을 이룬다. 현지인을 위한 선교 사역과 전략이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인도 대륙이 영국의 최대 식민지 국가가 되면서 많은 영국인들이 인도에 이주하게 되었다.
    크게 세부류로 식민지 정부의 관리와 거대한 군 조직을 이끄는 군 장교들을 포함한 정부 관계자들, 인도의 거대한 물자를 본국과 유럽으로 수출하는 무역 관계자들 그리고 거미줄처럼 개발된 인공 운하와 철도 공사를 맡은 기술자들이었다.
    이들은 주로 대도시에 거주하였기에 그곳에 영국식의 교회당을 짓고 성공회 신부를 초청해 자신들을 위한 종교 생활에 부족함이 없었다.


    대부분의 성공회 신부들은 현지인에게 선교하는 것에 관심이 없었다. 지극히 적은 수의 신부들이 현지인에 눈을 돌려 현지인 지도층 ,부유층을 대상으로 직접 선교보다는 그들에게 서양식 학교 교육을 실시하였다.
    그 결과로 파키스탄내의 유명한 학교는 지금도 성공회 소속의 학교들이다. 그러한 학교의 커리큘럼 중에 기독교 강좌가 있기에 재학 중인 학생들은 대부분이 무슬림이었지만 기독교의 영향을 받았다. 지금도 정부 고관이나 부유층들은 기독교에 대해 호의적이다.


    1853년에 미국 북장로교단에서 앤드류 고든이란 목사 선교사께서 씨알콧(파키스탄 선교의 중심지로서 라호르에서 1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도착하여 활발하게 선교 사역을 시작하였다.
    고든 선교사는 파키스탄 선교 역사에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최초의 장로교 선교사일 뿐 아니라 당시에 성공회 신부들을 깨워 선교 사역에 동참시킨 인물이다.
    한국 최초의 선교사 언더우드 가(家)와 매우 친밀한 관계를 가진 분이다. 그분의 책을 읽으면서 놀라웠던 것은 호레스 언더우드를 자신의 선교 사역에 동참시키기 위해 친구였던 호레스 아버지를 설득하였고 영특한 호레스도 기쁨으로 받아들였다.


    인도(정확히 지금의 파키스탄의 씨알콧 지방) 가기 위해 준비하였지만 북장로교 선교부에서 일본에서 급히 필요하기에 호레스를 일본으로 파송하였고 그는 일본을 거쳐 조선의 선교사로 부임하였다.


    파키스탄 장로교 선교 역사는 160년이지만 선교 역사를 기록한 책은 세권뿐이다.
    초대 선교사 고든의 일대기와 그 후 1910년에 사역하는 선교사들이 쓴 책 'The Shadow of Himalaya', 그리고 교회 성장학 교수였던 맥가브란의 논문 지도로 1974년에 파키스탄 선교사인 프레드 스톡의 풀러 신학교 석사 논문인 'The Peoples Movement'이다.










    △정성균 선교사님의 모습


    한국인 선교사는 이화여대에서 1961년에 김활란 총장께서 파송한 전재옥, 김은자, 조성자 선교사께서 처음으로 파송되어 여학교에서 영어교사로 사역을 시작하였고 목사 선교사로서는 통합측의 정성균 선교사께서 1980년에 구르란왈라 신학교에서 사역을 시작하였다.
    계속헤서 다음 호에도 파키스탄 선교역사를 연재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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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교지연구 파키스탄(5)

    선교 역사

    100년간 영국 통치를 받으면서 국교인 영국 성공회에서 교회를 중심으로 학교를 세우고 서구식 병원을 설립하면서 서서히 복음이 전해졌다.
    당시에는 여러 종교와 인종들이 불협화음 없는 안정된 시기였다. 무슬림들이나 힌두교들에게는 복음 전파가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매우 어려웠다. 그러나 중간계급인 시크교도들은 복음의 수용성이 좋았다. 그들은 자녀를 학교에 보내고 자신들도 개종하여 많은 신자를 얻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성공회 신자들은 지식인층과 정부 관료들로 많아졌다. 그러나 무슬림이나 힌두교들은 개종자가 거의 없었다. 장로교 선교사인 고든 선교사는 10년이상 노방 전도를 비롯하여 여러가지 전도 방법을 시도하여 복음을 전하였지만 개종자를 얻지 못하였다. 당시 인도에는 불가촉 천민(Untouchable tribe)의 계급을 가진 부류들이 있다. 이 부류를 쭐하 종족이라 불리어진다. 쭐하 종족 중 한쪽 다리가 없는 장애인이 고든 선교사의 복음을 듣고 예수님이 저같은 천민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까? 그리고 저도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라는 질문을 한 후 처음으로 개종하게 되었다. 이름이 없기에 선교사님은 그의 이름을 조오지 워싱톤으로 지워 주었고 지금도 기독교인은 서양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신분이 겉으로는 없어진 것 같지만 파키스탄, 인도는 뿌리 깊게 자리 잡은 계급 사회가 뼈속 깊이 스며들어 있다.




    그 후에 천민 대상으로 선교하면서 폭발적인 개종자들이 생겼다. 개인 개념보다는 종족 개념이 강하기에 종족 지도자가 개종하면 그 종족은 다 개종하게 된다. 이와 같이 여러 하층 계급들이 집단으로 개종하면서 선교 용어인 People's Movement(집단 개종)가 생기게 되었다.
    이러한 초창기의 선교 역사는 변함없이 지금도 고스란히 내려오고 있다. 성공회 신자들은 중산층으로 지식인들이 많지만 장로교인들은 지금도 가난하고 문맹률이 매우 높다. 신분이 겉으로는 없어진 것 같지만 파키스탄, 인도는 뿌리 깊게 자리 잡은 계급 사회가 뼈속 깊이 스며들어 있다.

    세월이 흘러 4, 5세대째인 기독교 가정들이 매우 많다. 이러한 기독교 인구들의 정부 통계는 3퍼센트 즉 6백만 정도 보고 있다. 그러나 푼잡주에는 6퍼센트의 기독교인이 있다.
    영국 정부가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과 힌두교 국가인 인도를 독립시키기 전 두 종교의 매우 심한 갈등으로 대인구 이동을 허용했다. 무슬림들은 파키스탄 땅으로 이주 했고 힌두교들은 인도 땅으로 이주하였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이주를 전혀 안하였다. 무슬림 국가인 파키스탄이 타 종교허용을 하고 헌법에도 종교의 자유(자신이 갖고 태어난 종교를 지킬 수 있는 권리이다. 타 종교로 개종하는 자유가 아니다)을 허용하고 있다. 강력한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은 타종교를 믿는 신자들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법으로 보장하고 또한 자유롭게 종교 의식을 갖도록 하고 있다.

    현재에도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기독교인 중심으로 사역을 펼치고 있으면 매우 적은 수들이 무슬림 대상으로 지혜롭게 사역하고 있고 소수 선교사들은 미미하게 남아있는 힌두교도 대상으로 선교 사역을 펼치고 있다. 지난 911 테러 사건 이후로 서양 선교들은 급격히 줄어들었고 한인 선교사들은 두배 이상이 늘었다. 현 한인 선교사들 80여 가정이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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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교지연구 파키스탄(6)


    △1984년 순직한 정성균 선교사가 지은 구즈란왈라 신학교 전경

    9세기 말부터 인도 대륙에 강한 성령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여 20세기 초반에는 교회사에 길이 남을 부흥의 물결이 강하게 몰아쳤다. 이는 당시에 영국 서부 지방의 웨일즈 부흥운동, 미국의 학생 자원운동(Students Volunteer Movement), 한국의 평양 부흥운동과 시대를 같이 하며 많은 기독교 신자를 얻게되었다.

    1904년에 시작한 파키스탄의 씨알콧 성회는 지금도 매년 9월 넷째주에 시행되고 있다. 보통 만여명이 모여 은헤를 사모하고 성회를 귀하게 여기고 있다. 이러한 부흥의 여파로 여러교단에서 활발한 선교 시역을 펼치게 되었다.
    당시에는 각 교단마다 분활 구역에서 선교 활동을 하여 같은 지역에 중복을 피하고 매우 지혜롭게 각 교단 특성대로 선교 활동을 했으면 동시에 연합적인 선교 활동도 잘 하였다.

    정치적으로는 영국 식민지였기에 어떠한 정치적 제재도 없었고 언어는 미국인과 영국인 모두가 영어를 사용하고 선교사들끼리 문화적 갈등도 별로 없었던 시대라 선교 사역에 큰 효과가 있었다. 더군다나 선교사들이 본국에서 매우 훌륭한 즉 지도급 인사들이어서 자질도 매우 우수했다.
    그러다가 1970년대 들어서면서 서양 선교사들은 떠나고 현지인들에게 교회 리더쉽이 넘어가면서 영국 성공회, 루터란 교단, 감리교단, 스콧트랜드 장로교단이 합하여 Church Of Pakistan이라는 새로운 교단이 탄생했고 현 9개 교구로 구성되어 가장 큰 교단이 되었다.

    장로교단은 미국의 영향으로 미국 교단명을 그대로 따라가다 1990년대에 Presbyterian Church Of Pakistan으로 개명하였다.
    미국의 PCUSA 산하에 독립된 교단이다. 그러나 아직도 재산권은 현지인들이 교단 재산 다툼으로 재산권은 PCUSA가 지니고 있다. 그외 작은 교단들도 존재한다. 이 작은 교단들은 초창기의 선교 역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기존 교인들이 선교사와 선교 단체의 사역에 힘입어 소위 수평식 이동이다.
    순복음 교단, 형제단 교회, 개혁 장로교단. 맥킨타이어 장로교단, 침례교단등 여러 개가 존재한다.

    현재 파키스탄에 몇 개의 교회가 존재하는 알 수가없다. 저 자신도 여러차례 숫자를 파악할려고 했으나 대충 알 수 밖에 없었다. 담당 교단장 혹은 총무도 자신의 교세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며, 대략 얼마쯤이라 말하는데 10년전 대충 파악한 것이 1000개의 교회가 넘으며 그외 목사가 시무하지 않는 교회를 포함하여 1500여 개로 짐작한다.
    대충 숫자를 파악해야하는 현실을 독자는 잘 이해하지 못할지 모르겠지만 그곳에서 십수년간 사역했던 저 자신도 처음에는 이해를 못했지만 차차 이해되어졌다. 독자께서도 이 기고문을 계속 읽어가면 이해될 것이다.

    현지인 지도자 양성은 선교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매우 중요한 사역이다.
    1877년에 세워진 구즈란왈라 신학교, 카라치에 있는 성도마 신학교는 대표적 교단 신학교이며 그 외 각 교단에서 세운 몇 개의 신학교가 운영되어지고 있다.
    구즈란왈라 신학교는 한인 최초의 목사 선교사인 정성균 선교사께서 1980년부터 1984년까지 사역하시다 순직하셨고 그 다음에는 제가 1990년부터 2004년까지 사역했고 지금은 이재환 선교사께서 사역중이시다.
    신학생 부인을 훈련하는 성경학교(United Bible Training Center)에서는 한인 최초의 전재옥 이대 교수께서 1960년대 말에 사역하셨다. 다음주에는 한인 선교사들이 선교 사역에 임하면서 치루었던 댓가를 중심으로 이어나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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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교지연구 파키스탄(7)

    선교전략 연구






    △파키스탄 연세성경학교 첫 졸업예배에서 졸업생과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파키스탄이 강력한 이슬람 국가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슬람으로 하나가 된 나라이기에 수많은 종족과 언어 관습이 다르지만 종교적으로 쉽게 뭉치며 이슬람 샤리아 법이 국법 위에 있는 존재하는 나라다. 살인, 테러 등이 일어나 이슬람을 외치면 면죄부를 받는 것인지 더 이상 문제되지 않는다. 지금도 여러 모양으로 각처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폭탄 테러가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무슨 선교 전략이 가능한지 곰곰히 생각한다. 더군다나 요즈음은 테러 단체에서 외국인을 납치하여 인질을 삼아 거액의 돈을 요구하기도 한다. 선교사의 신분 안전관계로 활동이 제한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의 진보는 어느 때보다 더 활발이 진행되고 있다. 가장 중요한 선교 전략은 현지 기독교인의 재무장이다.

    지난 번에 언급 되었듯이 이곳의 기독교인들은 집단 개종으로 기독교인이 되었기에 복음을 잘 알지 못하고 또한 그들의 신앙생활도 매우 연약하다. 도시 교회는 그래도 성경을 읽을 수 있는 신자들이 있지만 시골로 가면 거의 모든 신자들이 문맹자이기에 성경을 읽지 못한다. 1960년대 말에 전 총신대 총장이셨던 김의환 박사께서 방문하셔서 설교하실때 성경을 가진 사람이 없어서 예배 후에 담임 목사께 물어봤더니 교인들이 문맹자라 성경을 읽을 수 없기 때문이라는 말씀을 들으셨다고 한다. 지금도 이 상황은 크게 변치 않았다. 명목상으로는 기독교인이지만 기독교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고 있다. 이러 기독교인을 깨우쳐 참다운 신자를 만드는 사역이 매우 중요하다. 혹자는 그래도 그들은 기독교인이니까 선교는 이슬람을 믿는 무슬림들이 선교 대상이라 그들만 해야된다는 이론을 말하기도 한다.

    무슬림 대상 선교는 다음에 언급하기로 하고 몇 가지 현재 열매을 얻으며 매우 활발하게 사역하는 선교 활동을 소개한다.
    1. 지도자 양성 : 신학교에서 목회후보생을 키우는 사역과 더불어 현지 목회자를 재훈련하는 것이다. 현재 한인 여러 목사 선교사들이 그들의 멘토가 되어 매주 월요일에 모여 목회자 재훈련을 하는데, 현지 목회자들이 영적 도전과 목회자로서의 사명을 고취시키고 있다.
    2. 기독교 학교 운영 :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기독교적 교욱 환경과 기숙사 학교 운영을 통하여 기독교의 본질과 동시에 학문을 통하여 미래의 지도자를 양성한다.
    3. 문맹자 퇴치학교 : 각 마을에 글을 아는 젋은이를 훈련하여 성인 중심으로 글자 공부반을 운영하여 성경을 읽게 하는 사역이다. 개인 차가 있지만 6개월에서 1년 정도면 현지어 성경을 줄줄 읽을 줄 안다. 현지 공용어인 우르드어는 학교애 가면 사용하고 배우지만, 학교에 가지 않으면 배울 수가 없어 성년이 되서 글을 배우면 자신의 종족어도 아니기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
    4. 평신도 성경통신 학교 : 이 사역을 통하여 성경을 배우고자하는 주로 도시의 기독교인들이 등록하여 정규적으로 공부하고 있는데 많은 젋은이들이 참여하고 있다.
    5. 기술학교 운영 : 기독교인들이 고등학교 혹은 대학을 졸업하고 기술을 연마하기 원할 때 기술 학교에 입학하여 기술을 습득하고 취업의 기회를 마련한다. 기술 학교는 기숙사 학교이기에 학교 생활을 통하여 복음을 알고 더 신실한 신자로 양육된다.

    이외에도 여러가지 선교 전략들이 진행되고 있는데 다음 호에 계속 연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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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교지연구 파키스탄(8)


    △라호르 시내 남쪽에 위치한 코트 락파트(Kot Lakhpat) 지역에 있는 알리아스 바티 목사의 교회에서 세미나 후에 참석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지난 주에 이어 이번 주에도 선교 전략에 관한 것을 생각해보려고 한다.

    6.의료사역 : 전반적인 의료 서비스가 매우 낙후 되었기에 이 사역은 매우 긴밀하고 중요한 사역이다. 어떤 종류의 의료 사역도 환영하고 많은 열매를 맺고 있다. 약간 더 서술하자면 일반적으로 의료 선교사가 병원 혹은 클리닉을 세워 현지 환자를 돌보는 사역이다. 현재 좋은 열매를 맺는 일은 순회 의료사역이다. 도시 지역은 그래도 형편이 나아 진료 혹은 약을 구할 수 있으나 도시에서 약간만 벗어나도 무의촌인 곳이 하다하다. 현지인을 훈련시켜 무의촌에 여러 팀을 순회시켜 진료하는 선교이다. 현재 선교 병원 한 곳에서 120개 마을들을 방문하며 진료 사역을 하고 있다. 복음과 함께 떠나는 의료 선교사역은 기독교이든 무슬림이든 모두 환영한다. 기초 간호 과정을 교육할 간호 선교사가 필요하다.

    7. 교회 개척 사역 :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밀려오는 강렬한 이슬람 문화, 하루에 다섯번 드리는 이슬람 기도소리가 온천지를 진동하며 모든 서류에 이슬람 공화국이라는 문서를 보면서 모든 외국인은 강력한 이슬람 국가임을 즉시 느낀다. 그러나 기독교인 마을에 방문하면 대형 스피커를 교회 옥상에 설치하고 활기차게 예배를 드리는 모습을 보면 모두가 의아해한다. 대도시에는 기독교인들이 수천 혹은 수만명이 함께 마을을 이루고 산다. 모두가 기독교인이다. 그러나 정상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숫자는 많지 않다. 이런 마을에 교회를 시작하는 사역은 매우 손쉬운 사역 같으나 수 세대를 거쳐 선교사들에게 의존해온 습관으로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회의에 빠진다. 처음에는 많이 모일 수 있고 맨땅에 헤엄치는 쉬운 일이라 생각 할 수 있지만 하면 할 수록 보이지 않는 수 많은 문제에 부딪힌다. 이는 외부적 핍박이 아니라 내부적 문제이다. 필자는 선교사들이 직접 교회를 개척하는 사역은 매우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 개척 사역하면 금방 많이 모이는 것 같고 현지인들도 매우 좋아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감사하게도 현재 사역중인 목사 선교사들은 이러한 문제를 파악하기에 직접 교회 개척 사역을 하는 것이 아니라 현지 목회자들이 사역할 수 있도록 측면에서 사역하고 있다. 즉 현지인이 목회 사역을 할 수 있도록 그들을 돕는 사역을 하는 것이다. 선교사는 피할 수 없는 것이 외국인이다. 때가 되면 선교지를 떠나야 한다.

    150년이 되는 파키스탄 선교 사역을 돌이켜보면 선교사들이 현지에서 지병과 사고로 목숨을 잃은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이 현지를 떠났다. 선교사가 떠나도 교회는 지속되는데 교회의 발전이 절대적으로 현지 리더쉽에 달려있다. 과거 초창기에는 모든 교회가 선교사에 의해 세워졌고 많은 집단 개종이 생겨 많은 기독교인이 되었다. 여러 세대를 거친 지금은 선교사가 직접 교회 개척을 할 때는 아니다. 파키스탄의 중심 도시인 라호르에 한인 교회(노명섭 목사)가 하나 있는데 이 교회를 중심으로 매주 월요일에 현지 목회자를 초청하여 목회자를 세우고 영적으로 무장하며 함께 동역하는 사역자로 세우고 있는 사역을 하고 있다. 이는 10년 넘게 그곳에 살면서 현지교회 사역이 무엇이 필요한 것임을 알기에 매우 지혜롭고 또한 적절한 선교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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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교지연구 파키스탄(9)

    선교전략 연구(3) - 무슬림 전도

    현대 선교전략 중 중요한 용어가 10/40 window이다. 즉 지구의 위도상으로 10도와 40도 사이에 거주하는 미 전도 족속을 향한 선교 전략이다. 이슬람을 믿는 무슬림들이 거의 이 지역에 거주한다. 파키스탄도 이 범주에 들어간다. 10/40에 가장 많이 거주하는 미전도 종족들은 무슬림이다. 거대한 무슬림을 향한 선교 전략은 그리 많지 않고 엄청난 인구에 비하여 선교사들의 숫자는 매우 미약하다 서구 선교사도 숫자적으로 미미하고 한국 선교사도 전문 무슬림 사역자들은 매우 적다.

    필자는 1989년도에 영국에서 시작한 무슬림 전문 선교단체인 홍해 선교회에 영입되어 무슬림 전문 사역을 위하여 파키스탄에 입국하였으나 무슬림 전문 선교사로 비자를 얻을 수 없어서 신학교 교수로 비자를 받아 신학생과 목회자를 양성하는 사역과 그들과 함께 무슬림 전도를 지혜롭게 시행하였다.

    무슬림에 관한 여러가지 전략이 있겠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파송하는 교회와 단체들이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주님의 말씀을 뼈속 깊이 깨닫고 수십년 동안 무슬림만을 대상으로하는 선교사에게 가시적인 열매를 절대적으로 포기하라는 것이다. 교회나 후원 단체들이 선교사를 파송하여 얼마후 교회를 세우고 선교부를 세우고 여러가지 사역하는 것을 원한다면 절대로 무슬림을 향한 선교사는 파송 말아야 한다. 즉 무슬림 전문 선교 전략은 파송교회나 단체가 가시적 열매를 포기하는 것이다. 선교사도 교회 혹은 사역에 관한 가시적 열매를 맺기 원하면 무슬림 사역말고 다른 선교 사역을 찾아야 한다.

    파키스탄에 수십개의 선교 단체가 서로 협력하며 사역하고 있다. 이중에 무슬림을 전문으로 하는 사역자들은 모두 서구 선교사들이다. 수십년 사역해도 가시적 열매가 없으나 신실하게 오늘도 변함없이 같은 사역을 반복하고 있다. 그중에 독일 형제단 소속 선교사들은 40년이상 미전도 무슬림 종족을 위해 사역(농업, 의료, 기술학교 등으로)을 하고 있다. 이들의 헌신과 사랑으로 개종자들이 일어나고 있다. 수천 수만은 아니지만 몇 명이 복음을 믿고 비밀리에 세례 받고 성경공부하고 그들이 예수를 주로 시인하고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된 것을 보며 전 선교부와 후원하는 독일 형제단 교회도 40년이상 많은 인력과 재정을 투입하였지만 한 영혼이 이 모든 것보다 더 중요하기에 세상적 수판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참으로 희한한 것은 전혀 독일 선교사의 손이 미치지 못한 무슬림들이 꿈에 예수를 만나고 예수 믿는 것이 무엇인지 즉 기독교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매우 은밀하게 선교사들에게 면담을 요창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한 곳에서 자신들을 사랑하며 봉사와 헌신을 아끼지 않은 서양인 선교사를 외적으로 표시는 안했지만 내적으로 감사하게 생각하고 그들이 선지지로 알고 있는 예수를 구원자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꿈에서 분명하게 보고 들었기에 기독교 선교사들에게 상담을 요청하고 예수믿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개종자들이 은밀하게 모여 예배드리고 말씀을 경청하고 매주간 성령께서 그들의 영적인 삶에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간증을 많이 들었다. 이는 단지 파키스탄 뿐아니라 다른 이슬람 지역에서도 공통적으로 일어나는 역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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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교지연구 파키스탄(10)

    파키스탄과 연관된 이야기에 탈레반이라는 단어를 종종 듣는다. 이슬람 테러단체쯤이라 생각할 정도로 이 탈레반에서 많은 테러와 인질 등을 자행해왔다. 그러면 탈레반이 테러단체의 이름인가? 오늘 이 지면을 통하여 탈레반을 살펴보려고 한다.

    파키스탄 공용어인 우르드어, 이란과 아프가니스탄이 공용어로 쓰는 페르시야어(이 언어는 파르시라 부른다). 그외 서남아시아 일부에서 사용되는 단어로 학생을 딸립 일름이라 한다. 딸립은 따르는자라는 뜻이고 일림은 학문이다. 합성어로 학문을 따르는 자라는 뜻이다. 즉 우리말로 학생이라는 단어이다. 딸립일름을 합성하여 발음하면 현지에서는 딸리빌름(학생)이라 부른다. 이 단어가 군집 명사가 되면 딸레반이라 한다. 즉 학생들이라는 뜻이다. 학생들이 곧 테러단체? 얼핏 연관이 되어지지 않는다. 약간의 설명을 통하여 딸레반이라는 단체를 이해하게 된다.




    이 지역에서는 일반 학교를 외래어인 영어의 스쿨을 그대로 사용한다. 스쿨에 다니는 학생도 딸립빌름이라 부른다. 일반 학교외에 모스크에서 운영하는 이슬람 종교 학교를 마드라사라 부르는데 이곳에서는 코란과 이슬람 지도자인 임만(파키스탄에서는 몰비라 부른다)의 가르침을 하루 종일 배운다. 여기서 공부하는 학생도 딸립빌름이라 한다. 일반 학교와 달리 마드라사는 예닐곱에 들어와 16,7세까지 모스크에서 기숙하며 십여년을 산다. 주로 오갈 데 없는 고아들이 대부분이고 개중에는 이슬람 신앙이 돈독하여 집에서 통학을 하면서 몇년간 공부하는 학생도 있다. 이들의 가르침은 아랍어로 된 코란 원본 전부를 토씨 하나 안 틀리게 암기하는 것과 임만들의 가르침이 전부이다.

    오래전에 한국 KBS 공영 방송의 오늘의 세계라는 프로그램에 파키스탄은 고아가 없다라는 것을 방송했는데 고아는 고아원 혹은 정부 시설에 보내지는 것이 아니라 남자 아이는 모스크로 여자아이는 가까운 친척이 데려간다.
    파키스탄에는 크고 작은 모스크가 십만이 넘는다. 모든 모스크에 마드라사가 있기에 현재 백만명 이상이 이 마드라사에서 기숙한다. 성인이 될 즈음에는 더 이상 모스크에 머물지 못하기에 스스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야한다.
    이 중에 많은 딸립빌름이 임만들의 가르침에 세뇌가 되어 온 세상을 이슬람 국가로 만들기 위하여 전쟁(테러)에 참여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여 캠프에 참여하여 훈련을 받는다. 이들을 마드라사에서 불렀던 것과 같이 단수가 아닌 군집 명사이기에 탈레반이라 부른다. 지난 10년간 파키스탄 정부가 미국의 요청으로 마드라스를 강제로 문을 닫아 숫자가 현저히 줄었다. 그러나 길가에는 많은 고아들이 쏟아져 나와 또 다른 사회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현재에는 이슬람 단체에서 이슬람 종교 지도자를 키우기 위해 우리식의 신학교를 세웠는데 이 또한 마드라사라 부른다.
    이슬람 지도자 양성학교이기에 기존의 마드라사와 달리 일반학교 교육을 마친 학생을 훈련시키고 있다. 이들은 딸립빌름이라 부르지 않고 작은 임만(몰비)라 부른다. 굳이 우리 식으로 하면 전도사로 칭한다.

    파키스탄 정부와 미국의 노력으로 지난 10년간 마드라사 출신의 딸레반 현저히 줄어 테러 캠프에 참여하는 숫자도 현저히 줄었다. 그러나 갈 곳없는 많은 고아들은 길거리에서 구걸등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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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교지연구 파키스탄(11)

    파키스탄 국경 봉쇄

    지난 주에 미국 뉴스는 다시 파키스탄에 눈을 돌렸다. 그 이유는 파키스탄 정부가 아프가니스탄 가는 국경을 봉쇄하였기 때문이다. 파키스탄을 중심으로 스탄이 들어가는 중앙아시아는 이슬람 국가인 동시에 내륙 국가이다. 해변이 없기에 외국에서 물자가 들어가기가 용이하지 않다. 스탄의 용어의 스는 소유격으로 우리말의 “의”에 해당하는 단어이고 탄(딴)은 “땅”이라는 뜻이다. 그 앞의 단어는 종족의 명을 붙혀 사용하다. 파키스탄의 파키(현지에는 빠끼로 발음)는 종족의 이름이 아니라 거룩한 혹은 구별되다는 뜻으로 이슬람으로 구별된 거룩한 땅이라는 이름을 가진 독특한 국가이다.

    1979년 구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이유는 아프가티스탄을 점령하면 파키스탄의 발루치스탄 사막(700Km)을 가로 질러 해변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곳에 해양을 점령할 수 있는 기지를 세우려는 목적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지원을 받은 이프간 군대와 파키스탄 정부의 적극적 협력으로 10년 후에 구 소련군은 완전히 철수하고 말았다. 미군과 연합군이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테러와의 전쟁으로 11년간 그곳에 주둔하여 지역의 많은 발전과 안정을 찾게 되었다. 그러나 거의 모든 물자는 바다 건너 외국에서 오거나 옆 국가인 파키스탄에서 건축자재와 식료품을 공급받고 있다. 그동안 미국과 파키스탄의 정부의 협력으로 양 국경을 통과하여 물자를 운반하는데 어려움이 없었으나 근래에 미국에 많은 도움을 요청하였지만 여러가지 조건들이 미국 정부측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그들의 요청을 들어주지 않자 국경 봉쇄라는 카드를 낸 것이다. 이 문제는 양국간의 정치적인 문제인고로 정치적으로 풀어야 한다.

    필자는 지난 11년동안 미국이 파키스탄 정부나 아프가니스탄 정부에게 해온 호의와 많은 경제적 지원을 하는 것을 뉴스나 현지 신문 사설을 통하여 보아 왔다. 미국측의 문제 해결과 외교적 분야의 많은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이성을 가진 객관적 관점에서 보면 미국측의 방법이 매우 옳은 것이다. 그러나 이 올바른 방법들이 경우에는 안 통하는 것이 그곳 사정이다. 아쉬운 것은 미국식 해결보다는 파키스탄식 해결 방법이 미국으로서는 세속 말로 매우 치사한 것 같으나 옛 속담에 로마에 오면 로마의 법을 따라야 하다는 것처럼 파키스탄에서 일어나는 일은 파키스탄 식으로 풀면 이러한 국경 봉쇄 같은 극단적 방법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현상을 보면서 선교적 접근도 대등 소이함을 발견한다. 한국교회가 선교사를 파송하고 세계 곳곳에서 헌신하며 사역에 암하고 있다. 지금도 팔자가 발견하는것은 한국교회 부흥과 성장을 경험한 파송교회 목회자나 혹은 파송교회가 한국식 부흥과 성장을 눈에 보이지 않게 강하게 요구함을 본다. 이러한 요구를 선교사는 간과하지 못하기에 현지에서 눈에 보이는 성장형 선교를 종종 목격한다. 이러한 선교 현상은 많은 경제적 후원을 요구하고 있기도 하다. 중국에서 선교하시던 네비우스 선교사를 100여 년전 복음의 불모지였던 조선땅에서 초청했을때 그 분은 스스로 설 수있게 하는 self evangelism, self support, self governing을 조선 선교사들에게 말씀하셨다. 이것이 유명한 네비우스 선교 정책이 되었다. 지금도 이 정책을 선교 후보생들에게 가르치는 줄 안다 .선교지마다 모든 상황이 다르다. 그곳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이 현지의 영적 상황을 예리하게 관찰하면서 성령의 인도하심에 민감하게 사역할때 후원하는 교회나 단체도 선교사를 신임하며 그의 사역 방향에 기도와 물질로 힘껏 도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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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교지연구 파키스탄 (12)

    현지인에 의한 선교


    20여년 전에 한국에서 극심한 노사 분규와 인건비 상승으로 제 3세계의 외국인 인력이 유입되어 3D 업종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현재에는 100만명이 넘는 외국인 인력이 일하고 있다. 초창기인 20여년 전에 이미 많은 파키스탄인이 한국에 유입되어 일하면서 기독교인들은 한국 교회에 출석하면서 친분을 쌓아갔다. 그때에 필자는 많은 목회자들로부터 자신들의 교회에 출석하는 파키스탄인들이 신앙도 좋고 영어도 잘하고 잘생기고(파키스탄인은 아리안 족으로 키가 크고 이목구비가 뚜렸하다 혹은 인도 유럽피언으로 불린다) 한국에서 신학을 공부시켜 파키스탄으로 선교사로 파송하면 비용도 저렴하고 언어공부도 할 필요도 없고 파키스탄 복음화에 지름길이라 생각하는데 여기에 대한 필자의 의견을 묻는 문의가 꽤 많이 있었다. 이미 연락하는 목사님이 자신의 의견을 교회 앞이나 당회에 관철하기 위하여 현지 선교사인 필자의 지원 사격을 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객관적으로 현지 사정을 상세히 설명하면 자신의 의견을 접는 분들이 대부분이지만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고 강력히 실행하는 목사님들은 얼마 후에 이 일로 인하여 많은 어려움에 봉착하는 것을 보곤 하였다.

    몇가지 상황을 설명하려고 한다.
    1. 목사님들은 파키스탄 현지 사정을 전혀 모른다. 혹 파키스탄 기독교인 근로자가 자신의 나라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으로 파키스탄 기독교계를 이해하지 못하며 목사님들은 한국적 상황에 비취어 현지를 이해하고 자신이 이 해결점을 갖고 있다 생각한다.

    2. 혹 파키스탄인이 신학을 하고 자기나라에 입국하여 복음의 일군으로 살겠다고 말하는 대부분이 그의 속 사정은 말한 것과는 다르다. 한국교회의 돈에 더 큰 관심이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상황이 현지에서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고 이 일로 인하여 현지 기독교 내에서 분란이 일어나고 후원했던 한국 교회도 큰 어려움에 빠지는 경우를 보게 된다. 과거에는 현지인의 사기 행각이 들통나는데는 시간이 꽤 걸렸지만 요즈음에는 인터넷 영향으로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고 지금도 이러한 일들이 있음을 현지 한인 선교사나 현지 기독교 지도자들이 필자에게 연락을 주고 있다.

    3. 현지에서 검증된 신실한 사역자들은 선교사 혹은 외국 선교단체, 교단을 통해 추천받아 유럽 혹은 미국에서 선진 문화와 학문을 수학한 후 현지 기독교 발전에 매우 크게 기여하고 있다. 필자도 우수한 현지인을 발굴하여 한국에서 석사를 마치게 하고 현지에서 신학교 교수로 지역교회 목회자로 사역을 훌륭히 하고 있다.

    4. 현재는 객관적 정보를 인터넷으로 쉽게 접하고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한 예로 파키스탄 현지 선교 사정을 알려면 구글에 '파키스탄 선교'를 입력하면 수십 개의 최근의 정보를 얻을 수 있다.

    5. 선교는 헌신과 희생이 동반되는 것이며 주께서 때마다 주시는 은혜로 이러한 것들을 기쁨으로 극복하고 구원의 은혜가 가장 귀함을 고백하는 행위이기에 선교를 경제 논리에 대입하는 것은 그 은혜를 값싸게 만드는 것이다.

    지난 번에 언급한 것처럼 현지의 복음화는 반드시 현지인에 의하여 되어져야 한다. 그들의 생활비도 역시 현지교회를 통하여 공급받아야 한다. 파키스탄은 비록 경제적으로 선진국 혹은 한국에 비해 낙후된 나라이지만 현지 교회가 현지 목회자들에게 현지 수준에 맞는 생활비를 공급할 수 있다.

    간혹 현지 목회자가 외국에서 지원을 받아서 생활비가 충분하면 목회에 전념하여 교회가 부흥할 것 같으나 현실은 그 반대이다. 필자가 몇 케이스를 경험했는데 교인들도 모이지도 않지만 모인 교인들도 목회자를 신뢰하지 않음을 보았다. 물론 어떤 목회자는 외국의 지원을 받아 교회에 다 쏟아 붇고 열정적으로 목회에 임하고 교인도 천명이 넘는 교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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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교지연구 파키스탄(13)

    개인마다 차이가 있다. 하지만 이러한 목회자는 현지 교회에서 검증된 지도자이다. 다른 선교 현장은 상황이 다르기에 모르지만 파키스탄의 현지 목회자는 현지에서 양육되어야 하며 외부에서 양육된 목회자는 현지 목회를 감당할 수 없음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외부에서 양육된 목회자는 자신이 현지 교회에 인정을 받은 적이 없고 현지 기독교인도 그들을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재에도 검증되고 우수한 인재들이 현지에 있다. 그들에게 유학의 기회를 준다면 유학 마치고 현지에서 유능한 일군으로 사역할 것이다. 결론으로 현지인에 의한 선교가 아니라 현지인에 의한 복음화를 강조하는 것이며 외국에서 신학을 하고 파키스탄으로 선교사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현지의 유능한 목회자를 얼마간 유학시켜 그들이 다시 돌아가 현지 복음화 일군이 되게 하는 것이다.


    이단들의 행진


    지난번 파키스탄 선교 역사를 통하여 이곳에 기독교 전파과정을 다루었다. 복음을 깨달은 기독교인은 불행히도 많지 않다. 집단 개종의 결과로 집안 대대로 기독교라는 종교를 갖고 태어난 것외에는 기독교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다. 국민의 대다수인 무슬림을 대상으로 선교해야 하는데 기독교라는 종교를 가진 기독교인이 복음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거기에다 기독교인의 문맹율은 너무 높아 성경을 읽을 줄 아는 기독교인도 적다. 정부 통계에 의하면 기독교인이 3퍼센트인데 이는 6,7백만명을 헤아리는 숫자이고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천만(끄롤) 이상이라 생각한다. 라호이라는 두번째로 큰 도시이며 발달된 교육도시인데 수만명의 기독교 마을이 여럿 있다. 이 마을에 가면 수 백 혹은 일, 이천명이 모이는 교회도 있고 크고 작은 교회가 수없이 많다. 마음껏 예배드리고 어떠한 교회 생활에도 지장을 받지 않고 국가가 이슬람 강경파의 테러 위험이 있으면 무장 경찰을 보내어 예배당 밖에서 경비를 서 주기도 한다.


    지난 911 테러때는 경찰서에서 무장 경찰을 선교사인 우리집에 보내어 24시간 대문에서 지켜주기도 했다. 아내는 그들의 수고에 감사해 간식과 짜에(현지 홍차로 우유와 설탕이 듬뿍 들어간 차)를 공급하기도 했다.
    이러한 기독교 마을에 911 이후에 많은 이단 선교사가 한국에서 입국하여 마을에 들어가 무지한 기독교인들을 포섭하는 동시에 과장된 보고를 한국에 보내고 있다. 어떠한 한국인이 이러한 마을에 들어오면 불과 1주일 안에 이 소식은 온 기독교 마을에 퍼지고 한인 선교사들에게까지 퍼진다.


    한인 선교사들은 그들이 이단인 줄 바로 알기에 현지 기독교인들에게 이단(비더뜨 펠레네 왈라)이라 알려주면 관심조차 주지 않지만 개중에 돈에 관심이 있는 자들은 그들에 붙어서 금전적 유익을 누리기 위해 충성하는 척 하는 것을 보곤한다. 혹 지인들이 이단과 행동 같이 하지 말라고 충고를 하면 건성으로 듣고 자신의 금전적 유익이 더 중요하기에 개의치 않는다.


    인터넷의 발달로 한국에서 활동하는 이단들이 그곳에도 거의 다 있음을 보게된다. 그리고 그들의 보고는 과장을 해도 너무 많이 과장한다. 그 이단에 관여한 현지 기독교인들이 한 마을 사람 즉 멀게는 씨족 사람들이라 그 속을 속속히 말하게 된다.


    2000년 10월 이재록 이단 집단의 집회 에피소드를 소개하려고 한다. 파키스탄의 유명한 한 목사와 그 가정이 이재록 집단이 돈이 많은 줄 알고 또한 전 세계로 뻗어가고 싶은 야망을 눈치채고 한국에서 만민 교회를 다니면서 친분을 쌓고 라호르에 대형 집회를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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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교지연구 파키스탄(14)

    많은 집회기금을 받아 이 현지 목사는 노회장, 감독, 교단 지도자들을 돈으로 매수했다.
    12년전 일인당 1라크(십만 루피로 당시 돈으로 천 오백불)을 주었고(현지에서 라크의 단위는 매우 큰 것이다.) 각 교회 목사들을 교회 크기에 따라 매수 했다. 차량 수백대를 전세 내었고 오는 사람마다 돈을 주었다. 제가 사역하는 신학교 학생들도 꽤 많이 나 몰래 참석하여 천루피(15불)를 받았다고 한다. 많은 돈 잔치로 인파가 많이 모였다. 이 잔치를 준비한 현지 목사는 거부가 되었다.

    이후에 참석한 목회자, 노회장, 감독들은 나에게 와서 한국 돈을 받으러 간거지 이단에 동조하는 것이 아니고 그러한 이단이 이곳에 돈을 뿌려가면서 자기 잘난체 하는 것은 너희 한국인들의 잘못이라고 비야냥 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장로교 최고 지도자로 현지 신학교 총장이면서 총회장인 현지 지도자는 나에게 그곳에 참석한 모든 사람은 돈때문에 간 것이기에 자기가 그곳에 참석 안 하였다고 참석한 동료 목회자를 나무라지는 않겠다면서 역시 돈 자랑하는 한국인을 비야냥하였다.

    이일 후에 신학교 내에서는 참석한 자와 참석하지 않은 자의 싸움이 시작되었는데 참석한 학생들에게 불참한 학생들이 신학생이 이단인 줄 알면서 천루피에 신앙을 팔아 먹는다고 말하자 참석한 학생들이 격분하여 주먹과 발로 치기 시작하여 대판 패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것이 파키스탄 교회의 복음화의 과제이다. 선교사들은 교회 건물, 몇명 모이는가, 더 나아가서 선교비 모금의 방편으로 사역을 하면 그 결과는 본인이 받는 것이다. 즉 쭉정이만 키우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열심히 쭉정이 키우는 한국 교회들이 꽤 되고 있다.
    선대의 선교사들의 열정, 헌신, 눈물로 집단 개종이 일어났다면 이제는 마음껏 열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곳이 파키스탄 기독교 마을이 아닌가? 그들을 복음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큰 과제이다. 변화는 선교사가 시키는 것이 아님을 안다. 단지 쓰임을 받을 뿐이다. 그 쓰임 받는 선교사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언어이야기 (1)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첫 번째의 도구가 언어이다. 뿐만 아니라 언어는 인간의 감정,표현, 문화, 역사, 사상 등을 포함하고 있다.
    선교사들이 모든 것 제쳐 놓고 우선순위가 언어습득이라는 것은 과거나 현재, 미래에도 변함없는 이치이다. 그러나 같이 언어 공부를 해도 개개인마다 차이가 있다. 언어에 재능이 있으신 분은 보다 빠르게 습득하지만 그렇지 못하신 분은 심지어 평생동안 언어습득을 제대로 못하시는 분이 있다.

    파키스탄 선교 초창기에 함께 수십명이 언어공부를 하였다. 이때의 경험을 보면 어느 카나다 선교사는 8개월만에 3년차(현지 신문 사설을 이해하고 자신의 의견을 현지어로 말 할 수 있는 실력)를 마치고 유창하게 현지어로 설교하시게 되었다.
    그러나 필자와 함께 신학교에서 사역하시던 어느 영국 선교사님은 캠브리지 대학과 대학원을 나오신 브레인 중에 브레인이셨지만 30년이 넘으시도록 현지어를 습득 못하시고 고급 영어만 구사하시는 분이셨다. 이분은 자신은 다른 언어의 은사가 없어서 타 언어를 배우려고 하면 머리가 너무 아프고 도저히 집중이 안 되셔서 아쉽지만 언어를 포기하시고 신학교에서 30여년간 사역하시는 신학교 아카데미 수준은 높으신 분이다.

    이러한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은 2년동안 신실하게 습득하면 생활과 사역에 지장이 없다. 신학교 교수 혹은 현지 목회를 하려면 계속 언어에 관심을 갖고 갈고 닦으면 언어로 인한 사역의 어려움은 겪지 않는다.
    파키스탄의 공용어는 우르드어이다. 우르드라는 뜻은 합성이라는 것이다. 즉 어느 민족이나 종족이 쓰는 언어가 아니라 합성해서 만들어진 언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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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교지연구 파키스탄(15) 
     
    기본 문법은 힌두어와 같다. 글자는 이란어(페르시아어)를 사용하고 있다. 필자도 이란어를 읽을 줄은 알지만 뜻은 이해 못 하는데 이는 우르드어의 글자(알파벳)가 이란어이기 때문이다. 종교적인 용어는 아랍어에서 인용해서 그대로 사용하고 현대적 용어는 영어를 그대로 사용한다.


    그 뜻대로 우르드어는 합성어이다. 우르드어를 광범위하게 쓰게 된 이유는 영국이 식민통치하면서 군대를 모집하였다. 인도 대륙(참고로 인도 대륙이란 것은 2차 세계 대전 후에는 7개 국가인 현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네팔, 부탄, 말다부로 만들어졌지만 그전에는 인도 대륙이라 불리었음)에서 온 군사를 훈련시켜야 하는데 언어의 통일이 문제 되어서 어느 종족 혹은 민족어가 아닌 우르드어를 사용하면서 군대 용어로 자리 잡게 되었다.


    아시다시피 인도 대륙은 헤아릴 수 없는 종족과 언어가 있다. 우르드어는 이 모든 종족과 언어를 아우를 수 있는 언어이기에 군대 뿐만 아니라 일반 학교에도 상용되었다. 힌두교도들은 힌두교 경전이 힌두어로 쓰여져 있기에 그들의 힌두어를 고집하지만 기본 언어가 우르드와 같기에 상통하는 데는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였다.


    인도 대륙은 수천 개의 언어가 있다 하지만 학교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공용어를 사용하기에 선교사가 파키스탄에서 우르드어를 잘하면 현 7개국에서도 통용된다. 필자가 뉴욕, 뉴저지에서 수 년간 살면서 인도대륙에서 이민 온 사람들과 만나면 우르드어로 말하는데 언어적인 벽을 느끼지 못했다. 우르드어 성경은 이미 100여 년 전에 번역되었다.
    우르드어가 공용어이기에 모든 학교나 관공서에서 쓰여지고 한 언어로 통용된 국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


    우르드어는 공용어로 사용되지만 자신의 모국어는 전혀 다른 언어군을 가지고 있는 큰 언어군이 3개나 더 있다. 펀잡주는 펀잡어를 사용하는데 힌디 혹은 우르드어와 비슷해서 전혀 문제없다. 신드어는 두 번째 큰 주이고 종족이라 이 주는 신드어를 주로 사용한다.


    고등학교 이상 졸업하면 우르드어 사용에 불편함이 없으나 모국어인 신디어를 사용한다. 신디어 성경도 번역되었다.
    한인 선교사 혹은 서양 선교사들도 우르드어로 사역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을 국경으로 두고 있는 북서 경계 지역에는 빠탄과 푸쉬툰 종족이 주로 살고 있는데 그들은 뿌쉬뚜어를 사용한다. 우르드어와는 전혀 상관없는 또 다른 언어군이다. 그러나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우르드어를 말하고 시골 산골에 살지 않는 한 우르드어를 말하기에 역시 선교사들이 우르드어로 사역한다.


    서양 선교사 중 극소수는 그들의 언어인 뿌쉬뚜어나 화르시어(아프가니스탄에서 쓰는 페르시아어)를 습득하기도 한다. 네 번째로 큰 언어군은 발루치족들이 사용하는 발루치 언어이다. 이 언어도 전혀 다른 언어이다. 이 외에도 전혀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종족들도 있지만 대체로 우르드어와 비슷한 언어군이 대부분이다.
    급변하는 세상을 이곳도 외면할 수는 없는지 점차로 학교 교육의 팽창과 이동으로 우르드어는 점점 국가 언어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필자는 파키스탄에 입국하자마자 바로 언어 훈련에 매진하였다. 5월에 언어 학교가 시작하여 8월 말에 학교가 종강되고 9월부터는 자신의 사역지에서 언어교사와 일대일로 이듬해 5월까지 주 25시간씩 공부하는 것이다.
    이 당시에 약 40여명의 신임 선교사들이 언어 습득에 심혈을 기울여 공부하였다. 이때 한인 선교사는 필자의 부부와 여성 독신 선교사가 공부했다. 그 다음 해에는 한국의 여러 가정이 합류하여 공부하였다. 개인 차이로 약간의 강약은 있었지만 2년을 성실히 공부한 후 자신의 사역지에서 언어의 불편함 없이 사역에 임하게 되었다. 우르드어는 자음은 있지만 후에 모음을 삽입하였다고 한다. 30년 전, 현대 히브리어를 배울 때 현 이스라엘에서는 모음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는데 이는 우르드어의 알파벳인 페르시아어도 모음이 기본적으로 없다고 한다.==
    선교지연구 파키스탄(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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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키스탄 우르드어 오디오 성경


    우리말과 어순이 비슷하며 단어도 제한되어 있고 문법 구조도 44개의 문법을 외우면 쉽게 말할 수 있어 한인들에게는 비교적 쉬운 언어이다. 현재에 많은 한인 선교사들이 유창하게 구사하여 사역에 임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어에 없는 매우 긴 모음과 특히 여러 개의 자음은 많은 훈련을 통하여 발음할 수 있다.


    파키스탄도 빠르게 도시화가 진행되어지고 있다. 즉 우르드어가 빠르게 전 국민에게 퍼지고 있다는 것이다. 필자와 함께 언어 공부한 성경 번역회 위클리프 소속 서구 선교사 2가정이 우르두어 공부를 마치고 히말라야 능선에 사는 산족어를 분석하고 그들의 언어로 성경번역하는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 산족들은 수도인 이스라마바드에서 차로 두세 시간 떨어진 곳이라 주로 우르드어를 사용하는 것으로 알았다. 그래서 필자는 매우 절친한 산족 토박이 몇 명을 불러 그들의 언어인 산족어를 말하라고 하였다. 이곳도 푼잡 지방에 속하기에 푼잡어인데 약간의 억양과 단어 몇 개가 생소한 것 외에는 필자와 대담하는데 불현함을 느끼지 못하였다. 대부분이 교육열이 높아 자녀들은 모두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또한 생활력도 강해 각 가구마다 한 명의 장정은 중동에서 근로자로 일하기에 그들의 송금으로 자녀들을 공부시키는데 열정적이었다.
    위클리프 선교사들은 약 3년의 리서치 후 그곳을 떠나 다른 국가로 가셨다. 파키스탄은 수십 개의 언어가 있으나 각 종족들도 교육은 우르드어로 하며, 성경을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은 교육을 받은 사람이기에 우르드어와 각 주의 언어로 성경이 번역되어서 위클리프에서 완전히 정리하고 떠났다는 후문을 들었다.


    소드만이라는 미국인 선교사는 무디 신학교를 졸업하시고 1955년부터 1993년까지 38년간 사역하시고 은퇴하신 독신 여선교사이시다. 그곳 만세라라는 곳(오사마 빈라덴을 사살한 아보타 바드에서 북쪽으로 차로 15분 거리)에서 여성 교육을 담당하시면서 심혈을 기울여 그곳의 부족어인 쉐라끼어로 신약을 번역하셨다. 그러나 세월이 변해 그곳은 북쪽으로 가는 교통 요지로 변하여 도시화가 되었고 종족들이 우르드어를 즐겨 사용하게 되었다.
    그들의 언어로 번역된 신약 성경이 사용되지 않고 우르드어 성경이 읽혀지고 있다. 도시화는 복음을 전하는데 매우 유용한 도구인 것 같다.


    핵실험과 경제


    피 선교지의 주변 상황은 선교 사역을 함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 현 파키스탄이 직면한 여러 가지 문제 중 핵 실험과 핵무기 보유라는 것은 국제 사회와 내국적인 큰 문제로 등장하였다. 오늘은 여기에 대하여 잠간 언급하려고 한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서로 독립한 후에 매우 큰 갈등을 넘어 대적 관계이다. 벌써 여러 번 비록 국지전이지만 전쟁을 하였고 북쪽의 카시미르 지역은 양국간의 군이 종종 충돌하는 곳이다. 이러한 적대적 관계는 이념적 혹은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종교적이기 때문이다.
    양국의 군사력은 서로 대응하여 계속 힘을 키워왔고 비교적 소국인 파키스탄은 더욱더 민감하게 군사력을 키워왔다. 1997년 초에 인도에서 핵실험을 하자 파키스탄은 준비라도 한듯 그해 5월에 핵실험을 하였다. 그 후 서방 세계에서는 강력한 경제 제재를 가했고 가장 많이 원조했던 일본이 앞장 서서 핵무기 반대와 모든 원조를 중단하였다.
    그후 911 사태 이후에 아프가니스탄과의 전쟁을 치르려면 파키스탄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기에 이러한 경제 제재를 풀었고 막대한 자금을 원조하게 되었다. 필자가 사역을 시작한 1990년초에는 전기 사정이 안 좋아 2시간 간격으로 전기를 공급하였다. 부족한 전력량으로 전 국민이 사용하여야 하기에 모두들 불평없이 하루에 8번 이상 전기가 안 1들어와도 살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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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교지연구 파키스탄(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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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각 가정에 절대 필요한 등 외에는 선풍기가 전부였기에 불만의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고 외국인인 우리 가정도 그것을 당연시 해서 전기 들어오는 시간에 맟추어 생활을 하게 했다.


    5, 6년 후에는 대형 수력 발전소가 개통되고 크고 작은 화력 발전소가 새로 생기면서 이러한 불편은 없어지고 거의 24시간 전기가 들어 오게 되었다. 이때부터 각 가정이 가전제품을 구비하게 되어 냉장고, 에어콘 등을 서서히 구입하게 되었고 가격도 조금씩 내려가게 되었다.
    파키스탄 수준의 중상류층의 가정에 이러한 가전제품 구입 붐이 일어나고 전기 수요는 기하 급수로 늘어나게 되었지만 이러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인프라가 핵 실험 직후에 준비되어 무리가 없는 듯 하였다.


    핵 실험 이후에 서방 국가의 경제 제재로 이러한 인프라를 더 이상 구축 못하게 되자 늘어나는 전력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는 사태가 일어나자 현재에는 10년 전으로 돌아가 다시 전기를 분배하여 하루에도 여러 번 전기 공급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
    아프간과 전쟁을 치루면서 미국의 원조로 반짝 경기가 살아나 중상류층에서는 창문형 에어콘에서 분리형으로 바꾸고 전력 소모량이 더욱 많아졌다. 특히 대도시의 소모가 더욱 많아지게 되자 전기요금을 많이 인상하게 되면서 대다수의 서민층이 전기의 혜택을 과거보다 못 받게 되자 정부에 대한 불만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정부의 부패와 지배층의 욕심으로 자신들만 고생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일리가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자신들의 자존심이며 자랑인 핵무기가 사실은 그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핵 실험 이후 온 국민이 열광하며 “우리는 서방의 원조도 필요없다. 우리에게는 로띠와 달(밀가루 전병과 녹두로 만든 카레 즉 그들의 주식임)만 있으면 충족하다”라고 외쳤다.






    △파키스탄 양고기 카레와 로띠


    IT 기술의 혁명은 파키스탄도 피해 가지 않았다. 길거리에서 손 벌리고 구걸하는 거지들도 비록 구형이지만 셀폰을 사용하고 더 많은 전기가 필요한 시대인 것이다. 지배층과 부자들은 일제, 독일제, 미제 등의 대형 발전기를 구입하여 전기의 아쉬움 없이 펑펑 쓰고 있고, 서민들은 선풍기 돌릴 전기가 없어 몰려오는 모기떼에 속수 무책으로 뜯기고 있다.
    현지에 사역하고 있는 선교사들도 마음 같으면 발전기를 구입하여 섭씨 50에 가까운 더위를 피하기 원하지만 그러면 사역 대상인 현지인들이 마음을 닫기에 그들과 함께 전기 부족으로 많은 고생을 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 국제적으로 이슈인 핵 발전소가 그 지름길인데 핵 실험을 한 파키스탄은 자력의 힘으로 발전소를 지을 수도 없고 다만 서방의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데 서방에서는 불안하고 핵 실험까지 한 파키스탄에 도움을 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현재와 같은 구조로 한참은 가야 될 것 같다. 점점 높아지는 국민의 불만을 현지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이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그들의 불만을 어루만져주기를 바랄 뿐이다.


    교육선교
    선교의 중요한 전략 중에 하나는 교육을 통한 선교이다. 피선교지 대부분은 교육적으로 미약한 곳이 많다. 물론 공 교육이 잘 되어진 국가에서의 선교는 교육뿐 아니라 다른 방면도 발달이 되었기에 복음 사역 즉 전도나 교회 개척 사역이 주된 사역이 될 수 있겠지만 소위 제 3세계에는 전인적 선교 사역이 필요하다.
    그 중에 큰 몫을 담당하는 것이 교육 선교이다. 한국 교회의 발전의 역사에도 교육이 갖는 절대성은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파키스탄도 교육 선교의 영향으로 지금까지 교회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으며 강력한 이슬람 공화국 정치를 하면서도 한편으로 정식 선교사 비자를 발급하는 것은 이곳의 교육 선교의 결과를 입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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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교지연구 파키스탄(19)

    △파키스탄의 성공회 교회(Cathedral)

    대체적으로 교육의 질이 떨어짐으로 한국식으로는 이렇게 밖에 설명이 안된다. 정부 인증 BA가 있다해도 그들을 전문직으로 받아주는 곳이 없다. 여기까지는 돈 없어도 조금만 뒷받침이 있으면 누구나 가능하다. BA 이후에 전문 과정으로 나간다. 학교 선생은 교육학을 전공하고 그외 수 많은 전문직을 전공하여 사회 여러 부분에 진출한다.
    이곳의 University는 이러한 열악한 교육 환경 관계로 대부분 5년 과정이며 사립 대학보다는 공립학교가 우수하다. 그 동안의 정부 인증 시험 점수가 절대적이라 매우 우수한 학생들이 입학하고 그 수준은 전공에 따라 국제적인 수준이다.

    절대적 농업국가라 농과 대학은 최고의 수준이며 영국 식민지 영향으로 법학, 경제학, 영문학과 근래에는 공과 대학의 IT분야가 최고의 수준이며 정규 사관학교와 의과 대학은 선망의 대상이다.
    이곳을 졸업하면 우리식으로 학위증에 전공 과목이 표시되어지며 졸업과 동시에 중산층으로 바로 진입하기에 매우 인기 있는 대학이며 경쟁률이 또한 매우 높다.

    인구 2억에 가까운 나라가 이러한 인재가 많이 필요함을 직시할 수 있다. 그러나 인구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것은 중등 교육의 열악함이다. 이곳에서의 교육 선교는 메트릭 즉 10학년까지를 말함을 독자는 이해하기를 바란다.
    위에 언급한 학교 시스템은 이곳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은 다 이해하는 것이다. 여러 선교사나 혹은 선교 기관에서 현재 학교를 세워 교육 선교에 힘써 10년 동안 잘 교육하여 훌륭한 그리스도인으로 그리고 사회나 국가에서 유용한 인물로 키우기를 위해 이 사역에 전념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자금을 선교사 혹은 기관에서 해외에서 모금하고 많은 학생들에게 혜택을 주려고 하기 때문에 등록금을 받고 운영하는 기타 현지인이 운영하는 사립학교보다 질적인 면에서 많이 떨어지고 있다.
    과거 식민지 시절에 유명한 학교는 지금도 그 유명세를 타고 있지만 높은 학비로 인하여 부유한 모슬렘 자녀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고 기독교인들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이곳에서도 정부 시험인 이슬람 교리를 가르칠 수 밖에 없는 입장이다.

    물론 운영은 기독교인들이 하지만 과거같이 그들의 영향력은 없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중등 교육을 통하여 효과적 교육 선교를 이룰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여기에 대한 해답은 막막하다. 15세 미만이 전 인구의 50퍼센트가 넘으니 중등 교육 대상이 1억 명쯤 된다. 교육 선교에 전념하는 몇 명의 선교사와 선교 기관들이 이 일을 다 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솔직히 교실 몇 칸 만들고 현지 교사 몇 명 고용하여 백 여명의 학생들 대상으로 교육 선교하는 선교사들이 마치 전 파키스탄을 교육 선교한다고 과장하면 필자는 응원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씁슬한 면도 없지는 않다.

    교육선교
    대도시 중심에 어김없이 자리잡고 있는 것은 영국 성공회에서 지은 웅장한 교회당이다. 과거 대영제국의 꽃이었던 인도대륙의 영화를 느끼는 곳이기도 하다.
    큰 돌을 쪼아 건축하기에 적당한 돌로 만들어 세운 교회당은 백년이 넘었지만 변함없이 그 자태가 고고하고 웅장하다. 교회당 터를 넓직하게 자리잡고 주변에 여러 개의 작은 부속 건물이 있다.
    이 교회당은 선교를 위한 혹은 현지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당시 대영제국의 위엄을 나타내는 것이었고 영국인을 위한 교회당이었다. 이러한 중심의 교회당은 성공회식으로 Cathedral로 부른다. 이러한 곳은 또한 영국인들 모두가 가는 곳이 아니라 영국인 중 부유충, 고급관리, 고급장교와 그의 가족들이 가는 곳이고 평민 혹은 일반 영국 군인(하급 장교 혹은 하사관 포함)이 가는 곳은 아담하게 좀 떨어진 곳에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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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찬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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