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중앙 10월호 - 세계 평화를 향한 국제창가학회의 과거, 현
재, 그리고 미래①
한국SGI
2025. 10. 10. 15:00
이웃추가
20 1
한국SGI 공식블로그
<주요소식>
월간중앙 10월호 –
세계 평화를 향한
국제창가학회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국제창가학회(SGI) 결성 50주년 특집
이케다 선생님과 SGI의 평화를 향한 반세기 여정
20 1
한국SGI 공식블로그
월간중앙 10월호 134~151쪽 게재
‘월간중앙’ 10월호에서는 국제창가학회(SGI) 결성 50주년을 맞아, 이케다 다이사쿠
(池田大作) 선생님의 사상과 SGI가 걸어온 평화의 발자취를 조명합니다.
기사에서는 반세기 동안 ‘생명존엄’과 ‘인간주의’의 가치를 토대로 세계 평화를 향해
나아간 SGI의 역사와 의의를 소개하며, 지난 8월 한국에서 열린 ‘남아시아·일본·한
국 합동연수’의 의미를 전합니다.
20 1
한국SGI 공식블로그
이어지는 기사는 한국에서 종교적 편견과 사회적 제약을 넘어 ‘평화·문화·교육’ 운동
을 전개해온 한국SGI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SGI의 평화를 향한 반세기의 여정은 오늘날 지구적 위기 속에서 더욱 빛나는 메시지
를 전하고 있는데요, 특집기사를 네 편에 걸쳐 소개합니다.
남아시아 4개국(인도·태국·말레이시아·싱가포르)과 일본, 한국 대표단이
제주한일우호연수원에서 열린 기념행사에 참석했다.
첫걸음을 내디뎌보자!
“첫걸음을 내디뎌보자!”는 세계 최대 불교 단체인 국제창가학회(SGI)를 창립한
이케다 다이사쿠 선생님(1928~2023)의 도전적 생애를 상징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종교와 국경을 넘어 ‘인간혁명’을 통한 가치 창조와 평화를 강조한 이케다
선생님은 1975년 괌에서 ‘SGI’를 결성했습니다.
20 1
한국SGI 공식블로그
SGI는 <법화경>을 신앙의 척도로 삼아 핵무기 폐기, 평화, 인권, 환경 보존 등 인류
적 과제 해결에 앞장서 왔으며 오늘날 192개국·지역, 1200만 명의 회원을 둔 세계
적 불교 단체로 성장했습니다. 지금도 이케다 선생님의 원대한 꿈인 ‘인간혁명’ 철학
은 지구촌 곳곳에서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이케다 선생님의 철학과 SGI가 걸어온
50년 노정(路程)을 돌아봅니다.
전쟁의 상흔 위에 고이 심은 평화의 씨앗들
지구촌 감싸는 울창한 숲 이루다
1975년 1월 26일 SGI 결성식에서의 이케다 선생님
20 1
한국SGI 공식블로그
세계 평화의 문을 여는 열쇠는 ‘대화’
1975년 1월 26일, 괌에서 열린 ‘세계평화회의’에서 국제창가학회(SGI) 회장으로
취임한 이케다 선생님은 서명부 국적란에 자신의 국적을 ‘세계(世界)’라고 적었습니
다.
이케다 선생님은 취임 연설에서 본 회의 개최 의의에 대해
라고 말하며 이념과 국경을 넘어선 인류의 연대를 호소했
습니다.
세계 평화의 문을 여는 열쇠는 ‘대화’라고 강조한 이케다 선생님은 냉전의 긴장이 극
에 달했던 시대에 소련과 중국 등 공산주의 국가를 직접 방문했습니다. 주위에 비난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선생님은 세계 평화를 향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1974년 이케다 선생님은 알렉세이 코시긴 소련 총리와 대담 후 중국에 방문해 양국
의 의견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중·소 분쟁 해결의 길이 열렸습니다.
“어느 면에서 보면 이 회의는 작은 모임일지도 모릅니다. 또 각국의 이름 없는 대표
가 모인 회의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몇백 년 후에는 오늘의 이 회의가 역사에 찬연
히 빛나 여러분의 이름도 불교 역사에 또 인류의 미래를 향한 역사에 분명히 새겨질
것이라고 나는 믿습니다.”
20 1
한국SGI 공식블로그
이케다 선생님이 1974년 9월 알렉세이 코시긴 소련 총리와 만나 대담을 나누고 있다.
이 대담은 중국·소련 양국 간 분쟁 해결의 촉매가 됐다.
이케다 선생님은 이후에도 평화를 향한 행보를 이어갔습니다. 세계 각국의 지도자,
사상가, 인권운동가와의 대담은 1,600회가 넘었으며 그 결실인 대담집은 80여 권
에 이릅니다.
이처럼 대화를 통해 평화를 모색한 선생님의 가르침을 토대로 SGI는 오늘날 전 세
계 192개국 1,200만 명의 회원이 각국 지역사회에서 평화를 위한 실천과 연대를
펼쳐가고 있습니다.
생명존엄, ‘핵무기 없는 세계’로
또한 이케다 선생님과 SGI는 국제연합(UN, 이하 유엔)과 함께 ‘생명존엄’과 ‘인간주
의’를 전 세계에서 실천했습니다.
이케다 선생님의 스승인 창가학회 제2대 회장 도다 조세이 선생님은 1957년에 ‘원
수폭금지선언’을 발표해 핵무기를 ‘절대악’으로 규정하고 미래의 청년들에게 핵폐기
를 의탁했습니다. 이 선언은 SGI가 펼치는 평화운동의 원점이 되었습니다.
20 1
한국SGI 공식블로그
특히 SGI는 유엔과 협력하며 1982년부터 세계 여러 도시에서 핵무기 폐기를 주제
로 한 다양한 전시를 개최했습니다. 또한 핵무기폐기국제운동(ICAN) 등과 연대해
세계 여러 종교단체와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국제회의에서 핵폐기가 논의되도록 하
는데 일조했습니다. 2017년에는 ‘핵무기금지조약(TPNW)’ 채택이라는 성과를 이
루었습니다.
세르지오 두아르테 전(前) 유엔 군축담당 고위대표는 SGI의 활동에 대해 이렇게 말
했습니다.
“저는 SGI가 오랫동안 군축을 위해 헌신적으로 활동한 점을 상찬하고 싶습니다. 군
축이라는 가장 중요한 과제를 달성하는 일로 ‘인간의 안전보장’을 포함한 많은 목표
를 달성하는 데 한 걸음 더 나아갈 것입니다.”
20 1
한국SGI 공식블로그
▶1993년 캐나다 몬트리올대학교에서 열린 ‘현대세계인권’展에서 이케다 선생님이 내빈에게 설명하고 있다.(첫번째 왼쪽)
▶1997년 SGI 등 핵무기 철폐를 주장하는 국제NGO들의 네트워크인 ‘어볼리션(Abolition) 2000’에서 핵폐기 1300만 명 서
명서를 유엔본부에 전달하고 있다.(첫번째 오른쪽)
▶1987년 모스크바에서 SGI가 주최한 ‘핵무기-현대세계의 위협’展 개막식에서 이케다 선생님이 인터뷰하고 있다.(마지막 사진)
인간주의, ‘만인존엄이 빛나는 사회’로
2011년에는 SGI가 주도하여 제66회 유엔총회에서 ‘인권교육과 연수에 관한 유엔
선언’이 상정돼 참가국 만장일치로 채택되는 결실을 맺었습니다. 유엔은 인권 의식
과 사회적 약자를 위한 관심 및 지원 고취 등 “모든 사람의 존엄이 빛나는 사회로” 나
아가고자 노력해온 이케다 선생님과 SGI의 공헌을 높이 평가하며 이케다 선생님에
게 ‘‘유엔평화상’과 ‘유엔영예표창’, ‘평화공헌·유엔사무총장표창’ 등을 수여했습니다.
이케다 선생님은 “평화는 ‘남녀평등’과 함께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여성과 청년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2013년 바레인에서 ‘핵무기 폐기를 향한 도전’展이 열렸다.
20 1
한국SGI 공식블로그
이처럼 SGI는 니치렌불법을 바탕으로 이케다 선생님의 평화 정신을 담아 반핵, 인
권, 사회적 약자 보호 등 지속가능한 사회 실현을 목표로 전세계 곳곳에 평화의 씨앗
을 심고 있습니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흐른 올해 8월, SGI는 이케다 선생님의 평화 메시지를 되새기며
향후50년 평화의 여정을 다짐하는 국제 교류 행사를 대한민국 서울과 제주에서 개
최했습니다.
다음 기사는 2편에서 이어집니다.
==
월간중앙 10월호 - 세계 평화를 향한 국제창가학회의 과거, 현
재, 그리고 미래②
한국SGI
2025. 10. 10. 15:10
이웃추가
27 1
한국SGI 공식블로그
<주요소식>
월간중앙 10월호 –
세계 평화를 향한
국제창가학회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②
국제창가학회(SGI) 결성 50주년 기념대회
서울·제주에서 아시아 6개국 합동연수 개최
27 1
한국SGI 공식블로그
월간중앙 10월호 134~151쪽 게재
1편에 이어
<세계 평화를 향한 국제창가학회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①>
월간중앙 10월호 - 세계 평화를 향한 국제창가학회의 과거, …
<주요소식> 월간중앙 10월호 – 세계 평화를 향한 국제창가학회…
blog.naver.com
월간중앙 10월호 특집기사 1편은 국제창가학회(SGI) 결성 50주년을 맞아, 이케다
다이사2쿠7
(池田1大作) 선생님의 생명존엄과 인간주의의 철학, 그리고 SGI가 반세기
한국SGI 공식블로그
동안 걸어온 평화의 여정을 조명했습니다.
2편에서는 지난 8월, 서울과 제주에서 열린 ‘남아시아·일본·한국 합동연수’ 현장을
중심으로 기사를 전해드립니다.
세계 평화 헌신한 이케다 회장의 반세기 여정, ‘평화의 섬’ 제주서 꽃피웠
다
SGI 결성 50주년을 맞아 지난 8월, 서울과 제주에서 남아시아 4개국(인도·태국·말레이시아·싱가포르)과
일본, 한국 대표들이 합동연수에 참여해 제주한일우호연수원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지난 8월 14일부터 18일까지 4박5일간 서울과 제주에서 열린 SGI 결성 50주년 기
념 합동연수에 남아시아 4개국(인도·태국·말레이시아·싱가포르)과 일본, 한국 대표
약 200명이 참석했습니다.
27 1
한국SGI 공식블로그
15일에는 서울 이케다기념강당에서 약 3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대회가 개최
되었습니다.
하라다 미노루 창가학회 회장은
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종전 직전인 7월 3일 출옥 후, 군국주의에 저항하다 괴멸상태에 이른 학회를
재건한 도다 제2대 회장의 역사를 언급하며
라고 이날의 의의를 말했습니다.
남아시아·일본·한국 6개국 대표가 참석한 SGI 결성 50주년 기념대회에서
하라다 미노루 창가학회 회장이 인사하고 있다.
‘평화의 섬’ 제주에서 이어진 평화의 우정과 연대
“8월 15일은 한국에서는 ‘광복절’, 일본에서는 ‘종전
의 날’에 해당합니다. 과거 군국주의 일본은 어리석은 전쟁으로 치닫고 한국과 아시
아, 더 나아가 일본의 민중에게 참혹한 고통을 줬으며, 마키구치 쓰네사부로 선생님
을 옥사에 이르게 했습니다. 그리고 정확히 80년 전인 오늘, 패전을 맞이했습니다”
“8월 15일은 700년 전 홀로 일어선 니
치렌(日蓮) 대성인의 불법이 찬연히 빛나기 시작한 날이자 바로 ‘광복의 날’이라 할
수 있습니다”
27 1
한국SGI 공식블로그
16일부터 18일 일정은 ‘평화의 섬’ 제주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참가자들은 세계평화
를 주제로 질문회를 갖고 청년 육성, 사회공헌, 문화 활동 등 각국의 실천 사례를 공
유하며 연대의 의지를 다졌습니다.
질문회에서 다니가와 요시키 SGI 이사장은 “청년 육성은 시대와 나라를 초월한 과
제”라며 “한 사람을 진심으로 격려하는 데 마음이 필요합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합동연수3일차에는 연수 참가자들이 다니가와 요시키 SGI 이사장과 질문회를 가졌다. (왼쪽)
▶합동연수 4일차 조별간담회에서는 각국 연수자들이 둘러앉아 각자 자신의 실천 사례를 공유했다. (오른쪽)
이케다 선생님이 남긴 한일우호의 원점
이케다 선생님은 한국을 ‘문화 대은(大恩)의 나라’라며 깊은 존경을 표하고 양국 우
호 교류에 누구보다 적극적이었습니다.
특히 1990년에는 서울 호암갤러리에서 ‘서양회화명품전’을 개최하여 해외 최초로
도쿄후지미술관이 소장한 명화 74점을 한국에서 선보였습니다. 한일 민간교류도 전
무했던 시절, 이 전시회는 국내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케다 선생님은 서양회화명품전에서 이건희 회장과의 대화에서 “어디까지나 ‘평화’
가 나의 원점입니다. ‘우호’가 나의 신념입니다. 그리고 ‘문화’가 그것을 위한 무기인
것입니다” 라며 문화 교류에 대한 의지를 재차 강조했습니다.
이케다 선생님은 일본에서도 학생들에게 유관순, 이순신, 안창호 등 한국 위인들을
소개하고 재일한국인 참정권 보장을 수차례 공개 촉구하는 등 한국에 대한 인식 개
27 1
한국SGI 공식블로그
선에도 앞장섰습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9년 대한민국 정부에서 문화훈
장을 받으며 국내에서 다수의 명예시민증, 명예박사·교수 학위를 받았습니다.
‘대화’야말로 인류의 존엄과 평화 실천의 이정표
창가학회는 1930년 마키구치 쓰네사부로 선생님의 창립 이래, 스승과 제자가 한 마
음으로 전쟁 반대와 평화 수호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뒤를 이어 도다 조세이 선생님
의 ‘원수폭 금지 선언’과 이케다 선생님의 세계평화를 여는 ‘대화’는 인류의 존엄과 평
화 실천의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다음 기사는 마지막 3편으로 이어집니다.
==
==
월간중앙 10월호 - 세계 평화를 향한 국제창가학회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③
한국SGI
2025. 10. 10. 18:58
이웃추가
22 1
한국SGI 공식블로그
<주요소식>
월간중앙 10월호 –
세계 평화를 향한
국제창가학회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③
핍박의 역사에서 평화운동으로 이어진 한국SGI의 여정
22 1
한국SGI 공식블로그
월간중앙 10월호 134~151쪽 게재
2편에 이어
<세계 평화를 향한 국제창가학회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②>
월간중앙 10월호 - 세계 평화를 향한 국제창가학회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②
<주요소식> 월간중앙 10월호 – 세계 평화를 향한 국제창가학회의 과거, 현재, 그리…
blog.naver.com
월간중앙 10월호 특집기사 1편은 국제창가학회(SGI) 결성 50주년 기념, 이케다 다
이사쿠(池田大作) 선생님의 인류평화 사상과 SGI가 걸어온 반세기의 여정을 되돌아
보았으며, 2편에서는 ‘남아시아·일본·한국 합동연수’ 소식을 전했습니다.
마지막 3편에서는 조성윤 제주대 명예교수의 인터뷰를 토대로 한국에서 SGI가 어
떤 과정을 거쳐왔는지 그 역사와 의미를 함께 전하고자 합니다. 핍박의 시간을 딛고
평화의 공동체로 성장한 여정으로, 종교의 자유와 인류의 희망을 향해 걸어온 발자
취를 소개합니다.
한국SGI 핍박사(逼迫史) 기록한 조성윤 제주대 명예교수
22 1
한국SGI 공식블로그
조성윤 제주대 명예교수 (사진 월간중앙)
자매결연을 계기로 창가학회 연구 시작
“사회학 중 역사·종교 분야를 주로 연구했는데, 1990년대까지만 해도 창가학회는
조사하기가 싫어서 일부러 연구 대상에서 제외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창가학회란 이
름 대신 ‘남묘호렌게쿄’라고 불려 거부감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중 1998년 제주대학교가 일본 도쿄에 있는 소카대학교와 자매결연을 진행
하던 중 보류된 사건을 계기로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창가학회를 ‘남묘호렌게쿄’라고
지칭하는 것은 잘못된 표현이다. 창가학회 신자가 수행을 위해 되뇌이는 ‘나무묘법연화경(南無妙
法蓮華經)’의 일본식 발음인 ‘남묘호렌게쿄’를 종교명으로 오해하면서 인식이 굳어졌다. 창가(創
價, Soka)란 가치를 창조한다는 의미로, 창가학회는 ‘가치를 창조하고, 배우기 위한 모임’이라는 뜻
이다.)
일본에서 시작된 불교단체 ‘창가학회’를 2000년 이래 연구해왔습니다. 왜 창가학회
를 연구 대상으로 삼았나요?
22 1
한국SGI 공식블로그
“네. 창가학회에 대한 오해가 깊은 일부 교수들이 자매 결연 추진을 강하게 반대했습
니다. 반대하는 합리적인 근거가 있는 게 아니라 세간의 인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그래서 제주대는 일단 자매결연을 보류하고서 저에게 창가학회에 대한 조사를 맡겼
습니다. 2주 뒤 열리는 회의 전까지 자매결연을 맺어도 좋을지 알려 달라고 했습니
다.”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로 국내 창가학회 회원을 조사했던 친구에게 부랴부랴 전화
해 물었더니, ‘소문과 달리 아무런 문제가 없는 종교이니 자매결연을 맺어도 괜찮다’
고 하더군요. 제가 직접 조사하기에도 문제가 없어 보여서 제주대에 그대로 의견을
전달했습니다.
1998년 자매결연 후, 1999년 제주대학교는 이케다 다이사쿠 선생님에게 명예 박
사 학위를 수여했고, 해마다 두 대학은 교류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불안한 마음이었습니다. 아직 창가학회에 대해 온전히 안다
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학자로서 섣부른 짓을 한 것은 아닌지 걱정되었
습니다. 그래서 2000년 일본으로 건너가 문헌을 찾아보고, 집회에 참석하는 등 본
격적인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제주대 내에서 자매결연을 반대하는 사람이 있었나 봅니다.
조사를 통해 어떤 결론에 도달하게 됐나요?
학자로서 2주 간의 조사는 매우 짧다고 느꼈을 것 같은데요.
22 1
한국SGI 공식블로그
2006년 일본 창가학회 신자들을 1년 동안 40명 넘게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
창가학회와 재일한국인>(2013, 한울아카데미)을 발간하기도 했습니다.”
“이승만 정권 때까지만 해도 우리 경제는 원조에 의존하는 상태였습니다. 반면 일본
은 한국전쟁에 의한 반사이익을 기반으로 산업화가 급격히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1960년대는 상대적으로 부유한 재일교포들이 우리나라 고향을 자주 방문한 시기였
고 그렇게 재일교포의 친척과 지인들을 중심으로 창가학회 회원이 우리나라에서 늘
어났습니다.”
“네. 양가적 감정이 있었을 겁니다. 부자 나라에서 잘 차려 입고 선물을 들고 고향마
을을 찾아오는 친척이나 이웃 지인의 모습이 부러우면서도,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일
본에 의해 식민 지배를 받았던 아픔 때문에 재일교포의 방문을 불안해하는 면도 있
었습니다.”
전국에서 시위… 비난 화살 돌릴 대상 물색해
창가학회는 어떤 경로로 국내에 들어오게 됐나요?
당시 재일교포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습니다.
당시 일본 창가학회의 조직적 포교 활동은 없었나요?
22 1
한국SGI 공식블로그
“국제적으로 뻗어 나간다는 개념과 조직이 없었던 상황에서 재일교포들이 자발적으
로 포교하면서 지금의 규모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창가학회 본부도 국제부
와 같은 조직을 만들어서 세계로 뻗어 나가야겠다는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그렇게
해서 1963년 말 한국 조직 구성을 도와주기 위해 대표단을 선발해 우리 외무부에
비자를 신청하는데, 이를 알게 된 외무부에서 민감하게 반응했습니다.”
“1961년 쿠데타(5·16 군사정변)에 성공한 박정희 정권은 과거 이력(일본군 육군
장교 등) 때문에 친일 이슈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일본에서 시작된 불
교단체인 창가학회에서 비자를 신청했으니 그야말로 뒤집어진 것이죠. 특히 1963
년에는 박정희 정권이 굴종적인 자세로 한일회담에 임했다며 전국에서 시위가 일어
나던 때라서 더욱 민감하게 반응했습니다.
이에 치안국 정보과에서 외무부에 비자를 내주지 말라고 압박하기에 이릅니다. 군
출신이 주축이 된 치안국 정보과는 해방 직후부터 정보를 총괄 하면서 우리나라를
좌지우지했습니다. 독재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여론 조작도 서슴지 않던 곳으로, 마
침 비난의 화살을 돌릴 타깃이 필요했던 박정희 정권은 창가학회에 친일 프레임을
씌웁니다.
1964년 1월 문교부는 왜색 종교라는 이유로 창가학회에 포교 금지령을 내렸습니
다.”
당시 치안국 정보과는 창가학회가 위험한 종교 단체이자 정치 단체라는 보고서를 만들어 각 언론
사에 뿌렸습니다. 1964년 1월 주요 신문에서 ‘왜색종교 창가학회의 국내 침투’라는 기사를 집중적
으로 내보내기 시작했고, 급기야 내무부장관 명의로 ‘이 종교의 집회와 포교를 금한다’는 행정처분
이 내려졌습니다. 당시 일부 회원들이 ‘외환관리법 위반’이라는 근거 없는 죄목으로 체포돼 심문을
받기도 했습니다.
반일 감정 때문인가요?
22 1
한국SGI 공식블로그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고 얼마 뒤 전국의 종교단체와 시민사회단체에 대한 등록령
을 내렸는데, 천리교는 발 빠르게 대응해 법인 등록을 마친 상태였습니다. 또 천리교
는 교세가 강해 잘못 건드렸다가는 정권이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도 있었습니다.
1960년대 초신자가 50여만 명에 달했기 때문에 정권 입장에서는 건드리기 부담스
러웠을 것입니다. 반면 창가학회는 신자가 3000명도 안 됐고, ‘남묘호렌게쿄’라고
일본어로 주문을 외운다고 하니 ‘마침 잘 됐다’ 싶었을 겁니다.”
포교 금지령에 대한 행정소송에서 승리
“조사하면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치안국이 창가학회 회원을 이런저런 이유
로 막 잡아들였지만, 재판에 넘겨졌다는 기사는 단 하나도 없다는 점입니다. 이를 조
사하기 위해 과거 치안국에서 일했던 경찰 책임자들에게 물어보니 ‘잡아들여서 며칠
씩 겁주고 창가학회 활동을 그만두게 만든 뒤 풀어줬다’고 하더군요.”
일본의 신흥종교인 천리교도 한국에 들어와 있었지만, 창가학회처럼 박해받지는 않
았습니다. 왜 창가학회가 타깃이 됐다고 생각하나요?
치안국에 잡혀갔던 창가학회 회원들은 어떻게 됐나요?
처벌할 근거가 없어서 그랬던 것일까요?
22 1
한국SGI 공식블로그
“그렇습니다. 상부에서 창가학회를 탄압하라는 지시가 내려왔지만, 이 사람들을 집
어넣을 근거가 없었습니다. 신문은 마치 창가학회가 재일교포를 통해 포교라는 형태
로 간첩 비슷한 활동을 한다고 보도했는데, 정작 확인해보니 아니었습니다. 회원들
은 ‘창가학회는 불법을 저지른 적이 없는데 왜 우리를 탄압하느냐’며 정부에 탄원서
를 계속 보냈습니다. 포교 금지령에 대한 행정처분 취소 소송에서도 창가학회가 승
리했습니다.”
창가학회 회원들은 내무부장관을 상대로 ‘행정처분 취소 청구 소송’을 제기해 1965년 서울고등법
원으로부터 ‘창가학회의 포교를 위한 집회 및 통신연락과 간행물의 반입, 배포, 취득, 열람을 금지
한다는 처분을 취소한다’는 승소판결을 받았습니다. 1966년 대법원 판결을 통해 종교의 자유는 헌
법상 보장돼야 할 권리라는 점을 재확인했습니다. 하지만 이후에도 왜색종교라는 편견과 오해는 오
랫동안 지속됐습니다.
“해방 후 80년이 지났지만, 두 개(왜색·유사 종교)의 프레임이 지금도 남아 큰 위력
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국제사회로 뻗어 나가는 데 장애 요인이고, 국내
에서 종교가 사회적 역할을 제대로 하는 데에도 큰 마이너스입니다. 저는 이 두 프레
임을 이제는 극복해야 하며, 그 시작이 창가학회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라고 생각합
니다. 창가학회 역시 좋은 활동을 계속 이어나가 본인들에게 씌워진 프레임을 극복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일 것입니다.”
창가학회가 결과적으로 정권의 모진 탄압을 이겨냈지만, 상처가 크게 남았습니다.
아직도 왜색 종교, 유사 종교라며 거부감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종교의2순2 기능이1 커지기 위해 교단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국SGI 공식블로그
“우리 사회에 어떻게 공헌할지 분명한 방침을 세워 교육하고, 좋은 일을 위해 다른
교단 등과도 연대하는 활동이 많아져야 합니다. 그것을 우리는 ‘공공 종교’라고 합니
다. 개인의 신앙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 전체의 공동선과 연대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세계 평화와 환경 운동을 가장 열심히 하는 종교 단체가 이에 해당합니다. 그런 선
한 종교들이 연대해 사회의 방향을 잡아가는 것이 요즘 시대에 매우 중요합니다.”
“제가 보기에 창가학회는 공공 종교라고 불릴 만합니다. 옛날 방식으로는 사람들의
희망이 될 수 없다고 판단해 의례 등을 바꿔 근대적인 조직으로 등장했습니다. 창가
학회 제2대 회장인 도다 조세이 선생님이 세계 평화, 전쟁 반대, 핵 폐기 등을 주장
하셨는데, 이것이 유훈이 되어 제3대 회장인 이케다 다이사쿠 선생님이 계승·발전시
켰습니다. 그러니 일본에서 시작된 종교라고 해서 색안경을 끼고 볼 필요는 없습니
다.”
조성윤 교수는 1954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사회학과를 나와 동 대학원에
서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줄곧 서울에서 살다가 1982년 제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부임하면서 제주에 정착했고 사회학 중 종교·역사 분야를 주로 연구하며, 저
서로는 <제주지역 민간신앙의 구조와 변용>, <일제 말기 제주도 일본군 연구>, <빼
앗긴 시대 빼앗긴 시절: 제주도 민중들의 이야기>, <창가학회 재일한국인>, <1964
년 어느 종교 이야기>등이 있습니다.
창가학회는 예전부터 세계 평화와 핵 폐기, 인권 증진 등을 주창해왔습니다.
22 1
한국SGI 공식블로그
2019년 출간
다음 기사는 4편에서 이어집니다.
==
월간중앙 10월호 - 세계 평화를 향한 국제창가학회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④
한국SGI
2025. 10. 10. 19:53
이웃추가
26 2
한국SGI 공식블로그
<주요소식>
월간중앙 10월호 –
세계 평화를 향한
국제창가학회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④
평화·문화·교육으로 이어진 인간주의의 길
26 2
한국SGI 공식블로그
월간중앙 10월호 134~151쪽 게재
3편에 이어
<세계 평화를 향한 국제창가학회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③>
26 2
한국SGI 공식블로그
월간중앙 10월호 - 세계 평화를 향한 국제창가학회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③
<주요소식> 월간중앙 10월호 – 세계 평화를 향한 국제창가학회의 과거, 현재, 그리…
blog.naver.com
월간중앙 10월호 특집기사 4편 중 마지막으로 핍박의 역사를 딛고 평화·문화·교육
을 바탕으로 사회에 인간주의의 길을 넓히는 한국SGI의 여정을 전합니다.
불교의 생명존엄 기조…핍박 속에서 지켜낸 가치 창조·교육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한국SGI 본부동과 이케다기념강당 전경.
재단법인 한국SGI는 1975년 국제창가학회(SGI)의 결성과 함께 새로운 출발을 맞
았습니다. 불법(佛法)의 근본 이념인 ‘생명존엄’과 ‘인간주의’를 바탕으로 평화·문화·
교육 운동을 비롯해 사회공헌과 환경보호활동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으며 현재 전국
350여 개 문화회관을 중심으로 약 150만 명의 회원들이 지역사회 속에서 인간주의
에 기반한 평화운동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26 2
한국SGI 공식블로그
◆한국 종교의 전래
한국에서 종교의 전래는 대체로 민중의 자발적 수용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베이징 유
학생과 식자층 중심의 천주교, 만주를 통한 기독교가 그 예입니다. 창가학회 역시
1950년대 후반 재일교포와 간행물을 통해 신앙을 접한 이들이 자발적으로 입회하
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이들은 자체적으로 좌담회(회원들이 이웃 회원의 집에서 작
은 소그룹으로 모여 신앙 체험을 나누고 불법을 배우는 모임)를 열고 조직을 구성하
며 포교에 힘썼습니다.
◆한국SGI의 본격적인 시작
한국SGI는 1970년대에 들어 전국의 여러 조직을 통합하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
했습니다.
1975년 괌에서 국제 창가학회(SGI)가 결성된 것을 계기로, 1976년 한국에도 단
일 조직이 출범했습니다. 이후 농촌일손돕기, 자연보호운동 등 사회공헌활동을 전개
하며 1979년 농수산부 장관 단체표창을 받았습니다.
◆1980년대 이후 한국SGI의 성장
1980년대부터 한국SGI는 조직 기반을 확립하고 전국적으로 성장했습니다. 특히
지역 특성을 살린 문화 활동이 활발해져, 1985년 수원 청년체육문화제를 시작으로
1986년 경북청년 평화문화제, 1989년 부산청년예술제 등을 개최했습니다. 한국
SGI는 청년이 활약하는 무대를 통해 한층 더 도약하게 되었습니다.
◆2000년, 한국SGI 재단법인 설립
2000년 4월, 한국SGI는 평화·문화·교육 운동을 통해 사회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
정받아 문화관광부로부터 재단법인 설립 허가를 받았습니다. 이어 2008년 학교법
인을 설립해 행복유치원을 개원하며 창가교육의 토대를 마련했고, 2009년에는 이
케다 선생님이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화관문화훈장을 수훈했습니다.
26 2
한국SGI 공식블로그
◆문화로 맺은 한일우호의 첫걸음
문화 대은(大恩)의 나라
이케다 다이사쿠 선생님은 평생 한국을 “문화 대은(大恩)의 나라”라고 부르며, 양국
의 화해와 우호를 위해 앞장섰습니다.
한일 우호 확대는 '문화교류'에서 시작한다는 이케다 선생님의 신념으로 1990년
‘서양회화명품전’은 도쿄후지미술관과 호암미술관이 공동으로 개최했으며 문화 교
류를 통해 한일 우호의 첫걸음이 되었습니다.
이후 이케다 선생님은 경희대(1998), 국립 제주대(1999)를 비롯해 경남대
(2015), 국립 충북대(2022), 한국외대(2023) 등 국내 20개 대학에서 명예 학위
를 받았으며, 국내에서 불교 철학자, 교육자, 평화운동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종교를 초월한 ‘이케다 사상’에 지구촌 공감 확산
국내는 물론 전 세계인이 이케다 선생님의 사상에 공감하는 이유는, 그의 철학이 종
교의 울타리를 넘어 인류 공동선을 실현하는 구체적인 길을 제시했기 때문입니다.
이케다 선생님은 ‘행동하는 철학자’로서 수많은 세계의 석학, 지도자들과 대화를 나
누며 평화와 인간의 행복을 모색했습니다. 아널드 토인비, 앙드레 말로, 미하일 고르
바초프 등과의 대담은 인류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지적 유산으로 남았습니다.
1972년부터 서거 전까지 남긴 80여 권의 대담집은 지금도 전 세계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전하고 있습니다.
====
==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