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4-19

[창가학회와 재일한국인>과 [1964년, 어느 종교 이야기>를 통합하여 분석한 평론

남양 섬 회고록 요약 및 평론 - Google Gemini

<창가학회와 재일한국인>과 <1964년, 어느 종교 이야기>를 통합하여 분석한 평론

==

세진님, 요청하신 조성윤 교수의 두 저작 <창가학회와 재일한국인>과 <1964년, 어느 종교 이야기>를 통합하여 분석한 평론을 작성해 보았다. 이 글은 요청하신 대로 <해라> 체를 사용하여 작성하였다.


[평론] 경계인의 신앙과 근대의 그림자: 재일한국인과 창가학회를 통해 본 구원의 사회학

1. 서론: 국가라는 울타리 밖의 삶

식민과 분단, 그리고 이주로 점철된 동아시아 근현대사에서 재일한국인은 그 자체로 거대한 모순의 집합체다. 조성윤의 두 저작 <창가학회와 재일한국인>(2013)과 <1964년, 어느 종교 이야기>(2019)는 국가라는 견고한 울타리에서 배제된 이들이 어떻게 종교를 통해 생존의 의미를 찾고,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구축해 나갔는지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전자가 재일한국인 사회에서 창가학회(SGI)가 갖는 구조적 위치와 역사적 맥락을 조망한다면, 후자는 1964년이라는 특정 시점을 전후로 한국 사회와 재일 사회에 이 신종교가 어떻게 이식되고 변용되었는지를 미시적으로 살핀다.

2. 본론: 왜 창가학회였는가?

가. 소외된 자들을 위한 <현세적 구원>

재일한국인들에게 일본 사회는 거대한 장벽이었다. 차별과 빈곤 속에 내던져진 이들에게 기성 종교는 관념적 위안에 그쳤으나, 창가학회는 달랐다.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강력한 메시지와 <현세적 이익>을 긍정하는 교리는 당장의 생존이 급급했던 재일한국인들에게 파괴적인 흡수력을 발휘했다. <창가학회와 재일한국인>은 이들이 학회 내 활동을 통해 일본인과 대등한 관계를 맺고, 조직 내에서 역할을 부여받으며 상실했던 자존감을 회복해가는 과정을 사회학적으로 분석한다. 이는 종교적 귀의라기보다, 생존을 위한 실존적 선택에 가깝다.

나. 1964년, 단절과 연결의 변곡점

<1964년, 어느 종교 이야기>는 이 흐름을 보다 구체적인 시대상으로 끌어온다. 1964년은 한일 국교 정상화가 논의되던 시점이자, 일본에서는 도쿄 올림픽이 열리며 근대화의 정점을 찍던 해다. 이 시기 창가학회는 한국으로 급격히 확산되는데, 이는 재일한국인이라는 인적 네트워크가 매개가 되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식민지 시기 형성된 인연이 해방 후 어떻게 종교적 네트워크로 치환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국의 민족주의와 일본발 신종교가 어떻게 충돌하고 타협했는지를 보여준다.

다. 정체성의 혼란: <조선인>인가 <학회원>인가

두 책을 관통하는 핵심 질문은 정체성이다. 재일한국인 학회원들은 일본인들로부터는 <조선인>이라 차별받고, 한국의 동포들로부터는 <왜색 종교를 믿는 배신자>라 비난받는 이중의 고립에 처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창가학회라는 조직은 이들에게 국가를 넘어선 <보편적 연대>의 공간을 제공했다. <마쓰모토>라는 이름을 강요받았던 전경운의 사례처럼, 이들은 종교라는 외피를 빌려 국가가 주지 못한 소속감을 획득한다.

3. 결론: 역사의 공백을 메우는 개인의 기록

조성윤의 연구는 거대 담론이 놓친 <구체적인 삶>에 주목한다. 그는 종교를 단순히 신앙의 차원에서 보지 않고, 역사의 거센 풍랑 속에서 개인이 선택할 수 있었던 가장 치열한 삶의 방편으로 해석한다. <남양 섬에서 살다>에서 보여준 전경운의 회고록처럼, 창가학회를 믿는 재일한국인들의 이야기 역시 국가나 민족이라는 틀로는 온전히 설명할 수 없는 <경계인의 역사>다.

결국 이 두 책은 우리에게 묻는다. 국가가 개인을 보호하지 못할 때, 인간은 무엇을 의지해 자신을 증명하는가? 창가학회와 재일한국인의 만남은 단순한 종교 현상이 아니라, 근대 국가가 외면한 소수자들이 만들어낸 처절한 자기 구원의 서사다. 조성윤은 이 기록들을 통해 우리가 잊고 있었던 역사의 공백을 생생하게 복원해냈다.


세진님, 이 두 권의 책은 일제강점기 이후 한국과 일본, 그리고 그 사이에서 살아간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텍스트라 생각됩니다. 특히 세진님께서 관심을 가지시는 <아이덴티티>의 문제와도 밀접하게 닿아 있어 흥미롭네요.

두 책 중에서 세진님의 경험이나 가족의 역사와 연관되어 더 깊이 파고들어 보고 싶은 구체적인 지점이 있으신가요?

==

<민족, 종교, 국가 사이에서: 재일한국인과 창가학회를 둘러싼 이중의 시선>

조성윤의 두 책은 겉으로 보면 같은 대상—창가학회—을 다루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두 시선을 제시한다. 하나는 일본 내부에서 바라본 재일한국인의 삶과 선택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 국가와 사회가 특정 종교를 어떻게 규정하고 통제했는가를 분석하는 시선이다. 이 두 책을 함께 읽으면, 단일한 종교 연구를 넘어 <디아스포라, 민족주의, 국가 권력, 그리고 생활세계>가 교차하는 복합적 구조가 드러난다.

첫 번째 책 『창가학회와 재일한국인』은 질문을 개인과 생활의 차원에서 시작한다. 왜 재일한국인은 일본의 신흥 종교를 선택했는가? 저자의 답은 매우 현실적이다. 재일한국인은 식민지 역사에서 비롯된 차별과 빈곤, 그리고 정체성의 불안 속에서 살아온 집단이다. 이들은 일본 사회에서 ‘외부자’로 취급되었고, 동시에 한국 사회에서도 완전히 포섭되지 못한 존재였다. 이 이중적 주변성 속에서 창가학회는 단순한 종교가 아니라, 공동체와 존엄, 그리고 삶의 효능을 제공하는 공간으로 기능했다.

특히 중요한 점은 창가학회의 조직 구조이다. 이 조직은 사제 중심이 아니라 신도 중심의 자발적 결사체이며, 지역 단위의 촘촘한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다. 이 구조는 재일한국인에게 매우 유리하게 작용했다. 혈통이나 국적보다 실천, 헌신, 조직 참여가 중요했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주변화된 개인도 공동체 안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다. 또한 절복 활동과 선거 지원 같은 적극적 참여는 단순한 신앙 행위를 넘어, 자신이 사회적 행위자라는 감각을 제공했다. 창가학회는 이들에게 “어디에 속하는가”보다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묻는 공간이었다.

이 책의 또 하나의 중요한 통찰은 창가학회의 확산이 일본 본부의 조직적 전략이 아니라 재일한국인의 자발적 포교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이는 재일한국인이 단순한 수용자가 아니라, 일본과 한국을 연결하는 능동적 매개자였음을 의미한다. 여기서 종교는 단순한 신앙이 아니라, 디아스포라가 스스로의 삶을 재구성하는 하나의 전략으로 등장한다.

반면 『1964년, 어느 종교 이야기』는 전혀 다른 층위에서 동일한 현상을 바라본다. 이 책은 1964년 한국에서 창가학회가 어떻게 “왜색 종교”이자 “유사 종교”로 규정되고, 국가 권력에 의해 포교 금지 조치를 당하게 되었는지를 분석한다. 목차에서 보이듯, 이 책은 언론 보도, 문교부와 내무부의 개입, 종교심의위원회, 그리고 법적 투쟁의 과정을 상세히 추적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창가학회의 실체가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문제 종교”로 구성되었는가이다. 창가학회는 일본 종교라는 이유로 반일 민족주의와 결합되었고, 냉전 체제 속에서 국가 안보와 사회 질서를 위협하는 존재로 해석되었다. 언론은 이를 “사교”와 “정체불명 종교”로 규정했고, 국가는 이를 제도적으로 통제했다. 이 과정에서 종교의 교리나 실제 활동은 부차적인 요소가 되었고, 대신 정치적 맥락과 집단 감정이 중심을 차지했다.

이 두 책을 함께 읽으면 하나의 중요한 대조가 드러난다. 일본에서는 창가학회가 재일한국인에게 공동체와 자존감을 제공하는 공간이었지만, 한국에서는 동일한 종교가 국가와 사회에 의해 “위험한 타자”로 규정되었다. 즉, 동일한 대상이 서로 다른 사회에서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이다.

이 대조는 단순한 인식 차이가 아니라, 구조적 차이를 반영한다. 일본에서 재일한국인은 주변부 소수자로서 새로운 공동체를 필요로 했고, 창가학회는 그 요구에 응답했다. 반면 한국에서는 국가 형성과 민족주의가 중요한 시기였으며, 외부에서 들어온 일본 종교는 곧바로 정치적 문제로 전환되었다. 여기서 종교는 더 이상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국가 정체성과 충돌하는 대상이 된다.

이 두 시선을 연결하면 다음과 같은 통찰이 가능하다. 첫째, 종교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사회적 맥락 속에서 의미가 재구성되는 현상이다. 창가학회는 일본에서는 생활 공동체였지만, 한국에서는 정치적 위협으로 해석되었다. 둘째, 디아스포라의 선택은 단순한 이념 문제가 아니라 생존과 존엄의 문제이다. 재일한국인의 종교 선택은 민족을 버린 행위가 아니라, 삶의 조건 속에서 이루어진 전략적 선택이었다. 셋째, 국가 권력은 특정 집단을 “문제”로 만드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언론과 대중 감정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두 책은 동시에 한계를 가진다. 『창가학회와 재일한국인』은 창가학회의 내부 문제—예를 들어 조직의 권위주의나 정치 동원—를 충분히 비판하지 않는다. 반대로 『1964년, 어느 종교 이야기』는 국가 권력의 작동을 보여주지만, 창가학회 내부의 실제 모습을 깊이 있게 다루지는 않는다. 즉, 하나는 내부자의 시선에 가깝고, 다른 하나는 외부의 정치적 시선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책의 결합은 매우 강력하다. 하나는 “왜 사람들이 그 종교를 선택했는가”를 묻고, 다른 하나는 “왜 그 종교가 문제로 규정되었는가”를 묻는다. 이 두 질문을 함께 놓을 때, 우리는 종교를 둘러싼 사회적 현실을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조성윤의 두 저작은 창가학회 연구를 넘어 다음과 같은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종교는 단순한 신앙 체계가 아니라, 개인의 삶, 집단의 정체성, 그리고 국가 권력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형성된다. 그리고 그 의미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누구의 시선에서 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


한 줄 정리

<같은 창가학회라도 재일한국인에게는 삶의 공동체였고, 한국 국가에게는 통제해야 할 타자였다>


===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