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15

[뉴스파워] “성공회, 한국문화에 애정 깊었다”



[뉴스파워] “성공회, 한국문화에 애정 깊었다”





“성공회, 한국문화에 애정 깊었다”

양화진역사강좌, ‘성공회 선교사가 본 한국문화’ 주제로 방원일 박사 강의

김준수
기사입력 2014-01-23


한국의 기독교인들에게 성공회에 대한 관심은 장로교단이나 감리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편에 속한다. 그러나 한국이 복음화 될 수 있었던 원동력에는 성공회 소속 선교사들의 숨은 노력들도 분명히 있었다. 1896년 각 교단의 내한선교사의 수를 살펴보면, 
  • 북장로회 18명, 
  • 남장로회 8명, 
  • 북감리회 22명, 
  • 성공회 16명으로 
성공회 소속 선교사들의 수가 다른 교단에 비해 결코 적은 수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 양화진 역사강좌에서 '성공회 선교사가 본 한국 문화' 주제로 강의한 방원일 박사(서울대) © 김준수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도 성공회 선교사들의 무덤이 있다. 묘원의 가장자리인 I열에 성공회 선교사들과 한국인 평신도들의 무덤이 함께 공존해있다. I열은 오른편 가장 구석, 출국 직전에 위치해 있고, 무덤의 배치도 가지런히 정리돼있지 못하다는 인상을 준다. 양화진 역사 강좌 세 번째 시간인 23일 ‘성공회 선교사가 본 한국문화’를 주제로 강의한 방원일 박사(서울대)는 이런 성공회 선교사들의 무덤의 위치와 그 인상이 “우리가 성공회에 대해 갖는 관심과 앎의 정도와 상응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자신의 감상을 밝히기도 했다.




▲ 방원일 박사(서울대) © 김준수




한국에 대한 성공회의 선교 역사는 189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코프(한국명 고요한) 주교의 입국을 통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 코프 주교와 함께 활동한 선교사로는 랜디스와 트롤로프 등이 있다. 또한 1892년에는 이미 4명의 성공회 수녀들이 입국해 수녀원의 기초도 닦았다고 전해진다.



▲ 코프(한국명 고요한) 주교 © 김준수

선교 초기에 성공회는 다른 선교사들과 마찬가지로 의료 활동에 주력했다. 성누가병원(인천), 성베드로병원(서울), 성마태병원(서울) 등을 건립해 많은 한국인들을 진료했다고 한다. 대한성공회는 제2대 터너 주교 때 자리를 잡았다. 제3대 주교인 트롤로프에 의해서는 신학교와 서울대성당(1926년)을 건립했다.

터너 주교의 경우에는, YMCA 창설 멤버로 1907년 이후에 황성기독교청년회장을 역임하면서 종로 YMCA 회관을 건립했다. 방 박사는 터너 주교가 “당시 다른 선교사들처럼 구한말의 국제 정치 상황에 대해 냉정한 판단을 가지고 있었다”면서 “일반적으로 일본에 적대적이지 않은 입장을 고수했다”고 밝혔다. 그는 “선교사들이 한국인들을 위했다고 해서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치적 견해와 동일할 것으로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주의를 당부하기도 했다.

방 박사는 성공회 선교사들이 당시 한국에서 끝까지 활동한 수는 많지 않았지만, “성공회 선교사들은 동료 선교사들에 견주어 볼 때 한국문화에 대한 최고 수준의 이해를 갖고 있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며 “그들의 관심은 호기심 수준을 넘어 학문적 수준의 성취를 이루었으며, 한국학의 발판을 마련했다”고 강조했다. 방 박사는 한국문화에 대한 성공회 선교사들의 애정이 지금의 대한성공회의 교회 전통으로 자리 잡아 한국학 연구로 계승됐다고 평가했다.

이런 성공회 선교사들의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은 곧 깊이 있는 논문과 지금도 남아있는 강화성당과 온수리성당으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랜디스는 성누가병원을 개설한 의료선교사로서 ‘성누가병원’이 한국인과는 관계가 없는 무의미한 이름이라고 반대했다고 전해진다. 방 박사는 “그는 자신이 배운 한문으로 ‘선행을 함으로써 기쁨을 주는 병원’이라는 의미로 낙선시(樂善施) 의원이라는 간판을 달았다”면서 “랜디스는 인근에서 ‘약대인(藥大人)’로 불리며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고 밝혔다. 또한 랜디스는 짧은 사역 기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불교, 유교, 무속, 의례, 민속에 관한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트롤로프 주교도 대한성공회 발전의 중추적인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학 저널인 <왕립아세아학회 한국지부 회보>의 창간호(1901)부터 주요 편집자 및 필진으로 참여해 여러 편의 논문을 남겼다. 1915년에는 한국에서의 성공회 선교 역사를 정리한 『한국교회』라는 책을 집필하기도 한다.

방 박사는 트롤로프 주교에 대해 이목을 끄는 부분으로 “그가 절과 향교라는 전통적 양식을 활용하여 기독교적 이상을 표현한 강화성당과 온수리성당 건축을 주도”했다는 것을 꼽았다. 그는 “속세와 단계적으로 단절하는 가람배치의 기법, 배 모양의 건물 형태, 연꽃과 같은 상징의 사용, 무엇보다도 전통 한옥과 바실리카 양식의 놀라운 결합을 통해 토착화 양식의 걸작을 건축했다”고 평가했다.








▲ 강화도와 인천을 중심으로 활동한 성공회의 선교영역을 나타낸 지도 © 김준수




한편, 양화진역사강좌 네 번째 시간인 2월 6일에는 ‘일제의 기독교 정책과 선교사의 대응’을 주제로 김승태 박사(세계선교신학대학교)가 강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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