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14

[한국의 장점들] 저보고 "한국을 비판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있지만, 이게 뭔... - Vladimir Tikhonov

 [한국의 장점들] 저보고 "한국을 비판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있지만, 이게 뭔... - Vladimir Tikhonov
Vladimir Tikhonov
12 May at 01:01 ·



[한국의 장점들]

저보고 "한국을 비판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있지만, 이게 뭔 말인지 저로서 납득이 불가능합니다. 맑스주의적 입장에서는 '한국'이라는 것은 실체 없는 추상 명사입니다. <포브스>지가 선정한 "세계의 최고 권력자 100명" 중에서 35위인가를 차지한다는 이재용도, 이재용들의 부를 만들어주느라고 데이트 한 번 나갈 여력도 갖지 못하는 "3포 세대" 젊은이들도 다 '한국'에 속하는 것인데, 그들이 같은 색깔의 여권을 갖는다고 해도 사실 서로 접점이 전혀 없는, 각각 완전히 다른 현실을 각자 산다는 것입니다. 제게 과업이 있다면 왜 후자가 전자의 사실상의 피해자가 되면서도 전자의 지배를 여전히 받아들이고 있는가에 대한 분석인데...사실 따지다 보면 그 이유들은 한국에서나 타지에서나 그렇게까지 서로 다르지도 않습니다. 과거의 성장 (한국), 내지 과거의 황금기 복지 사회 (유럽)에 대한 역사적 기억들과, 언젠가 이 사회가 다시 하위자들에게까지 뭔가를 약속해줄지도 모른다는, 아직도 완전히 없어지지 않은 기대들은 가장 큰 것일 겁니다. 물론 한국에서나 외국에서나 그 기대들은 가면 갈수록 얇아져 가고 있는데요...그런데 사실 여기저기 왕래하면서 '비교'를 하다 보면 객관적으로 대한민국은 다른 지역에 비해 상당한 장점을 갖고 있다는 사실도 종종 발견합니다. 단, 이 장점들을 이재용이들의 덕이라기보다는 여태까지의 꾸준한 투쟁으로 이재용이들의 전횡을 그나마 조금 견제하게 된 그 피해자들의 쟁취물이거나, 그저 객관적 '상황'의 선물입니다. 제게 가장 절실히 느껴지는 장점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미국과 달리 대한민국은 초보적이긴 하지만 어느 정도의 공공 의료 체제를 갖고 있으며, 대단히 훌륭한 대중교통체계를 갖고 있습니다. 전자는 노태우 정권 이후 국가에 대한 사회 압력의 결과물이고, 후자는 크게 봐서 과밀사회로서 불가피하고 당연한 해결법입니다. 대중교통이 엉망인 미국에서는 인구 1000명당 자동차 대수가 837대라면, 한국은 천만다행으로 (!) 411대에 불과합니다. 이건 노르웨이보다 약 200대 적은 것인데, 고소득 사회 치고 가장 괜찮은 편에 속하죠. 과밀사회라서 가능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같은 과밀사회인 일본 (591대)에 비해서도 훨씬 나은 통계다 보니 역시 후발의 장점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일본의 선례를 보고 그 실수들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수도권의 교통망을 나름 합리적으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이죠. 저는 서울에서 지하철 타기만 하면 집처럼 안락하게 느껴집니다. 인파가 좀 심할 때 많지만 제 고향 래닌그라드도 쏘련시절에 만만치 않았던 것이고, 그 대신 편한데다가 안가는 데도 거의 없고...자동차는 인류의 적이며 지구의 적이며 제가 개인적으로 혐오감을 가장 많이 느끼는 물건 중의 하나입니다. 자동차 없이도 살 수 있는 사회는 미래가 있는 사회죠.

- 남미나 동구와 달리 한국은 신자유주의 모델로 갈아타도 탈공업화의 함정을 아직까지 어느 정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신문에서는 "공업 공동화" 이야기를 자꾸 하지만, 통계를 보면 여전히 한국 국내총생산의 거의 4할은 산업입니다. 이건 예컨대 미국보다 거의 2배 높은, 세계적으로도 꽤나 높은 수치죠. "세계의 공장"이 된 중국에 상당부분의 부품 등 자본재와 일부 소비재 등을 공급할 수 있는 지역적 역할분담 구조에서의 위치와 관련되는 부분입니다. 저는 공장 그 자체를 좋아한다기보다는 그 공장의 가동을 한꺼번에 멈추게 할 수 있는 조직노동의 잠재력을 믿기 때문에 이 부분을 이렇게 꼽는 것입니다. 대공장에서의 노동자 조직화는, 비공식 부문 (한국으로 치면 노점상 등과 같은 영세 자영업)이나 각종의 식당 내지 커피숍 등 서비스부문보다 훨씬 수월합니다. 대공장들의 파산과 폴란드 내지 헝가리 같은 나라에서의 극우 권위주의 체제의 수립은 절대 무관하지 않죠. 대공장의 몰락과 함께 노조도 힘이 빠지고, 노조들과 함께 거대 사민당 (이 경우에는 동구권 시대 공산당들의 후계정당)들도 약체화된 거죠.

- 일본과 달리 한국에 거대우파 정당이 없는 점입니다. 일본에서는 "대동단결"한 보수들은 1955년이후로는 사실상 일당지배에 가까운 통치형태를 구사해왔습니다. 자민당 안에서의 계파 사이의 차이는 한국의 민주당과 바민당 사의 차이보다 더 클 수도 있는데 (거기에는 친미 내셔널리스트들도, 극소수 반미내셔널리스트들도, 올드 레버릴들도...다 있습니다) 저들은 통치의 편리를 위해 계파 사이의 나누어먹기를 내부적으로 조절해가면서 일단 통치를 같이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판갈이가 그다지 없고 한국이었으면 정권교체 과정에서 터졌을 수도 있는 비리들은 그냥 그대로 묻히고....한국의 보수들은 애당초에는 민주당 하나로 출발했지만, 결국 김성수파와 이승만파가 갈리고 나서 나름 여야체제가 확립이 된 겁니다. 이승만파 (자유당)은 결국 망했고, 박정희체제로까지 거슬러올라가는 한국 우파의 상당부분은 그냥 일종의 유사파쇼들입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들이 가끔 권력을 잃을 수도 있는 반면, 일본에서는 자민당 내 극우들의 눈치를 그 어떤 집권계파도 절대 무시 못하죠.

​- 러시아와 달리 한국에서는 군사주의적 분위기는 훨 덜 합니다. 징병제 자체는 한국에서는 러시아보다 훨씬 더 철저합니다. 남성 현역복무율 (약 90%)도 3배 이상 높고, 군에서의 직업군인 비율도 훨씬 낮죠. 러시아 군대 같으면 이미 3할 이상은 직업군인들인데, 한국은 여전히 '징집'에 의존합니다. 그런데...'군'이나 '전쟁'에 대한 태도는 두 나라에서는 굉장히 다릅니다. 한국에서의 '군'이란 사실 누구나 피하고 싶은 대상이고, '전쟁'의 유일한 현실적인 대상이라면 북조선이고 그런 전쟁은 그저 그냥 악몽이자 공멸로밖에 다수에게 보이지 않습니다. 극우들도 대북 '대립'을 원해도 대부분의 경우 '전쟁'을 원할 만큼은 미쳤거나 악질적이지는 않죠. 반면 지정학적인 장기적 대미 갈등에 완전히 휘말린 러시아 사회에서는 군에 대한 신뢰도는 높고 (대개 60% 이상 정도) "아군"의 침략적인 군작전까지도 적극 지지율이 꽤내 높은 것입니다. 시리아 폭격만 해도 지지율은 50% 넘었죠. 국민/인민 총동원과 대규모적 전쟁 (세계대전)을 원하는 거야 결코 아니지만, 다수의 러시아인들은 각종 대미 대리전에서는 '애국적' 입장을 취합니다. 한데, 잘못하면 이런 대리전의 전장이 될 위험성도 있는 한국에서는 분위기는 많이 다르죠.

아직도 - 예컨대 동구에 비해 - 상당히 남아 있는 조직노동의 힘, 그리고 노동자 조직화의 잠재적 가능성, 나름대로 발전된 일부 공공부문 (대중교통 등), 비록 우파 헤게모니의 사회긴 하지만 그나마 정권 교체라도 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군사주의 폐단은 매우 태심해도 그나마 전쟁에 대한 혐오증, 평화 추구적 분위기의 공고화 등은 한국 사회의 커다란 장점들입니다. 이런 장점들을 기반으로 해서 미래를 향해 나아가게 되는 것이죠. "한국의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인젠 걱정할 게 없다"고 단언한 미국의 저명한 석학 브루스 커밍스와 달리 저는 우파 헤계모니 속의 한국 '민주주의'의 '질'에 대해서는 상당히 비판, 비관적이며 걱정할 게 태산 같다고 봅니다. 그런데 특히 커밍스 옹이 사시는 미국 등과 비교해볼 때에 낙관의 이유들도 전혀 없지 않아 있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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