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04

세라 스마시의 (하틀랜드: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에서 뼈 빠지게 일하고 쫄딱 망하는 삶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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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 스마시의 <하틀랜드: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에서
뼈 빠지게 일하고 쫄딱 망하는 삶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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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1980년 8월에 내가 태어났고 부모님이 나를 조그만 빨간 오두막집으로 데려왔어. 셋집이었는데 내가 엄마 배 안에 들어선 곳이기도 한 작은 동네에 있는 집이야. 집 몇 채가 밀밭과 진입로를 사이에 두고 띄엄띄엄 흩어져 있는 곳이었지. 엄마와 나는 집에 남아 있고 아빠는 농장과 건설 현장으로 일을 하러 나갔어.
...지니는 임신 기간 동안에도 끊지 않았던 담배, 천 기저귀가 가득 든 빨래 바구니, 분유가 담긴 젖병을 들고 낑낑대고 있었지. 모유를 먹이면 돈이 덜 들겠지만 모유 수유가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마지막 자존감마저 버리는 일이었어. 그래서 지니는 잔돈을 긁어모아 분유를 샀어. 1960년대에 베티도 똑같이 그렇게 했어. 지금은 많은 것들이 전혀 다르게 보이지만, 우리는 뭐든 배운 대로 답습했으니까. ...베티 할머니는 날마다 위치토까지 출퇴근하면서도 틈이 날 때는 아기 돌보는 걸 도와주었어. 하루는 엄마가 낮잠을 자는 동안 분유를 먹이다가 사레가 들려서 내 발목을 잡고 위아래로 흔들었대.
...레이건은 부자들의 큰돈이 경제 활성화를 통해 ‘낙수처럼’ 우리에게 흘러내릴 것이라고 말했어. 마치 우리가 집 밖에서 입을 떡 벌리고 돈이 비처럼 내리기를 기더리고 있기라도 한 양 말이야. ...연방 정부가 하는 일을 미심쩍어하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솔깃했지. 그때에는 정부가 개인의 삶에 관여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보수 정당의 주장이 설득력 있게 들렸거든. 하지만 개인 영역에 정부가 간여하지 않음으로써 다른 종류의 억압이 생겨난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되었어.
같은 해인 1980년에 컨트리 가수가 대공황에 대한 노래를 발표했는데 이런 가사가 있었어. “누군가가 월스트리트가 무너졌다고 했지만/우리는 너무 가난해 그것도 몰랐네.” 대공황이 일어난 1930년대에서는 한참 지난 때였으나 내 어린 시절에도 케이블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가 경제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느냐에 대한 인식이 없었어. 우리 위치를 어찌나 몰랐던지 드물게나마 계급을 의식할 때면 우리는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생각했어. 가끔 뉴스에서 중산층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그게 ‘가난하지도 않고 부자도 아니’라는 뜻이라고 받아들였으니까. 밥 굶지 않고 사니까 우리는 중산층이라고 생각했지.
내가 카터의 경고성 연설 몇 달 뒤에 임신되었고 레이건 취님 몇 달 전에 태어났으니, 내 삶과 미국 노동자의 몰락은 나란히 전개될 운명이었던 거야. 하지만 캔자스 들판 위의 우리는 이런 사실을 전혀 알 수가 없었어. ...우리는 우리 나라 같은 민주 국가에는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어. 적어도 계급이 운명이나 핑계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 노력한 만큼 얻는 거라고 믿었어. 그런 생각에도 일말의 진실은 있지. 하지만 그게 진실의 전부는 아니야.
...엄마가 집 밖에서 일할 때도 많았어. 엄마는 늘 무언가를 파는 일을 했어. 엄마는 중개업자 자격을 취득해 위치토에서 부동산을 팔기로 했지. 우리는 위치토로 이사했는데 아마도 엄마 아빠 둘 다 일거리가 많은 곳으로 가려고 그랬을 거야. 도시에는 고칠 집도 많고 팔 집도 많으니까. 처음에는 아파트에 1년 못 되게 살았고 다음에는 소박하지만 조용하고 나무도 있는 동네에 있는 집에서 세를 살았어. 주말이면 아빠는 시골에 있는 우리 집에 가서 들일을 했어.
집안 형편이 좀 좋아지는 것 같았어. 코커스파니얼 개도 한 마리 길렀고, 나는 플린트스톤 비타민을 먹었고 분홍색 캐노피가 있는 침대도 생겼어. 금요일 밤에는 엄마와 아빠가 쫙 빼입고 현관에서 나한테 인사를 하고 밤을 즐기러 나갔어. 엄마는 머리에 컬을 넣고 뺨에는 환하게 블러시를 발랐고 아빠는 뱀가죽 장화를 신고 아이리쉬 스프링 비누와 애프터셰이브 냄새를 풍겼지. 댄스홀에 가면 아빠는 캐나다산 위스키를 마시고 엄마는 다이어트 코크를 마셨어. 낮에 엄마 아빠 다 일하러 나갈 때 나는 잠깐 유치원도 다녔어. 그때 세 살이었는데 벌써 네 번이나 집을 옮겨 살았고 캐노피 침대와 비타민이 호사스로운 물건이라는 것 정도는 알았지.
아빠는 우리 집을 지을 땅을 살 때 빌린 돈을 다 갚고 난 다음 그 땅을 담보로 은행 대출을 받아서 건축 자재를 샀어. 1983년 초였는데 건설 경기에 불황이 닥쳐오고 있었지. 할아버지는 경제가 불안할 때 대출을 받으면 좋지 않다고 걱정했지만 아버지는 할아버지한테 자기는 미국을 믿는다고 대답했대. 사정이 다시 좋아질 것으로 믿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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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읽고 있는 세라 스마시의 <하틀랜드: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에서 뼈 빠지게 일하고 쫄딱 망하는 삶에 관하여>에 나오는 내용이다. 한국어판은 한 달 전에 출간됐다.

저자 개인의 삶의 과정을 통해 미국 노동계급이 몰락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생각해보니 70년대 후반~80년대 초반에 태어난 미국인들은 아직 빈부격차가 그리 크지 않았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다들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나는 논문 스타일이 아닌 책은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어야 하니까 잘 읽지 못하는데 이 책은 예외다.
- 내가 인상깊게 본 부분은 앞으로 닥쳐올 파국을 알지 못했던, 반짝 살기 좋았던 시절의 기억을 ‘아버지의 아이리쉬 스프링 냄새’로 표현한 구절이다. 중산층의 삶을 아이리쉬 스프링 냄새로 기억하는 삶은 어떤 삶인가.
- 세라 스마시의 이야기에서 지금 한국인들의 삶이 겹쳐보였다. 한국도 거대한 계급 분화가 일어나고 있는 중이다. 아직까진 OECD 평균에 비해 빈부격차가 적은 편이지만 최근 몇 년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대부분의 젊은 가정이 자녀를 돌볼 수 없을 정도로 맞벌이 노동을 해야 하고 대부분의 청년이 대출을 안고 사회생활을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이제 아무리 고소득 전문직종이라 해도 서울에 부동산을 가진 계급의 성장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세대는 한국에 계급이 없다고 믿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가지고 살아갈 것이다. 이들은 그나마 좋았던 시절을 어떤 냄새로 기억할 것인가.
- 2013년 디 아틀랜틱지는 와이어지 정치면 편집자였던 엘 리브와의 대담 기사를 실었다. 주제는 아이리쉬 스프링 비누다. 엘 리브는 아이리쉬 스프링을 딱 잘라 ‘미국에서 최악의 비누’라고 말했다. 그녀의 말을 좀 더 옮겨본다: “월마트나 트럭 정거장처럼 끔찍한 악취의 원인을 실제로 제거하는 대신 강력한 공기청정제로 가리려고 하는 곳 어디서나 나는 냄새예요. 나는 마피아 타입의 인간이 아니라서 욕조에 누울 때 독성물질 냄새가 나는 비누를 쓰지 않아요. 군인인 남동생이 집에 올 때마다 욕실에 야만적인 녹색 덩어리를 두고 가는 게 마음 아파요. 아이리쉬 스프링은 식물, 과일, 향신료 같은 자연스런 냄새가 아니라 버스정류장 화장실의 변기 암모늄 같은 냄새가 나는 세계에 사는 인간들에게나 세련된 남성성을 나타내는 비누죠.
- 현재 CNN의 유명 기자인 엘 리브는 와이어지와 바이스 뉴스를 거쳤다. 인디 힙스터 매체에서 시작해 메인스트림 진보 언론에 안착한 대표적 사례. 그녀의 백인-진보-여성 관점과 세라 스마시의 백인-레드넥-여성 관점을 비교해볼 수 있다. 한쪽은 아이리쉬 스프링 냄새에서 야만적인 남성성을 떠올리고 다른 한쪽은 열심히 일하면 잘 살 수 있다고 믿었던 시절을 떠올린다. 그리고 하층계급의 문화와 정서를 세련된 언어로 경멸하는 진보 지식층의 출현은 한국에서도 이미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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