希修
< 램지어 교수 사건, 사실의 '해석' 이전에 사실의 '기술'에 대한 문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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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처음에는 램지어 교수 사건도 박유하 교수 건과 비슷할 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내용을 보니 차원이 전혀 다르다. 박유하 교수의 경우엔 '자발적'이라는 단어의 사용이 부적확했다는 '그 하나'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는 뜻은 아니다)만이 문제였고, 단어 하나의 사용이 부적확했다는 이유로 이를 형사문제로 처리하거나 교수직 자체를 박탈한다면 그건 '마녀사냥'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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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램지어 교수의 경우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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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2차대전 이전 유흥업에 종사한 일본 여성들의 계약서를 '근거'로 하여 2차대전 중의 조선인 위안부도 그런 계약에 의한 노동이었을 거라는 자신의 추정을 사실인 양 기술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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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A가 B를 C라고 생각했었는데 나중에 보니 B가 D여서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에 대해 A가 충격받았다는 내용에서, 다른 부분들은 무시한 채 A가 D에 자원했다고만 기술하는 등의 문제를 다수 포함한다. (이는 명백히, 독해실력의 문제가 아닌 의도적 왜곡의 문제다. '거짓말'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전혀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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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의 경우, 노동자가 노동의 내용을 정확하게 인지, 적극적으로 희망한 것이 아니라면 '자발적'이라는 단어의 사용은 적확하지 않다는 것이 나의 박유하 비판의 주된 내용인데, 석지영 교수 역시 노동의 종류, 임금, 노동 기간 등에 대해 노동자가 정확한 내용을 인지하지 못 하고 있었다면 설사! 계약서가 존재한다 한들 그걸 '계약'이라고 부를 수 없음을 뉴요커 기고문에서 지적한다. (조선인 위안부의 계약서는 발견된 적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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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이 사건은 사실의 '해석'에 대한 문제조차 아니고 그 이전에 사실의 '기술' 자체에 있어서의 정확성, 윤리성, 책임성의 문제이며, 따라서 이 사건 때문에 램지어 교수가 교수직에서 파면을 당한다 해도 이는 '언론과 학문의 자유 침해'가 아닌 '자정 작용'일 뿐인 것이다. 역사학자가 사료나 근거도 없는 주장을 하는 순간, 그는 이미 역사학자이기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다. 논문이라고 부르기도 힘든 이런 수준의 주장들은, 비민족주의적 입장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려는 한국 학자들의 운신의 폭을 오히려 좁혀 놓는, 램지어 교수 자신의 애초 의도와 정반대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 같다. 램지어 교수는 현재 자신이 '마녀사냥' 당하고 있다고 호소 중인가 본데, 이건 내게는 학력위조 신정아가 자신은 마녀사냥 당했다며 억울해 하는 것과 똑같은 형국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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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 그런데 해결되지 않는 의문이 하나 있다. 소위 민족주의 진영에서는 "일본은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한 번도 제대로된 사과를 한 적이 없다"고들 하시는데, 그 '제대로된 사과'가 무엇인지 여쭙고 싶다. "Sincere apologies and remorse"라는 표현은 '사과'가 아니라는 말? 이건 정말 궁금해서 여쭙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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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지영 교수 뉴요커 기고문
https://www.newyorker.com/.../seeking-the-true-story-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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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facebook.com/sean.kim.50951/posts/3622651821115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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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n Kim
22tSr ptFeeobrnusahandaaimioruyc oaoit 0ger7nce:26d ·
<유령 블로그 인용에 악마의 편집까지…이것이 과연 하버드 논문인가>
● 2주 밤낮으로 만든 글로벌 연합군의 ‘램지어 팩트 체크’
- 하버드 램지어 교수가 도발하면서 벌어진 위안부 피해자 진실공방은 매우 독특하고 의미 있게 진행되고 있음. 미국의 역사학, 법학, 경제학 등 관련 학계가 들끓고 있고, 이 문제에 대해서 학자들의 성명서와 검증 보고서가 계속 추가로 나오고 있는 상황. 관련 문제가 우리와 직접 관련이 있는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것이라 학자들의 논쟁을 팔로우 하는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있고 어떻게든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생각.
- 며칠 전 보도한 하버드에서 역사학을 가르치는 앤드루 고든, 카터 애커트 교수의 반박문은 램지어 교수를 한방에 KO 시킬 정도의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음. 매춘 계약서의 실체도 확인할 수 없었고, 3자의 진술조차 없다는 지적은 학자로 사형 선고와 같은 것이지만 램지어 교수는 어떤 반응도 내놓지 않고 있음. 그 뒤 일본 역사 연구자 5명이 <“Contracting for Sex in the Pacific War”: The Case for Retraction on Grounds of Academic Misconduct>라는 33페이지짜리 검증 보고서를 발표.(램지어 교수의 논문이 8페이지에 불과하니 4배 이상 방대한 분량) 이건 거의 확인 사살에 가까운 '꼼짝마' 리포트라고 할 수 있을 듯. 필진은 Amy stanley(노스웨스턴대 교수), Hannah Shepherd(케임브리지대 연구원), Sayaka Chatani(싱가포르대 교수), David Ambaras(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 교수), Chelsea Szendi Schieder(아오야마 가쿠인대 교수) 등 5명. 활동하는 국가도 미국, 아시아, 유럽 등 명실상부 글로벌한 역사학계의 독수리 5남매 비슷한 느낌. 모두 일본사를 전문으로 하는 학계의 프로 선수라는 공통점이 있음. Sayaka Chatani 교수는 트위터에 "우리 팀은 지난 2주간 말 그대로 밤낮으로 이 검증 보고서를 만들었다. 내가 이 일원인 게 자랑스럽다"고 적어놨음.
- 이 보고서는 크게 4자기 항목에 걸쳐 램지어 교수 논문의 오류를 조목조목 지적. 1. Failure to Acknowledge an Absence of Evidence 2. Use of Evidence from Primary Sources 3. Use of Secondary Sources 4. Inaccurate and Inappropriate Citation Practices 등의 큰 주제 밑에 구체적인 사례를 나열하며 박살을 내놨음. 램지어 논문의 출처를 전부 뒤져보고 팔로우 하며 팩트 체크를 했기 때문에 이런 연합군이 2주를 꼬박 투자했다고 해도 전혀 과장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음. 내용이 방대하지만 특히 문옥주 할머니 부분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음.
● "가장 튀게 잘 살았던 문옥주"…출처는 위안부 모욕 글 모아놓은 유령 블로그
- 램지어 교수는 위안부 피해자 문옥주 할머니를 위안소 운영자와 매춘 계약을 맺어 실제 돈도 많이 받고 저축도 상당히 하며 잘 먹고 잘 살았던 그런 사람처럼 논문에 묘사. 이 논문의 출처는 (KIH, 2016b)로 표현돼 있음. 하지만 논문 검증단이 이걸 따라가 보니 이건 정식 출판물도 아니고 그냥 국내 인터넷 블로그에 떠 있는 영어 번역문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음.
- 실제 링크를 따라 들어가 보니 이 블로그는 어느 극우 성향 인사가 위안부 피해자들을 비하하는 여러 글을 모아놓은 국내 유령 사이트에 불과. Korea Institute of History(한국 역사 협회)라는 제목이 있는데 소개 페이지에는 관리자 사진도 없고, 이메일이 달랑 하나 걸려 있는 게 전부. 이 이메일에 "댁은 뉘쇼?"는 취지의 질문을 보내놨지만, 아직 답이 없음. 2016년에 39개의 글을 올린 뒤 활동 없이 버려진 흉가 블로그. 게시물들은 외부 링크를 많이 걸어놨는데, '일베'로 널리 알려진 극우 성향의 일간 베스트 사이트는 물론 디시인사이드 등 인터넷 게시판으로 연결되는 게 상당수. 내용은 하나같이 위안부 피해자들의 실체를 부정하는 내용. 뉴스가 나간 뒤 인터넷 댓글 중에 "망한 조별 과제도 블로그를 출처로 하지는 않는다"는 내용이 인상적. 하지만 하버드 교수가 자신의 논문에 이런 짓을 한 게 레알 벌어진 일.
- 그런데 램지어 교수는 이 유령 블로그 글마저 악마의 편집을 했음. 유령 블로그에도 "나는 양곤에서 전보다 더 많은 자유가 있기는 했다. 물론 완전히 자유가 있는 건 아니다. 나는 한 달에 한두 번 한국인 위안소 관리자의 허락을 받아야만 나갈 수 있었다"(I was able to have more freedom in Rangoon than before. Of course, not completely free but I could go out once a week or twice a month with permission from the Korean owner)고 표현돼 있음. 자신이 신체의 자유를 속박당한 상태라는 걸 유령 블로그도 써놨는데, 램지어 교수는 이 문장을 빼버리고 뒤에 이어지는 문장인 "나는 인력거를 타고 쇼핑가는 게 재미있었다. 나는 양곤 시장에서 쇼핑하는 경험을 잊을 수가 없다"(It was fun to go shopping by rickshaw. I can't forget the experience of shopping in a market in Rangoon)부터 단락을 시작. 돈 벌어서 미얀마 양곤을 누비며 대놓고 돈을 흥청망청 쓰고 다니는 직업 매춘 여성처럼 보이게 하려는 '악마의 편집'을 한 것임.
램지어 교수는 문옥주 할머니를 표현하면서 자신의 논문에 "기록이 남아 있는 한국 위안부 가운데 문옥주가 가장 튀게 잘 살았던 것으로 보였다. 그렇게 회고록에 썼다"(Of all the Korean comfort women who left accounts, Mun Ok-ju seems to have done well most flamboyantly(거침없이 현란하게). She writes in her memoir)고 표현. 이런 비아냥거림을 섞은 비난을 위안부 피해자를 대상으로 악마의 편집까지 해가며 학자가 논문에 써놨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적. 만약 방송 기자가 전쟁 피해자를 인터뷰해 맥락을 이런 식으로 앞뒤를 자르고 방송에 낸다면 더 이상 기자직을 유지하기는 어려울 듯.
- 글로벌 학자들은 문옥주 할머니를 실제 인터뷰했던 모리카와 씨의 책을 일일이 뒤져서 전체 맥락이 무엇인지 서술해놨음. 보고서는 문 할머니가 1940년 만주의 위안소에 잡혀가 겪은 끔찍한 일부터 기술. 16살 소녀가 대구에서 잡혀와 만주에 도착해 자신이 위안부가 됐으며, 하루 20,30명의 일본군을 상대해야 하는 걸 알게 됐을 때 하루 종일 울었다고 회고했다고. <we would be forced to service them too. I cried every day. But as much as I cried, the men kept coming> 일본 헌병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이곳을 탈출했지만, 1942년 문옥자 할머니는 해외에 있는 군 구내식당에 식모살이를 하러 가자는 꼬임에 넘어가 미얀마까지 가게 됨. 항구에 집결했던 한국 소녀들은 타이완, 사이공, 싱가포르, 양곤에 차례차례 내려야 했음. 문 할머니는 자신이 미얀마로 가는지도 모르고 그곳에 가게 됐다고.(일전 인터뷰에서 알렉시스 더든 교수는 이런 어린 소녀들의 해외 이동은 일본 정부의 승인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지적했음.) 군인 가운데 한국말 하는 사람들이 와서 "너 속아서 여기 왔다. 너 위안부로 가게 된 거야"라는 말을 듣고 진상을 알게 됐음.
- 위안소 관리인들은 군인들을 상대하면 티켓을 받게 될 것이고, 그 티켓을 한국에 갈 때 돈으로 바꿀 수 있으니 열심히 일하라고 독려. 하지만 이건 노동의 대가라기보다는 그저 꼬드김에 불과. 학자들은 문 할머니가 매춘 계약을 맺고 돈을 받았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고, 그나마 만주에서는 이런 티켓 따위도 받았다는 흔적이 없다고 담담하게 지적. 문 할머니의 실제 회고록은 일련의 과정이 강압(force)과 사기(deception)를 가리키고 있다고 설명.
- 유령 블로그는 물론 램지어 교수조차 논문에 문 할머니가 팁으로 돈을 많이 모았다고 써놨음(I saved a considerable amount of money from tips). 위안소에서 주는 돈으로 모은 게 아니라 군인들이 개별적으로 주는 돈을 모았다는 의미. 활달하고 적극적인 성격의 문 할머니는 지옥굴을 탈출하기 위해 돈을 악착같이 모으려고 생각했던 것 같음. 하지만 시모노세키 우체국에 입금된 이 돈은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의해 문 할머니가 더 이상 일본인이 아니기 때문에 돌려줄 수 없다고 지급 거절.
- 결국 돈 한 푼 손에 못 쥐고 문 할머니는 지난 1996년 사망. 비극적인 전쟁의 역사를 알려주기 위해 모리카와 씨와 인터뷰를 통해 진상을 밝혔던 것인데, 램지어 교수는 위안부는 매춘부라는 자신의 공식에 맞추기 위해 피해자의 역사를 완전히 뒤틀어놨던 것.(각 챕터별로 이런 사례가 계속 나열돼 있음. 램지어의 논문은 학문적 사기라고 표현해도 전혀 부족함이 없음.)
학자들의 진상 보고서에도 이에 대한 분노가 곳곳에 묻어 있음. 집필자 여러 명에게 접촉했는데, 모두 화상 인터뷰는 거절. 노스웨스턴대학교 에이미 스탠리 교수가 대표로 서면 답변을 짧게 보내줬는데 "논문이 실리는 국제 법경제 리뷰가 우리 보고서를 참고해 논문을 철회해주기를 희망한다"고 말해. 이들에게 위안부 피해자 문제는 한일 문제가 아니었음. 학문의 영역에서 벌어진 역사 왜곡 폭동을 학자답게 제압했다는 생각.
● 논문 초안 내리고 윤리위 가동…"엄격한 사실 확인 검토 진행"
- 위안부 피해자 왜곡 논문과 별도로 램지어 교수의 하버드 토론 자료집의 심각한 문제는 이미 보도로 여러 차례 지적. 사실 수위로만 보면 토론 자료는 '혐한 논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님. 이 가운데 간토 대지진 한국인 학살을 왜곡한 <자경단: 일본 경찰, 조선일 학살과 사립 보안업체>라는 제목의 토론 자료는 정식 학술지로 출간하기로 했던 케임브리지 출판부에서 사전 공개 사이트(SSRN)에서 우선 내리는 조치를 했음.
- 이스라엘 히브루 대학 로스쿨의 앨론 해럴 교수가 편집장이었는데, 왜 이렇게 한 건지 이메일을 보냈더니 현지 시간 자정이 훨씬 넘었는데도 답을 보내줬음. 메일을 보내면서 이 문제는 이스라엘이 겪은 홀로코스트를 왜곡한 것과 비슷하게 한국인들이 받아들인다고 좀 세게 말을 했는데, 해럴 교수가 많이 놀란 느낌. 그 늦은 시간에 답을 주리라고 생각을 못했는데, 인터뷰는 안 하겠다면서도 서면으로 답변을 보내. 그는 "출간 전 논문의 사실 확인을 위한 엄격한 검토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며, "논문은 절대로 초안처럼 실리지는 않는다고 확인한다"고 답변. 그러면서 케임브리지 출판부의 편집인에게도 이메일을 넘겨서 답을 달라고 스스로 요청했는데, 매트 갤라웨이 선임 편집인은 "윤리위를 가동해서 검토 중이다"는 답을 보내줬음. 모두 자정이 넘은 시간에 답이 온 건데, 이들도 한국 언론이 얼마나 이번 사안을 심각하게 보고 있는지는 알게 된 듯.
● 위안부 피해 당사국 한국…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다뤄야 하나
- 이번 사안이 미국에서 벌어진 게 한편으로는 잘됐다는 생각도 들었음. 하버드 대학 교수라는 흥행 요건을 갖춘 인물이 일본 극우의 논리를 그대로 가져와 논문에 쓰려다 전 세계 학계가 연합해 이를 좌절시킨 것은 큰 성과. 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픈 역사는 공방의 대상이 아니라 이미 역사적으로 확증된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라는 걸 세계 학자들이 자기 일처럼 나서서 확인해준 것. 국내 극우 인사들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증거를 왜곡하며 “일제의 강제 동원이 없었다, 위안부는 매춘부다”라는 램지어 스러운 주장을 하더라도 이들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좋은 선례를 남긴 셈.
- 우리 학계가 이런 역사왜곡 시도에 대해서 가장 정교한 데이터와 사례를 가지고 반박문을 가장 빨리, 가장 정확하게 내놨어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 램지어 교수라는 기이한 인물이 나왔을 때 그 사람의 교수직이 일본 기업의 후원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논문 내용은 볼 필요도 없다면서 흥분하고 분노했던 게 아닐까도 생각이 들기도. 사실 하버드 대학 자체가 거액을 기부한 목사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졌을 정도로 미국 대학은 기업의 후원과 기부가 일상적인 상황. 특히 돈이 안 되는 인문학은 기업의 후원 없이 교수 자리를 유지할 수 없는 학교도 많은 게 현실. 그런데도 미국은 학문의 자유가 최우선시 되고 그런 후원 기업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학자들이 자유롭게 연구를 하는 것도 사실. 이번 사태에서 보듯이 이런 학문적 반란은 학문으로 '팩폭'해가며 충분히 응수할 수 있다는 것도 확인됐음.
- 하지만 당사국인 우리가 감정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불가능. 개인적으로도 일면식도 없는 램지어 교수 사건에 왜 이렇게 매달리는지 자문해보면 이 사람의 논문을 실제 보면서 한국인으로서 마음 한 구석에 큰 상처를 입고, 분노가 일어서가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그럼에도 이런 사건을 정치적으로 활용하거나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사태 해결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생각. 국내 일부 극우 인사들도 자신들의 정치적인 이익을 위해 막무가내 일제 편들기를 하는 것일 뿐이고, 팩트를 드러내는 것 보다는 위안부 사건 자체를 감정적 난장판으로 만드는 게 목적이 아닐까 생각.
- 이번 사태에 대해 정말 램지어 교수가 무슨 생각인지 궁금. 사태 초기 이메일을 보내면 "인터뷰 안 한다"는 메일은 거의 당일 바로 보내주곤 했는데, 요즘은 닷새 동안 7통의 이메일 보내고 어제야 "인터뷰 안 한다"는 답 메일을 받음. 만약 질문할 기회가 생긴다면 "교수님이 인용한 그 블로그가 뭔지 알고 하신 거예요?"라고 묻고 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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希修
https://www.facebook.com/sean.kim.50951/posts/3642292352485123
<"매춘 계약서 없다" 궁지 몰려 실토…학계 대사건으로 번진 '램지어 사태'>
● 램지어 국면 뒤흔든 하버드 석지영 교수의 폭로
- 석지영 교수가 잡지 뉴요커에 기고문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번 사건을 취재하면서 알게 된 미국 교수님들을 통해서 듣고 있었음. '사건 분위기가 바뀔 것이다'는 말씀을 해주시는 분도 있어서 도대체 어떤 내용이 있어서 그럴까 궁금해 하고 있었음. 출고 시간이 늦어지면서 하루 뒤로 밀리나 보다 생각했는데, 기사가 나오자마자 여기저기서 이 내용을 확인해보라는 메시지가 빗발치기도.
- 석지영 교수의 기고문은 역시 명성에 걸맞게 내용이 훌륭. 뉴요커 기고문은 미국인들에게 이번 하버드대 램지어 교수 사건이 갖는 의미를 A부터 Z까지 모두 설명하고 있었음. 뉴요커는 미국에서도 고급 잡지 이미지가 강한데, 석지영 교수의 기고문은 미국 사회도 이번 사안의 전모를 들여다볼 수 있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대단히 큰 의미가 있음.
- 석지영 교수는 이번 사태 초기에 트위터에 동료 램지어 교수 논문에 대한 비판을 조목조목 올리면서 자신의 시각을 선명하게 드러낸바 있음. 당시 운 좋게 트위터 올린 다음 날 인터뷰를 할 수 있어 뉴스로 전했었는데, 이번 기고문을 보고 다시 연락을 안 할 수가 없었음. "교수님 기사로 많은 것이 바뀔 것 같다"며 인터뷰를 요청하는 메일을 보냈는데, 늦은 밤인데도 가능하다는 답신이 왔음. 석 교수는 뉴요커의 객원 기자 타이틀도 갖고 있어서인지, 이번 사태 한복판에 뛰어들어 그동안 열심히 '취재'를 해왔음. 본인이 이번 사건과 관련 있는 동료 학자들 대부분을 만나 솔직한 속내를 들었음. 기사에 담지 못한 것도 상당해 보였음. 인터뷰하면서 석 교수가 파악했던 사건의 전말을 들을 수 있었던 건 개인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었음.
- 이번 사태에서 석지영 교수만 할 수 있는 취재는 램지어 교수 당사자 인터뷰. 한국은 물론 미국 매체에도 램지어 교수가 자신의 속내를 말하지는 않았는데, 석 교수와는 직접 만나 장시간 인터뷰까지 진행. 석 교수에게 램지어 교수랑 대화만 주고받은 거냐고 물었는데, "뉴요커 기고문을 싣기 위해 취재를 하러 간다고 고지를 했고, 허락을 받아 녹음까지 했다"고 확인. 여기서 나오는 램지어 발언은 나중에 부인이 불가능한 '빼박' 진술이라는 의미. 석 교수가 말해준 내용 가운데 새롭게 알게 된 걸 3가지로 정리.
1. "I don't have any korean Contracts"…결국 매춘 계약서 없다고 시인한 램지어
- 석 교수는 램지어 교수가 태평양 전쟁 이전 일본 여성들의 매춘 계약서과 태평양 전쟁 중간에도 일부 일본 매춘 여성들의 계약서를 가지고 있었다고 설명. 하지만 하버드 역사학과 교수들을 비롯해 5인의 전 세계 각지에 있는 일본사 교수 등이 반박문을 통해 한국인 위안부 피해자들의 계약서는 실체가 없다고 폭로. 학자들은 램지어가 그걸 어디서 보고 쓴 건지 밝혀야한다고 요구. 자신도 인터뷰를 하면서 "한국인 여성들의 계약서를 어디서 본거냐?"고 물었는데, 놀랍게도 램지어는 "한국인 계약서는 없다"고 답변을 했다고. 뉴요커에 조금 더 디테일이 설명돼 있는데, 램지어 교수는 "계약서를 찾았으면 좋았겠지만, 그러지 못했다"며 "석 교수 당신도 찾지 못할 것"이라고 언급. 이 말은 이번 판을 뒤흔드는 엄청난 내용. 램지어는 매춘 계약서가 없다는 걸 알고도 이런 말도 안 되는 논문을 썼을 수 있기 때문.
석 교수는 계약서가 없다고 해서 존재가 없다는 걸 의미할 수는 없다고 전제. 구두 계약이나 계약서 자체가 전쟁으로 파괴됐을 수도 있기 때문. 하지만 램지어는 다른 2차, 3차 증거조차 제시하지 못했다고 설명해줬음. 역사학자들의 팩폭에 램지어가 링 위에서 의식을 잃고 KO된 걸 석 교수의 인터뷰로 확인한 순간.
2. 10살 계약 매춘부라면서 'Owner(주인)' 표현…"내가 실수했다"
- 위안부 피해자로 해외 군인들을 상대해야했던 10살 일본 소녀 오사키에 대해서는 지난번 포스트에서 램지어 교수가 어떻게 사례를 뒤틀었는지 자세히 설명. 논문 자체에도 결정적인 결함이 있었는데, 오사키의 포주를 Owner(주인)으로 표현돼 있는 걸 역사학자들이 지적한 바 있음.(대단한 빨간펜 선생님들) 자발적인 계약 매춘부라면서 주인이라는 표현 자체가 서로 충돌. 램지어 교수는 석 교수에게 이메일을 보내,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는지 모르지만, 실수를 했다고 인정.
- 석 교수도 역사학자들의 반박문이 인터넷에 공개되면서 램지어 교수가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고 분석. 반론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꼼꼼한 검증 보고서들이 나온 상황이었기 때문에 안 걸릴 줄 알고 슬쩍슬쩍 사안을 뒤틀어 마음대로 쓰던 램지어 교수는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음.
3. 지지 교수들도 등 돌려…철저하게 왕따 된 램지어
- 램지어 교수가 얼마나 초조하게 이번 사안에 대응했는지는 석 교수의 기사에 잘 녹아 있음. 미국에서 워낙 우군이 없으니 한국과 일본 극우 인사들의 편지까지 보여줬다고. 반일 종족주의 저자들도 지지했다고 말해줬다고. 석지영 교수는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를 소개하며 기자 폭행 사건까지 친절하게 미국인들에게 언급. 사실 이런 사람들의 지지 편지는 수만 통이 있어도 상황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걸 램지어 교수도 알겠지만, 외톨이가 아니라는 걸 이런 식으로라도 보여주고 싶었던 듯.
- 미국에서는 버클리 대학의 베리 역사학과 교수와 컬럼비아 대학의 웨인스타인 교수가 램지어 교수 논문에 지지 서한을 보냈지만, 이들도 학자들의 반박문이 나온 뒤에 석 교수가 직접 확인해보니 "오류를 시인해야한다"거나 "논문 철회가 적절하다"는 반응으로 완전히 바뀌어 있었음. 철저하게 왕따가 된 상태에서 이번 사태에 대해 외롭게 고민하고 있을 램지어 교수의 얼굴이 그려지는 듯.
● 학계 대사건이 된 램지어 연판장…"이런 논문 용납 않겠다는 결의"
- 재미 경제학자들이 주축이 돼 시작된 램지어 교수 논문을 반박하는 경제학자들의 연판장은 미국 학계의 대사건이 되고 있음. 사흘 만에 서명한 학자들이 2100명 돌파. 노벨상을 받은 하버드대 매스킨 교수를 비롯해 스탠퍼드대 로버츠 교수, 예일대 사무엘슨 교수 등 학계에서 존경받는 석학들이 굉장히 많이 직접 이름을 올려. 신구, 남녀 다양하게 섞여 있다는데, 경제학자들뿐만 아니라 다른 학문을 전공하는 교수들까지 모두 참여하는 상황.
- 이 연판장 작성과 서명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UCLA 정치학과 마이클 최 교수와 미시간대 법대 알버트 최 교수, 에모리대 경제학과 수 미알롱 교수를 한꺼번에 모시고 줌 인터뷰. 사실 다른 학자 분들도 많이 있었지만 해야 할 일을 했다며, 인터뷰까지는 안하겠다는 경우도 있었음. 그런 분들께도 모두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었음. 일대일 인터뷰를 넘어 이제 미국 학계의 실력 있는 한국계 교수님들을 동시에 세분이나 같이 모시고 인터뷰를 한 것 자체가 개인적으로도 큰 영광. (마이클 최 교수는 영어가 더 편하지만, 나머지 교수들은 한국말도 잘했음)
- 이 연판장은 그냥 온라인에 걸려만 있는 게 아님. 핵심 역할을 하시는 교수들이 모두 동료 교수님들과 학계 중진에게 전화로, 이메일로 연락하고 내용을 설명하고 설득해서 이름을 올린 것. 하지만 이렇게 빠른 시간 안에 이렇게 많은 학자들이 이름을 올린 것에 대해서 인터뷰한 교수들도 흥분을 감추지 못해. 알버트 최 교수도 자기도 미국에서 이렇게 많은 학자들이 이렇게 빨리 이름을 올린 걸 본 기억이 없다고 말하기도. 알버트 최 교수는 법경제를 전공해서 램지어 교수를 학술적인 자리에서 종종 봤었지만, 이렇게 말도 안 되는 논문을 써서 낼지는 몰랐다고 말하기도. 이 논문에는 법도 없고 경제도 없다며, 어떻게 이런 논문이 실릴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비판.
- 미알롱 교수는 연판장의 의미에 대해서 잘 설명. 이미 이렇게 많은 학자들이 이름을 올린 이상 일개 학술지가 논문을 철회하든 안 하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이런 상황에서 학술지가 논문 철회를 안 한다면 그건 그들이 후폭풍을 감당해야겠지만, 이런 연판장의 수많은 이름 자체가 학계에 이런 전쟁 범죄를 정당화하는데 학문을 이용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더 크다고 설명.
- 마이클 최 교수는 자신의 전공 분야인 게임 이론이 사용됐다는 것에 대해서 깊은 절망감을 표시. 10살 소녀조차 계약 매춘부라고 주장하는 램지어 교수를 막아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고. 마이클 최 교수의 마지막 당부는 인상적. 유대인들은 유대인 대학살에 대해서 정말 최선을 다해서 어린 세대들에게 교육했다고. 그래서 이를 부정하는 세력들이 발을 붙이지 못 하게했다고 지적. 우리도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해서 뭐가 역사적인 사실인지 철저히 교육해야한다고 지적하는 부분에서는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음. 우리 학계도 이번 미국에서 논의되는 램지어 사태를 다시 한 번 곱씹어 보면서 단순한 반일 감정을 넘어서 일제가 저지른 전쟁범죄에 대해서 어떻게 아이들을 교육할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







![May be an image of 3 people and text that says "SBS NEWS 8뉴스 [단독] 위안부 매춘 계약서 없다" 램지어, 오류 김수형 기자 sean@sbs.co.kr 작성 2021.02.26 20:49 수정 2021.02.26 22:11 조회 4,576 램지어 교수가 석지영 교수에게 공개한 교수 서한 SBS 반박문 공개후 반박문 공개전 마리 베리 버클리대 역사학과 "연구가 엄청나고 정확" "오류 시인해야" "독자들이 판단해야" 데이비드 웨인스타인 걸럼비아대 경제학과 1:45/ 1:45/2:12 2:12 "논문 철회가 적절""](https://scontent.fadl6-1.fna.fbcdn.net/v/t1.0-0/p526x296/153291874_4140643645954553_4334967985674136123_n.jpg?_nc_cat=111&ccb=1-3&_nc_sid=dbeb18&_nc_ohc=ogRG0ADEgycAX_Ia2ji&_nc_ht=scontent.fadl6-1.fna&tp=6&oh=ce42d37ed85c022e0ffaf442fea75cfc&oe=6068E5B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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