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20

한국 현대사와 국가폭력 연구ㅣ한홍구 교수 퇴임강연


한국 현대사와 국가폭력 연구ㅣ한홍구 교수 퇴임강연

한홍구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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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홍구 교수 퇴임강연
*일시: 2024.06.19(수) 오후 4:00-6:00
*장소: 성공회대학교 이천환기념관 1층 시청각실 6110호
*주관: 성공회대 민주자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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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 / 2:3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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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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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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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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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9:35
홍구 교수님 퇴임 강연
9:45
어에 자리 어 좀 잡아 주시면은 시작하겠습니다
10:13
예 한 교수님 태인 강연 아 저는 자료관에 있는
10:19
송입니다 [박수]
10:28
반갑습니다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국민의 의뢰와
10:35
선생님 자 소개를 드리고 그 축사로 총장님과 아 분들 축사 앞 오늘 축사
10:43
해주실 분들이 꽤 많 먼저 하시고 뒤 나중에 하시는
10:48
걸로 좀 나눴습니다 그다음에 한 4시
10:54
반까지 한구 선생님 퇴임 강연을 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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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부터 내빈 축사 그다음에 감사패와 꽃다발 증정 전체 같이 한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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찍는 아 준비가 돼 있습니다 그리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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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요니다 거기에 한국 선생님께서 오늘 준비해 놓으셨으면 그냥 가시지
11:20
마시고서 저녁하고 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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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해야 되는데 지금 저 국기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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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을 하고 아으로 와 열사와에 대한을 하고 시작을
11:43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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념 바로
12:01
오늘 선생님 양역 초기 선생님께서는 어 하기
12:10
하시기 전하신 다음에 한국에서 이제 강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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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습니다 그하고 2000년대부터 이제 성공회대학교 오시면서
12:25
교육 가르치시고
12:40
단체 활동을 강연하실 때 좀 재밌지 않을까
12:51
싶습니다 아까 가지고 저희 학생들을 강 해주셨고
13:00
그다음에 시민 사회 단체 어 그런 데서도 지금 다양한 활동을 해 주셨습니다
13:06
그리고 최근에는 국가 정보 과거 명 그다음에 원폭 2세 환우 추모
13:13
그다음에 아 민주 자료관 4년부터 현재까지 지금 하고 계 평화박물관
13:20
반어법 행위자 위원회 아 책임 편 지금 활동을 하고
13:28
계십니다 는 많은 업적을 남기셨습니다 지에 한
13:34
28 논문 그다음에 저서로는 공동 저서를 포함해서 약 아 42억원의
13:40
저서를 출간을 하셨습니다 최근 선생님께서 아 이거 말고 되게 많습니다 그랬는데 선생님께서 한 한
13:46
장 정 좋겠다 하셔 갖고 작물 바구니 사 사법부 이렇게 갖고 아
13:53
책은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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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를 하세요 지금 하고 계시는데 그 이전고 유튜브 강의가 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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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도 하시면서 한국 현대사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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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으로 어 총장님 축사를고 선생님들 오늘 축사를들은
14:26
다음에 한구 선생님 강의를들을 예정이 근데께서 지금 아 외부
14:36
출장이 동영상으로 좀 축사를 보내 주셨습니다 동영상으로 듣고 예 다음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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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선생님들 축사를 듣겠습니다 안녕하세요
14:49
경입니다 경 교수님 오늘
14:54
교수님의 해스럽습니다 록 통해서지만
15:00
교수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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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폭력관련 연구를 꾸준히 오신 열정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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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구을 교수님은 진보 대사를 바라 그 과정에서 역사 가치와 진실을 추구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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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를 수많은 학생들에게 역사에 대한 흥미와 사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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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어주셨습니다 교수님의 가르침을 통해 제자들은 인권 가치와 시대 의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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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고 사회 진출해 각자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고 있습니다 우리 대학이 추가하는 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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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를 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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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호 학교에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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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주시고시기 드립니다 합니다 예 장님 축사 감사드립니다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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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는 오늘 그 이재종 총 오늘 오셨습니다 이렇게 갖고 어떻게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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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선생님 성공에대 올 선발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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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이 예정이 없지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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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그다음에 다른를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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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
17:01
네 여러분 반갑습니다네 오늘 제가 한원구 선생님
17:11
윤 강연에 온 것은 정말 개인적으로 들고 성공회 대학교 또 성공회를
17:18
대신해서 정말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기 위해서 이자리
17:23
왔습니다 성공의 대학교란 이름으로 어고 개개 주 저 지금 영상을 같이
17:30
하고 있어 성공의대 시작한지가 꼭 금이 30년입니다
17:37
처음 시작할 때 목표는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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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 다른 대학과 다른 대학을 만들까 그것이 그 당시 저희들이 생각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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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꿈이었습니다 그럼 다른 대학과 어떻게 다를까 그런 점에서는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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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이 면에서 해석하시면 가장 작고 연륜도 짧은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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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대학교로 어 서울에서 시작을 하면서 저희들이 내걸었던 가장 중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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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은 젊은 [음악] 대학이었다 수가 있을까 하는 것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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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로는 우리가 어떤 대학 교육의 대안이 있을까라는 대안을 찾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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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으로서의 하나의 그 어이 새로운 길을 모색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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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 하나가 역시 어 학문에 있어서의 어 진보적 혹은 변화 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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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대안을 찾는 그런 대학의 길을 찾고자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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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었었다 우리 한반도의 가장 중요한 것이 평화와 통일의 과제였고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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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우리가 한반도에 평화를 이룩하는 그런 대학으로서의 기어를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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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어 대학을 시작하면서 어 가장 중요한 인문학적 분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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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고 보면 역사학 있데 불행하게도 성공회 대학교는 역사 학과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역사 학과가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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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역사학 교수가 오셔야 그래도 인문학적인 이런 어 뭐를 충족시킬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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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지 않겠느냐 해서 1998년에 어 모시려고 하다가 그 당시 그 IM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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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움 때문에 학교가 역시 그때 선생님을 모시지 못했고 아 아마 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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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대학교와 한원구 선생님의 운명적 만남을 만들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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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년도에 채용을 못 했는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1998년도에 어 꽤 유명한 분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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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망을 하셨는데 어 선임을 못 하고 어 1999년에 아 우리가 한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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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을 모시게 되고 한원구 선생님을 제가 성공의 대학교 2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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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장으로 제 이름으로 마지막 임명을 하고 저는 학교를
20:00
떠났습니다 아 그때 한우고 선생님을 모시면서 아 이제 비로서 어 성공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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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가 인문학을 중심으로 하는 대학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됐구나 하는 생각을 했고 제가 한 일 가운데
20:13
가장 잘한 일이 있다고 하면 그 가운데 하나가 한고 선생님을 저희 성공의 대학교에 모신 거라고 그렇게
20:20
자신있게 말씀을 드립니다 아 그런 점에서 저는 오늘
20:25
축하를 드리기보다 정말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성공의 대학교를 성공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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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있도록 만들어 주신 공로의 높이 치아의 말씀을 드립니다 한한 선생님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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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일을 하면서 가장 중요한 어 의제가 여러분 아시는 바와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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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였습니다 왜 우리나라에는 평화 박물관은 없고 전쟁 박물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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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을까 전쟁 박물관을 대체하는 평화 박물관이 반드시 있어야 되지 않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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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그 주장에 저는 아주 공감을 하고 지금도 어이 한 선생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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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하시는이 평화 박물관이 우리나라에 언젠가 정말 참 품미 있게 만들어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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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한반도의 평화도 완성되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해 봅니다 어 성공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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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가 한 선생님을 통해서 어 얻은 여러 가지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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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이이 가치라고 할까 하는 것 중에 아까 말씀드린 평화라는 개념이 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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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개념이라면 또 하나의 개념은 역시 국가 폭력에 의해서 희생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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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사람들의 인권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사실 성공의 대학교가 인권과 평화 평화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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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대학으로 한 것도 그런 의미가 있는 것이죠 어 가만히 보니까여 앞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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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춘 교수님도 와서 앉아 계시는데네 우리가 다 같이 하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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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동지 하 하나의 공동체 입장에서 어이 성공의 대학을 만들어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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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의 에 대해서이 시간 특히 감사를 드리고이 자리에 계시지 않지만
22:03
신영복 선생님이 1989년부터 어 강의를 시작하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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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강의란 책도 내시고 어 그 당시에 처음처럼이란 글씨도 쓰셨는데 지금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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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에게 남는 건 역시 처음처럼 산다는 것은 늘 새로운 처음을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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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것처럼 성공의 대학교가 앞으로도 우리 한 선생님이나 선생님이나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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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선생님들과 함께 늘 우리 역사의 처음을 만들어가는 그런 중심이 됐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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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겠다고 생각을 합니다 아 끝으로 우리 한선생님 계속해서 좀 강의도
22:40
하시고 더 열정적으로 역할을 하실 걸 기대하면서 오늘 축하의 말씀을
22:46
대신합니다 [박수]
22:51
고맙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다음은 언론 쪽에 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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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이십니다 어 한국 교육 방송사 사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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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임하셨고 현재 dmj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 집행 위원장님 신 장해랑 선생님을 모시고 아 축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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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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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25
교수 마이크가 지금 유튜브로 선수이 아닌데 그 두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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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은네 근데 전기시 전기시 전는 그 어떻게 고칠 수가 없다고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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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는네네 MBC 수
23:58
그런
24:15
방교 사는
24:21
말 말씀 되는데 사실은
24:28
을 때 받은 첫
24:33
저는 할일 얼마나 많은데 년하고 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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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 제가 나오지만 교수가 아니면 할 수 없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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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없 하지도 다 거라고 보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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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하는 것도 좋지만 안돼라는 거는데 제가 듣기로는 조금 더 이게 현장
25:04
남아 있는 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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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니다 아 그리고 이제 재기를 봐달라고 그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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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무슨 말씀을 드릴까 봤는데 정말고 있었더라고요 그래서 들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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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으면서 다가 교수가 신 무슨 말씀을 할
25:27
수드까 습니다 그동안 한 교수만이 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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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장에서 사 알 하고 기록하고
25:40
이들이요 스스로 당신이 역사가 되었다 어떻습니까 너무
25:46
가지입니까 박수 한번 주십시오 저는 이제 아까 뭐 유튜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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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지만 유튜브 할 때 제가 던 단어는 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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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를 들 그래 이제 그 저는 이제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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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이 자리가 저희 방송 영어 영상 중에는 골든 아 매직 아라 하는
26:14
단어가 있습니다 아침에 해가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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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해가 죽고 뒤에라고 태양광
26:26
좋은입니다가 될지 때 가장
26:34
아름다운가 부럽고요 가장 한습니다
26:40
그께서 그 자리에 와 있다고 생하고 있고요 아마
26:47
일이년 헌법 결 일도 마찬가지고요 아직
26:55
정말 상에서 를 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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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고 한교수 많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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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라고 하는 많은 역할을 하셔야 된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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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믿습니다 그러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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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에 매듭이지 다시 시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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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시고 런 출발하셔서 지금 우리가 앞으로 해야 될이 역사에 대한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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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대한 문제 금 통
27:44
문제들을 함께 하 좋겠습니다 합니다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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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다음은 학계 계신 아 학계 대표로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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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 역사연구의 회장이고 국방대 교수로 계신 노영구 선생님께서 축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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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주시겠습니다 예 안녕하십니까 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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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역사연구 회장으로 있는 노구라 갑니다 아마 오늘 평화를 말씀하셨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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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하게 평화 대신 전쟁을 연구하고 있는 학자입니다 어 그리고 제 며칠 전에 한구
28:24
선배님께서 저에게 야 연습 좀 해다 그래서 왜 제가 갑니까 그랬더니 네가
28:29
국가 풍기 피해 자잖아 그 그래서 어 실은 어 그럼 제 가야죠 그렇게 말씀을 드렸는데 실은 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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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역사학자는 항상 본인이 역사 되는 걸 되게 기분 좋게 생각하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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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습니다 근데 저는 마지막 하나가 빠졌다고 생각하는데요 역사학자는 자신의 뜻을 따를 학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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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키우는 것도 중요한 역사학자의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분들은 하의 어떤 성과를 를 주로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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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 뭐 평화에 대한 말씀 하십니다만 실제 지금 활동하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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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한국 현대 역사학자 현대사 사학자들은 한고 선생님의 어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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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어떤 업적들에 영향을 크게 받고 있는 것 사실입니다 어 그건 잘 알리지 않은 사실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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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에 돌에서 한국 현대사 어 사료 총사고 하는 14 권짜리
29:23
권입니다 제 15 권짜리 그 자료집을 발관 했고요 그리고 무협에 그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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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 운동사고 해 가지고 지금은 한권으로 됐습니다만 그 당시 세권으로 번역했던 아마 한국 그 역사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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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에서 가장 역주가 풍부한 번역으로 유명한 책이 그 당시에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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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그도 한 86년 7년 상관 기억합니다 어 그럼에 따라 많은 학자들이 실제 자료를 보면서 이제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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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회 연구에 본격 뛰어 뛰어들었던 그런 경험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도 어 그 당시 8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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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년도 후반부터 어 그 해방 공간에서 어 여러가지 연구를 했던 그런 기억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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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뭐 저는 현재는 뭐 조선시대부터 해가 현대까지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만 오늘날 저희 또래를 위시한 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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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들이 한 님께서 주신 어떤 자료 통해 가지고 많은 연구를 하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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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 우리가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 우리가 기억해 할 부분은 어 실천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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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학자라고 하는 걸 처음으로 님께서 많은 하셨습니다만 그당시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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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운동이라고 하는 것을 공격했던 학자 중에 한 분이십니다 그래서 노동 인장이나 아니면 사회 원장을 뛰어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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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포기하고 직장이 갈까이 고민하고 있던 많은 학자들이 대학원에서 공부를 할 수 있게 됐던 큰 어떤 결심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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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던 어 그것이 한원구 선생님께서 어 저희들에게 알려주셨던 그런 거 같습니다 혹시 여러분들 저기 얼마
30:48
전에 요즘에 그 농사도 월급 200만 원 있지 않습니까 그거 처음으로 제기한 사람이 누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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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십니까 사님께 하셨죠 한 님께서 제 기억으로 2년 초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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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기억 있습니다만 어 최금 줘야 되지 않겠냐 그래가지고 처음으로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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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 문제적 하셨는데 그것 잘못돼 가지고 지금은 이제 이상한 사람이 이상하게 200만 원 다 주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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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좀 줄이고 이제 많이 주자 했는데 안 줄이고 다주는 바람에 문제 생기고 있는 뭐 그것도 아마 한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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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돼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을 기억하실 때 어 그냥 한국 대사자 그다음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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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생각도 하실 필요 있습니다만 오늘날에 한국 현대 사학을 만들 때 중요한 어떤 자료 성과 그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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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적 업 그것들이 꼭 기억이 돼야 되겠다 어 그리고 그걸 통해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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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학자들이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는 걸 꼭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한 선생님께서 저희들 연구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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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혹시 뭐 물러 쓴다든지 아니면 그냥 학문에 빠져 있을 때 꼭 오셔 가지고 어 우리들이 꼭 가할 길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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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 주신다면 저희들은 그 거침없이 나가고 또 국가 폭력의 피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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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더라도 어 의연하게 대처할 그런 생각입니다네
32:06
마치겠습니다 예 감사 선생님께서 또 그 국가 폭력 관련돼서 또 인권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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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과 관련돼서 또 활동을 많이 하셨습니다 그고 다 축사는 전 국가인권 장을 하셨고 현재 진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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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로 계신 송소연 선생님께서 축사를 해 주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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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송소현 마이크를 이렇게 두 개씩이나 잡고 말씀을 드려야겠네요 오늘 그
32:37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이 굉장히 많습니다 좀 전에 이제 그 병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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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 이야기도 했지만 인공 관련해서 선생님이 하셨던 그 씨앗을 뿌렸던
32:48
일이 많지만 오늘은 저는 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어 한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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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모두가 다 아시다시피 어 이야기 꾼입니다 하나의 이름이 나오면 정말 또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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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또 나오게 되고 또 또 그래서이이 이게 지금 무슨 이야기가
33:06
또 번져 나올까 하다 보면 정말 플싸이 선생님의 이야기를 저희가 중간에서 안들을 수가 없게 되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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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심유한 방법을 가지셨지 그래서 어 정말 탁월한 이야기꾼이다
33:20
생각인데요 근데 사실 중요한 거는 어 우리의 우리 역사에서 정말 어
33:28
말 잘하는 또 이야기를 잘하는 역사가는 굉장히 많은 거 같습니다 근데 저는 중요한 것은 그게
33:36
누구의 이야기이고 또 누구를 향한 이야기인가 이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제 1990년
33:43
초반부터 민주화 실천 가족운동 협의라는 아마 그 민가협이라고 하죠
33:48
민가협이라는 단체에서 일하는 과정에서 한 선생님을 처음 뵀습니다 그때
33:54
유학에서 돌아온 굉장히 날렵하고 아 똘똘해 보이는 그런 모습이었음을
34:00
여러분은 기억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튼 그러셔서 이제 그때 장
34:05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하던 한구 선생님이셨고 실 그때 저는 굉장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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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랐어요 왜면 비 전 기수 선생님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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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지 않았다이 40년 감옥에 가데 말 냉전 시대의 금기 였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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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그때 그 선생님들의 설득해 어 이야기를 듣는다는 거는 정말 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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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였던 저 역시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건데 한구 선생님은 정말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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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엉덩이 힘으로 선생님들의 많은 이야기를 채로 하셨고 그건 또한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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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한 대단한 부분으로 되었던 거 같습니다 근데 지금처럼 제가 한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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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과 어 동지 만나게 된 계기는 정작 조작
34:53
문제였습니다 여러분 아 많이 아실 겁니다 근데 사실 부작
35:00
관처 선생님들은 우리 사회의 정말 불가촉 천민이었던 진짜가 아닌 가짜 조작 그리고 민주와
35:08
운동가가 아닌 어 간첩 이중의 배제 속에서 조작간첩 선생님은이 사회 어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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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어 받아들어 주지를 않았습니다 그때가 그 그런 시절이었죠 그때
35:21
선생님들과 함 제가 조작 관점 선생님들과 함께 민가에서 진신일 규명을 위해 나섰을 때
35:28
정말고 암담한 시절이었습니다 그때 만난
35:34
사람이가였습니다 어 제가 2014년 12월부터 시작한 국정원과 진실이 어
35:42
2004년 2004년 11월 시작한 정던 걸로 기억을 합니다 그때
35:50
정원가 만들어지고 거기 해결해야 될 의제들을 정기 시작했을 때 사실 조관
35:57
명은 중요한 의제가 되지 못했습니다 당연히 그러겠죠 왜면 국정원 안기부는
36:03
정말 너무나 많은 사건을었고 조작 제는 어떻게 보면 민
36:08
사회 내에서도 공유되지 않은 사람이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어 전혀 관심을 가지 않 같지 않았을 때 사실
36:15
우리에게는 한구라 사람이 있었고 한원구 선생님의 노력에 힘입어서 조작간첩 진실 규명이 아 중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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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제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제 그때 그때음 저녁마다 사실 쌤을
36:30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왜냐면 국정원에서 일하실 때음 자료를 뭐
36:36
복사하는 거 물론이고 어 사진도 찍지 못하고 아마 메모도 하지 못했
36:42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기록을 보고 어 기록만 볼 수밖에 없었던 상황인데 한 농구가 누굽니까 그 당시만해도 그의
36:50
기억력은 깨 알렸습니다 지금은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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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지셨어요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어 막 진실의 한 걸음 더 다가가는
37:02
이야기가 나오면 막 가슴이 띄기 시작했습니다 왜냐면 정말 도저히 할
37:08
수 없을 것 같은 조작 선생들의 진실 규명이 한 걸음 더 나서 다갈 수
37:13
있었구나라고 해서 갑자기 가슴이 뛰었고요
37:22
그리고음 불법 강군과 고문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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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한 그런 이야기를 들려 주실 때 하는곳 목소리는 굉장히
37:33
분노했고 한없이 울었지요 그래서 선생님과 제가 밤마다 선생님들
37:41
연구실이 해피도 저희 집에서 굉장히 가까운 곳에 있었어요 그래서 밤마다
37:47
선생님이 눈물로 하는 이야기를 정말 눈물로 함께 들으며 어떻게 이럴 수가
37:52
있는가 이것이 인간인가 하는 프리모레비 탄식이 연구실 밤을 매일 뒤덮었습니다
37:59
그래서 근데 그렇게 울면서도음 선생님은 암기한 거를 어
38:06
말씀하시기 위해서 저는 그 암기한 거를 어떻게든 선생님들의 진실 규명에
38:11
활용하기 위해서 밤마다 정말 특별한 관계도 아닌데 선생님 집 앞에서 제가
38:17
기다리기도 했고 또 선생님이 새벽까지 앉아 있는 사무실이 아침에 출근길에
38:22
제가 들려서 또 말씀을 듣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와 같은 시 의
38:27
기대서 우리 조작간첩 선생님들이 어 점 한두 분 한두 분씩 무죄를 받기
38:33
시작했죠 그래서 어 선생님은 그때 책이나 다 아시겠지만 책이나 또 언론
38:39
기고를 통해서 간첩은 이렇게 만들어진다고 글을 쓰시면서 그동안
38:45
사회에서 정말 돌아보지 않았던 조작 간처 피해자 선생님들의 목소리에
38:50
마이크를 대주고 공감대를 시키는 역할을 충분히 해습니다 그 말 너무나
38:56
감사 마음으로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어 선생님은 그때부터 시작한 건 아니죠
39:03
물론 이제 그 이전에 민간인 학살도 김동준 선생하고 같이 하셨지만 하여튼
39:08
어 하여튼 그때를 계기로 해서 선생님의 과거사 작업은 더 속도를
39:14
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아시겠지만 경찰 보안사 안기부 검찰 등 국가폭력 고무 실태조사 정면
39:22
조사를 하고 있고 또 반헌법 열정까지 지금까지 이어고 계시지요 어 역사의
39:28
희생자들 그러니까 인간의 법에서 쫓겨서 살해 당해도 살인죄가 적용되지
39:34
않고 또 신의 법에 따른 희생 제의도 받을 수 없었던 어 우리 역사의
39:39
호모사케르 어떻게 보면 역사의 어떤 현장으로 불러내고 그들에게 정말 자기의 이름을
39:46
갖게 해서 인간의 자리로 또 역사의 자리로 어 돌아오게 하려는 선생님의
39:52
그 열정 인내 끈기 정말 지금도 그 마음은 존경하고
39:59
감사합니다 한 오늘 이제 퇴임을 하시고요 그래서 더 많은 시간이
40:06
생겼으므로 그러니 연구에 더욱 매진해 달라라는 말씀을 드리는 편이지만 사실
40:14
제 마음은 다릅니다 저는 어 역사가 한 농구가 아닌 인간 사람 한
40:21
농구에게음 더 많은 시간이 갔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권 선생님 뒤에서
40:27
보고 계시는데요음 선생님의 어 뭐랄까 일상과 인생 그 모든 시간은 사실은
40:35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시간에 바쳐졌을 만나면 저는 이제 이렇게
40:42
말합니다 선생님 진짜 하고 싶은 뭔데지가 선생님이 정말 쓰고 싶은
40:47
이야기가 뭡니까 이런 질문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 어
40:53
선생님이음 인간 부에게 시간을 좀 내주셔서 아 어 사람의 자리에서 어
41:00
황원의 아름다움을 즐기실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저는 이제 그런 발람을 좀 가지고 있고요 그리하여서 좀 더 어
41:08
안목이 있고 그러니까 더 넓고 더 깊은 역사가의 시선으로 우리 역사의
41:15
희생자들을 주인공으로 되돌려 놓는 좀 고단하지만이 영광스러운 길에 선배님과
41:23
유원이 함께 도안으로 오랫도록 함께 하고 싶습니다 감사합
41:30
입니다 예 감사합니다 한원구 선생님께서 수업 시간에 학생들 수업
41:36
들으면서 울게 그렇게 하셨는데 수업 시간에만 그러신게 아니시네요 예 그러면은 선생님께서 아 오늘 기념
41:44
강연을 해 갖고 다음 어 선생님께서 기념 강연해 주시는 걸 듣고 그다음
41:49
프로그램을 진행하겠습니다
42:07
예겠습니다 요거는 어떻게 하면 되죠 수님 말씀시면 되 면요 요거를 채워
42:13
아 생게
42:36
포인트 쓰시면
42:44
[박수]
42:52
예 예 감사합니다음
42:57
이 저 그 뭐 여러분 말씀 그 대단히 감사하고 또 특히 그니까 여러분들 그
43:06
다 아시죠 이런 날 나오는 얘기는 다 100% 믿으면 안 된다는
43:12
거 아 미화와 그 과장과 뭐 그런 것들이
43:19
허용되는 날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이제 어 너무 미화를 많이 해 주셨고

 또 뜻밖에 그 절 뽑아 주셨던 이재정
43:26
총장님 사실은 제가 원망을 좀 많이 했습니다 계속 학교에 계셨어요 하는데
43:32
그 학교를 그 떠나시는 바람에 떠나시는 바람에 하여튼 우리 학교가 좀 더 이재중 총장님이 계셨으면 어
43:41
그냥 작은 대학이 아니라 좀 제법 그래도 규모도 있는 대학도 되고 또 여러가지 활동도 할 수 있었을 텐데
43:47
하는 아쉬움을 그 갖고 있었습니다 그데 뭐 전혀 그 기다리지 않았는데
43:53
이렇게 와 주셔서 좋은 말씀 들려 주셔서 대단히 감사하고 또 여러 그 선배님들 또 동료들 감사합니다 오늘
44:02
이제 그 이제 강연을 그 시작하는데 그냥 한국현대사라고 제목을 붙였다가 그냥 국가폭력을 붙였습니다 국가폭력을 붙인게 뭐 한국 현대사가 국가폭력의 정말 뭐 만물상 백화점이죠 다양한 국가폭력이 있었고 또 그 국가폭력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저도 다양한 입장 그 위치 가 있었어요 이제 그냥 역사에 관심 많은 그 사람으로 뭐
44:32
처음부터 연구자로 출발했지만 뭐 그냥 연구자도 끝나지 않고 뭐 활동가가 되고 또 그다음에
44:40
국정 과거사 위에서 그 이제 일을 하다 보니까 어 저도 그니까 뭐 이제
44:46
직접적인 피하고는 다르지만 그 조사하는 그 사람들도 맨날 뭐 들겨
44:52
맞고 고문당하고 뭐 그 제적당하고 뭐 이렇게 그런 얘기 듣다 보면은요
45:00
그 정말 그 매롱 상태가 됩니다 그래서 이제 그 저튼 뭐 저도 이제
45:07
좀 힘들었었던 부분도 있고 뭐 이제 그기다가 또 그 아시겠지만 또 제가 이제 늦게 다시 결혼을
45:14
하면서이 가족까지 됐습니다 하다하다 하다하다 이제 그 국가폭력 가족까지
45:21
돼서 다양한 입장을 경험했기 때문에 아마 뭐 제 연구 뭐 때까지 해온
45:27
것도 그렇고 앞으로 또 해 나갈 그 기회가 주어진다면 역시 계속 국가 폭력이 부분을 그 이어갈 것
45:35
같습니다 어 엊그제 그 저희 저 장모님께서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이제
45:43
이렇게 여기 보면은 그 일주일에 제가 일주일 사이에 그 일주일도 아니죠 한
45:49
나 사이에 두 번 걸음을 하게 하신 분들이 여기 많이 계셔서 어 뭐
45:54
대단히 죄송합니다 
근데 하여튼 그 저희 장인이
46:00
1969년에 남조선 해방 전력당 사건이라는 중앙정보부가 조작한 
사건으로 그리고 저도 지금까지 이해가 안 가는데 왜 저런 정도의 사건에서 
사형이 나왔는지가 저도 도대체 이해가 안 돼요 어 이해가 안 되는 사건인데
46:17
하여튼 그 그때 사용을 당하시고 서성 아홉에 사용을 당하시고 이제 다에
46:25
하셨으니까 56년 그 세월을 어 지내셨죠 저는 그
46:32
기억과 기록 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한다 이제 그런 걸 강조하면서 그
46:37
살아온 사람인데 어 저희 장모님을 보면은 아 피해자 개개인에게 있어서는
46:44
꼭 그게 정답이 아닐 수 있겠다 하는 것들을 많이 느꼈어요 저희 장모님은
46:51
그 치매가 오셨는데 치매가 오셨는데 그 어떤 기억이 지어졌나 하면은
46:57
그 남편이 사용 당한 기억이 거의 지어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저희 장인
47:02
영감님은 미국에 유학 가서 아직도 들어오지 않고 계신 거야 당신이 아프신데 빨리
47:08
와야지 뭐 이제 그 이제 그렇습니다 그래서 하여튼 저희가 이제 마지막에
47:14
그 모시면서 뭐 한 2년 반 이상 3년 가까이 이제 저희 집에서
47:20
모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그 모시는 동안에 뭐 저도 여러가지 생각 그
47:26
해보게 되 그 하여튼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
47:31
하여튼 다행히 이제 오늘 날짜를 잡아놓고 이제 장모님 오늘 내일 오늘 내일 하실 때 저희 집사님이 굉장히
47:37
걱정을 많이 했어요 이렇게많은 선 그 선생님들한테 알렸는데 뭐 이게 그
47:44
갑자기 일 당하게 되면 행사를 할 수도 없고 안 할 수도 없고 이게 어떡하나 어떡하나 했는데 딱 마침
47:51
어저께 발인을 했습니다 그리고 내일 무자서 오늘은 뭐 그냥 집 서실 수
47:57
있는 그 날인데 마침 이렇게 행사할 수도 있게 돼서 마지막까지 그 일정을 이제 배제해 주신게 아닌가 어 생각을
48:06
합니다 이제 제 그 돌 사진이에요
48:13
어 그 옆에 앉은 분은 저희 그 셋째 형님도 오늘 그 와 주셨네요 그래서
48:19
이제 그 하여튼 어 저희가 사남 일려 있고 뭐 아시는 분 아시겠지만 그
48:25
아버지께서는 일조각이라는 출판사 하셨습니다 적학 한국학 관련서적 제가
48:31
한국사를 공부했는데 어지 한국사 관련 서적이 제일 많이 나온다가 조각이에요
48:38
그래서 제가 어 딴 거 몰라도 저희 집 이제 아버지께서 큰 부자는 아니셨지만 뭐 문화적인 면에서 본다면
48:47
거 금수저 이상 뭐 다이몬드 수적이라고 역사가가 되기에는 그런 혜택을 그
48:55
받고 자랐습니다 뒤에 있는 책들이 그니까 뭐냐면 제가 어렸을 때 그냥 집에서 다 심심하면 꺼에 보고 뭐
49:03
많이는 못 봐도 앞에 표지 알고 서문 알고 뭐 그 결론 뭐 서론 결론 정도
49:10
그 뭐 이제 본 책들이 그 상당히 많은데 어게 그 대학교에가 보니까 그
49:17
선생님들 그 전공과목 들어갔을 때 한국사
49:22
사경인 분이었나 뭐 이제 그런 과목에서 그 제일 그 중요하게 가르치는게 어떤 연 일종에 이제
49:29
연구사들이는 건데 그거는 어렸을 때부터 이제 다 하고 있었고 저희가
49:35
그 제가 굉장히 사치를 할 수 있었던게 저하고 둘째 형이 사치를
했습니다 문과 쪽에서 뭘 했냐 면은 교보에 가서 보고 싶은 책을 그냥
49:46
들고 나오면 됐습니다 이거 이거 하고 그래서 그 언젠가 아버지 그 이제 그
49:54
회사 직원이 아버지께 탄식을 했다 교보에 갔는데
50:00
수금해 두 아들이 와서 어찌나 먹었는지서 아버지께서 이제 탄식을
50:07
하셨더니 아버지 친구분들께서 술집에서 그 자식이 술 먹고 이거 날라오는 거보다 100번
50:13
낫지 않느냐 이제 해주셨는데 하여튼 어 그런 그을 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50:21
아까 박사께서 이제 뭐 자료를 많이 모았다 하는데 건 뭐냐면은 제 또
50:28
친구들 뭐 다 그때는 그 저 과외 금지가 되기 전이라서 뭐 과외 금지
50:34
전에는 대학생들이 돈이 좀 넉넉했습니다 그 돈 갖고 일조각 책을 살 때 어 저는 일조각 책은 다 집에
50:41
있고 웬만한 책은 다 책방 가서 그냥 들고 오면 되고 그러다 보니까 헌책방을 많이 다녔습니다 그래서 그
50:49
자료들을 이제 많이 모으게 됐고 또 이제의 안목도 좀 생기게 됐고요
50:54
저거는 제가 아마 국민학교 3학년 때 사진인 거 같은데 제 기억
51:01
제가 뭐가 될래 했을 때 역사학자가 되다 그때였던 거 같아요 그래서 그 제가
51:10
이제 뭐 힘든 일도 많았지만 그도 그 이제 힘들 때 아 이거 내가 힘들다고
51:17
생각하면 안 돼 이제 그렇게 하는게 뭐냐면은 열살 때 하고 싶은 거 그거
51:22
해 갖고 정년퇴임하는 사람 대한민국에 미치 되겠습니까 그 점에서 이제 저는
51:28
그니까 좀 뭐 축복을 받았다면 축복을
51:33
받았다고 할 수 있겠죠 어 임창순 선생님이십니다
51:39
우나가 최고의 한자시 근데 그 임창선 선생님이이 책을 임 선생님의 제자들이 썼는데 그
51:48
책 편집을 이렇게 보니까 제자가 된 순서대로 썼어요 근데 제가 여기
51:53
굉장히 앞에 들어 있어요 사실 보다 한 10여년 뭐 20년 선배들 보다도
51:59
제가 이름이 앞에 나와 있는데 왜 그러냐 면은 제가 어렸을
52:04
때 그 그 혜택을 받은게 그니까 한문 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더니 아버지께서
52:11
듣고 가셨어요 그 이제 갔다가 이제 뭐 몇 마디 물어보시더니 아직 그게
52:16
중학생 때였어요 중학생 때 이제 갔더니 저 그 그니까 너무 못 하니까
52:24
그니까 아마 그 제자분 서울대 국사학과대 학원에 다니던 제자분의 붙여 주셔서 저는 영수 학원도 물론
52:31
이제 다녔지만 뭐 그때 그 한문 그 사업과 하겠다고 한문 그 배우러
52:38
다녔었고 이제 고등학교가 고등학생에 대해서는 태동에 직접 갔습니다 그땐
52:43
태동이 지금 저 마석으로 가기 전에 어 인사동에 있을 때인데요 그
52:49
인사동에 있을 때 이제 거기 가서 그 한문을 그 배웠는데 이제 그때
52:54
선생님께 한 6개월 지금 고일 1학기 때 배우면서 하문 실력이 일치 월장
53:00
하고 또 수업 시간에 선생님께서 물어보시면 이제 뭐 거기 대학생이나 성인 있으면 이제 고등학생이 혼자
53:07
대답하고 그래서 이제 좀 우쭈쭈 우쭈우쭈 했죠 근데 이제 선생님께서
53:12
그 어느 날 나무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아 칭찬해 주려고 그러시나 보다 했더니 그만
53:19
하산하거라데 그나 하산하거라 이제 뭐 더 이상 가르칠게 없다 너 실력이 됐으니까 하산하거라 했으면은 뭐 그게
53:27
아니고 야 이놈아 네가 저 고등학생이 지금 한문만 배우겠다고 왔다 갔다
53:33
하면 어떻게 되 하느냐 어 저 대학 입시 준비를 해야지고 그렇게 하면서
53:39
쫓아내신 거예요 그래서 이제 쫓겨났는데 저는 국자 원인 마음에 생각할 때 아버지께서 말씀하신게
53:45
아닌가 아버지께서 여태까지 후원해 주셨는데 그 이제 그러면은 뭐 이건
53:50
뭐 방법이 없나 보다 하고 이제 푹 이제 하고 쫓겨 놨죠 그때 그때 정말
53:56
몇 달만 더 배웠으면 물리가 트이는 거 했을 텐데 제 한번 실력이 그때 그 실력으로 그냥 멈췄습니다 그 뭐
54:04
선생님 생각에는 대학에 들어간 다음에 어 찾아오기를 그
54:09
기다리셨지요 대학 들어갔더니 뭐 별로 특별히 한 건 없지만 뭐 이것저것
54:15
재밌는게 많고 뭐 하다가 아 저 몇 달 후회 가야지 가야지 가야지 하다가 뭐 군대 끌려가고 뭐 어떻게 하고
54:21
하다가 그 선생님께 못 갔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제가 사
54:27
르요 아마 저희 형이 의대 전공을 진로를 바꿔서 의대로 갔나보다 뭐
54:34
그렇게 말씀하셨던 얘기를 제가 딴데서 전해들었는데 이제 그 죄송하게 생각했죠 근데 나중에 그 한참 세지
54:42
지난 다음에 아버지께 여쭤봤어요 그랬더니 아버지께서 아니다 나는 그
54:48
선생님께 그 말씀드린적이 없다 아버지께서 말씀하신게 아니고 선생님께서 그래도 좀 드나는 중 도
54:57
좀 계속 공부하길 바라는데 대학에 와서 제대로 배워라 이제 하는 생각이었는데 그걸 배 하지 못해서
55:05
뭐 그렇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제 국사 학과에
55:11
[웃음] 그 국사 학과에 들어갔고요 그때는
55:19
국사학과를 갈까 아니면은 이제 현대사를 할 생각을 점점점점 현대로 오게 되니까이
55:28
국사 학과에는 이제 선생님도 없고 논문도 없고 뭐 이제 그런 거
55:34
생각하니까 예 정치 학과로 갈까 사회 학과로 갈까 그쪽이 오히려 낫지
55:39
않을까 했는데 하여튼 그 그거보다는 그래도 저 사업과 가는게
55:48
그래도 더 낫지 않을까 해서 이제 사업가를 진학을 했습니다 사과 진학을 해서 문다 편집실 이단들 들어가서
55:55
지양 그니까 그전에 물리대 있는 형성이란게 있었는데 어 형성 그
56:01
종합화 되면서 이제 단과대학별로 나눠지면서 인문대가 지향 편집실이는데
56:07
어 오늘 준비하면서 이제 옛날 그 잡지 찾아 갖고 후기를 읽어 보니까
56:13
5년 동안에 어 이제 편집실은 한 해 한 열 명쯤 되거든요 근데 5년
56:18
동안에 졸업생이 세 명밖에 없더라고요 뭐 다 제적당하고 군대
56:24
약하고 뭐 어떻게 되고 해서 제 5년 부었는데 원고를 제가 마침 80년도에
56:30
편집장을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서울의 봄 때 그래서 서울의 몸 때 뭐 제가
56:35
편집했다 그보다는 선배들에게 해 놓은 거 묵구 원 거를 갖고 책을 냈어요 책을 냈고 또 지앙시 평이라고 한
56:42
거는 이제 저희가 그래도 대학 대학 신문이 또 따로 있지만 대학 신문은
56:47
학교에 뭐 저 체제 그 통제를 받기 때문에 뭐 진보적인 역할을 못 하니까
56:55
그 학내 언론으로 로 활성화하려면 우리가 직접 하자 그리고 이거는 뭐 월 간이나 격월간 정도로 내자 해서
57:02
프린트 본으로 이렇게 해서 내서 요걸 두 편을 내고 이제 치이 터
57:07
터졌습니다 그리고 어 그 지금 이제 그 이제 김명인 선배 저보다 대학교
57:13
1년 선배인데 어 이제 이분이 이제 편집장을 하고 있다가 하여튼 무림 사건이란게 어 터지게 되죠 되죠
57:21
그다음에 이제 또 하나는 이제 제가 국사가 위에 서울대 이념 서클로 그
57:27
사회복지회 사복이 부르는 집이 있었습니다 근데 이거는 이제 제가 퇴임하는 마당이니 이제는 말할 수
57:35
있다니다 왜냐면은 사복이 80년대에 들어와서 무이 커졌는데 75년도에이
57:42
사복을 만들다시피 한 뭐 그 이제 초창기 민보 있던 조의원 선생이 대형
57:47
사고를 치는 바람에 거기에 이제 울분을 참지 못한 후배들이 줄줄히 제적이 됐습니다 그래서 이제 그
57:55
들어갔더니 이제 완전히 제가 일종에 뭐 얘기하자면 길지만 인신매매 조직에
58:01
팔려서 늦게 학회를 좀 소개시켜 달라고 해서 저는 역사철학 원들 거기
58:08
들어가고 싶어서 어 이제 그래서 그쪽을 좀 소개해 달라 했더니 역사
58:13
철회에서 저를 팔아넘긴 거예요 그 아까 그 김명인 형하고 그쪽에 그래서
58:20
이제 그서 와보니까 어 조 선생 이영 선생은 옥가 있고 동 선생님
58:27
계십니다만 정말 훨씬 미남이 드신 겁니다
58:32
지금은 무 선배님이 탁 무게 잡고 있고 뭐 이제 그랬어요 그런데 이렇게
58:39
이렇게 나중에 어떻게 하다가 보니까 그 우리 적성이 많지도 않은데 뭐 그
58:45
사람들이 다 어떻게 성공에 대해 자리를 잡게 됐습니다 자리 잡게 그 1년
58:51
3식으로 이렇게 해서 그 잘 잡게 됐는데 뭐 그래도 다 그 자기 목숨
58:58
그래도 하지 않았나 싶어 갖고 예 이제 어 성공인데 비사라는
59:05
비사 그리고 이제 그 무림 사건이 터지면서 그 김명인 선배가 쓴
59:10
유인물이 터지면서 이것도 뭐 얘기하자면 길지만 이게 이제 무림 사건이 됐고 하여튼 어 저는 그
59:18
다행히 빨리 안 잡혔어요 빨리 안 잡혔다는 건 뭐냐면은 먼저 잡히는 사람이 뚫게
59:24
맞습니다 사건이 끝난 다음에 들어가면은 거의 안 맞아요 꿀 꿀 반병도 맞지 그리고
59:32
이제 들어가서 그까 아까 그 뭐 기억력 얘기를 했는데 정말 웃긴 거는
59:38
그니까 거기 가서 이제 그 얘기를 하는데 우리가 모일 때 이상한데 모여요 그러니까 학교 앞에서 안
59:45
모이고 뭐 어디서 몇 번 버스를 타고 어느 방향으로 가서 거기서 뒤로 이제 돌아와서 150m 오면 무슨 중국집이
59:53
있다 그리고 거기 한 번 쓰고 안 가요 근데 정말 그이 사람이 기억력이는게
1:00:00
놀라운게 그거 한 2년 전에 그렇게 갔던게 중국집 이름이 상관이나요 그
1:00:06
간판이 떠올라요 그래서 이제 그 가면 설유가 다 오호 불상 뭐 이제
1:00:13
중국집에서 이제 그렇게 돼 있는데 아 거기 이름이 뭐예요 하면은 그러면은 무지 화을
1:00:20
내요 야 자식아 네가 지금 늦게 들어서 이걸 지금 얘기하면 어떡해 그러면은 모든 사람의 한 20명 되는
1:00:27
사람의 소리를 다다 고쳐야는데 이거 오불 그냥가 생각난다고 그래 이제
1:00:34
그러 가면서 조사를 받다가 이제 군대에 끌려갔습니다 그래서 그 강제
1:00:41
징집이 됐죠 강제 징집이 돼서 그 지금 그근데 이제 그 저 강제징집
1:00:48
녹화사업 제가 오늘 뭐 여기 몇 분 오셨습니다 그이 체력 작업을 지금
1:00:54
하고 있습니다 저도화 업을 받았고 녹화사업에 뭐 아시는 바와 같이 아홉
1:00:59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러니까이 보안사에 머리는 나쁘고 욕심이 많은
1:01:06
놈들이 사고를 치는 거예요 사고를 쳤고 그다음에 저는 녹화사업 피해자들
1:01:11
중에서 또 정말 조상님 덕으로 저희 아버지께서 늘 그러셨어요 뭐 좋은 일
1:01:17
있으면은 조상님 덕이다 근데 진짜 그 조상님을 본 거 같아요 녹화 사업할
1:01:23
때도 한 대도 안 맞았습니다 서도 이제 여러 명인데 그래서 저보고 이제 손해 배상에
1:01:29
동참하라고 하는데 동참하기 좀 민망한 거예요 꼴마도 터졌어야 그 할 텐데
1:01:37
정말 한 녹화사업에 한 대도 안 맞고 그 오히려 보안대 도서실에서 부대보다
1:01:43
훨씬 편하게 있다가 그 나왔기 때문에 그래서 이제 그 그렇긴 한데 그러나
1:01:49
그니까 동시대인으로 이제 그 녹화 사업을 용서할 수 있는가 뭐 이제 그런 거를 그 옛날에 썼고 또 지금도
1:01:56
국가폭력의 일원으로 연구 하고 있습니다 대학 복학한 다음에 제일
1:02:02
먼저 만든 책은 사실은 진보당이 저 이제 뭐 어떤 분이 어디다가 칼럼을 쓰셨기 때문에 어
1:02:10
저 근데 이제 그때 대학생이었던 어 대학생이었고 그다음에
1:02:17
이제 그 제 친구가 학교 잘리고 그 판세에 취직해 있는데 원고 뭐 책
1:02:22
만들게 없다고 뭐 해서 집에 왔을 때 보여 랬더니 이제 가서 또 사장한테 얘기했더니 당장 내야 한다고 근데
1:02:30
저는 자료만 수집했지만 나가려면 뭐 간단하게 그
1:02:39
해제라고 써야 할 텐데 그때는 해제 쓸 능력도 안 됐고 그렇게 되니까 그거를 내 이름으로 내기도 민망하고
1:02:46
그래서 이제 물어봤죠 그 진보당 옛날에 했던 분들 중에서 했던 분들
1:02:53
중에서 그 지금 입장이 변하지 않고 그때가 이제
1:02:58
80년 되니까 한 27 8년 됐죠 사건 나오고 그래도 그 입장을 그
1:03:04
견제하고 계신 분이 누가 있습니까 하고 몇 분한테 물어봤더니 다 관대 선생을 얘기해서 관대 선생을 어떻게
1:03:11
수소문을 해서 연락을 해 갖고 그 선생님 이름으로 책을 대했더니 굉장히 좋아하셨죠 좋아하시고이 책 갖고
1:03:18
나중에 무슨 그지 그 혁신 정당 만들어졌을 때 당수도 하시고 뭐
1:03:24
하실만한 분이죠 하실만한 분이 그렇습니다이 책이 하여튼 어 제가
1:03:30
처음 만든 그 책이고요 그다음에 이제 대학원에 갔을 때 우리 김철준 선생님 저 아버지
1:03:38
친구세요 평안도 분이신데 이제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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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신상 있습니다 했더니 지금도 생생해요 몸을 이렇게 앞으로 굽히면서
1:03:50
저를 이렇게 한참 들다 보시다가 어떡하려고 그러냐 친다 그러니까 이제 미개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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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를 공부하겠다고 하면은 어 그 분야 그거 연구가 안 됐으니까 열심히 해 봐라 뭐 보통
1:04:05
공부하는 그 학문 세계에서는 늘 그게 정석 아닙니까 그근데 이제 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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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는 그러지 않았어요 그래서 현대에서 공부하지마 다쳐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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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을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뭐 하여튼 굴곡은 있었지만 저도 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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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치지 않고도 정년을 맡게 됐습니다 여기 이정식
1:04:27
선생님 저 사진을 이정식 선생님이 찾아 주셨어요 아마 선생님 대게 갔을
1:04:33
때였던 거 같은데 그래서 이제 저도 보고서 깜짝 놀랐는데 저 뒤에 위 그 애가 있습니다만
1:04:41
어 개가이 정책 선생이 하고 찍었었나 할 정도 저도 이제 좀 깜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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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랐습니다 그래서 이제이 책을 열심히 번역을 했는데 열심히 번역한 건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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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국사 학과가 서울 대학에서 영어를 제일 못하는 과가 영어 못하는 과가 세 개 아네
1:05:00
개 있거든요 어 국사학과 국문학과 국어 교육과
1:05:06
국학과 그 내과가 모여서 국수주의 체육이라 것도 하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하여튼 그 영어
1:05:13
못하는 데다 이제 해서 아니다 우리도 조금 그래도 웬만큼은 한다 이제 한는
1:05:19
거 하고 그 당시에
1:05:24
번역서이동 굉장히 날림이 많았습니다 뭐 날림이 많았던 건 또 그 사정이이 원고료가 워낙 싸고
1:05:30
그렇습니까 근데 저는 뭐 번역료 걱정 안 해도 되는 처지였기 때문에 한번 제대로 번역해 보자 그리고이 분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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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전공을 하고 싶었었어요 이제 그게 있었고 그다음에 또 하나는 이제 이정식 선생님이나 이제 이런 분이 뭐
1:05:44
번역한다고 하니까 기특하게 여기셔서 여기저기 당위를 놔주셔서 그 국내에서 자료를 다 볼 수 있었습니다 굉장한
1:05:51
특해 아 그 아시아문화 아대 세문제 연구소 같은데 북한
1:05:56
원전이 있는데 그 당시에 그 대학원생 중에서 북한 원전에 근접할 수 있는
1:06:02
사람은 거의 없었을 때입니다 근데 이제 저는 그 특혜를 받아서 더군다나 진보 입장에서는 아마 뭐 전 거의
1:06:09
유일하지 않았을까 이제 싶어서 싶은데요 그래서 이제 자료를 보게 되면서 들었던 생각은 뭐냐면은 현대사
1:06:17
연구를 한국에서 할 수 있다 그전에는 그 사람들 얘기 한국은 자료가 없어서
1:06:22
못한다 뭐 미국 가야 한다 일본 가야 한다 이제 그런데 아니다 한국에서 할 수 있다 그래서 이정식 선생님이 쓴
1:06:29
그 자료에 지금 어 기억이 정확하게 안 납니다만 다 찾았어요 다 찾
1:06:35
찾아서 그리고 이제 그 그때 욕심을 낸 거는 그레이라고 번역해 그 영어로
1:06:42
써 놨어도 이게 쥐 새끼인지 어 그냥 쥐인지 서생원 있지
1:06:48
생주 같은 놈인지 어음이 다르잖아요 그래서 그걸 좀 살리려면 원자에 찾아서 해야 한다 그래서 이제 그런
1:06:54
욕심을 고 이제 좀 덤벼들어서 아마 책 그 몇게
1:07:01
빼놓고는 다 찾아서 아 이거 국내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거다 이제 그런
1:07:07
생각을 했었고요 그다음에 이게 이제 아까 노용구 박사가 말한 그 문제에
1:07:13
한국 현대사 자주 청서 이서니다 김남식 선생님 이정식 선생님 그리고
1:07:18
이제 제가 다원 시절에 그 했는데 그 그 신은 이제 그 이정식 선생님은
1:07:25
작업을 안 하셨는데 저희가 매 이정식 선생님을 하면 너 이런 자료 어디서 왔어 하면 어
1:07:32
미국에서 이정식 선생님이 보내 주셨어요 어 그니까 자기의 출차 같은 거를 이정식 선생님으로 하면은 이제
1:07:39
문제가 없으니까 이정식 선생님도 또 좋아하셨죠 그래서 김남식 선생님
1:07:45
좋아하시고 또 제가 번역 열심히 했다고 그 저 칭찬해 주시고 하셨고 당신 입장에서는 작업 안 하고 이제
1:07:52
이런 그 책에 같이 동참을 신겨 되니까 좋아하셔서 기껏 이제 자료집을
1:07:57
냈습니다이 자료집을 냈을 때 느낌이 뭐냐면은가 고대사는 사료가 이제
1:08:05
우리가 얘기할 때 발목에서 전기까지 온다 고려 시대는 싸면 다 싸면
1:08:12
허리까지 온다 조선 전기는 키를 넘어간다 조선 근데 후기가 되면
1:08:18
후기가 되면은 방하다 현대사는 하다 뭐 이제 그런 식으로 그농 했
1:08:26
그 현대사는 어떻냐면 왜 바다에 빠져서 목말라 죽는 거
1:08:33
있죠 그 자료 실제 양으로 치면 망망대는데 우리가 접근할 수 있는게
1:08:38
없었습니다 왜냐면 책 빌려줬다가 책 빌려줬다가 감옥 가는
1:08:43
사람들이 실제로 있었거든요 우리 정창열 선생님이나 그런 분들 그 책 빌려준 것 때문에 감옥 가고 이제
1:08:49
그런 식이니까 뭐 책을 빌려 달라고 하기도 그렇고 빌려 보기도 그렇고 어
1:08:54
그 그리고 그때 어디에 무슨 재료가 있는지 확인해서 어떻게 빼낼 공개하는게 뭐 그게 일이었어요 이제
1:09:03
그런게 하다가 이제 그래서 그리고 이제 자료가 없어서 공부 못한다는 거 좀 그 깨보자 그다음에 어 자료 접근
1:09:12
안 되는 거 이게 정말 지긋지긋하고도 했고요 그래서 어 책을 냈습니다 그래서 그니까 우리 저 노용구 박사나
1:09:20
현대사 마음 두고 있었던 선후배들 한테는 굉장히 이제 격려를 받았는데
1:09:25
어 서울대 국사학과 선생님들한테 야단 맞았습니다이 바보 같은 놈아 이걸
1:09:31
네가 쥐고서 평생 혼자서 논물을
1:09:36
써야지 한국 공산주 운동사 번역에서는 칭찬을 받았고 이거서는 야 그
1:09:43
학교에서는 야 맞았습니다 그고 이제 그때 했었던게 마원 한국사
1:09:49
연구실이라고 솔직히 이제 저희 세대가 은님 게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1:09:57
현대사 분야에서 전공 분야에서는 선생님이 없었습니다 근데 조선시대는
1:10:03
나 고려시대를 연구하는 거고 사료의 양도 다르고 사회 분위기도 다르기
1:10:10
때문에 완전히 새로운 방법론 다른 방법론을 갖고 해야 하는데 다 조선실
1:10:15
고문서 그 보듯 한 뭐 그런 그걸
1:10:20
갖고 이제 그 주문을 하시고 또 더군다나 그이 연구 그 현대사 연구가
1:10:27
없고 지금 어 사실 많은 사람들이 거의 안 믿지만 제가
1:10:32
88년에 그 화북 조선 독립 동맹을 갖고 논문을 썼거든요 그런데이 이건
1:10:39
이건 사실입니다 그니까 믿기 어렵지만 사실인게 88년도에 썼는데 서울대
1:10:46
국사 학과에서 나온 독립운동사 연구로 두 번째 논문이 8년인데 첫 번째
1:10:52
논문은 누 언제일까요 저보다 20년 전에 이게 까라는 일본인 연구자가
1:10:58
3일 운동을 갖고 쓰고 갔습니다 그만큼 현재에서 공부하면 다친다 하는
1:11:05
분위기가 그래도 연고대는 덜했는데 그 서울대는 좀 어 지배적인 부분이
1:11:11
있었어요 그거는 기장이라는 또 엄청난 살려 보고가 있었기 때문에이 좋은
1:11:19
연구자들이 조선후 후기나 그 한말 정도에 이제 그 집중되는 이제 그 도
1:11:25
있었지만 어쨌든 그렇습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저희 또래들 그러니까
1:11:31
선생님께 배운다기보다는 어 또래들 다 모르는 사람들이 이제 서로 머리
1:11:38
맞대고 이제 공부하는 분위기 그래서 망원 한국사 연구 실이라는게 일제시대
1:11:43
공부하는 사람들이 뭐 만들기 시작을 했고 이런게 이제 보이면서 민중 사이라는게 듭니다 근데 이제 하여튼
1:11:51
뭐 어찌어찌 그런 얘기를 다 하다가 또 너무 길어지는데 하여튼 이 연구실 안에서도 우리 그 연구자들 어느
1:11:58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냐 그다음에 그때는 또 너무 이상하게 제도권과 비
1:12:03
제도권을 갈라요 그 연구자들이게 결국 연구하면 대학이라는 그 시스템 속에서
1:12:09
살아남아야 하는데 대학에 남으면 안 된다 하는 분위기에 또 이제 그 또 마치 노동 현장으로 근데 사실 역사
1:12:16
연구자가 노동 현장에 가서 뭐 할 일이 그렇게 있겠습니까 론 이론가가 되는 것도 아니고 역사에 뭐 큰
1:12:22
흐름을 정리하는 것도 뭐 그 그 이렇게 전문적인 역사 연구 그대
1:12:29
학문으로서 역사 연구자들이 또 할 수 있는 영역 하고는 좀 다르다고 생각을 하는데 하여튼 뭐 그런 그 그 당시에
1:12:37
20대 후반 또는 30대 초반이면 이제 나이가 좀 많은 편이었고대 후반
1:12:43
그 젊은이들이 이제 그런 그 모색을 하면서 여러 가지 이제 그 하여튼 뭐
1:12:49
내에서 갈등도 있고 충돌도 있고 뭐 얘기를 하자면 깁니다만 그렇게 하다가 이제 저도 뭐사 그 대형 사고를 뭐
1:12:57
쳤다면 쳤고 뭐 하여튼 그리고 튕겨져 나와 갖고 그까 연구 단체를 나와서
1:13:04
그니까이 민청련에 좀 뒤늦게 가입을 했죠 뭐 민청 외곽에는 그전부터 있었지만
1:13:12
민청련의 이제 그 뒤늦게 가입을 해서 이제 활동을 했습니다 그때 이제 그
1:13:17
제 인신 매매법 중에 하나였던 유기홍 의원 요번에 이제 국회 떨어졌습니다
1:13:23
삼선 의원으로 활동하 유기 선배 그다음에 올해 30주기를 만는 어 이범영 선배 뭐 30주기 맞아서 제가
1:13:32
이제 그 글 하나 썼고 그 그다음에 이승환 선배는 오늘 그 30주기 책
1:13:37
편집하고 못 온다고 조금 전에 연락을 받았고 그다음에 소설과 김영현 이런
1:13:43
분들이 한 팀으로 어떻게 같이 있었어요 같이 있어서 이제 좋은 선배들하고 같이 있었고 기영은
1:13:50
국사학과 선배 영영은 저 그니까 편집 시 선배 뭐
1:13:56
이제 같은 선배들하고 같이 활동을 하면서 8 7년 유월 행장을 맞았습니다 유월 행장을 맞았고 그
1:14:03
무렵에 이제 한국 민중사 논쟁이 있었 문제가 있었는데 저는 민중사 필자라면
1:14:10
그렇고 필자가 아니라고 하기도 그런 좀 애매한 입장이에요 이거는 이제 책을 만든 계기는 돈을 벌려고
1:14:16
만들었습니다 그니까 운동권 유경 선배가 중심이 돼서 뭐 서울 대국 사학과 77 7879 학번들이 모이고
1:14:25
거기다가 이제 학번에 그 대학원에 진학한 그 선배들이 모여 갖고 이제
1:14:31
책을 만들다가 돈을 벌려고 만들었다가 돈을 죽기 한데가 이제 빠지는 바람에 아
1:14:37
그 원고 쓰거 어떻게 하냐 해서 풀피 나병식 선배를 찾아가서 얘기를 해 갖고 그럼 제대로 한번 내보자 해서
1:14:44
이제 한국 민사가 나오게 됐는데 이게 이제 책을 내놓고 난
1:14:50
다음에 어 김하고 질 그 그 공항 검사가 있죠 그 이거는 경찰이 문제를
1:14:57
삼은게 아니고 검찰이 문제를 삼은 사건입니다 근데 제가 비유를 하는게
1:15:03
뭐냐면은이 풀빛 출판사에서 그 죽음을 넘어 시대 어둠을 넘어 넘어넘어 그
1:15:08
유명한 넘어 넘어를 냈는데 광주 항쟁의 진실을 다룬 거거든요 그까 80년대 가장 민감한 책이죠 근데이
1:15:15
책을 냈을 때 사장이 구속이 안 됐어요 그 그 필름만 뺏어서 불
1:15:22
태우고 뭐 이제 숨겨 놓던 필름으로 다시 찍고 이제 했지만 사장이 구속이 안 되는데 이거는 구속을 시켰습니다
1:15:28
그래서 이제 그 저희가 그 뭐 반쯤 뭐 아전 인수식 해석인지 몰라도
1:15:36
역사가 어떻게 움직인다는 것을 그 원리를 노동자들이 깨 깨닫는게 훨이
1:15:42
광주의 진실이 폭로되는 거보다 훨씬 더 무서워 무서운 일인가 보다 그래서
1:15:47
이제 이게 이제 민중사관 그 논쟁의 좀 시작이 랄까 그 이제 저
1:15:54
20대들이 민중이라는 이름으로 이제 처음 모습을 들어는 거죠 책 자체는
1:16:00
지금 읽어 보면 너무 재미가 없고 너무 도식적이고 그 훌륭한 책이 그동안에 많이 나왔기 때문에 책
1:16:06
책으로서 읽을 필요가 없지만 연구사로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하튼
1:16:11
그래서 이제이 논쟁을 뭐 하고 이거 할 때도 또 겼었던게 뭐
1:16:18
80년 대데 8년인데 그니까 아마 그 이거 갖고
1:16:23
싸우는 것도 도 힘들어하던 분위기들이 있었어요 왜냐면은
1:16:29
대학원 이제 필자들이 대학원 생인데 이름이 들어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1:16:34
분위기가 있었고 당연하죠 뭐 그런데 그럴 때 우리들이 같이 옆에서 싸워
1:16:39
줘야 하는데 필자들은 뒤로 빠지고 대학원에서 싸워 져야 하는데 대학원에서 그때 뭐가 있었냐면 석사
1:16:45
장교 제도라는게 있었습니다 회장이라고 해서 그걸 하면은 6개월만 군사 훈련
1:16:51
받으면은 군대가 면제가 되는 거니까 엄청난 특해 뭐 그게 전도한 아들 노태우 아들 어 뭐 이제 그렇게 이제
1:16:58
그 그래서 생겼다는 말이 있는데 그래서 이제 저는 어쨌거나
1:17:04
싸워야 한다 그래서 그때 이제 싸워야 한다를 갖고 주장을 했는데 싸우지
1:17:10
말지 않는
1:17:23
분위기한국 학계에서 민중사 연구가 이제 등장하게 되는
1:17:29
계기였고 그때 이제 제가 민창 활동을 계속하고 있었는데 석사 논문을 써야
1:17:34
하는데 석사 논문을 써야 하는데 기영이 저희 그
1:17:39
팀장이었다 야 이제 대통령 선거가 내일 모데 대통령 선거 되면은 정신
1:17:45
없어 그러니까 그때 이제 그 62구 끝나고 대통령 선거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때까지 이제 한 그 한 두 달
1:17:53
시간이 비는데 그동안에 석 을 쓰라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서울대 국사 가는 보통 논문을 선생님들이 자료를
1:18:00
읽어야해서 딴데 2년 만에 끝낼 때 우리는 학기가 기본이었습니다 7학기 하면 빨리
1:18:07
한다고 할 때였거든요 그리고 실제로 보면 선배들 석사논문이 제일 중요한
1:18:13
논문으로 한 5 6년 지나는 동안 석사논문을 능가하는 논문을 못 써요
1:18:18
어 이제 그래서 석선 논문에 그렇게 공물 들 있는데 이제 기영이 국사학과 때 유경 선배가 사정을 알만한 양반이
1:18:26
두 달 쓰 만나 쓰니까 이제 이거 어떻게 하지 해서 원래 생각했던 주제를
1:18:32
급하게 바꾼게 제가 항전 별곡이라는 그 자 독립동맹 관련 자료집을 내고
1:18:39
저거 내고 이제 그 저거의 2편 구속된 자료들을 조금 더
1:18:45
구했습니다 일본 특고 월보 든가 중국의 해방을 일보라 그가 중국적
1:18:50
재료 일본적 재료를 더 구해서 아 저걸로 한번 이제 쓰면은 저거는 좀
1:18:55
자료 양이 그니까 좀 그 뭐랄까요 그 유리를 치자면 손질된 재료 그것은
1:19:02
이제 빨리 할 수 있을 것 같아 해서 그 얼른 써서 그 냈죠 얼른 써서 내고 그다음에 이제 그 하여튼 대통령
1:19:09
선거를 치었습니다 사실 저는 석사 논문보다 그 출판은 못 했지만 제
1:19:16
학사 논문이 훨씬 더 열심히 훨씬 더 잘쓴 논문이라고 생각을 해요 석사
1:19:21
논문보다 그렇지만 하여튼 뭐 그렇게 했고 그다음에는 이제 청년 학교라는 그
1:19:28
민청 그 그때 이제 뭐 후원 조직으로 민청
1:19:33
하여튼 개월에 그 대중 그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어 제가 그때
1:19:39
아직 20대였지만이 기관에 이제 책임자가 돼서 그 자격 갱생을 하는데 굉장히 힘들었죠 힘들었고 원고 써서
1:19:47
이제 하여튼 그 운영비를 마련을 하고 이제 뭐 하여튼 그러다가 좀 일종에 버 아웃 비슷한 현사 그 상황이
1:19:55
됐습니다 그리고 그때 고무에 이제 하여튼 제야 강좌를 열었더니 뭐 이거는 굉장히 그 사업이 잘됐죠
1:20:02
그니까 88년 이후에 좀 열린 공간에서 이제 이런 사업들을 그 쭉
1:20:08
해오고 그러니까 당연히 탄압이 들어옵니다이 탄압은 마침 뭐 설명하자면 길지만 공안 정국하고
1:20:15
물렸어요 공안 정국하고 맞물리면서 이제 이런 그 88년도 합법 공간에
1:20:22
열렸던 단체들을 다 회수하는 죠 88년에는 어 어느 정도였냐면 오늘
1:20:28
그 저기 어 뒤에 정경 선생 와 계십니다만 그 예 뒤에 우리가 북한 바로알기 운동을
1:20:35
할 때 북한 바로알기 운동을 할 때 그니까 우리 그 이제 대표적인 강사
1:20:41
세시 어디 상가집에 최근에 몇 년 전에 그 모여서 우리 기념 사진 찍자
1:20:47
근데 그 이승환 선배 어또 정철영 선생 그리고 이제 저 시서 그니까
1:20:53
북한 바기 그니까 20대 때 강연을 많이 다니고 또 대학 학교에도 글도
1:20:58
쓰고 했는데 88년도 어떤시기 면은 단군이 최대의 언론 자유가 렸던
1:21:04
때예요 그리고 서로 그니까 가냥 승환이 형이 어디 가서 무슨 얘기를
1:21:10
했다가 귀에 들어오거든요 그런데 안 잡혀가요 야 그러니까 우리도 많이
1:21:15
떠돌고 다니지만 야 저런 얘기를 해도 안 잡혀가나 정철 씨가 뭐 어디 가서 무슨 얘기를
1:21:21
했더라 그런데 한 2주일 지났는데 잡혀가는 미가 없어요 그러면 어떻게
1:21:26
되냐면 저도 따라서 그거 그런 얘기 다 하고 다니는 거예요 그때 셋시 만나서 여기다가 서로 이제 막 구박을
1:21:34
했죠 아이 형 그런 얘기하고 어떻해 야 네가 어디 가서 한 얘기가 돈 무서운 얘기 아니냐 이제 뭐 그렇게
1:21:41
하면서 하다가 우리가 농담을 한게 뭐냐면은 그럼 우리가 지금까지 안 한
1:21:46
얘기가 뭐냐 못한 얘기가 뭐냐 했더니 어 솔직히 김일성 장군 만세 빼놓고는
1:21:52
다한 거 아니야이 정도면 이제 할만큼 그렇게 이제 많이 치고 나갔었습니다
1:21:57
그렇게 이제 하다가이 저 공안정국이 만들어지고 공안정국의
1:22:04
탄압이 이제 저런 그 대중 단체에 사업에 생기고 여기 서서
1:22:12
말씀하신 분이 이명 선배고 여기가 김진균 선생님 김진균 선생님 참 아
1:22:19
어르는 모음지기 절해야 하는구나 하는 아주 그 품을 보여 셨던 분인데
1:22:25
하여튼 이제 그런 상황 속에서 이제 제가 미국으로 좀 어 반은 쫓겨가고
1:22:32
반은 번 아웃되고 그리고 이제 뭐 형들 통해서나 뭐 하튼 제 친구도
1:22:37
이제 저한테 얘기 저 뭐 챔 본부 그 보고서 이렇게 슬쩍 봤는데네 이름
1:22:43
있더라 뭐 곧 칠 거 같더라 이제 하여튼 그런 상황이었어요 이렇게 89년 4월 달에서 미국으로 가게
1:22:51
됐습니다 미국으로 이제 가게 됐고 또 실제로 수환 형은이 책
1:22:56
썼다가까 잡혀가서 징역 살기도 하고요 그래서 이제 미국에 가서 어 저는
1:23:03
유학할 생각이 솔직히 없었습니다 미국에 가서 자료를 좀 찾아서 내셔널 아카이브에서 자료를 구해서 올
1:23:10
생각이었는데 일단 미국으로 가놓고 나니까 오기가 어려운 분위기가
1:23:15
만들어졌어요 어 뭐 제가 한 것만 해도 녹록치 않는데 제가 안 한
1:23:20
것들도 다 제가 한 걸로 되더라고요 일단 미국가 있으니까
1:23:25
그래서 이제 그 돌아올 수 없는 상황이 그 되고 그때 하여튼 미국에서
1:23:31
학회가 열리면서 이제 저보고 그 발표를 하라고 해서 집에서는 굉장히 이제 아버지께서는 화를 되시면서 미국
1:23:38
가서 또 이상한 짓한다고 했는데 했 뭐 제가 아버지 말을 안 듣고 발표를
1:23:43
했습니다 발표를 했는데 그때 그 발표의 인연이 참 재밌었던게 제 약정
1:23:49
토론자가 우리 여기 제임스 선생님 제 지로 기소가 되신
1:23:55
분이에요 제 지로 기소가 듣는데 이제 약정 토론인 제가 듣기로는 와싱턴 대학에 그때 브루스 커밍스 와싱턴
1:24:01
대학에 있었고 판례 교수도 있는데 판례 교수도 진보적이고 김대중 국명 운동도 하고 어 이제 그렇다 하는
1:24:08
소문을 들어서 아 잘됐다 해서 이제 원고를 갖다 드렸죠 튼 이제 판례
1:24:14
선생님이 되게 전보 아까 하여튼 무뚝뚝하고 시니컬하고 이제 그런 데가
1:24:19
있어요 그랬더니 이제 앉으라는 얘기도 안 하고 원고 봤더니 제가 읽어볼테니까 뭐 이틀인 이제 4월
1:24:25
후에 오라는 거예요 그래서 갔죠 그랬더니 이제 지라고 하는데 꼭 저
1:24:30
서부영 회에 나오는 이상한 카우보이처럼 말씀을 하세요 너 하더니 앉아라고
1:24:36
해놓고서이 내 엉덩이가 땅에 닿기 전에 미국이 위에 도대체 제국주의라는
1:24:41
거예요 근데 한국에 있을 때 80년대에는 그거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죠 근데 그 질문을 받으니까
1:24:49
제가 당황하고 더분 다나 미국 처음 갔으니까 뭐 영화 지금도 못하 면
1:24:54
훨씬 못했을죠 근데 이제 하여튼 그러니까 뭐 두시간 세 시간 동안
1:24:59
우선이 해놓고 가면서 그다음에 머릿속에서 이제 해서 뭐 어쩌다
1:25:06
따다다 하면은 뭐 아 따다다다 아니죠 따다다다도 나가지 못하죠 단발로
1:25:12
이렇게 나가면 선생님을 탁 빨아서 이렇게 탁탁 뭐 그 질문하는데 분해
1:25:17
죽겠는 거죠 어 아 뱀 잡았다 어떻게 진보적이라는 분 데 왜 저래 어
1:25:26
그리고 이게 저 어 토론회에 가서는 이게 뭐 어떻게 해야 하나 그래서 이제 하여튼 토론에 가서 더듬더듬
1:25:31
발표를 했는데 어 그날 그 질문이 이상하게 여러 명이 발표했는데 제
1:25:38
발표에만 질문이 모였습니다 그리고 그 약정 토론을 하는데 판례 선생님이
1:25:43
뭐라고 말씀하시는 거 다 알아듣지 못하지만 그래도 우리 편이다
1:25:50
아니다는 느낌이 있잖아요 그근데 굉장히 저를 그 우호적으로 제 얘기가
1:25:56
저렇게 표현한게 실은 한국 상황이 이래서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 거야라고 오히려 그 미국 사람들에게
1:26:02
설명해 주시는 식이고 질문 나왔을 때 저는 나온게 전부 다 판례 선생님이
1:26:08
저한테 던졌던 질문이죠 그니까 저는 집에 와서 한 이틀 동안에 약이 올라서 이렇게 얘기했어야 하는데
1:26:16
그래서 제가 제 평생에 처음 이제 마지막으로 영어 잘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준비된 준비된 답변을
1:26:23
했으니까 준비된 답변을 하면서 이제 해서 하고 그래서 그날 이제 그 그
1:26:29
학회가 끝나고 돌아오는데 같은 비행기를 샀는데 그 그 옆에는 판례 선생님 다른 제자가 옆자리 앉았었는데
1:26:37
어 그 친구를 보내더니 저를 오라고 해서 불러서 이제 역재 비행기를 타고
1:26:42
같이 왔어요 같이 와서 이런저런 얘기를 이제 하면서 너는 도대체
1:26:47
웬놈이냐 누구냐 뭐 이제 그 그런 걸 하는데 마침 여기 이제 그 옆이 저
1:26:53
오른쪽에 있는 사진이 누구냐면 와그너 교수하고 미국의 한국학의 대가인데 판례 선생님의 스승이에요 근데 저희
1:27:00
아버지 친구세요 또 그래서 이제 뭐 왕근 교서 얘 아 근어 교서 빈 적
1:27:06
있다 우리 집에도 오셨었다 판례 선생님도 깜짝 놀라고 이제 뭐 하더니 그렇게 하더니 팔라 선생님께서 너
1:27:13
지금 그 스테이터스가 뭐냐 그래서 한국에 돌아가기가 조금 애매해서 그냥
1:27:18
그 여기서 영어 다니고 있다 했더니 공부하자는 거예요 그러면서 이제
1:27:25
추천하는데 브루스 커밍스가 그때는 시카고로 아마 옮겼을 거예요 두 개를 추천하겠다 시카고
1:27:31
가서 브루스 커밍스 추천 그 공부하는 것도 한 방법이고 워싱턴 대학에서
1:27:36
자기랑 공부하는게 더 방법인데 브루스 커밍스 한택 하면은 네가 배울게 없을 거야 너희는 좋은 친구와 동료가 될
1:27:44
거야 근데 네가 공부하고 싶으면은 여기서 해 그래서 이제 하여튼 그
1:27:50
저도 생각을 해보다가 그 판례 선생님 밑에서 공부를 하게 그죠 그래서
1:27:55
그니까 그 좋았던게 뭐냐면은 처음부터 제가 유하고 싸웠잖아
1:28:01
그러니까 선생님 겁을 안내는 거예요 그까 판례 선생님이
1:28:06
어이 뇌졸증으로 쓰러지셨다 복귀를 하셨는데 복귀한 다음에는 굉장히
1:28:13
부드러워지셨어요 진짜 그 방문 못찾고 캐비넷 문 었다는 뭐 그런 얘기가 있는
1:28:21
분인데 저는 처음부터 이제 그 그 그렇게 하고 들어갔으니까 겁을 안
1:28:26
내고 하여튼 그 다행히 선생님한테 잘 지냈고 그 선생님이 어 당신은
1:28:33
유태인인 나는 유대사 안 하는 이유가 있다 뭐 이래서 안 한다 그런데 너
1:28:38
네가 하는 건 좋다 뭐 하고 하시고 정말 아지도 기소가 이래야 하는구나를
1:28:44
어 제대로 배웠습니다 그러니까 그 전공 야 김일성 얘기를 내가 어떻게
1:28:50
너보다 더 잘 알겠어 만주에서 벌어진 논문은 네가 쓰는 거야 그런데
1:28:57
뭐냐면은 한국사를 잘 아는 사람으로서 그러면 이제 너는 한국인으로서 미국
1:29:02
사람들한테 얘기하는데 그까 판례 선생님이 제가 써 갔는데 논문을 한 100페이지 써 그
1:29:10
200페이지 쯤 써 가면은 코멘트를 100페이지를 달가 주세요 어 정말 깜짝 놀랄 정도로 그런데 이제 그
1:29:17
코멘트 중에는 뭐 선생님이 잘못 말씀하시는 것도 물론 있지만 굉장히
1:29:22
다 도움이 되죠 그 뭐냐면은 뭐 이거는 내가 어 그 뭐 중국사에서
1:29:28
이런 걸 읽어 봤는데 너 이것도 한번 봐 그런 거부터 네가 이렇게
1:29:34
얘기하면은 이런 비판과 이런 그 저 질문이 나올 것이다 거기에 대해서
1:29:39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또는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뭐 하여튼네 생각을
1:29:45
바꾸라는 건 아니고 여기에 대해서 이제가 어 준비와 보안이 있어야 할 것이다 뭐 그런 걸 아주 빼곡하게 써
1:29:52
주셔서 굉장히 그 도움을 받았고 논문을 다행히 민생단 사건을 갖고 논문을 냈을 때는 그때 이제 좀
1:30:00
연락이 잘못된게 서울대에 그 국사 학과에 어떻게 제가 논문이 끝났다고 소문이 잘못 났어요
1:30:08
사실은 논문이 끝난 건 아니고 한참 남았는데 그런데 그러더니 그 저
1:30:15
하여튼 뭐 전화가 와 갖고 그 어 99년
1:30:21
1학기에 99년 학기 의 어 논문을 아 저 강의를 개설해 놨다는 거예요
1:30:28
그러니까 빨리 들어와라 그런데 사실은 부식 제가 논문을 다 쓴게 아니고 그
1:30:34
한글 초고를 썼습니다 한글 초고를 어차피 자유가 다 일본어 한국어 중국어가 그걸 써 놓고 있는데 그니까
1:30:42
논문 심사 그 저는 99년 6월에 이제 마치는 걸로 생각을 해 놨는데
1:30:48
그니까 그런 거예요 그래서 이제 야 이거 안 된다 했더니 아이 그 저 선생님 강 취소해 주십시오 하고
1:30:54
서울에 전화를 드렸더니 강의 취소는 나중에 3월 달에 수강 신청할 때
1:31:00
취소하면 되니까 하여튼 뭐 끝내고 올 수 있으면 와 봐 그래 갖고 이제 그때부터 추가하고 이제 번역을 했는데
1:31:08
영어책 번역할 때보다 훨씬 쉬웠어요 그 쉬운 건 뭐냐면 영어 책은 내 글이 아니니까 정확하게 번역을 해
1:31:15
줘야 하는데 이건 내 글이니까 영어 표현이 생각한다면 다른 식으로 쓰면
1:31:20
되더라고요 그래서 번역할 때 생각한 걸 하면 이건 최소한 단은
1:31:25
걸리겠다는데 한 달 만에 하여튼 번역을 끝내 갖고 하여튼 그 나중에 이제 짐은 우리 저 사과의
1:31:34
대선배이신 윤경로 선생님이 우리 저희 이사짐 쏴 주셨습니다 저는 어 공항
1:31:40
가기 10분 전까지 교정 보다가 컴퓨터는 후장도 못 하고 그냥 비행기
1:31:46
싫었어요 화물로 그냥 싫고 그렇게 이제 하여튼 급하게 돌아왔습니다 돌아와서 유에서 이제 하여튼 우리 에
1:31:54
이제고 그리고 그때 박사 논문을 쓸 때는 주제를 갖고 고민을 했던게
1:32:00
미국을 갔으니까 미국에 있는 자료 그 미군정이 분단이 뭐 한국 전쟁이나
1:32:06
그런 걸 갖고 써야 할 것이냐 그리고 또 하나는 80년대에 제가 그래도 좀 강연을 다니고 그랬는데 무슨 강연을
1:32:15
다니든지간에 그때는 강연 끝나고 나면은 질문이 무조건 그 일은 진짜 가 첫
1:32:24
번째나 두 번째 질문으로 나올 때입니다 그러니까 그 문제를 그래도 좀 해명해야 하지
1:32:31
않을까 그래서 항일 무점 투쟁을 갖고 이제 그걸 박사 논문으로
1:32:37
잡았다가이 IMF 터지는 바람에 논문을 끝냈습니다 왜냐면 뭐 생활비가
1:32:43
뭐 몇 뛰었으니까 그래서 이제 그걸 끝내고 그 김일성의 어 만주 한일
1:32:49
투쟁으로 이제 논문을 썼고요 그리고 돌아와서 보니까
1:32:54
북한 저는 이제 뭐 김일성 한임정 치을 갖고 썼으니까 당연히 북한 하을
1:33:00
하지 않을까 생각을 했는데 와 보니까 북한 하기 남쪽에 이제 10년 전에
1:33:05
제가 떠날 때 뭐 북한 박기 운동 뭐 그때 하고는 세상이 달라졌고 어 그걸
1:33:11
하겠다는 사람이 너무 많은 거예요 또 오히려 남쪽 현대사를 하겠다는 사람이 없고 또 이제 그무렵에 평화에 대한
1:33:18
연구들이 막 시작될 때였습니다 근데 이제 돌이켜 생각하니까 아 평화
1:33:24
연구는 김대중 노무현 때는 가능했어요 이게 태평성대 어 그 그리고 그런 그런
1:33:32
식에 그리고 또 재미있고 의미 있는 분야도 분명히 있었고 하는데 이제 세상이 험해지고 그걸 하기가 또
1:33:39
힘들어졌고 베트남전 진실위원회 활동을 하게 됐죠 그래서 이거 이제 미국
1:33:45
가기 전에 가치 일했던 친구가 이제 이걸 만들면서 형 도와줘 왔는데 베터 문제를 들었을 때 딱 아 이건 피 갈
1:33:52
수가 없다 왜냐면 는 제가 어렸을 때 맹호부대 청룡부대 용사들아 그거
1:33:57
가시는 거 월람 땅 하늘 몰더라도 그 노래가 매일 나왔거든요 TV TV 켜면은 화면 조정 시간 그다음에
1:34:04
그거부터 하고 이제 본방송을 시작했으니까 그런 노래를 불렀고
1:34:10
우리는 무용담이 걸 이발소에서 식당에서 뭐 전 차관에서 어디서든지
1:34:16
목욕탕에서 파월 장병 아저씨들의 베트공 따려 잡는 무용담을 들었었는데
1:34:22
어 그게 보니까 이제 이제 사실은 민간이 살이고 또 제가 마침 공부한게
1:34:28
박사 논문을 쓴게 어 간도에서 그 연변지역 한도에서 항일 부정 투쟁
1:34:33
있잖아요 그거 토벌 작전이이
1:34:39
그 베트남으로 이어지는 거예요 한국이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1:34:46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빨치산 토벌에 성공한 나라 아닙니까 미국 입장에서 지산다고 근데 그 토벌 때가 누
1:34:53
그니까여 사건에서부터 해서 간도특설대 출신 백선엽이 뭐 김이이 뭐 이런
1:35:00
사람들이니까 간도에서 토벌했던 경험이 43으로 이어지고 여으로 이어지고
1:35:06
한국 전쟁으로 이어지고 이게 베트남으로 이어지고 베트남에 파병 전두환이 장세동이 광조 학사를
1:35:14
자을 하고 아 그렇게 이제 이어지는 그 구리 속에서 베트남 문제는 이건
1:35:19
우리가 [박수] 그피 수 없는 문제다 이제 그리고
1:35:25
한국 현대 산 사람으로서이 문제를 해야 한다 이제 그렇게 해서
1:35:31
이걸 하게 됐고요 그걸 하다가 이제 보니까 우리 이제 평화 박물과 활동을 할 때 앞에 이렇게 어 참정 군인들이
1:35:39
많이 많이 와서이 참 평화 박물관이 어 뜻밖에도 경찰이 평화 박물관을
1:35:45
지켜주는 맨날 경찰하고 싸우다가 이제 그런 일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1:35:51
우리 비전향장기수 선생님 최아정 선생님 김윤수 선생님 참 많이 그립네요 어 그 99년도에 어
1:35:59
2000년도에 62호 정상 회담 때문에 갑자기 이제 미국을 하셨고 이거를 한 몇 십권 사실은 분량으로
1:36:06
계획을 잡고 진행을 했고 뭐 비전향 장기수 선생님들을 입을 열게 했다
1:36:11
무선 송소현 선생님이 거창하게 말씀하셨는데 그건 아니고 이거는 어떻게 됐냐면 비전향 장기수
1:36:18
선생님들이 당신들끼리 조직을 하 내부에서 회의를 해서 만장 일치는
1:36:24
아니지만 기록을 남겨야 한다 그리고 이걸 할 때는 기로를 꿈꾸지 못할
1:36:29
때예요 그 뭐냐면은 그 기록은 뭐냐면 자기의 남쪽에서 감옥생활 남쪽으로
1:36:36
난파된이 순간부터의 자기의 생활을 당에 보고하는 심정으로 하신는 거예요
1:36:42
그래서 우리한테는 얘기를 다 잘해 주시기로 다 잘 해 주시기도 하면서
1:36:49
이걸 한게 제가 조작 간첩 사건을 파헤치는데 굉장히 도움이 됐습니다 여기는 진짜 간첩 아이에요 진짜
1:36:56
간첩 어 그래서 그이 최정 선생님의 저
1:37:04
생기기는 곰같이 생겼는데 정말 머리가 좋은 분이에요 그이 김민수 선생님은
1:37:10
그 아주 저이 둘이 부부인데 못된 남편이고 착한 아내에요
1:37:17
집 일은이 수증 덜덜덜 떠 김 선생님이 다 아시고 우리다 하고 차
1:37:23
내오는 것도 손 떨면서 차 갖고 오시고 하는데 제가 이제 뒤집어진게 뭐냐면은 저 최종 선생님을 처음
1:37:31
만났을 때 뭐라고 소개 했냐면 나는요 나는요 그냥 그냥 간첩이 양반은
1:37:42
무장공비아요 하여튼 그렇게 만나서 두 분이 그렇게 얘기하면서 이제 그 간첩
1:37:48
얘기를 하는데 어 뭐 그니까 이게 있었기 때문에 저작 첩 라는게 아
1:37:54
최적 간첩과 진짜 간첩을 분하는 법 그다음에 간첩은 어떻게 사는가 어
1:38:00
그리고 북한은 대남 전력이 어떤 식으로 변화해 갔는가 그런 것들에 대해서 상당한 그 나름대로의
1:38:08
이해를데 이것도 이제 선생님들이 갑자기 북구 가시게 되는 바람에 매우
1:38:14
억울했어 가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그래서 하여튼 이제 뭐 저 저만큼을
1:38:21
했습니다 그리고 그러고 성공에 대해 오게 됐어요 시간이 너무 많이 갔네
1:38:26
성공에 대해 오게 됐는데 이제 미국에 있을 때 그 보면은
1:38:31
어 김동춘 선생님도 미국에 왔다가 이제 아마 성공이 되고 미국에 안식년 하다가 이제 그
1:38:38
가시게 되고 하면서 또 좋은 선생님들 뭐 많이 계시고 하니까 뭐 서울대
1:38:44
못갈 그 서울대가 안 된다면 성공에 다가 제일 낫겠다 하는 생각을하게 됐고 와서 성공회대 이제 처음 강의를
1:38:52
왔는데 90 19년도 왔을 때는 성공에 대해 진짜 건물의 몇게 없었습니다 지금도 큰 대학에 비하면
1:38:58
뭐 너무 쪽만 했지만 그때는 여기요 건물하고 일만관 하고 승영 하고 뭐
1:39:05
정말 그정도 그리고 옛날 베드 학교 건물하고 뭐 그 정도 있어서 꼭 그
1:39:11
여자 중학교에 온 거 같은 그런 기분이었어요이 과물 짓고 그런 다음에 학교 내에서 이제 좀 오래된 학생들
1:39:18
불평이 뭐냐면 학교가 너무 커져서 상하다 이전에는 수희 아저씨가 학생들
1:39:25
이름을 불렀다 그요 어 그 정도였는데 이제 그 학교가 그니까 커진 거죠
1:39:31
그래서 이제 하여튼 성공이 돼 왔는데 우리 학교 선생님들이 참 사이가 좋아요 안 싸워요 근데 그 그 안
1:39:39
싸는 이유는 뭐냐면 싸워도 얻을게 없어요 전리품이 없으니까 싸울 생각도
1:39:46
안 하고 하여튼 그 학교에서 덕분에 20여년을 그 편하게 있었습니다
1:39:52
성공회대 교수 가 어 단원 큰데 다른 대학 교수들보다 훨씬 편해요 그
1:39:58
학교가 이상한 짓을 안 하기 때문입니다 학교가 이상한 짓을 하면은 학교나 차단이 이상한 짓하면 골체
1:40:04
프죠 교수들 단식 농성하고 또 부산 대에서는 국립이지만 추신 자살도 하고
1:40:10
근데 성공에 대는 그런 건 없어요 어 그런 거 없었거든요 그리고 이제 그 성공대 교수가 전체적으로 편한데 제일
1:40:18
편한게 교양 학고 교수입니다 무자식 탈상
1:40:24
우리는 왔더니 교수가 듣더니 스승의 날 뭐
1:40:30
하냐면은 교수들끼리 모여서 밥 먹어요 제자가 없으니까 그러다가 야
1:40:35
이거 궁색하다 하고 치우자 그랬더니 아예 학과 회의가 없어졌습니다 뭐 그만큼 그래서
1:40:42
학교에서 이제 그 복잡한 일 안 하고 뭐 저는 제가 하고 싶은 것들을 물론
1:40:48
학교가 지원을 해 줄 수 있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그러나 이제 제가 바깥에서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대로 할 수
1:40:55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한결의 20일에 그글을 쓰게 됐고 역사 이야기라는 칼럼을 쓰게 됐고 이것도
1:41:01
저한테는 굉장히 중요한 경험이었어요 그러니까 역사가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라고
1:41:07
하는데 어떻게 대화할 것인가 그리고 그 그것을 그 수많은 주제들 처음에
1:41:13
이거 할 때는 제가 그 현대사에서 중요한 사건들 몇십개 뽑아놓고 이거 써야지 이거
1:41:19
써야지 이거 써야지 이거 야지를 했는데 처음에 만 그렇지 그때그때 일어나는 사건을 역사적인 관점에서
1:41:27
설명해 주는 거 그게 생각보다 중요해요 그러니까이 컨데 호주 제도가
1:41:34
나왔는데 호주제 페지 같은게 쟁점이 됐을 때 미풍양속을 뭐 없애 어 뭐
1:41:41
같은 영감님들이 그러잖아요 근데 거기에 대해서 반박을 못 하는데 미풍 양성은 얻어지고 무슨 미품 양성이나
1:41:48
일제가 들어와서 이상한 후주 제도를 만든 거지 조선시대 후주 제도하고 전혀 다른 거지 뭐 이런 얘기를
1:41:55
사실은 뭐 지금은 상식화 돼 있었습니다만 20년 전만 해도 그게 안 될 텐데 뭐 예컨데 그런 얘기들
1:42:02
그니까 해 나가니까 실제 이제 세회 운동에서도 도움이 좀 됐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그니까 하여튼 한결
1:42:10
2일에서는 꽤도 인기 있는 칼럼이 됐고 모아서 대한민국 사라고 책을
1:42:15
냈고 그다음에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세상의 세상에 이제 이거를
1:42:21
처음에 할 때는 양심에 따른 거부자가 여화의 증인들이 감옥 간다는 얘기만 알았지 도대체 몇 명인지 몰랐던
1:42:27
거예요 국방부도 솔직히 몰랐습니다 국방부 홍보 시대 전화해서 물어보니까
1:42:33
글쎄요 몇 명이나 될까요 한 2 30명 되지 않겠어요 근데 그 사람이 무슨 은폐하려고 한게 아니고 그냥 그
1:42:41
담당 장교도 관심 없으니까 그러는데 그때가 900 몇 명인가 있었어요 아 600 몇 명인가 뭐 그렇게 해서 다
1:42:48
보면은 18,000명의 그 당시 전 세계 뭐
1:42:53
그 평으로 징역 살고 있는 사람이 한 700명이 있다 하면은 670명
1:42:58
80명이 한국의 감옥에 있는 처지였습니다 그래서 이제 그때 뭐이 문제를 처음 제기하기 시작을 하고
1:43:06
하여튼 그래서 한 10여년 해서 어 제도는 개선이 됐는데 여전히 이제
1:43:13
대체복무가 징벌적인 대체복무로 그렇게 돼서 됐지만 어쨌거나 더 이상 감옥에
1:43:18
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덕에 여호와의 증인들에 대한 도 많이
1:43:23
깨졌고 어 여의 인들이 저를 굉장히 좋아하는 그래서 가끔씩 밥먹는 그
1:43:31
그랬습니다 그다음에 이제 글 쓴게 아까 그 병장월급 200만 원했는데
1:43:37
진짜 대한민국 사병은 똥 깨가는 글을 쓰고 그다음에 월급 문제를 제기했는데 월급 문제는 사실은 군인권 문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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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기하고 싶은데 그리고 월급 문제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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봤지만 또 더 중요한 문제들이 많았지만 문제를 갖고 사온 건 계량화가 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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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로 대한민국 사병은 그지인가 제가 붙인 제목은 아니에요 어 제가 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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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갖고 이제 편집에서 그렇게 붙였는데 저도 처음에 봤을 때 얼굴이 가는데 아니지 뭐 저거 밀고 나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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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겠다 싶은게 이걸 할 때 병장 월급이 한 달에 2만 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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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100분의 그러면은 하루에 700원 아니에요 어떤 거지가 하루 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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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장을 하는데 700원 벌 군 이거 월급 문제는 제가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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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있을 때 한번 그 미국 친구하고 이제 그 서로 서로 오해를 하면서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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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성을 했었던 적이 있는데 그 그때 미국이 이제 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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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그 그 저 최저임금 시간당 최저임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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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서 정해졌는데 3불 전이었습니다 그때 제가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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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0원을 받았으니까 분이죠 그야 그 한국에서는 그럼 병 그 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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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을 얼마 주냐 어 그 3분 받았다 했 그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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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짝요 그렇게 많이 이렇게 이렇게 생 이놈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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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 하고 봤더니 이놈은 그걸 시급으로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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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예요 그 시급이 아니고이 아니고 아니고 월급이야 그니 그 깜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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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더니 근데 폭동 안 일어나 반란 안 일어나 우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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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일어나 뭐 하여튼 그렇습니다 그 뭐 하여튼 이것도 이제 얘기 하자면 길지만 하여튼 그렇게 싸웠고 그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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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제 저 문제 여러분 여기에 계시는 분 뭐 제 강의 들으신 분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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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수업시간 많이 얘기하니까 그 한에서는 한의 역사 이야기냐 한의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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냐 할 정도로 군대 문제를 사실은 많이 썼었어요 근데 그 저렇게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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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의 극이죠 자식이 부모의 영정을 모셔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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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습니까 그런데 부모가 자식의 영정을 모시는 사례가 너무 많아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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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 저렇게 죽은 사람이 한국 전쟁 끝나고 군대에서 죽은 사람이 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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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비전투 임명실 6만 명입니다 이라크전 10년 하년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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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안에 4,500명 죽었어요 근데 우리는 6만 명 50년대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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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0명 죽어 나갔습니다 2,500명이 뭐예요 성공회대가 1년에 하나씩 없어지는 겁니다 유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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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에 1500명 죽었으면 세월호 다섯 척가 았는 거예요 요즘 최상병 문제 갖고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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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시끌시끌 합니다만 그게 여기까지 올 때까지 정말 6만 명의 젊은이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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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 죽어 나가요 군사독재가 시민들을 상대로 전쟁을 벌렸던 거죠 그래서 하여튼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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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들을 갖고 했고 병장 월급은 최저 임금을 주자고 하는 건 뭐냐면은 60만 원 최저 임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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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려면 아까우니까 혹시 군대를 주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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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는데 군대 주이지 않고 대한민국 그 사이에 부자나라가 되더니 몇십 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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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겠다는 거네요 그리고 이제 제가 쓴 글 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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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도에 그까 2004년도 그 김일성 죽이죠 저는 김일성 연구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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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으로 그걸 썼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김일성에 대한 글이 많이 나올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그때 깜짝 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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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 놀랐고 그다음에 통일운동에 대해서 실망을 했었던 건 뭐냐면은 진짜로 주요 매체에 나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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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는 이거 하나였습니다 그걸 쓸만한 사람들은 뭐했냐 다 북에 갔어요 저는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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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화가 나서 아직 북한 안 갔다 왔습니다 북한 부자 뭐 북한 바기 운동을 처음 시작한 사람 중에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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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이지만 예을 안 갔다 왔습니다 그래서 하여튼 제 인터넷 찾아 보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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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목에 하면은 김일성 찬양 그걸로 나옵니다 그고 이제 원폭 문제 또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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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해서 김이란 친구 진짜로 이렇게 만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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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목이래요래 짜 왜 불면 꺼질까 아 그니까 불면 날라갈까지면 꺼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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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그런 문매 결국 하여튼 제가 김영을 만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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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 열 달 만났는데 열달 만난지 열살 만에 죽었어요 죽었는데 그 후에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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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동안 추모사업회 비장을 했습니다 원폭 2세 문제는 우리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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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에서 굉장히 중요한 어 문제인데 어 지금 이제 어 제가 그 국가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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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뭐 전담을 하다 보니까요 문제는 더 하지 못해서 내가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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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박물관 하면서 이제 어 그 고통의 연대 다른 사람의 아픔을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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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할 것인가 그걸 갖고 고민을 할 때 어 영화 다오에서 아 드마 다오에서이 기가 막힌 대사가 나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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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아 이게 어 이게 평화 박물관이 그 좀 추구하고 지향 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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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가 이거구나 했고요 그래서 하여튼 그러다가 2004년 11월 달에 차출이 됐습니다 이과 갈 때 망설였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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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 그때 평화연구 막 좀 시작이 되고 하고 싶은 것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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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고 아기자기한 재미들 아직도 저거 부해 가면은 3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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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짝없이 일해야 하 하면서 좀 망설였지만 뭐 3년이 뭡니까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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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이 넘게 그때 이제 못한 것들을 지금까지 하고 있는 거죠 그래서 그 했고 그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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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서 이제 성과 중에 하나는 인당 사을 할 때 을 의문사위 회사에서 뭐 저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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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밝힐게 별로 없을 정도로 그 의문사위 회사 많이 밝혀 놨어요 근데 이제 여기서 한 거는 여기 보면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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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괴 지령으로 현정권 타도를 획책 그래서 이게 간첩에 와서 조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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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혁당을 조직했다 그렇게 이제 몰아 붙였었는데 그걸 조사했어 그랬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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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해 보니까이 김상한이라는 사람이 간첩으로 북한 간첩이 그때 북에 있었습니다 사건 발표할 때 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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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김상이 남파간첩 부 부를 복귀했다 그렇게 했는데 국정원 안에서 제가 찾은 자료가 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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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냐면은이이 두 사람이 하나는 저 미군 정보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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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었고 하나는 이제 그가 있으면서 김상한 북파공작원으로 북으로 침투시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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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예요 간첩은 간첩인 남파 간첩이 아니라 북파 간첩이었다 거죠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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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인당 인당 사건이 다 조작됐다 그게 밝혀진 거고이 이거는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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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냐면 박정희가 인당 사형시킬 때 정말 그 이런 강당에서 문공부 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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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박정희가 얘기하는데 이런 마이크를 쓰지 않고 문이 다쳐 있었는데 밖에 있던 기자들이 박정희 육성을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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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었대요 그만큼 악을 썼다는 거죠 당은 간첩이 조직한 건데 뭐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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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박정희는 계속 간첩이라고 밀어보고 사용이 됐는데 이거 하나는 1차 인당 사건에서는 중요한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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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고 생각합니다 그고 인당 했는데 도루 기라고 생각을 하는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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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은 그 인혁당 사건 보고서를 쓴 놈이에요 그런데 그 저 서울시 직원 유성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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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그 증고 제작해서 보낸 놈 이렇게 해서 전주 스타에서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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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고 나왔지만 됐든 알겠더라고요 목소리도 이제 불러 처리를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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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 원본 좀 보자 했더니 뭐 아니나 다를까 그러니까 국정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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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중요한 사건이라고 그 보고서를 썼던 직원이 증거 조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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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으니까 과거 사위라는 건 참 그렇게 생각하면 쓰고 오고 뭐 그러나 또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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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자료로 밝혀내고 뭐 한 것들 있었습니다 사법부가 썼는데 거요 사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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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보고서에서 사법부 같은 내용인데 내용은 같은 내용인데 차이는 뭐냐면은 그 여기서는 중앙정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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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부의 피해자죠 사법부가 그러나 이 책은 국민에 대해서는 가해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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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 입장을 갖고 썼고 이거는 실명을 다 썼어요 판 검사들 신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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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썼고 그 당시에 제가 나쁜 판결을 내린 건 아니지만 대법원장 비서실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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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서 그니까 대법원 내에서 이제 이런 어 나쁜 판결을 그 하도록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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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한한 양반이 그 우리나라 굴지의 법무법인 태평양의 그 당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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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였던 어 사진 문에다가 사진도 칼라도 이따만 하게 싫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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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다행히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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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드라크 생각을 했는지 다행히 이제 이런 것들 그 실명으로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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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야지 그가 땡땡땡 속에 가둬 둬서는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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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다 그래서 이제 이름을 부르는 작업을 계속 시작을 했습니다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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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일장학회 사건 장물 구에 갖고도 했고 그덕에 제가 운동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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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지는 안 맡으려고 다 도망다녔는데 정수장학회 공동대책위는 이거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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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없이 집행 연장을 맡았습니다 어 뭐 남한조선노동당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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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림 사건 남한조선노동당 사건 같은 거는 나 칼 사건 같은 거는 어 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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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는 중앙정보부 얘기가 막 안기부 얘기가 맞다 어 이거는 그 제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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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린거다 그렇게 이제 좀 좀 주장을 해서 저 안에서는 제가 소수 하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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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조사 결과로는 뭐 제가 처음에 얘기했던 것대로 나갔죠 그러면서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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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제 그 진 저 위원회가 끝나고이 위원회가 끝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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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올 땐 그니까 뭐 이제 노무현 정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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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니까 어쩔 수 없이 문을 닫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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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데 사건 손을 대고 나온게 그 간첩 사건이라게 자료가 많거든요 두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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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갖고 뭐 있는 얘기 없는 얘기 다 만들어 놔서 그거 그 저 리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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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합니다 사건 하나다 그러니까 사람들을 뭐 한 어 뭐 50일 60일씩 가둬 놓고 두들겨 패서 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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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은 들어가면 여러분 모나미 연필을 아 모나미 볼펜을 잉크 떨어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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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보신 적 거의 없죠 쓰다가 보면 어디 도망가고 남의 불펜이 내 주머니에 들어와 있고 그죠 근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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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들은 문남미 볼펜 한스를 씁니다 여러분 여기 그 가운데 손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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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만져 보세요 여기 볼펜 잡은 구사이 아직도 있을 거예요서 이제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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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 친지가 뭐 2 30년도 있지만 근데 국민학교를 안 나온 사람들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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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조작 간첩으로 잡혀가면 여기 구살 다 힙니다 근데 이제 하여튼 그렇게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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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를 찾아놓은게 중앙정보부 사건으로는 권인가 이제 그 찾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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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놨는데 어 네권 밖에 못 했어요 우리 저 어 자인 사건은 처음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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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를 했습니다 왜냐면 주범이 돌아가셨으니 사건이 어떻게 조적 되는지를 어들을 길이 없고 그거 밤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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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고 했는데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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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그생 그 생각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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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 지금도 품 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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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해요 손도 못 하고 나오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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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그래 그래서 이제 나중에 다시이 반원 뭐 해할게 많지만 어 그걸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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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게 된게 아닌가 싶어요 하여튼 이명박 정권 들어오면서 이제 우리가 그래도 그니까 민주정권 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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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치면서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뿌리내렸다 생각했지만 그 이제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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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가 후퇴하고 후퇴를 넘어서 죽음으로 오고 이제 이때 하여튼 좀 정신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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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웠던 거 같아요 그리고 이제 싸우다 보니까 그 제가 저 이상하게 서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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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아졌습니다 그니까 저쪽에서 이제 볼 때 나쁜 놈들을 뽑을 때 어 그 수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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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에서 뽑을 때 이제 김대중도 의원인데 두 분이 들어가셨어요 그다음에 그 그전에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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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손꼽히던게 송주일 강정구 였는데 두 양반이 다 감옥을 났어요 그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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났더니 제가 갑자기 탑 시대 배정이 된 거 같아 여기저기서 이제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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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나오는데 그때 농반진반 한 얘기가 뭐냐면은 아 난 감옥 가려면은 11등으로 갈 거야 어 왜냐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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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노무한 테 뭐 많이 받아먹은 놈들 있잖아 그 사람들이 좀 책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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줘야지 이제 그러면서 그때 한 얘기가 뭐냐면은 친한 사람들 하고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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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이 100명이 감옥에 가면 갔 지식인 100명을 감옥에 집어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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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틴 정권은 없었다이 무도한 정권 하고 우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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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하게 싸우면 응 어차피 임기 5년 아니냐 얼마
1:58:10
살지도 않는다 옛날 박정희 시대는 기약이
1:58:15
없었잖아요 예 하튼 그렇습니다 이제 그러고 그 했더니 이제 뭐 하여튼
1:58:20
그렇게 정신없이 다녔더니 에 뭐 조선일보 그쪽 어 수구 진영에서 억제와 위선이라는 책을 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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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명을 냈어요 15명인데 뭐 여기는 이영희 백락 이제 이런 분들 변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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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들 그고 젊은 사람들 중에 이제 조금 어 있습니다만 그리고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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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튼 그 국방부 부 서적 또 이제 하고 또 저쪽에서 친북 반국가
1:58:46
행위자의 명사를 만든대요 그래서 이제이 그 우리보다 먼저 반법 행위보다 먼저 시 했습니다 근데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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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부 사정 나왔을 때는 재밌었던게 진중근 씨가 였던가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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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가 이제 만나면은 놀렸던게 이런 축에 도끼지 못하는 것들 저기 저기 인정을 해 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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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지 이제 뭐 그 그렇게 농담을 했는데 어 제가 자랑하고 다니니까
1:59:13
뭐냐면 여기 세계의 다 이름을 울린 건 자밖에
1:59:18
없었어요 산 박수 우리 저 친부가 행위자 인명사 전에는
1:59:25
우리 이재정 신부님을 비롯해서 성공회대 교수가 여섯 명인가 일곱명 그 우리 그 조그만 대학교 그 치구는
1:59:32
엄청나게 많이 올랐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하여튼 그
1:59:38
유신이 이만 선생님께서 박근혜가 선거에 나왔는데 애들이 유신을 모른다
1:59:45
뭔가 하자 그래서 역사 학자들을 그 집합 시켰는데 제가 막 그때 막내라서
1:59:50
수집 책을 맡아서 이걸 했고 그래서 이제 떤 순다 정신없이
1:59:55
썼고 유신의 초상이라는 또 전시도 만들어서 평화 방물 관에서 또 죽가
2:00:01
하고 어 전시하고 싸웠습니다 그 이제 그때 쓴 글 중에 하나가 박근혜가
2:00:06
이제 뭐 인혁당 사건은 뭐 두 개의 판결이 있다 역사의 판단을 맡겨야 한다 그 했을 때 하여튼
2:00:13
그이 여인천하 여인천하의 중전마마 대사를 빌 빌어서 앞에는 최대한
2:00:20
정중하게 쓰고 맨 마지막 을 그입다물라 어 당신한테 사과를
2:00:25
바라지도 않는다 뭐 용 그러나 제발 피해자에게 상처 주는 뭐 지하지 말라
2:00:30
이제 그렇게 썼었죠 그러니까 뭐 그때 그렇게 이렇게 썼더니 그 이제 하여튼
2:00:38
박근혜가 당선이 됐고
2:00:43
뭐 예 그고 튼 그때 2012년 선거 끝나고 난 다음에 제일 많이 썼던
2:00:49
사진입니다 이 저 우리가 그때 51대 49로
2:00:55
졌는데 한국 전쟁 때 봐라 이렇게 다 죽었다 백대 빵이다 51 50대
2:01:02
50이 아니다대 빵이다대 빵인데 그래도 두 세대만에 51대 49로
2:01:07
온다 다음에는 이긴다 하여튼 그 저 역사학자가
2:01:12
거짓말도 좀 해야죠 응원단장 비슷하게 저도 힘들어
2:01:18
죽겠지만 어 저도 힘들어 죽겠지만 그 그 그렇게 떠들고 다녔고 그다음에는
2:01:24
또 17년 18년쯤 신나서 얘기한게 봐라 이게 천번 천만 촛불의 출발이
2:01:31
여기다 예 그러고 다녔습니다 우리가 참 저렇게 부활하는 힘도
2:01:37
크지만 우리가 우리의 또 특기가 뭐냐면 죽서 개죽이 어 지금도 어
2:01:45
개가 죽을 그 많이 먹고 있는 형편이 그 그하고 청에서 뭐
2:01:53
강의를 의뢰받아서 하는데 이게 이제 제 느낌은 그래요 그 아마 그때 댓글
2:02:01
공작단이 퇴각을 하면서 몸 풀고 간 거 같아요 그래서 그 하여튼 그니까
2:02:07
공작 단에서 했는데 뭐 그렇게 어 저보다 더 심하게 받은 사람도 있는데 그냥 그니까 약간 저도 그니까
2:02:14
예방주사 비슷하게 예방주사 비슷하게 이제 맞고 끝났고 그다음에 이제 컸던
2:02:20
건이 이 그림의 기획자가 접니다 근데 제가 홍성담 화백 테 이걸 이렇게
2:02:27
그려 달라고는 안 했어요 형 그 저 애들이 몰라 그
2:02:32
박근혜 그 박정희 시대 유신이 뭔지 몰라 박근혜의 당선이 유신의 부림을
2:02:38
좀 알 수 있게 형이 한번 잘 그려 봐 이제 이렇게 부탁을 했는데 이제 그림을 갖고 왔다 저걸 갖고 와서
2:02:46
뭐 저게 미인에 걸리게 돼 있었으니까 몰라 하고 이제 걸었죠 었더니
2:02:52
아니하다 그니까 이제 그 사건이 터지고 우리가 평화 박물관이 그래서 박근혜
2:02:58
정권이 등장하고 난 다음에 첫 번째 압수수색을 당한 시민 단체가 됐어요 어 첫 번째 근데 다행히 그 저게 또
2:03:07
일이 이상하기는게 이제 평화 방문과는 어떤 열혈 고급화가 어 고발을 했는데
2:03:13
사실 그때 이제 결정 권한은 결정은 주로지가 했거든요 상위 미사를 맞고 근데 이상하게
2:03:20
그 대표 우리 이혜동 목사님하고 사무처장 우리 오아진 선생 저기 와
2:03:25
계십니다 오아진 선생하고 둘만 그 저 고발하는 바람에 저는 나를 고발하라
2:03:33
이렇게 나갈 수도 없고 하여튼 그렇습니다 근데 다행히 그니까 저
2:03:39
대법원 아 법원에서 다 무죄가 나왔어요 그 우리 이제 압수수색해 뭐 장부장 뭐 탈탈 털었는데 그래서
2:03:46
저희가 이방 주사를 잘 맞았습니다 그리고 교과서 파동이 터졌는데 교과서 문제는 제가 사실은 역사학자들
2:03:54
대부분이 싸우기 때문에 저는 교과서 문제 갖고는 그렇게 많이 싸우진 않았는데 하여튼 이제 제가 표적이
2:04:00
됐어요 왜냐면은 그 시점에 강남의 어떤 고등학교 선생님이 제 강연을 수업 시간에 틀어 주셨대요 담임 자장
2:04:07
시간 역사 선생님은 아니고 담임 선생님인데 근데 거기서지가 뭐라고
2:04:14
얘기했냐은 박정희가 죽을 뻔했다 김창한 잡혀서 그런데 그때 창용이가
2:04:20
박정희를 그 그 죽였으면 박근혜는 태어나지 못했다 그렇게 얘기했어
2:04:26
얘기했어요 실제로 워딩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걸 갖다가 이제 급 하에서는 박정희를 박근혜를 박정희를 그때
2:04:33
죽였어야 했는데 어 뭐 이제 이렇게 비틀어 갖고 이제 떠졌는데 제가 몹시
2:04:39
억을 한 건 뭐냐면 우리 어 조갑제 선생께서도 이런 얘기를 했거든요
2:04:44
조갑제 별로 그 틀리지 않은 얘긴데 뭐 하여튼 이제 그러더니 그 황우가
2:04:50
사 다시 나왔대요 비대위원장으로 님 황우가 한나무에 가만두지 않겠다
2:04:56
국회에서 공원을 했었습니다 근데 하여튼 다행히 탈없이 지나갔습니다 근데 이제
2:05:03
조선일보에서 야 tv 조선이 17분 째지 특제 프로그램을 편했어요 뭐
2:05:09
금수저 좌파 한농부의 정신세계 그 이제 저희 가게까지
2:05:17
할아버지까지 할아버지까지 그런데 저 조선일보 참 나쁜 놈에 저희
2:05:24
할아버지가 동화일보 발행인을 한 것도 맞아요 근데 옛날에는 달라서
2:05:30
발행인을 사장이 한게 아니고 막내 기자가 했어요 막내
2:05:35
기자가 그까 총독부 불려다니는 일이니까 그렇게고 우리 할아버지의 대표 경력은 조선일보 편집 국장입니다
2:05:43
조선일보 최 장소 편집국장에 그근데 그거는 싹 지우고
2:05:49
금수 그 17분짜리 TV 종편의 17분짜리 특집 프로그램은 핵시험
2:05:57
했을 때 나오는 겁니다 그래서 이제 이때 하여튼 이렇게 당했고 그 하여튼 베라벨
2:06:05
얘기들이 이제 다 나오고 또 저희 아버지께서 이제 저 미국 보낼
2:06:10
때 이제 뭐 화가 많이 나셨고 저의 실망도 많이 하시고 야단치는 그글을
2:06:15
쓰셨는데 뭐 그 글이 이제 나오게 된데는 뭐 저에 대한 실망도 있었지만 또 하나는 그러니까 그게 사실은 그
2:06:24
저희 형이 보안사의 근무 있었어요 차출돼 외모 고시한 다음에 차출돼 근데 그때 잘 사귄 그 사람이 동생
2:06:31
그대로 두면 큰일 난다 큰일 난다 하고 이제 그 외국으로 보내고 이제
2:06:37
이런 식에 차라리 그를 하날 써라 그런 이제 그습니다 그래서 그 내용은
2:06:43
이제 하여튼 어 나 자식은 그때 자식 때문에 족속인 부모가 한둘이
2:06:48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그 심정을 대변에서 쓰고 내 자식은 내가 다룰테니까 건드리지 마라 그리고 이제
2:06:55
뭐 거기서 내용은 뭐냐면은 또 아버지께서 실제로 걱정하신 거 이제 제가 정년 임하니까 우리 형들도 다
2:07:02
무사히 정년 퇴임을 했지만 그때 형들이 이제 막 그 사회 진출하고 자리잡을 때인데 혹시라도 그 나
2:07:10
때문에이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이 당신이 불이익을 받는 거는 어쩔 수 없지만 부모 자식이니까 그 형제들한테
2:07:17
다른 친척들한테 미치는 거 그거는 견 수 없는 노 아니냐 이제 하면서
2:07:23
하여튼 저를 그 쫓아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그거를 갖다가 이제 조선
2:07:28
일부에서는 뭐 부모 자식간에 의자를 했다느니 형제들 그는 교류가 없다느니
2:07:35
이제 그렇게 떠들었는데 뭐 저희 아버지 이제 돌아오시고 17년에 어
2:07:41
그 저희 형제들 아버지 기념사업을 뭘 어떤 걸로 할까 하다가 아버지가 그
2:07:47
책쟁이 책에 대한 기념 사업을 하자 해서 강기 저희 오남매가 다 교수인데
2:07:55
그 그 하기 했습니다 뭐 서울대회 하면은 더 포민 할 수도 있을지
2:08:00
모르겠지만 그래도 성공했다가 하는게 낫겠다 해서
2:08:05
형제들도 다 그렇게 해서 그랬습니다 그래서 저 그 우리 그이 강의
2:08:11
담당자인 전성 오늘 뭐 미 선약이 있어서 이제 못 오셨지만 그니까 그때
2:08:18
저 한참 중에서 떠고 일부에서 떠들 때 저 고마운 것을 써
2:08:25
주셨죠 그리고 이제이 시간이 너무 많이갔는데 반업 행제 결전이 원흉 그
2:08:32
권영택 선배가 오늘 안 왔어요 요새 저랑 일을 같이 하고 있는데 가족 여행이 오래 전에 잡혀 있어서 지금
2:08:38
어제 해외에 나가 있는데 권영택 국사학과 선배입니다 친한 선배인데
2:08:44
어느 날 찾아오더니 그게 보니까 2013년이 2013년 가을
2:08:50
이더라고요 그 에 와서 하는 얘기가 반민주 행위자 인명사전 반독 독재
2:08:55
인명사전을 만들자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거는 단칼에 거절을 했습니다 그 저거 못 만든다 친 인명사전에
2:09:03
몇십배 힘든 일이다 저거 못 만든다 어 그렇게 얘기해서 거절을 했죠 그
2:09:09
실제로 뭐 민주 진영에서도 이런 얘기가 여러 번 있었는데 다 그까 진행이 안 됐고 그래서 못한다라고
2:09:17
단칼에 거절해서 돌려보냈는데 약이 오르는 거예요
2:09:22
저놈들 그냥 놔도 그리고 이제 그 뭐 아까 그 저 간첩 사건 계속 두고
2:09:30
나온 거 그다음에 어 저 우리가 한게 일부 밝혀냈지만 정말 그까 빙산의
2:09:36
일각만 밝혀낸 거니까 저걸 계속 해야지 저걸 그대로 둘 수가 있나 이제 그 생각이 계속 드는 거예요
2:09:43
그고 하여튼 뭐 그 1차 트라우마다 더 고통 뭐 더 고통스러운 건 아니겠죠 그러나 2차 트라우마도 제가
2:09:51
좀 전에 울컥한 것도 어 그 사례라고
2:09:56
생각합니다 이거 끝나고 난 다음에 국정원 과거사에 끝나고 난 다음에 한 2년 동안은 제가 솔직히 얘기해서
2:10:04
알콜 이겼어요 그러니까 2년 동안 매일 술 먹었거든요 맥주 두 캔이라도
2:10:11
혼자 있을 때는 맥주 두캔 매일 술 먹었는데 어 술을 364일 먹었는데
2:10:17
1년에 하루 안 먹은 날은 다음날 건강 검지 다가 금식하는 날 빼놓고는 뭐 그게 그게
2:10:25
알콜 얘기죠 다행히 제가 직업도 확실하고 뭐 일도 있고 이제 하다 보니까 뭐 이렇게 뭐 이상하게 이제
2:10:32
그 다른 부분이 다 무너지지는 않았지만 예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제
2:10:38
하여튼 이거를 만들어야겠다 생각을 하고 했고 특히 이제 이쪽에서는 이걸
2:10:43
만들려고 뭐 그 하고 있어서 아 그럼 우리가 훨씬 먼저 나오겠다 이쪽 이제
2:10:49
이쪽은 2009년이 13년 14년도에 이제 그 궁리를 했어요 그 궁리를
2:10:55
하다가 저는 이제 국정원 과거사를 했기 때문에 중앙 정보부터 시작을 하자 그렇게 생각을 했는데 세월호
2:11:01
사건이 터지고 세월호에 그 죽음의 항로가 가만히 있어라 아 이게 이제
2:11:09
이승만이 달군 도망공 거랑 그 오버랩이 되면서 아 이거 하자 그렇게 하는 바람에 이제 처음에 마음 먹었던
2:11:16
거보다 이게 배 이상 늘어났습니다 배 이상 늘어나서 그니까 이제 5년 5
2:11:23
6년이면 되겠지 했는데 이제 10년 걸렸는데 아직 안 끝났는데 그래도 어느 정도 상태냐 men 아주 긴
2:11:30
터널 있죠 근데 이제 다 와 갖고 저쪽에 끝이 보이는 그니까 그 이정도는 기어서
2:11:39
나갈 수 있다 어서도 나갈 수 있다 이제 그런 상태고요 저희가 이제
2:11:44
그래서 국제를 해서 반헌법 행위자 임명 사전을 만든다라고 했더니 우선
2:11:50
반헌법 말이 그때는 굉장히 생소한 말이었는데 그까 경인 신문도 반어법이
2:11:56
한 쓰고 헌법 파계 자라고 풀어 었었 어 그런데 지금은 이제 아주 일상화돼
2:12:02
있고이 용어를 선점한 거 참 잘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저희가 기재
2:12:07
회견 하기 전에 보도 자료만 보냈는데 일면 톱를 빼줬어요 경연이 한결에도
2:12:13
일면 사이드 톱를 빼주고 그러니까 그만큼 어 기다렸다는 거죠 그래서 이걸 할 때는 어 저희가 이제 그이
2:12:21
명단을 그리고 역사의 법정에 공소시효가 없다 하고 제안을 했고 그리고 이제 그 발족식을 가졌고
2:12:30
그리고 15년 10월에서 발촉 식을 갖고 거의 1년 반까이 연구해서
2:12:37
2017년 2월에 그니까 명단 발표를 했습니다 명단 발표를 했는데 어 이때는 이제 그 처음에는
2:12:46
저희가 노태우 정권으로 끊으려고 하다가 막 그 국정농단 그 게 있어서
2:12:52
어 이명박 박근혜 정권까지 집어넣었어요 그러다가 이제 나중에 다시 다시 빼 줬죠 다시 빼줬는데
2:13:00
하여튼 그래서 명단을 발표를 했습니다 명단을 발표할 때 어 400명 명단을
2:13:06
발표했는데요 그때는 거의 절반쯤 살아 있었어요 7명 사자는 4,500명
2:13:13
했는데 두 명 살아 있었거든요 아씨 이건 살아 있을 때 내야지 말야 그래서 제가 이렇게 그러다 보니까
2:13:20
반법 행위자들 만수무강을 빕니다 아지는 이제 우리 이제 매주
2:13:27
검독 하거든요 매주 이제 그 누가 쓴 원고들을 검색하는데 봤더니 2월
2:13:32
10일 날 하는데 인터넷 다 지어보고 이제 하여튼 성제 술처럼 매번 하여튼
2:13:39
확인하는 코스들 뒤집었는데 딱 보니까 6월 10일 날 죽었다고 아 6월 3
2:13:44
3일 날 죽었다고 일주일 전에 죽었다고 부고가 올라와서 정말 제가 매우 비통 했습니다
2:13:51
지금은 사람들 나이가 들어서 뭐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저희
2:13:56
지금 38명으로 줄였는데 어 한 3 40명 40명 정도 살아 있지 않을까
2:14:02
추산을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전부 처음에는 시기별로 끊으려고 하다가
2:14:08
이렇게 내용별로 그니까 지역별로 군대 뭐 정치 관료 그다음에 군대에서도
2:14:15
이제 보원사 따로 빼고 그다음에 경찰 고문수사 또
2:14:21
정보부 뭐 이제 하고 해서 법원 검찰 쪽이 이제 제일 아마 사람들이 관심을
2:14:29
많이 가질 것 같고 하여튼 책을 목표는
2:14:34
내년 내년 내년이 2025년이 광복 80주년이 그래서 그걸 맞춰서 내는데
2:14:41
뭐 12권을 다 못 내면요 요거 세 권이라도 11 0이라도 먼저 내자
2:14:46
그래서 그 하튼 그 목표로 이제 지금 고 있고 저희가 어 10년 하다
2:14:53
보니까 지난주에 회전은 상 때문에 못 갔습니다 못했습니다만 456회
2:15:00
회입니다 저 그 진보진영에서 이렇게 10년짜리 프로젝트를 진행한 거는
2:15:07
사례가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오늘 우리 선생님들 대부분 그 오셨습니다
2:15:12
선생님들 그 참 아주 헌신적으로 그 고생을 하십니다 처음에는 박봉이
2:15:19
아니었지만 코로나 이후에 저희 수위에 많이 줄어들면서 지금은 형편 없는
2:15:24
박공이 됐는데 하여튼 끝을 보자 끝을 보자고 이제 계십니다 그래서 그리고
2:15:31
그동안에 저희가 이제 그것도 10년으로 늘어지게 된게 다른 연구조사 사업을 많이
2:15:37
했어요 저희가 원해사 했던 것도 있고 어쩔 수 없이 했던 것도 있고 또 이렇게 보니까 이거는 우리가 하는게
2:15:44
좋겠다 또는 우리 아니면 할 데가 없겠다 싶은 것들을 이제 했는데 국립
2:15:49
국가폭력 트라우마 치유센터 조성방안 연구 이거는 피해자에 관한 연구입니다
2:15:54
근데 저희가 가해자를 중심으로 하는 기관이지만 또 피해자들 그걸
2:16:03
봐야 정말 나쁜 놈이 더 나쁜 놈 정말 나쁜 놈으로 보이거든요 피해자의
2:16:09
관점에서 봐야만 그래서 이제 그 이걸 한게 저희한테도 많이 도움이 됐고
2:16:15
피해자들이 어떤 고통을 잡고 있는가를 이해하는데 참 도움이 됐죠 그래서 어
2:16:21
이건 근데 안타까운 건 뭐냐면 저희가 죽어다 하고 연구해서 그 보고서를
2:16:27
썼는데 센터 권리 방안은 저 보고사 하고는 전혀
2:16:32
딴판서 광주가 지금 연락을 참아 못하고 있는데 광주가 국립화 됐거든요
2:16:39
6월 1일부터 근데 직원 승계가 안 됐을 거예요 니 트라우마 치유를 하는
2:16:45
사람들의 전립 기반 자체가 흔들리는데 뭐 뭐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2:16:51
그리고 이제이 채권은 우연한 기회에 우리가 1차를 하게 됐어요 사실은
2:16:57
제가 이제 심사위원도 들어갔다가 뭐 일이 이상하게 되는 바람에 그 예산
2:17:02
날아간다고 우리 보고 맡아 달라고 해서 뭐 마지막 석다인가 남겨 놓고 뭐 국정원 과고 사위는 제가
2:17:08
했었으니까 또 우리가 반환법 행위자 열전을 준비를 해오니까 축적된 재료가 있으니까 했는데 뭐 거기만 아니라
2:17:16
보안사 대공 경찰 공항 검찰도 하자 그렇게 해서 작업을 했습니다 권 어
2:17:21
8 900페이지 지금 나중에 보니까 그렇게 했는데도 빠진 놈들이 많 많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뭐 그물 던지면
2:17:28
받아 있는 물고기 다 잡는 건 아니니까 그러나 국 여태까지 나온 국가 폭력에
2:17:36
관한 연구 중에서는 가장 집대성한 어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저희가 반어법
2:17:42
작업은 개인을 연구하는 거고 요거는 기관에 대한 정리를 해서 그 두 개를
2:17:48
이제 좀 어 더 이제 차게 해야한다고 생각을 하고 그리고 이거는 한국
2:17:54
연구재단에서 한국 현대사와 회복의 입문학 그러니까 우리가 국가 폭력에서 당했지만 여기이 파칭 코란 소설의
2:18:01
첫문장이 기가 막힙니다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어 괜찮아
2:18:07
어떻게 우리가 단지 그냥 피해자가 아니라 어떻게 그 국가 폭력에 맞서 싸웠고 이겨냈고 상처받은 다른 사람을
2:18:15
치유해주는 상처받는 치유자로 거듭나는가 거기에 대한 연구를 저희가 또 그 병행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2:18:22
저희 이제 메인 사업은 그 나쁜 놈들 정리하는 거 나쁜 기관 정리하는 거지만 그거 정리하는 사업으로 같이
2:18:30
피해자 용과 이런 그 새로운 공동체를 어떻게 건설할 것인가 그걸 하고
2:18:35
있고요 그다음에 이제 뭐 제가 저도 뭐 그 저 기록에 올라
2:18:42
있는 녹화사업 당사자니까 뭐 하여튼 어 저 진세화 위원회에서 연구 영역이
2:18:50
나왔는데 이거 꼭 해야 한다 해서 사실은 성공해도 한 구를 안 줄 거
2:18:56
같아서 딴 데를 부탁을 하고 저희가 들러리로 갔다가 제가 발표를
2:19:01
잘했 그 심사가 너무 공정해 갖고 하여튼 그 저희가 뜻밖에 받아서 이제
2:19:08
그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이거는 뭐냐면은 저희가 평화 박물관이 반어법 행위자 열전이 코로나
2:19:16
이후에 지금까지 한 4년 지나는 동안에 어 그 그 회비 수이 한
2:19:22
40% 떨어졌거든요 그래서 이제 그 실제로는 반합법 사업도 중단이 됐어야
2:19:27
하는데 저희가 이렇게 이제 좀 벌어 가면서 근근히 미끄 가면서 하고
2:19:33
있습니다 그고 이제 제가 또 그 사이에 또 이제 하여튼 2009년도에
2:19:40
저희 장인 40주기 때 하여튼이 글을 쓰게 됐어요 그 천남 되신 분이 뭐
2:19:46
그 와서 이제 부탁을 하고 교수 고등학교 동인데 이제 통해서 와서
2:19:52
부탁을 해서 저 칼럼을 쓰게 됐고 저게 인연이 돼서 이제 지금 집사람과
2:19:57
만나게 됐습니다 저거는 40주기 썼고 10년 붙혀서 50주기 만나서
2:20:04
50주기 만나서 이제 어이어이 해결됐습니다 이제 그래서 그렇게 됐고
2:20:09
저희 집사람은 여기 일곱살요 석과 먹는 꼬마에 일곱살 때 아버지를
2:20:15
갑자기 잃은 거죠 그래서 이제 그 뭐 뭐
2:20:21
다 한편이 다 각각이 다 자기들의 삼국지 자기들의 수지가 있는 거죠 그
2:20:29
한만은 사연들이 있는데 하여튼 그거 그래도 일곱살 때면 별로 기억이 안
2:20:34
날 것 같은데 아버지에 대한 아주 좋은 기억 추억을 갖고 하여튼 열심히 열심히 뛰어서 우리 여기 전명혁 박사
2:20:42
또 열심히 그 고생을 해 주셔 갖고 그 진실 규명을 받고 그래서 재심에서
2:20:47
무죄 받고 그렇게 됐습니다 그렇게 하 과정을 거치면서 이제 그
2:20:55
왔습니다 자 이게 이제 제가 너무 길게 얘기했네요 근데 그 신영복
2:21:01
선생님에 보면 이런 얘기 나오죠 그 노인가 간방에 어 신입들 잡아놓고 딱
2:21:06
푸는 얘기 여러분들께서 그를 들으셨는데 앞뒤로 몇분이 저를 거들어
2:21:14
주셔서 더는데이 오늘은 과장과 가 허락되는 날 가만 들어
2:21:23
주시고요 그래서 이제 얘기를 마치겠습니다 그래서 끝인데
2:21:28
어 제가 그냥 끝낼 수가 없을 것 같아요 그래서
2:21:37
뭐냐면은 아 그까 농담 비슷하게 하다가 제가 제 호을 앞으로 뒤
2:21:42
끝이라고 할까합니다 근데 이거는 개인적인 뒤끝이 아니고 공적인
2:21:48
영역에서만 그 역사 는 최소한 100년 뒤끝은 천년 뒤 끝까지는 잘
2:21:55
감당이 안 될 거 같고 100년 뒤끝은 감당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우리 김민기는 기껏 어 김민기
2:22:04
이걸 보고 참제 동시대인이 저도 어렸을 때부터 김민기를 참 좋아했지만 정말 훌륭한 분 분인데 감히 뒷자
2:22:12
돌림을 뒷자 돌림을 한번 써볼까 합니다 그래서 그고 이제 그 이제 한
2:22:19
가지는 제가 사실은이 송현 선생 말마따나 은퇴를
2:22:26
해야 하는데이 공익 근무를 5년을 더하게 됐습니다 빙그레가 뜻밖에 후원을
2:22:34
주셨어요 저는 빙그레 회장님을 빈 적이 없는데 김호영 회장님을 빈 적이
2:22:39
없는데 그분이 뭐 종체 유튜브를 보셨나 봐요 그리고 그분이 이제 잘
2:22:46
아시겠지만 백범김구 선생의 사십니다 도 제가 이게 참 뜻밖에
2:22:53
건국 전쟁 덕을 본게 아닌가 싶어요 여기서 백범을 말도 못하게 어
2:22:58
비하하고 왜곡하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어 뭐 그 인연인지 아니면 또 여기
2:23:03
이제 성공이 대하고 오랜 어 인연을 가지 5대째 신자 시니까 그래서 그
2:23:09
후원을 해 주시게 돼서 제가 그이 누구냐면 어 한국의 노벨이 불리는
2:23:16
현남 김종희 한국 가역 회 회장님이 김현 회장님의 선친 이분 기념하는
2:23:22
현남 한국 현대사 석자 교수라는 걸 거 저 빙글 기부에서 5년 동안 그
2:23:30
자리를 유지해 주시게 돼서 제가 그 그냥 끝이 아니고 뒤끝을
2:23:35
좀 생산적으로 발휘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래서 이제 하여튼 여러분들께 너무 너무 길게 얘기한 거
2:23:42
같은데 그러니까 그 이거는 이렇게 생각해 주십시오
2:23:49
그니까 리 저 이거 어디 갔죠 지금 지금이 타이밍에 들려야 하는데 진작에 들려야 하는데 아 저 현역 아 근데
2:23:58
솔직히 이렇게 해서 그 반어법 행위자 결전이 유지가 되 왔습니다 그리고
2:24:04
오늘 이제제 계신데 아직 안 하셨다 하면 대단히 독한 분이십니다 그래서 그러니까 이거 이제
2:24:12
그 해 주시길 이제 마지막 영업입니다 부탁드리고 그 제가 영업 그 비결
2:24:19
중에 하나가 그 이거 저 후원 회원 해 주신 분들께는 어 제가 사인을
2:24:25
해서 책을 한 번씩 드립니다 저희가 언제 기반을 잡았냐 솔직히
2:24:31
어 국정 교과서 파동 때 기반을 잡았습니다 그때 그때 이제 좀 벌어
2:24:39
놓은 걸로 어 지금까지 이렇게 버티고 있는데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약발이 많이 떨어져 가니까 여기 남아 계신
2:24:45
분들 꼭 쓰시고 가시라고 어 믿습니다 네제 긴 얘기이 그 간방 도인의
2:24:54
사담을 잘 들어 주셔서 [박수]
2:25:09
감사합니다 빨 하예 예 진강
2:25:14
감사합니다 마지막의 역리이 시간 딱 지키게 하는
2:25:20
건데 오늘은 선생님라도 제가 치를 못했습니다 아 그리고 뭐 마침
2:25:26
자료관에 요즘 그 미국에서 박사 논문 쓰 쓰시는 분이 80년대 증거 지식
2:25:32
관련 논문을 쓰시는 분이 자료 안에 와서 이제 자료를 찾고 계시는데요 나중에 선생님 한번 면접 조사를 하게
2:25:39
해야겠습니다 아 그리고 지금 시간이 저희가 원래 예정이
2:25:44
40분에는 끝나고 그다음에 지인 축사 듣고 그다음에 아 사회 전달하는게 좀
2:25:51
예정이 돼 있었습니다 근데 지인 축사와 그 청중 축사 아니면 청중과의 그런 어 대화에 하는 걸로 좀
2:25:59
됐었는데 지인 축사를 예 조 식당에 가시면은 거기도 마이크가 준비가 돼
2:26:05
있습니다 그렇게 해갖고 아 지인 축사는 아 식사하시면서 어 그때 듣는
2:26:10
걸로 하고 여기서는 마지막으로 선생님께 감사회 전달해 드리고
2:26:16
그다음에 꽃다발 것 것도 같이 아 전달해 드리면서 마지막에 사진
2:26:23
촬영으로 오늘 행사를 좀 끝나고 나머지는 저 옆에 바로 옆에 터치입니다 거기서 식사하시면서
2:26:30
좀이어서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2:26:39
잠깐만요 예 다음은 예 감사패를 일단 아 전달을 하겠습니다 오늘 감사패
2:26:46
같은 경우는 선생님
2:27:01
예 예 오늘 감사패는 그동안 아 쭉 강연을 선생님께서 들으셨지만 아
2:27:09
선생님께서 그 성공에 대해 민주 자료관뿐만 아니라 평화박물관 건립추진 위원회 그리고 반어 행위자 열전
2:27:16
작업을 하시면서 선생님들과 같이 아 진짜 아 그 많은 풍파를 견뎌 내시
2:27:23
지금 오고 계십니다 그 했는데 오늘 퇴임을 하신다 그래서 그 선생님들께서
2:27:28
같이 그런 지금까지 아이 헤쳐 나오신 거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하실 겁니다
2:27:34
그런 거에 대해서 마지막 강연 들으면서 그동안 고생하신 거에 대한 감사패를 전달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2:27:41
오늘 감사패는 화 박물관 걸립 시준 이원회 오아린 이사님이 대표로 하실 겁니다
2:27:48
감사패를 일단 제가 독해 드리겠 감사 앞에 한국 현대사 연과 민주주의
2:27:53
발전을 위한 초심으로 일관해 오신 선생님의 노구의 깊은 감사와 존경을
2:28:00
표합니다 잠못 이루신 숱한 나날들이 이제 하나둘 결실을 맺게 될 것입니다
2:28:07
선생님의 정년 팀임을 축하드리며 앞으로도 건강하시고 건필하시길
2:28:12
응원합니다 사랑합니다 2024년 6월 19일 성공에대 민주자료관 사단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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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평화박물관 건립추진위원회 반법 행위자 열전 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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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동 예 꽃다발도 예 감사해 드리면서 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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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다발 준비해 오신 분들 계시면은 아 꽃다발도 지금 전달해 드려도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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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습니다 아 예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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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는 감사는 피규어로 저희가 준비를 했는데 그 예 선생님이 아까 젊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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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그 몸매라 그러셔 갖고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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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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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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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게 시간이 늘 왜 잡았냐 그은 제 마지막 수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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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저 공식적으로 바품 칼라는 남과 북을 아오는 현대사 수업을 했는데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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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에 원래는 기말고사 봐는데 김월 고사는 집에서 제출해 오라고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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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이제 마지막 수업을 여기서 하는 걸로 그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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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그럼 마지막 행사로 선생님들 나오셔서 같이 사진 하나 찍으시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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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 사진 찍고 그다음에 아 옆에 식당으로 이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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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겠습니다 아 축사 혹시 축사하신 선생님들 먼저 찍으시고 그다음에 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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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찍으면 어떨까 축 앞에서 하신 선생님들 그리고 지인 축사하시는 오늘 하시는 분들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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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나와주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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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드리겠습니다 사모님께서도 같이 해주 예 님 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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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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겠습니다 치즈를 할까요 아니 김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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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까요 하나 둘 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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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예 됐습니다 나머지 전체 사진으로 하겠습니다 님들 같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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찍으실 분들 앞으로 나와 주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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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드리겠습니다 선생님 수업 들으신 분들도 같이 나와 주시고요 그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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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어법 행위자 조사관 선생님들 여기 참석하신 분들 다 같이 아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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찍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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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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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요 지형 화면 좀 받아 둘래요 그 배치 좀 해줘 거기서 보면서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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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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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오셔도 될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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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데 아니면 앉을까요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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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나 얼굴이 안 보입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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겠습니다 하나 둘 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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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이거 하나 둘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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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 예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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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드립니다 아 선생님들 그리고 혹시 차가지고 오신 선생님들께서는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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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증이 준비돼 있습니다 주차증이 제가 알기론 5섯 시간짜리 준비돼 있기 때문에 지금 조교 저희 조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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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태프들이 주차증 선생님들 필요하시면은 말씀해 주시면은 주차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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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나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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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리겠습니다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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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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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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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번호 하나 둘 하나 둘 하나둘
2:35:05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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