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08

‘북한 스파이 혐의’ 프랑스 고위공무원 행적 따라가보니… | 일요신문

‘북한 스파이 혐의’ 프랑스 고위공무원 행적 따라가보니… | 일요신문

‘북한 스파이 혐의’ 프랑스 고위공무원 행적 따라가보니…

[제1388호] 2018.12.12 

박근혜 퇴진 시위·세월호 추모제 등 참석…그가 함께한 ‘민중민주당’ 뿌리는 해산된 통진당
[일요신문] 프랑스 상원에서 일하는 고위 공무원이 북한 간첩 활동을 한 혐의로 프랑스 정보당국에 체포됐다. 박근혜 정권이 들어서며 프랑스에서는 한국 관련 시위가 많이 있었다. 일부 시위의 중심에는 옛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 코리아연대 등 NL 계열이 다수 포함된 민중민주당이 자리했다. 이번에 간첩 혐의로 체포된 고위 공무원은 민중민주당의 프랑스 내 활동에 활발히 참여했다고 나타났다. 민중민주당은 북한에 동조하는 이적단체로 대법원 판결을 받았던 코리아연대의 주요 인사가 다수 포함된 정당이다.



2017년 8월 17일 북한 평양 만수대에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만난 케네데. 사진=프랑스코리아친선협회
11월 25일 북한의 스파이로 활동한 혐의로 프랑스 고위 공무원 베누아 케네데(Benoit Quennedey)가 체포됐다. 프랑스 정보기관인 대내정보국(DGSI·General Directorate for Internal Security)은 3월부터 그가 프랑스의 주요 정보를 북한에 전달한 혐의를 포착해 밀착 감시해 왔다. 프랑스 상원에 있는 사무실을 포함 자택, 부모의 집까지 압수수색했다.




케네데는 3월 13일 프랑스 파리 아라고초등학교에서 7600만 명이 넘는 인구를 가진 한국이 어떻게 해방 된 후에 1945년 일본의 점령을 받았는지 설명하고 한국어 글자를 가르치는 시간을 가졌다. 사진=프랑스코리아친선협회상원 내부를 압수수색하려면 상원 의장의 동의가 필수다. 제라르 라르셰 의장은 케네데의 간첩 협의에 대해 “상원 이미지가 심각하게 실추될 수 있는 사안”이라며 압수수색에 동의했다. 프랑스 언론 ‘르몽드’는 케네데의 체포에 대해 “사형 제도에 반대하는 케네데가 북한의 끔찍한 인권 상황에 대해서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케네데의 세부 혐의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반역죄가 적용됐다고 전해졌다. 친북 행위를 넘어 특정 지시에 따라 간첩 활동을 한 물증이 확보됐다는 게 프랑스 내 반응이었다.

케네데는 프랑스 상원에서 건축과 문화유산 등의 분야 전문 공무원이었다. 그는 2005년부터 북한을 자주 왕래했다고 알려졌다. 2012년 평양에서 열린 김일성 탄생 100주년 기념식에도 참석했다. 올해 있었던 북한 정권 70주년 기념일 행사의 프랑스 내 준비위원장이었다. 프랑스 언론 ‘르피가로’ 등에 따르면 그는 이미 평양을 8번 방문했다. 2017년 ‘북한, 알려지지 않은’이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케네데는 한불친선협회로도 불리는 프랑스코리아친선협회(AAFC·l‘Association d’amitié franco-coréenne)의 중심이다. 프랑스코리아친선협회는 1960년대 만들어진 북한과 긴밀한 단체다. 북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인 홍선옥 씨(68)가 프랑스코리아친선협회 북한 쪽 담당자다. 국가정보원이 특별히 관리하는 단체기도 하다. 2015년 2월 이 단체 소속 파트릭 퀜즈망 사무총장이 한국에 방문하자 인천공항출입국관리소는 국가정보원이 작성한 블랙리스트를 제시하며 입국을 불허했다. 그는 코리아연대의 농성에 참여할 계획으로 한국을 향했다.

케네데는 프랑스 내 한인 활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2013년 11월 2일 프랑스 파리 트로카데로 광장에서 열린 촛불시위에서 그는 “국가권력이 개입한 불법 조작선거 원천무효!” 피켓을 들고 있는 사진이 한 한인 커뮤니티의 사진기에 포착됐다. 이 촛불집회는 대통령 선거의 무효를 주장하는 자리였다. 2014년 6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위안부 수요집회와 2015년 4월에 같은 장소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문화제에도 그는 자리를 지켰다.



9월 북한에 방문한 프랑스코리아친선협회. 플래카드 글자 가운데 ‘ET’ 부분을 잡고 선 사람이 케네데다. 사진=프랑스코리아친선협회
이때까지만 해도 한국에 비판적인 프랑스 지식인의 모습을 띠었던 케네데의 행동은 2016년 들어 한국의 특정 정치 세력과 긴밀하게 연결됐다. 2016년 6월 3일 프랑스 파리 생미셸광장에서는 ‘김혜영 양심수 석방·박근혜 정부 퇴진’을 촉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김혜영 씨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던 코리아연대 회원이다. 김 씨 등 코리아연대 집행부 10명은 2011년 김정일 사망 당시 프랑스에 머물던 코리아연대 공동대표 황혜로 씨를 밀입북시키고 친북 성향 유인물을 배포하는 등의 혐의로 2015년 7월 구속됐다. 코리아연대는 북한에 동조하는 이적단체라고 1심과 2심에서 법적 판단을 받자 2016년 7월 자진 해산했다. 그 해 10월 대법원 판단도 1심, 2심과 같았다.

양고은 당시 코리아연대 공동대표가 준비한 이 행사에는 2015년 한국에 왔다가 강제추방된 파트릭 퀜즈망 사무총장 외 케네데도 함께 있었다. 케네데는 “김혜영 양심수가 목숨 건 단식을 진행하는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이 프랑스를 방문해 올랑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파리6대학에서 이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프랑스 학문과 외교의 권위가 실추됐다”며 “2014년 12월 통합진보당 강제해산 이후 공안탄압에 반대해 설립된 남코리아의민주주의적자유를위한국제위원회는 남코리아의 부당한 현실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데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코리아연대케네데는 2016년 11월 12일 환수복지당이 준비한 박근혜 퇴진 시위에도 참여했다. 환수복지당은 현재 당명을 민중민주당으로 바꿨다. 민중민주당엔 2016년 7월 자진 해산한 코리아연대 인사가 다수 포함됐다. 단체명만 다를 뿐 사실상 코리아연대 후신이다.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 결성 혐의를 받아 국가보안법으로 걸릴 소지가 적은 새 강령으로 조직 개편을 한 셈이다.

민중민주당은 통합진보당이 코리아연대를 거쳐 진화된 형태라는 게 정치권의 판단이다. 코리아연대 집행부 다수가 통합진보당에서 활동한 인물로 민중민주당의 중추인 까닭이다. 수사자료에 따르면 코리아연대 핵심 간부는 대부분 통합진보당 지역당에서 일했다. 통합진보당은 2014년 12월 헌법재판소 재판관 9명 가운데 8명의 찬성을 받고 해산됐다. 현재 민중민주당 사무총장은 통합진보당 출신이다.

이 자리에서 브누아 케네데는 “박근혜 대통령은 퇴진해야 한다. 최순실 스캔들뿐 아니라 그간 민주와 자유를 침해해 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자리에는 목수정 작가(48)도 함께 했다. 목 작가는 케네데와 2015년 4월 18일에는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문화제 때도 함께 있었다. 목 작가는 2004년부터 2008년까지 민주노동당 정책연구원으로 활동했던 인물이다. 이 시기 민주노동당 최고위원 선거에 출마하는 등 활발히 활동했던 사람이 옛 코리아연대 공동대표 황혜로 씨다. 황 씨는 1990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선고 받았다. 1999년 6월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대표 자격으로 밀입북했다가 다시 2년 6월을 선고 받았다.

황혜로 씨와 함께 코리아연대의 중심으로 분류됐던 인물은 황 씨의 남편 조덕원 씨였다. 그는 1992년 4월 남한조선노동당에 가입했다가 간첩 혐의로 구속돼 2001년 3월 출소했다. 2003년 코리아연대의 모태 ‘21세기코리아연구소’를 만들었다. 사정당국은 이 연구소를 두고만 보지 않았다. 그는 2005년 8월 19일 프랑스로 황 씨와 함께 갔다. 2009년 11월 둘은 프랑스에서 결혼했다.



목수정 작가. 사진 출처 = YTN 방송 화면 캡쳐
둘은 떠났지만 21세기코리아연구소의 수명은 끊어지지 않았다. 조덕원 씨와 함께 활동했던 이상준 씨는 2011년 11월 서울민주아카이브, 대안경제센터, 충남성평등교육문화센터, 로컬푸드연구회, 노동연대실천단, 코리아연구소 등 6개 단체를 통합해 코리아연대를 조직했다. 코리아연대 대표는 이 씨였지만 실제 전자우편 등으로 조직 행동을 지시한 사람은 조 씨였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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