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수 할머니는 정의연에 무엇을 말하나
<<옳은 피해자? 옳지 않은 피해자? >>
by임영서May 24. 2020
1. 드러나지 않은 피해자
우리나라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많게는 20만 명에 달할 것으로 학계와 운동 단체는 추정하고 있고, 일본 우익들은 과장되고 불가능한 숫자라고 뻗대고 있다.
일본의 뻔뻔함은 늘 보던 일이니 그렇다 치고 정작 궁금한 것은 그다음이다.
우리 정부에 공식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는, 돌아가신 분들을 포함해 240명이다. 정부에 신고하지 않고 지원 단체에서만 파악한 피해자를 더해도 240명에서 크게 늘어나진 않는다.
그렇다면 20만 명 가운데 왜 240명만 피해를 밝힌 것일까?
위안소로 끌려가 현지에서 살해되기도 하고,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기도 했겠지만, 아무래도 이 숫자의 간극이 다 설명되지 않는다.
1990년대 위안부 문제가 우리 사회에서 공론화된 뒤에도 피해 사실을 감춘 채 살아가시고 또 돌아가신 분들이 매우 많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피해 사실을 알리면, 그에 합당한 지원을 하고,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해 정부는 물론 지원단체가 치열하게 활동하고 있는데, 아니 대부분의 국민들이 그렇다고 믿고 있는데, 수많은 피해자들은 다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용수 할머니의 문제 제기와 폭로에서 이 질문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2. 아시아 여성기금..'피해자다운 피해자'?
1995년 일본 무라야마 총리 시절 위안부 문제 해법으로 등장한 아시아 여성기금은 여러 측면에서 곱씹어볼 과거지만, 결과만으로 볼 때 위안부 피해자를 ‘정당한’ 피해자와 ‘정당하지 못한’ 피해자로 구분하는 ‘정당하지 않은’ 사건이었다.
과거사 반성의 상징인 일본 무라야마 총리 시절, 일본 정부 차원의 배상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국민 성금으로 민간 기금을 만들어 할머니들에게 위로금(일본에선 이 돈을 속죄금이라 부른다)을 전달하려 한 시도, 바로 아시아 여성기금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일본 정부 차원이 아닌 민간 기금은 꼼수라고 규탄하고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주도로 이에 대한 강력한 거부운동이 펼쳐졌다.
그 비장한 분위기에 우리 정부 역시 일본 돈을 받으면 정부 지원금을 주지 않겠다고 했고, 실제로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각서까지 받았다.
정대협과 정부 대처의 잘잘못을 따지고 싶지는 않다. 근거와 명분과 이유가 충분히 있었고, 좀 더 세월이 흐른 뒤 더욱 정확한 평가가 있을 것이라 본다.
다만 확실히 짚고 넘어갈 분명한 것은 여성기금을 받은 할머니들에게는 ‘자격 없는’ ‘옳지 않은’ 피해자라는 낙인이 찍혔다는 사실이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에 따라서, ‘보호해야 할 피해자’와 ‘보호하지 않아도 될 피해자’로 나누어 사고하게 됐다는, 생각해보면 참으로 무서운 전환점이었다.
피해자 할머니들은 당연하게도 ‘투사’가 아니었고 그때까지 각자의 삶과 사정과 생각이 제각각인 상처 깊은 노인들이었고, 때문에 치유받는 길도 각기 다를 수밖에 없다.
일본을 국제사회에서 추궁해 진정성 있는 사죄를 받아내고 싶은 분들도 있겠지만, 빼앗긴 세월 때문에라도 당장의 안온한 삶이 시급하고 절실한 분도 있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일본을 상대로 싸우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할머니들에게 돈 받으면 도와줄 수 없다고 압박하는 당당함은, 우리 사회가(그것이 정부든 지원단체든) 감히 가져서는 안 되는 위험한 오만함이다.
해방 뒤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첫 증언이 나오기까지 위안부 피해자 문제는 일본 못지않게 철저히 외면해왔던 우리 사회가 어렵게 나선 피해자들에게 그런 낙인을 찍을 자격은 절대로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런 살벌한 상황을 목격한 숨어있는 피해자들이 어떻게 나설 수 있겠는가? 자신의 모든 것을 공개하고 일본과 맞서 죽을 때까지 싸울 각오가 돼 있지 않은 피해자들은 감히 나올 생각을 말라는 엄포로 들리지 않았을까?
우리 사회의 반발로 사실상 파탄난 아시아 여성기금이었지만, 일본은 2007년까지 조용히 계속 진행해 약 60명의 한국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이 돈을 수령한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
이 돈을 받은 할머니들은 정대협과 우리 사회로부터 비난을 받았고 두려워하게 됐고 숨어버리게 됐고 결국은 피해자로서 지워지게 됐다.
정당한 피해자와 정당하지 못한 피해자의 구분이라니... 과연 우리는 무슨 일을 한 것인가?
3. 결코 해서는 안 되는 게 있다면...
회계 부정 의혹으로 언론에서 요약하는 이용수 할머니의 문제 제기 중 정작 눈에 띄는 대목은 다음의 말이다.
“왜 거기(시민단체가 운영하는 위안부 피해자 거주 시설) 모신 할머니만 피해자냐? 전국의 할머니를 위하고 도우라고 주는 건데 어째서 거기 있는 할머니만 피해자라고 하나”
이용수 할머니는 아시아 여성기금을 반대하고 일본 정부의 사죄를 가장 강력히 요구해온 분이었지만, 운동 단체와 연결돼 있는 소수의 피해자만이 아니라 수많은 조용한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더 귀 기울였어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누군가의 규격에 맞춰진 전형적인 피해자의 모습이 아니라 그 틀에서 벗어나 있어도 피해자는 엄연한 피해자이며, 그들 모두에게 더 듣고 더 겸허하게 다가서 달라는 절절한 탄식에 다름 아니다.
정대협과 그를 이은 정의연 그리고 윤미향 당선인을 둘러싼 의혹은 언젠가 진실이 드러날 것이고 혹시 억울함이 있다면 풀릴 것이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위안부 운동이 훼손돼서는 안 된다고, 누군가는 일본을 이롭게 해서는 안된다고, 누군가는 지난 30년 윤미향 당선인 등의 헌신을 짓밟아선 안된다고.. 결코 넘어서는 안 되는 금기의 지점을 제시한다.
난 다르게 생각한다. 절대로 넘어서는 안 되는 금기의 지점이 있다면, 그것은 운동단체를 난처하게 만들었다고 해서 이용수 할머니를 ‘옳지 않은 피해자’로 규정하고 비난하는 일체의 언동들이다.
위안부 피해자는 이래야 하는데, 거기에 합치하지 않으면 위안부 피해자가 아니라는 그 난폭함이 이번에는 절대로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란다. 위안부 피해자 운동이 더욱 강력해지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피해자 운동은 피해자의 목소리에 겸허히 귀 기울이는 게 시작이자 끝이다.
· 피해자
· 위안부
· 운동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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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서기자
기자, 도쿄 특파원, 에디터...경험과 고민을 정돈하여 사건, 일본, 저널리즘의 '이면'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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