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09

‘관계있다’는 뜻으로 퍼지는 ‘개연성’ 단어의 유행 - 미디어오늘

‘관계있다’는 뜻으로 퍼지는 ‘개연성’ 단어의 유행 - 미디어오늘
‘관계있다’는 뜻으로 퍼지는 ‘개연성’ 단어의 유행
[강상헌의 말글 바다] <125> 개연성·가능성·필연성
강상헌 언론인·(사)우리글진흥원 대표 kangshbada@naver.com 이메일 바로가기승인 2014.08.03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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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많이 쓰는 말을 되도록 안 쓰려고 하는 심리일까? 판에 박은 것 같은 말, 빤한 소리, 소위 클리셰를 피하고자 하는 심리로 이해한다. 그러나 말과 글에는 적재적소(適材適所)의 판단이 꼭 필요하다. 사전의 도움 없이 새로운 단어를 시도하는 모험은 하지 않는 게 안전한 이유다.
최근 느닷없이 유행하고 있는 ‘개연성’이란 단어 때문에 나온 사족(蛇足)같은 얘기다. 사족은 ‘뱀 다리’다. 없어야 할 뱀의 다리를 그려 넣는 바람에 그림이 엉망이 됐다는 고사(故事)는 사실일 수도 있겠고, 개연성도 있다. ‘개연성’은 그럴 때, 그렇게 쓰는 말이다.

"석촌호수 수위 저하와 이로 인한 싱크홀 우려 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가운데 '(관계) 전문가 자문회의 결과 보고서'가 7일 공개됐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기사를 보았다. 제목은 ‘석촌호수 수위가 낮아지는 것과 제2롯데월드 공사 사이에는 개연성이 인정된다.’이다. ‘석촌호수 수위↓ 제2롯데월드와 개연성 인정’이란 문구도 함께 올랐다.

‘수위저하’와 ‘롯데공사’ 사이가 ‘인과(因果)관계일 가능성’을 말하는 것일까? 공사(원인)가 문제가 되어 수위(水位)가 낮아진 것(결과) 아니냐는, 두 요인이 서로 관계있다는 뜻을 그렇게 표현한 것으로 이해했다. 말하자면 ‘개연성=관계’가 됐다. 그러나 이는 옳지 않다.

이 글을 쓴 이의 생각과는 달리 ‘개연성’이란 말은 ‘관계’ 또는 ‘관련’의 뜻이 아니다. 개연성은 원래 서양의 논리학이나 철학의 ‘필연성’의 짝이 되는 개념으로 근대 일본이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만든 번역어로 짐작되는 말이다. 그 후 문학의 이론에서도 쓰이게 되면서, 간혹 식자(識者)들의 일상 대화에서도 오르내리게 된 것 같다.

필연성(必然性 necessity)은 어떤 것이 ‘그 이외(以外)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짝인 개연성(蓋然性 probability)은 단정할 수는 없으나 대개 그러리라고 생각되는 성질 또는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다. 간단한 말로 ‘그럴듯함’ ‘그러리라 생각됨’ ‘있음직함’ 정도로 풀어도 될 듯하다. 다시 보자, ‘관계’가 ‘그럴듯함’과 같은 말인지.

‘개연성’을 그런 식(뜻)으로 잘 못 쓰는 경우가, 언론에서까지, 최근 부쩍 늘고 있다. ‘관계가 있다’는 뜻을 ‘개연성이 있다’라고 쓰고는 ‘내 이 기발한 어휘력 어때?’하며 읽는 이들의 감탄을 기대하는 것일까? 또 연예인들이 주로 출연해 입담과 재주를 겨루는 프로그램에서도 자주 듣는다.

그런데 의외로 쉬운 말이다. ‘그 드라마는 개연성이 있어’하는 용례(用例)가 적절하다. ‘그럴싸하다’는 일상의 언어가 바로 그 말이다. ‘있어 보이는 말’ 유행 증후군일까? 왜 멀리 있던 한자어는 끄집어내서, 그나마 잘못된 용도로 퍼뜨리고 있는지. 누가?

또 하나, 개연성을 ‘가능성(可能性)’과 똑같은 단어로 쓰는 요즘의 경향에 관해서도 적절한 궁리가 필요할 것으로 본다. 이 또한 개연성 단어의 유행과 함께 관찰되는 현상이다. 가능성은 ‘앞으로 실현될 수 있는 성질’이다. 개연성 가능성 필연성의 관계를 살피자는 얘기다.

이런 지적(指摘)에 불편함을 느낄 이들이 없지는 않겠다. 그러나 (영향력 가진) 일부의 잘못이 우리의 언어생활을 망가뜨리는 것은 막아야 한다. 자연스런 변화와 오류(誤謬)에 의한 오염은 구별되어야 하는 것이다.

   
▲ 강상헌 언론인·(사)우리글진흥원 원장
 < 토/막/새/김 >
‘개연(蓋然)’의 한자를 톺아보자. 개(蓋)는 풀을 엮어 만든 덮개다. 해 가리개[양산(陽傘)]이기도 하다. 오픈카(카브리올레 또는 컨버터블)라고 부르는, 지붕 열고 다니는 무개차(無蓋車)의 ‘개’다. 덮고 가린다는 뜻이 ‘대개(大槪)’의 뜻으로 늘어났다. 뜻 늘여 쓰는 한자의 용법 ‘인신’이다. 당기고[인(引)] 편다[신(伸)]는 말이다. 그럴 연(然)과 함께 ‘대개 그러려니’하는 뜻이 됐다. 말의 뜻은 그렇게 늘어나고 변하는 것이다. 이유나 논리가 꼭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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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연성 (蓋然性 )
발음 [개ː연썽듣기]
품사 「명사」
일반적으로 그 일이 생길 수 있는 가능성.

주장의 개연성.
개연성이 높다.
개연성이 없다.
개연성이 있다.
개연성이 크다.
개연성을 가지다.
개연성을 드러내다.
이번 사고는 운전자의 부주의로 일어났을 개연성이 높다.
승규의 말은 개연성이 부족하여 우리에게 믿음을 주지 못했다.
가: 어제 본 영화 재미있었어?
나: 처음부터 끝까지 개연성이 없어서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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