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어보 영화 후기
지식과 권력의 상관관계
byTERUApr 02. 2021아래로
1801년(순조 1)에 신유박해로 정약전(설경구), 정약종(최원영), 정약용(류승룡) 3형제는 이들은 조선시대의 유교 사회에 위협이 되는 사학(천주교)를 받아들였다는 이유로 탄압을 받았다. 정약종은 순교했고, 형인 정약전은 흑산도로, 정약용은 강진으로 유배됐다. 영화는 귀양을 간 정약전이 청년 어부 창대(변요한)의 도움을 받아 우리나라 최초의 어류도감 <자산어보>를 집필하는 과정을 그렸다.
영화는 자산어보의 서문에 정약전이 ‘어류에 박식한 흑산도 청년의 도움을 받았다’라고 직접 적은 문구에 상상력을 더했다. 그 언급을 토대로 창대의 이야기는 모두 창작되었다. 그의 가족사, 소꿉친구 복례(민도희) 역시 허구의 이야기다. 이준익 감독은 이번에도 전작<황산벌>의 계백(박중훈)과 김유신(정진영), <왕의 남자>의 공길(이준기)과 연산군(정진영), <라디오스타>의 박민수(안성기)과 최곤(박중훈), <사도>의 사도세자(유아인)와 영조(송강호), <동주>의 윤동주(강하늘)와 송몽규(박정민), <박열>의 박열(이제훈)과 후미코(최희서)처럼 두 인물의 대비를 통해 주제를 부각시킨다.
입신양명을 위해 성리학을 배우고 싶어 하는 창대는 어류도감 집필을 돕는 대가로 정약전에게 가르침을 구한다. 정약전은 그런 창대가 기특하면서도 안쓰럽다. 보통 다른 영상매체에서 귀족은 명분·허례허식을 고집하는 추상·관념적인 캐릭터로, 평민은 실용적이거나 고된 현실을 반영하는 사실·실체적 캐릭터로 구분 짓는 이분법적인 묘사가 많다. 그런데 <자산어보>는 그 구도를 뒤집어 이상적인 창대와 현실적인 정약전로 배치한다. 이준익 감독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놀랍게도 실학자 정약전 역시 창대에게 ‘상놈’이라고 부르는 신분제 사회의 ‘사유습성(the fittest habit of thought)’에 갇혀있다고 말이다. 사유습성이란? 법을 포함한 모든 제도는 그 제도가 만들어진 시대를 지배했던 정신적 태도를 반영한다. 사람들은 그 제도 속에 살면서 체득한 정신적 태도에 따라 사유하는 습성을 갖게 된다. 그런데 삶의 환경은 지속적으로 변화한다. 그 변화는 끊임없이 현실에 더 적합한 관점과 사고방식을 요구한다. 과거의 지배적 사유습성이 만든 제도가 변화된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과거와 현재의 불일치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영화<자산어보>가 진행될수록 시대흐름을 거부하는 지배층과 변혁을 받아들이려는 민초가 충돌한다.
영화 후반부에서 창대는 지배층을 만난다. 극중 개혁적으로 그려지는 정약전도 이럴지언데 성리학을 근본으로 한 정치 기득권 세력에게 창대는 어떤 존재일까? 그 불편한 시선은 성리학 이데올로기(사유습성)를 유지하기 위해 실학, 서학 등을 금지한 연유가 밝혀지면서 극대화된다. 이처럼 영화 후반부는 우리가 영상매체에서 흔히 봐왔던 ‘구조주의적 관점’으로 진행된다. 보다 자세히 설명하면, 알튀세르가 말한 ‘국가란 이데올로기를 만드는 장치다’로 요약 가능하다. 가정과 학교에서 사람들이 무의식중에 자신이 속한 사회계층을 통해 사고방식과 감성을 배우고 결과적으로 후세에 전해준다고 설명한다. 이렇게 해서 ‘사회를 유지하는 관념(이데올로기)’이 유지된다는 논리다.
이처럼 영화 <자산어보>는 책과 현실, 이론과 실전, 사상과 정치, 철학과 과학 등 서로 다른 생각끼리의 작용과 반작용으로 이뤄진 영화다. 책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지식과 책으로는 기록할 수 없는 경험이 끝없이 충돌한다. 성리학과 사학, 양반과 상놈, 현실과 이상, 땅과 바다 등 대비되는 소재들이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진정한 가르침은 무엇인지'를 질문하고, '국민을 위한 정치란 무엇인지'에 관한 진중한 고민을 하도록 이끈다.
★★★ (3.2/5.0)
Good : 훈훈한 인간미
Caution : 밍밍한 뒷맛
●이준익 감독은 "사극이 영웅이나 전쟁, 정치만 자극적으로 좇다 보니 일상성이 간과됐는데, 사건보다 사소한 일상이 훨씬 더 가치 있는 세계관을 드러내 줄 수 있다"라며 민중사관을 드러낸다.
●역사와 차이점이 몇 가지 있다. 황사영 백서사건이 일어날때 이미 정약전은 신지도에 유배중이었다. 그러다가 흑산도로 이송된다.
●정약전과 연을 맺는 분의 이름이 극중 인물과 다르다.
●<표해시말> 집필을 계기로 문순득은 정약전과 우정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문순득은 정약전을 가족처럼 모셨고,정약전이 유배지에서 사망했을때는 극진하게 장례도 치러주었다.
●정약종은 실제로는 하늘을 보고 사망했다고 한다.
2021-04-13
자산어보 영화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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