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용득
<풀>과 <요코 이야기>
딱히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이 책 두 권을 연달아 읽었다. <풀>은 만화가 김금숙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의 생애를 만화로 재구성한 것이고, <요코 이야기>는 일제 시대 식민지 조선에서 태어나 자랐던 요코 가와시마 왓킨스가 패망 무렵 자기 가족의 조선 탈출기를 소설로 재구성한 것이다. 두 책을 굳이 나란히 언급하는 까닭은 두 책에서의 아쉬운 점이 두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서로 메꿔주듯이 보완됐달까, 어디까지나 내 감상은 그랬다.
요컨대 두 책 속 실존 인물, 그러니까 이옥선과 요코의 동선은 시기만 다를 뿐 공교롭게도 겹친다. <풀>은 부산 보수동에서 태어난 이옥선이 수양딸로 가게 된 울산에 한 식당에서 중국 연길에 일본군 위안소로, 연길에서 다시 해방 후 한국으로 돌아오기까지의 여정과 그 이후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반면 <요코 이야기>는 이북 나남 지역에 살고 있던 요코 가족이 서울과 부산을 거쳐 일본으로 돌아가기까지의 여정과 그 이후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옥선은 조선을 남에서 북으로 가로질러 중국 연길까지 갔고, 요코 가족은 이옥선이 위안부로 동원되면서 이용했을 기차의 화물칸을 거꾸로 조선을 탈출하면서 이용한 셈이다. 그런 식으로 이옥선과 요코의 동선이 엇갈리는 지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그전에 두 책의 공통점부터 얘기하자면, 먼저 두 책 모두 공복에 읽으면 사정없이 배가 고파진다. 두 책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손에 잡히는 무엇이든(그게 고양이 똥일지라도) 입속으로 일단 넣게 될지 모른다. 가와다 후미코가 오키나와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배봉기의 생애를 기록한 <빨간 기와집>도 마찬가지였지만, <풀>도 이옥선의 굶주림만큼은 <빨간 기와집> 못지않게 생생하게 전달한다. 아시다시피 그 당시 위안부로 동원됐던 여성은 대부분 가난한 집안 출신이다. 이들이 궁핍한 환경에서 얼마나 굶주렸는지는 위안부로서의 피해에만 집중된 단편적인 이야기에서는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빨간 기와집>이나 <풀>은 그런 면에서 위안부로 동원됐던 여성의 피해가 해방 이후에도 살아가는 동안 얼마나 심각했는지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요코 가족은 패망 전까지 굶주릴 일이 없었다. 요코 아버지는 만주에 배속된 일본 정부의 고위 관료였고, 요코 가족은 조선인에게 지배계급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일본의 패망은 곧 조선의 해방을 의미한다. 그 무렵 조선은 적어도 일본인에게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이 전복되는 시공간이었을 테고, 요코 가족은 조선인의 눈을 피해 정든 집을 버리고 탈출을 시도한다. 그 과정에서 요코 가족은 쓰레기를 주워 먹으며 목숨을 부지한다. 우여곡절 끝에 일본으로 돌아가지만 요코 가족은 자신들의 조국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아래는 후쿠오카 항에 도착한 요코의 독백인데 패망 직후 일본사회의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몇 해 동안 나는 언제나 아름다운 조국을 꿈에 그려왔었다. 그리고 조국에 사는 사람들의 생기 넘친 모습을 상상하곤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폐허가 되다시피 한 후쿠오카의 풍경은 내게 말할 수 없는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중략) 게다가 우리를 대하는 저 남자(자국 난민을 상대하던 현지 관료)의 태도는 또 어떤가. 그는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도대체 왜 왔소? 우리는 당신들 없이도 잘살고 있는데.’”
패망 후 일본에 잘살고 있던 일본인에게 식민지 또는 점령지에서 살아 돌아온 일본인은 이미 ‘우리’가 아니었다. 실제로 이들이 일본사회에 흡수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전까지는 차별과 배제의 대상이었다. 또한 요코 가족이 조선을 탈출하면서 목격했던 조선인이 일본인을 괴롭히는 장면은 아무리 소설이라고 해도 아주 과장된 것이 아니다. 일본 정부는 패망 직후 식민지와 점령지에 거주하던 자국민을 말 그대로 버렸다. 그들의 안전한 귀환을 확보할 만한 여력이 없었고, 그들은 여러 위협으로부터 알아서 살아남아야 했다.
그건 위안부 피해자도 마찬가지였다. 자국뿐만 아니라 식민지와 점령지 여성을 자신들의 전쟁에 성적 도구로 동원했던 일본군도 패망 직후 일본 정부가 해외에 거주하던 자국민을 버리듯 똑같이 위안부를 버렸다. 게다가 해방 후 한국사회도 이들의 귀환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남성 중심 가부장 사회에서 이들의 피해는 민족의 수치로 여겨지기 일쑤였고, 낯선 땅에서 해방을 맞았던 위안부는 전쟁의 희생자가 아니라 포로 신분으로 억류되기도 했다. 그런 식으로 해방 후에도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위안부 피해자가 상당수였다.
이옥선도 그들 중 하나였다. 해방 후 연길에 버려진 이옥선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을 강간했던 조선인 남성을 다시 찾아간다. 그 조선인 남성은 연길에서 징용 노동자를 감독하던 ‘근로봉공대’ 소대장이었는데, 그는 이옥선과 결혼 후 이옥선에게 자기 가족을 떠맡기고 달아났다. 졸지에 과부 신세가 된 이옥선은 그의 가족을 혼자 부양해야 했고, 다른 남성과 재혼 후에도 재혼 남성의 가족을 부양하면서 노동력을 계속 착취당했다(이는 일전에 소개했던 <전쟁과 성폭력 비교사>에서 강간·매매춘·연애·결혼에 이르기까지, 그 사이에 분명하게 구별되는 성폭력과 그렇지 않은 성폭력을 연속선상에서 놓고 보려는 ‘성폭력 연속체’ 개념이 어떤 식으로 현실에서 작동하는지 잘 보여준다:
https://www.facebook.com/yongdeuk77/posts/5755519687807474
<전쟁과 성폭력의 비교사>)
그나마 요코는 교육열이 강했던 어머니 덕분에 차별과 배제 속에서도 일상을 되찾을 수 있었다. 요코 어머니는 교토역에서 노숙을 하면서도 요코와 요코의 언니를 기어이 학교에 보냈다. 그건 아마도 훗날 요코가 이옥선과 여타 위안부 피해자와 달리 다른 이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자신이 겪었던 일을 자기 목소리로 얘기할 수 있었던 배경이 아닐까 한다.
이쯤 되면 어디 감히 둘을 함부로 비교하냐면서 불편해할 분들이 제법 계실 것 같다. 그럴 만하다. <요코 이야기>는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 삼아 근대화라는 명분으로 착취한 사실은 쏙 빼놓고, 가해국의 일원인 주제에 자신의 피해만 부각시켜 일본의 전쟁과 식민지배 책임을 흐리는 거짓 소설로 알려져 있으니까. 여기서 <요코 이야기>가 열세 살 소녀 시점의 가공된 이야기라는 점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그렇다고 <요코 이야기>를 가공된 이야기이므로 대충 넘어가자는 얘기가 아니다. <요코 이야기>는 앞서 말했다시피 어린 소녀의 눈을 통해 바라본 전쟁의 참상이다. 그러다 보니 역사적 배경이 생략됐고, 요코와 요코 가족의 수난보다 역사적 배경이 더 중요한 이들에게 <요코 이야기>는 불편하기 짝이 없다. 그렇다면 <요코 이야기>는 전부 다 거짓일까. <기억 전쟁>에서 임지현도 <요코 이야기>의 탈역사성은 문제지만, 책 내용을 거짓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런데 진보든 보수든 한국사회의 (요코 이야기) 독법은 요코의 고통을 아예 부정하려는 듯하다. 요코의 아버지가 생체실험 등으로 악명 높은 관동군 731부대의 장교였다는 마타도어를 넘어서 아예 <요코 이야기>를 역사를 왜곡한 거짓말로 몰고 간다. 나남에는 대나무가 자라지 않는다거나, B-29기의 폭격은 있지도 않았고, 요코 일가가 피란 갈 당시에는 북한 지역에 아직 ‘공산군’이 조직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요코의 기억을 거짓으로 모는 근거로 제시된다. 실증주의의 메스로 증언의 부정확성을 해부하고 부정확성을 근거로 증언 자체를 거짓말로 몰고 가는 이 논리는 일본 우익의 ‘위안부’ 부정론과 매우 유사하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흐릿하고 자의적인 기억을 사실로 인정할 수 없으며, 증언을 뒷받침하는 공문서가 없다는 이유로 ‘위안부’의 역사를 말소해버리려는 일본 우익의 논리 역시 실증주의를 무기로 삼고 있다. 이런 논란은 이미 홀로코스트 부정론에서부터 발견된다. 공식 문서와 아카이브를 가진 가해자가 증언밖에 가진 것이 없는 하위계층 희생자의 기억을 지워버리는 무기로는 ‘문서의 실증’만한 것이 없다.”
<기억 전쟁>에 의하면 <요코 이야기>가 한국인에게 불편한 까닭은 탈역사성에만 있지 않다. 이를테면 폴란드 예드바브네 지역에서의 유대인 학살 사건은 나치의 소행이 아니다. 생존자 증언에 의하면 그들은 나치가 아니라 ‘이웃들’에 의해 살해당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나치의 최대 희생자여야만 하는 폴란드 민족주의자들에게 그와 같은 사실은 역사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불편한 기억에 불과하다.
<요코 이야기>의 한계가 탈역사성이라면 <풀>의 한계는 단순화된 몇몇 캐릭터 아닐까 한다. <풀>에서 위안소를 이용하는 일본군 병사는 예외 없이 본성에 충실한 것처럼 묘사되는데, <전쟁과 성폭력의 비교사>에서 병사의 수기를 면밀히 파고들었던 히라이 가즈코에 의하면 대부분의 병사가 아무런 죄의식 없이 위안소를 이용했던 배경은 성욕과는 그다지 상관이 없다. ‘용무가 끝나면 곧바로 퇴실할 것’이라는 위안소 규정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은 나름의 체계 속에서 여성의 성을 줄기차게 착취했다. 한편 그와 같은 규정에 자신이 물건 취급받는 모멸감을 느끼기도 했는데, 그러면서도 자신들이 위안부를 비인간화하는 모순은 대부분 알아차리지 못했다. 결국 애국이라는 명분의 비인간화 과정은 일본군 병사로 하여금 자신들보다 더 약한 존재를 손쉽게 비인간화하는 수단이 됐다.
또한 <풀>에서 일본인 위안부는 조선인 위안부와 달리 ‘돈을 벌러 온 것’이라면서 선을 긋고, 조선인 위안부를 차별한 존재로만 암시된다. 일본인 위안부가 이른바 ‘자발적 매춘부’였고 아무리 돈이 목적이었다 하더라도 그들의 피해가 섣불리 부정되어서는 안 되는데, 그 부분은 대단히 아쉬웠다. 다행히 본문 뒤에 덧붙인 윤명숙의 해설에서는 그 부분을 콕 집어 일본인 위안부 역시 일본사회 내에서 가장 억압받던 존재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말머리에서는 이옥선과 요코의 동선이 겹친다고 했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인생까지 겹치는 것은 아니다.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이 전복되는 순간 잠시 교차할 뿐, 해방과 패망 후 두 사람의 인생은 전혀 달랐다. 따라서 두 사람의 피해를 동일선상에 놓고 어느 쪽 피해가 더 큰지 따질 필요는 없다. 다만 태어나기 전부터 부모와 국적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말하자면 우리는 이옥선과 요코의 태생이 뒤바뀌었더라도 누구에게든 그와 같은 일이 두 번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공부를 하고 운동을 하는 게 아닌가 싶다. 두 사람의 피해를 각각 따로 공감하되 동시에 공감할 줄 아는 지혜도 필요하다는 얘기다.
두 사람의 인생이 달랐던 것처럼 두 책의 운명도 판이하게 엇갈렸다. <풀>은 해외 만화제에서 큰 주목을 받으면서 각종 상을 휩쓸며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 출간됐다. 작년에는 일본어판도 출간됐다고 한다. 아마 코로나 판데믹이 아니었으면 더 큰 주목을 받았을 것이다. 반면 1986년에 미국에서 출간된 <요코 이야기>도 <풀>처럼 출간 당시에는 적잖은 반향을 일으켰다. 그 반향이 이어져 미국에서는 <요코 이야기>를 중학교 과정에서 반전 교육을 위한 독서 교재로 채택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출간부터 거부됐다. 소설 속에서 요코 어머니가 전쟁을 일으킨 일본 정부를 탓하는 장면이 문제가 됐다고 한다.
그러던 <요코 이야기>는 2005년에 한국에서도 번역 출간돼서 몇몇 언론으로부터 나름 호의적인 평가도 받았다. 그러나 2년 후 한 방송으로 시작된 여론몰이로 출판사가 뭇매를 맞고 사과문을 올리고 유통 중이던 책을 절판시켰다. 조선인을 가해자로 그렸다는 이유에서였다. 미국 내 한인사회의 반발로 만만치 않았다. 그 반발로 <요코 이야기>는 미국 중학교 과정에서 퇴출되기도 했는데, 몇 년 전에 다시 채택됐다고 한다. 이 일련의 논란 끝에 <요코 이야기>는 뒤늦게 일본에서도 2013년에 출간됐다. 그런데 한때 일본사회에서 거부했던 <요코 이야기>를 지금은 일본 우익이 자신들도 희생자라는 논리에 곧잘 동원하고 있는 모양이다. <기억 전쟁>에서 임지현은 이처럼 과잉된 민족주의가 오히려 역사 부정론자들의 반동을 부추기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요코 이야기>가 한국에서 다시 출간될 일은 없을 것 같다. 미국 내 한인사회의 <요코 이야기> 퇴출 운동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한 강연에서 일본 정부를 대신할 수 있다면 몇 번이라도 대신 사죄하고 싶다던 요코의 수난은 현재진행형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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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comments
Park Yuha
권 작가님 이런 테마 글들만 모아도 책 한권 낼 수 있을 듯. 잘 읽었어요.
실은 그 후 논문도 썼죠. 모르고 있었는데 저도 써야겠네요.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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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득
박유하 말씀 고맙습니다. 실은 평소 신뢰하는 몇몇 출판업자에게 관련 주제의 책을 제안한 바 있는데 왜 불구덩이로 뛰어드냐며...(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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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득
박유하 농담이고, 책까지 낼 만한 깜냥이 안 됩니다. 관련 주제 나름 공부하면서 마주한 부조리를 제 작업에 에둘러 녹여내기만 해도 더 바랄 게 없습니다.
· Reply · 2 d ·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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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준
포스팅 본문이 좀 이상하게 끊겼네요? 중간에 끊기고 처음 시작부분이 복붙돼 걸려있습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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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 Suh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다른데서 흔히 볼 수 없는 권용득 작가님 만의 균형잡힌 시선이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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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e-Kwan Kim
<요코 이야기>의 ‘탈역사성’이란 어떤 걸 의미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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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득
김치관 요코 가족이 조선에 정척한 배경이 생략돼서 그 부분은 비판받을 여지가 있다는 식의 얘기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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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e-Kwan Kim
권용득 네, 약간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의 말인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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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득
김치관 ㅎㅎ그렇죠. 눈치채셨겠지만 그런 학자(?)스러운 표현은 편의상 본문에서 그대로 인용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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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nHye Seo
임지현의 <기억전쟁>을 읽고나서 <요코 이야기> 한번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만 하다가 잊고 살았었습니다만. 방금, <요코 이야기> 뿐만 아니라 <풀>까지 함께 훑어보면서 균형잡힌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글을 읽을 수 있어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더 나아가 지금 진행상황까지도 알 수 있어서 더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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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득
서은혜 지금 진행상황은 위키백과랑 나무위키 참고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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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아
독도문제로 반일감정이 습관적으로 최악일때 요코 이야기가 뉴스에 나오고 이상하게도 일본이 계속 거짓말을 할때마다 정부도 뭔가 그만큼의 나쁜짓을 하는것 같았어요. 악은 악으로 덮는 .
결국 요코이야기는 절판되었네요ㅠㅠ
도대체 우리땅이라는 우리안에 내가 들어는 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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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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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명의 사회학·역사학 분야 연구자가 공동 저자로 참여한 <전쟁과 성폭력의 비교사>를 관통하는 주제를 한마디로 하면 ‘새로운 듣기의 가능성’이 아닐까 싶다
. 91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학순의 실명 증언은 이 책의 공동 저자인 우에노 치즈코가 ‘쇼크’라고 표현할 만큼 큰 화제였다. 그전에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 관련 연구와 피해자 지원활동은 여러 각도에서 진행되고 있었지만, ‘김학순 쇼크’ 이후에야 비로소 제대로 공론화되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마침 90년대 들어서면서 그전까지 전시 성폭력을 전쟁의 부수적 피해 정도로 여겼던 국제사회도 구 유고슬라비아와 르완다 분쟁에서 벌어진 점령군에 의한 집단 강간 사건에 주목하면서 전시 성폭력을 제노사이드에 버금가는 주요 전쟁범죄로 다루기 시작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가시화된 시점과 전시 성폭력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식이 변화하기 시작한 시점은 그런 식으로 연속선상에 있다(나치 수용소 내 매춘시설에서 성노동을 강요당했던 한 피해자는 김학순의 실명 증언 이후 오랜 침묵을 깨고 독일 TV 언론의 취재에 응하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김학순의 실명 증언은 큰 의미가 있고, 김학순의 실명 증언이 가능했던 까닭은 김학순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으려는 청자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청자가 듣기만 하는 수동적인 존재는 아니다. 화자의 이야기를 통제하거나 지배하기도 한다. 그 어떤 화자든 화자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로부터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고, 화자 또한 그 사실을 예민하게 알아차린다. 자신의 이야기가 공동체 내에서 어떻게 소비되는지 그 누구보다 잘 안다는 얘기고, 화자의 이야기는 어느 순간 청자가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로 변질되기도 한다. 요컨대 지난해 5월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의 ‘이용만 당했다’는 폭로 이후 이용수를 향한 비난 대부분은 이용수가 자신들이 지지하는 정치 세력(또는 정치인)을 흠집 낸다는 원망이었다. 그들에게 이용수의 고통은 안중에 없었고, 그들에게 이용수의 폭로는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였던 셈이다.
이 책에서도 같은 지적이 계속 반복된다. 어떤 화자의 어떤 피해 서사는 손쉽게 가시화되고 동시에 공적 기억으로 존중받는 반면, 그럴수록 풍선 효과처럼 찌그러지고 결국에는 풍화되는 피해 서사도 있다. 이 책의 저자들은 모두 후자의 피해 서사에 주목하면서 공동체가 어떤 피해 서사를 공적 기억(중심 서사)로 선별하고, 또 동시에 공동체에 이롭지 못한 사적 기억(주변 서사)를 지워나가는지 그 배경을 파고든다. 또한 공동체 내에서 오랜 시간 침묵을 강요받은 화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해방되는 과정도 잘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면 2차 세계대전 당시 베를린에서 소련군에 의한 집단 강간 사건에 관한 수기는 종전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터져 나왔다. 그 고난의 수기는 비교적 솔직한 편이었고, 자신이 속한 공동체로부터 통제되거나 지배되지 않았다. 피해자들은 자신들이 당한 일을 독일군이 점령지에서 했던 악랄한 행위에 대한 보복쯤으로 이해하고 있었고, 소련군의 만행을 ‘자연재해’로 여기기도 했다. 게다가 종전 후 미소 냉전 상황에서 자유주의 진영은 이들의 피해 서사를 소련을 비난하는 선전 도구로 삼기도 했다(그 대표 피해 서사 격인 <함락된 도시의 여자>도 초판은 미국에서 먼저 출간됐다). 다시 말해 피해자들은 일체의 저항이 불가능한 상황을 널리 이해받고 있었고, 따라서 자신의 피해 사실을 굳이 숨길 필요가 없었다.
반면 일본군 고참 병사에게 장기간 구속되어 그 고참 병사의 아이까지 낳았던 중국의 난런푸는 해방 후 삼반오반 운동 당시 ‘역사적 반혁명’ 죄를 뒤집어쓰고 투옥됐다. 난런푸의 가족은 항일세력에게 몰살당하고, 난런푸도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처럼 공동체 내에서 여성의 성폭력 피해가 수치스러운 일로 낙인찍히면(거기에 더해서 ‘적에게 더렵혀진 여자’ 또는 ‘적에게 협력한 여자’라는 낙인까지 찍히면) 아무리 억울하고 고통스러워도 당사자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베를린에서의 피해자들처럼 자신이 왜 그런 일을 겪어야 했는지 역사적 맥락 속에서 살필 기회조차 없고, 이들의 피해는 다중적 억압 속에 방치되다 사라지기 마련이다. 난런푸 같은 극단적 사례는 없었지만, 해방 후 조선인 위안부의 피해 서사도 같은 이유로 오랜 시간 억압돼왔다. 해방 후에도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 피해자가 부지기수였고, 이들은 당시만 해도 자신들의 피해 서사를 김학순처럼 입 밖으로 꺼내놓을 수 없었다. 그건 조선인 위안부뿐만이 아니었다. 일본인 위안부도 마찬가지였고, 미군 기지촌 성노동자(소위 ‘빵빵’: 일본 정부는 패전 직후 ‘성방파제’ 삼아 미군을 상대할 여성을 모집했지만, 강제로 동원된 경우도 적지 않았다)와 종전 후 만주에 남겨진 일본인 여성과 나치 수용소 내 성노동자도 같은 이유로 자신들의 피해를 오랜 시간 숨겨야 했다.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안 사실은 일본의 우생보호법(지금은 ‘모체보건법’으로 바뀌었다)에 관한 비하인드 스토리다. 그전까지만 해도 일본의 우생보호법을 타민족의 아이나 장애아를 선별하려는 나치의 인종말살정책쯤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법이었다. 종전 후 중국과 조선 각지에 남겨진 일본인은 현지 주민들에게 분풀이 대상이 됐다. 특히 만주에 한 일본인 거주지(구타미 개척단)는 현지 주민들의 표적이 되는 바람에 주민이 집단자결하기도 했다(1명 생존했다). 그 소식이 알려지면서 인근의 다른 일본인 거주지(구로카와 개척단)에서는 만주까지 진주한 소련군에게 보호를 요청했다. 소련군은 보호를 빌미로 여성의 몸을 요구했고, 이때 소련군에게 희생된 여성은 부녀자보다 주로 젊은 미혼 여성이었다. 특히 출정 병사의 아내는 예외였는데, 관련 사건을 파고든 이 책의 공동 저자 이노마타 유스케는 눈앞에 여성보다 부재하는 남성 동료의 여성을 우선시한 ‘호모소셜한 연대’의 결과라고 지적했다. 즉, 당시만 해도 여성은 남성의 소유물로 간주됐고 호모소셜한 연대는 누구의 소유물도 아닌 여성부터 희생양 삼았다.
이 여성들이 일본으로 돌아올 무렵에는 이 여성들의 강제 임신이 사회 문제로 불거졌다. ‘적에게 더렵혀진 여자’라는 낙인이 두려워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도 종종 있었지만, 이 여성들에게 임신을 중단할 자기결정권은 없었다. 당시 일본에서 낙태는 중범죄였고, 일본 정부는 결국 우회적으로 낙태를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또 당시에는 물자 부족 따위의 이유로 마취약이 없어서 관련 수술은 모두 마취 없이 이루어졌다. 그 일련의 사건 이후 일본 정부는 우생보호법을 만들어 강간에 의한 강제 임신뿐만 아니라 경제적 이유로 인한 임신 중단까지 법적으로 허용했다. 이 책의 공동 저자인 히구치 게이코는 우생사상을 바탕으로 한 악법이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이 다른 나라에 비해 임신 중단의 자유가 보장된 배경이라고 지적했다. 흥미로운 것은 앞서 말한 사건이 가시화된 이후다. 앞서 말한 사건은 일본에서도 가시화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데, 이 책의 공동 저자 사토 후미카에 따르면 ‘배외주의적이고 내셔널리스틱한 인터넷 공간에서 (해당 사건은) 이웃 나라에 대한 적의를 부추기는 재료로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이 책은 비가시화된 피해 서사를 국경을 초월해 비교하고 있지만, 단지 비교에만 그치지 않는다. 어느 쪽 피해자의 피해 서사가 더 고통스러웠는지 불행올림픽을 하자는 것도 아니다. 화자의 이야기를 어떻게 듣느냐에 따라, 전시 성폭력처럼 비일상 속 성폭력뿐만 아니라 일상 속 성폭력까지 연결해서 살펴볼 계기가 되고 그와 같은 시도를 통해 새로운 국면이 열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리즈 켈리의 ‘성폭력 연속체’ 개념을 사용해 강간·매매춘·연애·결혼에 이르기까지, 이 사이에 분명하게 구별되는 성폭력과 그렇지 않은 성폭력을 연속선상에서 놓고 보려는 우에노 치즈코와 다른 공동 저자의 시도는 아마도 그런 차원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이를테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서 결혼이주여성 문제까지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단서가 있을 테고, 이들의 시도는 여러 비기사회된 전시 성폭력 사건을 망라하면서 그 단서가 선명해지도록 만드는 시도였다고 본다. 한마디로 하면 남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 그리고 우리의 문제로 보게 만드는 책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읽었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읽었는지 궁금해서 서평을 검색해봤다. 짧은 독자 서평 몇 개와 언론 서평 두 개밖에 찾지 못했다. 그마저 언론 서평은 모두 이 책의 의도를 다소 악의적으로 해석한 비판조였다. 한 줄로 요약하자면(외람되지만 해당 서평 작성자들도 이 책을 그런 식으로 요약하였으므로) 어떻게 감히 일본인 위안부와 조선인 위안부를 동일선상에 놓느냐, 왜 조선인 위안부 때문에 일본인 위안부가 비가시화됐다며 징징거리느냐는 식이다. 또 한 언론 서평은 초장에 우에노 치즈코가 박유하를 인용하면서 사용한 ‘동반자’라는 표현을 꼬투리잡고 있었다. 그 ‘동반자’는 조선인 위안부와 일본군 병사가 종전 직후 현지 주민에게는 같은 편으로 뭉뚱그려질 수밖에 없다는 문맥에서 사용했는데, 실제로 싱가포르나 오키나와 등에서 해방을 맞았던 조선인 위안부는 피해자가 아닌 포로 신분이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앞서 말한 ‘동반자’ 같은 표현을 ‘가해자의 언어’ 또는 ‘(위안부 문제) 부정론자의 언어’로만 보고 일본의 책임을 흐린다면서 무조건 금지할 때, 오히려 위안소의 실태는 가려진다. 이 책의 공동 저자 히라이 가즈코는 위안소를 이용했던 일본군 병사의 수기를 면밀히 분석해서 정리했는데, 그동안 ‘피해자의 언어’로만 봐왔던 피해 서사가 보다 입체적으로 재구성되는 것 같았다. 히라이 가즈코에 따르면 일본군 병사는 위안부에게 가해 의식조차 없었고, 그게 위법하다고 여기지도 않았다(아주 극소수만이 위안부의 처지를 이해하고 위안소를 이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용무가 끝나면 곧바로 퇴실할 것’이라는 위안소 규정에 자신이 물건 취급받는 모멸감을 느끼면서 때때로 위안부와 자신을 동일시했다. 히라이 카즈코는 그 일체감을 ‘남성 측의 독선적인 일체감’이라고 딱 잘라 비판했고, 이 문제는 젠더 관점 없이 이해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문득 근래에 한국인은 책 속에 등장하는 나치 수용소에서의 정치범과 사뭇 닮은 것 같다. 이 책의 공동 저자 히메오카 도시코에 따르면 나치 수용소 내에도 등급이 있었다. 카포(군기반장), 정치범(카포 역할을 하기도 했다), 반사회적 분자·집시·유대인(인간 이하 취급받는 수감자), 이렇게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카포와 정치범은 수용소 내 매춘시설을 이용할 수 있었고(나치는 수용소 밖 매춘시설을 이용했다), 그들을 상대했던 성노동자 대부분은 6개월 뒤 풀려날 수 있다는 말에 속아서 동원됐다(아무도 풀려나지 못했다). 그런 식으로 매춘시설에 동원된 성노동자는 인간 이하 취급받는 수감자보다 어쩌면 더 인간 이하의 존재였다(아우슈비츠 생존자 프리모 레비조차 자신의 수기 <이것이 인간인가>에서 그들의 존재를 짧게 언급할 뿐이다). 그리고 그 성노동자의 피해는 사죄 끝판왕으로 알려진 독일에서도 좀처럼 드러나지 않았다. 그 성노동자의 피해를 억압했던 것은 그 성도동자와 마찬가지로 나치의 피해자였던 정치범이다. 정치범은 자신들이 매춘시설을 이용했던 사실이 알려지면 ‘순결한 피해자’ 지위를 잃을지도 몰라서 매춘시설에 동원된 성노동자를 애초에 순결하지 않은 피해자로 가공했고, 때로는 나치에 협력한 부역자로 낙인찍었다. ‘내 피해가 가장 소중해’라면서 성노동자의 피해를 억압해왔던 것이다. 성소수자의 인권은 ‘나중에’라며 자신들 뒤로 가뿐히 미루고, 난민의 인권은 ‘국민이 먼저’라며 자신들을 앞세우던 근래에 한국인처럼.
이 책의 공동 저자들은 김학순을 비롯한 여러 위안부 피해자의 적극적인 피해 호소와 그들을 곁에서 지원한 한국의 지원자와 연구자 모두가 결국에는 전시 성폭력에 대한 ‘패러다임 시프트’까지 견인했다고 평가하면서 이들의 노고를 거듭 강조하고 있다. 자신들의 연구는 이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면서 조심스레 연대의 손길을 내민 것이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이들의 손길을 자기 입맛에 맞을 때만 이용하고 그동안 부지런히 뿌리쳐온 것은 아닌가 싶다. 무엇을 위해, 대체 왜, 그런 생각만 든다.
*재한일본인 처(조선인 남성과 결혼해서 조선으로 이주한 일본인 여성) 문제를 취재하고 기록했던 김종욱이 한번은 그들의 사진으로 전시를 기획했는데, 당시 관계부처로부터 돌아온 말은 ’왜 우리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있는데 그런 전시를 하려고 하냐‘는 식이었다고 한다. 김종욱이 관련 문제에 매달렸던 까닭은 일제시대 강제징용 노동자였던 아버지 영향이었다. 차별을 겪어본 사람만이 차별받는 사람 심정을 안다는 아버지 뜻에 따라 재한일본인 처 문제에 매달렸던 것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그들의 이야기는 좀처럼 들을 수 없다. 그들의 고난의 수기는 아직 쓰여지지 않았다.
**존칭은 모두 생략했다. 작은따옴표는 ‘새로운 듣기의 가능성’과 ‘내 피해가 가장 소중해’ 말고는 모두 인용의 의도로 사용했다.
***이 책이 비판받을 지점은 따로 있다고 본다. 후술하겠지만, 뒤에 말하겠지만, 나중에 말하겠지만... 등등이 너무 많이 나온다. 그래도 어떻게 끝까지 읽긴 읽었는데, 해당 관용구 나올 때마다 솔까말 죽을 맛이었다.
그렇다고 청자가 듣기만 하는 수동적인 존재는 아니다. 화자의 이야기를 통제하거나 지배하기도 한다. 그 어떤 화자든 화자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로부터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고, 화자 또한 그 사실을 예민하게 알아차린다. 자신의 이야기가 공동체 내에서 어떻게 소비되는지 그 누구보다 잘 안다는 얘기고, 화자의 이야기는 어느 순간 청자가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로 변질되기도 한다. 요컨대 지난해 5월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의 ‘이용만 당했다’는 폭로 이후 이용수를 향한 비난 대부분은 이용수가 자신들이 지지하는 정치 세력(또는 정치인)을 흠집 낸다는 원망이었다. 그들에게 이용수의 고통은 안중에 없었고, 그들에게 이용수의 폭로는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였던 셈이다.
이 책에서도 같은 지적이 계속 반복된다. 어떤 화자의 어떤 피해 서사는 손쉽게 가시화되고 동시에 공적 기억으로 존중받는 반면, 그럴수록 풍선 효과처럼 찌그러지고 결국에는 풍화되는 피해 서사도 있다. 이 책의 저자들은 모두 후자의 피해 서사에 주목하면서 공동체가 어떤 피해 서사를 공적 기억(중심 서사)로 선별하고, 또 동시에 공동체에 이롭지 못한 사적 기억(주변 서사)를 지워나가는지 그 배경을 파고든다. 또한 공동체 내에서 오랜 시간 침묵을 강요받은 화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해방되는 과정도 잘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면 2차 세계대전 당시 베를린에서 소련군에 의한 집단 강간 사건에 관한 수기는 종전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터져 나왔다. 그 고난의 수기는 비교적 솔직한 편이었고, 자신이 속한 공동체로부터 통제되거나 지배되지 않았다. 피해자들은 자신들이 당한 일을 독일군이 점령지에서 했던 악랄한 행위에 대한 보복쯤으로 이해하고 있었고, 소련군의 만행을 ‘자연재해’로 여기기도 했다. 게다가 종전 후 미소 냉전 상황에서 자유주의 진영은 이들의 피해 서사를 소련을 비난하는 선전 도구로 삼기도 했다(그 대표 피해 서사 격인 <함락된 도시의 여자>도 초판은 미국에서 먼저 출간됐다). 다시 말해 피해자들은 일체의 저항이 불가능한 상황을 널리 이해받고 있었고, 따라서 자신의 피해 사실을 굳이 숨길 필요가 없었다.
반면 일본군 고참 병사에게 장기간 구속되어 그 고참 병사의 아이까지 낳았던 중국의 난런푸는 해방 후 삼반오반 운동 당시 ‘역사적 반혁명’ 죄를 뒤집어쓰고 투옥됐다. 난런푸의 가족은 항일세력에게 몰살당하고, 난런푸도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처럼 공동체 내에서 여성의 성폭력 피해가 수치스러운 일로 낙인찍히면(거기에 더해서 ‘적에게 더렵혀진 여자’ 또는 ‘적에게 협력한 여자’라는 낙인까지 찍히면) 아무리 억울하고 고통스러워도 당사자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베를린에서의 피해자들처럼 자신이 왜 그런 일을 겪어야 했는지 역사적 맥락 속에서 살필 기회조차 없고, 이들의 피해는 다중적 억압 속에 방치되다 사라지기 마련이다. 난런푸 같은 극단적 사례는 없었지만, 해방 후 조선인 위안부의 피해 서사도 같은 이유로 오랜 시간 억압돼왔다. 해방 후에도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 피해자가 부지기수였고, 이들은 당시만 해도 자신들의 피해 서사를 김학순처럼 입 밖으로 꺼내놓을 수 없었다. 그건 조선인 위안부뿐만이 아니었다. 일본인 위안부도 마찬가지였고, 미군 기지촌 성노동자(소위 ‘빵빵’: 일본 정부는 패전 직후 ‘성방파제’ 삼아 미군을 상대할 여성을 모집했지만, 강제로 동원된 경우도 적지 않았다)와 종전 후 만주에 남겨진 일본인 여성과 나치 수용소 내 성노동자도 같은 이유로 자신들의 피해를 오랜 시간 숨겨야 했다.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안 사실은 일본의 우생보호법(지금은 ‘모체보건법’으로 바뀌었다)에 관한 비하인드 스토리다. 그전까지만 해도 일본의 우생보호법을 타민족의 아이나 장애아를 선별하려는 나치의 인종말살정책쯤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법이었다. 종전 후 중국과 조선 각지에 남겨진 일본인은 현지 주민들에게 분풀이 대상이 됐다. 특히 만주에 한 일본인 거주지(구타미 개척단)는 현지 주민들의 표적이 되는 바람에 주민이 집단자결하기도 했다(1명 생존했다). 그 소식이 알려지면서 인근의 다른 일본인 거주지(구로카와 개척단)에서는 만주까지 진주한 소련군에게 보호를 요청했다. 소련군은 보호를 빌미로 여성의 몸을 요구했고, 이때 소련군에게 희생된 여성은 부녀자보다 주로 젊은 미혼 여성이었다. 특히 출정 병사의 아내는 예외였는데, 관련 사건을 파고든 이 책의 공동 저자 이노마타 유스케는 눈앞에 여성보다 부재하는 남성 동료의 여성을 우선시한 ‘호모소셜한 연대’의 결과라고 지적했다. 즉, 당시만 해도 여성은 남성의 소유물로 간주됐고 호모소셜한 연대는 누구의 소유물도 아닌 여성부터 희생양 삼았다.
이 여성들이 일본으로 돌아올 무렵에는 이 여성들의 강제 임신이 사회 문제로 불거졌다. ‘적에게 더렵혀진 여자’라는 낙인이 두려워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도 종종 있었지만, 이 여성들에게 임신을 중단할 자기결정권은 없었다. 당시 일본에서 낙태는 중범죄였고, 일본 정부는 결국 우회적으로 낙태를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또 당시에는 물자 부족 따위의 이유로 마취약이 없어서 관련 수술은 모두 마취 없이 이루어졌다. 그 일련의 사건 이후 일본 정부는 우생보호법을 만들어 강간에 의한 강제 임신뿐만 아니라 경제적 이유로 인한 임신 중단까지 법적으로 허용했다. 이 책의 공동 저자인 히구치 게이코는 우생사상을 바탕으로 한 악법이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이 다른 나라에 비해 임신 중단의 자유가 보장된 배경이라고 지적했다. 흥미로운 것은 앞서 말한 사건이 가시화된 이후다. 앞서 말한 사건은 일본에서도 가시화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데, 이 책의 공동 저자 사토 후미카에 따르면 ‘배외주의적이고 내셔널리스틱한 인터넷 공간에서 (해당 사건은) 이웃 나라에 대한 적의를 부추기는 재료로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이 책은 비가시화된 피해 서사를 국경을 초월해 비교하고 있지만, 단지 비교에만 그치지 않는다. 어느 쪽 피해자의 피해 서사가 더 고통스러웠는지 불행올림픽을 하자는 것도 아니다. 화자의 이야기를 어떻게 듣느냐에 따라, 전시 성폭력처럼 비일상 속 성폭력뿐만 아니라 일상 속 성폭력까지 연결해서 살펴볼 계기가 되고 그와 같은 시도를 통해 새로운 국면이 열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리즈 켈리의 ‘성폭력 연속체’ 개념을 사용해 강간·매매춘·연애·결혼에 이르기까지, 이 사이에 분명하게 구별되는 성폭력과 그렇지 않은 성폭력을 연속선상에서 놓고 보려는 우에노 치즈코와 다른 공동 저자의 시도는 아마도 그런 차원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이를테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서 결혼이주여성 문제까지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단서가 있을 테고, 이들의 시도는 여러 비기사회된 전시 성폭력 사건을 망라하면서 그 단서가 선명해지도록 만드는 시도였다고 본다. 한마디로 하면 남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 그리고 우리의 문제로 보게 만드는 책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읽었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읽었는지 궁금해서 서평을 검색해봤다. 짧은 독자 서평 몇 개와 언론 서평 두 개밖에 찾지 못했다. 그마저 언론 서평은 모두 이 책의 의도를 다소 악의적으로 해석한 비판조였다. 한 줄로 요약하자면(외람되지만 해당 서평 작성자들도 이 책을 그런 식으로 요약하였으므로) 어떻게 감히 일본인 위안부와 조선인 위안부를 동일선상에 놓느냐, 왜 조선인 위안부 때문에 일본인 위안부가 비가시화됐다며 징징거리느냐는 식이다. 또 한 언론 서평은 초장에 우에노 치즈코가 박유하를 인용하면서 사용한 ‘동반자’라는 표현을 꼬투리잡고 있었다. 그 ‘동반자’는 조선인 위안부와 일본군 병사가 종전 직후 현지 주민에게는 같은 편으로 뭉뚱그려질 수밖에 없다는 문맥에서 사용했는데, 실제로 싱가포르나 오키나와 등에서 해방을 맞았던 조선인 위안부는 피해자가 아닌 포로 신분이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앞서 말한 ‘동반자’ 같은 표현을 ‘가해자의 언어’ 또는 ‘(위안부 문제) 부정론자의 언어’로만 보고 일본의 책임을 흐린다면서 무조건 금지할 때, 오히려 위안소의 실태는 가려진다. 이 책의 공동 저자 히라이 가즈코는 위안소를 이용했던 일본군 병사의 수기를 면밀히 분석해서 정리했는데, 그동안 ‘피해자의 언어’로만 봐왔던 피해 서사가 보다 입체적으로 재구성되는 것 같았다. 히라이 가즈코에 따르면 일본군 병사는 위안부에게 가해 의식조차 없었고, 그게 위법하다고 여기지도 않았다(아주 극소수만이 위안부의 처지를 이해하고 위안소를 이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용무가 끝나면 곧바로 퇴실할 것’이라는 위안소 규정에 자신이 물건 취급받는 모멸감을 느끼면서 때때로 위안부와 자신을 동일시했다. 히라이 카즈코는 그 일체감을 ‘남성 측의 독선적인 일체감’이라고 딱 잘라 비판했고, 이 문제는 젠더 관점 없이 이해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문득 근래에 한국인은 책 속에 등장하는 나치 수용소에서의 정치범과 사뭇 닮은 것 같다. 이 책의 공동 저자 히메오카 도시코에 따르면 나치 수용소 내에도 등급이 있었다. 카포(군기반장), 정치범(카포 역할을 하기도 했다), 반사회적 분자·집시·유대인(인간 이하 취급받는 수감자), 이렇게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카포와 정치범은 수용소 내 매춘시설을 이용할 수 있었고(나치는 수용소 밖 매춘시설을 이용했다), 그들을 상대했던 성노동자 대부분은 6개월 뒤 풀려날 수 있다는 말에 속아서 동원됐다(아무도 풀려나지 못했다). 그런 식으로 매춘시설에 동원된 성노동자는 인간 이하 취급받는 수감자보다 어쩌면 더 인간 이하의 존재였다(아우슈비츠 생존자 프리모 레비조차 자신의 수기 <이것이 인간인가>에서 그들의 존재를 짧게 언급할 뿐이다). 그리고 그 성노동자의 피해는 사죄 끝판왕으로 알려진 독일에서도 좀처럼 드러나지 않았다. 그 성노동자의 피해를 억압했던 것은 그 성도동자와 마찬가지로 나치의 피해자였던 정치범이다. 정치범은 자신들이 매춘시설을 이용했던 사실이 알려지면 ‘순결한 피해자’ 지위를 잃을지도 몰라서 매춘시설에 동원된 성노동자를 애초에 순결하지 않은 피해자로 가공했고, 때로는 나치에 협력한 부역자로 낙인찍었다. ‘내 피해가 가장 소중해’라면서 성노동자의 피해를 억압해왔던 것이다. 성소수자의 인권은 ‘나중에’라며 자신들 뒤로 가뿐히 미루고, 난민의 인권은 ‘국민이 먼저’라며 자신들을 앞세우던 근래에 한국인처럼.
이 책의 공동 저자들은 김학순을 비롯한 여러 위안부 피해자의 적극적인 피해 호소와 그들을 곁에서 지원한 한국의 지원자와 연구자 모두가 결국에는 전시 성폭력에 대한 ‘패러다임 시프트’까지 견인했다고 평가하면서 이들의 노고를 거듭 강조하고 있다. 자신들의 연구는 이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면서 조심스레 연대의 손길을 내민 것이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이들의 손길을 자기 입맛에 맞을 때만 이용하고 그동안 부지런히 뿌리쳐온 것은 아닌가 싶다. 무엇을 위해, 대체 왜, 그런 생각만 든다.
*재한일본인 처(조선인 남성과 결혼해서 조선으로 이주한 일본인 여성) 문제를 취재하고 기록했던 김종욱이 한번은 그들의 사진으로 전시를 기획했는데, 당시 관계부처로부터 돌아온 말은 ’왜 우리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있는데 그런 전시를 하려고 하냐‘는 식이었다고 한다. 김종욱이 관련 문제에 매달렸던 까닭은 일제시대 강제징용 노동자였던 아버지 영향이었다. 차별을 겪어본 사람만이 차별받는 사람 심정을 안다는 아버지 뜻에 따라 재한일본인 처 문제에 매달렸던 것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그들의 이야기는 좀처럼 들을 수 없다. 그들의 고난의 수기는 아직 쓰여지지 않았다.
**존칭은 모두 생략했다. 작은따옴표는 ‘새로운 듣기의 가능성’과 ‘내 피해가 가장 소중해’ 말고는 모두 인용의 의도로 사용했다.
***이 책이 비판받을 지점은 따로 있다고 본다. 후술하겠지만, 뒤에 말하겠지만, 나중에 말하겠지만... 등등이 너무 많이 나온다. 그래도 어떻게 끝까지 읽긴 읽었는데, 해당 관용구 나올 때마다 솔까말 죽을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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