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 - 연구를 위한 노트」 (P.135~ P.192)
- 루이 알튀세르,『레닌과 철학 』, 백의, 1995.
■ 생산조건의 재생산에 관하여
- 생산과 동시에 생산조건을 재생산하지 않는 사회구성체는 유지, 존속될 수 없다. 따라서 생산의 결정적 조건은 생산조건의 재생산이다.
- 생산조건의 재생산이란. 생산력과 현존하는 생산관계의 재생산이다.
■ 생산수단의 재생산
- 생산수단 즉, 고정설비(건물), 생산도구(기계) 등의 소모나 마모를 대체해야 한다.
- 물질적 생산조건의 재생산은 기업수준에서 사고될 수 없다. 왜냐하면 한 자본가가 그의 원료와 기계 등을 재생산하는 데에 필요한 것은 또 다른 자본가의 생산이다. (재생산의 조건과 그 기제에 대한 인식이 필요)
■ 노동력 재생산
- 노동력의 재생산은 기업의 바깥에서 이루어진다. 노동력에게 노동력 자체를 재생산할 수 있는 물질적 수단 ( 임금)을 부여함으로써 재생산이 보장되는 것이다. 임금은 노동력의 물질적 재생산의 조건으로서 작용할 뿐만 아니라, 프롤레타리아가 노동력으로 재생산되는 아이들의 양육과 교육에도 필수적이다.
- 노동력 재생산에 필요한 가치량(임금)은 ‘생물학적인’ 필요분(최저임금)에 의해서 또 역사적인 최소한의 필요분에 의해서 결정된다. 이 역사적인 필요분은 자본가계급의 認定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의 계급투쟁에 의해 강제된 것이다.
- 노동력이 노동력으로서 재생산되기 위해서는 그 물질적 조건들을 보장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유효 노동력으로서 ‘적절한 자질(자격)’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노동력이 생산과정의 복합적인 체계 속에 이용되기 적합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이런 자질의 재생산은 자본주의 교육제도와 다른 여러 가지 기관 및 시설 등 생산의 바깥에서 이루어진다.
- 학교는 기술, 지식 이외에도 선행의 ‘규칙들’을 가르치며, 이는 곧 기존 질서의 주입이다. 노동력 재생산은 노동력의 기술 재생산을 필요로 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기존 질서의 규칙들에 대한 노동력의 복종심 재생산도 필요로 한다.
- 알튀세르: “노동력의 기술재생산에 대한 준비는 이데올로기적 복종이라는 형태로 그리고 그 형태하에서 이루어진다.” 노동력의 자격의 재생산이 보장되는 것은 이데올로기적 종속의 형태들 속에서, 그리고 그 형태들 아래에서이다. 이제 우리는 ‘이데올로기’라는 새로운 실재를 인식하게 된다.
■ 하부구조와 상부구조
- 모든 사회의 구조는 토대(하부구조)를 갖고 있고 그 토대 위에서 상부구조의 두 ‘층들’(법-정치, 이데올로기의 두 수준)이 세워져 있다. (건축물에 비유) 건축물이라는 메타포의 목적은 무엇보다도 경제토대에 의한 ‘최종심급에서의 결정’을 표현한 것이다. 토대와 관련하여 상부구조의 ‘상대적 자율성’과 토대와의 ‘상호작용’을 고려한다.
- 문제는, ‘메타포’라는 표현이 모든 사회의 구조를 표현하는데 은유적 즉 기술적(descriptive)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재생산을 토대로 상부구조의 존재와 상부구조의 본질의 핵심을 특징짓고 있는 것에 대해 사고함이 필요하다. 재생산의 관점에서 법, 국가 그리고 이데올로기에 대해 분석해보자.
■ 국가
- 마르크스주의에서 국가란 국가기구라 일컬었던 것을 말한다. 국가기구는 경찰, 법정, 감옥 뿐 아니라 군대 그리고 이 모든 것 뒤에 국가의 우두머리격이라 할 수 있는 정부 및 행정기관이 포함된다.
■ 기술적 이론에서 이론 그 자체로
- 국가의 본질에 대한 이 표현 역시 부분적으로 기술적이다. 기술적 이론은 모든 이론의 첫 단계이며 필수적이지만 과도적인 것이다
- 기술적 이론은 이론 그 자체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국가기구라는 국가에 대한 고전적 정의가 무언가를 반드시 덧붙여야 한다.
■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의 요점
- 국가는 (그리고 국가기구 내의 국가의 존재는) 국가권력의 기능 이외에도 아무런 의미도 없다.
- 정치적 계급투쟁의 목적인 국가권력(국가권력의 유지나 쟁취)과 국가기구와는 구분되어야 한다. 국가권력의 보유에 영향을 미치는 정치적 사건들 하에서도 국가기구는 제자리에 남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을 요약하면(4가지)
① 국가란 (억압적인) 국가기구이다.
② 국가권력과 국가기구는 구분되어야 한다.
③ 계급투쟁의 목표는 국가권력을 계급목적의 기능으로 쥐고 있는 계급에 의한 국가 기구의 사용이다.
④ 프롤레타리아트가 현존의 부르주의 국가 기구를 파괴하기 위해서는 국가권력을 거머쥐어야 한다.
- 부르주아 국가기구를 파괴하기 위해서는
① 부르주아 국가기구를 그와 전혀 다른 프롤레타리아의 국가기구로 대체
② 국가 즉 국가권력의 폐지 과정을 가동시켜야 한다.
■ 국가 이데올로기 기구
- (억압적) 국가기구는 최소한 궁극적으로 ‘폭력으로써 기능한다.’
-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ISA) (종교, 교육, 가족, 법, 정치, 조합, 커뮤니케이션, 문화 등)은 사적인 영역에서 유래한다. 국가란 법 내부의 구별인 ‘공과 사’를 넘어선 범위에 있는 것이며 ISA들은 그 기능에 있어서 국가기구로 기능하고 있기 때문이다.
- ISA는 ‘이데올로기로써’ 기능한다. (주로 이데올로기에 의해 기능하며 부차적으로 물리적 억압에 의해 기능한다. 순수 이데올로기 기구 같은 건 없다.)
- 국가 이데올로기 기구 위에서 그리고 그 안에서 헤게모니를 행사하지 않고 오래도록 국가권력을 쥐고 있을 수 있는 계급은 하나도 없다. (ISA가 계급투쟁의 목표이자 현장일 수 있음)
■ 생산관계의 재생산에 관하여
- 생산관계의 재생산은 어떻게 보장되는가. 생산관계의 재생산은 (한편으로 억압적 국가기구, 다른 한편으로는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 국가기구 내에서 국가권력을 행사함으로써 보장된다.
- 종합하면
① 모든 국가기구는 억압과 이데올로기로써 기능한다. 다만, 억압적 국가기구는 ‘억압’을, 이데올로기 국가기구는 ‘이데올로기’로써 주요하게 기능한다.
②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들은 ‘상대적으로 자율적’이어서 계급투쟁의 충돌로 인한 효과를 표현하고 있는 모순에 객관적인 장을 제공할 수 있다.
③ 각기 다른 ISA의 통일은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모순적인 형태로 보장된다.
- 억압적 국가기구의 역할은 생산관계의 재생산에 대한 ISA의 작용을 위한 정치적 조건을(물리적 폭력이든 다른 폭력이든) 폭력으로써 보장한다.
- 자본주의에서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의 핵심은 교육ISA이다. (모든 ISA가 자본주의적 착취관계의 재생산에 기여하지만 교육ISA가 지배적임)
왜냐하면, 가장 ‘민감한 감수성을 보일 때’인 수년동안 아이들을 지배이데올로기로 포장해서 이후 ‘생산에’ 투입하기 때문이다.
■ 이데올로기에 대하여
■ 이데올로기에게 역사란 없다.
- 이데올로기들에 관한 이론은 제 사회구성체와 결합된 생산양식 및 제 사회구성체 내에서 발전하고 있는 계급투쟁의 역사에 의존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특정 이데올로기는 역사를 지니고 있다.
- 이데올로기 일반의 역사란 없다.
마르크스는 이데올로기를 가상의 구조로 생각했으며 (이데올로기의 역사는 이데올로기 바깥에 위치해 있어 그 바깥에 존재하는 역사란 구체적인 개인들의 역사 등 등이기 때문에) 그 의미로 볼 때 부정적인 명제 임
① 이데올로기가 순수한 꿈인 한,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② 이데올로기 안에 역사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고 이데올로기에게 이데올로기 자체의 역사가 없다는 것
- 한편으로 부정적 의미( 이데올로기의 역사는 이데올로기로선 외적인 것이다.) 에서가 아니라 전적으로 긍정적인 의미에서 이데올로기 일반에게 역사란 없다고 주장할 수 있다.(알튀세르)
(이데올로기가 역사 전체 속에서 동일한 구조와 기능들로 나타난다는 의미에서) 모든 역사에 걸쳐 어디서나 나타나고 역사를 관통하는 것, 따라서 그 형태에 있어서 변함없다는 것을 의미한다면 이데올로기는 영원하다. (이데올로기는 프로이트의 ‘무의식’과 같은 것)
■ 이데올로기는 개인과 개인의 실제 존재조건과의 가상적인 관계를 표현한다.
이데올로기는 개인과 개인의 실제조건과의 가상적인(상상적인) 관계를 표현한다. 그것을 ‘세계관’이라 말한다. 따라서 그것은 현실과 조응하지 않으면서도 현실을 암시한다. (이데올로기 = 환상/암시)
* 인간이 실제 존재조건을 ‘스스로에게 설명’하기 위해 자신의 실제조건을 상상적으로 치환해야 되는 이유?
- ‘인간’이 이데올로기 속에서 ‘스스로에게 설명’하는 것은 인간의 실제 존재조건 즉 인간의 현실세계가 아니다. 그것은 생산관계와 그로부터 유래되는 제 관계에 대한 개인의 (상상적) 관계를 나타내는 것이다. (이제 문제의 초점은 개인들의 존재조건과 개인의 집단적, 개별적 삶을 지배하고 있는 사회적 관계들에 관해, 개인들에게 주어진 표상이 왜 상상적인가. 그리고 이 상상성의 본질은 무엇인가라는 것으로 대체된다.
■ 이데올로기는 구체적인 존재를 가지고 있다.
- 이데올로기는 언제나 구체적인 하나의 기구 및 그 실행(실천) 혹은 그 실행들 속에서 존재한다.
<예를 들면, ‘신을 믿는다’ 이러한 믿음은 당사자 개인의 관념으로부터 즉, 주체로서 자신으로부터 비롯되고 이렇게 구축된 관념적인 ‘개념상’의 장치에 의해 관련 주체의 구체적인 태도가 자연스럽게 뒤따른다. (이데올로기의 물질성) 만일 문제의 개인이 신의 존재를 믿는다면, 교회에 나가 미사에 참석하고, 고해성사 등의 실천으로 어어진다.>
- 주체의 관념은 구체적인 의례(관습)가 지배하는 구체적 실천 속에 자리한 구체적 행동이며, 구체적 의례 자체는 구체적인 이데올로기 기구에 의해 규정되고, 그 구체적인 이데올로기 기구로부터 그 주체의 관념이 유래하기 때문이다.
■ 이데올로기는 주체인 개인에게 호명(질문)한다.
- 주체의 범주는 모든 이데올로기의 구성범주이다. 동시에 모든 이데올로기가 주체로서의 구체적인 개인들을 ‘구성한다’는 (모든 이데올로기가 규정하고 있는) 기능을 갖고 있는 한 주체의 범주는 모든 이데올로기를 단지 구성하고 있을 뿐이다.
- 예를 들면 우리가 (자유로운, 도덕적인...) 주체라는 것은 명백(자명)하다. 이러한 자명성을 자명한 것으로 강요하는 것 (자명성들이기 때문에 전혀 강요하지 않게 강요할 수 있다.)이 바로 이데올로기의 고유한 특성이다.
- 우리는 서로에게 인사를 나눌 때, 자신을 소개할 때 내가 언제나-이미 주체들 이라고는 사실, 우리가 구체적이고 개별적이며 혼동될 수 없고 바뀔 수 없는 주체들임을 보증하는 이데올로기적 관습들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구체적 주체들을 주체로 구성함으로써 주체의 범주를 설정하는 것이 왜 이데올로기를 구성하는 것인가? 모든 이데올로기는 구체적 개인들을 구체적 주체로서 호명한다. (호명된 자가 ‘바로 그’이다)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조차도, 가족 이데올로기적 모습에 의해 주체로 규정한다. 즉, 개인들은 항상 이미 주체들이다. 이데올로기는 바깥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 바깥에만 존재한다. 즉. 자신이 이데올로기 안에 있음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이데올로기 밖에, 과학적 지식 속에 있어야 한다.
■ 한 가지 예 : 기독교의 종교 이데올로기
■ 덧붙이는 글
1 ISA는 재생산에 기여한다. 그 하나만을 놓고 본 관점은 아직 추상적이다. 그러나 계급 사회에서 생산관계란 착취관계이다. 적대적인 착취관계들인 생산관계의 재생산이 단순히 ‘기술적 분화(분할)’의 작용일 수는 없으므로 생산관계의 재생산과 관련해 계급투쟁의 관점을 채택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여전히 추상적일 수 밖에 없다.
2 한 사회구성체 내에 존재하는 이데올로기들의 계급적 본질에 관한 문제
- 이데올로기들은 ISA에서 실현된다. 그것은 아직도 추상적이다. 국가와 그 국가기구는 계급투쟁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가 지배 이데올로기가 되는 것은 ISA의 설치를 통해서이다. 그러나 ISA내에서의 계급투쟁은 ISA를 넘어서는 계급투쟁의 한 측면일 뿐이다. 하나의 사회구성체 속에 존재하는 이데올로기들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계급투쟁의 관점뿐이다. 이데올로기들이 생겨나는 것은 ISA 내에서가 아니라 계급투쟁에 맞붙은 사회계급들의 존재조건, 실천, 투쟁 경험 등을 통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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