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20

알라딘: 사회문제의 경제학 헨리 조지 Social Problems (1883년)

알라딘: 사회문제의 경제학

사회문제의 경제학   
헨리 조지 (지은이),전강수 (옮긴이)돌베개2013-09-02원제 : Social Problems (1883년)

전자책
10,500원 
312쪽

책소개

19세기 미국의 대표적 경제학자 헨리 조지의 가장 대중적인 고전인 <사회문제의 경제학>(원서제목은 Social Problems) 국내 첫 번역서. 다양한 사회문제의 원인과 그 근본 해법을 매우 쉬운 언어로 간명하게 풀어나간 책으로, 경제학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도 읽을 수 있도록 평이하게 썼다.

한국의 대표적인 조지스트로서 번역을 맡은 전강수 교수는 이 책의 장점을 크게 다음의 네 가지로 꼽는다. 첫째, <진보와 빈곤> 보다 비교적 내용이 쉽고 다루는 주제의 범위가 넓다. 사회발전의 법칙, 정치의 부패, 독점의 발달, 실업과 과잉생산, 기술혁신, 재정 운용의 오류, 정부의 역할, 농촌문제, 문제해결 방안 등 실로 광범위한 주제들이 다뤄진다. 둘째, 사람이 있고 삶이 있는 경제학 서술의 모본模本이라 할 만하다. 셋째, 130년 전에 쓰였는데도 그 내용은 현대 사회에 여전히 적실성을 지니고 있다. 넷째, 이 책에서는 헨리 조지 본인의 사회사상이 완성된 형태로 표현되고 있다.

이러한 장점으로 이 책은 <진보와 빈곤>, <노동 빈곤과 토지 정의>와 더불어 헨리 조지의 명저 트리오 중 한 권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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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독자에게

러시아어 번역판 서문 - 톨스토이

1장 점점 커지는 사회문제의 중요성
2장 정치적 위험
3장 도래하는 사회적 압력
4장 상반되는 두 경향
5장 집적·집중의 행진
6장 현재의 사회상태에 내재하는 불의
7장 이것이 정말 최선의 세상일까?
8장 우리 모두가 부유해지려면
9장 첫 번째 원칙
10장 인간의 권리
11장 쓰레기 갖다 버리기
12장 과잉생산
13장 실업
14장 기계의 영향
15장 두 가지 노예제도
16장 공공부채와 간접세
17장 정부의 기능
18장 무엇을 해야 하는가?
19장 가장 위대한 개혁
20장 미국 농민
21장 도시와 농촌
22장 결론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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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P. 32~33 거대한 부를 소유한 사람들은 집권당이 아무리 부패했다 할지라도 항상 지지한다. 부자들은 본능적으로 변화를 두려워하므로 개혁을 위해 노력하는 법이 없다. 잘못된 통치에 대항해서 투쟁하지도 않는다. 정치권력을 가진 자들로부터 위협을 받더라도 대항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호소하지 않는다. 대신에 위협하는 권력자들을 매수해버린다. 부를 축... 더보기
P. 35 모든 정치문제의 저변에는 부의 분배와 관련된 사회문제가 존재한다. 우리 국민들은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돌팔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이 돌팔이들은 질병을 근본적으로 치유하는 데는 관심이 없고 증상을 고치겠다는 약속만 내뱉는다. “투표로 좋은 사람을 뽑자.” 돌팔이들의 말이다. 좋다. 새 꼬리에 소금을 뿌려서 새를 잡자!... 더보기
P. 61~62 모든 직종에서 노동자들은 노동도구와 노동기회로부터 분리되고 있고, 모든 곳에서 재산 소유의 불평등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생각이 빠른 속도로 전파되고, 낡은 보수주의가 후퇴하고, 인간이 평등하다는 생각이 발전하고 확산되고 있는 바로 지금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P. 78 생산하는 사람이 소유해야 하고 저축하는 사람이 누려야 한다는 것은 인간의 이성과 자연적 질서에 부합하는 말이다. 여기에 비춰보면 현재의 불평등은 정당화될 수 없다. 사실, 대부호들 중에 공정하게 부를 획득한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그들이 소유한 부 가운데 소유자 자신이나 그들에게 부를 건네준 사람들이 생산한 것의 비중이 얼마나 ... 더보기
P. 84~85 나는 지금 부자들을 비난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이런 이야기를 통해 시기심이나 증오를 불러일으키려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회문제에 대해 명확하게 이해한다면, 어떤 사람들은 엄청난 부를 얻을 수 있는 반면 다른 사람들은 너무도 비참한 가난에 빠져 있어야만 하는 현실이, 바로 우리가 허용하고 만든 독점, 우리가 다른 사람을 ...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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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글
헨리 조지가 쓴 뛰어난 책, 연설문, 그리고 기사 중에서 이 책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최고의 작품이다. 이 책에서 드러나는 간결함, 명료함, 논리적 엄밀성, 논박하기 어려운 논증방식, 문체의 아름다움, 진리와 선과 사람에 대한 진실하고도 깊은 사랑이 그것을 입증한다. -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중앙일보 
 - 중앙일보 2013년 9월 7일자 '주목! 이 책'
동아일보 
 - 동아일보 2013년 9월 7일자 '300자 다이제스트'
저자 및 역자소개

헨리 조지 (Henry George) (지은이) 

19세기 후반 미국에서 활동한 경제학자이자 사회개혁가다. 어릴 적부터 온갖 직업을 전전하며 절망적인 가난 속에서 살았지만 독서와 토론을 통해 사회문제에 대한 지식을 꾸준히 습득했다. 링컨 대통령의 암살소식에 격분하여 자신이 인쇄공으로 근무하던 신문사에 투고한 글이 톱기사로 게재되면서 일약 기자로 발탁되었고, 그때부터 언론인, 저술가, 경제학자의 길을 걸으며 명성을 날렸다. 1886년 뉴욕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정계에 입문하려 했으나 아깝게 낙선했다. 독학으로 최고의 경제학자 반열에 오른 것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수많은 사상가, 학자, 정치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세계적인 대문호 톨스토이가 『사회문제의 경제학』을 읽고 헨리 조지의 열렬한 추종자로 바뀌어 인생의 마지막 25년을 헨리 조지 사상 전파에 바쳤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사회문제의 경제학』을 비롯해 『진보와 빈곤』, 『보호무역이냐 자유무역이냐』, 『노동 빈곤과 토지 정의』, 『정치경제학』 등의 명저와 함께 수많은 기사와 강연 원고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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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진보와 빈곤 (큰글자책)>,<PROGRESS AND POVERTY, VOL. 02 - 진보와 빈곤. 2부 (영문원서)>,<PROGRESS AND POVERTY, VOL. 01 - 진보와 빈곤. 1부 (영문원서)> … 총 19종 (모두보기)
전강수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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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식민지 조선의 미곡정책에 관한 연구〉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토지주택위원장, 토지정의시민연대 정책위원장, 토지+자유연구소 소장을 역임했다.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경제금융부동산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소신 있는 부동산 정책 전문가이자 토지경제학자로 널리 알려졌지만, 대학원에서 일제강점기 한국경제사를 전공하고 해당 분야와 관련된 주제로 학위논문을 집필했을 만큼, 식민지 치하에서 벌어진 일제의 경제적 수탈에 관해 전문적 식견을 가진 학자이기도 하다. 특히 일제의... 더보기
최근작 : <다시 촛불이 묻는다>,<《반일 종족주의》의 오만과 거짓>,<부동산 공화국 경제사> … 총 22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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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자살에 대하여>,<당시 일백수>,<위대한 고독의 순간들>등 총 610종
대표분야 : 역사 4위 (브랜드 지수 670,835점), 음악이야기 4위 (브랜드 지수 22,862점), 한국사회비평/칼럼 9위 (브랜드 지수 50,789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한때 마르크스보다 더 많은 추종자를 거느렸으며 톨스토이로 하여금 열렬한 조지스트로 살게 만든 19세기 경제학자 헨리 조지의 가장 대중적인 고전

국내 첫 번역서 출간!


▶ 헨리 조지의 사상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기에 가장 좋은 저작이자 경제학 서술의 모본

19세기 미국의 대표적 경제학자 헨리 조지의 가장 대중적인 고전인 <사회문제의 경제학>(원서제목은 Social Problems)이 국내에 처음 번역 출간되었다(돌베개, 전강수 옮김).
이 책은『진보와 빈곤』으로 일약 세계적 경제학자의 반열에 올랐으며 한때 마르크스보다 더 많은 추종자를 거느렸던 헨리 조지의 사상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기에 가장 좋은 저작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세계적인 대문호 톨스토이로 하여금 인생 후반기 25년을 열렬한 조지스트로 살게 만든 책도 바로 이 책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매우 드문 형편이다. 헨리 조지의 사상이 넓게 퍼지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으려 한 미국의 대지주와 부호들의 농간에 의해 그는 20세기에 들어와 미국 경제학계에서 점점 잊힌 인물이 되어갔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1997년에 김윤상 교수가 <진보와 빈곤>을 번역하고, 2002년에 이정우 교수가 참여정부 초대 청와대 정책실장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헨리 조지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주류 경제학계에서는 여전히 헨리 조지의 사상을 외면하고 있으며 자연히 그의 이론을 깊이 있게 연구한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한 실정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조지스트로서 번역을 맡은 전강수 교수는 이 책의 장점을 크게 다음의 네 가지로 꼽는다. 첫째, <진보와 빈곤> 보다 비교적 내용이 쉽고 다루는 주제의 범위가 넓다. 사회발전의 법칙, 정치의 부패, 독점의 발달, 실업과 과잉생산, 기술혁신, 재정 운용의 오류, 정부의 역할, 농촌문제, 문제해결 방안 등 실로 광범위한 주제들이 다뤄진다. 둘째, 사람이 있고 삶이 있는 경제학 서술의 모본模本이라 할 만하다. 셋째, 130년 전에 쓰였는데도 그 내용은 현대 사회에 여전히 적실성을 지니고 있다. 넷째, 이 책에서는 헨리 조지 본인의 사회사상이 완성된 형태로 표현되고 있다. 이러한 장점으로 이 책은 『<진보와 빈곤>, <노동 빈곤과 토지 정의>와 더불어 헨리 조지의 명저 트리오 중 한 권으로 꼽힌다.

▶ 이전의 모든 혁명을 뛰어넘는 가장 위대한 사회개혁의 길

헨리 조지의 사상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토지공개념’과 그에 따른 ‘토지가치세제’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노태우 정부 시절 토지공개념이 도입되어 1989년 국제적 기준의 공공임대주택이 처음 공급된 바 있으며, 이는 노무현 정부 때 실질적인 정점을 찍었다가 이명박 정부를 거치며 크게 후퇴한 상태다. 토지가치세제는 모든 조세를 토지가치에 의한 지대地代로 일원화함으로써 토지사유제에 의한 폐해와 부패를 근절하고 토지이용률을 높여 사회 전체의 부를 증진시키는 제도다. 이에 대해 헨리 조지는 다음과 같이 역설한다.

모든 과세를 토지가치에 부과되는 조세에 집중시킨 후 지대의 대부분을 징수할 수 있을 정도로 무겁게 과세하여 공동의 목적을 위해 쓰는 것은 모든 개혁 중에서 가장 위대하고 가장 근본적인 개혁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다른 모든 개혁이 쉬워지고, 그것이 빠지면 다른 어떤 개혁도 소용이 없다. 이 주제에 대해 한 번도 공부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단순한 세제개편을 가지고 모든 개혁 중에서 가장 위대하고 가장 큰 영향을 끼칠 개혁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터무니없게 보일 것이다. 하지만 앞 장들에서 내가 밝힌 일련의 생각을 잘 따라온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 간단한 제안 속에 가장 위대한 사회혁명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것이다. 이 혁명에 비하면 프랑스의 구체제를 무너뜨린 혁명이나 미국 남부의 노예제도를 타파한 혁명은 아무것도 아니다. (본문 265쪽)

▶ 제반 사회문제의 원인과 해법을 쉽고 명쾌한 논리로 설파

헨리 조지는 이 책에서 다양한 사회문제의 원인과 그 근본 해법을 매우 쉬운 언어로 간명하게 풀어나간다. 그가 7장에 <진보와 빈곤>을 읽다가 이해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제빵사 이야기를 쓴 것을 보면, 헨리 조지는 그 책이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음에도 일반 대중이 읽기에는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고 『사회문제의 경제학』을 쓸 때는 경제학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도 읽을 수 있도록 평이하게 쓴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이 책은 <진보와 빈곤>에 비해 다루는 주제의 범위가 넓다. 다루는 주제의 범위가 넓어지면 논의가 산만해지고 옅어지기 쉬운데 이 책은 전혀 그렇지 않다. 기본 관점은 흔들림 없이 유지되고 있고 논의의 수준은 오히려 깊어지고 있다.

헨리 조지는 자연과학은 성큼성큼 전진하는 반면 정치과학의 발전은 매우 느리며, 사회문제를 처리하는 데 발휘되는 지능이 개인의 필요를 충족시키고 물질적 목적을 달성하는 데 발휘되는 지능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모든 악의 근원이라고 보았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 다수의 지능이 필요하며 지적 능력뿐 아니라 종교적 감성에서 나오는 생명력과 인간의 고통에 대한 동정심에서 나오는 따뜻함 위에서 이기심을 초월해 반드시 정의를 추구해야만 한다고 설파한다. 모든 사회문제의 바탕에는 사회적 불의가 자리하고 있으며, 그 중심에 불평등한 분배문제가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 불평등한 분배문제를 일소하기 위해서는 “세련된 형태의 노예제도”인 토지사유제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수적이다. 헨리 조지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를 위협하는 어려움의 주요 원인은 부의 분배에서 불평등이 증가한다는 데 있다. 현대의 모든 발명은 이 현상을 심화시키는 작용을 하고 있으며, 의회권력에 기대어 성립한 독점기업의 존재와 정치적 부패 또한 이런 움직임을 가속화하고 있다. 하지만 근본 원인은 분명히 다른 데 있다. 우리가 인간과 지구(인간의 거처이자 작업장이자 창고다)의 관계?즉, 노동과 자연자원의 관계?와 관련하여 만든 사회제도가 문제다. 땅이 모든 물리적 구조물의 터전이듯이 토지제도는 모든 사회조직의 기초를 이루며 사회조직의 성격과 발달과정에 영향을 미친다. (······) 우리의 근본 실수는 토지를 사유재산으로 취급한 데 있다. 현대 문명은 이 잘못된 기초 위에 세워졌기 때문에, 물질적 진보가 진행됨에 따라 가공할 만한 불평등이 생기는 걸 피할 수가 없다. 이 불평등은 결국에는 현대 문명을 파멸시킬 것이다. 사람은 토지가 없이는 생존할 수가 없는 존재다. 사람의 육체는 토지에서 나왔고 사람이 획득하거나 만드는 모든 물건도 토지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한 나라의 토지를 소유하는 것은 그 나라의 사람들을 소유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본문 247~248쪽)

공고한 갑을사회의 추악한 진실과 나날이 심화되는 전세대란 앞에서 그저 무력할 수밖에 없는 다수 대중에게 헨리 조지의 명쾌한 혜안은 희망의 등대 그 자체다. 더불어 한때 적극적으로 토지공개념을 도입했던 과거 정부들의 부동산 정책을 더욱 심화·확대해나가기 위해서라도 정파적 이기심을 초월한 장기적인 근본 대책의 수립이 절실히 요구되는 현재, 이 책이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
헨리 조지의 말대로 “문명이 진보하기 위해서는 사회문제의 처리에 더 많은 지능이 투입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은 소수가 아니라 다수의 지능이라야 한다. 정치를 정치인에게만 맡겨둘 수는 없다. 또 정치경제학을 대학교수들에게만 맡겨둘 수도 없다. 국민들이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행동할 수 있는 것은 국민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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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햄 2014-01-18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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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사회문제의 경제학 새창으로 보기 구매

나는 시기심이나 이기심 같은 감정이 아니라 그보다 더 고상한 감정에 호소하고 싶다. 유혈이 낭자한 가운데 거대한 불의[노예제도를 의미한다]가 힘을 잃어갈 때 온 나라에 울려 퍼졌던 승전가 속에 거칠지만 강하게 표현되어 있는 것이 바로 이런 감정이다.(p125)

「사회문제의 경제학」에는 헨리 조지가 「진보와 빈곤」에서 제기한 불평등의 원인과 해결방안이 담겨있다. 아담 스미스가「국부론」에서 말한 개인의 이기심 이 아닌 「도덕감정론」의 동감, 기독교 사랑에 근거하여토지공개념이 어떻게 현실에서 적용되어야 하는지 서술된 책이다. 헨리 조지의 사상을 쉽게 요약한 책이며, <진보와 빈곤>의 좋은 입문서로 여겨진다...

본질적으로 토지는 당연히 개인의 소유물이 되어야 하는 인간 노동의 생산물과 다르다. 토지는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지만 노동생산물은 인간이 생산한 것이다. 토지는 양이 고정되어 있지만 노동생산물은 무한히 증가할 수 있다. 토지는 여러 세대가 왔다가 가더라도 그대로 있지만 노동생산물은 금방 마모되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간다.(p260)

우리의 근본 실수는 토지를 사유재산으로 취급한 데 있다. 현대 문명은 이 잘못된 기초 위에 세워졌기 때문에, 물질적 진보가 진행됨에 따라 가공할 만한 불평등이 생기는 걸 피할 수 없다. 이 불평등은 결국에는 현대 문명을 파멸시킬 것이다... 한 나라의 토지를 소유하는 것은 그 나라의 사람들을 소유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람들을 소유한다는 것은 그들을 산업적/사회적/정치적으로 복종시킨다는 뜻이다.(p249)

나는 토지사유제하에서는 모든 개선의 혜택이 궁극적으로 토지 소유자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자명한 원칙을 결코 부정하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히 해두고 싶다.(p250)

토지의 최선 사용을 위해 필요한 것은 개량물에 대한 보장이다. 즉, 토지에 투입되는 노동과 자본이 각각 그 대가를 향유할 수 있도록 보장하면 된다.(p261)... 토지가 모든 사람의 공동재산으로 취급된다면 사람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개선에 나설 것이다.(p262)... 토지 지대를 징수해서 공동의 이익이 되도록 쓰려면 다른 조세들을 모두 철폐하여 조세 부담이 토지가치에만 돌아가게 한 후 지대를 징수하여 공동의 이익이 되도록 쓸 수 있다.(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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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20-03-23 공감(41)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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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사회문제의 경제학 새창으로 보기 구매
절망적인 가난속에서 살았지만 독서와 토론을 통해 사회문제에 대한 지식을 꾸준히 습득해 링컨 대통령 암살 당시 인쇄공으로 근무하던 신문사에 투고한 글이 명성을 얻으며 그후 기자로 발탁된 이 글의 저자 헨리 조지는 자력으로 경제학자 반열에 올라 수많은 사상가들과 학자, 정치인들에게 영향을 끼쳤는데요. 위키 백과 등에 올라와 있는 그의 일대를 조금 찾아보니 제가 익히 들었던 미국 33대 대통령 해리 트루먼의 삶과 많은 부분이 겹쳤습니다. 지극히 책을 좋아한 것이나, 정규 학력을 밟지 못했지만 평생 스스로 학업을 중단하지 않고 높은 위치에, 큰 명성을 얻은 것은 두 사람의 공통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소개해 드릴 이 책은 1883년 초판이 발행되었는데요. 책의 역자는 이 책과 ‘진보와 빈곤’ ‘노동 빈곤과 토지 정의’를 헨리 조지의 3대 역작이라 평가하고 있습니다. 특히 여러 매체에서 인용하고 있는 헨리 조지의 ‘토지 가치세’, ‘토지 공개념’은 ‘조지주의’라고 일컫는 경제학 분야의 한 사조로 받아들여졌고, 많은 경제학자들과 사상가들이 이에 동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후에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가 아주 적극적인 ‘헨리 조지 추종자’가 된 것은 매우 유명하죠. 이 책과 관련하여 국내엔 지난 2013년 대구가톨릭대 교수인 전강수 선생의 번역으로 최초 국역 출판이 되었습니다. 출판사인 돌베개 측은 적잖이 감명을 받았는지 따로 국내 최초 번역이라는 띠를 붙여서 판매하기도 했는데요. 당시 여러 신문이나, 시사 잡지에 소개된 것을 얼핏 본 기억도 나는군요.

총 22장으로 구분되어 당시 서유럽과 미국의 정치 및 사회, 경제 시스템과 이론에 대한 헨리 조지 특유의 논리적 간결함과 명료함이 특색으로 특히 번역도 제법 잘 되어 있어서 이런 류의 글치고는 술술 읽혀지기도 합니다. 남북전쟁 이후 짧은 호황기와 그로 인한 미국의 개척이 진행중인 시기의 토지에 대한 조지의 개념을 오늘날 우리의 부동산 개념과 연계해 받아들이면 꽤 흥미로운 독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서유럽의 광대한 토지를 소유한 런던과 파리의 소유주들이 자신들의 땅에 방목을 하기 위해 그 일대에 거주하고 있던 하층민들을 미국으로 보낸 배경’으로 그와 같은 비인간적이고 비도덕적인 행위를 미국에서는 미연에 방지하고자 토지 가치세와 같은 토지를 공공 소유로 하자는 이론을 창안합니다. 글의 후반부에 ‘진보와 빈곤’에서 주장하는 토지에 대한 그의 생각이 여기에도 살짝 언급되어 있는데요. 중간에 ‘간접세가 정부에는 해악과 다름없다’고 밝힌 바와 같이 아주 직접적인 과세로 토지에 부과하는 세금 증대와 가난한자들에 대한 소용되는 혜택으로 귀결되기를 바랐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도 ‘부자들에게 직접적으로 돈을 뜯어내는 것’에는 선을 그었는데요. 그렇지만 “우리가 놀라운 진보를 이룩했음에도, 아무런 잘못도 없이 건강하고 온전한 삶을 누리지 못하는 가난한 자들이 아직도 우리와 함께 있다는 것은 우리의 잘못이요. 우리의 수치다”라고 말하면서 전체적으로 이러한 것들은 인간의 기본권이고, 사회 경제적 생산 수단에 대한 재해석과 앞선 토지 소유 개념에 대한 혁신적 관념, 또한 정부의 단순한 일처리를 포함한 단순화에 달려 있고 이것을 좀 더 확대한다면 많은 국민들이 고르고 비교적 평등하게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기반이라고 여기는 듯 했습니다.

개인이 부를 축적할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노동과 타인의 증여, 강탈’ 밖에 없다고 밝힌 것과 그 중요한 노동의 문제와 관련하여 남북 전쟁 시기 이전의 노예제를 설명하면서 제도상에서 노예제는 미국 역사에서 사라졌지만, 근본적으로는 현재의 각 개인들의 노동 상태로 봤을 때 엄밀히 노예 시스템이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그는 밝히고 있습니다. 부자들과 마찬가지로 평범하게 가난한 사람들도 삶을 영위할 수 있어야 하고 또한 소비재와 같은 것도 누릴 수 있어야 하는데 이 부분에는 노동과 관련된 수입에 대한 현실화가 있어야 하며, 당시의 로스차일드가와 비슷한 미국의 부자들이 어떤 식으로 부를 쌓았는지에 대해 비판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부자들은 ‘사법부아 의회로 상대로 조직적인 로비를 벌이는데, 부자들의 기대 뿐만 아니라 두려움에도 의존한다’는 측면에 부유한 자들에게 노동이 마땅히 합리적인 대가를 받지 못한다고 여기고 있는데요. ‘일을 하면서도 가난한 사람들과 한가로이 호화로운 생활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너무나 큰 격차가 존재할 경우, 보통 사람들 눈에는 양자가 서로 다른 존재질서에 속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밝히는 것에는 당시 미국 사회의 빈부 격차는 정의롭지 못하는 부분이 있으며 많은 노동자들이 노예 상태에 있었다는 것으로 헨리 조지는 인식하고 있습니다. 중간에 성서를 인용하는 것으로 보아 그는 꽤 도덕적이고 이상주의적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다만 성서에서 말하는 신자들의 천국의 도래로 현실 상황을 오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보는 것으로 그의 이성적 균형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산업의 변화는 사회 변화를 수반하기 마련이고 결국 정치적 변화를 불가피하게 만든다’고 말하는 것은 산업 발전과 자본주의 시장의 초기 도입에서 시장 독점에 따른 문제인 부의 불평등이 심화 되는것에 원칙적으로 반대를 하지만, 개인의 자유적인 측면에서 ‘부의 취득에 한계를 둬서는 안된다는 입장’ 과 ‘부자들에게 직접적으로 돈을 뜯어내서는 안된다’ 것으로 다수가 일견 그를 오독하는 것처럼 개인적으로는 그가 완전히 사회주의를 신봉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사상은 전체적으로 부의 불평등 상태를 개선하고 부자나 가난한 이들과 상관없이 누구나 인간적인 삶을 영위하고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사회적 공감대를 만들고 정부가 이를 뒷받침하는 형태를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분명 진보적인 측면도 있지만, 그가 주장하는 바들은 거의 이성적이고 명료하며 설득력이 높고 특유의 균형감각이 엿보입니다. 헨리 조지를 의도적으로 오독하는 학자들이 제법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일부 의견들 특히 군과 관련된 인식과 같은 것들은 다소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고려하면 크게 어긋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제도나 시스템 보다는 고유한 인간의 권리를 강조했고, 오늘날처럼 일부 국가에서 벌어지는 극심한 빈부의 격차로 봤을 때 헨리 조지가 얼마나 뛰어난 통찰력을 갖고 있었는지 이 글을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앞에서 간단히 제가 언급하고 넘어갔지만, 전강수 선생의 번역도 나무랄데가 없었습니다. 뭔가 매일 읽어도 즐거운 기분을 들게 하는 건 이 책이 아닐까하는 아주 개인적인 소감이 문득 들었습니다. 부족한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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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터라이프 2018-06-11 공감(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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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년 전 광야에서 외치는 이가 물었으니, "정의란 무엇인가?" [사회문제의 경제학] 새창으로 보기
선입견이라는 게 참 무섭습니다.



"주님, 언제 대체 저희가 주님께서 헐벗고 굶주리고 병들게 되신 걸 보고도 주님을 돌보아 드리지 않은 일이 있다는 말씀입니까?"



"잘 들어 두어라.

너희 중에 가장 힘없고, 가난하며, 미천한 자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내게 하지 않은 것이다."



이 대목은 물론 기독교 성경 마태복음 25장 41절에 나오는 말입니다만, 이 헨리 조지의 불멸의 고전 그 맨 앞의 발문으로도 인용되고 있습니다. 헨리 조지라고 하면, 과격하기 그지없는 토지 단일세의 도입으로 자본주의의 근간을 흔들어 놓으려 했던 과격분자로 당대에 매도당하곤 했으며, 심지어 지금에 이르러서도 "현실을 모르는 몽상가", "marx의 뒤에 출현했으나 만약 앞 시대의 사람이었으면 그로부터 '공상적 사회주의자' 정도로 비판 받았을, 치밀하지 못한 문학적 성향의 이론가" 정도로 인식하는 이가 적지 않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이 이름을 처음에 접한 것이, 고등학교 때 읽은 유시민의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이 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저 책 제목은 내용을 오도하는 면까지 있는데요. 비록 초급 단계의 경제사상사를 다루고 있어 다양한 사상가들의 주장과 이력을 소개하는 책이었다고는 하나,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해법과 진실을 찾아 나가야 할 학문의 과제가, 얕은 상대주의의 장벽에 의해 영원한 분단이라도 겪어야 하는 것이 운명이나 되는 듯 착시를 유발하는 점에서요. 읽어 보면 내용도, 이런 예단과는 정반대의 논지에 가깝다는 사실에서 더욱 그러합니다. 아무튼, 이 책의 후반부에서, 한 챕터를 할애하여 헨리 조지를 설 명하고는 있었으나, 당시의 저는 그다지 강렬한 인상은 받지 못했습니다. 토지단일세라는 한 가지 수단으로 어떻게 일거에 사회 모순과 불의가 해결될 수 있을까요? 방법이 단순한 것도 문제고(복잡한 문제가 단순한 해법으로 해결되길 기대하는 건 무모하고, 요행 심리에 가까울 수 있다는 점에서요), 세제의 개편은 체제의 모순을 해결하는 근본의 방책이 될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이 책을 읽고 그간의 오해를 완전히 바로잡게 된 건 신선한 쾌감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이른바 진보 진영의 입장에 서서 구체적인 행동을 취할 때도, 계급 일반을 목적어로 들거나("자본가 타도!" 등), 주체로 띄우는 편("노동자가 주인되는 세상!" 등)이 부담이 덜합니다. 계층(막스 베버적 의미) 아니라 계급(marx적 의미)이라고 해도, 여전히 그 개념의 공명은 추상적입니다. 반면, 세제(tax system) 지엽 부문을 건드리는 지적이나 논변은, 이에 해당하는 직접 영향권의 이해당사자가 있기 때문에, 그들의 구체적인 반발, 반격을 예상하고 전략을 짜야 하는 행동가에게 더 구체적이고 어려운 과제를 주기 마련입니다. "폼이 나"지는 않으면서도, 실천에 옮기기는 또 어려우니, 행동보다 말로 하는 선전을 좋아하는 위선자들에게 인기가 없을 수밖에요.









이 책의 소개글에 보면, "한때 Marx보다 더 많은 추종자를 거느렸고, 톨스토이로 하여금 생의 후반을 georgist로 살게 했던" 이란 수식어가, 헨리 조지 그의 이름 앞에 붙어 있습니다. 지금 감각으로는 "뭘 그렇게까지나?"하는 회의적 반응이나 불러일으킬 것 같지만, 그런 막연한, 그리고 잘못된 선입견은 이 책을 읽으면서 깨어지리라 기대합니다. 그가 제시한 토지단일세제는, 아주 단순하면서도, 근본의 불의를 제거하는 발본색원의 처방이라는 점에서 대단히 매력적입니다. 물론, 이를 단시간에 전면적으로 도입할 수는 없습니다. 꼭 심술쟁이 빌프레도 파레토 할아버지의 강력한 훼방에 발목이 잡혀서가 아니라, 그를 실현하기 위해 얼마나 무리한 독재적 조치들이 선행되어야 하겠습니까.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하지 않고, (이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고의 선과 가치라 해도 정의라는 낮은 단계의 관문을 거치지 않았다면 없는 것보다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재의 세제 대원칙, 즉 "발생하는 소득과 부가가치를 우선적으로 과세 대상으로 삼는다." 는 명제는, 이 책에서 헨리 조지가 통렬히 비판하고 있듯, "열심히 흘린 땀과 창의력"을 모욕하고, 억제하며, 감시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게 문제입니다. 어느 인디언의 말처럼, "신이 인간과 동식물에게 내린 무상의 축복인 대지에, 어떻게 사람이 인위적으로 금을 그어 배타적인 소유의 대상으로 할 수 있는가? 우리는 그런 백인의 개념을 이해할 수 없다." 같은 생각은, 대지에 두 발을 디디고 오로지 지구의 중력에만 복종할 의무를 지닌 채, 사슬에 묶이지 않고 자유로운 존재로 태어난 우리 인간이 당연히 그 머리와 영혼으로부터 떠올릴 수 있는 공감의 대상입니다. 대 체 어느 공동체가, 노동과 창의적 사고를 장려하고 격려하지는 못할망정, 그에다 벌칙을 부과할 수 있습니까? 공공의 서비스 기능을 가동하기 위한 재원인 조세의 징수는, 육체적, 정신적인 그 어떤 노동이나 기여도 하지 않는 블로소득, 자산으로부터 우선적으로 이뤄저야 함이 당연합니다. 이는 (헨리 조지의 말처럼) 자연의 정의인 것입니다.



Marx 는 말하기를 "종교는 아편."이라고 했습니다. 현실의 문제에 대해 그 원인과 구조를 직시하지 않고, 도피적 환상에서 그 탈출구를 찾는 일체의 행태를 두고 두루 적용될 수 있는 비유이자 경구라서, 딱히 종교를 모욕했다는 식으로 편협하게 받아들일 말은 아닙니다. 그런데 헨리 조지는, 이 책 도처에서 성경 구절을 인용하며, "우리들 중 가장 낮은 자의 모습을 하고 지상에 내려온 구세주의 가르침을, 그가 본디 말했던 방식으로 받아들이며, 왜곡 없이 실천에 옮기자."는 취 지의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는 본디 무력과 폭력, 기만과 착취, 억압과 모멸로부터 헤방되고자 했던 민중의 의존처였는데, 이것이 어찌하다 가진자, 지배층의 편한 도구로 타락하여 지상에서 정반대의 기능을 하고 있으니, 헨리 조지, 그리고 그와 뜻을 같이했던 수많은 행동가, 그리고 베링 해, 시베리아를 사이에 두고 다른 대륙으로부터 그의 열렬한 추종자가 되었던 톨스토이 같은 대문호의 개탄 대상이 되지 않았겠습니까(톨스토이는 이에 영향을 받았는지, <구두수선공이 만난 예수> 같은 감동적안 동화를 창작하기도 했습니다. 바로 마태복음의 저 구절이 모티브죠). 이에서 알 수 있는 바처럼, 헨리 조지는 사회 모순의 지적과 그 근본적 해소를 주장하는 점에서 Marx와 공통적이나, 그 방법론에 있어 보편적 휴머니티에 더 깊은 뿌리를 둔다는 점에서 Marx와 큰 차이를 보입니다.



<진보와 빈곤>은 현재 한국어판으로도 여러 책이 나와 있고, 헨리 조지의 트레이드마크처럼 우리의 뇌리에 새겨진 터라 모르는 분이 없을 것입니다. 이 책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었습니다만, 한국에서 헨리 조지의 삶과 사상에 가장 정통한 전문가이자, 실천적 조지스트로 꼽힐 만한 전강수 교수님의 번역으로 이번에 처음 소개되었습니다. 전강수 교수님은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였던 김수행 교수님의 제자 중 한 분이시기도 하고, 김수행 교수님이 언제나 견지했던 글쓰기 원칙 중 하나인 "소설처럼 술술 읽히는 문장"의 구현에 가장 성공적인 결과를 내놓아 오신 저술가이기도 합니다. 이 책의 최고 장점은, 말 그대로 소설처럼 잘 읽힌다는 겁니다. 그 이유는 첫째, 헨리 조지 자신이 워낙 막강한, 감동적이고 호소력 짙은 문장을 구사하는 필자이기도 했고, 둘째, 이 전강수 역자가 헨리 조지의 사상에 정통한 전문가라는 사실, 마지막으로, 전강수 교수님 본인이 빼어난 문장가이자 박식한 저술가라는 사실에 크게 힘입습니다. 소설처럼 잘 읽히는 문장에, 풍부한 역주까지 달려 있기 때문에, 고전을 읽는다는 부담이 전혀 없이 마치 진보언론의 칼럼이나 독파하듯 책장이 잘 넘어갑니다. 잘 넘어가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매 페이지마다 사회 모순과 인간성 본연의 문제에 대한 각성을 쉼 없이 떠올리게 합니다.



이 책은 헨리 조지의 문장가로서의 면모를 유감 없이 보여 줄 만큼, 빼어난 창작 문장과 명구의 인용으로 가득합니다. 그는 루이 블랑의 유명한 경구 "능력에 따라 생산하며, 필요에 따라 분배한다."를 인용하고 있는데, 이를 제가 영어 원서에서 찾아 보니 from each according to his abilities; to each according to his wants,라고 되어 있더군요(루이 블랑은 물론 불어로 저 말을 했겠지만). 영어로 읽으나 한국어로 읽으나 입에 착착 감기는 참 아름다운 레토릭입니다. p121 중간 쯤에 보면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가 있죠? 이는 구약 신명기 25장 4절에 나오는 말입니다. "밟아 떤"다는 건 탈곡 작업을 말합니다.



이 책은 역사서로서의 면모도 지니고 있습니다. 책에는 당시 폭력적이고 파렴치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한 이른바 robber baron들의 이야기가 가득 나옵니다. 벤더빌트 제이 굴드, jp 모건... 그런가 하면 극심한 기근이 덮친 고향을 떠나  대거 신세계로 들어 와서 사회 최하층부를 구성했던 아 일랜드 이민들의 가슴 아픈 사연도 실려 있죠. 헨리 조지는 이들을 가리켜, "인간 쓰레기"라며 다분히 역설적인 호칭을 부여합니다. 물론 그 동기에는 정의로운 분노가 깔려 있죠. "어떻게 같은 사람으로 태어나 동족을 이처럼이나 비참한 지경에 방치할 수 있는가?"


130여년 전의 책이 현 사회에 무슨 개선에의 시사점을 던져 줄까? 같은 회의가 드는 분은 이 대목을 읽어 보십시오.



p32:9
소규모 가게주인과 소상인들은 대기업의 영업사원이나 직원으로 변모하고 있다.



우석훈이나 김용민, 김어준 책에 나오는 말이 아닙니다. 130년 전에 저술된 바로 이 책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고전은 무엇을 고전이라고 해야 할까요? 바로 이처럼 시대의 흐름에도 퇴색하지 않고 유효하게 적실한 진단과 처방을 제시하는 책 아니겠습니까.



이 책의 원제는 social problems입니다. 그렇죠. 그저 <(제반)사회 문제>입니다. 대단히 겸손하고(?) 온건한 제목입니다. 한국에서 헨리 조지에 가장 정통한(이론과 실천 모든 면에서) 전 교수님이 옮긴 이 한국어 번역본은, 보시다시피 <사회문제의 경제학>입니다. 진보 경제사상가의 고전은 거개가 사 회적 문제 논의에 초점이 맞춰진 성격이므로, "경제학'이라는 말은 굳이 개입할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진보 성향 경제학자들에게는 "사회학 = 경제학"의 등식이 성립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므로, 예컨대 "두 분야의 만남" 같은 규정은 그 인식의 깊이 없음을 드러냄에 지나지 않습니다. 당연히 이 책은 사회적 문제를 논급하며, 기초적 수준의 시장 원리 지식을 분석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으므로, 번역판의 저 제목은 자칫 소활해 보이는 첫인상을 만회하기에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합니다.



거듭되는 말이지만, 전강수 교수님의 문장이 참 좋습니다. 예를 들어,  p197:9의 긴박(緊縛) 같은 단어를 보십시오, 토지에 예속된 농노 등의 처지를 표현할 때 쓰는 말인데, 저는 이 단어를 몰라 국어사전을 찾아 보기까지 했습니다. 사전의 정의로는 "[명사] 꽉 졸라 얽어맴"이라고 나옵니다. "와, 어제 준플레이오프 긴박감 쩔?便?여? " 할 때 그 긴박緊迫은 아닙니다. 이처럼 교수님의 문장은, 잘 읽히면서도 적확한 어휘를 구사하시고 있다는 점이, 독자로 하여금 고마움과 즐거움을 느끼게까지 하는 부분입니다.



고 전을 읽다 보면, 특히 그것이 경제문제에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는 주제를 다루고 있는 책이라면, 아무래도 시대에 뒤떨어진 주장을 하고 있기가 쉽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이를 두고, 손쉽고 경박한 비판을 할 게 아니라, 오히려 재해석과 재발견의 자세로 독서에 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때로 고전에서 허점을 찾아 내는 일은, 마치 청출어람의 분위기처럼 스승을 능가하는 제자의 뿌듯함을 실감할 수 있어 지식 쌓는 보람을 느끼게도 해 줍니다.



p160 이하의 12장 "과잉생산" 챕터를 보십시오. 헨리 조지는 이 장에서, 어느 한 섹터의 생산이 증가하면, 그 재화의 가격은 하락하며, 이 내려간 재화를 구입하게 된 소비자들은 상대적으로 소득이 증가하게 되어(쌀값이 만원에서 9천원으로 내려갔다면, 개인은 [가처분]소득이 1000원만큼 증가한 셈이겠죠?), 다른 재화를 구입할 여력이 늘어납니다. 이는 다른 재화의 소비까지 촉진하게 되고, ... 이 선순환은 끊임 없이 이어져, 사회는 공황이라는 것을 모르게 된다는 주장입니다(헨리 조지의 시대에도 대규모 불경기는 주기적으로 사회를 엄습했습니다). 어떠신지요? 네. 느끼신 대로, 이 주장은 지나치게 나이브하고, 다양한 내외생변수의 개입을 무시한 단순화입니다. 이 당시에는 (정치하게 이론화된 상태로)알려져 있지는 않았겠으나, 재화의 가격 하락은 대체효과와 소득효과를 동시에 부릅니다. 이것이 당해 개별 재화의 가격에 미치는 영향도 정확히는 알 수 없고(대부분은 수요 증가로 나타나겠지만), 하물며 타 생산 부문에 미치는 영향을 올바로 계측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헨리 조지는 놀랍게도, "그 재화를 사용하는 다른 생산분야의 원가 하락"마저 유발하여, 이 지복(至福)의 파장이 그칠 줄 모르고 확대된다고까지 하나, 이는 그야말로 과격한 일반화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런 재화가 현실에서 존재하는 예라면, 아마 석유 하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티셔츠, 피자, 운동화, 영화관람료처럼 대중적인 소비 섹터에서도, 그런 "일타삼피"의 꽃놀이패를 찾는 일이란 극히 어려울 뿐입니다. 현대의 네트웍이나 산업 연관 관계의 복잡성은, 그런 단순한 처방을 거부합니다. 헤아릴 수 없이 세분화한 개인의 개성 발달도 이에 한몫합니다. 오늘 당장 토니모리의 50%세일이 개시된다고 해서, 바로 인접한 못된고양이 매장의 매상고가 과연 조금이라도 증가할지의 여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런 주장은 마치 "정직이 최상의 책략이다." 같은 속담의 타당성만큼이나 현실에서의 힘이 약합니다. 우리는 정말 타인의 검은 속셈을 아무런 의식도 하지 않은 채 신사협정을 맺고 혼자 준수할 수 있을까요? 나 혼자 깨끗하다고 모든 일이 잘되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최악의 사기꾼에게 좋은 일만 시켜 주는 일로 끝날 수도 있습니다. 자기 합리화의 대가에게 그 좋은 점을 칭찬해 줘 봐야, 상대는 좋은 과실만 챙기고 입을 씻을 수도 있습니다. 이러면 이 사람은 이미 선행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악행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나 같습니다. 악에 어리석은 방법으로 공헌한 자도, 똑같은 악행의 실천에 공범으로 가담한 것이기 때문이죠. 헨리 조지의 저 아이디어(12장에서 논한)가 문자 그대로 효력을 발휘하려면, 동시간대에 모든 인류가 휴머니즘으로 제 영혼을 정화하고, 거듭나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일체의 경제적, 사회적, 개인적 부조리와 악덕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본성에서 악과 이기심이 일소되고,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복귀했다는 전제 아래 저 처방은 타당합니다.



다만 헨리 조지의 아이디어는 중요한 시사점을 안겨다 줍니다. 우선 그보다 앞선 시대의 경제학자인 세이가 주장한 (이른바) 법칙의 내용을 보십시오, 터무니없게도, 이분은 "모든 상품은 결국 시장에서 청산되게 운명지어져 있으며, 일반적 과잉생산은 있을 수 없다."는 주장을 폈죠. 겉으로 봐서 후대의 헨리 조지가 한 말과 표현이 똑같습니다. 다만 세이가 한 말은, 시장의 전지전능성을 강조한 극단적 보수파의 입장이고, 헨리 조지는 정반대의 입장에서 독점자본가의 탐욕을 지적했다는 점에서 아주 선명한 대척을 이룹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유와 배경이 전혀 다르나, 결과적으로 동일한 명제를 논하고 있다는 사실이요. 참으로 역설적입니다. 물론 현실은 이러한 순진한, "숭고한"기대를 정면으로 배반합니다.



다 음으로 다른 시사점도 있습니다. 헨리 조지보다 한참 뒤의 사람인, 케인즈를 떠올려 봅시다. 이 사람의 주장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뭡니까? "경기가 나쁘면 돈을 찍어내 뿌려서라도 경기 부양에 나서야(아베도 요 비슷한 말을 한 적 있죠)지, 시장만 믿다가는 다 죽는다."죠. 근데 이 이야기도, 저 위에 제가 적은 대로(당연히 이 책에 나온 대로), 헨리 조지의 주장과 통합니다. 이것은 개별 명제의 우연적 일치가 아니라, 아예 기조와 본의까지 일치하는 것입니다. 다만 케인즈의 생각은 "가난한 다수를 구할 수 없는 사회는 부유한 소수도 구할 수 없다."는, 소수 귀족 엘리트의 체제 수호 본능과 우수한 지성의 산물이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죠.



번 역에서 몇 가지만 지적했으면 합니다. p33 중간 쯤에 보시면 아서 대통령의 언급이 나옵니다. 체스터 a 아서는 미국의 21대 대통령인데, 영화 <다이하드 3> 중에서 "퀴즈"의 소재로 잠시 언급되기도 했습니다(폭발물이 설치된 학교 이름). 첵에는 역자의 보충 설명을 통해, "낙선한 아서가 낚시를 하러 가자 철도회사들이 가차없이 잘라버렸다."고 나와 있습니다만, 이는 잘못입니다.



체 스터 a 아서는 일종의 정치 청부업자 같은 유형으로 수완이 좋아 대통령까지 된 사람인데요(영화 <다이하드 3>에서는 새뮤얼 잭슨의 입을 빌려 "세무공무원이 대통령까지 출세한 사람"으로 소개하고 있으나 그렇지 않습니다. 국세청장직은 엽관행위로 따 낸 자리였습니다), 이 사람은 자본가들의 후원을 받아 부통령 지명을 따 내고, 가필드 대통령의 암살 후에 그 직을 승계했으나, 대통령이 된 후에는 대중추수노선을 걷습니다. 유명한 조치로, "기차에서 흑인들도 차별 없이 좌석에 앉을 권리"를 법제화한 일이 있죠(이게 현실이 되려면 이후 백 년이 더 지나야 했지만요). 이 조치로 특히 철도회사에서 치를 떨었습니다. 그래서, 업무가 산적한 현직 대통령이 플로리다로 낚시를 떠난다고 하자(당시에는 워싱턴에서 플로리다까지 가려면 대단히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이들 철도회사들이 보복 차원에서 직무 태만을 걸고 언론을 통해 그를 집중 비난하고 나선 것입니다. 결국 이 일로 체스터 a 아서는 정치적으로 재기불능이 됩니다. 원문의 deadhead는 이 사실을 지적한 것이고, 역자의 설명은 틀린 것입니다.



p119의 아래 8째 줄을 보십시오. 잘 이해가 되십니까? 이 문장은 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there are those who constantly talk and write as though whoever finds fault with the present distribution of wealth were demanding that....



이 문장을 본 뜻이 살아나게 풀면 다음과 같습니다.



현재의 부(富) 분배 시스템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마치 예외 없이 ....... 를  일치되게 주장하기라도 하는 양,

덮어놓고 매도하는 필자와 논자들이 있다.



이렇게 쓰면 전혀 오해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런데 책의 그 번역은, 전 교수님이 올바로 이해하신 바를, 독자로 하여금 다른 방향으로 오도할 모호성을 띠고 있습니다.



p116의 "미드 나이트 미션"은, 한국어나 영어나 아무 이유 없이, '미드-나이트'로 띄어쓰기가 되어 있습니다. 이는 잘못입니다. 여기서 띄어쓰기를 하면 다른 뜻으로 오해될 수 있습니다. 하물며 고유명사이니만큼 그 중요성은 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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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혈 2013-10-16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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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총선과 대선에서 우리 국민들의 큰 관심을 끈 이슈가 바로 경제민주화였다. 사회에서 생산된 부의 불공정한 분배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개혁이 필요하다는 점은 선거를 앞둔 각 정당의 고민이었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이 문제에 대해 이미 130년 전에 치열한 고민을 한 경제학자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사회문제의 경제학>의 저자 헨리 조지다.

 

사실 돌베개에서 나온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칼 마르크스는 알았어도 산업자본주의 신생국가 미국에서 토지단일세라는 과격한 주장(?)을 전개한 경제학자가 있다는 사실은 미처 모르고 있었다. 이 책의 원 제목인 <Social Problems>이 말해주듯 이 책이 나온 1883년의 미국 사회의 다양한 경제 문제들을 저자는 냉철하게 분석한다. 그의 해석에 따르면 실제로 평등과 자유를 기본 모토로 삼은 미국을 지배하는 건 기업이라는 진단에 도달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21세기에 말했던 것처럼 이미 권력은 시장에 넘어갔다는 말은 19세기에 나온 말이었다.

 

헨리 조지는 토지의 사유화가 오늘날 그리고 현대에까지 지속되는 부의 불공정한 분배의 원흉이라고 이 책을 통해 적시한다. 그는 이미 그의 대표작인 <진보와 빈곤>(1879)에서 사회의 모든 생산활동은 토지를 기반으로 이뤄진다고 주장했고, <사회문제의 경제학>에서도 예의 문제를 심화시켜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방대한 토지를 소유한 계급이 노동생산물을 독점하고, 노동자를 착취하고 부당한 억압을 일삼는다고 그는 꼬집는다. 이 책을 읽으면서 왜 그렇게 고전주의 경제학자들이 지대를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알 수가 있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모든 생산은 토지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토지야말로 사회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고, 이 토지에 대한 토지단일세 개혁을 통해 공공에게 그 이익을 돌려주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 내용이다.

 

아울러 헨리 조지는 민주국가 미국의 비참한 현실에 대해서도 가감 없이 들려준다. 남북전쟁을 통해 노예해방에는 성공했지만, 토지를 독점한 지주 계급은 야만적인 노예제도 보다 더 효율적인 착취 도구로 산업노예 제도를 창안해 냈다고 선언한다. 최소한의 생존과 재생산을 위한 저임금으로 노동자들을 부리면서 부의 영구적인 대물림을 고안해냈다. 자본가 계급은 정당한 방법이 아닌 불의와 불평등한 분배, 입법 로비, 주가조작 그리고 사기마저 마다하지 않으면서 부를 축적했다. 미국의 어린 아이들은 가계를 돕기 위해 가혹한 유아노동에 내몰리는 상황을 있는 그대로 들려준다.

 

19세기 미국에서도 정의로운 부의 분배를 방해하는 세력이 있었는데, 이런 악의적인 정치선전에 동원된 프로파간다의 한 축으로 교회 설교자가 있었노라고 그는 증언한다. 빈곤, 범죄, 저임금, 과잉생산, 정치적 부패 같은 존재하는 모든 불의한 존재도 창조주 하나님의 뜻이라는 주장에는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구호단체나 애스턴이나 밴더빌트 가문의 자선 사업은 어떻게 보면 민주국가 시민에게는 모욕이나 다를 바 없다는 헨리 조지의 주장은 일면 과격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국민에게 마땅히 공여되야할 토지 사용 지대나 독점 사업으로 벌어들인 재화를 빈민들에게 시혜라도 베푸는 듯이 투척하는 모습은 기만적이라고 헨리 조지는 일갈한다.

 

신생국가 미국의 방대한 미개척지는 구세계의 매력적인 투자 대상이었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산업혁명을 거친 영국의 토지는 이미 귀족계급이 독점했고, 유산계급은 이제 막 새로 개척 중인 신대륙에 눈을 돌렸다. 토지 가치의 상승이 이자나 임금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고 임금 하락과 대량의 실업자를 양상하게 되는 역설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설명해준다. 나같은 아마추어 독자에게는 그마저도 쉽지 않은 설명이었지만. 그 대표적인 예로 투하자본이 집중된 미국 철도사업의 실태를 헨리 조지는 들었다. 기계화와 분업을 통한 노동력절감 역시 분배의 양극화를 심화시킬 따름이다. 어떤 종류의 개선의 혜택도 모두 토지 소유자에게 돌아가는 상황은 부의 집중과 독점을 강화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노동자들은 지주의 (산업)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프랑스 인권선언에 명시된 공적 재난과 정부 부패는 인권에 대한 무관심과 멸시 때문이라고 헨리 조지는 주장한다. 천부적인 권리이면서 양도불가능한 누구나 평등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자연권에 입각해서, 토지 사용권은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돌려 줘야 한다는 것이 미국 국부 중의 하나인 토머스 제퍼슨의 주장이기도 하다. 정부 권력에 대한 직접 통제를 강화해야 공적 재난과 정부의 부패를 막을 수 있다는 부분은 지금 우리의 상황에도 정확하게 들어 맞는다. 상품 가격 상승을 유발하는 다양한 간접세와 공공부채 역시 개선되어야 한다고 헨리 조지는 지적한다. 어쩌면 이렇게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세태와 꼭 들어맞는지 책을 읽는 내내 전율의 연속이었다.

19세기 미국의 주력 산업이 철도사업이었다면, 21세기 미국을 선도하는 산업은 에너지산업일 것이다. 엔론 사태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공정한 경쟁을 통한 가격인하 서비스를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수지계산을 맞추기 위해 담합은 물론이고 주가조작도 마다하지 않는 추악한 민영화 사업의 폐해는 이미 130년 전부터 벌어지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공정한 경쟁을 주도할 정부에 대한 지속적인 통제와 감시가 필요한 것이다. 막대한 비업무용 부동산을 보유한 대기업과 재벌집단에 대해서도 중과세를 부과해서, 투기를 원천봉쇄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헨리 조지의 혜안은 우리 사회경제 전반에 적용되지 않는 부분이 없을 정도다.

 

어쨌든 헨리 조지는 모든 문제의 근원을 토지 사유화와 물질적 진보에 두었는데, 과연 그의 토지단일세 이론이 21세기 현재에도 모두 적용되는지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봐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현실주의 경제학자답게 그는 자신의 주장이 19세기 미국의 사회경제제도를 단번에 바꾸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높은 지능과 고결한 도덕성으로 무장한 개인이 각성하고, 사상의 전달을 통해 사회 개혁을 도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쉽지 않은 독서였지만, 시대를 앞선 선지자의 생각을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독서였다. 기회가 된다면 헨리 조지의 주저인 <진보와 빈곤>도 읽어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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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3-10-20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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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에 대한 새로운 이변 새창으로 보기 구매
원칙적인 원론을 정확하게 접근할 수 있는 고전이다. 복이 많아야 읽어 볼 수있는 책이다.
비비아나 2013-10-20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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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이 책의 종이책 : 17,82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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