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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호의 시시각각] NL들의 ‘북로미불’이 북핵 키웠다
[강찬호의 시시각각] NL들의 ‘북로미불’이 북핵 키웠다
[중앙일보] 입력 2017.09.08 02:13 | 종합 34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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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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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핵’ 외치다 북핵엔 입 다물어
대화 원할수록 압박하는 슬기를
강찬호 논설위원“저런 XX가 국방장관이라고… 잘라 버려!”
북한의 6차 핵실험 다음 날 국회 국방위에 출석한 송영무 국방장관이 “미국 전술핵 재배치 방안도 옵션의 하나로 검토하겠다”고 밝히자 민주당 의원들 입에선 이런 욕이 튀어나왔다. 전술핵 재배치를 반대하는 청와대 공식 입장을 국방장관이 한 칼에 뒤집어버렸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보면 송 장관 말에 일리가 있다. 북한이 핵무기를 완성하면, 우리의 선택지는 미국산 전술핵 재배치 아니면 자체 핵무장으로 좁혀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민주당 의원들은 도끼눈 뜨고 반대한다. “북한에 비핵화를 요구할 명분이 없어진다”는 이유를 대지만, 이면에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 전술핵 재배치는 그들이 30년 전 목숨 걸고 이뤄낸 ‘남한 비핵화’의 업적(?)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1986년 3월 막 개강한 대학가에 “반전 반핵, 양키 고홈” 구호가 등장했다. 주요 대학 총학생회를 장악한 NL(민족해방파) 주도로 터져나온 이 구호는 당시 한국 내에 배치된 미국의 전술핵 500여 개를 겨냥한 것이었다. NL들은 “민족의 생존이 핵폭풍 전야에 섰다”며 미국의 전술핵과 주한미군 철수를 목놓아 외쳤다. 리영희가 쓴 『반핵』 같은 책이 이들의 지침서로 애용됐다. NL들은 한발 더 나가 당시 정례화돼 있던 대학생 전방입소 훈련을 ‘양키의 용병교육’으로 못 박고 반대 시위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서울대생 2명이 분신자살하며 NL들의 ‘반핵’ 운동은 절정에 달했다.
5년 뒤인 91년, 미국은 ‘탈냉전’을 이유로 골치 아픈 한국 내 전술핵을 전면 철수했다. NL들은 “우리의 투쟁으로 핵 없는 한반도가 실현됐다”며 환호했다. 그러나 남한 땅에서 전술핵이 사라진 그 순간, 북한은 대놓고 핵무기 개발에 착수했다. 그 결과 26년 만에 세계 아홉 번째 핵국가 지위를 목전에 두게 됐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NL들의 태도다. 북한의 핵 개발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음에도 그렇게 목숨 걸고 외치던 ‘반핵’ 구호는 이들의 입에서 싹 사라졌다. 결국 이들이 반대한 핵은 ‘미국 핵’이었을 뿐이고, 북한 핵은 미국의 적대시 정책에 맞서기 위한 ‘일리 있는’ 핵이었던 셈이다. NL들이 본격적으로 공직에 진출한 첫 정부인 노무현 정부는 ‘북핵 반대’ 대신 ‘북핵 불용’이란 약화된 표현을 썼고 노 대통령은 “북한의 핵 개발에 일리가 있다”는 말까지 해 워싱턴을 경악시켰다. NL들의 ‘북로미불(북한이 하면 로맨스, 미국이 하면 불륜)’ 관념이 반영된 것 아닌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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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NL들이 9년 만에 청와대에 돌아왔다. 행정관과 비서관 자리를 차지한 이들은 문재인과 오랜 세월 고락을 함께해온 측근들이다. 정의용, 강경화, 송영무도 대통령과의 스킨십에선 이들에게 밀릴 수밖에 없다. 이들이 어떤 대북관과 안보관을 갖고 있는지가 중요한 이유다. 물론 나이가 지천명을 넘긴 사람들이 30년 전 학생 시절의 비현실적 대북관을 고수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린 보수정부와 달리 북한과 통한다”는 확신만큼은 버리지 못한 것 같다.
북한은 NL들의 편이 아니다. 그들의 관심사는 오직 김정은 정권의 생존이다. NL들은 이제라도 인식을 바꿔야 한다. 지금은 문 대통령 말마따나 북한을 ‘극한 압박’해서 태도 변경을 끌어낼 때다. 북한이 내심 ‘원군’으로 믿어온 NL들이 앞장서 “전술핵 재배치도 불사하라”며 김정은을 압박한다면 도발을 멈추고 협상장에 나올 공산도 커진다. 대화를 원할수록, 압박에 박차를 가하는 슬기를 NL들에게 기대해본다.
강찬호 논설위원
[출처: 중앙일보] [강찬호의 시시각각] NL들의 ‘북로미불’이 북핵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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