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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시론]진중권을 쫓아내는 대학의 저열함 | Daum 뉴스



[시론]진중권을 쫓아내는 대학의 저열함 | Daum 뉴스

[시론]진중권을 쫓아내는 대학의 저열함조국 | 서울대 교수 법학전문대학원 입력 2009.09.01. 18:12 수정 2009.09.01. 18:12 댓글 63개


근래 진중권씨가 중앙대 겸임교수 재임용에서 탈락한 데 이어 한국예술종합학교·카이스트·홍익대 등에서 강의가 차례로 취소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처음 드는 생각은 "이거 정말 너무 저열(低劣)하고 치사하네!"였다. 그리고 우울, 씁쓸했다. 그와 나는 1980년대 후반 대학원생 시절 당시 운동권에 퍼져 있던 주체사상 비판작업을 하자는 데 의기투합하여 같이 공부하고 글을 썼던 인연이 있다. 이후 전공이나 행보가 달라 잘 만나지 못했고, 언론보도나 글과 책을 통하여 소식을 알고 있는 정도였다. 그렇지만 그가 극우파들을 향해 퍼붓는 맹렬한 독설을 들었을 때, 재기(才氣)·예기(銳氣) 및 발랄함으로 충만한 그의 사회·문화비평을 읽었을 때, 그리고 그가 자동차는 소유하지 않으면서도 경비행기를 사서 하늘을 날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역시 진중권이구먼!"하며 웃을 수 있어 기뻤다.



진씨의 강의 취소가 이명박 정부의 압력 때문이라는 증거는 없다. 만약 그러했다면 이는 '대학의 자치'라는 헌법적 가치에 대한 중대한 침해일 것이다. 강의 취소 결정이 각 대학의 자율적 결정이라 하더라도 문제는 심각하다. 대학이 대학다우려면, 그 테두리 안에서 어떠한 사상과 이론도 다 허용되고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 진리는 기성의 것을 암기하고 반복함으로써가 아니라 온갖 지적 모험, 도발, 도전을 감행할 때 비로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대학은 체제옹호와 체제전복이 동시에 논의되고 토론되는 곳이어야 한다. 서구 자본주의 국가의 여러 명문 대학에서 우리의 기준으로는 매우 급진적이고 과격한 좌파 교수들을 왜 석좌교수로 모셔놓고 있는지 생각해보라.

진씨의 강의를 취소한 각 대학들은 진씨의 정치적 입장과 행보를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으면서도 계속 강의를 맡겨왔다. 그의 자유롭고 격의 없는 강의 스타일은 학생들에게 인기였고, 그는 사회와 문화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학생들에게 전달해준 것으로 안다. 그런데 왜 이 대학들은 최근 들어 줄줄이 그의 강의를 취소했을까? 지난 정부 시절에는 그의 이름이 필요하여 써먹다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 정권의 눈치가 보이니 알아서 기려 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대학이 정권의 눈치를 보는 순간 대학의 정신은 땅바닥에 떨어지게 마련이기에 대학교수의 한 사람으로 화가 치밀지 않을 수 없다.

더욱 화가 나는 것은 각 대학이 체제·정부비판적인 전임교수는 건드리지 않으면서, 겸임교수와 시간강사의 직을 가진 그를 잘랐다는 점이다. 신분보장을 받는 '정규직'을 건드리면 문제가 커지니 지위가 취약한 '비정규직'을 쳐냈고, 이를 통하여 교수 사회 전체에 암묵적인 경고의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독재정권 시절 같으면 전임이건 비전임이건 체제반대·비판 교수는 모조리 대학에서 쫓아냈을 것인데, 그 정도의 야만은 발생하지 않았으니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가? 향후 진씨 강의 취소를 기화로 하여 전국 대학에서 겸임교수와 시간강사에 대한 '사상검열'이 암암리에 전개될지도 모른다는 씁쓸한 예감이 든다.

진중권을 포용·감당하지 못하는 대학이 대학일 수 있을까, 그를 대학에서 쫓아내는 한국 사회의 수준은 어디쯤인가 생각하며, 오늘은 참으로 오랜만에 그에게 전화를 걸어 술 한 잔 하자고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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