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07

박찬승 김영민 교수님의 [한국학의 신은 숨어 있지 않다>



(6) Facebook



4 July at 16:38 ·
Shared with Only me






얼마 전 한국일보에 실린, 존경하는 김영민 교수님의 <한국학의 신은 숨어 있지 않다>는 제목의 칼럼을 읽었다(아래 링크된 글). 어느 페친께서 링크로 올려주신 글이었던 것 같다. 이 글은 한국사학계의 내재적 발전론, 특히 조선후기의 자본주의맹아론, 그 가운데에서도 김용섭 교수의 '경영형 부농론'은 이미 국내외 학계에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학계 주류는 여전히 내재적 발전론에 입각하여 한국사를 보고, 특히 조선후기의 사회경제적 변동을 그러한 입장에서 보고 있다는 것, 개설서나 교과서도 역시 그러한 시각에서 쓰여지고 있다는 것을 비판하고 있다.
김교수님의 비판과 충고는 김교수님 스스로 이 문제와 관련하여 여러 글을 써오셨고, 또 고민도 많이 하셨기 때문에 쓰실 수 있는 글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도 김교수님의 글을 읽고 시사를 받은 바가 많았고, 내 책 <21세기 한국사학의 진로>에도 길게 인용한 적이 있었다. 이번에도 김교수님의 글을 읽고 자극을 받아, 여기 소박한 견해를 피력해보고자 한다(이 글은 논문이 아니고 거친 생각을 정리한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 글을 놓고 토론할 생각은 별로 없음을 양해해주시기 바란다. 관심 있으신 분은 그냥 한 번 읽어봐 주시면 감사하겠다.)
김교수님의 말씀처럼 한국사학계 주류에서는 아직도 '내재적 발전론'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한국사학계도 이미 1990년대 이래 많은 토론을 하고 고민을 하고 있지만 아직 '내재적 발전론'을 폐기하지 않고 있다.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식민사관의 타율성론, 정체성론과는 달리, 한국사 연구자들은 대부분 한국사가 내적인 역량에 의해 발전해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1960년대 내(재)적 발전론이 처음 제기되었을 때, 그것은 조선후기에만 적용된 것은 아니었다. 고대사 연구자이던 이기백 , 김철준 교수 등은 고대사가 부족국가 - 부족연맹 - 고대국가의 단계, 혹은 성읍국가 - 연맹왕국 - 중앙집권적 귀족국가 의 단계를 거치면서 '발전'했다고 보았다('내적 발전'이라는 말을 처음 꺼낸 이는 이기백 교수였다). 김철준 교수는 또 나말여초에 호족이 등장하여 고대의 골품귀족사회를 청산하고 중세 귀족사회로 전환하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보았다. 또 고려말, 조선초를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이 여말선초에 신흥사대부가 등장하면서 한국사회를 중세에서 근세 사회로 전환시켰다고 보았다. 또 사상사 연구자들은 고대신앙에서 중세 불교로, 중세 불교에서 근세 유교로의 전환 과정 역시 사상사적인 측면에서의 발전이라고 보았다. 1960, 70년대 '내재적 발전론'은 조선후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한국사 전반에 걸쳐 적용되었고, 이를 통해 식민사관의 정체성론, 타율성론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조선후기 사회변동에 대해서도 '경영형 부농론' 만이 아니라, 상업과 수공업의 발전, 실학과 북학의 등장, 신분제의 동요 등을 확인한 연구 업적이 많이 축적되어, 조선후기의 사회변동을 근대의 싹으로 해석하는 이론 또한 그리 쉽게 부정할 수 없는 이론이 되었다. 물론 이론적인 측면에서 서양 근대를 기준으로 삼아 그 싹을 찾아보려 하는 부조적인 수법의 연구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 실증적인 측면에서도 기존 연구에 많은 문제점이 있었다는 것은 이미 많은 사람들에 의해 지적되어 왔다. 그러나 조선후기에 상당한 사회변화가 나타나고 있었던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에를 들어 임란 이후 전국적으로 토지개간과 간척이 이루어졌고, 그 결과 19세기 말 일본인들이 한국에 왔을 때에는 간척 외에는 더 이상 개간할 땅이 별로 남아 있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정도였다. 또 전국적으로 장시의 개수가 크게 늘어나고 시장에서 거래되는 물품도 크게 늘어난 것도 사실이었다. 물론 도시의 상설시장 같은 것이 등장하지는 못했지만, 이는 조선사회가 군현 소재지인 성읍 중심의 사회가 아니라, 성밖의 동족마을 중심의 사회였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었다.
내(재)적 발전론은 한국사를 기본적으로 주체적, 발전적 입장에서 본다는 이론이다. 만일 한국사를 그러한 입장에서 보지 않겠다고 한다면, 내재적 발전론을 폐기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역사(세계사든 한국사든)는 순환하는 것이라든가, 발전도 퇴보도 하지 않고 그저 흘러가는 것이라고 본다든가, 아니면 한국사는 정체를 거듭해왔다든가 하는 생각을 갖는다면 , 내재적 발전론은 폐기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역사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여러 측면에서 볼 때 '발전'해왔다"고 대체로 생각한다. 그런 관점은 어찌 보면 이제는 상식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주 학생들과 수업시간에 "역사는 발전하는가"라는 주제를 놓고 토론을 했는데, 대부분의 학생이 "그렇다고 본다"고 답하였다(물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학생도 소수 있었지만, 대체로 물질적, 정신적, 사회적 측면에서 발전해왔다고 말했다.).
역사학계의 학자들이라고 해서 특별히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다. 학자들도 역시 인류의 역사는 발전한다고 생각하고 있고, 따라서 그들이 한국사는 어떻게 발전해왔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한국사학계의 대부분의 학자들이 내재적 발전론의 문제점을 몰라서 이를 버리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비록 실증적, 이론적 차원에서는 다소 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학자들은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후기사 연구자들의 경우, 토지문제, 호적문제, 신분문제 등을 놓고 오늘도 사료와 씨름을 하고 있다. 그들은 조선후기 사회의 변화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서양식의 근대의 싹인가, 아니면 뭔가 다른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오늘도 고투를 벌이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내적 발전'이라는 시각을 버리고 정체론이나 순환론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학자는 거의 없다. 조선후기에 나타난 조선식의 내적 발전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것이 우리 학자들의 고민이다. 김영민 교수님은 위의 글에서 한국사학자들도 서양의 여러 사회이론을 공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지적하셨는데, 자본주의 맹아론이 바로 서양식 근대화론을 한국사에 그대로 대입하려다가 실패한 케이스였다. 한국고대사, 중세사 연구에서 서양식 이론을 그대로 적용해 보려다가 실패한 사례는 너무나 많았다. 한국사학자들이라고 이론 공부를 안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런 이론 공부는 따로 하더라도, 한국사를 사료에 즉하여 설명하는 한국적인 이론을 새로 만들어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오늘도 고투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 점을 널리 이해해 주셨으면 한다.
(제가 한국사학계의 대변인은 아니지만, 한국사학자들이 내재적 발전론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대체로 위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HANKOOKILBO.COM

[김영민 연재]한국학의 신은 숨어 있지 않다
[김영민 교수 한국이란 무엇인가] <13>내재적 발전론과 한국학 ※‘칼럼계의 아이돌’이라 불리는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가 한국의 정체성, 역사, 정치, 사상, 문화 등 한국에 대한 근본적 물음을 찾아..



Like


Comment
Share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