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07

박찬승 | 위안부

(4) 박찬승 | Facebook: 박찬승 11 Sep 2019

15 Dec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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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한 권 소개합니다. 동북아역사재단에서 편찬한 <한일역사쟁점 -일제식민지배와 극복>이라는 책입니다. 이 책은 지난 봄에 낸 <20개 주제로 본 한일역사쟁점>이라는 책 가운데에서 일제 식민지배와 관련된 11개의 주제를 다시 추려서 별책으로 만든 것입니다. 주제를 살펴보면 러일전쟁, 안중근의 이토 사살, 한국병합의 합법 불법 문제, 일제 식민통치의 성격, 강제동원 피해, 식민사관, 1965년 한일협정, 재일한국인의 역사,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진실, 일본의 교과서 문제, 야스쿠니 신사의 성격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학계의 전문 연구자들이 집필한 책으로서, 저도 이 가운데 '식민사관이란 무엇인가'라는 한 꼭지를 썼습니다. 대중들이 읽기 쉽게 쓴 책이어서 보기 편하실 것입니다. 20개 꼭지가 다 들어 있는 책에는 위의 주제들 외에도 임나일본부설, 백제와 일본의 관계, 임진왜란, 조선통신사, 운요호 사건 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책값은 앞의 책은 11,000원, 뒤의 책은 19,000원입니다. 인터넷에서는 10% 할인가격으로 살 수 있습니다. 기왕이면 20주제 다 들어 있는 책을 보실 것을 권해드립니다. <반일****> 등의 책으로 머리가 어지러운 분은 이 책을 읽으면 아마도 머리가 좀 맑아지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李昇燁, 정혜경 and 210 others
5 comments
15 M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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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을 맞은 역사교육자들의 성명 -------------------------------------------------- 역사부정 세력은 <정의기억연대>에 대한 악의적인 공격을 멈춰라! - 인권과 평화를 온몸으로 가르쳐준 진정한 스승,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께 존경을 보내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전 세계에 알리며 인권운동가로 활동해 온 일본군 ‘위안부’ 피해생존자 이용수 할머니의 최근 발언은 우리를 안타깝게 했다. 이용수 할머니가 이러한 주장을 한 이유와 발언의 맥락을 살피는 일은 <일본군 성노예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이하 정의기억연대)가 앞으로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이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일부 언론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 온 윤미향 전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을 공격하고, 정의기억연대의 활동비를 문제로 삼는 것에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이는 매우 악의적인 방식이다. 언론은 사회의 감시자로서 성역 없이 비판할 의무와 권리가 있지만, 그것은 명확한 사실에 기초해야 한다. 명확한 사실에 기초하지 않은 추측성 기사 또는 정파적 기사는 한 개인 및 단체의 인격과 성과를 허무하게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주기 바란다.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이 같은 악의적 왜곡 보도가 난무하는 가운데, 일부 극우단체나 인물들이 지난 30여 년간 진행되어 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운동의 역사를 부정하고 훼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의기억연대가 이 운동의 중심에 섰던 것은 사실이나 이 운동은 정의기억연대만의 것은 아니었다. 1991년 최초로 일본군 ‘위안부’임을 밝힌 김학순 할머니를 비롯하여 수많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전시 성폭력의 실상을 알리며 고통 속에서 걸어 나와 평화와 인권운동가의 새로운 삶을 사셨다. 그리고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 수많은 역사교사와 학생, 시민, 사회단체들이 있었다. <일본군 성노예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 시위>(이하 수요 시위)는 일본의 과거사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촉매제가 되었을 뿐 아니라 전시 성폭력으로 희생된 세계 수많은 여성에게 보내는 연대의 메시지였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운동은 한국과 동아시아를 넘어 양심 있는 세계 시민들이 함께 일구어온 평화운동이자 인권운동이었다. 우리는 역사교육자로서 학생들과 함께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을 마주하면서, 동아리 활동으로 때로는 체험활동으로 수요 시위에 참여해왔다. 우리에게 수요 시위는 역사의 진실을 알리기 위한 실천과 배움의 장이었다. 또한 우리가 ‘방관자’에서 벗어나 ‘동참하는 사람, 행동하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기회였다. 수요 시위에서 우리는 시민과 함께 역사적 진실, 평화, 인권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그러나 얼마 전 평화의 소녀상을 ‘반일동상’으로 치부하는 역사부정 세력이 수요 시위를 이끌었던 윤미향 전 이사장을 ‘아동학대·청소년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그동안 학생들과 함께 역사의 현장을 함께 했던 역사교육자들을 범법자로 취급하는 모욕적인 행위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부끄러운 이야기’, ‘잔인한 이야기’, ‘청소년에게 악영향을 미치는 이야기’가 아니다. 어째서 일본이 아닌 우리에게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여전히 ‘부끄러운’ 이야기여야 하는가? 정의기억연대는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함께한 동반자이자 동지였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용기를 낼 수 있도록 도왔고, 서로 의지할 수 있도록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나아가 궁극적인 치유는 가해자의 사과와 반성이 있어야 가능하기에 시민들의 힘을 모으고, 연구자들과 연대하며 세계각지에 진실을 알렸다. 그 시간 속에서 행정상의 실수나 소통의 부족이 있을 수 있다. 미흡했던 행정 절차를 규정에 따라 바로 잡고, 단체 운영에 대한 각계의 조언을 경청하는 과정은 필요하다. 그러나 일부 언론과 역사부정 세력의 정의기억연대에 대한 공격은 실수를 바로 잡거나 새로운 방향 모색을 위한 비판이 아닌 악의적인 비난과 선동이다. 이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운동을 폄훼하고 역사의 진실을 부정하는 행위이다. 무엇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과 인권 향상을 위한 연구와 실천이 위축받는 일은 없어야 한다. 우리 역사교육자들은 학생들과 함께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방법을 찾고 실천하는 길에 언제나 앞장서겠다. 그리고 역사부정 세력에 맞서 다양한 배움터에서 역사적 정의를 바로 세우고자 하는 시민들과 연대해 나가겠다. 2020년 5월 15일 스승의 날 전국역사교사모임, 역사교육연구소
김육훈's post
스승의 날을 맞은 역사교육자들의 성명 -------------------------------------------------- 역사부정 세력은 <정의기억연대>에 대한 악의적인 공격을 멈춰라! - 인권과 평화를 온몸으로 가르쳐준 진정한 스승,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께 존경을 보내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전 세계에 알리며 인권운동가로 활동해 온 일본군 ‘위안부’ 피해생존자 이용수 할머니의 최근 발언은 우리를 안타깝게 했다. 이용수 할머니가 이러한 주장을 한 이유와 발언의 맥락을 살피는 일은 <일본군 성노예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이하 정의기억연대)가 앞으로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이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일부 언론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 온 윤미향 전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을 공격하고, 정의기억연대의 활동비를 문제로 삼는 것에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이는 매우 악의적인 방식이다. 언론은 사회의 감시자로서 성역 없이 비판할 의무와 권리가 있지만, 그것은 명확한 사실에 기초해야 한다. 명확한 사실에 기초하지 않은 추측성 기사 또는 정파적 기사는 한 개인 및 단체의 인격과 성과를 허무하게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주기 바란다.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이 같은 악의적 왜곡 보도가 난무하는 가운데, 일부 극우단체나 인물들이 지난 30여 년간 진행되어 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운동의 역사를 부정하고 훼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의기억연대가 이 운동의 중심에 섰던 것은 사실이나 이 운동은 정의기억연대만의 것은 아니었다. 1991년 최초로 일본군 ‘위안부’임을 밝힌 김학순 할머니를 비롯하여 수많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전시 성폭력의 실상을 알리며 고통 속에서 걸어 나와 평화와 인권운동가의 새로운 삶을 사셨다. 그리고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 수많은 역사교사와 학생, 시민, 사회단체들이 있었다. <일본군 성노예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 시위>(이하 수요 시위)는 일본의 과거사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촉매제가 되었을 뿐 아니라 전시 성폭력으로 희생된 세계 수많은 여성에게 보내는 연대의 메시지였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운동은 한국과 동아시아를 넘어 양심 있는 세계 시민들이 함께 일구어온 평화운동이자 인권운동이었다. 우리는 역사교육자로서 학생들과 함께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을 마주하면서, 동아리 활동으로 때로는 체험활동으로 수요 시위에 참여해왔다. 우리에게 수요 시위는 역사의 진실을 알리기 위한 실천과 배움의 장이었다. 또한 우리가 ‘방관자’에서 벗어나 ‘동참하는 사람, 행동하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기회였다. 수요 시위에서 우리는 시민과 함께 역사적 진실, 평화, 인권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그러나 얼마 전 평화의 소녀상을 ‘반일동상’으로 치부하는 역사부정 세력이 수요 시위를 이끌었던 윤미향 전 이사장을 ‘아동학대·청소년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그동안 학생들과 함께 역사의 현장을 함께 했던 역사교육자들을 범법자로 취급하는 모욕적인 행위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부끄러운 이야기’, ‘잔인한 이야기’, ‘청소년에게 악영향을 미치는 이야기’가 아니다. 어째서 일본이 아닌 우리에게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여전히 ‘부끄러운’ 이야기여야 하는가? 정의기억연대는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함께한 동반자이자 동지였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용기를 낼 수 있도록 도왔고, 서로 의지할 수 있도록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나아가 궁극적인 치유는 가해자의 사과와 반성이 있어야 가능하기에 시민들의 힘을 모으고, 연구자들과 연대하며 세계각지에 진실을 알렸다. 그 시간 속에서 행정상의 실수나 소통의 부족이 있을 수 있다. 미흡했던 행정 절차를 규정에 따라 바로 잡고, 단체 운영에 대한 각계의 조언을 경청하는 과정은 필요하다. 그러나 일부 언론과 역사부정 세력의 정의기억연대에 대한 공격은 실수를 바로 잡거나 새로운 방향 모색을 위한 비판이 아닌 악의적인 비난과 선동이다. 이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운동을 폄훼하고 역사의 진실을 부정하는 행위이다. 무엇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과 인권 향상을 위한 연구와 실천이 위축받는 일은 없어야 한다. 우리 역사교육자들은 학생들과 함께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방법을 찾고 실천하는 길에 언제나 앞장서겠다. 그리고 역사부정 세력에 맞서 다양한 배움터에서 역사적 정의를 바로 세우고자 하는 시민들과 연대해 나가겠다. 2020년 5월 15일 스승의 날 전국역사교사모임, 역사교육연구소
신영숙 and 22 others
23 J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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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모로 논의가 필요한 사안입니다.
강성현's post
역사왜곡금지법안 유감, 그러나 "논쟁"이 필요하다 #위안부관계법적쟁점 #위안부연구사 번외편 1. 양항자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에서 “역사왜곡”은 무엇을 의미하고, 어떤 ‘행위 결과’를 처벌하려 하는가? 제1조에서 확인된다. - “일제강점기 전쟁범죄, 5.18민주화운동 및 4.16세월호 참사 등에 관한 역사적 사실을 부인 왜곡하는 행위” - “피해자 등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모욕하는 행위” 이 행위 결과의 처벌은 목적은 무엇인가? - “국민의 역사의식 제고” - “피해자들의 명예를 보호함” 제3조는 역사적 사실의 부인 또는 왜곡 행위를 구체적으로 정의한다. - 신문, 잡지, 라디오, TV, 그 밖의 출판물 또는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또는 전시, 공연, 토론회, 간담회, 기자회견, 집회, 가두연설의 발언을 통해 위 사건의 역사적 사실 부인 또는 현저히 축소 왜곡하거나 허위 사실 유포 행위 - 일본의 “일제 식민통치 옹호 단체”의 역사 부정에 내응하는 행위(찬양, 고무, 선전, 동조) 또는 그 단체로부터 금전, 물품, 재산상 이익을 수수 약속 요구 목적 행위 - 위 행위로 기 처벌받거나 면제 받은 후 3년 이내 위 행위를 반복하는 행위 - 독립유공자 등 명예훼손과 모욕과 관련해서는 고소가 없더라도 공소제기 - 예외 사항으로, 학술 연구, 예술 활동, 보도,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일 때 처벌하지 않음 2. 위 사건들에 대한 역사 사실은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나? 양향자 법안은 기존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보호 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법률,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를 근거로 내세웠지만(세월호 관련 법안은 근거로 두지 않았음. 아직 진실 규명이 진행되고 있는 상태를 반영한 것으로 보임), 이 법들이 완전히 역사적 사실 또는 진실 규명을 완료한 것은 ‘결코’ 아니다. 이 문제들은 인도에 반하는 범죄, 넓은 의미의 전쟁범죄, 심지어 일부 제노사이드 범죄 등에 해당하는 조직적, 체계적 국가 폭력 및 범죄에 해당하는 것으로, 법적인 차원에서든, 역사적 차원에서든 진실 규명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다시 말해 현재 규명된 진실의 내용을 근거로 해서(이른바 진실 논거), 이와 반대되는 사실을 법안에서 언급한 다양한 방식으로 부인, 현저히 축소, 왜곡, 허위 사실 유포, 일본의 부정론 단체를 따라 찬양 고무 선전 동조한다고 해서 이를 처벌하기에는 무리가 많다. 설령 진실 규명이 두텁게 이루어졌더라도, 그걸 근거로 삼아 역사 부정 또는 왜곡을 담론적으로 비판하고 보잘 것 없는 것으로 만들어야지, 부정과 왜곡을 형사 처벌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문제적인 발상이라 본다. 예외 사항도 그 자체로 추상적이다. 위와 같은 행위를 학술 예술활동이나 보도, 공공의 이익에 따라 했다고 주장할 때 충분치 않은 진실 논거만으로 형사처벌하는 건 문제라고 본다. 게다가 “국민의 역사의식을 제고”하기 위해서라니, 이건 넌센스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들의 명예를 보호”하는 것, 다시 말해 피해자 등에게 가해지는 명예훼손과 모욕 행위에 대해서 그 행위 결과에 대해(다시 말해 마음 속 사상과 생각이 아닌) 처벌한다는 것에 대해서, 나는 긍정적으로 고려해 볼 여지가 많다고 판단한다. 피해자의 명예훼손죄는 기존 형사사법 체계 안에서 이미 활용되고 있다. 양향자 법안은 “역사 왜곡”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부인과 왜곡 등 행위 결과를 넘어서 구체적으로 명예훼손하고 모욕하는 행위, 심지어 구체적으로 혐오 차별하는 행위로 지시할 필요가 있다. 즉 문제의 핵심은 ‘역사’라기보다 과거 국가 또는 가해자 집단이 조직적 체계적으로 저지른 ‘반인도 범죄’, 전쟁범죄, 제노사이드 범죄 행위 등 중대한 인권 침해 행위에 대해 긍정, 동조하는 자들(또는 단체)이 피해자를 앞에 두고 혐오 발화하는 행위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 이다. 이런 혐오 폭력에 대해 모든 피해자 개인이 일일이 명예훼손죄 등을 걸어 법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어려움이 많고, 무엇보다 그 과정에서 이중 삼중으로 고통이 가중된다. 지루한 법적 공방 과정에서 피해자의 인간 존엄이 크게 침해받고, 피해자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결과들이 발생하는 일이 많았다. 나는 ‘혐오 표현’의 문제점과 규제의 필요성을 다룬 바 있던 홍성수 교수와 일본에서 ‘헤이트 스피치’와 증오 범죄 문제에 대해 오랫 동안 천착해온 마에다 아키라 교수 등의 관련 논의를 검토해왔다. 그리고 진실 논거(역사적 진실의 추구), 피해자 논거(생존 피해자와 후손들의 명예 보호), 인간 존엄 논거(인간 존엄 침해), 차별 논거(소수자 차별로서의 혐오 발언)를 바탕으로 학계에서 말하는 이른바 ‘역사 부정(또는 부인)’ 행위 결과, 법적으로 한정하면 중대한 인권 침해 행위를 긍정, 동조하고 이를 바탕으로 피해자에게 직접 혐오 발화하는 행위 결과에 대해 담론적인 대응 뿐만 아니라 법적으로 규제할 수 있을지에 대해 신중하게 검토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4. 누군가 나에게 국가보안법을 비판했던 자가 어떻게 ‘역사부정’을 법적으로 규제하는 주장을 하는가 점잖게 힐난한 적 있다. 게다가 <반일 종족주의> 및 <… 투쟁> 저자 중 주익종은 유튜브 <이승만 TV>의 한 강의에서 나의 이런 주장을 표현의 자유와 학문의 자유를 탄압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내 논의를 왜곡하는 방식으로 일방 비난한 적도 있다. 난 국가폭력(집단범죄)으로 가(족), 친지, 지역공동체가 죽고 다치고 박살난 환경에서 유족으로 자라왔다. 제주 4.3사건과 민간인학살 사건에 대해 석사 논문을 쓰고, 국가보안법/‘사상검찰’/‘국민보도연맹 사건’을 박사논문으로 썼으며, 오랫동안 국가보안법 등 행위’ 결과가 아닌 사상’과 생각을 들여다보고 예단해서 처벌하는 법령들의 계보를 연구해왔으며, 반인도 범죄/전쟁범죄/제노사이드 범죄 같은 개인이나 집단에게 가한 중대 인권 침해 행위를 연구해왔다. 내 감각에서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는 ‘나’와 반인도범죄 및 대량폭력의 피해자에 대한 혐오 행위 결과를 처벌하자고 주장하는 ‘나’ 사이에 갈등이 없다. 5. 이영훈 등 역사부정과 혐오를 쏟아내는 자들에 대해 피해자 등이 명예훼손 소송에 그치지 말고 저 혐오 발언을 적극 형사 처벌하자는 주장이 강하게 존재한다. 이와 달리 표현의 자유와의 갈등 문제, 역사적 진실은 논쟁으로 해결할 문제라는 이유를 들어 형사 처벌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강하게 존재한다. 무엇보다 역사부정이나 혐오발언을 처벌한다고 해서 그런 행위가 근절되지 않는다는 현실적인 문제를 들어 어쨌든 형사처벌에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도 만만치 않다. 처벌하면, 부정과 혐오의 사상과 발화가 소멸되지 않을 뿐 아니라 자칫하면 그들을 순교자로 만들 수도 있다는 분석은 분명 설득력이 있다. 법적 규제의 방향은 현실의 필요성과 연동되어 있다. 미국의 역사와 현실에서는 표현의 자유가 민주주의 조건으로 받아들여졌기에 이를 제한하는 입법을 금지하고 있고, 홀로코스트를 기억하는 독일에서는 민주주의의 방어라는 관점에서 극단주의의 발흥과 부정의 시도에 입법을 통해 적극적으로 대응해왔다. 법학자 이재승 교수는 어떤 대응이 좋은 것이라고 이론적으로 말할 수 없고, 원칙을 택한 이후에 그 부작용을 감수해야 한다고 논의한 바 있다. 예전에 한 시민 강좌에서 내게 질문했던 한 시민의 분노가 이직도 생생하다. “표현의 자유가 혐오할 자유는 아니잖아요. 혐오발언(헤이트 스피치)이 어떻게 언론입니까? 혐오발언은 차별, 폭력, 배제이고, 그걸 선동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규제돼야 하는 것이 맞잖아요.” 나도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답했다. 표현의 자유가 약자의 권리 보호가 아니라 강자의 자기 정당화, 약자에 대한 폭력의 알리바이로 활용당하는 걸 많이 보게 된다고. 여기서 말을 더 이어가지는 못했다. 그 때는 형모 발언을 동반한 역사 부정은 표현의 자유 문제가 아니므로 규제되어야 하고, 형사 처벌을 해야 한다고 분명하게 입장을 밝히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 역사부정론자들이 학문, 사상, 표현의 자유를 내세워 반인도 범죄 등 매우 중대한 인권 침해에 대해 진실을 부인하고 왜곡하는 것은 진실/피해자/인간존엄/차별의 논거를 바탕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입법하는 것을, 아주 엄격하고 제한적이어야겠지만, 본격적으로 논의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문제의식과 제안을 표현의 자유라는 말로 공론장에서 “논의”를 못한다면 그것도 문제가 아닐까? 국회에서의 입법안 발의는 사실 법적인 틀에서 “논의”하는 것이기도 하다. 몇몇 연구자들이, 활동가들이 학술 또는 운동의 장에서 논의하는 것과 또 차원이 다르다. 국회에서 제주 4.3사건과 광주 5.18 관련 법 개정안에 이와 관련한 조항이 들어갈 때 이 문제에 대해 얼마나 폭 넓고 깊이 있게 논의해왔을까? 6. 반일 종족주의의 내용과 주장은 당시 일제가 저질렀던 전쟁범죄와 반인도범죄에 대한 진실을 은폐하거나 심지어 미화하고 있다. 올해 수요시위 맞은 편에서, 심지어 바로 그 장소에서 그들이 내뱉는 말과 저지르는 행위 결과들을 보라. 그 대량 범죄에서 생존한 피해자들의 존재를 부인하고 있다. 사자를 욕되게 하고 여러 ‘당사자’(성)를 억압하고 있다. 이에 그치지 않고 현재 역사 부정 행위는 페미니즘, 난민, 성소수자, 재일조선인 혐오와 만나 거대한 백래시를 만들어내고 있다.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다. 2020년 ‘반일 종족주의’ 현상이라는 백래시는 2019년 우파 도서 베스트셀러 현상과 한일 우파 간 연대의 양질적 증대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진화하고 있다. 정의연, ‘위안부’ 운동, 이용수 ‘할머니’에 대한 일부 주류 언론과 정치권 등의 집단 린치와 혐오 공격을 보면, ‘반일 종족주의’류의 인식과 방법, 논리가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일각의 문법이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 지난 6월 17일 발의된 일본군위안부 피해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안(양기대 의원 대표발의), 6월 22일 발의된 일제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보호 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 법률안(정춘숙 의원 대표발의, 일명 여성인권평화재단 설립 법안)에 대해선 나중에 기회를 보고 논의해보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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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Dec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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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문제는 역사에, 양국 국민들에게, 그리고 세계 여론에 맡겨두는 것이 나았다. 역사의 문제이고, 전시 여성 인권의 문제이고, 양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섣불리 정부가 나설 일이 아니었다. 문제의 성격도 잘 모르는 정부가 나서서 일을 망친 대표적인 케이스가 되었다. TF보고서를 낸 팀도 여전히 시야가 너무 좁고, 이 사안의 성격에 대해 제대로 인식한 것 같지 않다.
강성현's post
2105년 12.28 한일합의 검토결과 TF보고서 총평 긍정적인 점 1.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외교가 "피해자 중심 해결"을 깊이 고려하고 "큰 사안일수록 국민과 같이 호흡하는 민주적 절차와 과정이 더욱 중시되어야" 한다는 것을 천명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부분이다. '위안부' 문제를 외교적 주고 받기 식으로는 궁극적으로 해결될 수 없으며, 한일(미) 정부가 공모해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을 외치는 것으로 봉합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위안부' 문제는 단지 한일 간 외교문제가 아니라 전시 여성의 인권 문제이며, 역사 문제임을, 단지 이 문제가 한일간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2. 티에프 보고서는 소녀상, 제3국 기림비, 성노예 표현과 관련해 비공개 합의 내용을 밝혔다. 예상했던 일이고, 공식 확인해준 셈이다. 그러나 티에프 보고서에 대한 나의 총평은 부정적이다. 1. 일본정부의 책임, 사죄, 금전적 조치 부분에서 과거보다 진전이 있었다고 평가한 부분은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일본 정부의 책임 부분에서 "도의적"이 삭제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법적 책임을 의미했나? 일본 정부는 그것을 국제적으로, 국내적으로 부정했다. 무엇보다 "당시 군의 관여하에 다수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에서 주어는 누구인가? "군의 관여하에"라는 조건만 달았을 뿐 "일본군 또는 일본 정부"라는 주어를 생략했다. 아베는 공공연히 그 주어로 (조선인) 업자가 했다는 식의 뉘앙스를 여기저기 풍기곤 했다. 고노담화보다 진전된 것이아니라 명백히 후퇴한 것이다. 2. 아베 내각총리대신의 사죄가 그 이전의 고노담화나 무라야마 총리의 사죄보다 진전되었다는 평가는 한마디로 넌센스다. 아베 총리는 기시다 외무상에게 대독 사과를 시켰다. 그리고 일본 국회와 언론을 통해 "털끝만큼도 사과할 용의가 없다"는 것을 말하고 다녔다. 이에 대해서는 더 말하지도 않겠다. 3. 금전적 조치 부분에서 진전이 있었다고 평가한 부분은 정말 목잡고 뒤로 넘어갈 뻔 했다. 생존 피해자 중 11명을 빼고 35명이 화해치유재단의 돈을 받았고, 피해자 유가족 68명이 돈을 받았거나 그 의사를 밝혔다고 언급하면서, "일본 정부의 예산만을 재원으로 하여 개인에게 지급될 수 있는 돈을 받아낸 것은 이제까지 없었던 일"이라고 말한 대목에서 기가 막히고 막혔다. 티에프 위원회는 그 동안 그것이 알고 싶다나 여러 신문 기사들을 보지 않은 것인가? 김태현 재단 이사장이 피해자 할머니들을 어떻게 사기치고, 어떻게 겁박해서 돈을 받게 했는지, 유가족들을 어떤 방식으로 회유했는지 이미 언론을 통해 알려졌건만, 어떻게 이런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진전이라고 말하는가? 일본정부 예산의 지출 항목이 인도적 지원 항목인건 몰랐는가? 이 대목에서 정말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다. 4. 티에프 보고서는 모든 책임을 이병기(국정원장, 이후 비서실장)와 청와대에 전가했다.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디 청와대 뿐이랴? 윤병세의 외교부는 책임이 없나? 전반적으로 보고서는 외교부에게 면피 논리를 제공하고, 박근혜의 청와대에게 책임을 묻고 있다. 청와대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면 적폐가 청산되나? 5. 무엇보다 문제인 것은 일본의 대응과 요구를 국제법적으로, 외교적으로 반박 검토하고 있지 않은 점이다. 한국의 지난 청와대가 다 잘못했다고 하면, 한일합의를 파기할 수 있는가? 일본이... 그래. 예전 한국 청와대가 잘못한 것이니 새로운 한국 정부와 다시 협상에 응할께... 해줄까? 티에프 보고서는 박근혜의 청와대와 외교부가 피해자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비민주적으로 졸속 협상, 처리했던 외교 테이블의 당사자인 일본 정부의 대응과 요구를 국제법적으로, 외교적으로 비판 검토해서 반박하는 논리를 제시해야 했다. 한일합의 과정에서 일본의 외교가 무엇이 문제였는지 법적 외교적으로 반박하는 논리나 문서 증거를 제시해야 했다. 그래야 합의를 파기할 수 있는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한국 정부의 반성문 같은 보고서로 향후 이 문제에 대한 일본과의 외교 협상에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향후 "합의 과정이 피해자를 고려하지 못했고, 비민주적이었으며, 일본에 주도권을 내줘 이면합의까지 하게 되었으나, 이미 이루어진 합의니 이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 한국정부의 입장으로 공식 표명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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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Feb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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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엔 설을 양력으로 쇠고 음력 설에는 모처럼의 휴가여행으로 아내와 함께 규슈의 구마모토에 다녀왔다. 구마모토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구마모토성, 아소산, 쿠로가와온천이다. 이 가운데 구마모토성에서 찍은 사진 몇 장을 올린다. 이 성은 임진왜란 때 조선에 쳐들어온 가토 기요마사가 전쟁이 끝난 뒤인 1607년에 지은 것이다. 성의 규모가 웅장하고 또 아름다워서 일본에서 3대 명성으로 꼽힌다고 한다. 구마모토성의 대천수각은 높이가 약 30미터에 달한다. 대천수각과 소천수각이 나란히 있었는데, 1877년 세이난전쟁 때 사이고 다카모리가 이끄는 반란군이 정부군이 지키는 이 성에 쳐들어와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이 때 이 성은 불타고 말았다고 한다. 현재의 건물들은 대부분 1960년 이후에 재건한 것이다. 번주가 살면서 정치를 하던 건물도 재건되었는데, 번주가 손님 접대하던 방은 실내를 매우 화려하게 꾸며놓았다. 가토 기요마사는 조선에 와서 호랑이를 잡았다는 소문이 나서 전국 각지에 그를 모시는 신사가 수백에 달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아들은 도쿠가와막부의 신임을 잃어 번주 자리를 호소가와가문에 빼앗기게 되었다고 한다. 호소가와 가문은 가토 가문의 가신들도 잘 포용하였고, 문과 무에 모두 능했으며, 예술품의 수집에도 힘썼다고 한다. 몇 해전 호소가와 가문의 보물들을 전시하는 일본 전국 순회전시회가 있어 후쿠오카에 갔다가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소장품이 대단하였다. 얼마전 수상까지 지낸 호소가와 모리히토가 정치를 그만두고 도자기 굽는 일을 배운 것은 이런 집안 내력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호소가와 가문도 명치유신 뒤 번주자리를 내놓지 않을 수 없었고, 1904년 호소가와 모리타즈(호소가와 수상의 할아버지)는 조선의 익산군 춘포면 대장촌에 1600여 정보의 대농장을 만들어 구마모토 농민들을 이곳에 이주시켰다. 최근 이에 관한 논문이 나왔는데, 대장촌에는 학교, 병원, 우체국 등 모든 생활 편의 시설이 있어 대장촌 일본인들은 주변의 조선 사람들과 거의 교류가 없었다고 한다. '조선 속의 일본 섬'이었던 셈이다. 반면 구마모토 농장을 세운 구마모토 리헤이는 나가사키현의 잇키섬 출신으로 옥구와 익산 등지에 4천여 정보의 땅으로 농장을 만들어 이곳에 조선 농민들을 소작인으로 수용했다. 여기에도 학교와 병원이 있었는데, 병원은 규모가 상당히 커서 1970년대까지도 병원으로 사용되었고, 최근에는 간호전문학교에서 이 건물을 사용했다. 이 글을 쓰면서 내가 어렸을 때, 옥구군 개정면의 개정병원에 친척이 입원하여 어머니와 함께 문병을 갔던 일이 생각나고, 전주에서 익산으로 가는 기차를 타고 갈 때마다 대장촌이란 역을 지나곤 했던 일도 생각이 난다. 아소산은 수많은 조선 사람들이 징용으로 끌려가 노동했던 아소 탄광이 있던 곳이다. 이래 저래 규슈는 한국의 역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곳임을 다시 한 번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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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경, Changhee Lee and 100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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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J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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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현아's post
‘평화의 우리집’ 손영미 소장님을 보내드리며 2020년 6월 7일 우리는 비보를 접했습니다. ‘평화의 우리집’(이하 ‘쉼터’)의 손영미 소장님이 운명하셨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이 쉼터는 황금주, 이옥금, 황순이, 최갑순, 손판임, 정**, 이**, 이순덕, 김복동, 길원옥 등 여러 일본군 ‘위안부’ 피해생존자들이 기거하셨던 공간이자 삶의 공동체입니다. 지난 5월 초 시작된 이용수 피해생존자의 기자회견의 후폭풍은 거세고 예상치 못한 파장들을 가진 것이었습니다. 정의기억연대(이하 정의연)과 윤미향 의원에 대한 후원금 회계처리. 안성 쉼터에 대한 구입과 매각, 심지어 자녀의 해외유학 비용 등 온갖 터무니없는 의혹과 비방이 있었습니다. 나아가, 일본군 ‘위안부’ 인권운동과 일본군 ‘위안부’의 존재마저 부정하는 기류를 지켜보면서, 일본군 성노예제를 연구해 온 사람으로서 깊은 분노와 모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와중에 소중한 ‘위안부 지킴이’ 한 분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활동가들은 지난 30년 동안 때로는 일본대사관 앞에서 비바람을 맞으면서, 때로는 지구 곳곳에서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를 알리고 공감을 이끌어내는 전지구적 여성인권운동을 수행해 왔습니다. 한국사회가 이 활동가들과 활동단체에 빚진 바는 적지 않을 것입니다. 혹시 이들에게 과실이 있었다면 그것은 반성하고 바로잡을 일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이 운동이 ‘과실의 덩어리’인 것처럼 몰고 가는 침소봉대의 담론은 더 이상 좌시하기 어려운 지경에 도달했습니다. 그동안 언론이 보여주었던 일본군 ‘위안부’ 운동에 대한 경외심이 피해자 한 분의 인터뷰로 인해 하루아침에 기다렸다는 듯이 의혹 덩어리로 둔갑하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정의연과 윤 의원이 연일 언론매체의 선정적 기사의 흥미진진한 사냥감이 되어 버린 것은 참으로 부당한 일입니다. 이들이 지난 한 달여 동안 언론과 일반 시민들로부터 받은 정신적인 피해는 어떻게 배상할 것인가요. 나아가, 계산할 수도 없이 어마어마한 ‘위안부’ 운동과 역사에 대한 명예의 훼손은 누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요. 한국의 언론은 일말의 예의도 인권 감수성도 없는 것인지 참담합니다. 손영미 소장님은 2004년부터 피해생존자를 위한 쉼터에서 일하셨습니다. 손 소장님은 쉼터에 거주하시는 피해생존자들의 식사를 챙겨드리고, 친구가 되어 드리고, 어떤 때는 그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면서, 지난 16년간 피해생존자와 쉼터를 지켜온 분입니다. 이렇게 손 소장님은 고령의 피해자들과 동거하면서 그들을 보살피는 자, 때로는 그들의 요청을 대리하는 자였던 것입니다. 이것만으로도 언론과 수사기관, 그리고 일반 시민들은 손영미 소장님 같은 분을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와 동행하는 소중한 분으로 대우해야 했습니다. 피해자 중심주의에 대해 많은 관심이 일어나는 요즘, 국제형사재판소의 ‘절차와 증거에 관한 규칙(Rules of Procedure and Evidence)’을 다시 살펴봅니다. 이 규칙은 국제형사재판소의 절차 속에 들어온 인권유린 피해자를 대하는 절차를 규정한 것이어서 이번 사태와 맥락이 같지는 않지만, 해당 규칙 제18조는 우리에게도 참고가 됩니다. 즉 “피해자와 증인의 안전, 통합성과 위엄과 관하여 스태프들은 반드시 훈련을 받아야 한다. 거기에는 젠더와 문화적 감수성도 포함된다 [제18조 (d) Ensure training of its staff with respect to victims’ and witnesses’ security, integrity and dignity, including matters related to gender and cultural sensitivity].” 이번 사건을 수사하는 검찰 역시 피해자와 증인의 안전과 통합성, 위엄에 관하여 훈련받아야 할 것입니다. 손영미 소장님은 누구보다도 피해자를 지켜보아온 목격자이자 증인입니다. 손 소장님은 정의연과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그리고 쉼터에 대해서 검찰이 압수수색으로 들이닥친 것에 대해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길원옥 피해생존자가 계신 상황에서 이 쉼터를 지키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인데, 본 쉼터에 끊임없이 전화가 걸려오고, 초인종이 울렸다고 합니다. 손영미 소장님이 현재 피해자들을 돌보는 인권운동가이자 활동가라는 점에 대해 수사기관이 인식을 하고 있었는지 의문입니다. 기소되지도 않은 피조사자의 관계인, 그것도 인권운동가에 대해서 수사기관은 어떤 자세로 대해야 하는지에 관한 고민이 있었는지 의문입니다. 이런 ‘복합적 지위,’ 즉 피해자 관련 활동에 관해 조사를 받아야 하는 지위이면서 동시에 현재 피해자를 보살피는 역할을 하는 지위에 대해서 우리 경찰과 검찰은 어떤 인권지침을 가지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이번에 검찰이 보여준 정의연에 대한 득달같은 압수수색에서 우리는 피해자를 보살피는 인권활동가나 인권운동단체에 대한 감수성은 전혀 없이 ‘중립적인’ 그래서 위협적인 검찰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번 사태에서 검찰은 주로 여성들에 의해 운영되는 여성인권단체, 힘이 없지만 소중한 시민단체에 대해서 매우 ‘강하다’는 것을 가감 없이 보여주었습니다. 피해자를 지키는 사람, 그들을 옹호하는 사람도 ‘피해자성’을 가집니다. 특히 피해자들이 모두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될 때, 이들이야말로 피해자에 대해 증언해야하기 때문에 이들의 경험과 기억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귀중한 한 사람을 잃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도 자신들을 정성껏 돌보던 사람을 잃었습니다. 이 피해자들은 정의연 사태, 급기야 쉼터 소장의 죽음을 어떤 방식으로 이해해야 하나요. 이것은 피해자들에게 2차, 3차 가해가 아닌지 의문입니다. 손 소장님은 피해자들을 정성껏 돌보면서 경제적 보상이 아니더라도 자부심과 보람으로 버텨온 분이었습니다. 이런 분에게 압수수색과 주변 활동가들의 검찰조사, 언론의 무분별한 취재, 무엇보다 피해생존자의 문제제기는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흔드는 좌절감과 고통을 주었으리라 사료됩니다. 손영미 소장님 뿐 아니라 정의연의 활동가들, 전국에 흩어져서 지역에서 헌신해 온 활동가들 역시 존재가 뒤흔들리는 고통을 느끼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이 활동가들은 피해생존자의 의사를 존중해야하기 때문에 자신들의 고통을 잘 표현하지도 못하고 계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만약 피해자들이 소중한 존재라면, 그들을 보살피고 대리하는 활동가들도 소중히 대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피해자를 보살피고 증언할 분들을 잃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부디 검찰과 언론, 그리고 시민들은 피해자를 돕는 활동가들과 옹호자들에게도 그 위엄에 맞는 예의를 갖추어 주십시오. 피해자 중심의 접근이란 단지 생존 피해자들의 의사를 받드는 것에 국한하지 않고, 그들을 보살피고 지지하는 분까지 포함하는 ‘피해자 공동체’의 요청을 문제 해결에 수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본군 ‘위안부’ 연구회는 이번 사태가 정의롭게 해결되기를 바랍니다. 정의연에 책임이 있다면 그것을 물어야 하겠으나, 언론의 무고한 의혹에 대해서는 해명하고 사과해야 할 것입니다. 손영미 소장님의 죽음은 이제까지 살펴본 바에 따라 사회적인 죽음의 성격이 짙습니다.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 갔던 우리 사회의 구성원 모두는 반성하고 고개를 숙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할 때, 그녀의 죽음이 이 광기의 행진을 멈추는 소중한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손영미 소장님, 이제 이승의 일은 모두 놓으시고 부디 편안하게 영면하시기를 기원합니다. 2020. 6. 10. 일본군 ‘위안부’ 연구회 일동
Hun-Mo Yi and 22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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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May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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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학 연구자들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발표한 성명서 전문이다. 이 성명은 2015년 3월말 시카고에서 열린 AAS(아시아학 연례 학술대회)에서 제안되어 서명을 받은 뒤 5월 6일 발표되었다. 일본학, 또는 동아시아학의 거장들인 해리 하루투니안, 아키라 이리에, 프랜짓 두아라, 피터 두스, 에즈라 보겔, 브루스 커밍스, 테사 모리스 스즈키, 스테판 다나카, 앙드레 쉬미트 등을 비롯하여 모두 187명이 서명했다고 한다. 역사적인 문건이 될 것 같아 원문을 인용해둔다. ------------------------------------------------------------------------------------ OPEN LETTER IN SUPPORT OF HISTORIANS IN JAPAN The undersigned scholars of Japanese studies express our unity with the many courageous historians in Japan seeking an accurate and just history of World War II in Asia. Because Japan is a second home as well as a field of research for many of us, we write with a shared concern for the way that the history of Japan and East Asia is studied and commemorated. In this important commemorative year, we also write to celebrate seventy years of peace between Japan and its neighbors. Postwar Japan’s history of democracy, civilian control of the military, police restraint, and political tolerance, together with contributions to science and generous aid to other countries, are all things to celebrate as well. Yet problems of historical interpretation pose an impediment to celebrating these achievements. One of the most divisive historical issues is the so-called “comfort women” system. This issue has become so distorted by nationalist invective in Japan as well as in Korea and China that many scholars, along with journalists and politicians, have lost sight of the fundamental goal of historical inquiry, which should be to understand the human condition and aspire to improve it. Exploitation of the suffering of former “comfort women” for nationalist ends in the countries of the victims makes an international resolution more difficult and further insults the dignity of the women themselves. Yet denying or trivializing what happened to them is equally unacceptable. Among the many instances of wartime sexual violence and military prostitution in the twentieth century, the “comfort women” system was distinguished by its large scale and systematic management under the military, and by its exploitation of young, poor, and vulnerable women in areas colonized or occupied by Japan. There is no easy path to a “correct history.” Much of the archive of the Japanese imperial military was destroyed. The actions of local procurers who provided women to the military may never have been recorded. But historians have unearthed numerous documents demonstrating the military’s involvement in the transfer of women and oversight of brothels. Important evidence also comes from the testimony of victims. Although their stories are diverse and affected by the inconsistencies of memory, the aggregate record they offer is compelling and supported by official documents as well as by the accounts of soldiers and others. Historians disagree over the precise number of “comfort women,” which will probably never be known for certain. Establishing sound estimates of victims is important. But ultimately, whether the numbers are judged to have been in the tens of thousands or the hundreds of thousands will not alter the fact of the exploitation carried out throughout the Japanese empire and its war zones. Some historians also dispute how directly the Japanese military was involved, and whether women were coerced to become “comfort women.” Yet the evidence makes clear that large numbers of women were held against their will and subjected to horrific brutality. Employing legalistic arguments focused on particular terms or isolated documents to challenge the victims’ testimony both misses the fundamental issue of their brutalization and ignores the larger context of the inhumane system that exploited them. Like our colleagues in Japan, we believe that only careful weighing and contextual evaluation of every trace of the past can produce a just history. Such work must resist national and gender bias, and be free from government manipulation, censorship, and private intimidation. We defend the freedom of historical inquiry, and we call upon all governments to do the same. Many countries still struggle to acknowledge past injustices. It took over forty years for the United States government to compensate Japanese-Americans for their internment during World War II. The promise of equality for African Americans was not realized in US law until a century after the abolition of slavery, and the reality of racism remains ingrained in American society. None of the imperial powers of the nineteenth and twentieth centuries, including the United States, the European nations, and Japan, can claim to have sufficiently reckoned with their histories of racism, colonialism, and war, or with the suffering they inflicted on countless civilians around the world. Japan today values the life and rights of every individual, including the most vulnerable. The Japanese government would not tolerate the exploitation of women in a system like the military “comfort stations” now, either overseas or at home. Even at the time, some officials protested on moral grounds. But the wartime regime compelled absolute sacrifice of the individual to serve the state, causing great suffering to the Japanese people themselves as well as to other Asians. No one should have to suffer such conditions again. This year presents an opportunity for the government of Japan to show leadership by addressing Jaan’s history of colonial rule and wartime aggression in both words and action. In his April address to the US Congress, Prime Minister Abe spoke of the universal value of human rights, of the importance of human security, and of facing the suffering that Japan caused other countries. We applaud these sentiments and urge the Prime Minister to act boldly on all of them. The process of acknowledging past wrongs strengthens a democratic society and fosters cooperation among nations. Since the equal rights and dignity of women lie at the core of the “comfort women” issue, its resolution would be a historic step toward the equality of women and men in Japan, East Asia and the world. In our classrooms, students from Japan, Korea, China and elsewhere discuss these difficult issues with mutual respect and probity. Their generation will live with the record of the past that we bequeath them. To help them build a world free of sexual violence and human trafficking, and to promote peace and friendship in Asia, we must leave as full and unbiased an accounting of past wrongs as possible.
정혜경, 민속원 and 50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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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Aug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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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는 '일본은 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과하지 않는가'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주제는 사실 토론에는 적합하지 않은 것이었다. 현장에 가보니, 역시 참석자 가운데 한 분이 "이 문제는 일본사람들에게 물어봐야지 우리가 어떻게 아나?"라고 하셨다. 이런 상황을 예상하였기에 나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어떻게 풀어가야 하나"라는 주제를 하나 더 포함하여 토론하자고 제안했고, 다들 동의하셔서 그렇게 진행했다. 우리 테이블에 앉은 사람은 모두 12명이었는데, 중학교 2학년생부터 대학생, 직장인, 은퇴자, 사회활동가 등 다양한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각기 말씀하는 내용도 다양하게 나올 수밖에 없었지만 어느 정도 방향이 일치하는 부분들이 많았다. 대표적인 것은 앞으로는 이 문제를 일본과 굳이 외교적인 문제로 삼아 협상하려 하지 말고, 국제사회에 널리 알리고 이슈를 삼아가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말이었다. 이것은 현 정부의 방침과도 일치하는 것으로, 정부의 그러한 방침의 발표가 영향을 주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학교교육, 사회교육 등을 통해 국내에서도 이 문제를 널리 알리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도 많이 나왔다. 한 대학생은 이 문제는 전시여성인권의 문제라고 정확히 짚어서 말하면서, 그런 차원에서 국제사회에서 이 문제를 계속 이슈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였다. 역시 사회학과 학생다운 말이었다. '일본은 왜 사과를 하지 않는가'라는 물음에 대해서는, 어떤 분이 사과는 몇 차례 했지만 진정성이 모자랐다는 지적을 하였다. '그러면 왜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지 않는가'라는 물음을 던지자, 어떤 분은 일본은 아직도 한국을 낮게 보고 있기 때문이라는 말을 하였고, 어떤 분은 자신들도 이 일은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인정하고 싶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집에 오면서 이 문제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았다. 위안부 문제 자체가 과거 일본사회의 여성인권 문제에 대한 의식이 낮았던 것에서 비롯되었고, 오늘날에도 진정어린 사과를 하지 않는 것은 아직도 여성인권 의식이 여전히 낮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에 여성들을 강간하거나 여성들을 유인, 납치, 감금하여 위안소 같은 것을 만든다는 것은 평시의 여성 인권에 대한 사회적 의식이 낮은 것의 연장선에서 나왔을 것이다. 또 아직도 이 일이 크게 잘못된 일이고, 마땅히 사과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지 못하는 것도 여전히 여성인권의식이 낮은 것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러면 한국사회의 경우는 어떠할까. 한국사회에서도 사실은 오랫동안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쉬쉬하면서, 그런 부끄러운 일을 왜 자꾸 들춰내느냐 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이 문제를 '여성인권'의 문제와 관련시켜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여성인권에 대한 의식이 낮았다. 최근 '미투운동'이 확산되고, 크게 사회적 이슈가 된 것은 한국사회의 '여성인권' 의식이 그만큼 낮은 데 대한 반발로 터져나온 것이다. 미투운동 이후에 한국 사회의 분위기는 상당히 달라졌다. 그러나 최근의 안희정 판결이나 이에 대한 옹호 여론이 꽤 된다는 보도를 보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든다. 여성인권의 문제는 결국 보편적인 인권의 문제와 연결된다. 여성인권의 침해는 결국 보편적인 인권의 침해이다. 인권에는 성별, 인종, 나이 등의 차별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며, 동등한 인권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얼마나 이런 의식을 철저히 가지고 있을까. 한 번 반문해보자.
신영숙 and 91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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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Feb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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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팩트 체크 네번째- 사망자수 3.1운동과 관련한 언론의 보도가 홍수처럼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3.1운동 당시의 사망자 수에 대해 "총독부 당국의 통계에 따르더라도 7,500여 명이 사망하고"라는 기사들이 자주 보인다. 3.1운동 당시 사망자를 7,500명으로 집계한 것은 총독부 경찰당국이 아니라, 박은식 선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서다. 그런데 이 숫자는 과장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전국의 면이 2,509개 면이었고, 이 가운데 1,013개 면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했는데, 만일 7,500명이 사망했다면 1개 면에서 평균적으로 7명 정도가 사망했어야 한다. 그러나 그런 기록은 찾아보기 어렵고, 당시 상황이 그런 정도는 아니었다. 한편 총독부 헌병경찰 당국은 사망자 553명, 부상자 1,409명으로 집계하였다. 이번에 국사편찬위원회에 만든 3.1운동 데이터베이스에서는 사망자를 724~934명으로 추정했다. 그리고 오늘 국편 주최 "3.1운동 시위의 기록"이라는 학술회의에서 발표한 이양희 씨의 논문에서는 사망자 1,510명, 부상자 2,614명으로 추계했다. 이와 같이 사망자 수에 차이가 나는 것은 추계의 기준이 서로 다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총독부 당국의 사망자 수는 현장의 사망자수를 보고한 것을 집계한 것인데, 보고 자체가 다소 축소된 것으로 보이고, 집계할 때에도 누락된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 국편 데이터베이스는 관련 기록들을 총점검하여 집계한 것인데, 주로 현장과 그 이후 일정 기간 내(5월 7일까지)에 사망한 사람들의 통계로서, 정확성을 기준으로 통계를 잡은 것 같다. 반면에 이양희씨의 통계도 자료는 같은데, 다소 적극적으로 통계를 잡은 것으로 보인다. 사망자 수는 기간을 길게 잡으면 잡을수록 늘어나게 된다. 부상자가 사망하는 경우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 달 이상 지난 사람들의 통계는 사실 잡기 어렵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사망자 수를 1천 내지 1천 5백 정도로 잡는 것이 무난할 것 같다. 어쨌든 언론에 계신 분들이나 학교에 계신 분들은 "총독부 당국의 통계에 따르더라도 7,500여 명"이라는 글은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Park Yuha, 李昇燁 and 193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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