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에서 윤석열 지지로 넘어온 사람들을 비난하는 소리가 높다. 하지만 기죽지 마시라. 여러분들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내가 그 과정을 이미 20년에 가까이에 걸쳐 지나 왔기 때문에 보증할 수 있다.
그 이유와 과정에 대해 일부 이야기한 적도 있고, 얼마든지 더 이야기 할 수 있지만 오늘은 하나만 예를 들어 간단히 써 보겠다.
댓글까지 써 놓고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윤미향씨가 나를 고발하려고 검토를 의뢰한 변호사가 민변의 정연순 변호사라는 걸 뒤늦게 기억해냈다.
오늘은 핵심 포인트가 아니지만 이야기 순서상 말해 두자면 <제국의 위안부>가 고발당한 건 정대협을 비판했기 때문이다. 윤미향씨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고발하려 했던 거였다.
그렇지만 차마 그렇게는 말하지 못하고 위안부를 매춘부라 했다고 엮은 것이다. 물론 이후 내가 나눔의 집 위안부 할머니들과 가까워지면서 나를 경계한 나눔의 집이 알아서(그러나 자료제공에 전적으로 협조하면서) 고발해 주었기 때문에 정대협은 뒤로 한발 물러나 관계 없는 척 하고 있을 수 있었다. 물론 그 태도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오늘 얘기하려는 건 그 자체가 아니다. 나중에 민변회장까지 지내게 되는 정변호사가 쓴 글에 있는 심각한 오류가 오늘의 포인트다.
정변호사는 <제국의 위안부>가 일본을 향해 쓴 글이라면서 분노하는데 그 부분은 책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무엇보다 그 부분은 일본을 비판한 부분이다. 이미 여러번 말한 사실인데, 일본에 체류하면서 일본을 향해 일본을 비판하는 글을 연재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제국의 위안부> 라는 책을 쓸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을 때다. 식민지지배란 무엇인지를 일본인들이 좀 더 잘 이해하고 반성해 주기를 바라면서 나는 그 부분을 썼다.
그 이전에, 당시엔 일본사회에 위안부문제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었다. 그런 그들의 관심을 환기시키고, 사죄와 함께 추가 보상에 나서 주기를 바라면서 쓰기 시작한 글이 그 글이다. 이후 정대협이 청와대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걸 보면서 한국을 향해 <제국의 위안부>를 썼고, 일본어로 쓴 부분도 번역해 넣은 것이 <제국의 위안부> 한국어판이다.
일본을 향해 쓴 건 어디까지나 부분이라고 써 두었는데도, 정변호사는 그 부분을 무시하고 이렇게 선동했다. 심지어 정영환이라는 재일교포 젊은 연구자가 말하는 대로 한일합의를 “야합”이라 비난하면서, 내 책에 대한 분노를 드러냈던 것이다.
이미 여러번 말하고 책으로까지 낸 것처럼, 정영환의 책은 <제국의 위안부>를 완전히, 그리고 금방은 알기 어렵도록 교묘하게 왜곡한 책이다.
그는 왜 그랬을까.
그 배경을 내가 정확히 알게 된 건 사실 오래 되지 않았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북한을 위해서다. 북한이 일본과 수교할 때 ‘배상’을 받으려는 게 정영환등 일부 재일교포들의 생각이었고 그걸 위해서 위안부 문제를 한껏 과장했다. 그러다 보니 일본의 양심적인 지원자들 조차 믿지 않는 내용이 되었다. 그럼에도 그 주장을 계속해 온 건 ‘강제연행’이 되어야 “배상” 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영환이 조총련계라는 말을 전에 썼더니 분노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내가 이른바 ‘종북몰이’ 같은 것엔 관심이 없다는 건 오래된 페친이라면 잘 아실거라고 생각한다. 문재인/김정은 판문점 회담을 내가 기뻐했고 지지했던 걸 기억하시는 페친이라면 더더욱.
내가 그런 ‘관계’ 를 언급한 건 오로지 학문의 얼굴을 한 글의 ‘정치적’ 연관성을 확인해 두기 위해서였다. 사태를 정확히 알아야 분석도 정확해지지 않겠는가.
이들이 ‘야합’이라 칭하는 “한일합의”는 이들이 주장한,그리고 북한이 조일수교를 위해 주장했던 “배상”아닌 “보상”이었고, 정대협 관계자들이 “한일합의”를 반대한 건 사죄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그 내용이 자신들의 주장과 다른 형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당사자가 몰랐다”는 말만 주구장창 해 왔다. 물론 윤미향은 외교부와 수없이 회의를 한 사실도 이미 밝혀졌다.
한일합의나 위안부에 대한 생각은 여기서 논하지 않는다.
문제는 이들이 자신들의 목적달성을 위해서 기만과 거짓말을 서슴치 않는다는 점이다. 모든 건 거기서 시작됐다.
엊그제 소개한 글에, 이재명은 사람들을 ‘부식’ 시킨다는 표현이 있었는데, 진보일각의 사람들은 많은 이들을 그렇게 ‘세뇌’시켰다. 그 세월이 이제 30년. 그렇기 때문에 정변호사도 이런 식으로 자신의 인식을 전혀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그 배경엔 그에게 내가 일면식 없는 듣보잡이라는 사실이 있다. 이들은 잘 모르는 사람이면 색안경을 쓰고 보고, 생각이 다르면 배제한다.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 억압에 나선다. 국가의 권력과 순진한 국민을 동원해서 짓밟는 것이다. 정변호사는 이때(2013년 책발간당시) 고발에 나서지 않았지만(나를 띄워줄까봐 고발하지 않았다는 말은 알고보니 윤미향이 아니라 정변호사한테 저작권이 있는 듯 하다) 후에 나를 고발한 원고 변호인단중 한사람이 되었다.
이런 사태의 중심에 있는 이들은 여성인권에도 개인인권에도 실은 관심이 없다. 그들에게 더 중요한 건 민족과 국가다. 설사 그 목적이 윤미향이 오랜 세월 외쳐온 평화통일에 있다 해도, 개인의 희생을 전제로 한 목적달성은 어떤 숭고한 것이라도 정당화될 수 없다. 그걸 정당화한 것이 바로 근대라는 시대였다. 북한을 떠올리면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희생시킨 ‘개인’ 들중에 나도 위안부 할머니들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처음부터 앵벌이를 목적으로 했다는 등의 이야기에 찬성하지 않는다. 반복하지만 이런 목적(이념이라고 해도 좋다)을 이루기 위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국민을 등에 업고 권력화되어 이제 국민을 넘어 국가를 좌지우지하게 된 사태 쪽이 문제다. 개인의 경제적 이익 같은 건 이에 비하면 아주 작은 일이다.
내가 진보층 일각의 사고에 의구심을 갖게 된 건 2003년 무렵이었지만 그래도 위에 언급한 연재글을 쓸 때 까지만 해도 아직 미련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에선 진보층 사람들과 만날 기회가 별로 없었지만 나의 일본인 지인은 전원이라 해도 좋을 만큼 대부분 진보층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안부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고 그 원인을 2000년대 이후 윤미향이 이끌면서 확실하게 드러난 일부 ‘진보좌파’의 문제라는 걸 확신했기 때문에 나는 <제국의 위안부>에서 처음으로, 정대협이 실은 진보성향이 강한 단체라는 이야기를 썼다. 한국 사회가 아직 좌우분열이 심하지 않았고 정대협이 그렇다는 것도 아직 별로 알려지지 않았을 때다. 그리고 바로 그랬기 때문에 보수층에도 위안부 문제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킬 수 있었다. 조선일보 강천석 주필의 부인이 윤미향보다 먼저 대표를 지낸 정진성교수라는 얘기도다시 첨언해 둔다.
첨부한 글에서 정변호사가 내가 언급한 ‘진보좌파’ 부분에 신경질적으로 반응한 건 그런 사실이 알려질 경우 운동의 확장에 방해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 문제가 진보좌파일각의 문제라는 걸 말한 건 꼭 운동을 방해하기 위해선 아니다. 이미 쓰기도 했지만 오로지 그들의 “사고의 결함”을 본 것이 내가 굳이 그 사실을 쓴 이유다. 그 결함이 동아시아의 평화를 오히려 위협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문제가 386의 문제이기도 했다는 건 조금 더 나중에야 알았다. 유학으로 한국을 떠나 있던 기간이 길어 한국사정에 어두웠던 탓이다.
박원순, 그리고 조국 사태가 일어난 건 우연이 아니다. 물론 윤미향 사태가 일어난 것도 우연이 아니다. 그리고 오늘 이재명이라는 사람의 가면이 벗겨지기 시작하고 있는 것도 당연히 우연이 아니다. 그리고 이들을 끝까지 옹호하는 여성들이 나타난 것도 우연이 아니다. 진보층 사람들의 ‘지적 퇴락’의 문제가 시민레벨로 표면화한 사건이었을 뿐이다. 바꿔 말하자면 정신적 ‘타락’이 그들의 행각을 드러나게 만들었다.
따라서 이번에 내가 보수당을 지지하게 된 것 역시 우연이 아니다. 그런 이들이 아닌 다른 민주당 사람들이 사태를 직시하고 바로잡았다면 좋았겠지만 그러기엔 너무 게을렀다. 이재명이 민주당을 대표까지 하게 되고, 내가 8년 가까이 법정에 갇혀 있게 된 것도 우연이 아닌 것이다. 여성학계를 비롯해 한국진보의 총체적 세뇌와 그에 따른 '부식'과 안주하는 태만이, 오늘의 타락을 만들었다.
중국이 대만을 협박하고 북한이 미사일을 빵빵 쏘고 러시아가 이웃을 공격해 전쟁을 일으킨 2022년 3월 오늘이 도래한 건 우연이 아니다. 이 모든 것은 이어져 있다.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위해 폭력행사를 마다 않거나 마다하지 않겠다는 협박을 이 세나라가 동시적으로 하고 있는 건, 이들 나라 안에서 폭주하는 이들을 그들 옆에 있는 이들이 막지 못한 결과다. 세뇌와 부식과 태만을 막지 못하고 어느새 젖어든 결과다.
변한 건 내가 아니라 그들이다. 더이상 ‘진보’라고 부를 수 없는 어떤 상황들로 누군가가 폭주하고 아무도 그들을 막지 않았기에 내가 그들을 거부한 것이다. 이 상황은 언젠가 정리될 것이고 이름도 붙여지겠지만, 모든 폭력은, 극단적 이기주의와 ‘사고의 결함과 타락’이 만든다 .
그러니 아직도 민주당에 집착이 남아 있는 분들은 이제라도 눈을 똑바로 뜨고 보시기를 부탁드린다.
그저께 쓴 의미에서의 '지성'이 있는 이가 이재명을 자신의 대표라 할 수 있을지. 이재명을 찍는다는 건, 민주당의 타락에 가담하는 일이다. 나와 다른 많은 '개인'들에게 닥친 각종 폭력에 간접적으로 가담하는 일이다. “헤쳐모여”가 필요하다고 말한 건 그 뜻이다. 그들은 여러분도 보호하지 않는다. 필요하다면 새로운 당을 창당하시라.
내가 갑자기 윤석열을 지지하니 “몰락”했다면서 페친을 끊고 가는 이까지 있었다. 거기까지 아니더라도 뜬금 없는 치어리더 흉내가 괴로운 이들도 많을 걸 안다. 하지만 그건 반복해 말해 온 이야기들, 내가 민주당(적 페미니즘)을 지지할 수 없는 이유를 이해되지 않았거나 않겠다는 이야기이니 나 역시 환영한다.
민주당의 페미니즘은 국가와 국민을 동원해 개인을 억압하는 페미니즘이다. 혹은 그런 이를 지지하는 페미니즘이다. 얼마전 정희진 경우처럼. 물론 그 선봉장으로 윤미향이 있다.
그건, 노정희판관이 젠더문제를 다루어 왔으면서도 아직껏 나에게 무죄판결을 내리지 않고 있는 사실, 숫자로 표시할 수 없는 사회적/정신적 손실과 고통을 을 감당하도록 나를 법정에 8년 가두어 두고 있는 것과 궤를 같이 한다.
여러분들이 지지하는 “이재명의 민주당”이란 “윤미향의 민주당”이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개인’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국가에 복무하도록 해 온.심지어 그 '국가'는 때로 한국조차 아니다.
여성편을 내걸었던 민주당 여성들이 중요한 국면에서 남성 편을 든 건, 이들이 국가—민족을 개인보다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의식 여부를 떠나서. 민주당의 페미니즘은 보호가 필요한 사람들을 필요할 때 보호하지 않는다.
이것이 거친 언사에도 불구하고 내가 윤후보를 지지한 이유다. 거친 언사는 아직 누구를 구체적으로 억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직 수정 가능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경청의 자세가 있기 때문이다.
회까닥했다거나 몰락했다는 소리까지 들었지만 틀린 건 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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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Chee-Kwan Kim, Byung-il Choi and 86 others
Park Yuha정변호사 원문 0 3po1 18Daececmb4er 20l15 · 고양시장 이재준이 민족문제연구소 고파지부장 출신입니다.
이들은 반일 프레임을 끌어다 정치에 이용하면 효과적 이라는 것을 오래전 부터 알았습니다
일반 국민들만 세뇌당해서 몰랐을 뿐이죠
개인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민족 문제를 이용해 먹은 이들이야 말로 사악함 그 자체입니다.
Yi San이번 선거가 86세대의 무덤이 되기 바랍니다 (나는 제외).
임지숙저또한 2002년 학교현장에서 변질된 전교조를 보고...전교조를 제 안에서 끊어냈고요.
2011년즈음부터 민주당에 의문을 품고 ...이젠 박쥐처럼 날아다니는 신세가 되었네요.
이번엔 이쪽에 표를 줄것이고요.
담엔 또 다른곳에 표를 줄 공산이 크지만요. 민주당이 현재의 저 구성원들로 자기들만의 민족에서 살고 싶다고 한다면 영원히 저들에겐 제표는 안갈거같구만요.
신상민정말 전략적 지지선언 이후에 힘든 상태입니다. 잠도 요며칠 계속 못자면서 시달리고 있는데 윤석열한테 얼마 받고 그러냐는게 제일 억울하고 힘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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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이한 비교가 난무한다. 지적훈련을 쌓은 이들조차 "일본"이 대상이 되면 생각하는 일을 중단한다. "굴욕적인" 한일합방과 한일기본협정의 기억을 불러와 오늘에 단순대입하고 "자위대에 침략"당하는 미래를 상상한다.
식민지의 트라우마가 여전히 깊다. 일본을 모르는 이들의 공포가 이용되고 소비되고 있다. 전쟁은 정치가가 일으키지만, 공포를 필요로 한다.
미세한 차이와 거대한 차이들을 보는 일은 "과거"와 격리된, 그래서 소외된 자의 권리이기도 한다. 그러나 오늘 보이는 건 강박적이기까지 한 "공감능력"의 경쟁이다. 강박은 때로 자신은 물론 당사자마저 소외시킨다.
과거를 생각하는 일은 오늘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일 뿐, 과거에 빙의하는 일이 아니다.
일본을 강간범으로 비유하는 건, 지배자를 남성으로, 피지배자를 여성으로 상상하던 제국주의시대의 상상력이다. 그 "올바른" 상상력의 타락은 도덕적우위에 대한 욕망이 앞설 때 시작된다. 그런 주체를 남성들에게 맡겨두고 있는 것도 오늘의 대한민국의 뒤틀린 구조와 의식을 보여준다.
세계의 주인은 아직 "남성"이다. 누군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 남성들이 "웃고" 있다. 물론 남성의 권력을 나누어 가진 쁘띠부르조아 여성들도.
"보수화된 진보"의 현장을 본다. 사회가 욕망으로 넘치는 건 자아가 약해서가 아니라 너무 강해서이다.
"해방 70년"의 해가 저무는 세밑, 대한민국은 아직 아프다. 다쳐서 아픈 것이 아니라 다칠 준비가 되어 있어서 아프다. 시일야방성대곡은 그런 대한민국을 위해 쓰여져야 한다.
513You, Chee-Kwan Kim, Naran Jung and 510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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