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06

Vladimir Tikhonov [살육을 보조해주는 역사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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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ladimir Tikhonov
5 h  · 
[살육을 보조해주는 역사 교육?]

저는 우크라이나 침략의 참상을 보면서, 가면 갈수록 저 같이 역사로 밥을 먹고 사는 사람들의 '책임'이 얼마나 무거운지 피부로 느낍니다. 푸틴의 무모하고 잔인한, 범죄적 침략에 동원된 어린 병사들이나, 그 침략을 지지한다는 65-70%의 러시아 사람들은, 단순히 보위부 (FSB)가 무서워서 이렇게 침략의 공범, 종범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특히 침략에 대한 상당수 기층민들의 지지는 외형적으로는 거의 '자발'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이 '자발'도, 따지고 보면 국가적인 역사 교육, 그리고 국가가 관리, 감독하는 미디어에 의해서 오랫동안 형성된 '의식' 내지 '정체성'에 의한 것이지요. 특히 역사 교육을 통해 국가가 각 개인의 통시대적인 준거틀 (reference frame)을 규정하고, 각 개인은 그 준거틀 안에서는 그 정치적인 의사 결정을 하는 것입니다. 사실 만약 한 개인이 러시아에서는 국가가 주관하는 역사 교육만 받고 이외에는 개인적으로 역사에 천착해 다른 생각을 갖지 않을 경우에는, 현재의 침략을 지지하지 않는 것은 극히 힘들 것입니다. 이 역사 교육의 근저에는 어용적 민족주의, 그리고 무한한 '제국' 의식이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러시아 학교에서 가르치는 역사는 근본적으로 인민, 민중, 민초의 역사는 아닙니다. 소비에트 시대와 달리 계급 투쟁이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역사도 아닙니다. 이제는 그 역사는 오로지 '국사', 즉 '국가의 역사'입니다. 그 역사의 기점은 862년, 즉 (바이킹 계열의) 류릭 공의 무장 집단이 루시 (러시아)를 '건국'한 연도입니다. 그 다음에 그 역사의 주인공들은 류릭 왕조의 대공들 (올레그, 이고르, 블라디미르, 야로슬라브 등등)이나 그 주변의 '국가적 지식인', 교회의 주교 등등이지, 그들이 잉여를 갈취한 일반 평민들이 결코 아니고 그들의 '원정' (침략 전쟁)의 대상이 되는 주변 부족이나 국가 (불가의 불가리아 등등)들도 아닙니다. '국사'의 주체가 되는 '우리 국가'에 대한 객관적인, 비교사적인 평가도 그 교육 과정에 없습니다. 사실 10-13세기 러시아 공국 (duchery)들의 관료 통치 구조는 동시대의 동아시아 국가나 중동 국가에 비해 매우 초보적이었고, 도시 발전이나 물산의 수준도 구 로마제국의 지역 (이태리, 불란서, 비잔틴 등)에 비해 보잘 것 없었는데...그런 이야기를 수업 때 선생이 하면 큰일 납니다. 아마도 교단을 떠나야 하겠죠. 
러시아 역사 교육은 철저히, 절대적으로 '모스크바 중심주의"적입니다. 14-17세기의 중세사는, 러시아의 교실에서는 오로지 '모스코비아', 즉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한 러시아 국가/제국의 '발전사'일 뿐이지요. 거기에 비해 오늘날 우크라이나나 벨로루시의 상당 부분을 통치했던 리투아니아 대공국, 그 후신인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 왕국 등은 거의 다루어지지 않습니다. 반대로, 모스크바 대공국/왕국/제국에 대한 서술은 거의 무비판적입니다. 이반 외제 (Ivan the Terrible)의 카잔 침략/정복, 아스트라한 침략/정복, 그 시대의 시베리아 정복의 시작 등은 그저 "아국 영토 확장", "우리나라의 발전"이라고 매우 긍정적으로 서술됩니다. "우리 나라 발전"에 희생되는 타자들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습니다. 많은 한국인들이 잘 아는 시베리아의 도시 명칭은 '하바롭스크'인데, 그 명칭 속의 에로페이 하바로프이라는 17세기의 러시아의 시베리아 정복가는 사실 1650년, 흑룡강 유역 정복의 과정에서는 다우르족 (達斡爾)에 대한 학살과 약탈을 대량으로 저지르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학교 교실에서만 역사를 배운 러시아 아이들은 들었을 리도 없죠. 그들은, 러시아의 광활한 영토의 대부분은 '우리 나라 사람들의 개척'과 '현지만들의 자발적인 복속'의 결과라고 믿고 있을 것입니다. 정복이 있었다 해도 그 정복은 '결과론적으로 현지민들의 문화 수준 향상에 도움이 됐다'는 식의 식민주의적 논리를 지금도 습득하는 것이죠. 
그 통치 기간 내내 스웨덴 등과의 영토 정복 전쟁을 계속 수행했던 '전쟁의 황제' 피터 대제나 교과서에서 이제 '효율성이 높은 기업 지배인' (effective manager) 같은 행위자로 묘사된 스탈린에 대해 국가주의적 긍정 위주의 서술만 교실에서 접한 아이들은, 커서 푸틴의 '우크라이나 원정'을 비판적으로 분석할 수 있을 확률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학교에서의 역사 교육이야말로, 지금 푸틴의 침략을 위한 총알받이들을 준비해주고 제공해주는 것입니다. '국가'에의 주박을 풀지 못하는 역사 교육은, 바로 전쟁의 공범이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러시아에서의 역사 교육의 문제점과는 단순 비교하기가 어렵겠지만, 과연 대한민국의 자국사 교육은 어느 정도 객관적인지 우리가 한 번 짚어 볼 필요도 아마 있을 것입니다. 예컨대 우리가 "찬란한 고대" 속에서의 광개토왕의 정복 사업이나 문무왕/김유신의 "통일", 금관과 반가사유상을 학교에서 충분히 알게 되지만, 과연 고대 평민들의 음식이나 의복이 어떻게 발전되었는지라든가, 그 주거 형태가 어땠는지 많이 배우는가요? 불교 문화를 이야기할 때에 사찰이 얼마나 많은 노비들을 부려먹고 사찰의 보 (금융 자원)가 어떻게 고리대에 이용되었는지를 과연 배웁니까? 조선왕조 초기의 여진에 대한 정복이나 조선 왕조와 여진 사이의 복속 관계를 이야기할 때에 과연 정복 행위의 대상이었던 여진족의 입장에 서서 서술을 하는 것인가요? 아니면, 과연 근대사 서술에 있어서는 좌파적 (사회주의적) 독립 운동에 대한 서술은, 그 독립 운동의 실질적인 비중에 비해 너무 소략하지 않는가요? 참, 김일성과 함께 운동했다고 해서 박달이나 박금철 같은 독립 운동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학교 교과서에서 빼는 게 과연 객관적인 입장인가요? 
저는 러시아의 국가화된 역사 교육에 종사하는 제 동료들은, 결과적으로 세계 평화에 대한 범죄에 공범이 됐다고 봅니다. 그런데 과연 저희 한국의 자국사 교육은, 밑으로부터의, 탈국가화된 시각에 익숙해진, 객관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평화와 한반도 통일을 지향하는 열린 시민들을 제대로 키우는 것인지 우리도 한 번 비판적으로 반성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타인의 오류를, 무엇보다 우리들의 맹성을 위한 '교육 자료'로 삼는 것이 공자께서 말씀하신 "一日三省"의 자세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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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육을 보조해주는 역사 교육?
저는 우크라이나 침략의 참상을 보면서, 가면 갈수록 저 같이 역사로 밥을 먹고 사는 사람들의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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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comments


Doug Santa
국내 이야기를 하자면 평소 정치권력의 우민화 전략인지 총선 전후로 느닷없이 등장한 한일전 슬로건이 매우 우려스럽습니다. 교육현장의 한계 이상으로 현실권력이 국가별 대립을 조장하고 대립적 세계관을 조성하고자 하고 있으며 온라인상에서 자발적으로 확대 증폭되는 양상입니다.
역사적 근거가 없지는 않으나 현재 국내에서 일본이나 중국에 대한 갈등과 혐오를 조장-방조하는 행정부의 태도가 매우 우려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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