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기행 세째 날 오전 : 옥합을 깨트려 : 네이버 블로그
동학기행 세째 날 오전 : 옥합을 깨트려
연산
2015. 10. 26. 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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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HTML그분의 본질이 물이요 빛이요 흙이요 바람이라면</title>
세째 날 10월 23일 아침은 경기전 옆에 있는 콩나물 국밥을 먹고 그 곳에서 출발하기로 했다. 전 날 까지는 A조와 같이 다녔으나 오늘 부터는 B조와 다니게 되었다.
경기전과 호남 제일 풍남문을 보고 다시 삼례 동학역사공원 익산 세계문화유산 미륵사지와 옹궁리석탑을 보고 가까히 있는 순두부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옥합을 깨트려
1997. 3. 2. 오 북환 장로님
마가복음 14장 3절서 9절까지, 예수의 머리에 향유를 부은 여자
예수께서 베다니에 있는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나병 환자가 예수를 초청 했어요. 대접하려고 그래 거기를 초청 받아서 가셨어요. 나병환자는 전염되는 거예요. 전염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예수께서 음식을 잡수시고 계셨는데 한 여자가 매우 값진 나드 향유가 든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것을 깨트려 버렸다. 깨트려 계란을 깨서 어디 요리를 만들려면, 깨버렸다고 깨버리면 다시는 못쓰지요? 그럼 병마개 가 있으면 마개만 빼가지고 부어야 할 텐데 그럼 다시 쓸 수가 있는데 깨버렸어. 아주 이제 안 쓴다는 거야. 매우 값진 나드 향유가 든 옥합을 가지고와서 그것을 깨트려 예수의 머리에 부었다.
그 향유는 그때 예수님께만 쓸라는 향유거든, 다른데 쓸 거 아니에요? 그 총 재산입니다. 이건 재산임과 동시에 자기의 목숨 생명을 다 바친 거예요. 몸과 마음과 정성을 다 쏟아 부은 거예요. 오직 예수께만 써. 다른 데는 하나 써서는 안 돼. 그럼 우리도 예수님께 몽땅 이렇게 바쳐야 된다고, 다른 거 다 깨버리고 그러니까 나 따라오려면 자기부터 버려라. 그래, 깨버려라. 내버려라. 깨서 못쓰게 내버려라. 그 말이야. 4절 그러자 함께 식탁에 앉아있는 몇 사람이 와서 버럭 하며 왜 향유를 그렇게 낭비 하는가? 이 여자는 꼭 거기 예수께만 쓰려고 하는데 낭비라고 한단 말이야. 다른데 쓸 것이 아니거든. 예수께만 쓸 향유에요.
총재산을 낭비 하는가? 이 향유를 팔면 3백 데나리온은 받을 수 있으니 차라리 그것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옳지 않은가? 자기 생각하고는 아주 틀리 단 말이야. 마태복음은 제자들이 그랬는데 여기는 제자들이 안 나오네, 나누어주는 것이 옳지 않은가 하고 나무랐다. 그러면 이 사람들은 속마음 정신을 몰라봐요. 물질밖에 몰라. 그 비싼 것 귀한 것을 허비한다는 거야. 예수의 대답을 들어봐요. 허비인가? 그러자 예수께서 말씀 하셨다. 가만두라. 왜 간섭하느냐? 가만두라. 이 여자가 내게 아름다운 일을 했는데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 했는데 왜 괴롭히느냐? 가난한 사람들은 언제나 너희 주변에 있으니 너희 마음만 있으면 할 수 있는 것이다. 너희 마음만 있으면 아무 때든지 그들을 도와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인제 갈 것인데 나는 언제까지나 너희와 함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여자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 다 했다 말이야.
자기 목적에 달성했다. 이 말이야. 소원이 성취가 된 것이야. 예수님을 극진히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자기의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다. 그 이상 더 할 길은 없다. 내 장례를 위하여 미리 내 몸에 향유를 부어준 것이다. 죽으면 죽은 뒤에 향유를 붓는 것인데 미리 부었어. 미리, 장례를 그러면 여기 향유가 뭐냐? 썩을 것을 썩은 냄새가 변해서 향기로 바꿔진 거야. 육신이 죽으면 썩어서 냄새가 날것 아니야? 아주 악취가 나요. 제일 악취 중에 제일 악취가 뭐냐 하면 시체 송장 썩은 냄새가 제일 막 코가 막 아주 독해서 그 한번 맡아놓으면 다른 거 음식 못 먹을 정도야. 어느 그 시체를 파다가 물이 조금 냄새가 나는데 고약 합디다. 막 코가 빠지려고 그래요. 냄새가 너무 독해. 그런데 향유는 그 썩은 것이 살 것이 살아놓으면 말이야. 썩을 것이
썩으면 곡식이 말이야. 씨가 자라면 참 아름다운 꽃이 피고 열매가 맺고 향기가 난단 말이야. 그러니까 나나 우리들은 썩어야 할 것이 안 썩었어요. 그러니까 향기가 안나. 더러운 냄새만 나지. 가기 싫어도 변소는 가야하고, 이 여자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다. 내 장례를 위하여 미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준 것이다. 내가 분명히 말한다. 온 세상 어디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자가 한 일도 전해져서 사람들의 기억에 남게 되고 또한 높이 평가될 것이다. 이 여자의 행동과 정신이 이것이 복음이라 그 말입니다. 자기 목숨을 다 바쳐도 감격하고 그래도 모자라는 거예요. 항상 어쩌면 더 예수를 사랑할까? 그 이상 할 수 없는 것을 했어도 항상 모자라야지 나는 이만큼 했으니까 상 받겠다. 그런 생각 없어요. 지옥을 만 번 가더라도 자기 소원은 이루어진 거니까 결과는 어찌되었든 상관없어요. 그때까지 소원은 성취 되었습니다.
그러면 여기 왜 여기를 보았냐? 마태복음도 있지요? 그런데 그 깼다는 말은 없지요? 마태복음에는 요한복음도 있고 누가복음도 있고 4복음에 다 있어요. 그런데 마태복음 하나 더 봐. 마태복음 26장 6절서 13절 향유를 부은 여자, 예수께서 베다니에 있는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가셨다. 청했으니까 가셨지요? 거기서 식사 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머리에 부었다. 깨었다는 말이 없어요. 부었다. 그러자 제자들은 제자들이 화를 내며 왜 남의 일에 간섭 하냐? 남의 일에 가지들이 화 낼 일이 아닌데 말이야. 화를 내며 말했다. 왜 그 비싼 향유를 낭비 하냐? 왜 비싼 것을 낭비 하느뇨? 낭비라고 그래, 쓸데없단 말이야. 헛되이 쓴다는 말이야. 아무 가치 없게 쓴다. 이 말이야.
그것을 팔아 큰돈을 만들었더라면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지 않을까?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준다는 그런 미명하에서 자기들 도둑질 하려는 거예요. 요한복음 12장 같으면 유다가 나오지요? 자기한테 맡겼으면 좀 빼서 쓸 수가 있는데 안 맞기니까 분개 했어요. 유다는 도적이라 그랬거든. 도적이라. 유다만 그런가? 모두 세상 욕심은 도적이야. 도적, 돈 밖에 모른다고요. 그것을 팔아 큰돈을 만들었더라면 가난한 사람을 도울 수 있지 않겠소? 도우면 또 자기 명예욕 예수께서 그것을 아시고 말씀 하셨다. 왜 그 여자를 힐난하느냐? 괴롭게 하느냐? 간섭하느냐? 여자는 내게 아름다운 일을 하였다. 해 주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언제나 너희 주변에 있지만 나는 언제까지나 너희와 같이 있지 않을 것이다. 그 여자가 내 몸에 향유를 부은 것은 장례를 미리 준비한 것이다. 준비하기 위한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말 한다. 세상 어디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자가 한 일도 전해져서 사람들은 이 여자를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여자 이 죄 많은 여자거든요. 막달라 마리아야, 여자가 한 정신을 복음 정신을 흠모할 것이다. 이것이 복음이라 말이야. 자기 소유를 털끝만큼 아까운 것 없이 몽땅 예수에게 바쳤다. 마음과 몸과 재산 총재산 다 바쳤다. 그게 복음이에요. 자기라는 거 없으니까 자기를 위해서 할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전부 예수의 것이 되었으니까 모든 움직이는 일이 예수의 일이고 남의 다른 사람 안에 예수의 일이지 자기 사적인 일은 없어요. 이제 다 바쳐버렸으니까 자기 생명을 바친 거예요. 이 비싼 향유는 그렇습니다.
이 복음인데 이 한군데 어디서 보냐하면 출애굽기 32장 7절 8절보고 19절 볼 테니까요. 분노하시는 여호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모세야 어서 내려가거라. 네가 애급에서 데리고나온 네 백성 내 백성이라고 안했어. 하나님이 네 백성 네가 데리고나온 네 백성 그런 말이야. 항상 나라는 것이 있다고요. 네가 애급에서 데리고나온 네 백성이 지금 제 정신이 아니로구나. 형편없다. 제 정신이 아니로구나.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것은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저희 손으로 거푸집에 부어 만든 금송아지 수송아지 신상 앞에 엎드려 절하고 제물까지 바치는구나.
그러면서 한다는 말이 이스라엘아 보아라. 이 신이 움직이지도 못하고 걸어가지고 못 하는 거, 이 신이 우리를 애급 땅에서 이끌어낸 우리 신이라 하니라. 하고 떠들어 대는구나. 말도 못하고 알아듣지도 못하고 걸어 다니지도 움직이지도 못하고 아무 생명이 없는데 그게 신이라고 그것이 어떻게 사람을 애급에서 인도 하냐? 그거냐? 자기도 움직이지도 못 하는 건데 아무 의식도 없는 것인데 쇠 덩어리인데 말이야. 그때만 아니라 지금도 돈만 있으면 다 된다. 그런 사상이란 말이야. 그럼 그런 결과가 모두 나타난단 말이야. 지금 돈 욕심 부리다가 조금 안 걸리게 하려던 것이 다 걸려버린단 말이야. 하나님이 다 드러내고야 말아요. 그러면 19절, 15절부터 모세가 금송아지를 부셨다. 부숴버렸어요. 그런 뒤에 모세는 증거 판 두 개를 손에 들고, 이건 하나님이 손수 쓴 돌 판이에요. 하나님이 만들어 가지고 하나님이 친히 썼어요. 그런 귀한 것인데 깨뜨려 버렸어요.
손에 들고 돌아와서 산을 내려왔다. 40일 동안이나 걸려가지고 성공해가지고 오는 건데요. 그 동안을 못 참아서 아론을 졸라댔거든요. 모세는 지금 산에 올라가더니 오도가도 안하니 죽어버렸는가 보다고, 그 증거 판에 양편에 모두 글이 새겨있었다. 그 증거 판은 하나님이 몸소 만드셨어요. 몸소 돌을 다 갈아서 글도 다 새겨놓고 그래서 그게 누가 깨도 안 되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만들었는데 그런 귀한 것을 만드셔서 손수 그 위에 글자를 새겨주신 것이다. 백성이 흥에 겨워 시끌벅적하게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호수아가 듣고 모세에게 말하였다. 진지 안에서 진지 안에서 싸움이 벌어져 저렇게 시끌벅적 하는가봅니다. 그러자 모세가 대답하였다. 저 소리는 승리의 노래도 아니다. 감정을 이기지 못해가지고 감정이 발동하는 거지 아무 뜻도 없는 것이다. 무엇을 이겼다는 거 아니에요? 자기를 못이기는 태도에요. 자기감정을 억제 못하니까 그렇게 한번 풀어보는 거예요. 노래도 감정에는 호소가 강한데 어떻게 할 길이 없으니까 그런데 가서 풀어보려고 하는 거예요. 손뼉을 쳐도 그때뿐이지 돌아서면 뭐 그 장소 그 때 뿐이야. 감정적인 향락이라는 건 순간, 순간뿐이지 지나면 더 허전해요.
저 소리는 승리의 노래도 아니요. 전쟁에 지고 슬퍼하는 소리도 아니다. 저 소리는 가락에 맞추어 서로 화답하는 진지의 노래가 분명하다. 모세가 진지에 가까이 다가가 보니 수송아지 신상이 서있고 무리가 그 앞에서 덩실덩실 춤을 춰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그것도 신이라고 믿고 생 춤을 추고 그런 거야. 그 기분을 억제할 수 없으니까 이건 참 길을 못 찾은 태도란 말이야. 쓸데없는 것에 정욕을 다 쏟는단 말이야. 춤을 추며 정신없이 말이야. 정신없이 7절 보면 제정신이 아니란 말이야. 제 정신이 없어요. 정신없이 제 정신없이 즐기고 있었다. 모세는 격분했다. 개역에는 대노 크게 분했다. 대노, 왜 그걸 보고 격분했을까? 그럴 만도 하지요. 하는데 그 격분 대노 그 나오는 그 자체가 신앙은 아니에요. 자기라는 게 있다. 그거야.
격분한 나머지 두 손에 들고 있던 증거 판을 산 밑으로 내 팽개쳐 버렸다. 깨트려 버렸다. 팽개쳐 산산조각이 났다. 그렇게 귀한 건데 하나님이 손수 만들어서 손수 쓴 것인데 그럴 수가 있는가? 그거에요. 그 이것이 무엇이겠냐 이거야. 실상은 모세 자신을 깬 것입니다. 잠을 깼어요. 결국 율법의 궁극은 여기뿐이에요. 격분하는데 그쳐버려요. 실행을 못해요. 여기는 사랑이 없어요. 그런데 자기를 깨버리고 복음 안에 들어가면 사랑입니다. 율법은 그만 둔거란 말이야. 그런 뜻이에요. 그러니까 34장에 가서 인제 다시 만드는 거예요. 그건 복음이에요. 깨뜨렸다.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또 그것까지 그러고는 우상을 무리가 만든 수송아지 금상을 깨뜨려 불속에 던져 넣고 타고 남은 것까지 가루로 만들었다. 가루로 만들어서 빻아가지고 그것을 가루를 물에 타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모두 마시게 했단 말이야.
마시게 쇠 가루를 물에다 타서 마셔요. 그러면 성경 말씀을 다 살라가지고 입에다 마시면 되겠습니까? 그렇게 다른 데는 마시지는 않고 물에다 흘려 떠내버리는데 신명기에 보면 그러면 그만보고 여기 이것은 자기를 깨뜨렸다고 볼 수 있고요. 34장에는 모세가 새 돌 판을 장만하다 이건 복음이라고 말할 수 있어 깨버린 건 율법이고 율법에서 자기를 완전히 부정하고 자기를 깼다는 거예요. 자기를 자던 잠이 확 깨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돌판 두 개를 처음 것과 똑같이 만들어라. 네가 다시 다듬어 온 돌판 위에 먼저 번 돌 판에 새겼던 글을 내가 다시 새겨 주리라. 마음에 인제 하나님의 율법을 마음에 새겼어요. 돌 판위에 있는 거 깨버리고 이것이 저기 예례미야 31장 33, 34절에 있지요? 마음에 거기 봐요.
예레미야 31장 31절서부터인데 새 계약을 맺으시다. 33절서부터 그러나 이제 내가 이스라엘 백성과 체결하려는 내 계약은 계약 자체가 완전히 옛것과는 다르다. 새것이란 말이야. 신약이라는 말이야. 다른 것이다. 이 계약은 내가 각 사람과 개인적으로 체결하겠다. 나는 이제 나의 새 계약을 돌 판에 써서 그들에게 주지 않고 그들 각자의 마음에 이건 닦을 수 없어요. 각자의 마음과 양심에 새겨놓겠다. 나는 이렇게 내 법을 그들의 가슴속에 새겨놓고 그들의 부드러운 살과 피 속에 넣어주어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도록 하겠다. 그러면 아무도 다른 사람을 훈계할 필요가 없단 말이야.
마음에 새겨놨으니까 훈계할 필요도 없고 아무도 자기형제에게 주님을 알라고 주님을 알고 두려워하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 때에는 가장 천한 사람, 사람이라면 야만이든지 누구든지 가장 천한 사람에게서 가장 존귀한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이 내가 누구인가를 알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모든 사람이 나를 알 때가 오면 나도 모든 인간의 불순종 불순종과 반역을 용서하고 더 이상 인간의 악행과 허물을 기억하지 않겠다. 기억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것은 내가 온 세상의 주인으로서 하는 말이다. 이것이 신약에 와서 나중에 참고해 봐요. 어디다 인용 했냐 끌어다 인용했냐 하면 히브리 8장에 있고요. 10장에 있어요. 두 군데 있고 또 로마서 2장 14절 15절에 있고 그래요. 양심에 새겨졌어요. 사람 양심에 성경은 없어도 되는 거예요. 실상은 양심에 (끊김)
좀처럼 화를 내지 않으신다. 화를 내지 아니하고 사랑과 진실이 있는 신이야. 진실이 넘치는 신이다. 또, 7절 6절만해도 다섯 번이야. 7절은 이것은 너덧 가지 챙겨야지요. 수천 대에 이르기까지 사랑을 베푸시며 수천 대까지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 은총이야. 거두지 않아요? 죄는 삼사 대에 끝나지만 은총은 수만 대까지야. 그런 하나님이에요. 하나님이 나를 버렸을까? 그건 오해야. 버렸을까? 생각할수록 그건 안 버린 거지요? 어떻게 버려? 당신이 만들어 놓은 것을, 버릴 것을 뭐 하러 만들었겠소? 다 쓰시려고 다 귀하지, 하나하나 당신 형상대로 만든 사람을 버려버려요? 안된다고, 한 영혼도 멸망하지 않도록 다 회개하도록 기다리신다고 하지 않아요?
베드로후서 3장 9절에 보면 한사람도 지옥 안 보내요. 다 구원해요. 또 창세전에 다 구원해 놓았고 수 천대에 이르기까지 사랑만 베푸는 신, 또 거슬려 반항하고 실수하는 죄를 용서해 주는 신이에요. 용서 일곱 번이나 용서해 주는 신이요. 그렇다고 벌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다 용서했는데 왜 벌이나와 이것은 예수를 가르쳐요. 예수를 예수에게다 독생자에게다 벌을 씌워버려. 당겨버려요. 전 인류의 죄를 대표해서 내 죄를 예수님이 당했다 그거에요. 앞으로 태어날 영혼도 다 들어가요. 창세전의 영혼도 다 들어가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건 전 인류의 대표입니다. 죄인 대표에요. 아들 조상이 저지른 죄를 아들과 손자 아들 손자를 거쳐 삼사 대 까지 벌 한다. 삼사 대까지 한 아홉까지 됩니다. 그럼 삼사 대는 대수를 세어 봐요.
하나님이 초대 예수가 2대 사도들이 3대 사도들이 내어놓은 성경을 보고 깨달으면 4대야. 그것이 베드로전서 4장 1-2절로 되어있단 말이야. 아까 산산조각이 났다고 베드로전서 4장 보고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생활 그리스도께서는 고난을 받으시고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그분과 같은 각오를 언제든지 언제 어떤 고난이 닥치더라도 견뎌낼 수 있도록 마음을 마음에 준비를 해 두십시오. 여러분의 육체가 고난을 받을수록 죄악은 그 힘을 잃어버린다는 사실을 기억 하십시오. 육체의 고난을 안 받으면 죄가 더 강해가지고 꼼짝을 못하게 된다. 받아버리면 죄가 자꾸 약해져 버려. 고난을 겪어 버리면 고난을 안 받으면 죄가 더 힘을 안 놓는다니까. 죄의 종살이를 못 벗어난다고. 안 받으려고 하면 받아버리면 놓여요. 점점 약해져버려. 나중에는 놔버려.
아 못 견디겠다. 자유해라. 제가 한번 꿈 이야기인데 꿈도 아닌 것이 란 말이야. 막 그때 독감에 걸려가지고 막 열이나 견딜 수 없어요. 그것만 하면 좋겠는데 자꾸 뭣하고 싸우더라고 싸워. 나는 백번이면 백번 져요. 이길 수가 없어요. 그래서 네 마음대로 해라. 나 모르겠다. 맡겨버리니까 그 아픈 것이 언제 아팠냐? 하고 스르르 가버리더라고. 내가 이기려고 하면 질 것 뿐이야. 그런데 맡겨버렸어. 알아서 하라고 딱 그러니까 그 열이 싹 가버리더라고 그런 기적을 다 봤어요. 그건 간 뒤로는 뭐냐 하면 자꾸 가래침이 나오데요. 가래침이 아주 냄새가 고약해요. 그래서 죄라는 것은 마음에도 있지만 몸도 몸에도 살 속에 다 있는 것이다. 입으로만 회개 합니다.
그건 안 된다. 몸도 마음으로 죄를 지었기 때문에 이것이 없어지기 까지는 단련을 겪어야 돼. 입으로는 잘못했으니까 앞으로는 안 하렵니다. 이건 안 돼. 그러면 2절 봤던가요? 여러분의 남은 생애를 악한 욕망으로 허비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도록 애 쓰십시오. 이제 깨달았으면 앞으로 남은 생애는 완전히 몸을 바치고 하나님 뜻대로 살아야지, 하나님의 것으로 바치고 살아야지. 내 것으로 내 몸이다 하고 살면 도로 사탄의 종노릇 밖에 못한다. 못 벗어나요. 죄의 권세에서 못 벗어나요. 로마서 6장 2절 3절 4절 까지 입니다. 절대로 그럴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더욱더 은혜를 베푸실 수 있게 하려고 죄 많은 곳이 은혜가 많다니까, 5장 20절을 오해하는 거예요.
많다 하니까 아 그럼 은혜받기 위해서 죄를 더 지어야 되겠습니다. 그런 거야. 절대로 그럴 수가 없습니다. 죄가 죄를 짓지 않고도 살게 해 주셨는데 계속 죄를 지어서야 되겠습니까? 그런 생각은 죄의 고민을 당해보지 않은 사람의 생각이라 아직 죄도 모르는 사람이야.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고 세례를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의 한 부분이 되었을 때 이미 우리를 지배하던 죄의 세력은 부숴 졌어요. 아까 돌 판을 깨뜨린 것은 자기를 깨버린 것이니 받아야 된다. 이 말이에요. 자기를 깨야 복음이 받아들이지 자기가 있으면 안 받아진다.
그대로 자기 안에다 복음을 보태려고 하면 안 된다. 이 말이야. 좋은 교훈 말씀 들어가지고 실행이 되냐? 안 되어요. 안 돼. 더 교만만 해지지, 완전히 자기 부정해야 돼. 자기가 깨져야지 깨지면 자연히 들어온단 말이야. 죄에 지배하던 우리를 지배하던 죄의 세력이 부셔져버렸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서 우리는 산산조각이 났다. 가루가 되었다. 산산이 부셔진 것입니다. 죄를 사랑하던 우리는 세례를 받을 때에 그리스도와 함께 묻혀서 그분과 더불어 장사 되었어요.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능력으로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것 같이 우리도 그분의 새 생명을 얻어 살게 된 것입니다. 예수의 새 생명, 얻어 살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어디하나 더 보냐? 요한복음 1장 17절 보고요. 요한복음 1장 17절 16절서부터 봅니다. 우리는 모두 그분에게서 넘치는 은혜를 얻었으며 한없는 복을 받았다. 모세는 우리에게 율법을 주었어요. 율법은 깨어 버려야한다. 이거야. 율법을 주었으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사랑의 용서, 사랑의 용서사랑은 무엇이냐? 용서에요. 용서 용서하면 그 다음은 평화에요. 그 다음은 뭐야? 기쁨이에요. 사랑의 용서를 주셨다. 또 3장 29절 30절, 22절서부터 되었는데 29절 봅니다. 군중이 그분에게 몰려가는 것을 몰려가는 것은 당연하다. 신부를 맞을 사람은 신랑이다. 제자들이 와서 세례 요한에게 그러거든요. 당신이 증거 하던 예수라는 그분에게 싹 가버립니다. 우리는 무엇 할까요? 우리 할 일없습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그 분에게 가야한다. 신부를 맞을 신랑은 맞을 사람은 신랑이다. 예수란 말이야. 신랑의 친구 세례요한 친구도 옆에 서서 있다가 신랑의 목소리를 들으면 듣고 크게 기뻐한다. 나는 지금 그러한 기쁨으로 가득 차있다. 30절, 그분은 더욱더 복음은 더욱더 위대해지고 흥하고 나는 더욱더 없어져야 한다. 간다. 그거야. 자기 사명 다 했어. 세례요한은 요한의 사명은 뭐냐? 죄를 깨닫게 해서 예수께로 대주는 거야.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그래 율법은 뭐냐 하면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안내자인데 그렇게 이용하지 아니하고 율법을 잘못 써가지고 비판하는데 써버린다고 남을 정죄하는데 써버린다고 그렇게 되니까 그리스도와 관계없이 끊어져 버린다고 은총에서 벗어나고 죄를 깨달아서 그리스도를 구세주를 갈망하도록 하는 거야.
갇혔으면 적당할 때 예수 오면 딱 열어주고 나오너라. 그러면 될 텐데 그걸 못 갇히지도 않고 자유 해 버려요. 법은 죄인 줄 알았으면 자유 말라는 거예요. 감정의 요구를 억제 하라는 거예요. 망하는 게 육적으로 자유 해 버리니까 언제 복음이 들어 가냐? 안 들어간다. 육적 자유를 억제하고 영적 자유를 얻으려면 예수 안에서 해야지요? 예수의 지체 노릇을 해야지, 내가 머리 된 동안에는 나다 하는 동안에는 자유가 없어요. 자유하면 할수록 더 매여 버려요. 그렇지 않아요? 대통령들이 할 수 있는 데까지 자유 해 버리고나니까 딱 매여 버리지 않아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할 수없이 끌려가요. 비난받게 되어있어요. 암만 존경 받게 하고 싶어도 실상은 마음속으로는 다 무시해버려요.
그러면 인제 여기서 어디냐? 로마서 10장 10장, 보기 전에 9장 30절서 봅니다. 이스라엘의 잘못, 이러한 그러면 이런 일련의 일들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겠습니까? 바로 다음과 같은 사실입니다. 이방인들은 하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않았는데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믿음으로 죄 없다는 선언을 받을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하나님의 율법을 열심히 지키기는 해요. 지켜서, 열심히 잘 지켜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려고 노력 했지만 암만 노력해도 소용없어요. 했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 자기가 살아서 그래요. 자기, 자기 힘으로, 왜 그렇습니까? 믿음으로 하지 않고 믿음은 뭐지요? 나는 율법 안에서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살았다. 나는 없고 그리스도만 사는 게 믿음인데 내가 살아가지고 하니까 안 된단 말이야.
내 방법 내 힘 내 지혜 믿음으로 말미암지 않고 단지 율법을 지키는 선량함, 율법을 지켜서 선량하단 말이야. 선량한 인간만 되면 다 구원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예수라는 큰 걸림돌에 걸려 넘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에 이렇게 경고 하셨습니다. 내가 시온산 위에 든든한 주춧돌을 놓겠다. 그 머릿돌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누구든지 주를 의지하면 의지하는 이는 멸망하지 않으리라. 10장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여러분은 내 동족을 형제들이여 나는 내 동족이 동족들이 구원받기를 진심으로 원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들이 하나님의 명예를 얼마나 열심히 구하고 있는가를 알고 있습니다. 열심, 하나님을 열심히 믿어보려고 하는 것은 좋은데 그러나 그것은 방법이 빗나갔어요. 올바른 지식이 아니에요.
교리에 꽉 짜놓은 정신에는 마음에는 새것은 전혀 남의 것은 의견을 안 받아요. 종교의식에 딱 굳어버리면 누구 의견도 안 받아 들여요. 너무 굳어가지고, 내가 옳다하는 그 생각이 있는 동안에는 한 말씀도 안 들어오는 거예요.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자기들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게 하기위해 주셨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어요. 내가 살아서 내 방법으로 한다 그거에요. 어느 종교에서 선하면 상 받는다. 다 그런 거예요. 선한 게 어디 있냐? 선이, 자기 자체가 죄인인데 어디가 선이 있어? 배속에서 살인 죄인인데 무슨 선이 있냐? 그거에요. 선한 사람은 한분뿐이라고 그랬지 않아요? 예수께서 증거한대로 그들은 나름대로 율법과 관습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을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선량한 인간이 된다는 되는 길이라 하여 여기고 그들은 그것을 지키려고 애쓰고 있지만 그것은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는 방법이 아니란 말이야.
먼저 자기 버리라는 것인데 안 버리는 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야. 자기 버리고 따라 오라는데 안 버린단 말이야.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지켜서 얻으려고 하는 모든 것을 그리스도께서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 주신다는 것을 그들은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다.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율법을 종결지었습니다. 율법을 일점일획도 어기지 않고 다 지켜야 된다고 했는데 지킬 수 없는 것이거든요. 지켜야 한다는 말은 복음 안에서 완성이 된다는 거야. 아까 향유를 부은 여자 그거 완성이에요. 사랑이란 말이야. 복음은 항상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거란 말이야. 너 나가 없어요. 대 죄녀(罪女)하고 대선인하고 한마음이 되니까 제일 큰 죄녀(罪女)가 대 성녀가 되어버려요. 종결되었다. 깨뜨려버렸다. 종결되었다.
한 가지만 더 봅니다. 마가복음 4장 저기 35절 풍랑을 잔잔하게 하시다 저녁때가 되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바다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고 말씀 하셨다. 그래서 제자들이 무리를 그대로 남겨둔 채 예수를 모시고 배를 저어 가자 다른 배들도 뒤따랐다. 그런데 얼마 못가서 거센 풍랑이 일면서 큰 물결이 배 안으로 덮쳐 배가 가라앉을 지경이었어요. 그러나 예수께서는 배의 고물에 머리를 베게 하고 기대고 주무세요. 아 그렇게 바람이 배안에 물이 들어와서 가라앉을 지경인데 그때 잠을 자겠어요? 항상 깨어 있으라고 하는 분이 잠을 자겠냐고? 항상 철야했어요. 산에 가서 기도로 새어버렸어요. 그런데 그때 풍파 속에서 잠이 오냐 그거에요. 잔 것 아니에요. 제자들이 보기에 잔 것이지 제자들을 좀 시험해 보는 거지요.
주무시고 계셨다. 제자들이 예수를 깨웠다. 예수가 자기들을 깨워야 하는데 반대로 깨우며 소리쳤다. 선생님 저희가 빠져 죽게 되었는데도 돌보시지 않겠습니까? 예수가 빠져 죽겠소? 창조주가? 이것이 믿음을 시험해 보는 거야. 예수께서 일어나 바람을 꾸짖었다 바다가 풍랑이 바다를 향하여 고요하고 잔잔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래 순종해요. 그런 분인데 빠져 죽어요? 창조주가 그 물한테 빠져 죽어요? 잔잔하라고 말씀 하셨다. 그러자 바람이 그쳤어요. 그 순종한다고 그게 하나님의 증거에요. 그치고 물결이 잔잔해졌다. 언제 바람이 불었냐?
잔잔해 졌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꾸짖으셨다. 왜 그렇게도 겁이 많으냐? 안 깨웠더라면 굉장히 기적적인 역사를 봤을 텐데 체험했을 텐데 깨워서 그것밖에 못 봐. 깨워서 겨우 바람 잔잔한 것 밖에 못 봤다. 아직도 나를 믿지 못하느냐? 그들은 두려워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자기에요. 자기 자기가 있으니까 못 믿어요. 버려져야 믿는데 믿어지는 것이 기적인데 마음에 기적이 안 믿어졌다. 안 믿어요. 세상 모두 무엇에 놀라서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그렇게도 믿음이 없느냐? 그럼 4장 26절,
그분의 본질이 물이요 빛이요 흙이요 바람이라면
지은이:김준호
만물은 임의 빛을 받아서
임의 본질을 마시고 자라고 있습니다.
만물이 먹고 마시는 것은
그분의 빛이요, 물이요, 흙이요, 바람입니다.
그리고 사람이 먹고 마시는 것은
그분의 살이요, 피입니다.
임의 본질이 있다면(참조 필2;6)
그는 자비요 사랑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이 먹고 마시는 모두가
그분의 사랑을 먹고 자비를 먹고 삽니다.
오!
그 큰 사랑
참다운 사랑
선한 사랑
아름다운 사랑
그 성스러운 사랑이 햇빛속에 녹아내리고
그 성스러운 사랑이 이토록 물결속에서 흘러내려옵니다.
그 성스러운 사랑이 흙속에서 커서 빵이 되고
그 성스러운 사랑이
이토록 바람속에서 산소가 되어 마시게 합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그 성스러운 사랑을 직관했을 때
태양을 우러러 '형제'라 부르고
흘러가는 물을 '자매'라 불렀나이다.
오!
만물들아, 하느님을 찬미하라.
우리 함께 하느님께 찬미하자고 노래를 불렀나이다.
우주에 가득찬 하느님의 사랑
참되고, 선하고,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사랑의 성(性)을
발견하고 찬미하였나이다.
진정 저 하늘은 임의 가슴이요.
저 우주는 임의 살이요.
저 흐르는 물은 임의 피입니다그려!
그리고 반짝이는 별은
임의 사랑의 속삭임이요.
저 빈들에 핀 꽃들은 임의 사랑의 노래요.
저 풀벌레의 속삭임은 임의 시입니다.
형제여.
자매여.
우리 함께 하느님 아버지께 찬미 올립시다.
<참조 골로 1:9-13, 필립 2:11-18>
여러분 안에 계셔서
여러분에게
당신의 뜻에 맞는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켜 주시고
그 일을 할 힘을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필립 2:13).
2010/03/14 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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