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22

이남곡 몽양 여운형(이기형 지음)을 다 읽었다.

몽양 여운형(이기형 지음)을 다 읽었다.

가슴이 뜨거워지기도 하고, 눈물이 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고, 뭐라 말하기 힘들다.
물론 저자의 관점에서 쓴 책이니까, 반대자들의 의견도 있을 것이다.
몽양의 연설 내용이다.
“....해방된 오늘 지주 자본가만으로 나라를 세우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손들어 보시오, .....지식인·사무원·소시민만으로 나라를 세우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손들어보시오. ....농민·노동자만으로 나라를 세우겠다고 우기는 사람 있으면 어디 한번 손들어 보시오. ....손을 드는 사람이 하나도 없구먼요. 

그렇습니다. 일제 통치 36년 동안 우리 민족에게 씻을 수 없는 반역적 죄악을 저지른 극소수만을 제외하고 우리는 다같이 굳게 손을 잡고 건국대업에 매진해야 합니다. 우리 조상은 일찍이 압록강· 두만강 저 쪽 광활한 만주 땅에 용맹을 떨치고 웅지를 펴지 않았습니까.
만주 즙안현에 있는 광개토왕비는 이를 잘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또 문화적으로는 금속활자· 고려청자· 훈민정음 등 세계가 자랑할 뛰어난 민족유산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민족적·문화적 긍지를 가지고 세계사적 흐름에 발맞추어 우리는 건국대업에 임하기 위해 조선인민당을 창건합니다.... “
그는 좌우합작과 통일조국을 위해 헌신하다가 좌우 양쪽으로부터 반대를 받고, 당시 경찰의 묵인 아래 암살되었다.
어제 밤 문득 이 책을 보다가 ‘동학’이 생각났다.

나는 과거 역사를 많이 공부해보지 않았다. 그 편파적 해석이나 현실에 도움이 안되는 역사 논쟁에 큰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는 좀 공부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조선 후기 근대부터 시간 나는대로 공부를 해보고 싶다.
동학운동과 상층의 근대화 세력 간의 합작은 불가능했을까?
일본 소규모 군대의 기관총 앞에 귀중한 근대화의 동력을 소멸시킨 과정을 좀 더 들여다보고 싶은 것이다.
아직도 해결하지 못하는 이 민족의 비극을 해결하기 위해서다.
그 다음 기회는 해방 후 ‘합작’이었다.
이것도 실패하였다.
나라가 망하고, 분단되고, 동족 상잔까지 하는데는, 외세의 절대적으로 우세한 힘이 있었지만 그 보다 더 결정적인 것은 내부의 분열과 상잔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나라를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한다면, ‘합작’했어야 한다.
‘합작’ 실패의 역사였다.
이제 세 번째 기회다.
어떤 사람들은 ‘합작’이라는 말을 들으면 아마 좌파의 ‘통일전선’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그 분들에게 몽양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해방 후 ‘합작’을 실패하게 한 책임의 반은 좌파에 있다.
극좌와 극우가 아닌 사람들이 ‘합작’을 주장했고, 미국과 소련을 업은 극좌와 극우에 의해 ‘합작’은 좌절되었고, 분단이 고착화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제 어쩌면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남북 합작이 아니다.
옛날의 좌우합작도 아니다.
중국의 국공합작 같은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 안에서 ‘좌도우기의 개혁을 할 수 있는 합작과 연정’을 말하는 것이다.
남북관계는 당분 간 다른 국가로 인정하는 것이 현실에 맞다.
국가의 과제가 70년 동안 달라져 있기 때문이다.
‘민족’은 당분간 잊어버리는 것이 좋다.
‘통일’이라는 단어도 심장 속 깊이 감추어라.
‘한 민족 두 국가’로 외환(外患)을 벗어나자.
우선 대한민국의 인간화·선진화를 위해 ‘합작’하고 ‘연정’하자.
때가 되면, 한국이 선진국이 되고, 북한이 민주화되면 아마도 자연스럽게 통일이 거론될 것이다.
어쩌면 통일보다 더 나아간 ‘아시아 연방’이 논의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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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형 (지은이)실천문학사2004-06-30초판출간 2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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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가
12,000원
판매가
10,800원 (10%, 1,200원 할인)



548쪽
112*152mm (A6)
307g
ISBN : 97889392048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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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2000년 출간되었다가 절판된 책의 개정판. 민족의 완전한 자유독립을 열망했던 몽양 여운형의 일생을 담았다. 흑백논리가 횡행하던 독립 직후의 한국에서 미국과 소련 어느 나라에도 치우치지 않고 민족자주의 정신에 투철하고자 했던 그의 삶을 엿볼 수 있다.


목차


제1부 망국의 세월에 묻힌 젊음

제2부 일제강점과 독립운동
1장 풍운아, 기지개를 켜다
2장 상해 임시정부
3장 일본 정부와의 대결
4장 상해 임시정부의 불협화
5장 법정에 떨친 기백
6장 몽양과 민족독립운동
7장 일제의회유
8장 독립에 대비하여

제3부 해방 조국의 하늘 밑
1장 해방전야
2장 건국준비위원회
3장 조선인민공화국의 탄생
4장 군정치하의 혼란
5장 좌우합작과 미소공동위원회
6장 큰별 떨어지다

보유1
보유2
연보
발문 송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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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원산 송도 해수욕장에서 몽양은 우연히 춘원을 만났다. 그때 춘원은 아이들을 데리고 바다와 백사장을 즐기고 있었다. 몽양이 아이들이 튼튼하고 잘생겼다고 칭찬해주자 춘원은 일본말 (그때는 국어)로 아이들에게 '여 선생이 지금 너희들을 튼튼하고 잘생겼다고 칭찬해주신다' 로 통역하더라는 것이었다.-207쪽 - 중퇴전문



저자 및 역자소개
이기형 (지은이)


1917년 11월 10일(음력 9월 26일) 함남 함주에서 태어나 함흥고보를 졸업하고, 일본대학 예술부 창작과를 수학했다. 아호는 여민與民.

1943년부터 해방 직전까지 ‘지하협동단사건’, ‘학병거부사건’ 등 항일투쟁 혐의로 수차례 피검되어 약 1년 동안 복역했다. 1945년 해방 이후 한때 <동신일보> <중외신보> 등의 기자로 활동했으며, 1947년 <민주조선>에 최초로 시를 발표했다.
1947년 7월에 정신적 지도자로 모시던 몽양 여운형이 암살당하자, 창작 및 사회활동을 중지했다.

1980년 3월 절필 33년 만에 시 창작을 재개하여 1982년 6월에 첫시집 『망향』을 간행하고, 1983년 무크 『실천문학』제4권 <삶과 노동과 문학>에 「파문」「단풍」 등 5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왔다. 1989년 ‘시집 『지리산』 필화사건’에 연루되기도 했으며, 1999년 ‘사월혁명상’을 수상했다.

등단 이후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민족문학작가회의, 한국작가회의, 한국문학평화포럼,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 등의 ‘고문’과 바른정치실현연대의 ‘상임공동대표’로서 문단과 재야에서 통일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2013년 6월 12일 타계한 후 <민족시인 이기형 선생 통일애국장>이 치러졌다.

시집으로 『망향』 『설제雪祭』 『삼천리 통일공화국』 『별꿈』 『산하단심山河丹心』 『봄은 왜 오지 않는가』 『해연이 날아온다』 『절정의 노래』 등이 있으며, 실록연작시집으로 『지리산』, 서사시집으로 『꽃섬』이 있다. 전기 및 평전으로 『몽양 여운형』 『여운형 평전』 등이 있다. 접기





평점
분포
    
8.0



    
지금까지 몽양에 대한 편향된 시각을 바로 잡을 수 있으며,거목처럼 살다간 선생을  
gidon 2007-11-20 공감 (1) 댓글 (0)



    
한국현대사의 거인 몽양을 다루고 있는 이 책의 절판에 아쉬움이 크다.  
책읽개 2014-08-10 공감 (0) 댓글 (0)



마이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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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그 분  


역사에서 만일이란 없지만,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 한 사람이 암살되지 않았다면이란 생각을 이 책을 볼때면 어김없이 생각난다.

여운형 선생님 같은 분을 오래도록 찾던 끝에 3년전 한 신문기사를 통해서 접하였고, 도서관을 뒤져서 평전을 읽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토록 갈구하던 존경할하고 자랑할만한 민족지도자와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평전을 읽다보면 인생을 어쩜 그렇게 거침없이 살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은 쉽게 사그러들지 않는다.

많은 지도자 유형이 있지만, 이 분과 같은 경우는 매우 드문것이 사실이다.

싫고 좋음에 관해서는 매우 분명하지만, 대의를 위해서는 자신의 몫을 쉽게 내어줄 수 있는 것이 그 첫째이다.

둘째로는 환경이나 상황에 의해 자신의 의지나 목표를 변경하거나 굴하지 않고 소신껏 진행해나간다는 점이다.

셋째는 상대방을 자연스럽게 동화시켜버리는 인품과 웅변력을 가지고 있다.



저물어가는 왕조의 끝자락에서 식민통치 그리고 해방, 미군정 시대라는 정말이지 격동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이 '카멜레온' 처럼 순간순간 색깔을 변해갈때 자신의 색을 꿋꿋하게 지켜간다. 변한 사람들은 앞다퉈 변하지 않음에 '비난'과 '조롱'하지만 주자유객문을 들며 유연하게 대처한다.



人我人我不喜
人我不人我不怒
我人人我不人我人
我不人人我人我不人
欲知我人不人
我人我不人 人之人不人

뜻은 사람이 나를 사람이라 하여도 내가 기뻐할 바 아니요,
사람이 나를 사람이 아니라 하여도 내가 노여워할 바 아니니라.
내가 사람이면 사람이 나를 사람이 아니라 하여도 내가 사람이요,
내가 사람이 아니면 사람이 나를 사람이라 하여도 내가 사람이 아니니라.
내가 사람이냐 아니냐를 알고자 할진대
나를 사람이다 아니다 하는 사람이 사람이냐 아니냐를 알아보도록 하라



여운형 선생님의 깊은 지식과 탁월한 식견은 각 조직체를 결성할때마다 매우 돋보이는데 그 중 조선인민공화국의 시정방침 내용중 7. 18세 이상 남녀 인민의 선거권의 향유 9. 부인의 완전한 해방과 남녀동권. 10. 8시간 노동제 실시. 11. 최저임금제확립. 등은 현재도 국내에서는 제대로 시행되지 않거나 얼마전 개정되었던 조항들이라는 점이 잘 나타낸다.



여운형 선생님은

'臨淵羨魚不如退而結網(임연선어불여퇴이결망)'이라는 한시를 보며 '준비'의 중요성을 되새기곤 하였다. 독립준비의 중요성, 독립이후의 정부 수립 준비의 중요성등을 강조하시며 언제 어디서나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역할을 찾아 몸소 실천하였다. 무엇보다 우리 20대 청년들의 '준비'를 늘 역설하시곤 하였다. 그래서 늘 '운동'과 '독서'를 청년들에게 강조하셨고 그것만이 개인의 발전과 동시에 나라의 발전을 일으킬 수 있다고 강조하셨다.



1947 년 7월 19일 피격살해 당하시는 그 날까지도 개인의 안위보다는 나라의 운명에 대해 더 걱정하셨고 더 노력하셨다. 여전히 좌익 공산주의자로 알고 있는 대다수의 후세사람들을 보고 있느라면 어떤 생각이 드실까 생각하지만, 살아계셨다면 아마도 '주자유객문'을 들며 호탕하게 웃음지으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20세기 대한민국 유사이래 보기 드문 '지도자' 한분이 너무 허무하게 마감하셨지만, 역사는 선생님의 사인이 풀리지 않은 것처럼 친일파와 함께 미완의 상태로 남겨져있다. 그것을 풀 수 있는 사람들은 바로 우리이며, 그러기 위해서 역사 앞에 당당한 청년이어야 하겠다.



책의 저자인 이기형 선생 역시 독립운동을 위해 애쓰셨으나 여운형 선생님의 서거 이후 칩거한뒤 30여년 이후에야 비로소 다시 문인으로서 활동을 하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던 주요인물과 친일파, 변절자 등에 대해서도 그 이름 하나 하나를 열거하였으며, 해방 이후 복잡한 세계정세와 국내정치환경속에서의 '암투' 및 '정치 추태'에 대해서도 다뤄놓았다.

물론, 우리가 교과서를 통해서나 익히 알고 있던 점들과 정면 반대되는 이야기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승만이나 김구에 대한 평가, 미군정에 대한 평가 등은 저자가 이야기하듯 역사학자들을 중심으로 지속해서 '역사적 재평가'가 필요한 부분이다.



- 선생님이 한자도 빼지 않고 암송하셨던 민영환의 유서이다. 무엇이 이 분을 죽음에서도 의연해 질 수 있게했으며, 이 죽음이 과연 헛되지 않으려면 지금의 우리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겠는가?



아아, 나라와 국민의 치욕이 여기에 이르렀으니,

우리 국민은 향차 생존경쟁의 속에서 전멸한 것이런가?

그러나 살려고 하는 자는 반드시 죽게 되고 죽음을 기하는 자는 살아나갈 길이 필연코 있을 것이니,

국민 여러분이 이 이치에 어두우리까. 영환 이 몸이 죽음으로써 황은에 보답하고 이천만 형제 동포 여러분께 사죄하나니,

영환 이 몸이 죽는다 하나 영혼은 살아 있어 반드시 국민 제군을 지하에서 도울 것이다.

동포 형제는 더욱 분려하여 지기를 굳게 하고 학술을 닦아 마음과 힘을 합하여서 다시금 우리의 자유 독립을 찾을진대,

죽은 이 몸도 저 세상에서 기쁨을 금치 못하리라,

아아 동포여 조금도 실망을 말지어다. 이에 우리 대한제국 이천만 동포 앞에 결별을 고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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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천사 2006-01-14 공감(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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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여운형 평전  


뭐랄까? 재미없게 읽었다. 여운형의 사상이라든가 업적, 정치노선보다는 개인적인 매력을 힘주어 소개하는 낯간지러운 위인 전기 스타일. 하치 사령관 참모의 정치가로서의 여운형 평가가 미남, 웅변가, 감화력과 설득력이라니... 여운형에 대한 흥미와 관심을 전혀 충족시켜 주지 못하는 책. 물론 여운형이 아니라 작가의 역량 탓.
자몽주스 2017-12-04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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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하다.  



”몽양 여운형”은 누구인가? 그 동안 대한민국에서 몽양은 독립운동가로서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였다. '05. 2.22(화)에 대한민국 정부는 “몽양 여운형” 선생에 대해 건국훈장 2급 대통령장 서훈을 3.1절을 기해 추서하기로 결정하였다. 그 동안 “몽양”은 좌익이라는 이유로 철저히 기존 교육과정에서 외면되었으며 일제시대에 탁월한 민족지도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였다. 뒤늦게 마나 서훈이 된다는 점은 다행스러우나 2급 대통령장에 불과한 점은 아직도 우리나라에 이른바 “빨갱이”에 대한 콤플렉스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매우 아쉬운 점이다.



그 동안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통해 독립운동사에서 이른바 “좌익”의 역할을 배우지 못하였고 신탁통치 과정에서 ‘찬탁’을 주장했던 좌익 공산당은 반민족적이라는 점을 배워온 나에게 이 책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이 책에서 나타난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몽양”의 존재와 ‘국부’로 추앙받는 이승만의 “정치깡패”로서의 모습은 아직 우리나라에서 이른바 ‘우익’으로 대표되는 반민족적 친일집단의 망령이 존재하고 있음을 나에게 알려주었다.



“몽양”은 일제시대 좌, 우익에 치우치지 않은 유일한 엄정 자주적인 정치인이었다. 그러나 기회주의자라는 오해를 받고 반민주적인 테러를 당해 죽임을 당했다. 테러의 배후에는 경찰과 미군정의 비호를 받는 이승만이 있었고 이승만은 송진우와 김구, 여운형의 암살을 통해 권력을 잡았으며 권력욕에 눈이 멀어 남, 북 통일을 뒤로 하고 남한만의 단독정부를 수립하여 50여년의 남, 북 분단을 방조하였다.



지금 우리 민족은 핵의 위험 속에 생존의 기로에 서 잇다. 이 위기를 벗어나 민족에게 통일과 평화와 번영을 가져다주려면 미, 소 냉전의 흑백논리에서 벗어난 민족자주정신이 필요하고 그러한 점에서 몽양의 정치노선은 재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p.s) 참고로 나는 책에 대해서 점수가 짠 편이다. 나름대로 좋은 책임에도 별을 3개밖에 주지 않은 이유는 몽양에 대한 비판적인 내용은 찾아볼래야 찾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평전]이라면 객관적인 입장에서 어느정도 비판적인 내용은 있어야 하는 법이다. 그러므로 한 일물에 대해 긍정, 비판적인 면 중 긍정적인 면만 부각시켰으니 나도 전체 5점 중에 절반만 주는 것이 공평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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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향부동 2008-04-25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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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와 교류했던 민족대중의 멘토  

일제의 어둡고 엄중한 폭압속에서 숨쉬기조차 어려웠을 암흑의 시대에 몽양은 세계와 교류하며 세계인으로서의 의식과 조선 독립의 의지가 웅대하였다. 그가 품었던 시대정신과 소명의식은 시대를 앞서 있었고, 우리 독립운동사 속에서도 유일하게 일제와 정치투쟁을 할 수 있었던 분으로까지 생각이 이르게 된다.

해방전후 민족의 멘토로서 충분한 자질을 갖추고 있었으나, 오히려 정적으로 오인되거나 기회주의자로 보인 것은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 없는 일이다. 저자는 짧은 일화 등을 소개하는 것으로 마치고 있어 그 일화에 담긴 이유나 소회 등은 전혀 언급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온당치 않다.

몽양의 어떤 점들이 이런 오해들을 발생하게 하였는지에 대한 언급이 없이 상대방의 즉물적 행위- 무례하게 보이는- 만 인용한 것은 몽양의 정신과도 맞지 않을 뿐 아니라 또다른 오해를 낳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무엇이 그 시대를 그렇게 꼬이게 만들었는지 아니면 무엇이 몽양을 그렇게 행동하게 했는지에 대한 역사의 물음이 너무나 무색해지게 된다.

절대 간과해서는 안될 흑하사변이 단 몇줄로 끝난 것은 참으로 아쉽다. 몽양 자신도 이로 인해 잠시 고초를 겪기도 했지만 무장투쟁을 주창했던 몇몇 혁명가들의 인간적 결함때문에 수천의 목숨이 사라졌던 상처는 너무도 크다. 몽양 역시 예외는 아니었을 것이다.

몽양은 빼어난 외모, 국제적 감각, 대중연설력, 호방함 등등 개인적 품격이 높았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수 십 년의 독립운동으로 인해 그가 잃었다는 것은 단 하나. 그 자신 뿐이었다. 면전에서 동료의 죽음을 목도하고 돌보지 못해 패가할 수 밖에 없었던 수 많은 독립운동가들의 눈에 몽양은 어떤 사람으로 보였을까..... 그렇다고 이승만과 그 추종세력들의 간악무도함이 가려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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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계 2008-08-18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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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에 커다란 포부를 주신분 "몽양"  

"사람들이 나를 뭐라고 평하든지 거기에 대해 기뻐하거나 노여워할 필요가 없다.
내가 정당한 사람이면 사람들이 나를 악평해도 내가 정당할 것이요.
내가 참으로 정당치 못한 사람이면 사람들이 나를 훌륭한 사람이라고
찬양할지라도 사실은 내가 훌륭한 사람이아닌 것이다.
내 사람 됨됨이에 대해 참으로 알고자 한다면
나를 평하는 그 사람의 사람됨을 먼저 살펴보도록 하라.
자신의 정당성 여부가 문제이지 참새떼들의 입방아는
그리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뜻이라네."


그렇다 . 여운형 선생님은 먼저 깨어있는 분이었다.

사람들의 시선 , 눈초리 여론 따윈 안중에도 없으신 분이셨다.

요즘 내가 살고있는 세상과 얼마나 다른 지조와 신념을 지니셨는지..



"나는 부자의 향수냄새보다는 노동자의 땀냄새를 더 좋아한다. '


그리고 지극히 서민적이셨고 길거리에 만나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인사해주시기도하며

테러의 위협가운데서도 늘 당당하게 다니셨던 멋진 민중의 신사였다!!!



또한 그분은 좌와 우 이전에 정말로 민족을 먼저 생각하신 분이셨다.

1919년, 11월 일본 동경에서, 회유하는'다나까'에게 몽양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대도 글을 읽는 사람이면 삼군지수(三軍之師)는
가탈(可奪)이언만, 필부지지(匹夫之志)는 불가탈(不可奪)이라는 말
(삼군의 장수는 빼앗을 수 있어도 하찮은 한 지아비의 뜻은 빼앗을 수 없다)
의 진의를 알것 이다. 2천만명을 일시에 다 죽일 수도 있고
여운형의 목을 일순에 벨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2천만명의 혼까지를 죽일 수는 없을 것이고
여훈형의 마음까지를 벨수은 더욱 없을 것이다.
하물며 여운형이 지닌 굳은 조국애의 일편단심과 독립정신까지 벨수야 있겠는가?"

이러한 사람이 우리나라에 몇명이나 있는가?
이러한 존경할만한 민중속의 지도자가 있는가?
대한민국이 살려면 젊은이 들이 일어나야한다.
민족을 생각하며 사랑하며 , 국기에대한 경례와 같은 형식적인 말들이아니라.
우리마음속 깊은 다짐들이 일어 나야할것이다.

" 나는 이미 늙었다. 그러니 나는 너희들에게 부탁한다.
이미 썩은 기둥을 너희들의 손으로 뽑아 버리고
조선의 소나무를 정성껏 다듬어 청년들이 바라는 새 조선의 집을 지어라.
모든 영예, 모든 직위가 청년들의 것이니
내 한 줌 거름이 되어 조선의 소나무를 살찌운들 무슨 한이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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