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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극단의 시대…
똘레랑스를 바탕으로 새로운 민주공화국의 모델을 만들고, 헌법 경제민주화 조항을 다시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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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창간70년 기획 - 공화국을 묻다, 김상조
“경제민주화 조항을 다시 쓰자”
2016년 12월 07일
김형규 기자
"민주공화국 선언한 헌법 1조
오늘의 정치·경제 현실에 맞게 재해석해야"
김상조 한성대 교수 /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김상조 한성대 교수 /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한국의 대표적인 진보 성향 경제학자다. 시민단체 경제개혁연대를 이끌며 투명한 시장경제질서 확립과 기업지배구조 개선 등 문제에 천착해왔다. 지난 7월20일 서울 성북구 한성대 연구실에서 김 교수를 만났다. 김 교수는 한국사회가 잃어버린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의 가치를 경제적 관점에서 분석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선언한 헌법 1조의 의미를 오늘의 정치·경제 현실에 맞게 재해석해야 한다는 주장도 했다. 그는 진영논리에 포획되지 않은 새로운 시각으로 공동체의 미래를 위한 교집합을 찾아가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주권재민’ 원칙을 선언한 헌법 1조의 현실성을 자조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 맞다고 생각하십니까.
한국 경제, ‘87년 체제’의 질곡에 빠져있다
“민주공화국이란 건 분명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목표지만 현실은 굉장히 거리가 멀죠. 민주적으로 정치적·사회적·경제적 의사 결정이 이뤄지지 않고 있고, 또 공동체의 가치를 지향하려는 노력도 없고요. 그런 의미에서 여전히 민주공화국은 우리 사회에서 지향해야 할 목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민주공화국의 함의가 뭐냐, 그걸 어떻게 달성할거냐, 이 문제는 고민이 더 많이 필요할 거 같습니다. 우리가 1987년 헌법을 만들 때의 사회적 맥락하고 30년이 지난 지금 한 세대의 변화를 생각한다면 민주공화국의 내용도 많이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가 한국사회가 경제적으로도 ‘87년 체제’의 질곡에 빠져있다고 표현한 것은 바로 그런 의미였습니다.”
― 말씀하신 ‘87년 체제’의 문제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20세기의 포디즘, 사민주의,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4차 혁명이 진행된 현재체제와 맞지 않아
“정치는 일단 논외로 하고 경제만 얘기하겠습니다. 왜 제가 87년 체제의 질곡이라 표현하냐면, 1980년대 그리고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바람직한 경제질서의 상을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이른바 포디즘 체제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현실 사회주의가 몰락했으니까 결국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어떤 대안을 포디즘 내지는 사민주의로 생각하는 겁니다. 그런데 사민주의라는 건 2차대전 이후 일국 체제 내에서의 계급타협의 모델입니다. 지금은 세계화가 상당히 진전됐고 ICT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는 상황입니다. 이런 환경에서 일국적 계급타협 모델이 과연 얼마나 유효할까요. 심각한 고민을 해야될 때입니다. 신자유주의가 답이 아니라는 건 대부분 공감합니다. 그렇다고 1980년대의 신자유주의가 아니라고 해서 다시 시계를 거꾸로 돌려 1960년대의 포디즘으로 돌아갈거냐, 그것도 답은 아니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사적 전환 속에서 또 G2 체제의 치킨게임 구도 하에서 경제적·사회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생존을 유지하고 평화로운 공존과 번영을 추구할 것인가. 그 목표와 접근법에 대해 우리는 지금 아는 게 별로 없습니다. 분명히 미래는 과거와 같지 않을 테니까요. 정답을 알지 못하는 미래를 향해서 우리가 나아가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에너지를 분열시키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뭐가 정답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 에너지를 모을 수 있는 그런 메커니즘이 과연 무엇일까. 이것을 사회구성원들이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행동하게 만드는, 그런 모델을 지금 국면에서 21세기의 민주공화국으로 생각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
― 민주공화국의 내용이 시대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는 뜻인가요.
'민주 대 반민주'
이분법적 구도가 사라진 현재
“1987년 헌법을 만들 땐 반민주라고 하는 너무나 분명한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리로 회귀하려는 세력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어쨌든 당시엔 반민주에 대한 안티 테제로서 민주공화국이란 게 자명하게 우리에게 다가오는 시절이었습니다. 반면 지금은 우리가 누구를 상대로 해서 주장을 하고 운동을 하고 그 결과 무엇을 건설해야 하는가 하는 목표가 30년 전에 비해 매우 애매해진 것이 아닌가 합니다.
경제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장하성 교수 이래로 경제민주화위원회, 경제개혁연대에 이르기까지 저희가 활동한 지 이제 딱 20년이 됩니다. 그 20년 전, 10년 전만 해도 경제민주화 내지는 재벌개혁, 경제개혁의 의미가 굉장히 분명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경제민주화가 도대체 뭐지, 나 자신부터 그런 의문이 듭니다. 경제민주화의 내용과 방법 자체가 결코 자명하지 않은 그런 시대에 들어온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건 한편으론 한국 사회의 변화이기도 하지만 2008년 위기 이후 세계사적 전환기 속에서 우리가 과거에 당연시하던 걸 모두가 다 의심해야 하는 쪽으로 변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자명하지 않은 목표와 수단을 놓고 다수의 사회 구성원들의 의견을 모아가는, 그런 메커니즘으로서 우리가 민주 또는 공화국이란 것을 생각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이제는 민주 대 반민주의 이분법적 구도가 아닙니다. 적이 분명한 상황도 아닙니다. 우리가 처한 환경이 정확히 어떤 것이고, 우리가 뭘 어떻게 추구할 것인가에 대해 집합적 에너지를 모으는 사회적 구도 내지는 메커니즘, 그것을 민주공화국이라고 표현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1987년 6월항쟁 당시 수천명의 시민들이 서울 도심을 점거한 채 독재 타도 구호를 외치고 있다. / 보도사진연감
1987년 6월항쟁 당시 수천명의 시민들이 서울 도심을 점거한 채 독재 타도 구호를 외치고 있다. / 보도사진연감
세계와 한국은 경제 패러다임의 전환과 과도기를 맞이해 급격히 변화하고 있지만, 구성원들에게는 여전히 30년 전 인식이 남아있다
― 개념이 정확히 잡히지는 않습니다.
“아마 1세기 전에 1차대전과 대공황, 2차대전을 차례로 겪었던 당시 사람들이 가졌던 불안감이 지금 우리들의 고민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미래에 뭐가 있을지 모르잖아요. 요즘 강연할 때 이런 표현을 정말 많이 씁니다. 20세기 초가 바로 그런 상황이었거든요. 지금 우리가 보는 중후장대형 산업들의 기초가 만들어지는 시점이었고, 그게 이른바 노자관계의 형성이라고 하는 사회관계의 변화를 만들어냈습니다. 이런 생산력과 생산관계가 모든 나라에서 불균등하게 진행이 됐고 그런 불균형이 결국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대공황으로 이어진 것이거든요.
지금은 국제적 정책공조 체제가 그나마 버티고 있기 때문에 전쟁이나 대공황이라는 형태로 그게 발현되지는 않고 있지만, 정말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엄청난 생산력의 발전이 진행되면서 그게 또 사회관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입니다. 이런 과정에서 계속 누적돼 온 긴장이 2008년 금융위기로 표현됐고, 그 이후 이런 갈등이 조정되는 긴 과도기를 거치고 있습니다. 이러고 난 다음의 세계와 한국의 모습은 결코 과거와 같을 수 없는 거죠. 미래는 그렇게 달라질 것인데 우리 사회의 많은 구성원들은 여전히 30년 전의 인식을 가지고 계속 살아가고 있는 셈입니다.”
― 경제적 측면에서 한국 사회의 민주성과 공화성을 판단해보면 어떨까요.
“민주공화국이라고 하는 정치적 표현을 경제적으로 번역하면, 저는 ‘죄수의 딜레마’ 게임으로 표현을 많이 합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죄수의 딜레마가 가져오는 조건은 딱 두가지입니다. 두 명의 피의자를 분리 취조합니다. 서로 소통하면 둘 다 묵비권을 행사하는 게 최선책이라는 걸 믿을 수 있지만, 분리 취조가 되니 상대방이 자백을 할지 안 할지 알 수가 없는 상황이 됩니다. 즉 소통 부재의 상황이 첫째 조건이고요.
두번째는 사람들이 초등학교 때부부터 착하게 살아라 하는 도덕교육을 받아왔지만 대부분 사람은 그렇게 살지를 않잖아요. 자백이라고 하는 오히려 도덕적이지 않은 선택 했을 때 걔는 풀어주고 묵비권을 행사한 놈은 감방에 들어가는 거잖아요. 우리가 도덕적으로 알고 있는 가치관과 다른 보상체계가 주어진 거에요. 기회주의적 행동에 대해서 페널티를 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보상을 주는 잘못된 유인체계.
그러다 보니까 이 두가지 조건이 만나면 어떤 결과가 나오느냐. 모든 사람들이 현재 상태가 불만족스럽다는 걸 다 알면서도 아무도 거기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나쁜 평형’(bad equilibrium) 상태가 되는 겁니다. 여기서 벗어나는 순간 나 혼자 손해니까요.
소통의 부재와
기회주의자가 보상받는 체계,
모두가 차악을 선택하는
나쁜 평형(bad equilibrium) 의 사회
지금 한국 사회에서 민주공화국이 붕괴됐다고 하는 의미를 경제적으론 이렇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분명히 현재가 불만족스럽고 그리고 앞으로 더 나빠질 거라는 걸 모든 경제 주체들이 다 알고 있거든요. 그런데 이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모든 주체가 한꺼번에 움직여야 합니다. 너도나도 같이 움직여야 되는데, 모든 주체들이 서로 소통하고 올바른 보상체계 속에서 움직일 수 있도록 제대로 잡아줄 수 있는 그런 메커니즘이 없는 겁니다. 그러다보니 점점 퇴보하고 악화(degenerate)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는 게 현재의 모습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현재 상태가 분명히 나쁜 평형 상태라는 걸 알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공생을 위한 목표를 설정하고 그걸 위해 모두가 소통하고, 그 과정에서 최선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차선책을 찾아서 합의를 만들고, 거기서 벗어나는 사람한테는 페널티를 주고 거기에 헌신하는 사람한테는 이익을 주는, 이런 식의 사회적 메커니즘을 만들어내는 게 지금 단계에서 민주공화국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지금은 그게 전혀 안되는 거죠. 보수와 진보, 노와 사, 경향신문과 조선일보, 전경련과 참여연대… 대립하는 집단들이 전부 자기의 현재 위치를 고수하는 전략으로만 가고 있습니다. 결국 이런 민주공화국의 붕괴, 죄수의 딜레마 함정이 가져오는 결과는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지금 보고있는 것처럼 경제적으로는 불평등의 심화, 그리고 사회 공동체에 대한 불신 이런 것으로 귀결되는 겁니다. 우리 모두가 다 문제를 느끼면서도 이런 결과를 막지 못합니다. 이건 정치적으로는 물론 경제적으로도 우리 경제의 다이내믹스를 상실시키고 있죠.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경제 문제에 정답이 있을까요. 개인적으로는 저마다 생각하는 정답이 있을지 모르지만 사회적으로 보면 정답은 가능한 많은 구성원들이 이 시스템에 헌신하겠다고 하는 게 그게 정답입니다. 그런데 우린 그게 없습니다.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지점이 과연 어디일까요. 내가 헌신해야 될 이익이 있냐, 거기에 대해 모두가 다 다르게 생각을 하는 겁니다. 그게 결국 민주공화국의 붕괴입니다. 결과적으로 경제 상황은 더 나빠지고 불확실성은 심해지고, 저성장은 계속되고 불평등은 심화되고… 그래서 저는 불평등이라는 것이 정치적으로는 민주공화국의 붕괴, 경제적으로는 죄수의 딜레마로 인한 다이내믹스의 상실, 이런 것들이 가져온 가져온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 민주공화국의 붕괴를 상징적으로 드러낸 최근의 사건을 하나만 꼽는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너의 잘못이 아냐"
19살 비정규직소년의 죽음은 우리사회의 기형적인 경제구조의 상징
“가장 상징적인 사건은 구의역 사고라고 생각합니다. 19살 김군의 죽음.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아이한테 그런 일자리밖에 제공하지 못했다는 우리 사회의 책임을 무겁게 느낍니다. 특히 그 사건에서 제 가슴에 남은 게 포스트잇에 ‘너의 잘못이 아냐’라고 적었잖아요. 영화 <굿 윌 헌팅>을 보면 천재소년이 비뚤게 나갈 때 주인공 로빈 윌리엄스가 7~8번을 반복해서 ‘너의 잘못이 아냐’(It‘s not your fault)라고 합니다. 그 두 장면이 겹치는거죠.
19살 비정규직 소년의 죽음과 그에 대한 사회의 반응. 너의 잘못이 아니고 사회의 구조적 문제라는 걸 우리가 다 느끼고 있는 겁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문제를 정확하게 다 알고 있으면서도 그걸 해결할 어떤 대안도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게 바로 경제적 측면에서 민주공화국의 붕괴를 보여주는 가장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준 게 아닌가.. 밥 먹을 시간도 없을 정도로 열악한 근로환경에 19살짜리 애를 몰아넣으면서도 또 모든 사람들이 그건 걔의 잘못이 아니란 걸 알면서도 여기를 탈출할 수 없는 그런 상황…”
지난 5월 31일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현장에서 한 시민이 숨진 김군(19)의 명복을 빌고 있다. /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지난 5월 31일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현장에서 한 시민이 숨진 김군(19)의 명복을 빌고 있다. /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민주주의와 공화주의가 형해화 됐다는 평가에 동의하십니까.
“저는 어찌됐든 민주정부 10년을 거치고 보수정권으로 옮겨갔을 때 이렇게 10년 단위로 정권이 교체되면 양 진영의 간극을 좀 좁혀가지 않겠느냐 기대를 했습니다. 10년 후 또 정권이 바뀔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면, 아무래도 극단적인 쪽보다는 그래도 내가 야당이 됐을 때의 상황을 생각할 거라고 솔직히 이런 기대를 했습니다.
근데 그게 아니더군요.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을 보면 결국 정권이 다시 교체돼서 입장이 바뀔 수 있다는 그런 장기적인 합리적 전망을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자기 임기 내에 자기가 원하는 것만 하려고 하는 지극히 단기적이고 근시안적인 전략 쪽으로 갔습니다. 그러니까 상대가 저렇게 움직이면 나는 반대 방향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진보진영 역시 그런 정권의 퇴행적 움직임에 똑같은 정도의 퇴행적인 전략으로 대응하다 보니까 이런 상호작용 속에서 그나마 최초의 정권 교체를 통해 민주정부 10년 동안 이룬 성과마저도 지극히 후퇴하는 방향으로 가게 됐다고 봅니다. 그래서 보수정부 10년은 우리 사회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퇴화의 10년이었고, 그게 보수만 망한 게 아니라 여기에 대응하다 보니 진보도 함께 망해가는 총체적인 실패를 경험했다고 생각합니다.
보수정권 10년의 '낙수모델' 집착은 한국사회 후퇴의 중요한 요인
경제 문제에서 보면 낙수효과 모델에 대한 어이없는 집착이라고 할까 그런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007년 대통령 선거 치를 때 이명박 후보의 정책자료집 서문에 딱 이 표현이 나옵니다. ‘대기업의 선도적 성장의 과실이 중소기업과 서민으로까지 흘러넘치게 한다’ 이 표현을 제가 정확하게 외우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정확히 이 기조로 5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세계는 2008년 위기로 이미 변하기 시작했죠.
이명박 정부는 30년 전의 낙수효과 모델을 공공연하게 내세웠고, 박근혜 정부는 대선 캠페인 하는 동안은 정말 어이없게도 경제 민주화와 복지국가를 공약하더니 6개월 후에는 딱 접고 낙수효과 모델로 회귀해버렸죠. 보수정권 10년이 결국 스스로를 퇴화시키고 한국사회 전체를 후퇴시킨 가장 중요한 요인은 박정희식 낙수효과 모델에 대한 집착을 못 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 보수정권 10년과 민주정권 10년의 경제정책 기조가 완전히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요. 김대중 정부의 금융시장 개방, 노무현 정부의 한·미 FTA에 대한 비판이 여전한데요.
“저는 노무현 정부의 FTA 정책을 놓고 ‘신자유주의로 투항했다’ 또는 ‘세계화에 무기력하게 굴복했다’ 이렇게 평가하는 진보진영의 주장에는 별로 동의하지 않습니다. 예컨대 문재인 후보가 2012년에 이른바 소득주도 성장론의 맹아를 보여줬습니다. 지금 중국 시진핑 주석이 주창하는 것도 바로 소득주도 성장론입니다. 중국도 30년 동안 투자와 수출을 통해서 두자릿수 성장을 이어오다가 그것의 결과로서 그 과거의 모델이 더이상 지속가능성이 없다는 걸 알게 된 거잖아요. 그래서 수출과 투자가 아니라 내수와 소비를 통해서 6~7%의 중성장 전략으로 변화한다, 이게 시진핑의 차이나드림의 핵심 내용입니다. 그걸 위해서 구조개혁을 해야되는 것이고요.
그런데 가만 보면 G2의 일각을 형성하고 있는 중국도, 그리고 내부에서 아무런 도전도 없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하는 중국 공산당도 지금의 세계경제 환경 하에서 자기네들이 구상하는 것을 안정적으로 끌고가지 못하는 게 현실입니다. 중국도 굉장히 흔들리고 있잖아요. 작년 6월 상하이에서 주가가 폭락하고 올해 들어와선 위안화까지 공격을 받으면서 중국 정부가 그 구조개혁을 후퇴시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실제로 3~4월부터는 인민은행이 거의 양적완화로 표현할 만큼 돈을 많이 뿌렸습니다. 당연히 버블과 부실을 더 키우고 있는 것이죠. 한마디로 구조개혁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G2의 한 나라도, 도전 세력이 없는 중국 공산당도 소득주도 성장론이라는 걸 안정되게 끌고가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실증해주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나라가 그렇게 하기는 더 어렵죠. 우리는 경제 환경이 거의 외생변수로 주어지는 나라입니다. 대통령 임기는 5년밖에 안되고 그나마 52 대 48의 선거 결과로 뽑히는 나라입니다. 이런 나라에서 과거의 수출 중심적 경제구조를 짧은 기간 내에 내수 위주의 경제구조로 바꾼다든지, 세계화 환경으로부터 떨어져 국민경제에 상대적 자율성을 주는 방향으로 끌고간다든지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죠. 가능하다 해도 굉장히 오랜 기간에 걸쳐 서서히 이뤄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노무현 정부의 FTA 전략은 그 발상 자체가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회적 대화 노력이 부족했다는 차원에서 절차의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목표 자체가 잘못 설정됐다거나 노무현 정부가 신자유주의에 투항했다고 비난하는 건 그야말로 30년 전의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한 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 지금 민주공화국 논의가 필요하다고 보시는지요.
"복귀를 위한 논의가 아닌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기 위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정말로 필요합니다. 지금 민주공화국을 다시 논의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잃어버린, 혹은 지금 보수정권이 퇴화시켜버린 1987년의 뭔가를 되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때와는 너무나 달라진 민주공화국의 내용과 형식을 새로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쉽게 표현하면 30년 전엔 적이 분명했습니다. 한국 경제는 빠르게 성장하고 기업들은 돈을 벌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답이 분명합니다. 경제 문제에 대한 우려도 크지 않습니다. 내가 어떤 요구를 해도 그것 때문에 기업이 망할 거라는 생각은 안 합니다. 노조나 시민단체들은 정당한 요구를 반민주 정권을 향해 쏟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때는 진보진영의 운동이 별다른 고민이 필요없다고 할까요. 물론 힘들기는 힘들었지만 적어도 그런 고민은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반면 지금은 누가 무슨 얘기를 해도 감방 갈 걱정은 없지만, 그때보다 훨씬 치열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뭔가를 되찾는 것이 아니라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할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욱 민주공화국에 대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이 논의의 핵심은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1987년 헌법을 만들 때와 완전히 달라진 지금 상황에서 새로운 논의를 전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브렉시트가 현실화된 지난 6월24일 서울 중구 KEB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주시하고 있다. /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브렉시트가 현실화된 지난 6월24일 서울 중구 KEB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주시하고 있다. /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 한국사회에 필요한 공화국의 핵심 요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불황과 불확실성 속 여유가 실종된 세계
공존을 위해선 인내와 관용의 '똘레랑스(torelance)'를 떠올려야
“어려운 질문입니다. 요즘 브렉시트나 ‘이슬람국가’(IS) 테러, 미국의 경찰 저격 사건 등을 보면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새롭게 만들어가야 할 민주공화국의 핵심 가치는, 아마 이건 공화의 가치에 더 가까울 거 같은데요. 똘레랑스라고 생각합니다. 공존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인내해야 하는가. 지금 민주공화국이 실종됐다는 것의 가장 중요한 징후 중 하나가 일종의 분노조절 장애 상태라고 봅니다. 여기에 관해선 전 세계가 마찬가집니다. 물론 경제 문제를 포함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들은 많지요. 그런 분노조절 장애 상태에서 트럼프나 샌더스 같은 양 극단의 주장이 나오는데, 그것으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코스모폴리탄의 입장에서 똘레랑스를 견지해야 한다고 보고 저는 이게 진보의 핵심이라 생각합니다. 진보는 원래 세계주의자여야 하잖아요. 세계시민. 나와 다른 사람을 인내하고 공존해야 하는데 점점 세계가 이런 똘레랑스를 상실해가고 있습니다. 1960년대 포드주의 전성기 때나 우리나라 1970~80년대 고도성장기처럼 일국적 타협모델이 성공할 수 있으려면 조건이 필요합니다. 그땐 전 세계가 호황이고 경제는 성장하고 기업은 돈을 버는 상황이니까 타협을 위한 물질적 여유가 존재했지요. 지금은 전 세계가 그 여유를 다 잃어버린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보수든 진보든 최대강령을 내세우는 식의 전략은 자멸과 공멸의 길을 초래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불확실성의 과도기, 장기적인 과도기에선 최소강령 쪽에 에너지를 모으고 다수가 공감하고 헌신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야 합니다. 저는 그게 21세기 전반기의 민주공화국의 내용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개인의 삶에서도 민주공화국의 부재나 위기를 느끼신 적이 있습니까.
“많지요. 저는 평소 토론회에 자주 다닙니다. 최근에도 우리은행 민영화, 국책은행 자본확충 펀드, 조선·해운업 구조조정 등 여러 이슈와 관련된 토론회에 나갔는데요. 거기 나오는 분들은 사실 서로 빤히 아는 사람들입니다. 10~20년 동안 반대편에 앉아서 토론하던 사람들이고 또 대부분은 학교 선후배거나 여러가지로 인연이 얽힙니다. 사적으로 얘기해보면 의견도 거의 비슷합니다. 한국경제 현실 진단, 구조조정의 원칙, 그를 위한 정부의 정책 방향 등 거의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많은 경우 공감대를 형성하는데요. 특히 요즘은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경제학자들이 모이면 다 똑같은 얘기를 합니다. ‘한국 경제 이미 망했다’ 이건 정말 다 똑같습니다.
그런 문제의식을 서로 공유하는데, 신기한 건 딱 토론회장에 들어가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서로 다양성을 존중하면서도 그 안에서 공통분모를 찾는 메커니즘이 붕괴되어서 그런지 공개 토론회에 가면 항상 자기가 속한 진영의 공식 의견을 대변하는 대변자로 표변해버립니다. 너무 자주 그런 모습을 보다 보니 저분들은 도대체 왜 저럴까 가끔은 의문이 듭니다.
결국 우리가 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그 속에서도 뭔가 소통을 통해 최선은 아니라도 합의된 결론을 만들어내는, 그런 기제 자체가 붕괴된 사회에서 살았고 그 경험이 너무나 오래 축적되다 보니 모든 사람이 그냥 진영 논리의 대변자로 안전하게 살아가는 데 만족하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 개헌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떤 형태의 개헌이냐가 중요할 텐데요. 사실 권력구조에 대해선 경제학자로서 별로 의견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개헌 논의는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일단 변화를 시작하면 수정의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이 상태에 그대로 머무르게 되면 지금의 문제를 고칠 기회도 없으니까요. 어떤 의미에서든 5년 단임제의 권력구조는 최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30년 전에는 정답이었을지라도 지금은 최악의 구조를 만들고 있다고 봅니다. 내각제든 이원집정부제든 4년 중임제든 그 어떤 방향이라도 현재에서 탈출하는 논의를 시작해야지만 지금의 문제를 고칠 기회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개헌 논의는 반드시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 헌법 119조 경제민주화 조항도 개비해야 된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헌법 119조 경제민주화 조항
"성과 분배의 틀에서 벗어나,
불평등 해소를 위한 정책을 담는 그릇으로 변화해야 합니다"
“저도 119조 2항의 경제민주화 조항에 손을 댈 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1987년 헌법의 119조 2항은 그때 우리가 거둔 반민주 투쟁의 정치적 성과를 경제적으로 확산한다는 단순한 문제의식 하에서 만들어졌습니다. 그 당시 경제 상황은 여전히 한국 사회가 고도성장을 할 때입니다. 그 성장의 과실이 일부에게만 귀속되어선 안 된다는 문제의식에서 만들어진 게 경제민주화 조항인데요.
지금의 변화된 국내외 경제환경 하에서 경제민주화의 의미와 수단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반영된 내용으로 119조 2항도 변화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가 공감하는 경제민주화의 목표와 수단에 대해 다시 한 번 논의하는 기회를 만든다는 점에서도 수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4년 전에는 경제민주화라고 하다가 지금은 불평등 해소라고 표현이 조금 바뀌었는데요. 지금 같은 뉴노멀 시대에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 그런 고민을 담는 그릇으로 119조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이던 2012년 11월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에서 경제민주화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이던 2012년 11월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에서 경제민주화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 노동자 경영 참여를 경제민주화의 대안으로 강조하는 목소리도 높습니다.
“경제개혁연대가 20년 동안 할동하면서 사외이사 제도 개선을 위해 엄청나게 노력했지만 아마 가장 실패한 것이 사외이사 제도였던 것 같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결국 성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보면 노동자 경영 참여가 하나의 대안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단순히 지배구조 차원을 넘어 산업 민주주의라는 측면에서도 노동자 경영 참여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원칙적으로 생각합니다. 다만 지금 우리가 그걸 할 수 있냐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노동자 경영 참여는, 특히 독일식 노사 공동 결정제도는 포디즘의 전성시대에 일국적 계급타협 모델입니다. 그게 일반화되기는 어려운 환경에 이미 들어섰습니다. 독일에서 그게 가능한 건 이원적 이사회 제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독일의 경우 경영이사회는 전문가인 집행 임원들이 담당하지만 그걸 컨트롤하고 모니터링하는 역할을 감독이사회가 합니다. 그 감독이사회에 노동자 대표가 3분의 1 내지 2분의 1이 들어가는 겁니다.
우리나라는 지금 일원적 이사회 제도를 택하고 있습니다. 독일에서 노동자 대표가 감독이사회에 3분의 1 들어가는 것과 우리가 일원적 이사회에 한명 들어가는 것은 굉장히 의미가 다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노동자 경영 참여가 꼭 이사회 참가로 이뤄져야 하는가에 대해 의문의 여지가 있습니다. 정책 역량의 문제도 있고, 산별노조가 형해화된 상황에서 노동자 경영 참여를 꼭 이사회 참여로 한정해야 하는가도 의문입니다. 오히려 많은 코스트를 치를 수도 있습니다.
독일식 노사 공동 결정제도보단
노사협의회 강화를 통한 노동자 경영참여 확대가 현실적
지금 중요한 건 노동자 외부의 연대, 그리고 비정규직 처우 개선이라고 본다면 이사회 참여보다는 유럽식의 직장평의회나 노사협의회를 강화해 노사 협력과 노동자 경영 참여를 모색하는 게 더 현실적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노동자 대표가 일원적 이사회에 들어가 다른 이사들처럼 똑같이 집행에 대한 책임을 지기엔 아직도 미성숙한 부분이 있고 노조 입장에서도 위험한 측면이 있다고 봅니다. 임단협 효력과 노사협의회 영향력을 산별 수준으로 높이는 쪽으로 방향을 트는 게 맞지 않나 생각합니다.”
― 기업 임원의 보수를 제한하자고 한 ‘살찐 고양이법’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치인으로선 할 수 있는 얘기지만 경제학자로선 찬성하고 싶지 않습니다. 왜냐면 한 조직, 한 기업 내에서 최저와 최고 임금의 격차를 어느 정도로 해야 되는가 하는 것은 아무도 정답을 모르는 문제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 사회에서 문제점 중 하나가 아직도 메리토크라시가 정착되지 않은 것이라고 봅니다. 능력주의라는 건데요. 능력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는다는 건 경제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성과에 걸맞는 보상, 잘 조율된 인센티브 시스템이 정말 중요한데요. 우리 사회는 CEO의 보수가 많아서 문제라기보다는 CEO의 성과를 제대로 측정하지 못하고 그 성과를 보수로 연동시키는 데 실패한 것이 더 문제라고 봅니다. 경제개혁연대가 10년 가까이 주장해서 자본시장법에 개별 임원 연봉이 5억원이 넘으면 공개하도록 바꿔놨는데, 이것도 누가 얼마나 돈을 많이 받는지 알고 싶어서 만든 게 아닙니다. 결국 성과 측정과 보상의 연계성을 확보하기 위한 차원에서 한 겁니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는 특정 소수의 보수가 너무 많아서 불평등이 생겼다 하긴 좀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제가 관련 보고서도 썼지만 연말정산 데이터만 가지고 보면 연봉 1억원 이상 받는 사람이 2014년 근로소득 기준으로는 49만명이고, 전체 임금근로자의 딱 3% 수준입니다. 거기서 10억원 이상 받는 사람 숫자를 따지면 몇천명밖에 안 됩니다. 그 사람들 때문에 한국 사회에 불평등이 생겼다고 하긴 어렵다는 얘기입니다.”
경향신문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 기획 특별취재팀은 지난 7~9월 지식인 40여명과 기획 자문을 겸한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도움 주신 분들의 양해를 얻어 전문을 싣습니다. 게재 전 보완 과정을 거쳤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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