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업의_본질을_건_대혈투_(ft.엄마형 매니저와 Intellectual Property의 싸움)
0.
기자회견장에 자주 가본 사람은 대충 알 수 있는데, 기자 회견 자체가 한편의 잘 기획된 "쑈"에 가깝다는 사실 말이다. 아주 잘 정리된 보도자료는 일종의 "기본 시나리오"이고, 발표자는 그 틀 안에서 최대한 정중하게 행동하는 게 프로토콜이다. 보통 "홍보전문가"라고 하면 이 과정을 매끄럽게 정리하고 진행하는 게 바로 전문성의 바로미터가 된다.
대기업에 가까워질수록 그 쑈의 강도가 쎄지고 정교해진다. 보도자료의 "진실성"이나 "진정성"은 사실 논쟁거리가 아니다. 어차피 기자도 그 각본의 일개 참여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만약에 기자들이 주도해 "난상 토론"으로 돌입한다면, 아마도 홍보기획자는 해고될 가능성이 크다. 각본 없는 참사로 인식될 것이고, CEO는 대노할 것이 분명하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홍보담당자는, 사전에 기자들을 잘 관리하고, 행사 내용을 잘 숙지시키고, "선"을 넘지 않는 프로토콜을 어느 정도는 맞추기 마련이다. 이를 위해 오랜기간 서로 밥도 먹고, 골프도 치고, 술도 마시는 법이다. 제발 행사장의 "쇼"를 망치지 말라는 뜻이다.
1. 엔터기업의 흥망
한국 엔터기업의 흥망사는 100년 전 단성사나 명보극장의 신영균 선생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겠지만, 1998년 코스닥 상장을 시도한 SM엔터로 가는 게 현실적 접근이다. 이맘때 대략 100억대 시총을 기록한 케이팝 엔터기업들의 주가는, 25년이 지난 현재 SM, JYP, YG 모두 조 단위를 훌쩍 넘어섰고, 하이브는 10조원을 향해 순항중이다. 100배 이상의 초대박을 이뤘다는 얘기다. 덕분에 대개 엔터 기업 대주주들은 천억대 자산가가 되었다.
시대의 변화를 감안하면 엔터기업 대주주가 재벌이 된 게 이상한 건 아니다. 다만, 재벌화되면서 엔터기업의 플레이어의 위상이 너무도 격상되어버려, 대중과 분리된 것이 문제라면 문제다. 원래 이 업계가 이 정도로 어렵진 않았다. 기자들과 소주도 마시고 평론도 나누며 멱살을 잡고 싸울 정도로 투박한 환경이었는데, 당연히 자본이 거대해지니, 회사의 품격과 위계의 층위가 두터워졌고, CEO와 창업자는 손닿을 수 없는 천상계에 올라 버렸다.
예를들어 이수만, 박진영, 양현석, 방시혁 "회장(영감)님"이 된 것이고, 일반 기업에서 전문경영인이 초빙되기 시작했고, 동시에 웬만한 구력과 직급 없는 외부인은 이들 C레벨을 알현하기 쉽지 않게 되어버린 것이다. 화려한 경영계획과 문어발식 확장도 이어졌다. 엔터기업이 파워가 쎄진 증표라고 보면 알기 쉽다.
2. PD에서 자본?
2014년까지만 해도 "엔터주" 투자를 추천하는 애널리스트는 극소수였다. 지금으로 따지면 가상화폐 투자와 흡사했다. 투자 근거로 삼을만한 숫자가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애당초 코스닥 기준도 못 맞춰 우회상장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고, 연습생 관리는 간이 영수증으로 했으며, 방송은 공짜로 나가야 했고, "초대 행사" 이외에 수입을 올릴 수 있는 검증된 방법이 애매했다. 연예인 월급 "정산" 조차 제대로 못하는 허술한 기획사들이 시장의 80%가 넘어가던 시절의 얘기다.
이러한 엔터산업 암흑기는 SM이 꾸준하게 팬덤 중심의 콘서트 시장을 끌어주고, YG의 빅뱅이 빵 떠서 파이를 키우고, 싸이가 "강남스타일"로 유튜브 황금 시장을 개척하고, JYP가 트와이스로 "일본"이라는 전통적 황금시장을 재개척함으로서 극복 된거다. 그 결과 5000원이던 jyp 주가가 10년 만에 10만원이라는 20배 초대박 성장의 신기원을 이룩하게 된 것이고.
자연스럽게 "작곡가와 PD" 중심의 K-pop 씬의 무게중심은 "자본"으로 이동을 하는데, 이 과정에서 스타PD의 역할이 살짝 줄어드는 변화가 생긴다. 예를들어 "소녀시대"는 이수만, "빅뱅"은 양현석, "트와이스"는 박진영, BTS는 방시혁 색깔이 분명했는데, 점차 기업화되고 조직화되고 분업화된 "팀"이 새로운 팀을 생산하고 관리하게 된 것이다.
3. 뉴진스는 "딸"인가?
케이팝 초기 아이돌 업의 본질을 이수만 선생은 "로드매니저"로 본 것 같다. SM은 "로드매니저"에게 상당한 권한을 부여했다. 실제로 스타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게 바로 이들 매니저다. 이들이 팬덤과 기자를 상대하고, 가수를 무대로 내보내야 하는 최전선에 선 "일꾼"인 것이다. 가수의 안전과 멘탈도 챙긴다. 사실상 이수만 자체가 "매니저"를 자처한 인물이다. 현진영에서부터 동방신기에 이르기까기, 그가 손수 하나하나 어루만져가며 키운 것이다.
JYP나 YG의 경우는 아이돌 산업의 본질을 "브랜드"로 인식한 것 같다. 이수만과의 세대 차이자 분명한 발전이었다. JYP나 YG는 자사의 색깔을 무대매너와 스타성의 특징으로 분명하게 정착시켰다. 딱 봐도 JYP나 YG 스타들은 타사와 차별성을 지녔다. 노래도 달랐고, 의상도 달랐다. 자연스럽게 회사가 성장하고, 인재가 모여들었다.
방시혁 대표는 여기서 한발 더 나가서, 아이돌산업의 본질을 "IP" 사업으로 인식한 첫 인물이 된다. 여튼, 민희진 대표는 이와는 정반대로, 전통적 관점에서 아이돌 산업을 "매니저"로 바라보는 인물이다. 이수만 옹에게 배워서 그렇다. 뉴진스 멤버 다섯명을 놓고 민 대표가 "내 딸과 같다"라는 말은 그래서, 이번 사건 해석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이돌의 성공 방정식은 "정성스러운 스킨십"과 "철저한 관리"라는 말을 뜻하기 때문이다. 법적인 보호와 우위를 뜻하는 IP, 인텔렉추얼 프로퍼티와 차원이 다른 개념이다.
4. 엄마의 심정? 쌍욕?
민희진 대표의 기자회견장에서의 "쌍스런 말"이 화제다. 아마도 4월 25일 기자회견은, 대한민국 미디어사, 엔터사 역사에 남을 것이다. 이 정도로 기획이 전혀 안된 듯, 자연스러우면서, 전투력 높은 치열한 기자회견장을, 필자도 일찍이 경험한 적 없다. 더 뚜렷한 특징은, 기자들이 아무런 역할이 없었다는 얘기다. 사건 내용도 몰랐고. 때문에 "기자회견"이 아니라 "대중회견"이라고 해도 좋겠다.
민 대표가 2시간이 넘는 대중과의 "승부 show down"에서 승기를 잡을 수 있었던 배경엔, 그가 순전히 "사랑하는 아이를 잃기 직전의 엄마의 표정"으로 임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것은 전통적인 기업 대표의 프리젠테이션이 아닌, 엄마의 한 맺힌 절규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것이 정확하게 이를 시청하는, 열혈 케이팝 팬의 심장에 다가선 것이다. 전례가 없던 이벤트였고, 처절한 승부였다. 때문에 일부는 그 쌍욕을 수긍한 것이다. 그럴 수 있다고.
게다가, 이게 가능한 배경엔 검열 없는 "유튜브 생중계"가 있었다. 요즘 우리나라 방송 6사는, 낮 시간 현장은 모두 유튜브로 중계할 정도가 되었다. 만약 10년 전 YTN이나 종편 생중계였다면, 당연하게도 이를 지켜보는 부국장은 "방송중단"을 요청했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도 자연스럽게 모든 방송이 가감 없이 민희진의 목소리를 전달했다. 사전에 기획했는지 여부는 중요치 않다. 파격의 연속이자, 파격의 미학이 있었다.
5. 대기업 하이브?
당연히 기자회견이 열리는 3시 전까지 해당 이벤트에 별다른 기대를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멍 때리던 필자의 전투력을 상승시킨 보도자료가 튀어나왔으니, 바로 "무속인 도움을 받았다"라는 하이브 발 "주술경영" 기사였다. 아마도 기자출신 홍보실 직원이 기획한 것 같은, 아주 수준 낮은 마타도어 보도자료였다. 당연히 2016년 최순실 사건을 흉내낸 기획일텐데, 자충수에 가까운 악수였다.
원래 공무원을 감시하는 "감사원"은 보도자료를 내지 않는다. 사기업 삼성과 SK도 감사실과 기자실은 전혀 내통을 허락치 않는다. 당연한 일이다. 대기업 감사실의 행동은 "팩트" 하나하나가 자사에 큰 손해를 끼치기 때문이다. 사소한 단서라도 기자에게 새어나갈까봐 철저히 봉쇄한다. 그런데, 하이브는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는지, 민희진 감사 소식을 세상에 선뜻 공개했다. 숨은 의도가 있다는 얘기다.
듣도보도 못한 사건 구도인 것이다. 기자들이 "촉"이 있다면, 하이브의 의중을 먼저 체크했어야 했다. 하지만 대기업의 장점은 "보도자료"라는 이름 하나가 기자단의 무한 신뢰를 살 수 있다는 점이다. 대기업의 보도자료를 부정하는 출입기자는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 결과적으로 이러저러한 복합적 원인에 떠밀려 "거대기업" vs. "아이를 잃은 엄마" 구도가 탄생해 버렸다.
PS.
0. 민희진의 "기행"이 뉴진스에 부정적 영향을 줄 거라고 생각치 않음. 손웅정과 손흥민의 관계를 생각하면 분명해짐. 아무런 탈 없을 것.
1. 사기업 내부의 경영권 갈등을 국민들이 알 필요는 전혀 없음. 하지만 누군가 먼저 "언론"을 활용했다면, 먼저 활용한 쪽에 책임이 더 클 수 있음. "언론플레이 한 놈이 범인이다"라는 격언을 떠올리면 간단함.
2. 민희진의 "쌍스러운 말"은 1) 유튜브 생중계 시대에, 2) 로드매니저를 자처한 엄마형 CEO의 원맨쇼와 3) 언론을 대거 동원한 대기업의 기획성 언론플레이로 인해, 의외로 진실성을 획득한 모양새. 물론 거부감을 갖는 사람이 많지만, 그건 엔터업계의 밑바닥에 관심 없는 분들.
3. 엔터 산업이 점차 "매니저형"에서 "브랜드화"를 거쳐 "IP"를 거쳐 "자산 토큰화"로 변해가는 모양새이긴 하지만, 엄마형 로드매니저식의 전통 수공예 제작 공법은 쉬이 사라질 수 없는 현상이기도. 비트코인과 금의 대결 같은.
4. 필자는 SM 매니저에게 "쌍욕"까지는 아니지만, 엇비슷한 대우를 받은 적이 두어번 있음. 나는 납득했음. 내가 실수가 있어서. 또 sm 매니저는 스타 보호에 진심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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