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30

** 2016 대한민국은 정말로 '친일파의 나라'인가?

대한민국은 정말로 '친일파의 나라'인가?

대한민국은 정말로 '친일파의 나라'인가?

[강양구의 親book] <친일과 망각>

이대희 기자/강양구 기자 | 기사입력 2016.09.21.

그간 <프레시안>과 <시사통>이 공동 진행한 책 팟캐스트 '독서통'이 지난 5일 방송을 마지막으로 끝났습니다. 대신, 앞으로는 '강양구의 친북'이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친북은 앞으로 매주 월요일 <시사통> 코너를 전담할 새 콘텐츠 '먼데이 프레시안'의 책 팟캐스트로, 그간 김종배 <시사통> 대표와 독서통을 공동 진행한 강양구 <프레시안> 기자가 단독 진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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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북은 첫 번째 책으로 <친일과 망각>(김용진·박중석·심인보 지음, 다람 펴냄)을 선정했습니다.

<친일과 망각>은 독립 언론 <뉴스타파>가 지난해 광복 70주년을 맞아 특별 제작한 동명의 다큐멘터리를 정리한 책입니다. <친일과 망각>은 일제 강점기 적극적으로 친일 부역자로 활동한 이들의 후손 1177명을 조사, 이들의 직업과 재산, 학력, 사는 곳 등 전방위적인 정보를 정리한 탐사 보도의 중요한 모범 사례입니다.


우리는 그간 '친일파는 나쁜 사람'이라는 상식을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영향력이 실제로 지금 한국 사회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이들 후손이 실제로 어떤 삶을 살았는지 등 구체적인 정보를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친일과 망각>은 끈질긴 조사와 취재로 오늘날 대한민국을 움직인 이들 가운데 적잖은 친일파의 후손이 어떤 혜택을 입고 우리 사회에서 살아왔는지, 그들이 과거사 문제를 어떤 식으로 바라보는지, 어떻게 한국 정부가 친일파 청산에 실패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지난 19일, 친북은 이 책의 대표 저자 심인보 <뉴스타파> 기자와 함께 과거사 청산이 왜 중요한지, 친일파의 후손이 어떤 혜택을 입으며 살아왔는지에 관해 서울 마포구 서교동 <시사통> 스튜디오에서 이야기했습니다.


▲ 심인보 <뉴스타파> 기자. ⓒ프레시안(최형락)



친일파 후손 명단을 공개해야 하는 이유


강양구 : 그간 <프레시안>과 <시사통>이 공동 진행한 독서통이 강양구의 친북으로 새롭게 단장했습니다. 독서통이 시사 이슈 중심으로 책과 인터뷰이를 선정했다면, 친북은 보다 다양한 주제로 독서 공동체와 소통할 예정입니다. 친북이 처음 고른 책은 제목부터 묵직한 <친일과 망각>입니다.


이 책은 독립 언론 <뉴스타파>가 광복 70주년 특별 기획으로 제작한 동명의 다큐멘터리를 기반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 자리에 이 책의 대표 저자 세 분 가운데 심인보 기자를 모셨습니다. <친일과 망각> 다큐멘터리 제작뿐만 아니라, 최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성매매 보도 등 굵직한 보도를 여럿 하셨죠. 안녕하세요.


심인보 : 안녕하세요.


강양구 : 한국방송(KBS)에서 뉴스타파로 옮기셨어요.


심인보 : 작년(2015년) 2월에 옮겼습니다. 육아 휴직 후 KBS에 복귀해서, 2014년 말에 길환영 사장 퇴진 투쟁을 동료들과 함께 했어요. 이후 3부작 다큐멘터리를 하나 만들고 회사를 그만뒀습니다.


강양구 : 햇수로는 퇴사하신 지 거의 2년 정도 되셨습니다. 사실 KBS는 많은 사람이 부러워하는 직장이잖아요? 2005년 입사할 때 많이 기쁘셨을 텐데, 어떻습니까? 후회 안 되십니까?


심인보 : 후회는 전혀 안 합니다. 기자로서는, <뉴스타파> 기자로서 일하는 게 훨씬 보람 있습니다. 후회가 있다면, 두고 온 사람들에 관한 미안함이죠.


강양구 : <친일과 망각> 다큐멘터리를 못 보신 청취자도 꽤 되실 겁니다. 어떤 의도로 만들어진 작품입니까?


심인보 : 작년이 해방 70년이었습니다. 우리 사회에 친일파에 관한 극단적 인식이 있습니다. '친일파가 해방 이후 우리나라 권력 핵심을 쥐고 다 해 먹는다'는 인식이 있는 반면, 이제 다 지나간 옛날 일이라는 생각을 가진 분도 많습니다.


정확한 실체는 누구도 모르죠. <뉴스타파> 제작진은 바로 이 대목에 집중했습니다. 저희는 친일파의 후손을 찾아서, 그들이 지금은 무엇을 하는지 인구·사회학적으로 분석해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강양구 : 친일파 후손 1177명을 조사하셨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작업을 거쳤습니까? 제가 다큐멘터리도 보고 책도 읽었는데, 시쳇말로 '삽질'이라고 해야 하나요? 매우 어려운 작업을 하셨더라고요.


심인보 : 예. 탐사 보도라는 게 그렇습니다. 최종적으로 나온 결과물을 보면 그럴 듯하지만, 그 과정은 정말 '맨 땅에 헤딩'하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뭐가 나올지 모르고 땅을 파는 거죠.


힘들었던 건 사실입니다. 처음 이 프로젝트를 같이 하자는 제안을 술자리에서 받았는데, 저는 못 하겠다고 했습니다. 해 봤자 유의미한 결과가 안 나올 것 같았거든요.



강양구 : 샘플은 어떻게 뽑으셨습니까?


심인보 : 여러 원 자료가 있습니다. 아주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자료가 남아 있습니다. 당시 진술 조서 등을 참고로 해 후손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노무현 정부 때 친일진상규명위(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와 친일재산조사위(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 두 위원회가 활동했습니다. 당시 위원회가 친일 행위자의 재산을 국고 환수키로 하니까, 많은 후손이 소송을 제기했어요. 소송 자료를 보면, 그들의 신원 정보가 나오죠. 이런 자료도 모았습니다.


강양구 : 땅 돌려달라고 소송을 제기하면서, 신원을 드러냈군요. (웃음) 저는 <뉴스타파>가 이 기획을 한창 취재 중일 때, 얘기를 들었어요. 그런데 조금 걱정되더라고요. 친일파 단죄 얘기가 나올 때마다 자주 제기되는 문제인데, 일종의 연좌제 아니냐는 의견이 있거든요. 이런 반발이 나올까봐 걱정됐습니다.


책을 보니 반민특위 김상덕 위원장의 아들인 김정륙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부회장께서도 연좌제 때문에 큰 고초를 겪으셨더라고요. 김상덕 위원장께서 납북되셨다는 이유로요. 그간 한국 현대사에서 연좌제로 인해 고통 받은 분이 많은데, 아무리 좋은 의도를 지녔다고 한들 친일파 후손에게 연좌제를 들이대는 게 옳으냐는 지적이 나올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심인보 : 저희도 다큐멘터리 제작 때 고민한 부분입니다. 제가 처음 이 프로젝트를 안 한다고 한 이유 가운데 하나도 그 때문이고요.


그런데, 자료를 조사하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우리의 프로그램이 후손을 사법적으로 단죄하자는 게 아닙니다. 그저, 그들이 누구인지를 밝히자는 거였습니다. 그것이 언론으로부터도 보호받아야 할 내밀한 사생활의 영역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오히려 저희의 고민은 후손의 신분을 어느 정도까지 공개할 건가, 이거였어요. 내부적으로 회의를 거쳐 선출직 공직자와 차관급 이상 공무원, 대기업의 오너 일가 정도를 공개했습니다. 실명과 구체적 재산 내역을 공개했죠. 저는 서울대학교 교수 이상의 학계 관계자도 밝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만….


강양구 : 저도 그 대목이 약간 아쉽더라고요. 서울대 교수뿐만 아니라, 흔히 '스카이(SKY)'로 말하는 대학의 영향력 있는 교수라면 이름이 공개되는 것 정도는 감수해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이 들더군요.


심인보 : 저희가 독단적으로 이 문제를 결정하자니 부담이 컸습니다. 많은 전문가를 모시고 자문위원회를 몇 차례 거쳐 공개 범위를 결정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보수적으로 접근한 면이 있습니다.


▲ 우리는 친일파가 남긴 상처를 진지하게 돌아보지 않았다. 퇴원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찍은 것으로 보이는 내각총리대신 이완용(맨 왼쪽)과 친일파 고관들. 해쓱해진 이완용 옆으로 임선준(任善準), 이병무(李秉武), 송병준(宋秉畯)이 나란히 앉아 있다. ⓒ프레시안 자료 사진


친일 비판, 누구도 고민하지 않았다?


강양구 : 네. 그런 노력 덕분에 균형을 잘 잡았다고 보시는 분도 많으실 거예요.


이 아이템을 접하고서 들었던 걱정이 하나 더 있어요. <뉴스타파>가 너무 쉬운 길 가려는 것 아니냐는 생각도 했어요.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 정신이 제대로 박힌 사람 치고 대놓고 친일파를 옹호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친일파를 비판적으로 다루는 아이템은 대중에게 환영받을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저는 <뉴스타파>가 공론장에 화두를 던지는, 논란이 불가피한 아이템이 아니라 대중에게 카타르시스를 주는 아이템을 선택한 것 아닌가, 의심했죠.



물론 이 생각은 다큐멘터리를 보고, 또 책을 읽고서 바꿨습니다. 제가 너무 짧게 생각했더라고요. 듣자 하니 내부에서도 이런 걱정을 했다면서요?


심인보 : 네. 친일 문제는 누구나 비판하고 반대하죠. 그런데, 비판하고 반대하려면 그 대상의 실체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막연히 '친일은 잘못'이라고만 하고 넘어가는 이상의 무엇을 한국 사회는 고민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면 말씀하신 것처럼 쉬운 길일 수 있어요. 그런데, 그 쉬운 길을 여태 누구도 가지 않았거든요.


강양구 : 그런 시도가 번번이 좌절됐죠.


심인보 : 네. 그렇다고 우리 사회의 지식인이 자발적으로 그런 일을 해 왔느냐?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민족문제연구소와 민족문제연구소 설립의 길을 여신 임종국 선생. 이런 분이 정말 외로운 길을 걸어오셨을 뿐이거든요. 이분들이 없었다면 우리가 지금 친일파에 관해 아는 지식도 정말로 적었을 거예요.


강양구 : 임종국 선생의 <친일 문학론>(민족문제연구소 펴냄), 그리고 임종국 선생의 후학들이 뜻을 모아 설립한 민족문제연구소가 우리의 친일 인식에 큰 영향을 미쳤죠.


심인보 : 그렇습니다. 친일 문제가 대중적 이슈라고 볼 수 있지만, 그런 면에서 일종의 착시입니다. 전혀 대중적이지 않았습니다. 친일파의 후손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우리에게 말해주는 어떤 연구도, 어떤 보도도 여태 없었습니다.


친일파 후손 "난 자수성가했다"


강양구 : 이제 책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해보죠.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힘들게 사신다는 이야기가 몇 차례 언론 보도를 통해 대중에게 알려졌습니다. 반면 우리는 친일파 후손은 대부분 잘 먹고 잘 살 거라고 막연히 생각합니다. 그런데 심 기자께서 여러 차례 말씀하셨듯이, 정확한 상황은 잘 모릅니다. 어떻습니까? 정말 친일파 후손이 잘 삽니까?


심인보 : 맞습니다. 왜곡된 역사의 수혜자인 것 같아요. 당사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실지 모르겠지만요.


강양구 : 책을 보다 흥미로웠던 대목이 있습니다. 실제로 취재해 보니, 친일파 후손의 상당수가 잘 먹고 잘 사는 게 맞는데, 정작 후손 대부분은 조상 덕이 아니라고 답변했다면서요.


심인보 : 네. 저희가 이 취재를 진행하면서 후손에게 메일을 많이 보냈습니다. 공통 질문의 하나가 '당신의 현재 사회적 성취에 친일한 조상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 미쳤다고 생각하느냐'는 거였습니다. 0점에서 100점 사이 점수 척도로 대답을 요청했는데, 대부분이 0점이었어요. 전혀 도움 받지 않았다는 거죠.


가장 높은 점수를 준 분이 30점을 매겼습니다. 이 분도 설명을 보면, 물질적 도움은 없었으나 학구열이 높은 집안 분위기에 영향을 받았다고 하셨습니다. 이 분이 누구냐면, 진성호 전 국회의원입니다. <조선일보> 기자 출신이시죠.


강양구 : 이 대목이 우리 현대사를 이해하는 하나의 힌트가 될 것 같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학력 자본이 가진 힘이 엄청나잖아요. 이런 학력 자본을 쌓는 걸 가능케 한 집안 분위기와 물질적 여유야말로 친일파 후손이 한국 사회에서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중요한 토대가 아니었느냐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심인보 : 그렇죠. 이인호 KBS 이사장이 대표적 인물이죠. 이 분이 이명세라는 친일파의 손녀이십니다.

이 분이 서울대에 입학하셨어요. 당시 시대상을 보자면, 여자를 대학에 보낸다는 건 보통 집안에서는 내리기 쉽지 않은 결정이었죠. 이후 이 분은 한국전쟁 직후에 유학을 떠나셨습니다. 미국 보스턴의 명문 여자 대학인 웰즐리 대학교에 입학하셨죠.


강양구 : 힐러리 클린턴이 나온 대학이죠?


심인보 : 맞습니다. 그 대학의 당시 학비를 지금 통화 가치로 환산하면 1년에 수 억 원에 달합니다. 그 엄혹한 시기에 이런 지원을 받으신 거죠. 과연 이 분이 정말 머리가 뛰어나서 유학까지 갔겠느냐. 물론 공부를 잘 하셨겠죠. 그런데 집안에 책이 어마어마하게 많은 환경에서 자라셨다고 합니다. 어릴 적부터 한국 사회의 최고급 지식인과 교우하셨겠죠.


당시에는 유학가신 분이 매우 적었어요. 인재가 적었죠. 이 분은 귀국 후 곧바로 고려대학교 교수로 임용되셨고, 이후 서울대로 옮기셨습니다. 특히 학문 분야의 경우, 초창기에 유학하신 분이 해당 전공 분야의 대부가 되신 사례가 많습니다. 이렇게 자라신 분께서 "나는 친일파 할아버지로부터 아무 것도 받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이걸 이해할 수 있을까요?


▲ 이인호 한국방송(KBS) 이사장. ⓒ연합뉴스


친일파 후손 중 의사가 많다?


강양구 : 이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사실을 한 가지 알았습니다. 친일파 후손의 직업군을 조사했더니, 의사가 매우 많았다고요?

심인보 : 네. 저희도 깜짝 놀랐습니다. 물론 기업인(대기업 임원 이상)이 가장 많았어요. 하지만 단일 직군 가운데 의사가 많은 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저희가 조사한 친일파 후손 가운데 의사 비율이 10%가 넘었습니다. 놀랍죠. 그 이유가 뭘까 고민을 했습니다.

당시 의사는 지금처럼 인기 있는 직업이 아니었어요. 그러니 집안에 어차피 돈은 있으니, 사회적으로 인정받으면서도 정치적 부침은 심하지 않은 직업으로 친일파의 후손이 의사의 길을 택한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강양구 : 친일파 후손이 일종의 트라우마를 갖고 있었을 수도 있으니까요.


심인보 : 네. 친일파 일부는 반민특위에 끌려가기도 했죠. 의사와 비슷한 사례로 친일파 후손 가운데 여성의 경우 음대 교수가 많습니다. 예체능계 교수가 많죠.


강양구 : 생각해 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 같아요. 책에도 나오지만, 친일파 후손인 모 대학교 음대 교수는 피난 중 부산에서 피아노를 사셨다고요.


심인보 : 굉장하죠? 그것도 아버지를 졸라서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겁니다. 당시에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을 수 있는 어린아이가 얼마나 됐을까요?


강양구 : 지금도 아버지를 졸라서 크리스마스 선물로 피아노를 받을 수 있는 아이는 별로 없죠. 집에서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를 칠 수 있었고, 장성할 때까지 피아노를 공부할 수 있었던 사람이 당시 얼마나 됐겠습니까. 당연히 그런 분들이 유학도 가고, 나중에 대학에 자리 잡을 수 있었겠죠.


그런데도 친일파 후손이 대한민국을 쥐락펴락한다는 우리의 통념은 사실과 다르다는 게 <친일과 망각>의 결론입니다.


친일 정신은 살아 있다


심인보 :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파워 엘리트가 정치인, 법조인 그리고 일부 언론인이잖아요. 이런 이들 가운데 친일파의 후손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사정은 이렇습니다. 이런 영역에 속한 분 가운데 친일파 후손이 이승만 정부에서 박정희 정부에 이르기까지는 많아요. 하지만 이후로는 점차 줄어듭니다.


파워 엘리트를 충원하는 방식이 시간이 흐르면서 다양화했고, 경제가 빠르게 성장했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겠죠.


강양구 : 해방 70년이 됐지만, 여전히 친일파 후손이 대한민국을 쥐락펴락하리라는 생각은 사실과 다르다는 거군요.


심인보 : 네. 그런데, 저희가 취재할 때 한홍구 성공회대학교 교수와 임경석 성균관대학교 교수께서 이런 지적을 하셨어요. 친일의 정신, 친일파가 만든 사회 구조가 여전히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는 거죠.


강양구 : 저도 인상 깊어서 메모했어요. 책에 소개된 대목을 그대로 읽어드리겠습니다.


"검찰이나 경찰 등 권력 기관에서 친일파가 만든 구조가 어떻게 전수되고 연결되어 지금에 이르렀는지 따져 볼 필요가 있다." (한홍구)

"식민지 시기 외세의 통치에 종속적으로 협력하는 시스템이 형태만 달리한 채 지금까지도 계속 진행되는 지점에 주목해야 한다." (임경석)


심인보 : 한홍구 교수께서 직접 쓰신 <사법부>(돌베개 펴냄)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을 보면, 앞서 소개하신 말씀의 자세한 내용이 생생히 드러납니다.


강양구 : 임경석 교수의 지적도 굉장히 중요한 것 같습니다. 최근 사드(THAAD) 정국을 보면서도 새삼 느끼지만, 대한민국의 고위 관료, 보수 정치인, 지식인이 사실은 공공연한 친미파잖아요. 그들이 '국익'이라고 할 때, 그들의 머릿속에 연상되는 국익은 사실 '미국의 이익'과 다르지 않은 경우가 많죠.


심인보 : 약간 추상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친일파와 그 후손의 삶은 우리 사회의 지배 엘리트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이냐에 관한 교재죠.


강양구 : 만일 국권을 외세에 빼앗기는 시기가 다시 온다면, 과연 지금 지배 엘리트가 과거 친일파의 모습과 다를까 생각해봄직 하네요. 별로 다르지 않을 듯합니다.


심인보 : 네. 그 시절처럼 의병이나 독립운동하실 분이 많이 나올지도 의문입니다. 너무나 쓰라린 역사적 교훈을 우리가 공유하고 있으니까요.


친일 청산 제대로 했다면...


강양구 : <뉴스타파> 제작진이 상당히 많은 친일파 후손과 접촉했는데, 공개 사과하신 분이 딱 세 분이더군요. 문효치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김경근 목사, 홍영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다들 사연이 있으셨을 것 같아요.


심인보 : 네. 사실 인터뷰 성사가 쉽지 않았어요. 세 명도 저희 기대보단 많은 숫자였습니다. 아예 안 나오거나, 운 좋으면 한 명 정도를 기대했죠.


강양구 : 김경근 목사 사연 들으면서 한편으론 애잔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웃음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자제들이 "아빠, 우리 친일파 후손이야?"라고 얘기했다고요. (웃음)


심인보 : 김 목사의 경우, 집안 내력을 모르셨어요. 이런 분도 상당히 많았습니다.


강양구 : 그렇겠네요. 아버지가 자녀들 앉혀놓고 "너희 할아버지께서 친일파였다"라고 굳이 얘기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심인보 : 네. 친일 청산이 제대로 되었다면 그런 일은 없었겠죠. 국가가 보수적으로 결정한 친일파가 1006명(친일진상규명위 발표)인데, 이 정도면 정말 거물급만 추린 거죠. 그런데 그 자손이 조상의 내력을 모른다?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사회적 평가와 반성이 제대로 되었다면 알았을 겁니다.


강양구 : 친일파의 경우, 일정 기간 공민권 박탈 같은 제재가 가해졌어야 마땅했는데요.


심인보 : 그렇죠. 애초 반민특위에는 공민권 박탈 조항이 들어있었습니다. 임시정부 강령에도 공민권 박탈과 재산 몰수 조항이 있었습니다.


강양구 : 연좌제는 당연히 나쁩니다만, 친일 당사자에 관한 제재가 잘 되었다면 친일 행위로 얻은 상당한 재산이 사회로 환수되었을 테고, 그렇다면 그 후손은 다른 이들과 적어도 공정히 경쟁했겠죠.


어쨌든 세 분께서 사과하셨는데, 정말 큰 용기를 내신 겁니다. 홍영표 의원은 현역 국회의원이셔서 더 부담이 되셨을 텐데요.


심인보 : 사실 저희가 제작 당시부터 가장 큰 기대를 걸었던 이가 홍영표 의원이었어요. 정치인이시고, 그 전에도 그런 논란이 있어서 어느 정도는 알려졌거든요.


다행히 기대대로 인터뷰에 응해주셨습니다. 본인께서 느낀 정신적 압박감이 상당히 컸던 것 같더라고요. 카메라 앞에서 그런 이야기를 한다는 게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그 점에 관해 홍영표 의원께 제작진이 고마움을 갖고 있습니다.


강양구 : 나중에 홍영표 의원은 소셜 미디어 계정에 인터뷰 후기도 남기셨죠. (웃음) 친일파 후손 논란이 일어난 분 가운데 대권 후보로도 꼽히는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있죠. 이 분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심인보 : 일단 김무성 전 대표는 친일 문제에 두 가지로 엮였어요. 자기 집안이 친일 논란이 있습니다. 다만 조상께서 친일 행위자 1006명에는 들어가지 않았죠. 친일진상규명위가 친일파를 선정하던 2009년 당시까지는 김무성 씨 부친인 김용주 씨에 관한 자료가 덜 확보되었습니다. 만일 지금 발굴된 자료를 당시 확보했다면, 발표된 친일 행위자 수가 1007명이 됐겠죠.


강양구 : 그 사실도 <뉴스타파>에서 보도했죠?


심인보 : 네. 그리고 김무성 전 대표 사돈 집안 역시 친일입니다. 김무성 전 대표는 집안의 친일 내역을 송두리째 부인하시죠. 본인 조상에 관한 나름의 사실을 갖고 있다면, 그럴 수는 있다고 봐요. 그런데 이 분은, 거기서 한발 나가서 친일 청산 노력 자체를 폄훼하시죠. 정치인으로서 공공연히 과거를 벗어야 한다고 주장하신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김무성 전 대표의 경우, 표현이 조금 그렇습니다만 죄질이 나쁘다고 생각합니다.


▲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는 친일파 청산 문제에 관해 여러 차례 비판적 태도를 보였다. ⓒ연합뉴스


여전히 친일 부역자 조사는 필요하다


강양구 : 이 책 내용에 관한 큰 줄기만 이야기하고 있는데, 정말 집요하고 꼼꼼하게 조사하셨더라고요. 후손들이 어디 사는지 등에 관한 자료도 전부 소개되었습니다.


이런 작업을 끝내신 소감이 어떠십니까? 후련하십니까? 뭔가 찝찝하시기도 할 것 같은데요? 책을 보니 그런 느낌이 들더라고요.


심인보 : 날카로운 지적입니다. 탐사 보도하는 사람의 로망이 있습니다. 전수 조사죠. 기사를 쓸 때, 아무리 한 줄짜리, 두 줄짜리 기사라손 치더라도 '전수 조사'라는 단어를 집어넣을 수 있으면 마음이 뿌듯해요. 우리가 다 봤다는 의미가 있으니까요.


그런데 친일 후손 작업의 경우, 전수 조사가 아니에요. 그 점이 마음에 걸립니다. 전수 조사는 언론으로서는 불가능한 작업이더라고요. 과거 1990년대는 (개인 정보 보호에 대한 인식이 미비해서) 주민등록번호만 알아도 그 사람에 관해 많은 정보를 알 수 있었어요. 그런데 이제 이런 것이 전부 불법이 됐죠.


선배 얘기를 들어보면, 그 때는 기자가 동사무소만 가면 관련 명부를 그냥 내주던 시절이었다고 합니다. 이번 취재에서 저희가 운 좋게 후손 일부의 주민등록번호를 알 수 있었어요. 하지만 그걸 갖고 저희가 알 수 있는 정보가 더는 없더군요. 관련 도움을 받더라도 불법이죠. 그러니, 일개 언론사에서는 전수 조사를 할 수 없습니다.


덧붙이자면, 저희가 조사한 친일 후손이 아무래도 우리 눈에 잘 띄는 사람입니다. 이들이 사회적으로 성공했다고 제가 앞서 말씀드렸는데, 사회적으로 성공한 인물이니 눈에 잘 띄죠. 그 때문에 전수 조사하지 않아 나올 수 있는 통계적 편향 등에 관해 아쉬운 대목이 있죠.


강양구 : 당연히 성공하지 못한 분, 낙오한 분, 아예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외국으로 가신 분도 많으실 텐데, 이런 분은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을 가능성이 컸겠죠.


심인보 : 네. 작업 과정에서 그런 분도 찾았습니다만, 그런데도 충분하지 못했을 거예요.


강양구 : <뉴스타파>의 이번 작업을 기초로, 공적인 기관이 만들어져 관련 작업을 계속 진행해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심인보 : 그렇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강양구 : 책을 보니 외국의 과거사 정리 사례를 소개하셨더라고요. 폴란드의 관련 기관이 인상적이었는데, 소개 부탁드립니다.


심인보 : 민족기억연구소라고 합니다. 해당 내용은 제가 취재하지 않아서 저도 책에 나온 이상은 모릅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공공 기관이 중심이 되어서 공적으로 기록과 기억을 계속 확인하는 작업을 한다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강양구 : 나치 독일의 점령기 때 부역자의 만행, 가해자의 행적과 피해자 사례 등을 지금까지도 계속 발굴하고 정리하는 작업을 이어가더군요. 이런 작업이 국민의 지지를 받으면서 공적 기관에서 이어진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런 작업을 사람들이 알아야 비슷한 상황에 닥쳐도 사회가 경각심을 갖게 되지 않겠습니까?


심인보 : 그렇죠. 나의 이런 짓을 역사가 잊지 않겠지, 이런 생각을 우리 사회가 가져야만 하죠.


"KBS는 되살아날 것"


강양구 : 이제 서서히 인터뷰를 마무리해야 할 시간인 듯합니다. 뉴스타파가 저희 <프레시안>으로서는 참 부러운데, 초기부터 든든한 후원 회원이 계셨죠? 지금 한 4만 명 정도 되나요?


심인보 : 4만 명 조금 안 됩니다. 정말 고맙죠. KBS도 수신료를 받는 회사였는데, 제가 거기 있을 당시는 수신료를 내주시는 시청자를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뉴스타파>에 와서는 4만 명 후원 회원의 마음이 크게 느껴집니다. 저희가 종종 후원 회원과 행사도 해서, 이때마다 여러분을 뵙습니다. 고마운 마음을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강양구 : 이 대목에서 약간 삐딱한 질문을 하나 드려볼게요. 최승호 PD나 심 기자와 같은 분이 KBS나 MBC를 박차고 나와 독립 언론의 길을 걷는 건 좋은 일입니다만, 그렇다면 KBS나 MBC는 어떻게 할 것이냐는 생각이 들어요.


어쨌거나 KBS와 MBC는 정말 영향력이 큰 언론이고 또 공공의 자산이잖아요? 요즘 언론계에 몸담은 여러분과 이야기를 나누면, 상황이 좋아져 KBS나 MBC가 이른바 ‘정상화’된다 하더라도, 좋은 언론으로 거듭날 내부 동력이 남아있느냐는 데 관해 회의적인 분이 많더라고요.


심인보 :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뉴스타파에 KBS 출신 6명이 있고, MBC 출신으로 최승호 선배가 계십니다. KBS의 경우, 좋은 기자가 지금도 많이 남아있습니다. 이분들이 지금은 취재 일선에서 떠났습니다만, 정치 환경이 개선된다면 이 분들이 분명 제 역할을 하실 겁니다.


다만 걱정되는 건, 지금 만들어진 구조와 사고방식이 계속 이어져서 그런 분들이 역할을 하는 걸 막는 문제죠. 아무튼 저는 내부에 계신 좋은 분들이 좋은 언론을 만들리라 확신합니다.


"<친일 문학론>은 뛰어난 탐사 보도 서적"


강양구 : 저희 친북이 매번 출연자에게 숙제를 드릴 예정입니다. 심 기자에게도 미리 숙제를 드렸죠. 이 책을 집필하면서 가장 자극을 받았거나, 큰 도움을 받은 책 한 권을 골라주십시오.


심인보 : 단연코 임종국 선생의 <친일 문학론>입니다. 이 책은 단순한 문학 비평이 아닙니다. 매우 뛰어난 탐사 보도 서적입니다. 치열한 기자 정신이 녹아든 책입니다. 한 권씩 사셔서 조금씩이라도 읽어 가신다면, 정말 좋으실 겁니다.


강양구 : 평소 책을 좋아하나요?


심인보 : 기자가 되어서 좋은 점 가운데 하나가, 취재를 핑계로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거예요. 책을 손에서 놓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강양구 :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작가가 있나요?


심인보 : 제가 SF 소설을 좋아합니다.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어슐러 K. 르 귄입니다.


강양구 : 르 귄의 작품은 저도 좋아합니다. 르 귄은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읽을 수 있는 작품을 쓰는 작가죠. 어린이에게도 즐거움을 주고, 또 어른은 어른대로 생각할 거리를 줍니다. 르 귄의 작품이 많은데, 좋아하는 작품 하나만 꼽는다면요?


▲ <친일과 망각>(김용진·박중석·심인보 지음, 다람 펴냄). ⓒ다람
심인보 : 저는 어스시 시리즈(황금가지 펴냄)를 좋아하고요. <빼앗긴 자들>(이수현 옮김, 황금가지 펴냄)도 아주 많은 통찰을 담은 책이라서 좋아합니다. 글 자체가 우아하고, 그리는 세계가 아름다워서 읽는 게 즐거운 작가입니다.


강양구 : 요즘 읽으시는 책도 궁금하군요.


심인보 : 제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성매매 보도를 했는데, 이게 <뉴스타파>의 재벌 개혁 시리즈 일부입니다. 저희가 내년까지 재벌 개혁 시리즈를 이어갈 건데, 이 시리즈를 하려고 관련 주제의 책을 많이 찾아 읽고 있어요. 그 가운데 김상봉 전남대학교 교수(철학과)의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꾸리에 펴냄)가 매우 신선했습니다.


재벌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는 여러 학자가 대부분 경제 성장과 같은 비교적 좁은 지평에서 이야기하시는데, 이 분은 아무래도 철학자이시다보니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십니다. 최근 출퇴근하면서 즐겁게 읽고 있습니다.

그런데 강 기자는 무슨 책을 읽고 있나요?

강양구 : 네, 저는 <숨결이 바람 될 때>라는 책이 참 좋았습니다. 미국의 명문대 병원에서 신경외과 레지던트로 재직 중이던, 저나 심 기자랑 동갑내기 저자가 성공을 코앞에 두고서 폐암 말기 판정을 받습니다. 다른 사람의 죽음과 싸우고, 다른 사람의 죽음을 지켜보던 의사가 막상 자기와의 죽음과 싸워야 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의 일들이 담담하게 기록된 책입니다.

심 기자님도 또 친북을 듣고 있는 청취자 여러분도 꼭 한 번 읽어보길 권합니다. 저는 이 책을 읽고서 정작 삶이 좀 더 풍요로워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심인보 : 꼭 읽어봐야겠네요.


강양구 : 제가 한 권 선물할게요. (웃음) 오늘은 <뉴스타파>의 동명 다큐멘터리를 책으로 엮은 <친일과 망각>을 두고, 대표 저자 가운데 한 분인 심인보 기자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기사 많이 기대하겠습니다. 또 <프레시안>과 저도 좀 더 분발해서 선의의 경쟁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귀한 시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심인보 :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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