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승인 2023.02.02
- 황보윤식(함석헌평화연구소 대표, 문학박사)
대한민국의 통령* 윤석렬은 후보 때부터 기득권旣得權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 그리고 이번 2023년 신년사에서는 “기득권 유지와 지대地代 추구에 매몰된 나라에는 미래가 없다”라고 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미래와 미래세대의 운명이 달린 노동, 교육, 연금 3대 개혁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했다. 또 “기득권의 집착은 집요하고, 기득권과의 타협은 쉽고 편한 길이지만, 우리는 결코 작은 바다에 만족한 적이 없다”고 했다.(2023년 윤통령 신년사 中에서)
* '대통령'이라는 말은 헌법적 용어일 뿐, 대한민국은 대통령이라는 말이 맞지를 않는다. 따라서 필자는 '대통령' 대신 '통령'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통령의 잘못된 기득권 이해
이 말을 문장 그대로 해석을 해 보아도 통령 윤석렬은 기득권 개념을 모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또 노동자의 노동대가인 임금을 지대地代라고 표현하였다. 과연 지대라는 말이 오늘날 민중정치 사회에서 가당키나 한 말인지, 그의 용어 선택에 대하여 걱정스러움이 인다. 지대라는 말은 유럽의 봉건시대에 봉건영주들에 의하여 농민들의 노동력이 착취되던 시대에 쓰던 말이다.
공화국 대한민국의 통령은 5년 짜리 수장首長에 불과하다. 그런데 노동자의 노동임금을 ‘지대’ 개념으로 파악했다는 것은 자신을 공화국의 통령이 아니고 윤씨 왕조의 봉건군왕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인다. 만약 그렇다면 윤통령은 21세기 대한민국의 돈키오테라는 생각이 든다. 바로 이러한 사고가 기득권자들의 권위주의에 해당이 된다. 하여 이 자리를 빌어 통령 윤석렬과 함께 기득권 개념에 대하여 공부를 해 보고자 한다.
먼저 기득권에 대한 개념부터 정의해 보자. 대의적으로는 “정치/경제/사회/문화적으로 진작부터 얻어낸 지배적 지위/힘/권리를 놓지 않으려는 우월주의/특권의식을 말한다. 곧 우리나라에서 조선시대, 친일파 혈통(신친일파 포함), 해방 이후 이승만의 반공독재시대, 박정희의 유신독재시대, 전두환/노태우의 살인독재시대, 그리고 이명박/박근혜의 독불 권력시대를 거치면서 성장해 온 지배적 엘리트 계층/계급, 곧 ‘부도덕한 주류’들이 놓지 않으려는 정치/사회/경제/종교적 권력과 우월주의를 말한다. 지배적 엘리트 계급이라 함은, 정치와 경제, 사회, 예체능, 종교 분야에서 지배적/세습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우월적 부류들을 말한다.
기득권에 대한 정의
구체적으로 말하면, 국가 행정/입법/사법 등 삼부의 수뇌군 및 그에 빌붙은 고위급 구성원과 이에 기생하여 안일무사를 추구하는 부류들을 통털어 일컫는다.
여기에 한국 사회의 특수성에 비추어 명문대 출신과 그 동문들이 사회 각 분야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는 우월자/특권층들과 문화예술계의 거장들도 기득권층에 해당이 된다.
특히 박정희 때 엘리트 관료를 양성하기 위하여 제도화시킨 3고시(행정, 사법, 외무)와 언론고시를 통하여 출세해서 실세를 이루고 있는 정치꾼과 이에 부화뇌동하는 고위공무원들도 기득권층에 해당이 된다.
이 중 사법고시를 통해 진출한 검/판사 출신으로 한국 사회에서 명문적/우월적 지위와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기득권 계급 중에서도 우월적 기득권세력이다.
검찰 수장으로 국가 통령으로까지 진출했다면 그것은 한국 사회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기득권 중에서도 최고의 기득권자이다. 또한 박정희와 전두환 때 국가적 음모에 의해 성립된 기업의 어용 노동조합에서 귀족 노동자로 성장한 이들도 노동자를 팔아먹는 파렴치한 기득권층이다. 여기에 도덕적 양심을 가졌다 하더라도 정당의 수뇌부와 의원들도 기득권층에 해당이 된다. 집권당의 수뇌부와 의원들은 말할 것도 없다.
여기서 맘모스형 대형교회의 세습성직자도 이에 해당 된다.
세계 어느 나라도 마찬가지이지만, 기득권층이라는 말은 힘/세력/권력을 가지고 사회에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이익을 ‘독점 소유’하는 집단/계급‘계층의 영향력이 사회에 미치는 힘을 일컫는다. 대한민국에서 기득권의 형성은 역사적/전통적으로 왕실 혈통과 이에 빌붙어 권력을 행사하던 관료(이른바 귀족관료, 양반관료 등 권문세족)에서 비롯된다.
후기신라/통합신라 때부터 기득권 시작
우리 역사에서 기득권세력이 굳어지는 것은 후기신라/통합신라로부터 시작된다. 교과서에서 일반적으로 쓰고 있는 ’통일신라‘라는 말은 틀린 용어이다. 그것은 고구려영토를 중국에 헌납하면서 우리 삶의 터전을 축소 시켰기 때문이다. 곧 고구려영토를 포함하는 완전한 통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통합신라, 또는 후기신라라는 용어를 붙인다. 그것은 우리 땅 전체를 통일한 신라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리하여 통합신라 때부터 우리 땅은 정치적으로 경상도(특히 남도) 지역의 정치 관료들이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에 걸친 권력/영향력을 갖게 된다. 통합신라 말기 후삼국시대를 거쳐, 황해도 개경지역이 후삼국을 통일하고 고려를 세웠다고 하지만 정치 권력은 신라인/경주인들이 장악하게 된다. 이어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경상도(특히 낙동강 중심의) 출신들이 정치사상과 경제 권력(대토지사유)을 독점한다.
현대국가에 들어와서도 이러한 경향은 더욱 뚜렷해질 뿐, 옅어지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정치권력과 경제이권이 경상도에 집중해 있다 보니, 자연 인구도 경상도 지역이 다른 지역보다 많이 생산되기 마련이다. 전라도 지역은 나라와 나라 사람들의 식량창고 역할을 하였기에 땅/토지는 넓었지만, 인구는 헐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일제 식민지에서 해방된 이후, 대한민국에서는 인구 비례로 정치권력을 뽑는 불균형의 선거제도가 성립되었다.
경상도가 기득권의 중심이 된 배경
이러한 구조적/제도적 모순은 자연 인구가 많은 경상도에서 정치/경제/사회 권력을 장악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역사적으로 경상도가 기득권/권력의 세습을 이어갔다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 땅에서는 옛말에 ”우리나라에 인물의 태반은 삼남에서 나고, 삼남 중에서도 태반은 영남에서 난다.“라는 말이 생겨난 원인이 된다. 여기서 인물차별 풍토가 생겨나 삼남지역(영남) 출신과 호남지방(전라) 영동지역(강원) 출신 간에 신분적 차별대우가 생겨났다.
경제 기득권세력도 마찬가지다. 일제강점기부터 현대기술이 도입되면서 항구가 현대식으로 개설되고 기업과 공장이 도시에 집중하게 된다. 정치적 기득권 세력들은 자기 고장인 경상도에 취업을 가능케 하는 공장을 많이 세웠다. 금융권도 마찬가지다. 박정희 때 더욱 심화가 되었다는 것은 모든 이가 다 아는 사실이다. 울산 포항, 경산, 구미 등이 대표적이다. 여기서 경제적 기득권층이 형성되어 나온다. 경제적 이익집단/개인들이 기득권의 바통을 이어가며 세습을 하고 있다.
사회/문화적으로도, 경상도 사람들이 정치적 특권과 특권경제를 배경으로 경상도 사투리를 쓰면서 서울로 진출하게 된다. 그리하여 경제/사회/문화면에서 시멘트와 같이 무너지지 않는 기득권층을 이루게 된다. 그래서 언어 면에서도 경상도 사투리는 기득권 언어가 되고, 전라도와 충청도/강원도 언어는 비기득권 언어가 되었다. 하여 전라도 출신들은 전라도 언어를 쓰는 것을 꺼리고 굳이 서울 말씨를 쓰려고 애써왔다. 특히 박정희 때 심했다. 언어기득권의 행패다.
성골 기득권자가 기득권 청산을 외치다니!
그런데 대한민국 최고의 기득권층 중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통령이 된 사람이 기득권 청산을 외쳤다. 윤통령이 말하는 기득권층이 누군가하고 귀를 기울여 보니 어처구니없는 집단을 지칭했다. 진짜 기득권층을 다 빠지고 노조(귀족)와 야당 정치인만을 거론했다. 진짜 기득권세력은 대한민국에서 이제까지 정치/경제/사회/문화 면에서 특권을 세습/유지해온 부도덕한 주류들이다. 이들은 대한민국의 미래 발전에 장애가 되는 우월적 세력이다.
부도덕한 주류라 함은
역사적으로 형성된 기득권층,
지역적으로 형성된 기득권층,
정치적으로 형성된 현 국민의힘당 의원들, 여기에 이리 갈까, 저리 갈까 미적거리는 곧 신념과 지조가 없는 야당의원들도 포함된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형성된 경제관료와 기업인/자본가들,
예체능계를 쥐락펴락하는 기득권층,
세습성직자, 정치와 결탁된 무당들이다.
기득권 청산을 말하려면 검찰 수장이 통령이 된 최고의 기득권세력인 자신부터 반성해야 할 것이라고 본다.
곧 통령 자신을 포함하는 부도덕한 정당의 정치인과 기업의 충수와 간부들이다.
이를 배제하고 기득권 청산은 어불성설이 된다. 자신을 배제하면서 기득권 청산을 거론하는 것은 대한민국 수장으로서 바른 태도가 아니라고 본다. 기득권 청산을 거론한 것은, 마치 이승만과 박정희처럼 정적政敵을 제거(사법살인)하려는 음모라고밖에는 달리 생각되지 않는다.
기득권층이 아닌 민중이 역사의 주체
이 나라는 이제까지 기득권층이 아닌 깨달음이 있는 민중들에 의하여 나라가 발전해 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결코 기득권 계급이 될 수 없는 민중들에 의하여 민중정치의 가능성이 열려왔다. 특권경제가 대중경제로 전환되어 왔다. 그리고 빈부격차도 옅어졌다. 민족문화도 발달해 나왔다. 곧 ’3.1민족 항쟁기의抗爭起義‘에 의하여 민족의 독립/해방을 위한 독립운동/민족해방운동이 가열차게 일어날 수 있었다.
4.19혁명기의에 의하여 민중정치 시대의 기능성을 열어왔다. 부마釜馬민중항쟁기의로 영구총통제가 종식될 수 있었다. 5.18민중항쟁기의와 6.10민중항쟁기의로 살인독재권력을 종식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촛불 민중기의로 국정농단도 종식될 수 있었다. 민중은 결코 기득권층이 아니다. 민중은 바다다. 바다는 배/함선을 띄우기도 하지만 배를 전복시킬 수도 있다. 기득권층이 아닌 민중/민인이 바다처럼 기득권층을 무너트리는 일은 현대사회에서 매우 쉬운 일이다.
자신이 최고의 기득권층이면서 자기와 다른 길을 가는 사람/집단을 향하여 ‘기득권층 청산’(사법처리)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시대는 달라졌다. 정치적 음모 이제는 그쳐야 한다. 결코 기득권층이 아닌 ’민중의 힘‘을 의식하면서 정치를 해야 한다. 이제 민중은 다시 깨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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