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윤
osroetnSpdgh581il4A0ta2cmt01im35i2 3tg16if90c62rm5 ip122fm57 ·
박유하 씨가 <중앙일보>의 ‘나는 고발한다’ 시리즈에 기고한 글을 봤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64129) 글의 내용은 유시민 작가에 대한 한동훈의 명예훼손 고발이 ‘입에 재갈을 물리는 것’이라는 주장을 반박하면서 한동훈의 고발과 검찰의 구형을 옹호하는 것이다.
유시민 작가의 문제제기가 ‘국가기관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고 사회분열과 혼란을 증폭시킨’ 것이라고 말한다. 반면에 <제국의 위안부>라는 책을 통해서 학문적 비판을 제기했을뿐인 자신은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과 정의연 등에 의해서 ‘8년 동안이나 입에 재갈을 물려있었다’면서 이것이야말로 적반하장이고 내로남불이라는 논리다.
그러나 이 글은 전형적으로 펙트의 왜곡과 논리의 비약을 통해 이루어진 글이다. 먼저 박유하 씨는 단지 학문적 비판만 제기한 것은 아니었다. '위안부가 자긍심을 가지고 일본병사를 위안했고 서로간에 동지적이고 협력적인 관계에 있었다’는 것이 <제국의 위안부>의 핵심적 내용과 논리를 이루고 있었다.
이것도 하나의 ‘학문적 주장’이라고 볼 수는 있지만, 그것이 ‘위안부’(전시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매우 큰 상처와 고통을 준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따라서 위안부 피해 당사자들이 박유하 씨를 고발한 것은 동의하긴 어려워도 일부 이해가 가는 점이 있었다.
물론, 형사적 고발보다 정치적 비판이 옳았다고 보는데, 문제는 검찰이 그것을 적극 받아서 기소까지 한 것에 있었다. 언제나 정치적 맥락을 살펴서 자신들의 존재를 과시할 기회를 노리는 ‘정치검찰’다운 반응이었다. 검찰이 칼을 들고 나서면 누구도 피하기 어렵다.
박유하 씨를 고발한 것은 ‘나눔의 집’에서 기거하는 피해자들이었는데, 나눔의집은 지금 그 운영진의 후원금 유용과 내부고발자 억압 등 여러 문제가 드러난 바로 그 단체이다. 나눔의집은 정의연과는 완전히 다른 단체인데 보통 언론은 그것을 잘 구분하지 않고 일부러 혼동을 유발하며 ‘윤미향 마녀사냥’에 이용했고 많은 이들이 거기에 편승해 왔다.
박유하 씨가 고발당했을 때 윤미향 의원과 정의연은 그것을 적극 지지하거나 환영하는 입장은 아니었다. 실제로 정의연의 주요한 인물들은 당시에 ‘이것은 학문적으로 토론하고 비판할 문제이지 법적으로 처벌할 문제가 아니다’는 취지의 성명에 같이 이름을 올렸다.
유시민 씨도 (자유주의자답게) 당시에 검찰의 기소가 ‘반민주적’이라고 비판하는 성명에 이름을 올린 대표적 지식인 중 하나였다. 또 정의연은 나눔의집의 여러 내부적 문제가 불거진 이후에도 그것을 비판하며 내부고발자들을 방어하는 행동들에 함께해 왔다.
그런데 박유하 씨의 이번 글은 윤미향 의원, 정대협, 정의연을 언급하면서 이분들이 “지난 30년 동안 일본 비난만 반복해왔다.... 핀트 어긋난 비판으로 일관한 탓에 한일관계를 최악으로 치닫게”했다고 매도하고 있다. 이어서 자신이 이렇게 “위안부지원단체를 비판했다는 이유만으로 명예훼손 고발을 당”했다고 말한다.
즉 마치, 자신이 정의연 등에 대한 정당한 비판을 하다가 정의연에 의해 고발을 당해 입에 재갈이 물렸던 것처럼 혼동을 유도하는 것이다. 더구나 박유하 씨는 이어서 “지원단체의 가장 큰 문제는 공금횡령이 아니다... 북한이 일본에 배상을 받아낼 좋은 재료로 삼은 게 모든 문제의 배경이다”라고 쓴다.
이것은 명백히 악의적인 문구이다. 마치 윤미향 의원과 정의연이 공금횡령을 했다고 읽히는 것만이 아니라, 이 분들이 ‘친북’적이어서 일본의 태도를 비판해 온 것처럼 쓰면서 ‘종북몰이’까지 의도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도 새로운 것은 아니다. 박유하 씨가 윤미향 의원과 정의연을 비판해 온 핵심에는 항상 이것이 있었다.
결국 박유하 씨는 자신이 검찰에 기소당할 때 그나마 그것을 반대하거나 검찰을 비판하는 입장을 밝혔던 정의연, 유시민 작가 등이 지금 검찰과 보수언론에 공격당하는 상황에서, 오히려 검찰과 보수언론 등의 공세에 힘을 실어주면서 ‘나한테 당신들이 한 짓을 생각해 보라’고 말하고 있는 셈이다.
이 글의 마지막에서 박유하 씨는 “자신이 겪은 고통을 다른 이도 똑같이 당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런 식의 사고는 우리 사회를 끝없는 갈등으로 몰아넣을 뿐”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도대체 누가 누가에게 할 말이지 돌아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박유하 씨가 윤미향 의원과 정의연에 대한 언론과 검찰의 마녀사냥에 편승해 같이 돌을 던져온 것은 참 씁쓸한 일이다. 물론 당시에 박유하 씨가 일부 언론의 과도한 선정주의적 접근과 검찰의 기소 속에서 고통스러운 점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윤미향 의원과 정의연의 소극적 태도와 정치적 입장에 상처받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당시 형사 고발과 검찰의 기소에 비판적인 태도를 취한 것만으로도 정의연의 태도는 충분했다고 봐야 한다. 그것을 넘어서 더 적극적으로 박유하 씨를 방어하는 태도를 취하는 것을 윤미향 의원과 정의연에게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위안부 피해자들과 적극 연대해 왔고 <제국의 위안부>의 내용에 전혀 동의할 수 없는 이들이었으니 말이다.
마크 렘지어와 마찬가지로 박유하 씨같은 분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사실에 근거한 학문적 반박일텐데, 자신들을 ‘주류 학설에 맞서서 이견을 밝히며 학문적 주장을 하다가 입에 재갈을 물린 피해자들’로 포지션하는 데 집중하는 게 ‘역사수정주의자’들의 태도인 것 같아서 매우 안타깝다.
또, 유시민 작가에 대한 지금 한동훈의 보복 고발과 검찰 수사와 기소는 과도하고 불의한 것이 명백하다. 2019년 ‘검언대란’ 당시에 누구도 감히 나서서 검찰과 언론의 대대적 여론몰이에 맞서지 못할 때 다른 목소리를 냈던 유시민 작가가 이후 검찰의 보복 대상이 됐다는 것은 채널A 사건의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도 드러난 사실이다.
검찰의 최고 실력자에서 이제 새정권의 법무장관과 윤석열의 후계자로 승승장구하는 한동훈의 아이폰은 풀지도 않고 면죄부를 주면서, 유시민 작가만 압박하는 검찰의 태도가 ‘굥정’하다고 볼 사람은 윤석열 밖에 없을 것이다. 박유하 씨의 이번 글과 한동훈을 “모델 포스-비주얼 깡패”, “조선제일검”이라고 추켜세우는 언론들을 보며 윤석열 시대를 실감한다.
* 사족: <중앙일보>가 ‘저격’ 시리즈에 이어서 ‘나는 고발한다’ 시리즈를 하고 있다. 마녀사냥에 반대했던 그 유명한 에밀 졸라의 슬로건이 이렇게 마녀마냥 전문 매체에 의해 이용되는 현실이 그로테스크하다. 거듭 말하지만, 족벌언론들, 특히 그 중에서도 <조선일보>에 글을 써주거나 협력해주는 진보 정치인, 지식인들을 자신들이 그 족벌언론들에게 피해와 고통을 당했던 수많은 피해자들의 가슴에 피멍이 들도록 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봤으면 한다. 이것은 왜 ‘2차 피해’가 아니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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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윤
·
“박유하 교수는 자신이 검찰에 기소당할 때 그나마 그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던 정의연이나 윤미향 의원이 정치검찰과 족벌언론들에 공격당하는 상황에 처했을 때, 오히려 그 공세에 힘을 실어주었다....
박유하 교수의 입장은 윤석열 정부 등장 이후에 피해자들을 외면하고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모든 것을 양보하는 정부의 잘못된 방향과 정책에 그대로 반영되고 적극 이용되고 있다. 박유하 교수는 윤석열 정부와 이런 방향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에 큰 걸림돌이었던 윤미향 의원은 지난 3년 동안 족벌언론과 정치검찰의 지독한 마녀사냥 속에서 만신창이가 돼 왔다. 윤미향 의원에 대한 전 사회적 조리돌림과 마녀사냥이야말로 진정한 ‘전체주의적 폭력’이었지만 박유하 교수는 이것을 ‘못 본 척’하는 것을 넘어 ‘윤미향이 북한을 도우려고 나를 괴롭혔다’는 근거없는 억지 주장을 하며 앞장서 돌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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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코스프레하며 마녀사냥 동참해 온 박유하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얼마 전 대법원은 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여러 상처를 주는 표현을 사용한 박유하 세종대 명예교수를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검찰이 박유하 교수를 기소한 지 8년 만에 나온 판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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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윤
·
요즘 정의연에 대한 마녀사냥과 조리돌림에 숟가락을 얹고, 쏟아지는 돌더미 속에 작은돌 하나라도 같이 던지려는 비겁한 사람들이 하는 말 중에 특히 부당하고 사실과도 안 맞는 주장이 있다. ‘몇년 전 박유하 씨가 집중공격당할 때 그것을 도운 정의연과 윤미향이 이제와서 무슨 자격으로 괴롭다며 반발하냐’는 것이다.
일단, 당시에 박유하 씨에게 쏟아진 비판을 지금 정의연과 윤미향 의원에 대한 공격과 단순비교하는 것은 전혀 동의할 수 없다. 당시에 박유하 씨는 2차가해성 표현들을 담은 책과 주장 때문에 ‘위안부’ 피해당사자들로부터 명예훼손 고소를 당했다. 그러면서 일부 누리꾼들에게 과도한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지금 정의연과 윤미향 의원처럼 수많은 의혹이 쏟아지면서 전사회적 마녀사냥과 조리돌림의 표적이 됐다고 볼 수는 없다.
당시의 수구보수언론들은 박유하 씨를 비난하는 편이 당연히 아니었고, 개혁언론들도 대체로 양쪽의 주장을 다 소개하며 논란으로 접근하는 스탠스였다. 무슨 괴상한 시민단체가 박유하 씨를 고소하고 검찰이 대대적 압수수색에 돌입하고, 기성정당들이 한목소리로 사퇴를 촉구하면서 인생전체와 존재 자체가 탈탈 털리고 부정당하는 그런 일은 없었다.
문제가 된 것은 단지 책과 주장뿐이었고, 박유하 씨의 주장은 당시 수구보수언론이나 박근혜 정부의 입장에서도 동조하고 이용하고 싶은 편에 가까웠다. 물론 피해자들의 고소를 검찰이 기각하지 않아서 기소가 이뤄졌다. 그리고 성범죄 피해자들이 2차가해에 법적소송으로 대응하는 것은 단순하게 잘못이라고 탓하기 어려운 문제다.
그럼에도 당시에 이용수 님을 포함한 ‘위안부’ 피해자들이 박유하 씨를 고소한 것은 부적절했다고 본다. 정의연은 그 고소에 관여하지 않았을뿐 아니라 고소를 지지하는 입장도 아니었다고 한다. 고소를 주도한 것은 정의연이 아니라 요즘 내부고발로 문제가 드러난 '나눔의 집'이다. 실제로 박유하 씨에게 매우 비판적인 지식인들(윤정옥, 양현아, 이나영, 강성현, 박노자 등)도 당시에 고소는 적절치 않다는 입장을 발표했었다.
2차가해적 표현에 대한 피해자들의 분노에 공감하면서도 학문적 비판보다 엉뚱한 쟁점으로 번지는(실제로 그렇게 됐다) 것을 우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당시에 고소에 반대하는 입장이었고, 박유하 씨를 비판하는 글을 따로 쓰지는 않았고, 비판하는 글을 쓰는 동지에게 표현을 좀 완화하자고 제안했던 것도 기억난다.
이미 많은 비판들이 있는데 굳이 덧붙이고 싶지 않았고, 비판을 넘어서 막말과 여혐적 욕설까지 담은 댓글들은 심해 보였기 때문이다. 분명 그런 악성댓글들은 박유하 씨에게 상처가 됐을 것이고, 그 심정도 이해가 간다. 그런데 그 경험이 공감과 역지사지가 아니라 ‘너희도 한번 더 크게 당해봐라’로 나온다면 기막힐 수밖에 없다.
더구나 앞서 말했듯, 지금 정의연과 윤미향 의원은 당시 박유하 씨처럼 정제된 학문적 비판 속에 일부 악성댓글을 겪고 있는 게 아니다. 거의 전 언론이 합심해 온갖 무책임한 의혹들을 쏟아내며 파렴치한 사기꾼 집단으로 낙인찍고 있다. 상식적이라면 이런 상황에서는 상대방을 비판하다가도 일단 멈추고 다음 기회를 보는 게 맞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숨이 넘어가는 사람의 머리를 물 속으로 지그시 눌러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박유하 씨는 최근 몇몇 언론과 인터뷰에서 그 반대 태도를 취하며 ‘옳다구나’하듯이 정의연과 윤미향 의원에 대한 공격에 가담하고 있다. 씁쓸한 태도가 아닐 수 없는데 그 주장조차 매우 모순적이다. 지금은 박유하 씨가 더욱 분명하게 이 사회 강자와 다수파의 편에서 더 큰 마이크를 잡고 있으니 부담없이 비판하고자 한다.
먼저 박유하 씨는 정의연이 콩고의 피해자들과 연대해 온 것도 비판했다. “'내전 성폭력'과 '위안부'를 같은 것처럼 이해하도록” 했기에 “어떻게 보면 '기만'”이라는 것이다. 정의연이 ‘민족주의’라고 비판해 오더니, 국제적 연대를 한 것은 또 ‘기만’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여기서 박유하 씨는 ‘위안부’를 전시 성폭력의 하나로 보지 않는 자신의 관점을 드러내고 있다.
또 박유하 씨는 “일본도 잘못을 인정하고 완벽하지 못했을지 모르나 두 번에 걸쳐 사죄하고 보상했다”고 말한다. 진정성이 없어서 피해자들 스스로가 거부한 사과를 ‘두번이나 한 사죄’라고 하는 것이다. 나는, 이처럼 성폭력 피해당사자가 인정하고 받아들인 적이 없는 사과를 계속 ‘이미 사과했다’고 우기는 가해자들을 많이 봐왔고, 그것이 얼마나 피해자들을 고통스럽게 하는지도 봐 왔다.
이같은 박유하 씨의 주장은 ‘정의연과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은 침묵을 강요당하고 있다’는 기존 입장과 연결된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정말 침묵을 강요당해 온 것은 일본의 전시 성범죄를 고발하고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목소리였다. 위안소가 국가의 제도적 강간이자 전쟁 무기였다는 고발이다. 그 목소리는 피해자들의 용기와 연대자들의 투쟁 끝에 반세기 넘게 강요당했던 침묵을 뚫고 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다시 입을 다물 것을 강요받고 있다.
반면, ‘강제로 끌려간 소녀는 없었고 대부분 자발적으로 돈벌러간 성매매 여성이었다’는, ‘일본은 이미 사과와 보상을 했고 법적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는, ‘이제는 한일간 화해로 가자’는 목소리들은 침묵을 강요당했다고 보기 어렵다. 떳떳하지 못하거나, 설득력이 없어서 스스로가 위축됐을지는 몰라도, 적어도 한국사회의 주류세력에게는 항상 그들의 내심을 반영하는 환영할만한 목소리였다.
따라서 “현재 한일관계 악화 배경에는 위안부 문제가 있다”는 박유하 씨는 과연 누구의 관점에서 어떤 목소리를 삭제하고 어떤 목소리를 복권하려는 것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거기에는 한미일 동맹과 한일화해의 관점은 보이지만 피해자의 관점은 잘 보이지 않는다. 만약 베트남에서 어느 학자가 ‘베트남에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과 전시 성폭력에 대해 한국 정부의 법적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고 주장한다면 그게 피해자의 관점이겠는가.
덧붙여, 요즘 정의연 마녀사냥에 동조하는 '노동자연대' 동지들에게도 한마디하고 싶다. '노동자연대'는 거의 특집 수준으로 정의연 비판글과 동영상 강연까지 계속 쏟아내고 있는데, 그 근거는 대부분 수구언론들이 제기하는 의혹들을 기정사실화하는데 바탕하고 있다. 정의연 활동가들의 연봉 수준을 거론하더니, 심지어 고 손영미 소장님에 대해서도 의혹을 제기하고 검찰을 변호하는 주장까지 하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아가, 정의연만이 아니라 고 노회찬 의원도 마녀사냥의 희생자가 아니라 부정이 문제였다고 우긴다. 이것이 과연 반자본주의 급진좌파가 취할 태도란 말인가? 90년대, 정치적 차이점을 뛰어넘어 누구보다 앞장서 한총련 마녀사냥에 반대하던 모습으로 나에게 커다란 매력을 줬던 극좌파 조직이 왜 이렇게 급변했는지 이해가 안 된다. 재정과 회계의 철저하고 투명한 보고와 공개를 말하며 정의연을 비난하기 전에, 스스로에게 그런 잣대를 적용해 보면 어떨지 의문이 들지도 않는가.
#힘내라정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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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윤
·
대부분 ‘강제로 끌려간 소녀’가 아니었고, 성매매의 일종이었고, 일본 정부보다 업자들에게 주된 책임이 있고, 일본 정부에게 법적 책임을 묻기는 어렵고... 여기서 박유하 교수는 기존 주장을 반복하면서 나아가 이번 “한일 합의는 일본이 사죄와 보상적 의미를 공식적으로 표명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긍정 평가한다.
여러 가지로 납득이 안가지만, 박유하 교수나 김규항 씨 등이 ‘소녀상’ 이미지를 문제삼는 것은 정말 말이 안 된다. 예컨대 모든 시리아 난민들이 쿠르디처럼 바닷가에서 죽은 순수한 어린아이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쿠르디라는 상징을 보면서 슬퍼한 사람들은 그걸 모르는 바보들이 아니었다. 민족주의에 갇혀 계급과 젠더를 놓치고 있다고 쉽게 다른 사람들을 재단하기보다는 자신이야말로 계급과 젠더를 민족억압과 억지 분리하며 길을 잃었다는 점을 돌아봐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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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강제연행, 박유하 교수의 반론
[토요판] 뉴스분석 왜? 법적 책임의 도그마에서 벗어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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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윤
·
‘한일관계 개선의 걸림돌’ 취급하며 할머니들이 죽기를 기다리는 듯하던 일본과 한국의 지배자들이 최근 ‘위안부’ 문제라는 ‘걸림돌’을 치워버리려 용쓰고 있다. 일본의 재무장, 한미일 군사동맹 구축, 중국 포위라는 큰 그림을 완성시키려는 미국의 압박도 클 것이다.
지나간 제국주의와 전쟁의 시대에 희생자였던 여성들이, 이제 다가오는 제국주의와 전쟁의 시대에 걸림돌 취급을 받고 있다. 특히 일본의 호전적 우파가 큰 거부 반응을 보이는 것은 위안부 소녀상인데, 일본 제국주의가 무슨 짓을 했고 앞으로 하려는지 잘 상징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상황에서 박유하 교수와 <제국의 위안부> 논란을 돌아보게 된다. 박유하 교수는 최근 재판부에 제출한 최종변론문에서도 다시 기존 논지를 반복했다. “한 위안부할머니는 저에게 ‘위안부는 군인을 돌보는 사람’이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강제연행은 없었던 걸로 안다’고 말씀하셨습니다....어떤 이야기들은, 여전히 침묵을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고발을 당하고 재판정에 선 것을 보면 마치 “침묵을 강요당하고 있다”는 박유하 교수의 말이 맞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과연 한국 정부와 메이저언론들이 모두 박유하 교수같은 ‘화해론’을 비판하며, 그 반대편에서 정대협의 수요 시위를 돕고 소녀상 건립에 앞장서고, 반제국주의적 역사관과 역사교육을 장려해 왔는가? 오히려 한국 국가와 주류 지배자들은 박유하 교수의 화해론이 반갑고, 일본 국가와 학계처럼 이것을 키워서 ‘한일관계 개선’에 이용하고 싶을 것이다.
여전히 잘 들리지 않는 것은 위안부가 일본제국주의가 조직한 제도적 성폭력이었으며, 일본 국가의 법적 책임 인정과 사과, 국가 차원의 배상,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를 위한 재무장 중단 등을 통해서만 진정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목소리다.
따라서 소송은 반대한다 하더라도, 박유하 교수가 마치 국가 탄압을 받는 것처럼 볼 수는 없다. 성폭력 2차가해성 발언으로 피해자에게 고소를 당한 사람이 국가 탄압을 받고 있다고 볼 수 없듯이. 그래서 일부 지식인들의 양비론적 태도는 아쉽다.
만약 베트남에서 한 학자가 ‘베트남 여성들은 강제로 끌려간 것은 아니며 일부 한국군과 동지적 관계였고 한국 정부의 법적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는 책을 내서 고발을 당했다면, 그 학자의 학문의 자유를 옹호하는 성명을 내는 게 한국 지식인으로서의 자세일까?
물론 민족주의는 한계가 있지만, 인종적 억압과 성적 억압을 계급적 착취와 연결해야 하듯이 민족적 억압도 마찬가지다. 박유하 교수 등은 ‘정대협의 협소한 반일 민족주의’를 비판하지만, 2주전 <김어준의 파파이스>에는 정대협의 베트남 연대 활동이 방영됐다.
그걸보면 정대협 할머니들이 베트남에서 한국군이 저지른 학살에 사과하고 연대하는 데 누구보다 일찍이 앞장섰다는 걸 알 수 있다. 팔레스타인 민중과 콩고 내전 희생자와도 연대해 온 걸 알 수 있다. 이 내용을 보면서 진행자인 김어준은 “할머니들의 정신은 지식인들의 얄팍한 글 너머 멀리 가 계시네요”라고 감탄했는데, 정말 그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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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윤
·
“<제국의 위안부>는 단순히 여태 알려지지 않았던 위안부의 새로운 면모들을 탐색해 보고자 쓴 책이 아니다... “위안부를 대상으로 한 강간이나 폭력이 공식적으로는 금지되고 있었으니 ‘국가’가 그 범죄를 저질렀다고는 말하기 어렵다”(박유하 2013 : 217)는 것 다시 말해 일본은 법적으로 전쟁범죄를 저질렀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일본 ‘황군’의 명예회복과 전쟁범죄의 축소 은폐는 지금 일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보통국가”화와 공세적인 군사 정책을 더욱 용이하게 만드는 효과를 낳을 것이며 이는 동북아시아에서 일본의 상위파트너인 미국의 힘을 더욱 강화하게 될 것이다.
“진정으로 택일을 요구하는 질문은 ‘일부의 이야기냐 모든 이야기냐’ ‘큰 이야기냐 작은 이야기들이냐’가 아니다. 그것은 ‘억압의 질서 위에서 말할 것인가, 피억압자들의 투쟁 속에서 말할 것인가’이다.”
ANOTHERWORLD.KR
피억압자의 말로 피억압자를 공격하기: <제국의 위안부> 비판
류한수진 [편집자 -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는 뜨거운 논쟁을 일으켜 왔고, 일부 진보적 지식인과 좌파 언론마저 박유하 교수의 논리를 옹호하는 혼란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글은 박유하 교수의 주장과 논리가 왜 학문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결코 용납되기 어려운 잘못인지를 다소 길지만 매우 날카롭게 조목조목 짚고 있다.] '위안부' 피해생존자가 그린 그림 들어가며 ‘서브알턴은 말할 수 있는가?’ 사회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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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윤
·
박유하 교수는 자신이 나름 위안부 문제의 계급적 측면을 지적했다고 보는 듯하다. 분명 ‘업자’들은 같은 민족의 가난한 밑바닥 계급에서, 가장 약자인 여성들을 착취한 공범이었다. 한국 지배계급도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 미군 기지촌에서 비슷한 범죄를 저질렀다. 그러나 이로부터 박유하 교수는 완전히 잘못된 방향을 끌어낸다.
“한국이 '요구'하기 보다 일본이 주체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미움이라는 트라우마에서 해방되기 위해...아시아의 평화를 위해서는 그런 적대와 증오를 키우는 담론들을 넘어서야...천황제 폐지를 향한 ‘일본 사회 개혁’의 지향보다 위안부 문제 자체에만 집중했다면 위안부 문제의 해결은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있지도 않은 한국 민족주의 부르주아지와 단절하는 게 아니라, 일본 제국주의에 봉사하는 논리로 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민족주의적 반제국주의에 대한 대안은 국제주의적 반제국주의일 뿐이다. 레닌은 “모든 민족적 억압이나 불평등에 반대해 투쟁하지 않는 사람은 마르크스주의자가, 심지어 민주주의자도 아니다”라고 했다.
지금, 아베의 해석 개헌과 침략 역사 부정에 맞서 싸우는 일본 민중들이야말로 진정으로 노동자 국제주의를 향한 길을 닦고 있다. 박노자 교수의 말처럼 “위안부는 국가적인, 제도화된 강간”이다. 아래 윤명숙 전임연구원도 "위안소...문제의 본질”은 “국가 폭력, 즉 국가 범죄”라고 말한다.
PRESSIAN.COM
"위안부 아니라 위안소 문제, 명백한 국가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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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윤
·
정치적 입장과 태도는 논리와 이성뿐 아니라 감정을 기반으로 한다. 지금 미국에서 조지 플로이드를 위한 정의를 요구하는 사람들을 이끄는 것은 참을 수 없는 분노일 것이다. 기성언론들의 윤미향 죽이기와 조리돌림을 보면서 자주 느끼게 된 것도 분노였다.
마사 누스바움은 최근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자신과 정치적으로 거리가 먼 영국 총리 보리스 존슨마저 코로나19 환자가 됐을 때는 아침마다 그의 생존을 검색해 보며 걱정했던 경험을 말한다. “누구나 당할 수 있는 불가항력적인 힘에 타격을 입은 사람들에게 공감하지 않을 방법이란 없습니다. 연민의 마음을 거부하기란 여전히, 정말로 힘이 듭니다.”
하물며 진보적 사회운동의 일부였던 윤미향 의원에 대해서는 더할 수밖에 없다. 나와 같은 인간이 아니라고 타자화하지 않는 이상, 내가 그 처지라면 어떨까하는 심정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언론의 조리돌림과 몰아가기에서 ‘누구 한 명이 죽을 때까지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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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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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하와 <제국의 위안부>, 무엇이 문제인가?
일시: 9월 6(화) 저녁 7시 30분
장소: 종각 윙스터디(종각역 4번 출구) D1번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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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OTHERWORLD.KR
토론광고) 박유하와 <제국의 위안부>, 무엇이 문제인가
박유하와 <제국의 위안부>, 무엇이 문제인가? 일시: 9월 6(화) 저녁 7시 30분 장소: 종각 윙스터디(종각역 4번 출구) D1번방 발제: 류한수진(다른세상을향한연대 실행위원)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는 뜨거운 논쟁을 일으켜 왔고, 일부 진보적 지식인과 좌파 언론들도 박유하 교수의 논리와 입장을 옹호하면서 다양한 측면의 토론이 진행돼 왔습니다. 지난해 반역사적 한일 합의에 대한 강력한 반대 운동이 지속되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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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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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 교수는 정말 보기드문 지식인이다. 박유하 교수를 비판하면서 이 나라의 인문사회학계와 학자들을 “수입상과 고물상”으로 분류하는 그 솔직함과 대담함. 이어서 사민주의를 “깨져버린 꿈”이라고 평가절하하며 “자본주의를 넘어선 미래”를 말하는 그 용기. 이런 거침없음에 일부 지식인들은 박노자 교수를 불편하게 생각하고 못마땅하게 여기는 듯하지만, 그의 급진성과 진정성은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다.
아래 박노자 교수의 생각에도 많은 부분 공감하지만 사족도 달고 싶다. 종자본주의, 종제국주의자들이 벌이는 ‘스탈린주의’ 마녀사냥은 정말 역겨운 것이다. 일부 좌파마저 이런 시류에 타협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스탈린주의 사회체제가 불가피했다거나, 긍정적 면이 있었다는 의견엔 동의할 수 없다. 인간을 억압하고 자유를 억누르는 어떠한 체제도 불가피하지 않다. 스탈린주의 체제는 ‘일국사회주의’가 결국 세계자본주의 경쟁 체제의 일부가 된 과정으로 분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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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주의'에 대한 정리
국내에서 느끼는 부분 중의 하나는, "스탈린주의"이라는 말만큼 무서운 사상적 무기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파는 특히 좌파민족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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