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으로 신음하는 한국 사회, 둘로 분열된 국민들 적대와 증오심만 난무(2)
크리스챤월드리뷰
승인 2019.10.29
3) 독재와 민주세력의 갈등 해소
독재의 명분은 전쟁을 일으킨 공산세력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고 한반도의 공산화를 막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 가장 시급한 독재정부의 과제는 가난을 물리치고 잘사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었다. 군사독재의 기간이 길게 지속되면서 그런 명분에 참여하는 반공·산업화세력도, 이에 대응하는 민주세력도 모두가 그 층을 두텁게 쌓았다. 독재정권의 탄압은 심했고 그에 대응하는 민주세력의 투쟁도 격렬했다. 결과적으로 독재체제는 무너졌지만 양측의 대결은 정권투쟁으로 바뀌면서 대결의 방법은 독재탄압과 민주투쟁의 방식을 답습했다. 더구나 정권투쟁에 지역감정과 대북정책이 얽히면서 이를 해소하는 문제는 복잡도가 지수적으로 증가했다. 불행하게도 정부의 출범과 함께 독재가 시작되면서 양쪽 다 민주적인 정권투쟁 방식을 배우지 못했다. 군사독재 시절 국민들은 민주주의 정신과 남북 화해를 배우기보다 반공주의에 의하여 북한을 적대시 하고 반공 사상에 세뇌되어 진정한 민주주의 사상을 배우지 못한 것이다. 이러한 일방적인 이념에 세뇌되어 오늘날까지 남북한이 서로 화해하지 못하고 갈등과 적대감정만 키어 온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은 미미했고 성과도 없었다. 독재정권이 무너지면서 민주화세력의 일부가 산업화세력에 유입되어 부분적인 인적교류가 이루어졌지만 이미 무너져버린 신뢰와 오랫동안 쌓인 적대감은 그런 정도로 해소될 수 없었다. 독재의 기간만큼 민주화 기간이 지나면서 정권이 상호 몇 차례 바뀌었지만 두 세력 간의 갈등은 ALL OR NOTHING 게임이 되어 오히려 국가분열을 걱정할 수준까지 심화되고 있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다음세대들의 교육에까지 이런 분열의 씨가 뿌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세대가 지나면 이 갈등의 문제가 해소될 것이라고 기대하기가 어려워 보이는 이유이다.
이런 정치세력 간의 갈등에서 한국교회는 우파에 기울었다. 독재와 민주가 반공과 친북으로, 또한 통일과 반통일, 그리고 자본가와 노동자 문제가 뒤섞이면서 한국교회 목회자들은 다양한 선택을 한다. 근본적으로 기독교가 자유와 반공을 추구한다는 면에서는 우파일 수밖에 없고 가난한 자를 도와야하고 민주정치를 추구한다는 면에서는 좌파일 수밖에 없는 복합성을 띄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일부는 산업독재의 편에, 일부는 민주화 세력 편에 적극 참여하면서 교회가 어느 갈등에도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게 되었다. 현대 사회는 과거 동서 냉전체제의 핵심이었던 이념이 아니다. 현대 사회에서 이념전쟁이 종식되고 새로운 인류 인류공동체라는 가치관이 세계 모든 나라의 국민들에게 퍼져있다. 이재 어느 국가도 인류라는 공동체를 우선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국가 이익을 위해 나아갈 수 없다. 낡은 사상인 이념보다 기독교 가치관에 따른 인류공동체 정신을 활성화 시키고 이를 실천하는데 모든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교회의 사명이 더 중대해 진 것이다. 인류 공통체 정신은 오직 기독교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교회의 담을 높이 쌓고 개인구원에 집중하면서 교회의 부흥에 집중하게 되었고 민주세력에게는 하나의 이익집단으로 개혁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교회마저 이를 중재하고 해결할 역할을 담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독교 가치관을 다시 회복하는 길 뿐이다. 교회다운 교회는 화해와 용서 그리고 사랑과 협력이다.
4) 지역갈등의 해소
과거 집권세력이 특정지역 중심의 개발정책을 추진하면서 그 외 지역 출신 정치인과 관료의 등용을 기피함으로써 촉발된 지역갈등은 국론 분열의 핵심 원인이 되면서 정치권에서도 해결하려고 노력을 기울이고 있기는 하다. 그간 상대적으로 개발에서 소외되었던 지역을 위한 예산을 투입하고 산업시설을 유치하면서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정책들을 펼치기도 한다. 하지만 지역별 일인당 자산의 규모에 볼 수 있듯이 한번 기울어진 균형은 쉬이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정치적 소외 및 잊을 수 없는 탄압을 받았던 지역에서는 어떠한 노력도 별무소용이란 것을 다 알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지역갈등을 정권쟁취에 활용했다. 한 동안 지역별로 어느 한쪽이 총선과 지방선거에서 독식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이와 같이 지역갈등으로 분명한 정치적 이득을 보는 면이 양측에 있기 때문에 정치권의 지역갈등 해소는 구호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일 수밖에 없었고 앞으로도 특별한 해결책을 정치권에 기대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와는 달리 한국교회의 지역갈등 해소를 위한 노력은 돋보인다. 한국교회도 지역별로 교세가 다름으로 인해 교세가 약한 지역이 교권 경쟁에서 계속적으로 밀려나자 지역소외 현상이 나타났다. 이런 현상이 교회의 통합과 소외지역의 교세확장에 유익하지 않다고 판단한 한국교회(통합교단)는 교회의 대표를 지역별로 순환 선출하는 방법을 채택한다. 이런 결정을 통해 지역별로 지도자를 배출하며 상호간에는 존중하게 되었고, 기대했던 대로 그 지역에서 교회의 위상을 높이고 교세를 확장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또한 영남과 호남의 교계지도자들이 매년 정기적으로 공동 교류모임을 가지며 상호 강단교환을 통해 다른 지역의 정서를 이해하는 노력을 지난 50여년동안 기울여서 교회 내에서의 지역감정을 없애는 성공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 물론 이런 교회에서의 성과가 사회와 정치에 곧 바로 적용되기는 어렵지만 갈들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연구하고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5) 빈부갈등 해결
우리사회가 건강하려면 빈부의 격차가 줄어들어야 한다는 목표에는 어느 누구도 반대하지 않는다. 성장을 우선하여 파이를 키우는 것이 실질적인 빈부격차를 줄인다고 주장하는 세력도, 이제는 분배를 강화하여 저소득층의 가계소득을 높여서 생활안정과 소비지출을 늘려야 생산이 활발해져 기업이 성장한다는 세력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두 가지의 접근방법이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서로 충돌하며 정쟁이 되면서, 어느 편이든 정권을 잡으면 자신들의 정책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서로 극단적인 정책들을 시행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그 결과 역설적으로 빈부의 격차가 커지는 현상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빈부격차가 갈등의 원인이 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갖지 못한 자는 가진 자들이 비정상적이고 불법적인 방법으로 부를 축적했다는 의심을 하고 있고 가진 자들은 갖지 못한 자들이 가난한 이유는 기회를 잡을 능력이 없거나 게으르기 때문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불신을 없애기 위해서는 기회와 노동의 평등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최근 우리사회에서 특권층의 특혜와 대물림 그리고 갑질을 해소하려는 노력은 상당히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어 보인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사용이 전 세대에 걸쳐 보편화되고 누구든지 자신의 의견을 쉽게 표출할 수 있게 되면서 불평등의 사례들을 감시하는 것이 쉬워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무한경쟁으로 내 모는 자유주의 경제와 균등분배에 중심을 두는 사회주의 경제가 융합되어야 해결할 수 있는 갈등이다.
6) 이주민과 종교 갈등 해결
우리사회가 이주민들을 어떻게 수용하고 차별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할 것인지는 또 다른 갈등요소를 줄이기 위해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할 문제가 되었다. 특별히 탈북민들이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는가는 통일을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이주민들과 공존공영 할 수 있는 가장 최우선 과제는 법적으로 그들의 지위를 명확히 보장해주는 것이다. 또한 이들이 정착할 수 있게 사회적인 분위기를 조성함과 함께 사회활동에 적극 참여하도록 하여 우리 사회의 일원임을 스스로 확신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치권과 함께 교회도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이주민들의 노동환경 개선 및 인권보장을 위한 제도를 갖추어가고 있고 특별히 우리국민과의 차별 없는 임금제도는 큰 발전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다문화 가정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적 방안들은 정치권이 지속적으로 개선해가고 있음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이주민들이 실질적인 부딪치는 문제들은 그들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사회활동에 그들을 적극 참여시킴으로써 해결될 수 있다. 이를 위해 어떤 기관보다도 교회가 앞장서서 그 방안을 실행하고 있음은 인정해주어야 할 것이다. 지역의 특성에 맞는 이주민 정착 지원 및 사회 참여 유도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그들이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게 하는 교회의 노력이 우리사회에 확산되게 하는 일은 정치권과의 협력이 절실한 부분이다.
이주민들과 함께 유입되고 있는 이슬람교에 대한 기독교의 걱정은 특별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이미 30여만명에 이르는 교세를 이룬 이슬람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계속적으로 견지할 수 없다. 실제적으로 산업계에서나 정치권에서는 이들의 유입을 환영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과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지를 연구해내야 하는 숙제를 한국교회가 안게 되었다.
7) 세대갈등 해소
현실적으로 세대 간의 갈등이 해소될 수는 없다. 세대갈등은 가정과 학교에서 주로 표출되고 정부정책에 대한 찬반으로 표출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이들이 극심한 사회문제로 비화되는 경우가 흔치 않아서 이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들도 특별히 보이는 것이 없다. 그래서 세대갈등 문제는 사각지대가 되어있다.
그러는 사이 가정이 깨지고 학교 교육이 비정상적이 되어가고 있다. 한 민족의 역사와 전통, 그리고 문화는 가정에서 계승되는데 부모세대와 자식세대의 대화가 단절되면서 그 가정의 가풍만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문화가 대를 이어가지 못하게 된다. 가정과 함께 같은 역할을 해온 학교에서도 선생의 역할이 없어져가면서 가정에서와 똑 같은 현상이 벌어진다. 부모들이 선생의 권위를 무시하듯이 학생들이 선생을 무시하면서 학교교육은 망가진다. 선생들의 권위가 무시된 학교에서는 일반 사회와 같이 힘 (그것이 재력이든 완력이든 조직력이든) 있는 학생이 지배하게 된다.
이 문제의 해결은 교회에 기대할 수밖에 없다. 가정과 학교가 아닌 조직에서 다음세대들을 모아 교육하는 곳은 교회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통과 역사, 문화의 계승을 교육하는 곳은 교회밖에 없기 때문이다. 교회학교를 통해 최소한 신앙적인 측면에서 가족의 가치, 부모와 자식 관계의 의미를 교육해야한다. 배우는 자와 가르치는 자의 도리를 깨우쳐 주어야한다. 부모세대와 자식세대가 같이 예배하며 공통분모를 키워가는 것이 세대갈등을 최소화하는 모델이 ㅇ될 것이다.
3. 요셉의 갈등 해결 리더십
앞에서 정리한 것과 같이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갈등을 줄여보기 위한 정치권의 노력이 대부분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말았다. 정치권은 갈등의 피해자들을 치유하기 위해 개별사건별로 보상해주는 방법을 쓰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포괄적인 접근방법을 통해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를 덮고 가려하기도 했지만 때로는 더 큰 갈등을 만들어내고 말았다. 정치적 접근들이 거의 성과가 없고 오히려 갈등이 커지거나 잠복했다 다시 나타나는 것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로 인해 정책이 바뀌기도 하고 제시된 방안 대부분이 자신들의 관점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어느 한쪽이 어떠한 이유든 포기나 양보하지 않으면 사람이 지혜를 내어 만드는 방책들로 모두가 만족하는 해결방안을 만든다는 것은 한계가 있음을 역사는 보여준다.
그렇다고 우리의 갈등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멈출 수는 없다. 지금 이 세대는 갈등의 구조 속에서 벗어나기 어렵다하더라도 다음세대에게까지 넘겨줄 수는 없다. 그럼 어디에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까? 그나마 사회적 갈등을 풀기 위한 노력에서 작은 성과라도 거둔 것은 종교가 내놓은 방법이다. 따라서 그 답을 구약의 인물인 요셉에게서 찾아보려한다. 성경의 인물인 요셉을 특정하여 관심을 갖는 것은 그의 삶이 어느 누구보다도 많은 고난을 경험했고 이것들을 성공적으로 이겨내며 자신이 섬기는 나라와 심지어 주변 국가들도 기근의 위기에서 벗어나게 했고 가정적으로도 자신을 죽이려던 형제들과 화해와 평화를 이루어냈기 때문이다. 요셉이 보여준 리더십을 다음 세대에게 훈련시켜서 그들의 손으로 갈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1) 요셉의 배경
요셉은 인생을 가장 요령있게 살았던 야곱의 12 아들 중 11번째로 태어나서 아버지로부터 가장 큰 사랑을 받았던 인물이다. 증조할아버지인 아브라함은 당시 세계최강국인 바빌로니아의 중심지인 우르에서 적대국 이집트와의 접경지 이방인의 땅인 가나안으로 이주했다. 이후 100년이 지나면서 아버지 야곱은 그 지역의 족장으로 입지를 다졌고 재력도 튼튼하게 갖게 되었다. 그런 안정된 상황에서 늦게 얻은 아들이었으니 요셉에게는 무엇이든 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상상해보면 그는 어려서 아버지의 품에 안겨 아버지가 들려주는 증조할아버지 아브라함과 할아버지 이삭, 그리고 아버지 야곱 자신의 인생역정과 어떻게 그 자리까지 왔으며 그 과정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축복해주셨는지를 수도 없이 들으면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서, 고조할아버지 아브라함은 다신교를 섬기는 지역에서 부유하게 살다가 누군지 모를 신(나중에 자신이 하나님을 알게 하심)의 '떠나라 내가 너를 복지에 인도할 것이다'라는 직접적인 음성을 듣고 짐을 싼 절대 믿음의 사람이었음도, 하나님의 인도에 따라 멀고 긴 유랑의 길을 떠돌면서 여러 민족들과 때론 어울리며 때론 전쟁을 치르며 갈등을 이겨낸 역경의 여정도, 같이 여정을 출발했던 조카 롯과 재산 갈등으로 헤어져야 했던 과정도, 늦게 얻은 할아버지 이삭에게 장자권을 물려주기 위해 이방여인에게서 얻은 큰아들을 내치는 일도 있었음을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할아버지 이삭의 이야기에 이어 아버지 야곱이 쌍둥이 형 에서에게서 팥죽으로 장자의 명분을 얻어낸 일, 그로 인해 형에게서 도망쳐서 24년을 숨어살면서 요셉의 어머니와 결혼하게 되는 과정, 어떻게 부자가 될 수 있었는지, 그리고 형 에서와 어떻게 화해할 수 있었는지도, 가나안 지역에서 원주민들과의 마찰을 어떻게 극복하고 정착하였고, 재산을 모으게 되었는지를 재미있게 들으며 가슴에 새겼을 것이다.
아버지 무릎 위에서 듣고 배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이야기 속에서 그는 믿음의 역사와 이민족과의 갈등 해결 방법 등 그에게 앞으로 닥칠 많은 역경과 갈등을 이겨낼 지혜를 터득했을 것이다.
2) 꿈에서 시작된 시련과 갈등들
그렇게 행복하던 요셉에게 다가온 시련의 시작은 자다가 꾼 두 번이 꿈이었다. 첫 번 꿈에서 아버지와 형제들이 묶은 벼 집단들이 자신이 묶은 것에 머리를 숙이는 꿈을 꾸었고 두 번째 꿈에서는 해와 달과 별들이 모두 자신의 별을 향하여 절하는 모습을 보았다. 요셉은 자신의 미래를 생각해보지 못하던 때라 그 꿈의 내용이 궁금하여 아버지와 형제들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의 고난은 이 꿈을 괘씸하게 생각한 형제들의 미움에서 시작된다. 시기가 미움으로 미움이 분노로 바뀌게 된 것이다.
첫 번째 형제들이 그를 죽이려고 우물에 던져버린 것이다. 요셉은 형들이 미워하게 된 것도 모르고 일하려고 멀리나간 형들을 찾아갔다가 봉변을 당했다. 성경역사 최초의 살인에서 형이 이유도 모르는 아우를 죽인 것이었던 것처럼 형들에 의해 영문도 모른 채 내던져진 요셉은 그 이유를 찾아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가 형들을 자신과 차별대우했다는 것도, 자신만 입고 있는 채색 옷을 자랑한 것도, 그리고 결정적으로 꿈 이야기를 하지 말았어야 하는 것도 다 생각해냈을 것이다. 갈등의 원인이 불평등과 차별대우에 있었다.
두 번째 시련은 우물에서 건져져 적대국인 이집트 군인의 집에 노예로 팔린 것이다. 그는 우물에서 건져질 때 일말의 희망을 가졌을 것이다. 그리고 살려주기만 형들의 화를 풀어주고 사이좋게 지내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기대는 무너지고 멀고 먼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가게 되었을 때 그는 자신이 잘못했다는 생각은 사라지고 형들의 처사에 분노했을 것이다. 족장의 사랑받는 아들에서 다른 족속의 노예가 되면서 그는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없는 무기력한 존재임을 알았을 것이다. 요셉은 흥정할 물건이 되어 있었음을 알고 자포자기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분노와 자포자기를 넘어 주인집을 위해 최선을 다해 일했다. 그가 아버지의 무릎위에서 배웠던 모든 지혜를 동원하여 주인집을 부자로 만들어 주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것을 챙기려하지 않았다. 노예의 신분에서도 집사의 신분에서도 어떤 상황에서도 주어진 일을 성실함으로 감당했다.
세 번째는 주인집에서 누명을 쓰고 죄인이 되어 감옥에 갇힌 것이다. 그가 성실함으로 충성을 다한 주인집에서 주인의 부인을 겁탈하려했다는 누명을 뒤집어쓰고 주인에게 해명의 기회도 없이 감옥에 갇혔을 때 그는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형제들에게 버림받아 이국땅에 팔려온 것도 모자라 성심을 다한 주인집에서 죄인이 되었다는 현실을 그는 담담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심지어 죄인으로서도 같은 죄수들을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한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할 수 있게 했을까? 그것은 상황에 대한 긍정적 판단력이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결백함과 성실함을 믿었다. 그리고 그 결백함이 언젠가는 명백히 들어날 것이라는 긍정적 확신을 잃지 않았다.
네 번째는 바로왕의 꿈을 해몽해야하는 일이었다. 감옥에서 불려나와 그 큰 나라에서 어느 지혜자도 풀지 못했던 왕의 꿈을 해석해내야 했다. 그 나라의 지배층인 주술사들과 관료들 그리고 학자들이 모두 요셉만을 바라보았다. 노예에다 죄수가 무엇을 하랴하는 무시, 혹시나 맞추면 자신들이 밀려나게 된다는 경계심으로 가득 찬 사람들뿐인 중앙에 섰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 확신이었다. 그동안 그가 들은 꿈을 한 번도 잘못 해석한 적이 없었다. 아무리 많은 적들이 나를 둘러싸고 나는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리고 그 자신감으로 주변의 의심과 경계심을 걷어냈다.
다섯 번째는 총리가 되어 풍년과 흉년을 관리해야하는 것이었다. 꿈에서 본 것 같이 7년의 풍작과 7년의 흉작이 시작되면서 그 관리의 책임을 요셉이 맡았다. 비록 왕의 명령이 있었다하나 그는 적대국 변방에서 팔려온 30세의 젊은 이방인 노예 죄수 출신이다. 누구도 그의 명령을 따라 움직이려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그가 농산품을 다 관리한다고 전국에 창고를 짓고 모든 관료를 움직일 수 있었던 힘은 전국을 발로 뛰며 일일이 만나서 이렇게 하면 모두에게 이득이 된다는 설득하는 방법 말고는 없었을 것이다. 풍년이 끝나고 실제로 가혹한 흉년이 시작되고서야 그의 권위가 확립되었을 것이다. 그는 현장을 정확히 알았다. 그리고 만나서 진정성을 가지고 설득하고 함께 답을 찾았다.
흉년이 시작되면서 그에게는 모아놓은 식량을 7년 동안 적절히 풀어야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이집트의 백성들은 물론이고 적대국을 포함한 주변국들도 요셉만 바라보았다. 식량을 어떻게 푸는가에 따라 흉년이 끝나는 7년 후, 이집트 사회에 생겨날 변화도 주변 국가들과의 국제관계도 그는 고려해야했다. 그가 정한 원칙은 모두가 공존하는 것이었다. 흉년의 기간 동안 가난한 백성이 식량을 구하느라 땅을 빼앗기는 일도 없어야하고 적대국의 백성이라 하여 굶어죽는 일도 없어야 했다. 그리고 이 원칙에 합당한 정책들을 시행했다. 이제는 권위를 가지고 모든 관료를 움직일 수 있었고 모든 백성들이 그의 지시대로 움직였다. 그렇게 그는 주변국들도 끌어안았다.
여섯 번째는 자신을 적대국의 노예로 팔아버린 형제들을 어떻게 처분할 것인 가였다. 요셉은 기근의 시기에 식량배분의 절대권한을 가진 권력자가 되었고 형제들은 식량을 구하지 못하면 죽을 수밖에 없는 이웃나라의 약자가 된 상태에서 만났다. 요셉은 갈등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곧 자신이 그 자리까지 오게 된 모든 과정을 파노라마처럼 넘기면서 그 출발점을 만든 것이 형제들을 통한 신의 섭리였음을 인정하고 복수가 아닌 용서를 택한다. 그리고 형제들을 끌어안음으로써 그들이 진정으로 용서를 구하게 하여 화평을 이루었다. 아마도 억울한 누명을 씌워 그를 감옥에 보낸 집안도 같은 방법으로 용서했을 것이다.
3) 갈등과 시련을 이겨낸 요셉의 리더십
요셉이 어떤 사상과 신념의 리더십을 발휘했기에 이렇게 다양한 갈등과 시련을 성공적으로 해결하고 극복할 수 있었는지를 몇 가지로 살펴보면서 우리의 갈등문제 해결에 대한 단초를 찾아보자.
첫 번째는 역사와 자신의 삶을 주관하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것이다. 그는 선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역사는 하나님이 주관하시고 그의 선하신 계획에 따라 움직여간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특별히 그런 하나님께서 할아버지와 아버지에게 하신 것처럼 자신을 사랑하시고 어떤 역경가운데서도 지켜주시리라는 것을 믿었다. 고난을 당했지만 낙심하지 않고 정의로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꿈을 이루어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그의 생각과 행동을 지켰다.
두 번째는 문제의 본질을 보는 통찰력이다. 자신이 형제에게 미움을 사서 팔려가게 된 것은 부모의 차별대우였고 자신의 과시 때문이었다는 것을 안 것이다. 한 집안에서 부모가 어느 한 자식만을 특별히 사랑하는 것은 다른 자식들에게는 큰 상처이고 살인까지 조장할 수도 있음을 깊이 이해했다. 그리고 그는 왕의 꿈 이야기를 들으면서 국가적 사건임을 알아내고 살진 소와 마른 소에서 국가가 흥하고 망하는 풍년과 흉년임을 유추해냈다. 또한 풍년과 흉년이 백성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를 알아서 그들을 보호하는 정책을 펼칠 수 있었고 주변국들과의 평화를 이루는 도구로 사용할 수 있었다.
세 번째는 자신의 위치와 형편에서 최선을 다하는 진정성, 즉 소명감과 성실성이다. 요셉은 자신에게 어떤 일이 주어지든 소명의식을 가졌다. 노예의 신분에서는 주인집의 재산을 관리하는데 자신의 지혜를 총동원했다. 주인의 가족을 최고의 예를 갖추어 대했다. 그리고 재산을 크게 불려주었다. 감옥에서도 간수의 심부름조차 부모를 섬기듯 했다. 그리고 총리가 되서도 자신이 관리해야할 사람들을 섬겨야할 대상으로 생각하고 진심으로 이해를 구하려 아무리 먼 길도 현장으로 달려가서 그들과 함께했다.
네 번째는 화해와 용서의 실천력이다. 누구나 화해하고 용서하는 것의 필요성은 안다. 그러나 어떻게 하는 것인지는 모르고 있고, 실행에 옮기기는 어렵다. 요셉은 형제들과 갈등을 유발해서 죽음의 위기를 겪었고 노예로 팔리는 경험을 했다. 그리고 주인의 가족과 생긴 갈등으로 인해 감옥에 갇히기도 했다. 이민족 젊은이로서 총리가 되는 과정에서도 총리로 일하는 과정에서도 수많은 반대와 견제와 모함에 응대하여 싸우지 않았고 보복하지 않았다. 자신을 해하려했던 형제들을 먼저 용서하고 그들이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기를 기다렸다가 용서하고 가슴으로 품었다. 용서는 보복은 신의 섭리에 맡기고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고 잊는 것이고 용서를 구하는 것은 마음으로 무릎을 꿇고 용서해줄 때까지 하는 것이다.
다섯 번째는 상생의 미래를 바라보는 포용력이다. 요셉은 총리의 자리에 오르면서 이집트 내부뿐 아니라 주변의 이민족들까지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었다. 그는 그 힘을 지금 당장의 문제에 집착하지 않고 현재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면서 그 결과가 미래에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지를 바라보았다. 물자가 풍성할 때 백성들의 불만이 없을 수준의 비축을 생각해야했다. 흉년이 왔을 때 많은 식량을 준비해둔 지배층의 일반백성에 대한 횡포를 막고 보호해줘서 흉년이 지난 후 백성들이 도산하지 않을 방법을 생각하고 시행했다. 주변 민족들도 일거에 흡수할 수 있는 기회였으나 그들에게도 자기백성에게 하듯이 식량을 나누어줌으로서 기근이 지난 후 주변 국가들과 평화시대를 구가할 수 있었다.
4. 나가면서 (요셉의 리더십 교육)
우리사회가 겪고 있는 복합적 갈등의 원인을 완전할 수는 없지만 7가지 정도로 구분하여 정리해보았다. 그리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이 정치권과 교회에 의해 이루어졌고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두고 있는지도 평가해보았다. 살펴본 바와 같이 사람들의 지혜로 시행하는 방안들에는 한계가 있고 새로운 분쟁의 요소들이 포함될 수밖에 없어서 시대가 바뀌고 정권이 바뀌면 또 다시 새로운 갈등을 만들어낸다.
이런 현실 속에서 한국교회의 청년들에게는 이 땅의 평화로운 통일을 이루어내고 통일된 나라에서 모두가 공존하며 공영할 수 있도록 이끌어갈 사명이 주어져있다. 하지만 우리 교회는 청년들에게 이러한 사명을 일깨워주는 일도, 갈등해결 능력을 갖추게 훈련하는 일도 제대로 감당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제라도 한국교회는 우리 청년세대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지도자로 훈련시켜야한다. 어떤 리더십을 훈련시켜야 할지를 요셉이 당면했던 갈등들을 해결했던 리더십을 통해 정리해 보았다.
먼저 신앙적 역사관을 세우도록 교육해야한다. 요셉이 그랬던 것처럼 역사는 하나님의 주관적 계획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라는 역사관으로 문제를 바라보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래야 우리의 역사 속에서 발생했던 일들을 정리함에 있어서 모두를 품을 수 있는 일관된 방향을 정할 수 있다. 특별히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나를 도구로 사용하실 분명한 목적이 있으며, 주어지는 모든 역경은 나를 사용하기 위한 연단의 과정으로 믿는 훈련이 필요하다.
두 번째는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이해하는 통찰력을 훈련해야한다. 모든 문제의 발생원인은 외형적인 것과 내면적인 것이 있다. 그리고 대부분 내면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부풀어지면 외면적인 작은 충격에도 폭발하기 때문에, 가해진 충격만을 바라보고 해결책을 찾으려한다.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서 볼 수 있듯이 양측모두에게 수 십년씩 내재된 갈등은 피상적인 처방으로 해결되지 않으며 상처만 키우고 다시 덮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세 번째는 당사자들에 대한 진정성과 성실함을 훈련해야한다. 여기에는 소명의식이 필요하다. 주어진 문제의 심각성과 절박성이 동시에 인정되지 않으면 이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소홀에질 수밖에 없다. 아파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공감해야하고 문제를 일으킨 쪽의 입장을 이해하는 노력도 병행되어야한다. 요셉이 풍년시기에 식량을 모아두는 일을 함에 있어서 진실된 마음으로 성실하게 설득했고 흉년시기에 이를 견디기 위해 식량을 배분하는 일에 있어서 가지지 못한 자들의 마음을 성실함으로 인내했다. 자신이 맡은 일을 소명의식을 가지고 하지 않으면 이런 자세가 나오지 않는다.
네 번째는 화해와 용서의 구체적 방법을 훈련하는 것이다. 요셉은 자신에게 해를 가한 형제들과 자신을 감옥에 집어넣은 장군에게 아무런 죄를 묻지도 않았고 어떠한 보상도 바라지 않았다. 형제들을 불러 자신과 같이 생활하는 것으로, 그 장군을 역량에 맞는 일을 맡기는 것으로 품었다. 그들이 요셉에 대해 가질 수 있은 걱정과 미안함, 괴로움을 풀어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이 요셉에게 어떤 잘못을 했는지를 명확하게 깨닫고 요셉의 마음이 풀어질 때까지 목숨을 내어 놓을 것도 각오를 하면서 무을 꿇었다. 화해는 보상을 바라지 않는 용서와 용서해줄 때까지 무릎을 꿇는 마음이 만나 이루어진다. 용서는 실천할 때 이루어진다.
그리고 해결방안에 미래의 평화공존을 담보하는 포용력이다. 요셉은 적의 굶주림을 이용하여 그들을 지배하면 반드시 더 큰 적이 나타날 것을 알았기에 그들에게 굶주림을 면할 길을 열어주어 미래의 평화를 이루는 길을 선택했다. 가난한 백성들이 굶주림을 면하기 위해 자신의 아내도 자식도 팔아버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기근이 지난 후에 백성들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미래를 바라보는 상생의 포용력을 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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