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조년의 맑고 낮은 목소리] 축하해요:어둠과 빛의 자리에서
기자명 금강일보 입력 2025.01.07
한남대 명예교수
‘축하해요. ○○씨! 오늘 하루 그렇게 살아 거기 그렇게 있음에. 아~옴~~’
이런 문자를 연말과 연초에 몇 친구들에게 보냈다. 그것을 받은 친구들은 기뻐했다. 그렇게 일상을 살고 지금 그 자리에 그렇게 있는 것 자체가 축하받을 일이로구나 생각했다면서,
그 자신을 그렇게 축하하면서 뿌듯하여 기뻐했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 이 말로 우리나라 사람들을 축하하고 싶다. 지난 해 12월 3일 한밤부터 지금까지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고, 일도 보통 때처럼 정상으로 하지 못하고, 생각이나 활동과 판단을 하는 데 몹시 불안한 가운데서 특히 주말만 되면 시민들이 모이는 곳에 가서 신나게 춤추고 노래하고 몸 놀리고 웃고 분노하고 소리치면서 지낸 우리 시민들에게 ‘축하합니다’ 하고 큰 소리로 선한 기운을 보낸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 받은 것처럼 모두가 깜짝 놀란 가슴 쓸어내린 지 한 달, 그동안 깜짝했더라면 얼마나 깊은 나락으로 떨어져 곤두박질 칠 나라가 슬슬 회생의 길로 접어든 지금, 꼼꼼히 자신들을 살펴보고는 ‘아, 잘 했어’ 하고 축하할 일이라고 스스로 판단하는 그 맘이 얼마나 멋지고 뿌듯할까?
이제 곧 ‘지랄발광’ 하는 ‘미친 자식’이라는 험한 말을 그 깨끗한 입에 더 이상 담지 않아도 될 날이 온다는 기쁨이 얼마나 축하할 일일까?
최고통치자 자리에 있으면서 그것을 지킬 힘이 부족하여 엉뚱하게 ‘비상계엄’이란 이름으로 정변을 일으켜 내란을 벌인 대통령을 총알보다 빠르게 모여들어 밤새도록 지킨 주권으로 완전히 무기력하게 만든 그 놀라운 기백을 충분히 칭찬하고 축하해도 된다.
색색의 응원봉과 경쾌한 노래에 맞춘 춤사위로 구름처럼 몰려들면서 국회를 지켜 두 시간 만에 계엄을 백지로 돌려버린 그 시민들을 온 세계가 놀라면서 응원하고 칭찬하는 것을 들으며 ‘우리는 축하받아도 돼.’ 할 때 또 얼마나 뿌듯한가? 아찔한 위험천만의 일이었으나 미련한 것들과 지혜 있고 슬기롭고 덕스러운 사람들을 확연히 갈라주는 이 거대한 사건을 참 교육으로 준 역사의 흐름을 잘 받아들인 것이 또 얼마나 고맙고 축하받을 일인가?
이렇게 하여 잘났다고 스스로 뻐기고 우쭐대던 것들을 낡고 썩은 것으로 만들어 한물에 휩쓸어 버린 신선하고 산뜻한 젊은 정신들의 나타남은 또 얼마나 고맙고 희망차서 축하할 일인가?
한밤이 어두운가? 색색의 응원봉으로 밝힌다. 무장한 군인들을 명령하는 힘이 무섭던가? 그들 사람 속 양심을 깨우는 아주머니의 외침과 노래와 춤과 만담과 해학이 아늑하고 안전한 자리로 만들지 않던가? 눈내리고 바람불고 영하로 내려가던 날들이 무척이나 춥던가? 수십 잔 수백 잔씩 미리 결제해준 따뜻한 맘으로 몸과 맘과 언 땅을 녹여 따뜻하게 밤새워 앉을 자리로 만들어주지 않던가? 잠시 맡겨 일하게 만든 권력 우리가 도로 돌려받겠다는 외침에 영원한 권력을 누리려는 어리석은 욕심덩어리들이 산산이 부셔져 바람에 흩날려 한남동 구중궁궐 썩은 시궁창에 처박힐 때 권력의 무상함을 느껴 제 자리로 돌아올 위인은 어디에 있을까? 어딘가 몸뚱아리 다 드러내놓고 작은 대가리만 땅에 박고 안전하다고 느낄 그 어리석은 자는 어디에 있을까? 그것이 깔끔하게 정리될 것은 시간문제가 아니던가? 이제는 새길을 닦자고 가슴 펴고 당당하게 걷는 발걸음을 축하할 일이 아닐까? 값비싸고 시간과 정력이 많이 드는 체포와 탄핵과 헌법재판 따위의 복잡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 겸손히 ‘이제는 자리를 내어 드립니다’ 하고 그가 제 발로 스스로 나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먼지가루만큼이라도 용서받을 길이 거기에 있건만, ‘제 무덤 제가 판다’는 옛말처럼 스스로 제 들어갈 구멍을 팠으니 슬프긴 하지만 얼마나 고마운 일이요 축하할 일인가? 비상계엄 소식을 듣던 순간, 두렵고 떨리는 맘은 있었으나, 나는 ‘제 무덤 제가 팠구나’ 하면서 올 그날이 앞당겨졌다는 판단에 고마워했다.
장자(莊子)는 이런 이야기를 한다. 작은 웅덩이에 물이 말라 거기 살던 두어 마리 물고기들이 서로 물거품을 내어 몸을 적셔주더라는 것이다. 햇볕이 내려 쪼이니 그 물거품이 얼마를 견디며 몸을 적셔줄까? 거대한 민중의 바다를 떠나 철조망과 높은 벽과 경호인력으로 둘러싸인 집에 갇혀 몇몇이 서로 물거품을 뿜어 몸을 적셔주는 그 모습이 참 안쓰럽다. 정치가를 비롯하여 나라를 위해 일하겠다는 사람들은 모두 거대한 민중의 바다에 몸을 담그고 헤엄치며 사는 것이지, 메말라가는 물구덩이에서 호부작거리며 살 일은 아니다. 민중의 바다로 나온다면 넓은 품으로 받아주지 않을까? 미련하고 어리석은 자들은 마지막 물기가 마를 때까지 그렇게 거기 있겠지.
나는 새날 아침에 ‘까망속 감춰진 밝은 빛’이라 써보았다. 이것이 내가 보고 느끼는 우리의 현실이다. 지금은 매일매일이 불안하고 불확정한 속에서 어떤 일들이 어떻게 일어나 내 삶이 어떻게 펼쳐질지 모르는 깜깜한 밤의 짙은 안개 속을 헤매는 느낌이다. 그런데 이상스러우리만큼 내 깊은 속 어디에선가부터 안정된 고요하나 확실한 희망의 소리가 들린다. 까망속 감춰진 밝은 빛처럼 희망이 꿈틀거린다. 깊은 맘으로 축하할 일이다. 조금 고요하고 긴 숨으로 깨어서 본다면 어둠 속 안개는 떠오르는 해 아래 빠르게 사라질 것이다. 무서운 폭력 앞에서 비폭력 평화의 노래와 웃음과 춤사위의 몸짓과 따뜻한 맘씀이 얼마나 높은 시민들의 모습을 보여주었던가? 그런 기운 앞에서 케케묵고 낡은 권력과 명예욕에 사로잡힌 어리석고 미련한 자들이 어떻게 견딜 수 있겠는가? 이제는 깨어있는 시민들이 직접 일을 챙길 때다. 형식민주주의에 참 속알을 채울 귀한 시간이 앞당겨지는 것 아닌가? 깊은 어둠 속에서 비쳐 나오는 밝은 빛. 아, 깊게 축하할 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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