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01

- 야스다 시게루(保田 茂)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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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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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스다 시게루(保田 茂) 선생/

일본 유기농 운동의 대부라고 할 수 있는 야스다 시게루 선생께서 2박 3일의 짧은 일정으로 방한하시어, 어제 잠시 만나 점심을 함께할 수 있었다.
교베대학 시절 선생의 제자들인 김기섭, 정만철 박사와 일본에서 인연이 있던 김종숙 박사, 한살림을 만든 인농 선생의 부인 이옥련 여사와 따님, 그리고 가톨릭농민회와의 인연으로 만났던 괴산의 조희부 선생과 내가 자리를 함께했다.
선생은 올해 우리 나이로 87세이신데, 아마도 이번 방문이 마지막이 될 것 같다고 하신다.
나는 지난 봄 일본에서 잠시 만났을 때, 다음엔 한국에서 꼭 뵐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는데, 1년 만에 다시 뵙는 셈이다.
선생은 일본뿐 아니라 우리나라 유기농 운동, 생협 운동 등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주셨는데, 유기농과 도농직거래, 산직 운동 등을 통해 특히 한살림 운동과 가톨릭농민회의 생명공동체 운동에 큰 영향을 주셨다. 또 한국의 유기농·생명공동체 운동의 실무를 담당할 사람을 기르기 위해 선생이 직접 한국 유학생들을 유치하여 가르치셨다.
무위당 선생을 스승으로 여기시며 김영주 원장님과 이건우 선생, 한살림의 인농 선생을 형으로 모셨는데, 나도 그런 인연으로 선생을 형님으로 모시고 있다.
지난해 3월 말 교베에서 선생을 잠시 만나 저녁 식사를 하고 왔는데, 그때 썼던 글로 선생과의 인연을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여기에 다시 옮긴다.
“교베 산노미야역에서 야스다 시게루(保田 茂) 선생과 히다(飛田 雄一) 관장을 만났다. 야스다 선생과 히다 관장과는 코로나 이후 첫 만남이다. 가슴이 뭉클하다.
야스다 선생, 국경을 떠나 내가 마음으로 깊이 존경하는 형님이다. 그 인연을 이야기하려면 긴 시간이 걸릴 것이다. 나는 선생을 몸으로, 삶으로 가르치는 이 시대의 진정한 스승 가운데 한 분이라 생각한다.
역 근처, 선생의 단골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선생의 밝은 모습은 전과 크게 달라진 바가 없어 보인다. 심장 기능이 좀 약해진 것 외에는 다른 이상은 없다고 하신다. 고맙고 다행한 일이다.
1995년 1월, 한신대진재(阪神大震災) 때 “와서 보라”는 그 말씀에 따라 지진 현장에 도착했을 때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그 현장에서 형님이 내게 물으셨다.
‘모든 것이 무너진 자리에서 우리가 의지할 것은 무엇이고, 살아갈 길은 어떤 것인가?’
내가 이른바 생명운동이라는 영역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한 길을 걸어올 수 있었던 것에는 무위당 선생과 선배 형들이 계셨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야스다 선생의 이 한마디도 나를 그 길에 붙들어 놓은 힘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다.
지금 팔십 중반을 넘긴 나이에도 선생은 여전히 일본의 유기농 운동을 위해 현장을 다니며 농사법을 직접 가르치고 계신다. 그 가운데 하나는 유치원 아동과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밥 짓는 법’을 가르치는 일이다.
직접 솥을 가지고 가서 아이들과 함께 장작불로 밥을 지으며, 쌀과 밥, 농사, 땅, 생명의 의미와 중요성을 일깨우고 익히게 하는 것이다. 이 일은 대학 퇴직 후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16년째 계속하고 계신다.
선생의 지론은, 사람이 쌀과 밥의 중요성을 잃으면 사람답게 살 수 없게 되고, 이런 일은 정부에 의지할 수 없으니 결국 시민들이 나서서 직접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일과 함께 효고현 지역에서 도시에서 귀농·귀촌한 이들을 대상으로 직접 농사짓는 유기농학교를 12곳 만들고, 한 달에 한 번씩 그 학교들을 순회하며 함께 거름을 만들고 농사를 짓고 있다. 전에 나도 그 현장을 함께 가본 적이 있다.
올여름에 한국에 오시라고 초대했다. 형님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많다고. 고베대학 농학부에 계실 때, 특별히 한국 유학생들을 위해 애써 주셔서 선생의 제자들이 한국에 많고, 한살림과의 인연도 깊다.
무위당, 인농, 김영주 원장님, 야마네 형님 등 먼저 가신 분들을 이야기하며 이제는 형님과 우리 차례가 되었으니, 움직일 수 있을 때 가능한 자주 만나자고 말했다. 선생도 건강이 허락한다면 그러겠다고 말씀하신다.
히다 아우도 지금은 교베학생청년센터의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한일·한중과의 과거사를 바르게 하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고 한다. 모두들 마지막까지 나름의 역할을 열심히 하고 계신다. 고마운 일이다.”
(2024.03.31, 페이스북에서)

이번에 야스다 선생과 함께 온 일행들은, 선생이 그동안 진행해 오고 있는 12곳의 유기농학교 대표들이 중심이라고 한다.
이 학교의 대표들은 대부분 귀촌했거나 귀촌을 희망하고 있는 분들이라고 하는데, 모두 쾌활하고 활기차 보였다.
선생은 매주 3일씩 오전에는 강의하고 오후에는 실습을 하며 이 12개의 학교를 순회 교육하고 있다고 한다.
선생이 이 일에 주력하고 있는 까닭은, 일본 농업의 노령화와 후계 인력 부족으로 인해 앞으로는 소비자들도 농민들과 연계하여 함께 농사짓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최근 일본의 쌀 부족 문제는 1975년부터 추진해 온 쌀 감산 정책으로 쌀 생산이 크게 줄었고, 최근 들어 엔화 약세로 외국 관광객이 천만 명 넘게 증가하면서 쌀 소비량이 상대적으로 많이 늘어난 것에도 원인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농사짓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데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선생은 소비자들에게도 직접 농사법을 가르치며, 이를 통해 귀촌하도록 이끌어 내는 역할도 함께하고 있다.
아마도 이 일은 당신이 마지막까지 해야 할 과제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하셨다. (교베 대지진 때 선생도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하셨다며, 그때부터 선생은 남은 삶을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일에 바치겠다고 하셨는데, 이 일도 그런 것이라 싶다.)
야스다 시게루 선생은 내가 배우고 본받아야 할 스승이면서, 동시에 자상하신 형님이시기도 하다.
정치하는 자들이 한일 문제를 쟁점으로 삼을 때마다 나는 일본에 계신 분들과 함께 유기농 운동과 생협 운동을 중심으로 한 ‘한일 생명 교류회’를 떠올린다.
정치를 하는 자들은 통치를 목적으로 이웃과의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지만, 그럴 때마다 그것을 치유하고 함께하기 위한 노력은 언제나 따뜻한 가슴으로 품어 안는, 국경을 넘어선 생명의 연대였음을 새삼 돌아본다.
국경을 넘어선 따뜻한 마음과 선한 의지들이 함께할 때, 오랜 역사의 질곡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을 열어 갈 수 있으리라.
한국과 일본, 나아가 한중일 동북아 3국이 먼저 사이좋게 지내면서 역할을 나누고 서로를 도울 수 있다면, 지구촌 전체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으리라 싶다.
선생을 배웅하며 내년에 일본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선생의 고향은 황새를 복원한 지역으로도 유명한데, 그곳에 아주 좋은 온천이 있으니 그곳으로 초대하고 싶다고 하셨다.
그곳에서 황새도 보고 온천도 함께할 수 있다면, 그 또한 의미 있는 여행이 되리라 싶다.
야스다 형님의 건강과 국경 없는 세상을 생각한다.
(2025.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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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jin Pak
교베대학 -> 고베대학

保田 茂(やすだ しげる、1939年6月3日 - )は、日本の農学者農学博士神戸大学名誉教授、兵庫農漁村社会研究所代表。

来歴

[編集]

兵庫県出身。1973年、兵庫県有機農業研究会を設立。事務局長として有機農業の普及につとめる。1974年より「食品公害を追放し安全な食べ物を求める会」を組織し、安全な食べ物を求める消費者運動を推進。日本有機農業学会会長、日本有機農業研究会副理事長を歴任。農業経営・地域活性化分野で活動、農業経営学有機農業という新しい分野を切り開き、理論と実践を統合。最近では食育に取り組んでいる。
1985年、京都大学農学博士、論文の題は「有機農業の展開過程に関する経済的研究」[1]
2015年、兵庫県社会賞受賞[2]

著書

[編集]
  • 「有機農業の現代的意義と方法」1976年
  • 「産直ームラとまちの連帯―農業問い直しの提言」(共著) 1978年
  • 「日本の有機農業―運動の展開と経済的考察」1986年
  • 「有機農業運動の到達点」1994年
  • 「生き生きと農業をするための勇気」(編集) 2000年
  • 「農業聖典」(監訳) 2003年

etc

脚注

[編集]
  1. ^ 博士論文書誌データベース
  2. ^ 兵庫県/文化賞等四賞

===

일본의 유기농업역사
■일본유기농업의 시작
이번에는 일본 유기농업 발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해온 일본유기농업연구회를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일본유기농업에 대해 잠깐 알아보자.
일본 유기농업의 시작은 1950년대 이후 고도경제성장의 문제로 인해 나타난 각종 공해문
제와 그에 대한 시민단체들의 적극적인 관심 때문이었다.
1956년에 이미 농업기술연구소의 연구자에 의해 유기수은계 농약이 볏짚과 왕겨에 잔류
해 있음이 밝혀졌고(일본식물병리학회), 1959년에는 쿠마모토 대학의 연구팀이
1956년에 쿠마모토현 미나마타시에서 발생한 미나마타병의 원인이 메틸수은이라는 것
을 밝혀내 사회적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리하여 1966년에는 국회 중의원들로 구성된 과학기술진흥대책 특별위원회에서
‘농약의 잔류독성에 대한 과학적 규명과 대책 수립에 관한 건’이라는 것을 결의하였다.
또한 다음 해인 1967년에 농림수산성에서는 ‘농약잔류의 긴급대책에 관한 조사연구’를
개시하게 된다.
그 결과, 1968년에는 사과와 포도, 오이, 토마토 등 4개 작물은 BHC, DDT, 파라치온, 비
소, 납의 5개 농약성분에 대해 처음으로 농약잔류기준이 고시되었다.




https://m.blog.naver.com/yunou21c/220585935464 1/7


그러나 이후에도 각종 공해문제는 계속해서 발생되었다.
같은 해인 1968년에 후쿠오카현에서는 양계의 배합사료에 전기제품의 절연제 성분이 섞
이는 PCB 중독 사건과
오염된 쌀겨가 섞인 채 출하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었던 카네미 라이스오일 사건
으로
유기염소계열(PCB)의 위험성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1970년에는 BHC, DDT 등 유기염소계열의 사용이 완전히 금지되는 등 농약관
리법이 개정되기에 이른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 속에서 각종 공해문제는 결국 그들의 먹거리를 어떻게 지켜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움직임으로 이어지게 되었고,
이렇듯 위험한 농약의 노출에서 벗어나 안전하게 생산된 먹거리를 찾고자 하는 적극적인
소비자 운동으로 표출되게 된다.
대도시를 중심으로 하는 소비자들이 지방의 안전한 곳에서 생산된 농산물이면 모두 구매
하겠다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제휴가 시작된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을 주도한 단체가 바로 일본유기농업연구회이다.
■ 일본유기농업연구회
농약에 대한 위험성을 느끼기 시작한 생산자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농약과 화학비료
를 쓰지 않는
유기농업이라는 작은 실천들을 해나가기 시작한다.
한편 이러한 먹거리에 대한 많은 걱정과 우려 속에서 소비자들은
무첨가식품이나 안전한 계란과 우유와 같은 것을 찾으려 했다.
그러던 가운데 당시 협동조합경영연구소 소장이면서 협동조합 운동가인
‘이치라쿠 테루오’ 씨가 중심이 되어 사회적인 조직 결성을 위한 노력들이 이어지게 된다.
여기에는 우리에게도 많이 알려진 자연농법가 ‘후쿠오카 마사노부’ 씨를 비롯해 의사로서
먹을0거리와0농약과의 상관관계에 대해 쭉 연구해오다 무농약재배의 중요성을 알려왔던

‘야나기 기료’ 씨, 그리고 과다한 농약에 의존해온 것을 비판하며 농촌의학을 실천해온
‘와카츠끼 토시카즈’ 씨 등이 함께 하면서 일본유기농업연구회가 결성되었다.
1971년도의 일이다.
처음에는 미국 유기농업운동의 선구자인 로데일을 초청하여 강연을 듣는 등 먹을거리와
의학, 농학 등에 관한 연구회적인 성격이 강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2~3년이 지나면서 전국적으로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유기농업을 해나가자는
자발적인 실천 운동이 일어나게 되고 이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게 되었다.
1974년의 총회에서는 협동조합의 정신에 따라 자립하는 농민과 소비자가 서로 도와가며
세상을 만들어가자고 하는
농협과 생협을 포함해서 생산자와 소비자가 제휴하는 실천운동의 장임을 강조하였다.
당시에 이미 생협의 움직임이 있었는데 단순히 중간업자가 없는 직거래나 가격이 싼 공동
구매를 넘어선 차원의 활동을 중시했다.
여기에서 나온 것이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를 이해하는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
이었고 이러한 인간적인 관계 가운데서 가능한 서로의 입장에 대해 배려하는 차원에서 생산량과
가격 등을 조절할 수 있어야 하고,
또 운반과 배송에 있어서도 적극적으로 협조하며 서로 지원해야 한다는 형태의 ‘제휴’라
는 운동이다.
그리하여 지난번 글에서 소개한 ‘생산자와 소비자의 10가지 제휴의 방법’이라는 것이
1978년 총회에서 구체적으로 제안되었던 것이다.
일본유기농업연구회에서 또 강조해온 것 중 하나가 ‘자급’이라는 것인데,
자급을 기초로 한 농업이라는 것은 다양한 작목을 소량으로 조금씩 생산하고 축산을 결합

유축복합소농경영을 해야 하며, 퇴비나 사료, 종자와 같은 것도 자급하여 자연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순환적인 농업을 말한다.
이는 화학농약이나 화학비료 등 합성물질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자원을 가능한
활용0하고, 0

윤작은 물론 공생식물이나 천적에 의한 방제, 오리농법 등을 이용한 제초 등 전통적으로
오랫동안 실천해온
그리고 현대적인 요소와 결합한 다양한 시도들이 필요한 농업이라 할 수 있다.
연구회는 ‘환경파괴가 따르지 않도록 땅심을 유지 및 배양해가면서 건강하고 맛 좋은 먹거
리를 생산하는 방법을 탐구하고,
또한 식생활을 비롯한 생활전반의 개선에 힘쓰고,
지구상의 생물이 오래도록 공생할 수 있는 환경을 보전하는 것을 목표로 전국 약 4,000명
의 회원들과
다채로운 활동을 전개해가고 있다.
지금도 재래종자 교환 모임이라든지 매주 실시 중인 귀농자들을 위한 공부 모임,
여름과 겨울에 실시하는 현장교류회 등이 진행 중이며,
1년에 한번 열리는 총회는 전국의 회원들이 한 곳에 모여 교류하는 열띤 토론의 장이 된
다.
이러한 취지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누구라도 회원이 될 수 있다.
결국 생산자와 소비자의 ‘얼굴이 보이는’ 관계를 중심으로 한 이런
다양한 노력들이 지금까지 일본의 유기농업을 지탱해주는 힘이 되고 있는 것이다. 아
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https://m.blog.naver.com/yunou21c/220585935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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