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08

이재명 독주 가능케 한 자들은 누구?|신동아 2307

이재명 독주 가능케 한 자들은 누구?|신동아



이재명 독주 가능케 한 자들은 누구?

[강준만의 회색지대] ‘만독불침 선생’ 이재명의 ‘정치팬덤’ 관리술④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입력2023-07-31
 
①개딸
②이재명 자신
③침묵하는 의원들

● 오직 이재명만을 섬기는 이재명의 팬덤
● ‘전쟁입니다’ 노출한 이재명의 계략
● ‘차이트가이스트(시대정신) 이재명’이라니…
● “한 줌도 안 되는 개딸들이 정치 망가뜨려”
● “대선 져도 방산주 사는 정신의 소유자”
● 입에 자물쇠 잠근 정치인은 꼭두각시일 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22년 9월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김현지 보좌관(전 경기도청 비서관)으로부터 받은 검찰 출석 통보 관련 내용의 문자를 보고 있다. [국회공동취재사진]이재명은 2022년 8월 28일 민주당 대표로 선출된 지 불과 나흘 만인 9월 1일, 백현동·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과 관련한 허위사실공표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으로부터 “9월 6일 오전 10시까지 출석하라”는 소환 통보를 받았다. 이날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선 이재명이 소환 통보 사실을 전하는 문자를 읽는 장면이 포착됐는데, 최측근 참모인 보좌관 김현지(전 경기도청 비서관)는 텔레그램 메신저에 이렇게 썼다. “백현동 허위사(실공표), 대장동 개발관련 (허위) 사실공표, 김문기 (처장을) 모른다(고) 한 것과 관련해 의원님 출석요구서가 방금 왔습니다. 전쟁입니다.”

언론은 이재명이 의도적으로 ‘전쟁입니다’라는 메시지를 노출하는 계략을 썼다고 보았다. 그렇게 의심할 만한 이유는 세 가지였다. 첫째, 이재명의 자리는 본회의장 왼쪽 맨 뒷줄로 2층 방청석 바로 아래로 사진기자들이 휴대전화 화면을 몰래 촬영하기 어려운 곳이라 의원들 사이에선 소위 ‘명당’이라 불리는 곳이지만, 이재명은 사진 찍기 좋은 각도로 휴대전화를 보고 있었다. 둘째, 이재명이 문자를 받은 시각(오전 11시 10분)과 사진이 찍힌 시각(오후 3시 5분)에 상당한 격차(3시간 55분)가 있었다. 셋째, 이재명은 평소 휴대폰 화면의 노출을 막기 위해 필름까지 씌웠다.

해당 사안은 9월 9일이 공소시효 만료이기 때문에 검찰이 기소하려면 적어도 1주일 전에 출석을 요청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럼에도 이재명과 그 진영은 ‘정치 보복 전쟁’으로 간주했고, 실제로 이후 내내 그런 자세로 임했다. 민주당 내 친명계 최고위원들이 주장한 대통령 부인 김건희 특별검사법 및 법무부 장관 한동훈 탄핵 추진도 그런 전시체제 구축의 일환이었다.

이른바 ‘개딸’로 불리는 강성 지지층도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지지자들은 “윤석열 지지율 떨어지니 울잼(우리 재명) 공격하네” “정치보복 규탄한다” “이쯤 되면 막 가자는 것” “이제는 촛불을 들어야 할 때” “울잼 지키자” 등의 반응을 보였다. 또 지지자들은 포털사이트 기사를 공유하며 이재명에게 우호적인 댓글 작성과 공감 클릭을 독려했다.


李 “적폐청산이 정치보복이라면 맨날 해도 된다”이재명에겐 김대중과 호남이 믿는 구석이었을까. 그는 검찰 소환 통보를 받은 그날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더 나은 민주당 만들기 타운홀 미팅’을 진행하면서 “민주당은 호남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자식 같은 존재”라며 “‘죽고자 하면 산다’는 것처럼 ‘사즉생’의 각오로 열심히 하겠다”고 했다. 이 타운홀 미팅의 사회를 본 전남대 철학과 교수 박구용은 “헤겔이 전쟁 중에 나폴레옹을 보고 ‘새로운 시대정신이 나타났다’고 말했는데, 이 대표가 들어오는 걸 보니 ‘여러분께 이 대표가 새로운 시대정신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차이트가이스트(Zeitgeist·시대정신) 이재명”이라고 말해 화제가 됐다.



이튿날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최고위원 정청래는 “윤석열 정권은 참 나쁜 정권이다. 윤 대통령은 참 나쁜 대통령 같다”며 “죄 없는 김대중(DJ)을 잡아갔던 전두환이나 죄 없는 이재명을 잡아가겠다는 윤석열이나 뭐가 다르겠냐”고 주장했다. 전두환을 미화해주는 해괴한 궤변이었다.

박구용의 극찬과 정청래의 궤변은 실소를 자아냈을망정 이재명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노출 이틀 만인 9월 3일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이재명 소환을 규탄하는 지지자들의 집회가 열린 건 이재명이 팬덤을 동원하는 ‘팬덤정치’의 달인임을 증명하는 데에 부족함이 없었다. 비록 그 당시 모인 인원은 수천에서 수만 명 규모였던 ‘조국 수호’ 집회와는 달리 수백 명 수준에 그쳤을망정 말이다.

집회 참석자들은 “이재명은 죄가 없다” “정치검찰 해체하라” “김건희를 특검하라” “야당탄압 중단하라” “정치탄압 중단하라” 같은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었다. 주최자인 ‘밭갈이운동본부’ 대표 김태현은 “이재명은 어차피 죄가 없다. 싹 다 갈아엎어야겠다”며 “새로운 역사를 만들자”고 외쳤다. 참석자들은 “이재명은 죄가 없다”를 연호했다.

이 집회의 연단에 선 전 의원 정봉주는 “1년만 열심히 싸웁시다. 이길 수 있다. 윤 대통령 지지율이 27%로 떨어졌다고 한다”고 했다. 또 “나는 이재명을, 70년 역사 민주당을 지키기 위해 이 자리에 왔다”며 “이번에는 지지 말아야 한다. 기필코 이겨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 단체는 오후 7시부터는 서울중앙지검 서문에서 교대역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코스의 행진을 시작했다.

9월 4일 민주당 사무총장 조정식은 기자간담회를 열어 “제1야당 대표 소환은 한국 정치사에 전례가 드문 일로 명백한 야당 탄압”이라며 “과거 중앙정보부의 ‘김대중 현해탄 (납치) 사건’을 연상시킬 정도로 검찰이 정치 보복 본색을 드러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재명 사건 담당 검사가 ‘윤석열 사단’에 속한 공안통 검사라며 “공개 소환은 공개 망신 주기를 위한 과거 공안통 검사가 하던 악의적이고 치졸한 수법”이라고 강변했다.

이런 일련의 주장에 국민의힘은 이재명의 5년 전 발언을 소환했다. 이재명이 성남시장 시절인 2017년 “도둑 잡는 게 도둑에겐 보복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는 보복이 아니라 정의와 상식의 구현으로 보인다”며 “적폐와 불의를 청산하는 게 ‘정치 보복’이라면 그런 정치 보복은 맨날 해도 된다”고 한 발언을 언급한 것이다.


“짐승 같은 정권, 쪼잔한 대통령”그럼에도 검찰이 추석 연휴 직전인 9월 8일 이재명을 불구속 기소하자 민주당에선 누가 더 말을 거칠게 하나 겨루는 듯한 경쟁이 벌어졌다. 원내대표 박홍근은 “야당 당대표를 제물로 삼아 윤석열 대통령 본인의 무능과 실정을 감춰보려는 저열하고 부당한 최악의 정치적 기소”라며 “추락한 민심을 사정·공안 정국으로 만회하려는 반협치의 폭거”라고 비난했다.

최고위원 정청래는 “윤석열 정권 참 못된 정권”이라며 “역대급으로 치졸한 짐승 같은 정권이고 덩칫값 못하는 쪼잔한 대통령”이라고 원색 비난했다. 그는 “재떨이로 흥한 자 재떨이로 망하고, 검찰의 칼로 흥한 자 검찰의 칼로 쓰러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고위원 박찬대도 “윤석열 정권은 오늘 검찰 독재시대를 사실상 선언했다”며 “반드시 국민적 저항을 받게 될 것이고 임기가 보장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이재명과 민주당을 도우려는 하늘의 뜻이었을까. 9월 22일 오전 10시쯤 MBC가 유튜브 영상으로 공개한 ‘오늘 이 뉴스’의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나” 사건이 터졌다. 윤석열이 21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에서 48초간 미국 대통령 조 바이든과 환담을 마친 뒤 대표단과 함께 빠져나오면서 잠깐 멈춰 뒤를 돌아보면서 그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이는 이후 수개월간 모든 정치 담론을 빨아들이면서 적나라한 이전투구(泥田鬪狗)의 장(場)을 열어젖힌다. 그 와중에 큰 정치적 타격을 입은 쪽은 내내 치졸하고 미련한 대응을 한 윤석열이었다.

이재명은 9월 23일 국회 최고위원회의에서 윤석열의 비속어 사용 논란에 대해 “국민은 망신살이고, 아마 엄청난 굴욕감과 자존감의 훼손을 느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24일 이재명은 페이스북에 “불의를 방관하는 것은 불의입니다. 의를 위한다면 마땅히 행동해야 합니다”라고 썼다. 그는 트위터에 해당 페이스북 글을 갈무리한 사진을 올린 뒤 “할 수만 있다면 담벼락에 고함이라도 치라고 하셨던 김대중 선생은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 했습니다”라고 밝혔다. 이재명은 한 페이스북 이용자가 “오늘 불의를 참을 수가 없어서 거리로 나왔네요…. 끝까지 갑니다”라고 올린 댓글에 다시 댓글을 달며 “물방울이 모여 바다를 이룹니다”라고 답했다.

이재명은 사실상 자신의 팬덤이 적극 나설 걸 촉구하는 메시지를 발신함과 동시에 이후 자신에 대한 검찰 수사 강도에 따라 윤석열에 대한 비판 수위를 확 끌어올리는 패턴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얼굴이 너무 두꺼워서 수치심을 못 느끼느냐. 적반하장이자 후안무치”(9월 28일), “윤석열 정부, 독재정권처럼 공포정치···. 모든 걸 걸고 맞서겠다”(10월 3일) 등의 독설을 난사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22년 10월 24일 검찰이 압수수색을 시도한 민주연구원이 입주한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에 도착해 발언하기에 앞서 생각에 잠겨 있다. [뉴시스]


‘윤석열 퇴진’이라는 꿈10월 5일 이재명 팬덤정치의 야심작이자 민주당 대표로서 1호 지시 사항인 당원존 개관식이 열렸다. 이 개관식을 앞두고 일찍부터 ‘재명이네 마을’ 등 이재명 지지 온라인 커뮤니티가 들썩였다. 이전까지 당직자와 출입 기자 등 일부만 출입이 가능하던 당사에, 이날부턴 전자 당원증을 소지한 권리당원들이 누구나 출입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커뮤니티에선 “출입하려고 전자 당원증을 발급받았다” “(오전) 6시 첫차 타고 올라왔어요” 같은 인증 글이 올라오는 등 환영 일색이었다.

이재명은 개관식에서 이날을 “진정한 의미의 민주당으로, ‘당원의 당’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첫날”이라고 선언하면서 “여러분이 민주당의 주인”이라고 주장했다. ‘재명이네 마을’ 게시판에는 “고마워 밍밍, 정당 사상 최초로 만들어준 당원존, 눈물 난다” “당원존에서 최고위 회의라니, 이게 바로 밍밍이는 권위 의식이 없다는 뜻” 등의 글이 올라왔다.(‘밍밍이’는 이재명 지지자들이 이재명에게 붙인 별명이다.)

그런 환호는 이재명과 팬덤만의 것이었기에 “여러분이 민주당의 주인”이란 이재명의 말은 “이재명을 지지하는 당원이 민주당의 주인”이란 뜻으로 해석해도 무리는 없었다. 당원존에 대해 비명계(非明系·비이재명계) 의원 조응천은 “개딸들 기 살려주는 쪽으로 가고 있다”고 했고, 한 서울 재선 의원은 “개딸들은 지금도 이 대표와 생각이 다른 민주당 의원에게 ‘수박’이라며 문자 폭탄을 보내는데, 아예 여의도에 자리 잡게 되면 국회 의원회관에도 언제든 찾아올 수 있게 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10월 6일 시대전환 대표인 의원 조정훈은 “민주당이 밀어붙이고 있는 김건희 특검법에 내가 반대하자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강성 지지층인) ‘개딸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밤길 조심하라’고 협박성 문자 폭탄을 날리더라”며 “일부는 제 아내와 딸의 이름까지 인터넷상에서 공개 거론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 야당 지지자는 10분 동안 내내 30여 통의 스토킹 전화를 걸었다”며 “수신 거부를 누를 겨를도 없을 정도로 끊임없이 전화를 걸어와 황당했다. 이런 개딸들 행태는 도가 지나친 것 아니냐”고 했다.

조정훈은 “힘들기도 하고 이분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궁금해서 ‘개딸들’에게 공개적으로 토론을 제안했는데 아무도 안 오더라”며 “매우 아쉽고 실망스러웠다”고 했다. 그는 “제가 세지도 못할 정도의 스토킹 전화와 문자 폭탄을 받아봤는데, 전체 숫자가 그렇게 많지는 않은 것 같다”며 “어쩌면 한 줌도 안되는 이재명 강성 지지층이 막장 팬덤정치로 우리 정치를 망가뜨리고 있다”고 했다.

이즈음 윤석열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급락 추세를 보이고 있었다. 9월 마지막 주 갤럽의 24%에 이어 격주로 실시하는 엠브레인퍼블릭, 케이스탯리서치, 코리아리서치, 한국리서치 등 4개사 전국지표조사(NBS)의 10월 5일 발표치에서도 윤석열이 잘하고 있다는 긍정 평가는 29%로 내려앉았다. 못한다는 부정 평가는 65%에 달했다.

야권의 강성 지지층에선 ‘윤석열 탄핵’ 또는 ‘윤석열 퇴진’이라는 꿈이 무르익고 있었다. 7개월 전 유튜브 방송 ‘오마이TV’의 ‘오연호가 묻다’에 출연해 이재명을 위해 “민주당을 장악하자!”고 호소했던 서울대 영문과 명예교수 백낙청은 10월 11일 다시 ‘오연호가 묻다’에 출연해 민주당의 강성 지지층을 향해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

“나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론보다는 퇴진론이 더 합리적이라고 봐요. (대통령을) 탄핵해서 퇴진시키는 방법도 있지만 (…)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한 건 ‘하야해라, 하야해라’ 그렇게 부르짖는데도 본인이 하야를 안 하니까 할 수 없이 탄핵한 거 아니에요? 그래서 처음부터 탄핵을 주장하는 것보다는 퇴진을 권고하는 게 낫다고 봅니다. 퇴진은 (대통령 본인의) 자발적인 하야를 포함하는 거니까요. 그래서 퇴진을 권고하는 게 더 합리적인 수순일 것 같습니다. 물론 그런 움직임이 앞으로 얼마나 더 커질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반성할 겨를 없이 주식거래라니…”이재명은 “당원이 민주당의 주인”이라고 호기롭게 주장했지만, 문제는 그 주인이 갖고 있는 원초적 편향성이었다. 오직 이재명만을 섬기는 이재명 팬덤이라는 게 문제였다. 이는 10월 17일 민주당 의원 전재수가 이재명의 대선 패배 후 주식거래에 대해 실망스럽다고 하자 전재수를 향해 쏟아진 비난 공세를 통해 잘 드러났다.

이재명은 대선이 끝난 지 두 달도 안 된 4월 말에서 5월 초에 걸쳐 한국조선해양 주식 1670주와 현대중공업 690주 등 총 2억3125만 원 상당의 주식을 매입했다. 두 업체 모두 해군에 함정 관련 납품을 하는 방위산업체로, 이재명은 이들을 관리·감독하는 방위사업청을 피감기관으로 둔 국회 국방위 소속이라 논란이 됐다. 이재명은 10월 12일 이와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하루 만에 별다른 해명 없이 주식을 처분했지만, 이는 전재수를 포함한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안겼다.

전재수는 BBS라디오 ‘전영신의 아침저널’ 인터뷰에서 이재명의 방산주 매입에 대해 “누구나 자본시장에 참여해서 주식거래를 할 수 있지만, 민주당 대선후보였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개인적 이익, 개인적 사익에 해당하는 주식거래는 지지했던 사람들에게 실망스러운 측면이 분명히 있다”고 했다. 그는 “대통령선거에 진 것은 좁게는 이재명 대표 개인이 졌지만 넓게는 민주당이 진 것이고 민주당을 지지했던 1600만 명이 넘는 국민들이 진 것”이라며 “지지했던 많은 사람들이 뉴스도 못 보고 널브러져 있는데 혼자 정신 차리고 주식거래를 했다”고 개탄했다.

전재수로 말하자면 지난 대선 때 이재명 지지 선언을 하며 친문(親文·친문재인)과 친명(親明·친이재명)의 가교 구실을 하는 등 ‘범(汎) 친명계’로 분류된 의원이었다. 그런 의원이 실망감을 토로한 게 그렇게 큰 잘못이었을까. 전재수는 이재명의 강성 지지자들로부터 수천 통의 욕설 문자 폭탄을 받았으니 말이다.

‘재명이네 마을’ 등 이재명 지지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전재수의 휴대전화 번호를 공유하며 문자 폭탄 투척에 나섰다. 이들은 커뮤니티에 전재수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내용을 공유하며, “이름값처럼 재수 없는 짓만 골라서 한다” “웬 반역행위냐”는 비난을 쏟아냈다. 당원 게시판에는 “해당 행위자 전재수를 제명하라” “내부 총질, 윤리위에 회부해야” “다음 총선 뒤엔 보지 말자” “제정신이냐” “조용히 나가라” 등의 비난이 쇄도했다. 인터넷상에는 “난파선에선 쥐XX가 먼저 빠져나온다더니”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누가 과연 기회주의자인가이재명의 대선 후 주식투자는 어떤 사람들에겐 가벼운 해프닝으로 볼 수도 있는 사건이었지만, 이재명의 품성에 대해 의아심을 갖고 있던 사람들에겐 결코 작은 사건이 아니었다. “대선 패배로 다들 멘붕에 빠졌을 때 방산주를 사는 정신의 소유자”(진중권)라며 새삼 놀라움을 표한 이들이 많았다.

경향신문 정치에디터 구혜영은 10월 21일 칼럼에서 주식투자 사건과 무관하게 “이재명 리스크의 핵심은 불신이다. 주변 평가는 ‘자기 생존밖에 모른다’가 지배적이다”라고 했는데, 주식투자는 “자기 생존밖에 모른다”는 심성을 말해 주는 에피소드로 인식되기도 했다.

바로 이즈음 이재명의 사법 리스크와 관련해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는데, 그건 바로 이재명의 측근이었던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유동규의 진술 태도가 달라진 것이었다. 그는 “숨길까 했는데 다 얘기하겠다”며 “내 죗값만 받겠다. 이재명이 명령한 죗값은 그가 받아야 한다”고 했다.

왜 그렇게 달라진 걸까. 언론 보도에 따르면, 유동규는 대선 과정에서 이재명이 “고(故) 김문기 공사 개발1처장을 모른다”고 발언하자 주변에 섭섭함을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전까지만 해도 본인이 ‘의리’를 지키겠다며 입을 다물고 있던 유동규가 이 일을 계기로 심경에 변화가 생겼다는 것이다.

10월 22일 전 민주당 의원 김해영은 이재명이 대장동 일당으로부터 불법대선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과 관련해 페이스북을 통해 “이재명 대표님, 그만하면 되었다”며 “이제 역사의 무대에서 내려와 주시라”는 짧은 글을 올렸다. 이에 이재명 지지자들은 “내부 총질이 취미냐” “당장 민주당 탈당하라” “국민의힘에서 공천 받으려 애쓴다” “검찰독재 부역세력” “총구를 어디로 겨누나” 등의 댓글을 남겼고, 일부는 원색적인 욕설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사실상 이재명의 정치적 경호실장 역할을 맡은 민주당 의원 김남국은 페이스북을 통해 “본인 이익만 좇는 기회주의”라며 김해영을 비난했지만, 누가 과연 자신의 이익만 좇는 기회주의자인지는 시간이 말해 줄 일이었다.

10월 23일 이재명은 팬카페 ‘재명이네 마을’에 5개월 만에 직접 글을 올려 지지자들에게 결백을 호소했다. ‘화천대유 대선자금이라니, 동기 없는 범죄’라며 “이 터무니없는 음해를 널리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이재명은 다음 날엔 검찰이 민주연구원을 압수수색하자,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 앞에서 입장을 밝히며 울먹였다. 그는 당사 안으로 들어가며 손으로 눈가를 훔치기도 했다. 이에 국민의힘 의원 박대출은 가수 유승준에게 “눈물에 약한 한국민의 착한 심성을 악용한다”고 비난했던 이재명의 과거 발언을 소환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22년 10월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 본청 계단에서 열린 민생파탄·검찰독재 규탄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국회공동취재사진]이재명의 ‘눈물 효과’였을까. 10월 26일 민주당 현직 의원과 원외지역위원장 등 1200명(민주당 추산)은 국회 본청 계단 앞에서 민생파탄·검찰독재 규탄대회를 열고 ‘윤석열 정권 검찰독재 규탄한다!’는 피켓을 들며 결사 항전을 다짐했다. 이에 대해 광운대 교수 진중권은 “망하는 지름길이다. 두개골이 비어 있지 않은 이상 다들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는 것을 알 것”이라며 “공천권을 그분(이 대표)이 쥐고 있기 때문에 그 흐름에 들어가야 된다는 거다”라고 비판했다.


친명계의 공포마케팅10월 29일,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동 해밀톤호텔 서편의 좁은 골목에 핼러윈 축제를 즐기려는 수많은 인파가 몰리면서 158명이 압사하는 비극적 참사가 벌어졌다. 윤석열 정권 사람들은 이 비극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무책임하고 오만하고 어리석은 대응을 함으로써, 이를 사실상 정치적 사건으로 만들고 말았다. 11월 11일 이재명은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실시를 위해 장외투쟁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힘으로써, 10·29 참사는 ‘제2의 세월호 사건’으로 비화했다.

이재명을 향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하면서 11월 19일 검찰은 이재명의 최측근인 민주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 정진상을 대장동 일당에게서 뇌물 1억4000만 원을 받은 혐의 등으로 구속했다.(검찰은 이미 11월 8일 이재명의 다른 최측근인 민주연구원 부원장 김용을 대장동 일당으로부터 ‘불법 대선 경선 자금’ 8억47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그러자 11월 22일 국회 본청 예결위원회 회의장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의 비공개 의원총회에서는 한 편의 시(詩)가 비장하게 낭독됐다. 친명계 최고위원 박찬대가 의총 마무리 국면에서 연단에 나와 독일 반(反)나치 운동가이자 목사인 마르틴 니묄러의 ‘나치가 그들을 덮쳤을 때’라는 시를 읊은 것이다. 과거 독일에서 나치가 반대 세력을 탄압했을 때 침묵했던 다수의 사회 구성원을 비판하는 내용의 시였다.

박찬대가 이 시를 낭송하자 회의장 분위기는 일순간 얼어붙었다. 박찬대 측 인사는 “누구든 검찰의 표적이 될 수 있으니 ‘원팀’으로 이 사정 정국을 잘 헤쳐나가자는 게 낭송 취지”라고 설명했다지만 적지 않은 의원들이 되레 거부감을 느꼈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재선의원은 ‘중앙일보’와 통화하면서 “당 지도부가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엄호하는 것도 정도껏이다. 박 최고위원이 마치 영혼이라도 판 것 같은 장면이었다”며 “박 최고위원과는 앞으로 정치 행보를 함께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성토했다. 또 다른 의원은 “한심한 장면이었다. 당 지도부가 자꾸 의원들을 상대로 의식화 교육을 시도한다”고 반발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이재명당’이 된 지 오래였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이재명을 지키기 위한 ‘#나는이재명과정치공동체다’ 챌린지가 시작됐다. 최고위원 정청래는 11월 23일 페이스북을 통해 ‘나는 이재명 대표와 정치공동체다’라는 글을 올리며 “릴레이에 동참한다”고 했다. 그는 같은 날 또 글을 올려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면 이길 것이요. 살고자 회피한다면 죽을 것이다. 결사항전 임전무퇴”라며 “나는 #이재명대표와정치공동체다! 릴레이에 동참해달라”고 촉구했다.

12월 5일 이재명의 대표 취임 100일을 맞아 당내에서도 “방탄 빼고 뭐 했나”라는 냉소와 비판이 제기됐지만, “이재명이 사라지면 당이 박살 난다”(현근택 민주연구원 부원장)는 친명계의 공포마케팅은 건재했다. 강성 친명 의원들에게 더 중요한 것은 후원금이었는지도 모르겠다. 12월 21일 기준으로 민주당에서 후원금 모금을 완료한 의원은 이재명 외에 강성 친명파인 정청래와 김의겸이었으니 말이다. 개딸 커뮤니티에선 일부 지지자들이 친명계 의원들의 명단을 공유하고는 “이장님(이 대표 별칭)을 위해 일 잘하는 분들도 함께 후원하자”며 다른 지지자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었다.


국회는 꼭두각시들의 소굴인가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박영선은 12월 26일 세계일보 인터뷰에서 민주당의 내부 분위기에 대해 ‘줄 서야 하는 정치’가 만연한 상황이라고 평가하면서 “민주당의 소신 있는 국회의원들이 말을 못 하고 전부 입에 자물쇠를 잠그고 있습니다. 할 말은 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민주당 내 정치인들에 대해 “그래선 정치인이 아니라 꼭두각시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국민의힘 역시 민주당과 다를 게 없었으니, 박영선의 이 발언을 2022년의 한국 정치를 떠나보내는 송별사로 여기면 어떨까. 국회가 그렇게 된 건 의원들만의 책임은 아니었을 게다. 독일 작가 프리드리히 실러는 “어떤 사람이든 혼자 있을 때 보면 상당히 현명하고 통찰력이 있지만, 집단 속에 들어가면 당장 바보가 돼버린다”고 했다. 개인으로 존재할 때엔 상당히 현명하고 통찰력이 있는 국민도 큰 덩어리의 집단이 되는 순간 맹목적 편가르기의 신봉자로 전락하는 마당에 국회가 꼭두각시들의 소굴이 된 게 무에 그리 놀라운 일이겠는가. 2023년엔 조금은 다른 세상이 전개될 수 있을까.



강준만
● 1956년 출생
● 성균관대 경영학과 졸업, 미국 위스콘신대 메디슨캠퍼스 언론학 박사
● 現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 저서 : ‘발칙한 이준석: THE 인물과사상 2’ ‘싸가지 없는 정치’ ‘부동산 약탈 국가’ ‘한류의 역사’ ‘강남 좌파’ ‘노무현과 국민사기극’ ‘김대중 죽이기’ 등 다수





신동아 8월호 표지.



신동아 2023년 8월호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