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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위안부'를 또다시 읽고]
2017.03.03 08:50 黃薔(李相遠)
카테고리12_Bi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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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 무죄 판결 이후 '제국의 위안부' 이야기의 최근 소식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역시 지치지 않고 마녀사냥의 화살은 나에게도 날아왔다. 1970년대 중.고등학생 시절 김성종의 신문 연재소설 '여명의 눈동자'를 읽었을 때 충격적이었고 내용이 너무 불편했다. 그 소설로 인해 나는 일제의 종군 '위안부'의 존재를 알게 되었지만 내가 불편하여 피하듯 아무도 '위안부' 이야기를 떠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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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국에 유학을 핑계로 군부독재를 피해 도망 나온 뒤인 1990년대 '여명의 눈동자'는 미화되고 각색되어 인기드라마로 미국 교민들 조차 비디오테이프로 눈물 콧물 흘리며 보는 드라마가 되었다. 그 뒤로 조금씩 '정신대'와 혼동되면서 '위안부' 문제들이 거론되고 모두에게 불편한 이 진실을 용감하게 외치는 사람들이 등장하여 직업적 운동가를 생산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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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박정희의 한일청구권 협상에 빠졌다는 이유로 그 딸 박근혜가 느닷없이 2015년 한일 위안부합의 타결로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었다. 그사이 나는 내 고조부와 증조부가 일제에 죽임을 당한 내 가족사를 알게 되어 반일의 선봉에 빠지지 않게 되었다. 제목부터 머리끝이 곤두설 '제국의 위안부'의 출간은 자연스럽게 마녀사냥의 먹잇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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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제국의 위안부'와 그 저자를 요절을 낼 작정으로 그 책을 구해 읽기 시작했다. 앞부분부터 저자가 인용한 내용은 구역질이 나기 충분했다. 하지만 그동안 한국말로 위안부 문제를 우리의 일방적인 주장이 아닌 일본 쪽 이야기까지 첨부한 이 정도의 담론이 없었기에 숨을 참아가며 읽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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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누구에게도 위안부의 정확한 숫자조차 들어본 적이 없었다. 이런저런 주장에서 적게는 2만에서 많게는 30만까지 신뢰하기 힘든 주장만 접했었다. 이 '제국의 위안부'에서는 일본 측 자료에 입각한 8만에서 10만이라는 숫자도 등장한다. 또 미화된 '여명의 눈동자'에서처럼 동지애라든가 '스톡홀롬 신드롬'을 연상케 하는 일본 측 주장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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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위안부'가 학문적 연구서라 하기엔 한참 부족한 책이다. 하지만 한일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으려고 이 정도라도 애쓰는 문서로도 이 책은 처음이다. 당했던 입장에서 같은 동족이 당한 우리 동족을 적극적으로 두둔하고 일본을 매섭게 몰아붙이지 않는 것에 분노할 만 하다. 하지만 누군가는 당사자 일본과 이 불편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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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관점에서 이 책은 일본 측 주장을 충분하게 반영하며 일본 제국주의의 전쟁범죄를 일본식으로 추궁하기 시작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마음 같아서는 천하에 못된 일본 연놈들을 지구 상에서 박멸하여 사라지게 했으면 여한이 없겠지만 어쩌면 저 일본의 주류는 망한 백제의 후예가 흘러가 만든 우리 고대사의 흔적일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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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만 해도 한국인이나 일본인이나 중국인이나 같은 취급을 받기도 하고 정치적 모임에서는 혼다 하원의원을 동양계가 몽땅 모여 지원하고 선거에 당선시키기도 한다. 난 일본이 박멸의 대상이 아니라 동반자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저들이 어떤 거짓말을 어찌하는지 들어보고 우리의 반박을 준비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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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일본의 전쟁범죄 성노예 '위안부' 문제를 연구한 사람에 비하면 나는 '후로꾸'이다. 하지만 비록 '제국의 위안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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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조적인 강제성은 일제의 식민체제에서 나왔고, 현실적인 강제성은 한국인 모리배들이 한 것이니, 이 모두에게 고루 '위안부 강제동원'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논리를 전개하여 본말을 전도하고 문제의 핵심과 경중을 희석할 수 있는 위험이 숨어있다 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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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조선인 위안부를 가라유키상의 부분집합"으로 봄으로써 그들이 다른 국가에 대해 저지른 폭력에 대한 책임이 희석되었다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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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센다 가코가 말한 위안부 숫자 8만 명에서 10만 명"을 인용하여 그 숫자를 절반으로 줄이고 소녀상 나이를 높이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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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일본군과 위안부가 느꼈을 수도 있는 교감이, 인질범에게 인질이 동화되는 '스톡홀름 증후군'이 아니었을까?" 하게 만든 내용이 포함되어 있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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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우려의 부분들을 일본 측이나 친일세력의 무리가 적극적으로 이용하려 든다는 노파심만으로 '제국의 위안부'와 그 저자를 비난하고 실정법을 동원하여 단죄하는 것은 '마녀사냥'과 다르지 않다. '제국의 위안부'는 분명하게 일본제국주의 전쟁범죄를 통렬하게 비난하고 반성하고 사죄하고 보상하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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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제국의 위안부'와 그 저자를 비난하고 나처럼 조금이라도 그 책을 옹호하려는 자를 적대시하는 것은 한일 과거사 문제의 실마리를 풀어보지도 않으려는 태도라는 생각도 해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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