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잃어버린 초월을 찾아서
잃어버린 초월을 찾아서 - 한국유교의 종교적 성찰과 여성주의
이은선 (지은이)모시는사람들2009-01-15
미리보기
10.0100자평(0)리뷰(4)
책소개
유교와 기독교 그리고 페미니즘의 연결 작업에 관심을 기울여 온 저자가
유교의 성인(聖人)과 기독교의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특히 유교적 ‘여성선비’가 어떻게 해체하고 재건할 수 있을지를 탐구한 연구서다.
특히 멀어만 보이는 ‘유교’와 ‘페미니즘’이 ‘여성선비’라는 신조어 속에서 어떻게 용해되며, 그런 가운데 ‘종교로서의 유교’의 특장이 현대 사회와 현대인에게 기여할 수 있는 바가 무엇인지를 제시한다.
여기서 화두로 제시된 ‘초월(超越)’은 저자가 유교에서 가장 의미 있는 핵이라고 규정한 ‘세간적 초월의식’을 지칭한다. 이 세간적 초월의식이 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가장 적게 종교적이면서도 동시에 뛰어나게 궁극성과 초월성을 지시하는 또 다른 차원의 초월성”을 가장 훌륭하게 충족시킬 수 있음을 논한다.
목차
제1부 한국 종교문화사에 대한 여성주의적 탐구
제2부 조선시대 유교 종교성의 실례와 현대 여성주의적 조명
제3부 탈 세속화 시대에서의 유교와 유교 종교성
책속에서
18세기에서 조선 여성들의 삶의 유교 종법의 경직화가 가져오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경제력의 상승과 함께 독서 인구가 확대되고 실용저인 학분의 확장으로 많은 변화를 겪었음을 알 수 있다. (중략) 이러한 변화의 과정을 단순히 세속적인 문명화 과정이라고 표현하기 보다는 유교 여성들의 성화(聖化)의 과정으로 보고자 한다. 즉 여기에서야말로 진정으로 조선시대 유교 영성과 종교성이 잘 드러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82~83쪽) 접기
종교의 궁극적 지향점이 이렇게 자아를 극복하고 세계와 하나가 되고 궁극 안에서 자기를 포기하는 일이라면 여기에 유교 여성들의 봉제사 접빈객의 영성이야말로 그것과 다르지 않다. (중략) 이렇게 극진히 봉제사와 접빈객을 실천하면서 닦아온 유교 여성들의 공경심과 성실성은 삶의 전 영역으로 파급되었고, 이것은 곧 삶의 전 과정을 성화하려는 노력이 되엇 어느 남성 선비의 그것보다도 더 진실되게 유교 종교성을 진실하게 실현시킨 모습으로 보아야 한다.(186쪽) 접기
오늘날과 같은 물질주의와 개인주의, 이기적 현세주의가 판치는 세상에서, 유교는 우리에게 가장 실감나게 다시 자신의 근원과 토대를 생각케 하고, 몸을 쓰게 하며, 자기를 넘어서서 함께함을 생각하도록 하는 전통이다. (중략) 한국 기독교회는 유교 예배의 전통을 받아들여서 최고 궁극자인 하느님에 대한 예배와 더불어 구체적인 몸의 조상에 대해서도 추모하고 감사하며, 정성을 다해 기리도록 할 수 있다.(256쪽) 접기
저자 및 역자소개
이은선 (지은이)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이 책은 유교와 기독교 그리고 페미니즘의 연결 작업에 관심을 기울여 온 저자가 유교의 성인(聖人)과 기독교의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특히 유교적 ‘여성선비’가 어떻게 해체하고 재건할 수 있을지를 탐구한 연구서다. 특히 멀어만 보이는 ‘유교’와 ‘페미니즘’이 ‘여성선비’라는 신조어 속에서 어떻게 용해되며, 그런 가운데 ‘종교로서의 유교’의 특장이 현대 사회와 현대인에게 기여할 수 있는 바가 무엇인지를 제시한다. 여기서 화두로 제시된 ‘초월(超越)’은 저자가 유교에서 가장 의미 있는 핵이라고 규정한 ‘세간적 초월의식’을 지칭한다. 이 세간적 초월의식이 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가장 적게 종교적이면서도 동시에 뛰어나게 궁극성과 초월성을 지시하는 또 다른 차원의 초월성”을 가장 훌륭하게 충족시킬 수 있음을 논구한다. 연구서이자 유교적 수양(修養)의 가능성과 입문 동기를 제시한다.
Ι.
이 책은 모두 3부로 이루어졌다.
제1부 “한국 종교문화사에 대한 여성주의적 탐구”는 먼저 한국에서의 여성들의 삶이 종교문화사적으로는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지를 일별한다. 본격적으로는 조선시대 여성들의 삶에 끼친 유교 종교성의 특질을 살피고 여성들에게 체화된 유교 예(禮) 실행의 종교적 의미를 밝힌다.
제2부 “조선시대 유교 종교성의 실례와 현대 여성주의적 조명”에서는 1부에서 총론적으로 살펴본 유교 종교성과 여성의 연관성을 18세기의 두 여성 성리학자 “임윤지당”과 “강정일당”의 삶을 통해 구체적으로 구명한다. 이 두 ‘여성선비’는 제한적이나마 여성들에게도 허용되었던 교육을 바탕으로 유교적 도와 예 실행의 일 주체로 나서며,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성리 철학과 도학’을 사고하고 자신들의 삶에서 실행하였음을 보였다.
제3부 “탈 세속화 시대에서의 유교와 유교 종교성”은 유교 전통과 기독교 신앙의 만남이 오늘날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를 제시해 줄 수 있는지를 탐색해 본 글들이다. 이는 저자가 현실에서 부닥치는 여러 상황들, 예컨대 호주제 폐지와 부부생활, 명절의 제사 지내기와 여성의 입장, 죽음에 대한 유교적 이해 등의 구체적 사례를 통해 유교의 종교성, 기독교와 유교의 접점을 모색하고 있다.
Ⅱ.
이 책은 ‘유교의 르네상스’라고 해도 좋을 만큼 유학(儒學)에 대한 관심과 호감도가 높아지고 있는 이 시대에 조선의 유교, 유학이 오늘날 진정으로 의미 있는 학문, 종교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유교와 기독교, 유교와 여성과의 대화는 필수사항이라는 저자의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한다. 이러한 문제에 답하기 위하여 두 ‘여성선비’의 삶과 사상을 통해 유교의 새로운 지평을 모색하고 있다.
‘여성선비’라는 말은 모순형용처럼 들린다. ‘선비’는 유교의 이상적 인간상을 말하고, 또한 그 유교의 정통은 가부장주의라는 남성 위주의 사회 체제를 지탱하는 이데올로기로 쉽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은 조선시대의 실제 역사 속에서 두 명의 여성선비를 발굴해 내고 그들의 삶과 사상을 통해서 유교가 여성에게 있어서도 충분히 의미 있는 가치 체계요 사상으로서 접근할 수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한 ‘여성성’을 가능하게 하는 요소를 저자는 ‘유교의 세간적 초월의식’에서 찾아 내고, 그것이 ‘유교의 종교성’이라고 규정한다. 이는 종교성의 최소화와 궁극성과 초월성에 대한 갈구를 동시에 추구하는 현대인에게 유교가 기여할 수 있는 바라고 주장한다.
Ⅲ.
저자는 여성의 몸이 ‘생산’에 매인 시대로부터 해방되고, ‘성’의 차에 따른 사회적 역할의 차이가 없어지는 지금이야말로 “유교적 예화와 성화에 대한 자각을 서구적 주체성의 의식과 여성주의로 다듬어서 삶의 전 영역을 포괄할 수 있는 성찰의 힘으로 넓혀 나갈(205쪽)” 때라고 말한다.
저자는 오늘날 우리의 삶이 더 추락할 수 없을 것 같은 물질주의의 밑바닥에서 허우적거리고, “그래서 모든 존재가 단지 교환가치로 전환되고 찰나적인 것으로 화해 버리는” 이 시대에 ‘유교적 여성’의 성실성과 공경의 영성이 우리에게 다시 믿음과 희망의 근거를 제시해 준다고 말한다. 접기
----
마이리뷰
진정한 여권신장
인류의 역사를 발전지향적 단계별로 구분해 볼때 近代라는 개념은 기존의 고,중세에 비해서 물질적인 발전이 기하급수적으로 상향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각종 문명의 이기로 인해 인류는 불과 몇백년사이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문명화를 이루면서 수천년을 살아온 인류의 삶을 무색하게 하였다. 이러한 물질적인 발전과 더불어 우리가 지켜봐야 하는 것은 바로 정신적인 면의 발전을 들 수 있다. 민주주의, 자유주의, 개인주의, 그리고 남녀평등의 개념등 역시 물질적 발전에 못지 않게 엄청난 발전을 해왔다고 볼 수 있다.
특히 近代化라는 대세속에 우리는 물질과 정신적인 양대축에서 많은 변화를 겪어왔고 지금도 그 변화는 진행중이다. 우리가 흔히 근대화라하면 바로 서구화 그리고 기독교화를 지칭한다고 볼 수 있다. 제국주의가 기승을 부리던 시절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국권을 상실하고 타의에 의한 해방을 맞이한 대한민국의 경우는 특히 근대화라는 기치아래 앞만 보고 달려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마치 그동안의 피해를 한꺼번에 보상이라도 받기위해서 말이다. 외형적으로 한강의 기적을 낳은 경제적인 발전은 차치하더라도 정신적, 제도적, 문화적인 면에서도 이 땅에 세워졌던 그 어떤 국가라는 개념보다도 확고한 위치에 올라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고 우리가 여전히 믿고 있는 하나의 종교같은 초월성을 갖추고 있다고 해도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은 극히 없을 것이다.
맞는 말이다. 우리는 이제 근대화를 완성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객관적인 기준으로 봐서도 수긍이 가는 부분이다. 특히 남녀 평등의 문제(물론 아직 멀었다고 생각하는 패미니스트들도 있지만)는 과거 이나라의 정서적 기둥인 유교(성리학)사상으로 뭉쳐있던 시대에 비해선 상당한 발전을 해왔다고 할 수 있다. 철저한 근대화의 영향으로 유교같은 낡은 사상의 가치가 부정되고 서구화, 기독화의 정서에 맞는 여성운동이 진정한 근대화의 축으로 인식되었고 또한 그런 방향으로 진행되었던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책 <<잃어버린 초월을 찾아서>>는 지금 우리가 이룩한 근대화라는 작업의 진행과정이 올바른 도구로 성립되었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해 준다. 특히 유교(성리학)에 대한 그동안 부정적인 생각들 사회발전과 여권신장에 걸림돌이 된다는 생각에 대해서 다시금 뒤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고 볼 수 있다.
비록 필자는 감리신학대학원을 나온 기독교인이지자 확고한 패미니스트이지만 유교에 대한 생각을 기존의 여권신장운동론자들과는 사뭇 르게 접근하고 있다. 이 책은 유교를 종교로 인정하고 종교의 궁극인 초월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조선 영,정조시대 2명의 여성학자를 통해서 유교가 종교로서의 역활을 충실히 했다는 점을 확인시켜준다. 또한 여성주의, 여권신장운동에서 유교가 그 기본 버팀목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책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그동안 우리 여성들의 발목을 잡은 유교사상이 어떻게 여권신장의 길이 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필자는 종교를 통해서 궁극적인 초월에 이를수 있다면 바로 그것이 여권을 제고 시키는 방편이라고 본다. 기독교가 그렇듯이 유교에서도 종교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본다. 그 종교성이란 다름 아닌 聖人之道로 규정되는 일련의 정신적 수행을 뜻한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여성선비학자 임윤지당과 강정일당의 학문세계를 통해 성인지도의 길은 철저한 자기수행과정을 통해서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누구나 자신의 노력에 의해서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을 자각했던 것이다. 유교의 가장 근본적인 정신인 修身에서 齊家 治國 平天下에 이르는 과정을 스스로 보여 주고 있다. 즉 자신의 몸을 통해서 수도자의 고행과 같은 의미의 봉제사와 접빈객을 통한 유교 종교성의 초월을 몸소 실천하였던 것이다.
우리가 근대화를 이룩하는 과정에서 정신적인 뿌리인 유교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너무나 깊이 각이되어 있었다. 특히 여성의 경우 한집안의 딸, 한남자의 아내, 자식의 어머니라는 삼중고의 부정적인 생각들이 마치 여성운동이나 여권신장을 주창하는 이들에겐 철절히 배척되어야 하는 중세의 산물로 여겨졌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근대화라는 개념속에 숨겨져 있는 서구화와 기독교화의 몰이해로 인한 우리 전통의 말살을 불러 올 수도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기독교의 예배과정과 유교의 봉제사는 그 형식면에서 차이가 있을뿐이라고 생각된다. 예배를 통한 초월에 대한 감사의 표시와 봉제사를 통한 조상의 은덕에 대한 감사는 그 궁극적인 면에서 많은 차이는 없다고 본다. 단지 유교의 종교성은 내면적인 자기성찰에 그 주안점을 두고 있을 뿐이다.
필자는 이 책을 통해서 지금 여성운동을 주창하는 이들이 마치 근대화의 화신인양하는 자세에 대한 실랄난 비판을 가하고 있다. 결국 그 집단의 고유정신을 밑바탕으로 외래사상과의 올바른 접목만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바람직한 이정표를 제시해 줄 것으로 본다.
- 접기
서향 2009-02-13 공감(2) 댓글(0)
----
잃어버린 초월을 찾아서
아직까지도 우리나라는 유교적 영향이 사회 곳곳에 남아숨을쉬고 있다. 유교의 예가 여성주의적 실천과 만나기 위해 변화해야 할 시기가 도래한것 같다. 이 책은 유교와 기독교 그리고 페미니즘의 연결 작업에 관심을 기울여 온 저자가 유교의 성인[聖人]과 기독교의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특히 유교적 ‘여성선비’가 어떻게 해체하고 재건할 수 있을지를 탐구한 연구서다. 먼저, ‘유교의 세간적 초월의식’에서 찾아 내고, 그것이 ‘유교의 종교성과의 관계를 논리적으로 규명해 간다.
“예가 아니면, 보지도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도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도 말고, 예가 아니면 행동하지 말라.”는 개인적 차원에서부터 “백성들을 예로써 다스려야 한다”는 정치적인 차원에 이르기까지 공자가 말하는 예는 사회,문화적 존재인 인간의 삶 전체를 조직하는 유교의 중요한 가치임에 틀림없다.
’페미니즘이 공동체주의와 많은 전제들을 공유하긴 하지만, 이들의 처방을 수락하기 어려운 것은 이들이 제안하는 과거 전통이나 혹은 현재 우리 공동체가 공유하고 있는 이해, 전승된 관습이나 규범, 그 어느 것도 여성들이 의지할 수 없는 것들로 보이기 때문이다.
여성과 남성의 권리는 “우리의 공통적인 인간성에서 도출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사회적 가치에 대한 이해로부터 도출된다. 특히 이 책은 조선시대의 실제 역사 속에서 조선 영,정조시대에 살았던 '임윤지당'과 조선후기 정조,순조시대를 살았던 '강정일당'이라는 두 명의 여성선비를 발굴해 내고 그들의 삶과 사상을 통해서 접근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 두 여성선비의 공통점은 강정일당(姜靜一堂)은 각고의 수양과 심오한 학문 그리고 도덕적 실천을 훌륭한 문장으로 남긴 조선 시대 여성 성리학자이며 문인이었다는 점이다.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학문을 닦음으로써 기존의 남성위주의 교육체계에서도 도전을 보여주고 있다.
정일당은 가난한 양반 가문에서 태어나, 온갖 불행을 겪고 인고의 삶을 살면서도 학문을 닦고 자아를 실현했다. 정일당은 가정에서 여성의 직분을 다하면서도, 심성을 수양하고 진리를 탐구하여 성리학의 오묘한 이치를 터득하고, 순수하고도 편안한 달관의 경지에 이르렀다. 정일당은 임윤지당을 존경하여 "하늘에서 받은 성품은 남녀의 차이가 있는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인용하면서 여성이지만 성인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음을 늘 주장하였고 여성으로서 그 기대에 맞게 대항한것은 아니지만 아주 혁신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 접기
book 2009-02-14 공감(0) 댓글(0)
Thanks to
공감
잃어버린 초월을 찾아서
유교하면 공자왈 맹자왈이라는 단어 부터 떠오르는 내게, 유교를 하나의 종교로 보는 관점은 매우 생소하였다. 인(仁)을 최고 이념으로 삼아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의 실현을 목표삼는 하나의 윤리 정도로만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우기, 유교사상에 대해 솔직히 나는, 대한민국 여성의 한 사람으로서, 막연한 피해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과거 조선 시대 여성들의 삶은 유교 전통 아래, 그야말로 "인고의 세월" 그 자체로 인식되었다. 오죽하면, 시집가면 벙어리 삼년, 귀머거리 삼년, 장님 삼년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이 있겠는가! 유교 가부장주의 아래 우리 여성의 삶, 그 중에서도 특히 며느리/아내/아녀자로서의 삶은 그야 말로 '문서 없는 종'에 다름 아니라는게 나의 오랜 고정 관념이었다.
이 책은, 제일 먼저 위와 같은 나의 고정 관념들에 물음표를 던지고, 새로운 시각과 상상력을 통해, 그리고 종교라는 다소 생소한 틀을 통해 한국 여성의 삶을 돌아 보게 한다. 이 과정에서 아주 멀게는, 원시 샤머니즘의 무(巫)교에서 부터, 삼국 시대 불교, 그리고 가깝게는 조선 시대 유교에 이르는 긴 시간과 공간의 광대한 역사적 스펙트럼 속에서,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떠난 듯 흥미롭게 이야기가 펼쳐 진다.
특히 조선 시대 유교의 종교성과 그것이 여성의 삶에 미친 영향을 다루는 부분에서는, 구체적으로 18세기 여성 성리학자 임윤지당과 강정일당의 삶을 통해, 마치 한 편의 사극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그림 처럼 생생하게 여인의 삶을 반추 한다. 한 시대의 고통과 성과를 보다 장구한 시간과 포괄적인 공간에서 살피고 있는 점에 나도 모르게 감탄하게 된다. 한마디로 스케일이 불록버스터 영화 같다.
어느 부분에서는 저자의 상상과 비약이 조금 지나친게 아닌가 하는 막연한 기분이 들 때도 있었지만,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고, 또 결국에는 생각대로 발전하고 이루어 지므로, 저자의 이와 같은 시도는 매우 의미 있는 성과물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역사는 항상 어떻게 의미 부여를 하기느냐에 따라 180도 새롭게 재조명될 수 있으며, 역사에 기대어 또 다른 역사를 만들어 내는 것 역시 후손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이 처럼 한계를 약간 넘은 듯한 저자의 새로운 역사유추, 그리고 생각과 발상의 전환은 신선한 충격과 재미를 준다. 또한 부정 보다는 긍적적인 삶의 요소를 보려는 저자의 시각과 가치관 역시 매우 마음에 들었다. 저자의 말 대로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자의 삶은 서로 다르긴 하지만, 나름대로 모두가 어쩔 수 없는 삶의 제약과 조건들 아래서 시작'되는데, 과도하게 한계와 제약 조건들 자체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정말이지 그 속에서 나름대로 한계를 극복하고 활동했던 소수의 사람들의 업적과 교훈은 간과 되기 쉬울 것 같다.
무엇보다 종교과 여성을 결부시켜 우리 역사를 볼 수 있었던 점이 흥미로웠다. 우리 현 시대 대한민국에서 여성과 종교가 연관지어져 이슈가 되었던 사건은 다름 아닌 국민 여배우이자 인기 톱탤런트 였던 최진실씨의 급작스런 죽음이었다. 신앙인으로서 그녀가 죽음을 스스로 택했다는 사실에 많은 기독교인들이 무력감 내지는 실망감을 느꼈던 것 이다. 나 역시 이를 계기로 종교가 한 개인의 삶에 어느 정도 까지 영향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 많이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종교가 인간 개인의 삶에 어느 정도의 깊이 까지 영향을 줄 수 있는가 하는 것은 각 개인별 편차가 매우 심한 듯 하다. 한편 역으로 인간 개개인의 삶이 종교를 뛰어 넘어 어떻게 역사와 문화를 변화 시켜 나아가고 주도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내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많은 의문이 남는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어느 시대에나 인간 지각의 한계를 뛰어넘어, 이상적이고 영적인 세계의 가치를 믿고 성숙된 삶을 사는 초월자 적인 인간이 존재한다는 점 이다.
저자의 참신한 역사유추와 긍정의 힘, 그리고 완벽하다 싶을 정도로 고급스럽고 깔끔한 책의 편집과 구성이 돋보이는 책이다.
- 접기
hblee75 2009-02-18 공감(0) 댓글(0)
한국 유교를 통해 본 여성주의
한국 유교에서 여성주의를 발견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는 발상이 참 낯설다. 왜냐하면 유교하면 남성중심주의적이라는 이미지와 더불어 남존여비(男尊女卑)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여성주의(페미니즘)는 서양에서 인간 자신에 대한 자각과 이성의 가치를 최고로 여기는 계몽주의가 발달하고 여성의 사회 참여가 확산하면서 여성의 권익을 찾기 위한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동양과 마찬가지로 서양 역시 그 이전의 역사를 보면 남성 중심으로 여성을 억압해왔고, 그것을 종교적, 제도적, 윤리적 장치를 통해 공고히 다져왔다. 따라서 이것에 반하여 일어난 여성주의는 당연히 전통적인 가치와 제도, 윤리 등을 부정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개인주의와 물신주의가 결합되면서 여성운동이 여성의 모성(母性)을 부정하고 공동체의 가치를 부정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저자는 ‘페미니즘의 궁극적인 목표도 우리 공동체의 삶을 더욱 더 바람직한 인간적인 삶으로 이끄는 것’(p.166)이라고 말하고, 여성운동이 그 본질적 가치를 찾는 길은 ‘여성과 여성의 몸과 여성 주체성의 신성한 차원을 다시 회복하’(p.167)는 것에 있으며, 이는 결국 ‘세속화’를 넘어선 ‘종교적’ 가치를 지니는 ‘영적 혁명’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저자는 그 ‘영적 혁명’의 바탕을 한국의 유교에서 찾고 있다.
과연 유교는 종교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이 점에 대해서 저자는 ‘오늘날 현대 종교현상학의 종교 이해는 어떤 구체적인 인격신적인 신에 대한 믿음이나 성직자 체계의 유무 등을 종교의 핵심으로 보지 않고 대신 삶의 진행과정에서 경험되는 성(聖)과 속(俗)에 대한 구별 의식을 그 핵으로 본다’(p27)라고 하여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성인지도(聖人之道)를 추구하는 유교도 역시 종교의 하나로 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모두 알다시피 유교는 춘추시대에 활동한 공자로부터 시작되었다. 공자는 인간의 가장 큰 덕목으로 인(仁)을 주장했다. 인은 그 글자대로 풀자면 두 사람(二人)을 뜻한다. 이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 서로 관계를 맺고 살 수밖에 없는 존재이고,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윤리와 도덕이 필요하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유교는 원래부터 인간의 문제에 착안하였고 또한 공동체적 가치를 주창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에서 주로 논의하는 유학은 북송의 정이천과 정명도 형제, 주돈이, 장재 등에 의해 발전하고 남송의 주희에 의해 완성된 성리학(성리학)을 말하고 있다.
도학(道學)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성리학은 그 이전의 유학에 비해 더욱 더 종교적 색채를 띠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성리학에서 하늘(天)이란 존재는 완전무결하며 이 세상의 가장 본원적 원리인 이(理)를 내포하고 있는데, 이 이가 각자 사람에게 부여된 것이 성(性)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성이 도덕적 원리로 나타난 것이 바로 인의예지(仁義禮智)라고 한다. 따라서 성리학에서는 하늘이 부여한 본성을 자각하고 그것이 더럽혀 지지 않도록 유지하는 것이 가장 큰 사명이었으며, 이를 위기지학(爲己之學)이라고 하였다. 인의예지의 덕성은 곧 인간 사회의 덕목이다. 즉 유교에서 말하는 수행 방법이란 공동체 생활 속에서 그 덕목을 구현하는 것으로서, 성(聖)과 속(俗)이 분리 되어 있지 않다.
공자는 자신의 학문의 법통을 주나라에서 찾았다. 주나라는 이른바 ‘종법(宗法)’에 근간을 둔 제도를 운영하였다. 종법이란 한 집안을 장자인 남성을 중심으로 운영하는 제도를 말하는데, 국가 운영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종통(宗統)을 세우는 것이 우선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이 제도를 이은 유교를 받아들인 조선도 역시 종법 질서를 따랐으며, 그 결과로 남성 중심적이었고, 여성은 종속적 지위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현대의 우리가 생각하기 쉬운 것처럼 여성이 단순히 종속적 위치에 만족하고 가정 내에서만 머무르는 존재였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 이 책의 저자는 그렇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 예로써 영, 정조 연간에 생존했던 ‘임윤지당’과 ‘강정일당’이라는 두 여성을 소개하고 있다. 이들은 비록 규중에 갇혀있는 여성의 몸이었지만, 학문을 연마하고 도덕을 수양하여 당시 남성도 이르기 어려운 경지에 이르렀고, 이들은 며느리, 아내, 어머니, 종부로서 역할을 다하여 모든 이들이 존경을 받았고, 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이들의 삶이 ‘매우 역동적이고 책임의식을 가지고 다양한 역할을 하면서 주체적으로 살았다’(p.182)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현대적 개념으로 가정을 사적 공간으로 여기지만, 조선 시대에는 그렇지 않았다. 당시 여성들은 비록 가정에 머물렀지만 봉제사(奉祭祀)와 접빈객(接賓客)을 통해서 공적 역할을 수행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다시 말하면 당시 가정은 사적 공간이 아니라 공적 영역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시 여성은 가정 내에 머물면서도 공적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고 보는 것이다.
여기에서 저자는 ‘오늘날 여성주의가 과도하게 사적 영역에 몰두함으로써 잃어버리고 있는 공적 영역의 일을 다시 포괄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다’(p.185)고 말하고 있다.
또한 ‘오늘날 여성 여성주의가 인간성 상실과 생태적 위기, 과도한 경쟁 원리의 적용과 주관주의에 함몰되는 위험 앞에서 다시 ‘보살핌’의 윤리를 찾고, ‘어머니 되어 주기’의 의미를 찾는다면, 바로 한국 유교 전통의 여성들이야말로 참된 생명의 배려자와 살림꾼으로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p187)고 말하고 있다.
또 ‘오늘날 한국 여성들이 나가야 할 길은 유교적 예화와 성화에 대한 자각을 서구적 주체성의 의식과 여성주의로 다듬어서 삶의 전 영역을 포괄할 수 있는 성찰의 힘으로 넓혀 나가’(p.205)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바로 ‘한국적 여성주의’를 완성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이 책에서 주장하는 여성주의가 과연 보편적인 여성 운동가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인가 하는 것은 알 수 없지만, 현재 처해 있는 인간과 여성의 문제에 대한 하나의 대안으로써 참고해볼만 하다고 생각한다.
- 접기
운산 2009-02-10 공감(0) 댓글(0)
여기서 화두로 제시된 ‘초월(超越)’은 저자가 유교에서 가장 의미 있는 핵이라고 규정한 ‘세간적 초월의식’을 지칭한다. 이 세간적 초월의식이 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가장 적게 종교적이면서도 동시에 뛰어나게 궁극성과 초월성을 지시하는 또 다른 차원의 초월성”을 가장 훌륭하게 충족시킬 수 있음을 논한다.
목차
제1부 한국 종교문화사에 대한 여성주의적 탐구
제2부 조선시대 유교 종교성의 실례와 현대 여성주의적 조명
제3부 탈 세속화 시대에서의 유교와 유교 종교성
책속에서
18세기에서 조선 여성들의 삶의 유교 종법의 경직화가 가져오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경제력의 상승과 함께 독서 인구가 확대되고 실용저인 학분의 확장으로 많은 변화를 겪었음을 알 수 있다. (중략) 이러한 변화의 과정을 단순히 세속적인 문명화 과정이라고 표현하기 보다는 유교 여성들의 성화(聖化)의 과정으로 보고자 한다. 즉 여기에서야말로 진정으로 조선시대 유교 영성과 종교성이 잘 드러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82~83쪽) 접기
종교의 궁극적 지향점이 이렇게 자아를 극복하고 세계와 하나가 되고 궁극 안에서 자기를 포기하는 일이라면 여기에 유교 여성들의 봉제사 접빈객의 영성이야말로 그것과 다르지 않다. (중략) 이렇게 극진히 봉제사와 접빈객을 실천하면서 닦아온 유교 여성들의 공경심과 성실성은 삶의 전 영역으로 파급되었고, 이것은 곧 삶의 전 과정을 성화하려는 노력이 되엇 어느 남성 선비의 그것보다도 더 진실되게 유교 종교성을 진실하게 실현시킨 모습으로 보아야 한다.(186쪽) 접기
오늘날과 같은 물질주의와 개인주의, 이기적 현세주의가 판치는 세상에서, 유교는 우리에게 가장 실감나게 다시 자신의 근원과 토대를 생각케 하고, 몸을 쓰게 하며, 자기를 넘어서서 함께함을 생각하도록 하는 전통이다. (중략) 한국 기독교회는 유교 예배의 전통을 받아들여서 최고 궁극자인 하느님에 대한 예배와 더불어 구체적인 몸의 조상에 대해서도 추모하고 감사하며, 정성을 다해 기리도록 할 수 있다.(256쪽) 접기
저자 및 역자소개
이은선 (지은이)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이 책은 유교와 기독교 그리고 페미니즘의 연결 작업에 관심을 기울여 온 저자가 유교의 성인(聖人)과 기독교의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특히 유교적 ‘여성선비’가 어떻게 해체하고 재건할 수 있을지를 탐구한 연구서다. 특히 멀어만 보이는 ‘유교’와 ‘페미니즘’이 ‘여성선비’라는 신조어 속에서 어떻게 용해되며, 그런 가운데 ‘종교로서의 유교’의 특장이 현대 사회와 현대인에게 기여할 수 있는 바가 무엇인지를 제시한다. 여기서 화두로 제시된 ‘초월(超越)’은 저자가 유교에서 가장 의미 있는 핵이라고 규정한 ‘세간적 초월의식’을 지칭한다. 이 세간적 초월의식이 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가장 적게 종교적이면서도 동시에 뛰어나게 궁극성과 초월성을 지시하는 또 다른 차원의 초월성”을 가장 훌륭하게 충족시킬 수 있음을 논구한다. 연구서이자 유교적 수양(修養)의 가능성과 입문 동기를 제시한다.
Ι.
이 책은 모두 3부로 이루어졌다.
제1부 “한국 종교문화사에 대한 여성주의적 탐구”는 먼저 한국에서의 여성들의 삶이 종교문화사적으로는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지를 일별한다. 본격적으로는 조선시대 여성들의 삶에 끼친 유교 종교성의 특질을 살피고 여성들에게 체화된 유교 예(禮) 실행의 종교적 의미를 밝힌다.
제2부 “조선시대 유교 종교성의 실례와 현대 여성주의적 조명”에서는 1부에서 총론적으로 살펴본 유교 종교성과 여성의 연관성을 18세기의 두 여성 성리학자 “임윤지당”과 “강정일당”의 삶을 통해 구체적으로 구명한다. 이 두 ‘여성선비’는 제한적이나마 여성들에게도 허용되었던 교육을 바탕으로 유교적 도와 예 실행의 일 주체로 나서며,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성리 철학과 도학’을 사고하고 자신들의 삶에서 실행하였음을 보였다.
제3부 “탈 세속화 시대에서의 유교와 유교 종교성”은 유교 전통과 기독교 신앙의 만남이 오늘날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를 제시해 줄 수 있는지를 탐색해 본 글들이다. 이는 저자가 현실에서 부닥치는 여러 상황들, 예컨대 호주제 폐지와 부부생활, 명절의 제사 지내기와 여성의 입장, 죽음에 대한 유교적 이해 등의 구체적 사례를 통해 유교의 종교성, 기독교와 유교의 접점을 모색하고 있다.
Ⅱ.
이 책은 ‘유교의 르네상스’라고 해도 좋을 만큼 유학(儒學)에 대한 관심과 호감도가 높아지고 있는 이 시대에 조선의 유교, 유학이 오늘날 진정으로 의미 있는 학문, 종교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유교와 기독교, 유교와 여성과의 대화는 필수사항이라는 저자의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한다. 이러한 문제에 답하기 위하여 두 ‘여성선비’의 삶과 사상을 통해 유교의 새로운 지평을 모색하고 있다.
‘여성선비’라는 말은 모순형용처럼 들린다. ‘선비’는 유교의 이상적 인간상을 말하고, 또한 그 유교의 정통은 가부장주의라는 남성 위주의 사회 체제를 지탱하는 이데올로기로 쉽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은 조선시대의 실제 역사 속에서 두 명의 여성선비를 발굴해 내고 그들의 삶과 사상을 통해서 유교가 여성에게 있어서도 충분히 의미 있는 가치 체계요 사상으로서 접근할 수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한 ‘여성성’을 가능하게 하는 요소를 저자는 ‘유교의 세간적 초월의식’에서 찾아 내고, 그것이 ‘유교의 종교성’이라고 규정한다. 이는 종교성의 최소화와 궁극성과 초월성에 대한 갈구를 동시에 추구하는 현대인에게 유교가 기여할 수 있는 바라고 주장한다.
Ⅲ.
저자는 여성의 몸이 ‘생산’에 매인 시대로부터 해방되고, ‘성’의 차에 따른 사회적 역할의 차이가 없어지는 지금이야말로 “유교적 예화와 성화에 대한 자각을 서구적 주체성의 의식과 여성주의로 다듬어서 삶의 전 영역을 포괄할 수 있는 성찰의 힘으로 넓혀 나갈(205쪽)” 때라고 말한다.
저자는 오늘날 우리의 삶이 더 추락할 수 없을 것 같은 물질주의의 밑바닥에서 허우적거리고, “그래서 모든 존재가 단지 교환가치로 전환되고 찰나적인 것으로 화해 버리는” 이 시대에 ‘유교적 여성’의 성실성과 공경의 영성이 우리에게 다시 믿음과 희망의 근거를 제시해 준다고 말한다. 접기
----
마이리뷰
진정한 여권신장
인류의 역사를 발전지향적 단계별로 구분해 볼때 近代라는 개념은 기존의 고,중세에 비해서 물질적인 발전이 기하급수적으로 상향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각종 문명의 이기로 인해 인류는 불과 몇백년사이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문명화를 이루면서 수천년을 살아온 인류의 삶을 무색하게 하였다. 이러한 물질적인 발전과 더불어 우리가 지켜봐야 하는 것은 바로 정신적인 면의 발전을 들 수 있다. 민주주의, 자유주의, 개인주의, 그리고 남녀평등의 개념등 역시 물질적 발전에 못지 않게 엄청난 발전을 해왔다고 볼 수 있다.
특히 近代化라는 대세속에 우리는 물질과 정신적인 양대축에서 많은 변화를 겪어왔고 지금도 그 변화는 진행중이다. 우리가 흔히 근대화라하면 바로 서구화 그리고 기독교화를 지칭한다고 볼 수 있다. 제국주의가 기승을 부리던 시절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국권을 상실하고 타의에 의한 해방을 맞이한 대한민국의 경우는 특히 근대화라는 기치아래 앞만 보고 달려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마치 그동안의 피해를 한꺼번에 보상이라도 받기위해서 말이다. 외형적으로 한강의 기적을 낳은 경제적인 발전은 차치하더라도 정신적, 제도적, 문화적인 면에서도 이 땅에 세워졌던 그 어떤 국가라는 개념보다도 확고한 위치에 올라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고 우리가 여전히 믿고 있는 하나의 종교같은 초월성을 갖추고 있다고 해도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은 극히 없을 것이다.
맞는 말이다. 우리는 이제 근대화를 완성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객관적인 기준으로 봐서도 수긍이 가는 부분이다. 특히 남녀 평등의 문제(물론 아직 멀었다고 생각하는 패미니스트들도 있지만)는 과거 이나라의 정서적 기둥인 유교(성리학)사상으로 뭉쳐있던 시대에 비해선 상당한 발전을 해왔다고 할 수 있다. 철저한 근대화의 영향으로 유교같은 낡은 사상의 가치가 부정되고 서구화, 기독화의 정서에 맞는 여성운동이 진정한 근대화의 축으로 인식되었고 또한 그런 방향으로 진행되었던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책 <<잃어버린 초월을 찾아서>>는 지금 우리가 이룩한 근대화라는 작업의 진행과정이 올바른 도구로 성립되었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해 준다. 특히 유교(성리학)에 대한 그동안 부정적인 생각들 사회발전과 여권신장에 걸림돌이 된다는 생각에 대해서 다시금 뒤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고 볼 수 있다.
비록 필자는 감리신학대학원을 나온 기독교인이지자 확고한 패미니스트이지만 유교에 대한 생각을 기존의 여권신장운동론자들과는 사뭇 르게 접근하고 있다. 이 책은 유교를 종교로 인정하고 종교의 궁극인 초월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조선 영,정조시대 2명의 여성학자를 통해서 유교가 종교로서의 역활을 충실히 했다는 점을 확인시켜준다. 또한 여성주의, 여권신장운동에서 유교가 그 기본 버팀목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책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그동안 우리 여성들의 발목을 잡은 유교사상이 어떻게 여권신장의 길이 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필자는 종교를 통해서 궁극적인 초월에 이를수 있다면 바로 그것이 여권을 제고 시키는 방편이라고 본다. 기독교가 그렇듯이 유교에서도 종교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본다. 그 종교성이란 다름 아닌 聖人之道로 규정되는 일련의 정신적 수행을 뜻한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여성선비학자 임윤지당과 강정일당의 학문세계를 통해 성인지도의 길은 철저한 자기수행과정을 통해서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누구나 자신의 노력에 의해서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을 자각했던 것이다. 유교의 가장 근본적인 정신인 修身에서 齊家 治國 平天下에 이르는 과정을 스스로 보여 주고 있다. 즉 자신의 몸을 통해서 수도자의 고행과 같은 의미의 봉제사와 접빈객을 통한 유교 종교성의 초월을 몸소 실천하였던 것이다.
우리가 근대화를 이룩하는 과정에서 정신적인 뿌리인 유교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너무나 깊이 각이되어 있었다. 특히 여성의 경우 한집안의 딸, 한남자의 아내, 자식의 어머니라는 삼중고의 부정적인 생각들이 마치 여성운동이나 여권신장을 주창하는 이들에겐 철절히 배척되어야 하는 중세의 산물로 여겨졌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근대화라는 개념속에 숨겨져 있는 서구화와 기독교화의 몰이해로 인한 우리 전통의 말살을 불러 올 수도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기독교의 예배과정과 유교의 봉제사는 그 형식면에서 차이가 있을뿐이라고 생각된다. 예배를 통한 초월에 대한 감사의 표시와 봉제사를 통한 조상의 은덕에 대한 감사는 그 궁극적인 면에서 많은 차이는 없다고 본다. 단지 유교의 종교성은 내면적인 자기성찰에 그 주안점을 두고 있을 뿐이다.
필자는 이 책을 통해서 지금 여성운동을 주창하는 이들이 마치 근대화의 화신인양하는 자세에 대한 실랄난 비판을 가하고 있다. 결국 그 집단의 고유정신을 밑바탕으로 외래사상과의 올바른 접목만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바람직한 이정표를 제시해 줄 것으로 본다.
- 접기
서향 2009-02-13 공감(2) 댓글(0)
----
잃어버린 초월을 찾아서
아직까지도 우리나라는 유교적 영향이 사회 곳곳에 남아숨을쉬고 있다. 유교의 예가 여성주의적 실천과 만나기 위해 변화해야 할 시기가 도래한것 같다. 이 책은 유교와 기독교 그리고 페미니즘의 연결 작업에 관심을 기울여 온 저자가 유교의 성인[聖人]과 기독교의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특히 유교적 ‘여성선비’가 어떻게 해체하고 재건할 수 있을지를 탐구한 연구서다. 먼저, ‘유교의 세간적 초월의식’에서 찾아 내고, 그것이 ‘유교의 종교성과의 관계를 논리적으로 규명해 간다.
“예가 아니면, 보지도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도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도 말고, 예가 아니면 행동하지 말라.”는 개인적 차원에서부터 “백성들을 예로써 다스려야 한다”는 정치적인 차원에 이르기까지 공자가 말하는 예는 사회,문화적 존재인 인간의 삶 전체를 조직하는 유교의 중요한 가치임에 틀림없다.
’페미니즘이 공동체주의와 많은 전제들을 공유하긴 하지만, 이들의 처방을 수락하기 어려운 것은 이들이 제안하는 과거 전통이나 혹은 현재 우리 공동체가 공유하고 있는 이해, 전승된 관습이나 규범, 그 어느 것도 여성들이 의지할 수 없는 것들로 보이기 때문이다.
여성과 남성의 권리는 “우리의 공통적인 인간성에서 도출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사회적 가치에 대한 이해로부터 도출된다. 특히 이 책은 조선시대의 실제 역사 속에서 조선 영,정조시대에 살았던 '임윤지당'과 조선후기 정조,순조시대를 살았던 '강정일당'이라는 두 명의 여성선비를 발굴해 내고 그들의 삶과 사상을 통해서 접근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 두 여성선비의 공통점은 강정일당(姜靜一堂)은 각고의 수양과 심오한 학문 그리고 도덕적 실천을 훌륭한 문장으로 남긴 조선 시대 여성 성리학자이며 문인이었다는 점이다.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학문을 닦음으로써 기존의 남성위주의 교육체계에서도 도전을 보여주고 있다.
정일당은 가난한 양반 가문에서 태어나, 온갖 불행을 겪고 인고의 삶을 살면서도 학문을 닦고 자아를 실현했다. 정일당은 가정에서 여성의 직분을 다하면서도, 심성을 수양하고 진리를 탐구하여 성리학의 오묘한 이치를 터득하고, 순수하고도 편안한 달관의 경지에 이르렀다. 정일당은 임윤지당을 존경하여 "하늘에서 받은 성품은 남녀의 차이가 있는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인용하면서 여성이지만 성인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음을 늘 주장하였고 여성으로서 그 기대에 맞게 대항한것은 아니지만 아주 혁신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 접기
book 2009-02-14 공감(0) 댓글(0)
Thanks to
공감
잃어버린 초월을 찾아서
유교하면 공자왈 맹자왈이라는 단어 부터 떠오르는 내게, 유교를 하나의 종교로 보는 관점은 매우 생소하였다. 인(仁)을 최고 이념으로 삼아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의 실현을 목표삼는 하나의 윤리 정도로만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우기, 유교사상에 대해 솔직히 나는, 대한민국 여성의 한 사람으로서, 막연한 피해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과거 조선 시대 여성들의 삶은 유교 전통 아래, 그야말로 "인고의 세월" 그 자체로 인식되었다. 오죽하면, 시집가면 벙어리 삼년, 귀머거리 삼년, 장님 삼년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이 있겠는가! 유교 가부장주의 아래 우리 여성의 삶, 그 중에서도 특히 며느리/아내/아녀자로서의 삶은 그야 말로 '문서 없는 종'에 다름 아니라는게 나의 오랜 고정 관념이었다.
이 책은, 제일 먼저 위와 같은 나의 고정 관념들에 물음표를 던지고, 새로운 시각과 상상력을 통해, 그리고 종교라는 다소 생소한 틀을 통해 한국 여성의 삶을 돌아 보게 한다. 이 과정에서 아주 멀게는, 원시 샤머니즘의 무(巫)교에서 부터, 삼국 시대 불교, 그리고 가깝게는 조선 시대 유교에 이르는 긴 시간과 공간의 광대한 역사적 스펙트럼 속에서,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떠난 듯 흥미롭게 이야기가 펼쳐 진다.
특히 조선 시대 유교의 종교성과 그것이 여성의 삶에 미친 영향을 다루는 부분에서는, 구체적으로 18세기 여성 성리학자 임윤지당과 강정일당의 삶을 통해, 마치 한 편의 사극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그림 처럼 생생하게 여인의 삶을 반추 한다. 한 시대의 고통과 성과를 보다 장구한 시간과 포괄적인 공간에서 살피고 있는 점에 나도 모르게 감탄하게 된다. 한마디로 스케일이 불록버스터 영화 같다.
어느 부분에서는 저자의 상상과 비약이 조금 지나친게 아닌가 하는 막연한 기분이 들 때도 있었지만,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고, 또 결국에는 생각대로 발전하고 이루어 지므로, 저자의 이와 같은 시도는 매우 의미 있는 성과물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역사는 항상 어떻게 의미 부여를 하기느냐에 따라 180도 새롭게 재조명될 수 있으며, 역사에 기대어 또 다른 역사를 만들어 내는 것 역시 후손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이 처럼 한계를 약간 넘은 듯한 저자의 새로운 역사유추, 그리고 생각과 발상의 전환은 신선한 충격과 재미를 준다. 또한 부정 보다는 긍적적인 삶의 요소를 보려는 저자의 시각과 가치관 역시 매우 마음에 들었다. 저자의 말 대로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자의 삶은 서로 다르긴 하지만, 나름대로 모두가 어쩔 수 없는 삶의 제약과 조건들 아래서 시작'되는데, 과도하게 한계와 제약 조건들 자체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정말이지 그 속에서 나름대로 한계를 극복하고 활동했던 소수의 사람들의 업적과 교훈은 간과 되기 쉬울 것 같다.
무엇보다 종교과 여성을 결부시켜 우리 역사를 볼 수 있었던 점이 흥미로웠다. 우리 현 시대 대한민국에서 여성과 종교가 연관지어져 이슈가 되었던 사건은 다름 아닌 국민 여배우이자 인기 톱탤런트 였던 최진실씨의 급작스런 죽음이었다. 신앙인으로서 그녀가 죽음을 스스로 택했다는 사실에 많은 기독교인들이 무력감 내지는 실망감을 느꼈던 것 이다. 나 역시 이를 계기로 종교가 한 개인의 삶에 어느 정도 까지 영향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 많이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종교가 인간 개인의 삶에 어느 정도의 깊이 까지 영향을 줄 수 있는가 하는 것은 각 개인별 편차가 매우 심한 듯 하다. 한편 역으로 인간 개개인의 삶이 종교를 뛰어 넘어 어떻게 역사와 문화를 변화 시켜 나아가고 주도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내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많은 의문이 남는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어느 시대에나 인간 지각의 한계를 뛰어넘어, 이상적이고 영적인 세계의 가치를 믿고 성숙된 삶을 사는 초월자 적인 인간이 존재한다는 점 이다.
저자의 참신한 역사유추와 긍정의 힘, 그리고 완벽하다 싶을 정도로 고급스럽고 깔끔한 책의 편집과 구성이 돋보이는 책이다.
- 접기
hblee75 2009-02-18 공감(0) 댓글(0)
한국 유교를 통해 본 여성주의
한국 유교에서 여성주의를 발견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는 발상이 참 낯설다. 왜냐하면 유교하면 남성중심주의적이라는 이미지와 더불어 남존여비(男尊女卑)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여성주의(페미니즘)는 서양에서 인간 자신에 대한 자각과 이성의 가치를 최고로 여기는 계몽주의가 발달하고 여성의 사회 참여가 확산하면서 여성의 권익을 찾기 위한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동양과 마찬가지로 서양 역시 그 이전의 역사를 보면 남성 중심으로 여성을 억압해왔고, 그것을 종교적, 제도적, 윤리적 장치를 통해 공고히 다져왔다. 따라서 이것에 반하여 일어난 여성주의는 당연히 전통적인 가치와 제도, 윤리 등을 부정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개인주의와 물신주의가 결합되면서 여성운동이 여성의 모성(母性)을 부정하고 공동체의 가치를 부정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저자는 ‘페미니즘의 궁극적인 목표도 우리 공동체의 삶을 더욱 더 바람직한 인간적인 삶으로 이끄는 것’(p.166)이라고 말하고, 여성운동이 그 본질적 가치를 찾는 길은 ‘여성과 여성의 몸과 여성 주체성의 신성한 차원을 다시 회복하’(p.167)는 것에 있으며, 이는 결국 ‘세속화’를 넘어선 ‘종교적’ 가치를 지니는 ‘영적 혁명’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저자는 그 ‘영적 혁명’의 바탕을 한국의 유교에서 찾고 있다.
과연 유교는 종교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이 점에 대해서 저자는 ‘오늘날 현대 종교현상학의 종교 이해는 어떤 구체적인 인격신적인 신에 대한 믿음이나 성직자 체계의 유무 등을 종교의 핵심으로 보지 않고 대신 삶의 진행과정에서 경험되는 성(聖)과 속(俗)에 대한 구별 의식을 그 핵으로 본다’(p27)라고 하여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성인지도(聖人之道)를 추구하는 유교도 역시 종교의 하나로 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모두 알다시피 유교는 춘추시대에 활동한 공자로부터 시작되었다. 공자는 인간의 가장 큰 덕목으로 인(仁)을 주장했다. 인은 그 글자대로 풀자면 두 사람(二人)을 뜻한다. 이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 서로 관계를 맺고 살 수밖에 없는 존재이고,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윤리와 도덕이 필요하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유교는 원래부터 인간의 문제에 착안하였고 또한 공동체적 가치를 주창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에서 주로 논의하는 유학은 북송의 정이천과 정명도 형제, 주돈이, 장재 등에 의해 발전하고 남송의 주희에 의해 완성된 성리학(성리학)을 말하고 있다.
도학(道學)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성리학은 그 이전의 유학에 비해 더욱 더 종교적 색채를 띠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성리학에서 하늘(天)이란 존재는 완전무결하며 이 세상의 가장 본원적 원리인 이(理)를 내포하고 있는데, 이 이가 각자 사람에게 부여된 것이 성(性)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성이 도덕적 원리로 나타난 것이 바로 인의예지(仁義禮智)라고 한다. 따라서 성리학에서는 하늘이 부여한 본성을 자각하고 그것이 더럽혀 지지 않도록 유지하는 것이 가장 큰 사명이었으며, 이를 위기지학(爲己之學)이라고 하였다. 인의예지의 덕성은 곧 인간 사회의 덕목이다. 즉 유교에서 말하는 수행 방법이란 공동체 생활 속에서 그 덕목을 구현하는 것으로서, 성(聖)과 속(俗)이 분리 되어 있지 않다.
공자는 자신의 학문의 법통을 주나라에서 찾았다. 주나라는 이른바 ‘종법(宗法)’에 근간을 둔 제도를 운영하였다. 종법이란 한 집안을 장자인 남성을 중심으로 운영하는 제도를 말하는데, 국가 운영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종통(宗統)을 세우는 것이 우선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이 제도를 이은 유교를 받아들인 조선도 역시 종법 질서를 따랐으며, 그 결과로 남성 중심적이었고, 여성은 종속적 지위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현대의 우리가 생각하기 쉬운 것처럼 여성이 단순히 종속적 위치에 만족하고 가정 내에서만 머무르는 존재였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 이 책의 저자는 그렇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 예로써 영, 정조 연간에 생존했던 ‘임윤지당’과 ‘강정일당’이라는 두 여성을 소개하고 있다. 이들은 비록 규중에 갇혀있는 여성의 몸이었지만, 학문을 연마하고 도덕을 수양하여 당시 남성도 이르기 어려운 경지에 이르렀고, 이들은 며느리, 아내, 어머니, 종부로서 역할을 다하여 모든 이들이 존경을 받았고, 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이들의 삶이 ‘매우 역동적이고 책임의식을 가지고 다양한 역할을 하면서 주체적으로 살았다’(p.182)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현대적 개념으로 가정을 사적 공간으로 여기지만, 조선 시대에는 그렇지 않았다. 당시 여성들은 비록 가정에 머물렀지만 봉제사(奉祭祀)와 접빈객(接賓客)을 통해서 공적 역할을 수행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다시 말하면 당시 가정은 사적 공간이 아니라 공적 영역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시 여성은 가정 내에 머물면서도 공적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고 보는 것이다.
여기에서 저자는 ‘오늘날 여성주의가 과도하게 사적 영역에 몰두함으로써 잃어버리고 있는 공적 영역의 일을 다시 포괄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다’(p.185)고 말하고 있다.
또한 ‘오늘날 여성 여성주의가 인간성 상실과 생태적 위기, 과도한 경쟁 원리의 적용과 주관주의에 함몰되는 위험 앞에서 다시 ‘보살핌’의 윤리를 찾고, ‘어머니 되어 주기’의 의미를 찾는다면, 바로 한국 유교 전통의 여성들이야말로 참된 생명의 배려자와 살림꾼으로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p187)고 말하고 있다.
또 ‘오늘날 한국 여성들이 나가야 할 길은 유교적 예화와 성화에 대한 자각을 서구적 주체성의 의식과 여성주의로 다듬어서 삶의 전 영역을 포괄할 수 있는 성찰의 힘으로 넓혀 나가’(p.205)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바로 ‘한국적 여성주의’를 완성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이 책에서 주장하는 여성주의가 과연 보편적인 여성 운동가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인가 하는 것은 알 수 없지만, 현재 처해 있는 인간과 여성의 문제에 대한 하나의 대안으로써 참고해볼만 하다고 생각한다.
- 접기
운산 2009-02-10 공감(0) 댓글(0)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