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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종
5 July 2016 · Shared with Public
미시사와 거시사의 이중주
0. 시작하는 말씀
한국고대사를 둘러싸고 논쟁이 격렬합니다. 이른바 ‘제도권’에 대한 ‘환단고기파’의 공격이 대단합니다. 좀 더 생각해보면 역사를 어떻게 쓰고, 읽을 것이냐, 하는 문제는 우리사회의 중요한 현안이 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갈 데까지 가고만 ‘국정교과서문제’도 그렇고, 박유하 씨의 ‘제국의 위안부’에 관한 논쟁도 그러합니다.
한 사람의 역사가로서 제 입장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두어 해 전에 ‘미시사와 거시사의 이중주’라는 짧은 글을 발표한 일이 있습니다. 그 글에서 저는 일단 첨예한 현안을 일단 배제하기로 하였습니다. 역사학의 출발점으로 되돌아가 21세기의 역사가가 나아갈 길을 제 딴에는 좀 차분하게 살펴보기로 마음먹고, 제 생각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 일이 있습니다. 참고가 되시기를 바라며, 제 글의 전문을 아래에 옮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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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거시사’ 위주의 역사 서술과 기록이 우세했다. 그와 달리 오늘날에는 ‘미시사’의 관점에서 서술된 역사와 기록이 시민들의 사랑을 많이 받는다. 학문연구의 세부 영역을 ‘미시’와 ‘거시’로 나누는 관행은 20세기 전반기에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생물학과 물리학 등 자연과학의 분야에서 이러한 분화가 시작되었다. 나중에는 경제학과 사회학 등 인문사회과학으로 확산되었다. 1970년대에 들어서자 다른 학문분야에 비해 이론적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은 역사학계에도 양대 구분법이 생겼다. 상식적인 차원에서 보면, 상호보완의 관계에 놓인 것으로 여겨지는 거시사와 미시사. 그들 사이에는 과연 어떤 차이가 존재하는가? 혹시 그 두 가지를 아우를 수 있는 방도는 없는 것일까? 궁금증을 다소나마 풀어보고 싶어서 이 글을 쓴다.
1. 거시사 또는 근대역사학의 본질
1970년대 필자가 학창시절에 배운 역사교과서는 전형적인 거시사(Macro history)였다. 그때 ‘국사’ 교과서의 중심에는 국가와 민족이 있었고,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사의 발전과정이 일직선적으로 설명되어 있었다. 왕조가 바뀔 때마다 농업생산성이 향상되고 왕권이 강화되었다는 주장이 몇 번이나 되풀이 되었다. 또 시대가 아래로 내려올수록 지배층이 더욱 확산되었다는 고무적인 사회발전론이 지면을 장식했다.
오늘날에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한국사 교과서의 서술주체는 여전히 한국민족이다. 만주와 한반도에 정주한 그들은 여러 왕조국가의 주인이었고, 까마득한 시절부터 그들은 정치, 경제 및 문화적인 방면에서 발전과 진보를 거듭해왔다고 되어 있다, 현대 한국의 역사교과서는 민족의 역사발전을 찬미하는 장편 서사시와도 같다.
역사를 지배하는 흐름이 진보요, 인간의 이성이라는 주장은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 19세기후반에 출현한 서양의 근대역사학에 그 뿌리가 있다. 그것은 당시의 세계질서를 뒷받침하는 민족주의 또는 제국주의 및 사회진화론(social Darwinism)과 연결되어있었다. 아울러, 근대국가의 내적 이데올로기인 계몽사상과도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 근대역사학의 아버지는 사료비판의 중요성을 역설한 19세기의 독일 역사가 레오폴드 폰 랑케(1795-1886)였다. 랑케는 실증주의(positivism)에 입각한 역사학을 강조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역사서술은 객관성을 상실하였다. 랑케는 자신의 조국 프로이센의 예를 통해, 근대국가는 이성(reason)을 삶속에 구현하는 진정한 주체라는 점, 즉 근대국가가 역사적 진보(progress)를 추동한다는 이론을 부르짖은 셈이었다. 이 주장은 실증에 바탕을 둔 역사연구가 아니라, 체제미화에 가까웠다.
물론 랑케의 역사연구에는 본받을 점이 많았다. 그의 폭넓은 시야는 감히 누구도 쉽게 모방할 수 없는 높은 경지였다. 그는 독일사만이 아니라 유럽사 전반을 깊이 탐구하였다. 또한 그가 쓴 역사책은 ‘이야기체 서사’(narrative)의 오랜 전통을 이어받은, 웅장하고 미려한 걸작이었다.
랑케로부터 시작된 근대역사학은 19세기 후반을 거치며 더욱 세련되었다. 점차 다양한 연구시각으로 분화되기도 하였다. 제국주의의 물결 속에서 근대역사학은 좀 더 국가 중심적이고 침략적인 성격을 띠었다. 역사가들은 과학혁명의 시대적 조류에 발맞춰 ‘과학’(science)의 길을 추구하기도 하였다. 결과적으로, 역사책은 갈수록 딱딱하고 무미건조한 추상적인 텍스트로 변화되었다. 이야기체는 사라지고, 그 자리를 통계와 분석, 계층적 이해관계와 사회구조에 관한 분석이 점령하였다.
칼 마르크스(1818-1883)의 역사적 유물론은 이러한 변화를 선도하였다. 그러다가 20세기 프랑스에서는 아날학파(Annales School)가 등장하여, 사회 경제사를 개척하였다. 1929년 L. 페브르와 M. 블로크는 <<사회경제사 연보(Annales d'histoire économique et sociale)>>를 창간해, 시회과학의 제 이론을 역사학에 이식하였다. 20세기 후반 미국에서는 통계를 중시하는 계량사학이 출현하였다. 독일에서는 ‘사회사’(Gesellschaft-Geschichte)를 강조하는 빌레펠트 학파(Bielefeld School)가 형성되었다.
각 학파의 특징을 자세히 논의할 겨를은 없다. 간단히 말하면, 마르크스의 유물론 덕분에 역사에서 계급 또는 계층 간의 대립과 갈등이 중요한 주제로 떠올랐다. 아날학파는 세대별로 큰 격차를 보였지만, 학제간의 연대를 강화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그들은 역사의 구조와 성격을 설명하기 위해 지리학적 지식을 강조했다. 또한 사회과학이 역사연구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도 증명했다. 아울러 장기지속의 구조를 중요한 탐구대상으로 부각시키기도 하였다. 그밖에 계량사학은 통계 또는 경제학적 접근이 역사인식에 새로움을 더해준다는 경험을 선사했다. 독일 사회사는 ‘전체사’(total history)의 일종인데, 정치, 경제, 문화가 상호불가분의 관계라는 인식을 초래했다. 이로써 근대역사학의 총아인 거시사는 그 내용이 더욱 새롭고 풍부해졌다.
그러나 한국사학계는 세계역사학계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지 못하였다. 지난 30년 동안의 한국사 교과서를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일반시민들을 위하여 저술된 각종 한국사 개설서 역시 역사학의 새로운 조류와는 밀접한 관계가 없어 보인다. 한국사 서술은 보수적이었다. 몇몇 왕과 특출한 개인들의 업적을 중심으로 역사발전이 서술되는 경우가 많았다.
서양역사책과는 달리 한국사 책에서 발견되는 보통사람들의 역할은 단조로운 편이다. 그들은 ‘백성’, ‘국민’ 또는 ‘시민’이란 용어로 간단히 뭉뚱그려지는데, 때로 혜성처럼 등장한 역사적 영웅의 지도에 순응하거나, 그들과 함께 외적을 퇴치하고, 새 왕조를 건설하는 것으로 서술되어있다. 그러나 대체로는 부패하고 무능한 정권의 희생양 또는 외세의 폭력 앞에 거듭해서 수난을 겪는 수동적 존재로 부각되어 있다. 특히 천민과 여성 및 노약자들은 사실상 이렇다 할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존재로 나타난다.
요컨대 한국사의 사회적 소수자들은 거의 완벽하게 타자화 되어버린, 무력한 존재들로 기억된다. 보통사람들의 역할에 대한 한국의 거시사적 서술은 소략하고 미흡하기 그지없다. 이에 관한 비판이 없지 않으나 아직도 별로 개선되지 못하였다.
1970년대 이후 서구 여러 나라에서는 거시사에 대한 비판이 크게 일어났다. 비판의 요점은, 근대역사학의 뚜렷한 특징이라 할 일직선적 발전사관의 오류였다. 20세기 세계는 두 차례나 세계대전을 겪었다. 결과적으로 근대적 발전사관에 대한 의문이 깊어졌다. 또, 민주주의가 본격적으로 전개됨에 따라, 역사의 주체를 특정 계층으로 국한해서 설명해온 거시사의 오랜 전통에 대한 반감이 커졌다. 거시사에 대한 비판을 주도한 것은 ‘미시사’의 선구자들이었다. 그들은 거시사의 부정확성과 애매모호함을 예로 들어가며 그 효용성을 부정하였다.
2. 미시사란 무엇인가?
거시사의 약점을 공략하면서 세계 여러 곳에서 미시사(Micro history)가 출현하였다. 그것은 거의 동시다발적이었다. 영국, 미국, 프랑스, 멕시코, 독일, 이탈리아 등지에서 미시사 운동이 일어났다. 처음에는 ‘미시사’라는 이름도 없이 미시사의 선구적인 저술들이 나타나 시민들의 관심을 끌었다. 정작 ‘미시사’라는 용어가 사용된 것은 1970년대 말의 이탈리아에서였다. 그 후 많은 미시사 계열의 논저가 간행되었는데, 가장 손꼽히는 저술로는 카를로 진즈부르그의 <<치즈와 구더기>>를 비롯해, 나탈리 제먼 데이비스의 <<마르탱 게르의 귀향>>과 조반니 레비의 <<무형의 유산>> 등이 있다.
미시사가들은 기왕의 거시사가들과는 연구방법에 있어서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거시사가들은 역사의 거대구조를 인식하는데 집중하였다. 또한 거시사가들은 사회과학적 분석방법과 통계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와 달리 미시사가들은 평범한 개인을 역사의 주인공으로 삼아, 그를 중심으로 한 문서의 네트워킹(networking)을 추구하였다. 이른바 ‘실명의 개인’을 토대로 그의 사회적 관계망을 탐구하는 것인데, ‘실마리 찾기’라고 부를 수 있다. 그리하여 일종의 ‘집단전기’(prosopography)가 탄생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미시사의 연구 성과는 읽기 편하고, 독자들과 연구체험을 공유하는 ‘이야기체 서술’로 제시되었다.
미시사의 연구 목적은, 평범한 개인들의 ‘생존전략’을 탐구하는 데 있다. 정치, 사회적으로 단 한 번도 유리한 입장에 선 적이 없는 그들 평민의 ‘재량권’을 저울질하는 것도 미시사가들이 중시하는 연구 목적이다. 이 두 가지는 학계가 널리 인정하는 미시사 연구의 특징이다. 이에 더하여 필자는, ‘문화투쟁’의 실체를 분석하는 것 또한 미시사의 목적이라고 말해왔다, 요컨대 미시사가들은 거시사가들이 간단히 무시해온 작은 사례를 폭넓고 깊이 연구한다. 이는 마치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기’를 하는 것과 같다. 이를 통해 미시사가들은 거시사가들이 주장하는 역사적 이해의 틀을 수정하는데 관심을 쏟는다. 미시사는 결코 사소한 연구가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시사가 거시사를 대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좌파출신 인사가 많은 미시사가들이 아무리 주인공의 사회적 관계를 중시한다 해도, 미시사는 개인주의적 성향을 벗어날 수 없다. 거시사가들은 미시사의 이러한 성격을 결함으로 인식하고, 미시사에 의한 ‘역사의 파편화’를 경고한다. 이는 사실과 정확히 일치하는 비판이 아니다. 하지만 미시사만으로는 역사의 구조와 흐름이 일목요연하게 파악되기 어렵다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3. ‘상호보완’을 넘어, 머나먼 통합의 길
독일의 사회학자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1889-1966)는 미시사와 거시사의 상호관계를 적절히 요약하였다. 그의 유고집 <<역사, 끝에서 두 번째 세계>>의 일절이 주목되는 이유가 거기 있다. 그런데 그 원문은 꽤 난삽한 편이다. 필자가 약간 의역해보면 다음과 같다.
“역사적 사실의 총합은 현미경으로 관찰할 수 있는 것 이상이다. 역사에는 미시적 차원으로는 포착되지 않는 것이 있다. 즉 거시적 차원에서 연출되는 사건과 그 발전과정도 존재한다. 그러므로 거시사는 미시사와 마찬가지로 역사의 본질을 구성한다. 하지만 거시사만으로는 불완전하다. (중략) 미시사를 동반하지 않은 거시사란 이상적인 역사서술이 될 수 없다.”
거시사의 시각을 총체주의(holism)라 명명했을 때, 미시사는 개인주의(individualism)라고 부를 수 있다. 이들 양자 가운데 어느 하나만으로는 역사를 온전히 서술할 수 없다. 이점은 대다수 역사가들이 공감하는 바다. 가령 이탈리아 미시사의 대표자로 자타가 공인하는 카를로 진즈부르그는 자신이 미시사가로만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는 미시와 거시의 관점을 끊임없이 오가며, 온전한 역사를 서술하고 싶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문제는 한 사람의 역사가가 총체주의와 개인주의의 관점을 임의로 왕래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독일의 미시사가 슐룸봄은 그와 같은 관점이동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 비유컨대 자본주의자인 어느 기업가가 충실한 마르크스주의자를 겸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미시사와 거시사의 길은 역사가 개인에게 주어진 존재론적 선택의 문제다. 하나를 선택하면 나머지 하나는 버릴 수밖에 없다.
역사학계 전체로서는, 양자의 조화와 협연이 바람직할 뿐만 아니라,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개별 역사가로서는 그러한 통합의 가능성이 없는 셈이다. 미시와 거시의 이중주, 그것은 진즈부르그도 이루지 못한 미완의 꿈이지만, 역사적 성찰을 위해서는 필수적인 덕목이다.
참고문헌
1. 미시사의 대표저작
카를로 진즈부르그, <<치즈와 구더기>>, 김정하 역, 문학과지성사, 2001
나탈리 제먼 데이비스, <<마르탱 게르의 귀향>>, 양희영 역, 지식의 풍경, 2000
2. 미시사와 거시사의 관계를 논한 저서
곽차섭 엮음, <<미시사란 무엇인가>>, 푸른역사, 2000
위르겐 슐룸봄 편, <<미시사와 거시사>>, 백승종 외 역, 궁리, 2001
위르겐 슐룸봄, <<미시사의 즐거움>>, 백승종, 장현숙 역, 돌베개, 2002
3. 한국의 미시사
백승종, <<정감록 역모사건의 진실게임>>, 푸른역사, 2006
백승종, <<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 푸른역사, 2011
정병욱, <<식민지 불온열전>>, 역사비평사, 2013
Comments
이창섭
공유하겠습니다^^
· Reply · 4 y
유재의
잘 읽었습니다. 새로운 지식 세계를 안내해 주시어 고맙습니다.
· Reply · 4 y
Seongmin Kim
감사합니다 링크 걸어서 읽어 볼게요
· Reply · 4 y
김민호
감사합니다.
· Reply · 4 y
Keun Reu
많이 배웠습니다.^^
· Reply · 4 y
박인성
좋은 글, 감사합니다!
· Reply · 4 y
한겸택
선생님 덕분에 역사공부 많이 합니다. 어려워 귀에 쏙쏙 들어오지 않을때가 많긴 하지만~
· Reply · 4 y
심민호
감사합니다
^^
두고 두고 읽으며 공부하고자… See more
· Reply · 4 y
현상송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잘 배웠습니다.
· Reply · 4 y
Soonsoon Chang
잘 읽었습니다. 미시사와 거시사의 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면 나머지 하나는 버릴 수밖에 없다는 말씀은 동감하지만...
· Reply · 4 y · Edited
Clio Historia
저는 사실 거시사와 미시사라고 따로 구분을 지어 연구하기 보다는 역사가 자신이 관심을 가진 주제에 대해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나 합니다. 제가 작년에 졸업논문으로 젬멜바이스와 빈 의학자들에 대해서 다루었으니 어떻게 보면 미시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 논문으로는 1870년에서 1930년 사이의 독일 루어지역에서의 질병의 패턴변화와 생활조건의 변화의 관계에 대해서 다룰 예정입니다. 어떻게 보면 거시사가 아닐까 하는데 선생님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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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종
말씀의 취지는 잘 이해합니다. 이것은 실천의 문제인데요. 거시경제학자가 미시경제학자일 수도 있는가, 하는 것과 같은 문제입니다. 경제학과 학생이야 미시경제도 거시경제도 다 배우지요. 그러나 미시경제학자는 거시경제학자를 겸하지 못합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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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옥
👑👑👑👑
· Reply · 4 y
김원태
이중주 라는 명제가 새롭습니다. 인문학에서는 그 양자가 상호 보완하는 요소로 자리잡히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지만, 조금 더 시야를 넓혀보는 것도 필요할 것입니다.
즉, 물리학자였던 경험으로 그 양요소가 구성된 factor(우리말은 앞의 요소와 달리하여 요인이라고 하겠습니다)는 실제는 동일한데 그 것을 움직이는 variable(변수)가 작용하는 범위의 문제로 달라지는 것이라 할 것이니, 그런 면을 고려한 시야를 넓히는 문제가 함께 공존하는 것을 넘어서야하는 것이라 여깁니다.
fractal is Everywhere.라고 하였는데 그 Fractal의 성질 중 가장 특징적인 것이 Scale Invariance( 또는 Self-Similarity)인데 그 크기에 따라 불변이지만 나타난 현상은 다른 것은 그 내의 상호작용이 국부적으로 작용할 때와 전체적으로 나타날때가 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마 역사학이나 다른 인문학에서 그 미 거시를 나누는 관점도 국부작용과 현상의 차이 일 것인데, 그것을 별개로 나누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리학에서 양자역학이 새로이 탄생한 것으로 여기는데 실제는 이미 고전역학에서 다루어진 명제인데, 그것을 무시하였던 것을 끄집어 내어서 개별적으로 살피는 것이 양자역학이고, 고전역학은 양자역학의 보이는 현상 기술이기에 동일하게 취급하고 있는 것이 물리학에서의 접근방법입니다. 역사학이라고 다르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Invari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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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종
새로운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말씀입니다. 미래의 중요한 과제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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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식
공유하겠습니다
· Reply · 4 y
Hong Bae
퍼갑니다. 고맙습니다.
· Reply · 3 y
박계태
선생님의 소중한 글 잘 읽었습니다.. 문외한이지만 우리의 아픈 역사도 사랑하고자 하는 사람으로 역사를 바라보시는 곳을 함께 보며 배우고자 합니다^^
· Reply · 3 y
백승종
모든 역사는 다 아픕니다. 우리에게 온전한 자유와 사랑이 실천되는 그날이 아직 오지 않았으니까요.
· Reply · 3 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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