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2-08

2102 Park Yuha 하버드대 교수 논문으로 다시 위안부문제가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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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나온 위안부손배소 판결과 하버드대 교수 논문으로 다시 위안부문제가 주목받게 되었으니 이 시점에서 현재 위안부 문제 중심에 있는 학자들의 최근생각을 확인해 둘 필요가 있다.
이하는 12월초에 어떤 심포지움을 듣고 쓴 글 중 일부.
기자님들은 하버드 교수 발언을 규탄하기 전에 관계자들께 이하에 대해서 확인해 주시면 좋겠다. 그리고 그동안 생각이 바뀌었다면 왜 그런 사실을 대외적으로 명백히 말하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거대한(세계적) 혼란을 만들고 만 데 대한 책임의식은 없는지도.
——————
위안부문제 관계자들은 (정의연+일본군 위안부 연구회)
  • 오랫동안 위안부 동원이 ‘강제연행’이라면서 일본이 ‘법적책임/국가배상’을 져야 한다고 하더니
  • 이제는 ‘위안부가 군인과 같이 행동한 건 맞는데 그것은 식민지 지배결과이니 앞으로는 식민지지배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 혹은 오랫동안 ‘공창’이 아니라면서 조금이라도 비슷하게 말한 사람들을 매국노 취급하며 국민과 국가를 동원한 폭력까지 서슴지 않더니
  • 이제는 ‘공창제를 이용한 모집이긴 하지만 당시 공창제가 불법이었으니 그 책임을 물어야한다’고 말한다.
  • 동시에 조선인위안부문제가 90년대에 일어났던 타국에서의 이민족강간등과 같은 것인것처럼 말한다.
  • (나 역시 일본군인이 조선인여성을 강간할 때 때로 차별의식도 동반되었다는 것을 말했으니 당연히 그 시도 자체를 부정하는 건 아니다.)
You, 希修, 李昇燁 and 187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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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있는 그대로만의 '기억'만큼 강력한 '연대'가 또 어디 있을까요. 그 앞에 '정의'가 들어가면서 기억은 재구성되었던 것 같아요, 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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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승인
       그러게요. 이미 존재하는 기억의 단순화/일반화가 이 30년 역사가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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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 d
    • 저도 단체 이름에서 정의로운 기억만 선택해서 남겨두거나 기억을 정의로운 것으로 윤색하려는 의도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물론 정의를 실현시켜서 후세에 그 정의가 기억되게 하려는 의도의 작명이었을 것으로 믿지만 의도와 다른 느낌이 든 건 그 단체가 보여준 행보와 무관하지 않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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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 d
    • 박유하
       한일해양터널에 대한 생각은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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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 d
  • 전형적인 답정너 프로크루테스의 침대식 행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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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 d
  • 80년대에 주요 문예지 중 하나에서,
    일본군위안부를 다룬 소설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종전으로 귀국하는 배 위에서 나누는 대화에, 군인들을 상대할 때마다 받은 표를 큰 재산이 될 듯 자랑하다 바람에 날려버리는 장면이 생각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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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k Yuha repli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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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들이 기억하고 싶은대로 편집하고 그것에 "정의"란 이름으로 앵벌이하여 왜곡된 "역사"라는 것으로 먹고 사는 집단이 권력마저 잡는 이상한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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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 d
  • 정말 궁금한게요.. 위안부문제에 대해서 근현대사 및 한일관계사 전공 교수님들의 학계에서 정설같은게 존재하지 않는 건가요?
    예를 들면 의학계에서 이런 치료가 맞고 꼭 해야된다는게 정설이자 주류이자 교과서에 실릴 정도면 비전문가이신분들도 그런 치료법에 따를텐데
    위안부문제에 대해선 같은 사료를 보고도 왜 전문가들끼리 싸우고 주장이 갈리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여러 자료들을 보았을때 저는 교수님 의견에 적극동의합니다만, 다른 주장을 하시는 분들은 '감정'이 개입되어서 그런걸까요?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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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은식
       위안부문제 연구는 이제 30년 되었어요. 한국 연구자들이 늘어난 건 최근 몇년입니다. 그동안은 몇명이 주도해 왔고 많은 부분 일본인 연구에 의지해 왔어요.
      그리고 일본 주류는 강제성을 말하지만 강제연행은 말하지 않았죠. 그러나 속죄의식은 강해서 ‘강제연행’을 말하는 한국과 연대. 30년 끈끈한 관계를 이어왔어요.
      일본에서 공부한 사람중 이런 내용과는 좀 다른 연구도 있었는데(업자 문제 지적) 한국어로 번역된 건 시간이 한참 지나서였고, 그런데도 표면적으로는 강제성주장 연구자들의 의견을 거스르려고 하지 않아요. 물론 억압때문이죠.
      그러면서 구조적 강제성만 주장하던 일본 주류학자(물리적 강제연행은 부정하던)도 동원이 아니라 위안소에서 부자유했으니 강제적이라는 식으로 주장.오래된 관계가 있으니 연대하는 거지요.
      이 모든 배경엔 ‘법적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이 있는데 문제는 그 근거가 당시에 공창제는 폐지추세였는데 일본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던가..여러 ‘법률’이 동원됩니다. 위안부에 대한 일본인의 속죄의식과, 더 나간 사죄를 받고 싶은(위안부를 통해 식민지지배 사죄를 받고 싶은) 한국의 욕망이 만나 연대를 이루어 온 겁니다.
      이론을 제기하는 모두가 이런 생각을 공유하는 건 아니지만, 다 떠나서 ‘위안부가 어떤 존재였는지’에 대한 기존이해에 문제제기를 한 게 저였고, 이후 다른 학자도 ‘이론異論‘을 제기하게 된 상황입니다. 하지만 그 내용은 꼭 같지는 않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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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유하
       답글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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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 d
    • 박은식
       정대협 쪽에 가깝다고 알려진 위안부 연구자 중 한분인 윤명숙 박사의 프레시안 인터뷰를 봐도 강제연행설은 이미 부정되었고 학계에서 적극적으로 그걸 말하는 사람이 별로 없을 뿐이죠 인터뷰에서 강제연행을 일제가 할 수도 없었고 할 필요도 없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https://m.pressian.com/m/pages/articles/118436?no=118436
      "위안부 아니라 위안소 문제, 명백한 국가 범죄"
      M.PRESSIAN.COM
      "위안부 아니라 위안소 문제, 명백한 국가 범죄"
      "위안부 아니라 위안소 문제, 명백한 국가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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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 d
    • 박성환
       맞아요. 그런데도 이 분은 “징모”라는 단어를 사용해 물리적 강제성을
      강조하고 있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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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긴 글. 시간 날 때 읽어 주세요. #위안부문제
우연이었지만 토요일엔 한일 위안부문제 관계자가 총출연(윤미향의원은 불출석)하고 영어로도 발신된 ‘국제’ 심포지엄을 하루종일 지켜 봤고 일요일엔 일본의 하야부사2를 둘러싼 ‘국제’ 협력의 현장을 보고 나니 위안부 문제 관계자들이 자랑하는 ‘국제적 성과’의 내용과 결과에 대해 제대로 말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설사 진짜 성과라고 해도 그 성과가 오히려 한국의 ‘고립’을 초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그동안도 기회될 때마다 문제적 부분을 지적해 왔지만 여전히, 필요한 만큼 부지런하지는 않다.
꼭 20년전, 그러니까 2000년 12월에 도쿄에서 위안부 문제 책임을 묻는다면서 히로히토천황에게 유죄를 내린 국제모의법정의 의의를 재평가해 세간에 부각시킬 의도가 명백했던 토요일 심포지엄은, 현재의 수요시위가 그런 것처럼 윤미향사태의 반성을 전혀 담고 있지 않았었다. 물론 그 법정의 영향으로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법정이 생겼다니 그런 자리를 만들기까지의 세계여성연대와 사후적 공헌까지 폄훼하고 싶은 건 아니다.
하지만 어떤 단체든 과거의 활동을 정리한다면 반성도 따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간의 활동을 총괄하는 것으로 보인 토요일에도 법정과 그간의 운동방식에 대한 반성은 전혀 없었다. 말하자면 운동의 원래 목적이었던 “법적책임”요구가 왜 정작 일본에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는지, 일본에서 왜 그 이후 오히려 한국에 부정적인 여론이 늘었는지.
관계자들이 총출동한 그 모임은 자화자찬 일색이었고, 이대로 가면 운동의 목적달성이라는 점에서 여전히 실패중이면서도 같은 운동을 앞으로도 30년 계속해 나갈 것처럼 보였다. 더구나 여가부장관도 남인순의원도 참석해 지원을 약속하고 있었으니 정치가들이 바뀐다 해도 그들이 남겨 둘 법과 정책에 의거해 앞으로도 국민의 세금은 넘칠만큼 지원될 것이다.
물론 ‘여성에 대한 성폭력문제 환기’라는 문제틀에 나는 반대하긴 커녕 지지한다. 하지만 그 방식이 여전히 ‘취사선택된 위안부 문제 인식의 공유와 확산’이 되고 있는 한, 심지어 그 결과가 이제 재일교포들의 입장까지 어렵게 만들고 있는 한 , 이들의 방식을 이제 더 이상 방관만 해서는 안될 것 같다.
위안부문제는 이제 연구까지도 국책사업화되었고 표면적으로는 여성의 인권을 내세우고 있지만 궁극적 목표는 ‘일본의 굴복’ 이다. 그것을 위해 너무나 ‘올바른’ 개념이 동원되고 있기 때문에(식민주의의 청산과 과거식민지의 연대), 또 그 개념이 원칙적으로 옳기 때문에 이대로는 아마도 이 움직임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설령 다른 한쪽에서 목적이 앞선 연구가 행해지고 취사선택된 이용과 확산이 이루어진다 해도.
물론, 독립된지 75년이라도 필요하다면 ‘독립’ 운동은 해야 한다. 하지만 이 '독립'운동은 이미 밖에서는 보이지 않을 만큼 왜곡되어 그 왜곡상이 잘 보이지 않기에 이르렀다. (최근 드러난 '민족문제연구소' 문제도 참고하자) ‘독립’운동은 좋지만, 운동의 성과는 운동이 옳아야 얻을 수 있는 법이다.
위안부문제 관계자들은 (정의연+일본군 위안부 연구회)오랫동안 위안부 동원이 ‘강제연행’이라면서 일본이 ‘법적책임/국가배상’을 져야 한다고 하더니 이제는 ‘위안부가 군인과 같이 행동한 건 맞는데 그것은 식민지 지배결과이니 앞으로는 식민지지배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혹은 오랫동안 ‘공창’이 아니라면서 조금이라도 비슷하게 말한 사람들을 매국노 취급하며 국민과 국가를 동원한 폭력까지 서슴지 않더니 이제는 ‘공창제를 이용한 모집이긴 하지만 당시 공창제가 불법이었으니 그 책임을 물어야한다’고 말한다. 동시에 조선인위안부문제가 90년대에 일어났던 타국에서의 이민족강간등과 같은 것인것처럼 말한다. (나 역시 일본군인이 조선인여성을 강간할 때 때로 차별의식도 동반되었다는 것을 말했으니 당연히 그 시도 자체를 부정하는 건 아니다.)
이 모든 과정이 수반하고 있는 ‘기만’에 관계자들과 언론과 국민이 제대로 마주하지 않는 한 기대되고 있는 '미래'는 오지 않을 것이다. 외형적으로 운동이 성공하면 할수록.
그런 의미에서 관계자들이 '국제사회도 지지'한다는 증거로 내세워 온 90년대 유엔보고서가, 동시대에 일어난 다른 나라 사태와 위안부문제가 같은 것인 것처럼 지원자들이 어필한 결과라는 사실부터 제대로 마주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기만을 공적으로 인정하기를. 그렇지 않으면 홀로코스트관계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조만간 그 관계자들도 자신들을 이용하지 말라고 목소리를 낼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정의연의 수치를 넘어 한국의 수치가 된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내가 말한 사실들—조선인 위안부는 전쟁이 아니라 식민지지배문제로 다루어야 한다는—을 이제 와서 반복하면서도 그 말을 내가 했다는 말은 결코 하지 않는다. 또 ‘위안부가 일본군과 같이 하나의 체계로 움직였’음을 이제 와서 인정 하면서도 굳이 ‘동지적관계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 안에서 저항을 했건 사랑을 했건 혹은 그저 이용했건 그건 그 다음의 문제다. 또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나는 ‘동지’라고 하지 않고 ‘동지적관계’라고 썼다. 그럼에도 이들은 이제 와서 조선인 위안부정황을 표현할 다른 ‘언어’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물론 연구는 이어져도 좋고 다른 언어화 역시 있어도 좋다.(그 전에 <전쟁과 성폭력의 비교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하지만 과거의 인식에 기반해 이루어진 일본의 사죄와 보상시도를 전부정하면서 자신들이 새로 만든 ‘연구’ 틀에 따라 일본에 대해 그때마다 사죄와 배상을 새로 요구해도 되는 건 아니다 . 그런 일이 허용된다면 전세계의 과거사청산은 연구의 진전에 따라 늘 새롭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물론 새로운 시도가 불필요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길어지므로 자세히는 쓰지 않겠지만 정치외교와 연구는 함께 가야 하지만 때로 정리도 필요한 법이다.
정의연이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를 <정의기억연대>로 바꾸면서 자신들의 과거인식의 오류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은 것처럼, 학자들도 자신들의 인식오류와 수정에 대해 한번도 공식적으로 말한 적이 없다. 그리고 그런 침묵은 고스란히 기만으로 남았다. 문제는 그런 식의 ‘정의(定義) 바꿔치기’ 에 온 국민과 국가가 휘둘려 왔다는 점이다. 그 대표가 '강제연행'이다.
토요일 내용에 대해 할 말이 많지만 이 글을 쓰게 만든 건 정대협 대표였던 서울대 정진성 교수다. 정교수는 한 토론자가 2000년 법정을 비판하면서 한일합의를 그래도 살려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자, 웃으면서 “대통령께서 이미 하신 일이니” 검토할 여지가 없다는 식으로 말했다.
그런데 대통령이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한 건 정대협의 요구를 받아들인 결과다. 말하자면 징용문제를 둘러싼 일본의 불신과 갈등을 만든 연원에는 정대협이 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책임의식을 말한 이는
내가 알기로는 아무도 없다. 그리고 분명한 건 2000년대 이후 일본인의 식민지지배인식이 90년대보다 후퇴했다는 점이다. '운동'이 더 많은 사람의 설득과 동참에 있다면 그런 의미로도 정대협의 운동은 실패했다.
예전에 ‘문고리 3인방’이 있었던 것처럼 지금도 ‘문고리’를 잡고 있는 이들은 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자신들이 한 일이라는 건 결코 말하지 않는다. 갈등과 분열의 시대를 차세대에 물려주지 않으려면 이런 구조를 보는 일부터 필요하다.
You, 김희숙, Naran Jung and 265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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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기사에서 정교수가 보여주고 있는 자료는 이미 기존에 다른 이에 의해 발견된 것이었다고 당시 언론에서 보도되었었다. 그런 ‘역사’가 잊혀지니 이런 사진을 다시 사용하는 일이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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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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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주 심포지엄 포스터.
    No photo description avail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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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 읽었습니다. 길게 느껴지지는 않네요. 제가 한국 사정을 잘 모르고 특히 위안부 문제엔 많이 어둡지만 학자연 하는 분들이 "기만"했다는 것에는 실망을 넘어 분노를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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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터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니 다행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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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녀상만 해도 여성문제가 아니라 반일을 목적으로 하기에 저는 불편한 것인데.
    예를 들면 여성에 대한 성착취 문제가 주가 아니고 "일본놈이 한국여자 몸을 더럽혔다" 가 주라서 그 소녀상이 영....
    제가 어떤 동상이건 싫어하기도 하지만요.
    우상이 필요한 자들은 지배자들 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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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o Young
       그게 아니라고 주장 하기도 하지요. 여성인권문제를 말하고 있다고. 하지만 일본만 그랬던 것처럼 주장해 온 세월이 있는데다 일본비난으로 수렴되는 세간의 인식을 지금도 방치하니 모순일 수밖에 없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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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유하
       본문에도 언급하셨지만 "그들" 도 분명 선생님의 문제의식에 영향 받은 부분 있어요. 마악 아닌 척 하지만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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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잘 읽었습니다.
    May be an image of text that says "출석)하고 정하는 아니다) 것이 않는 하지만 국책사업화되었고 표면적으로는 한쪽에서 만으로 한번 운동이 일합의를 그래도 없다는 식으 요구를 받아들인 결과다. 말하자면 정대협이 하지만 2000년대 일본군인이 일본인의 식민지지배인식 설득과 동참에 있다면 그런 것인것처럼 동반되었다는 잡고 이들은 있다. 그러면 말하지 않는다. 갈등과 분열의 시대를 차세대 길부터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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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우리가 옳음'을 기초로 하는 개인이나 집단들은 사과 혹은 자기정정을 하는 것을 무슨 목숨이라도 내놓는 것처럼 두려워하는 모습을 자주 봤습니다. 특히 종교단체 또는 '종교적적인 느낌으로 가는' 사람들에게서요.
    그 사과나 정정이 본인들에게 상당히 유리할 것 같은데도 그렇게 하지 않더라고요. 그렇게 고집을 피우는 이유가 일종의 인지부조화 때문인 건지, 아니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게 너무 귀찮아서'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지능이 떨어져서 그런 것 같진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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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세한
       이 경우엔 이제까지 해 온 주장이 이미 너무 많이 깊게 확산되었기 때문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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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유하
       갑자기 천동설 지동설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누군가 첫 발을 잘못 떼면 인류가 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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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잘읽었습니다. 미리 긴장하고 좀 더 집중해서 읽었는데 아주 어렵거나 길게 느껴지진 않았구요. 자화자찬 일색이라... 제게도 어떤 모임이나 무슨무슨 계, 의 자화자찬이 하나의 의문의 현상이었어요. 그 광경이 낯설고 신기하게 느껴질때마다 난 저 안에 끼지 못하겠구나 했던 구경꾼의 감각이 또렷해졌던 기억이 납니다. 최근에도 그 자화자찬이 신기해서 주변 누군가에게 물어본 일마저 있었는데 그게 바로 사회생활이라고 대답하더군요. 역시 내가 이상한거다. 속으로 정리했고요. 제가 이상한 것에 대해 스스로 문제는 없습니다만, 남들이 보통 당연히 하고 사는 일을 어색하고 놀라워하는게 흉은 아닐지 몰라도 자랑도 못된다는 조언도 받아들였습니다.
    포스팅 읽으면서 역사가 패션도 아닌데.. 생각했어요. 의복은 몸을 보호하고 활동을 편하게 하는 사실에 엄연한 역할이 있지만 패션계의 시각에서 볼 때에 이번엔 쫄바지를 발명해내고 다음엔 통바지를 새로 디자인했으니 때마다 유행을 정해주면 그것을 입어야 좋은, 꼭 그렇게 입어야되는 갖은 그럴싸한 이유를 만들어내서 퍼뜨리면 대부분 이들이 생각없이 어쩔 수 없이 휩쓸리고 따르듯이요. 예술적이든 상업적이든 디자인과 기술이 상술이 되는건 기만이랄 수 없겠지만 역사를 이용해서 ‘기만’이 가능한 현실은 꼭 고쳐나가며 바로잡아야 할 잘못된 상황이 맞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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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민정
       역사와 패션.재미있는 비교!^^ (그러게 말입니다..)
      결국 “당위”가 우리에겐 중요하기 때문이죠. 어깨에서 좀 힘을 빼면 좋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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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음이 무거워지는 일이 또 있어서 조금 힘듭니다.
    May be an image of 2 people and people sta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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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unichi Yoshida
       지난 번 모임에서 이야기하더군요. 필리핀, 중국, 인도네시아..다 양상이 틀린데
      같은 문제처럼 이야기하니 혼란이 이어질 수 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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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만'이 몸에 배어있는 사람들이죠. 부끄러움이라는 단어를 전혀 모르는. 한국 사회 진보파 지식인들에게서 너무 자주 발견되는 안타까운 현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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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안부 피해 지원운동의 기만과 그 편향성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이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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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가 하고 싶은 얘기를 잘 정리해 주셨네요, 심금을 울리듯, 절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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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립된지 75년이라도 필요하다면 ‘독립’ 운동은 해야 한다"는 말씀에 깊이 공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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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국의 위안부"와 더불어 '법적 책임'과 관련하여 참고할 만한 자료가 - 아이들에게도 소개할 만한 것이면 더 좋구요.- 잇으면 좀 가르쳐 주셔요.
    이 심포지엄도 부분적으로 들엇고, 얼마전 미국에서 활동하신다는 분이 하셧던 줌 세미나도 들엇는데요.
    계속 '법적 책임'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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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진숙
       법적책임이란 국가가 주체적으로 강제연행(납치/유괴등)을 했다고 지원자들이 믿었을 초기에 나온 얘기입니다. 그리고 전쟁범죄라고 믿어 “처벌”을 요구한 거지요. 히틀러같은 명령자가 있었던 거라고 생각했던 거니까요. (이런 이야기를 제가 책으로 써야 하는데 아직 못 쓰고 있네요. )
      결국 위안부 동원 형태가 주로 어떤 것이었는지, 납치나 유괴주체는 누구인지 군은 그래도 된다고 명령했는지 아니면 단속하고 서류를 체크했는지등에 관해서 알아야 “법적책임”요구가 무리한 건지 아닌지를 알게 됩니다. (강제로 끌어가거가 호적위조해 나이를 속이거나 한 건 다 업자 입니다)
      와다하루키교수가 양심적 지식인으로서 쓴 책을 참고 하셔도 좋을 듯 합니다. 법적 책임에 관해 별로 쓰지 않고 있지만요. 오누마 야스아키의 책도 참고가 될 겁니다. 이분은 법학자고 사할린 교포 귀국문제등 한국인 피해자를 열심히 활동하신 분이지요. 2018년 저의 책도 참고가 될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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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ay be an image of text that says "10:15 도서 국내도서> 역사/문화 한국사 개화기 한일관계와역사 제국의 위안부, 법정에서 1460일 박유한 뿌리와이파리 2018.06.16 키워드 Pick 일본 조선 준비서면 한일관계 손해배상 『재국의 위안부도 법쟁에서 1460일 미리보기 16,000원 14,400 원 할인 10% 적립 800원 (5%) 추가적립 5만원 이상 2천원 회원혜택 3만원 이상 2~4% 모바일 혜택 배송비 무료 도서 소득공제 안내 바로드림 个 TOP 보관함 b기 장바구니 바로구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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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유하
       감사해요
      읽어볼 자료가 많이 잇네요
      많이 추워요
      건강 관리도 잘 하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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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득 떡고물 주워 먹으려고 떡장수들 싸움 붙이는 거지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제 상상력과 양식이 빈곤하여 떠올릴 수 있는 그림은 고작 이정도네요. 그보다 더 품위있는 그림은 떠올릴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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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아니라 위안소 문제, 명백한 국가 범죄"

['일본군 위안부' 논쟁·②] 충남대학교 국가전략연구소 윤명숙 전임연구원 인터뷰

이재호 기자, 서어리 기자  |  2014-07-03 09:43:50  |  2014-07-03 18:10:36



 
일본군 위안부를 둘러싼 논쟁을 짚어보는 두 번째 순서는 충남대학교 국가전략연구소 윤명숙 전임연구원 인터뷰다. 윤 전임연구원은 위안부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났던 1991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학순 할머니 증언 이후 지금까지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연구 및 각종 저술활동을 벌이고 있는, 국내 위안부 문제에서 손꼽히는 권위자다.

윤 전임연구원은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군이 직접 조선인 여성들을 끌고 간 경우가 많지 않았고, 그래서 위안부가 강제 연행되지 않았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일갈했다.

그는 당시 조선에서는 이미 업자나 포주가 많은 상황이었고 '공창'과 유사한 위안부 시스템이 구축됐기 때문에 굳이 조선 사람들의 반발을 사면서까지 군이 직접 뛰어들 이유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모집하는 방식에서 차이가 있을 뿐, 본인이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위안소에 끌려가서 성폭력 피해를 받았다"는 본질적인 측면은 변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위안부의 모습이 '민족의 순결한 딸'로 일반화되는 것이 문제가 있지 않느냐는 지적에 대해 윤 전임연구원은 "그런 표상은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 만든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만든 것"이라면서 순결 이데올로기 속에 여성들을 가둬놓는 가부장적인 의식이 위안부 피해자를 하나의 모습으로만 기억하게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그는 위안부 피해자가 평화비(소녀상)의 모습으로 기억되는 것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윤 전임연구원은 "다양한 형태로 존재했던 위안부 피해자들이 이 평화비 때문에 전부 누락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야 한다"며 "분명 소녀가 아닌 사람들도 피해를 입은 경우가 있는데, 이들은 '내가 피해자다'라고 제대로 이야기도 하지 못한다"고 꼬집었다. 위안부 피해를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지 못하게 만드는 한국사회의 인식에도 문제가 있다는 일침이다. 다음은 지난 1일 오후 서울 모처에서 진행한 윤 전임연구원과의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편집자.


▲ 충남대학교 국가전략연구소 윤명숙 전임연구원 ⓒ프레시안(최형락)

포주? 업자?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이 중요

프레시안 : 박유하 교수 저서 <제국의 위안부>가 세간에 화제가 된 이후 위안부 성격 논쟁이 여러 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나눔의 집에 있는 위안부 피해자들이 책에 대한 소송을 하기 전까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오랫동안 연구한 분들이나 관련 단체에서는 박 교수의 문제제기에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던 같다.

윤명숙 : 일단 박유하 교수가 위안부 문제의 역사적 측면을 잘 모르고 있다고 본다. 기본적으로 박 교수가 일본군위안소제도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고 본다. 위안소 제도는 한 가지의 형태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군이 직접 운영하는 군 직영 위안소, 업자를 두고 관리·감독하는 군 전속 위안소, 이미 있는 유곽이나 성매매업소를 군이 지정해서 이용하는 위안소, 이렇게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한국인 위안부 피해자의 경우 위에 언급한 모든 위안소에 다 있었다. 게다가 대체로 위안부가 한곳에만 머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군 직영 위안소에 있던 피해자가 그 다음에는 전속 위안소로 옮겨가기도 했고, 업자가 통째로 위안소 자체를 이동시키기도 했다. 이런 다양한 형태의 위안소를 경험했던 피해자들이 각자의 경험을 증언하는 것이다. 그런데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군위안소제도라는 것은 군인이나 군속만 이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곳이라는 점이다.

프레시안 : 박 교수가 제기한 업자와 포주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박 교수는 업자와 포주에 실질적인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

윤명숙 : 물론 업자나 포주의 잘못도 있다. 그렇지만 군위안소제도의 성격을 들여다보면, 국가가 정책으로 위안소제도라는 시스템을 만들었다는 점에 방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얘기다. 이 점을 가장 먼저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일본군은 일본 국내의 공창제도를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생각했다. 즉 정부가 위생적인 위안시설을 만들어서 관리해주면 이를 안전하게 이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식민지에는 일본의 공창제도를 법으로 이식했다. 하지만 점령지는 그럴 수 없다. 그러니까 결국 공창제도와 같은 시스템을 점령지에서는 위안소로 만든 것이다. 당시의 위안소가 공창과 같이 업자가 있고 돈을 받고 남자를 손님으로 받아들이고 하는, 이런 식의 형태를 갖췄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점령지라고 전혀 없던 시스템을 새롭게 마법처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방식을 점령지에 맞게 적용해서 만들어가는 것이다.

위안소의 여러 형태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봤을 때 처음에는 군이 직접 운영하는 위안소를 세웠을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난징대학살 이후 상하이에 직영위안소가 설립되는 것이 대표적인 경우다. 처음에 일본군은 군이 직접 나서서 위안소를 운영했다. 그러다가 중국에서 항일 운동이 커지다 보니 갑자기 전선이 확대됐고 위안소의 수요가 급격히 늘어났다. 이를 군이 직접 만들 수 없는 상황이 됐고, 그래서 업자를 두고 위안소를 운영하는 형식으로 위안소가 점점 확대되는 것이다.

군이 직접 개입했다는 것은 문헌 자료를 통해서도 나타난다. 1938년 3월 4일 육군성 통첩에도 군의 개입이 잘 드러난다. 또 이후에 나온 군사 진중일지, 위안소 규칙 등을 보더라도 군이 업자와 같은 역할을 했거나 이들을 활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이야기를 모두 제외한 후 포주와 업자 이야기만 한다면, 독자는 결국 위안부 동원의 책임은 이들에게만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물론 박 교수가 중시하는 위안부 피해자 개인의 경험 역시 중요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 경험과 구술이 책임을 묻는 유일한 근거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국가가 어떤 역할이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공창제도에서 국가와 업자의 관계는 국가는 영업을 허가하지만 업자의 위법을 단속하는 역할이라면, 군위안소제도에서 국가는 업자의 역할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구체적인 장면에서는 좀더 상세하게 따져야 하겠지만, 크게는 그렇게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업자의 책임도 있지만 그것은 핵심이 아니라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다. 박 교수가 업자나 포주의 책임을 강조하는 것을 보면 '국가범죄'라는 부분이 아예 머릿속에서 지워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프레시안 : 그런데 실제로 당시 조선에서 위안부를 모집할 때 군이 직접 여성들을 끌고 가는 것보다 업자나 포주가 데려간 경우가 더 많지 않았나? 그런 점에서 '강제 연행을 한 것은 아니'라는 일본 우익의 주장이 힘을 얻는 측면도 있는데.

윤명숙 : 우선 징모업자의 구조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징모업자는 이를테면 피라미드와 같은 모양의 구조다. 즉 상위에 군이 직접 허가·선정하는 징모업자가 있고, 그 밑으로 하청업자가 층층이 아래로 내려온다. 하청업자 아래 또 하청업자가 있는 식으로. 그래서 동네아저씨 김 씨에게 취업사기를 당하기도 했다는 구술이 나오는 것이다. 그렇지만 여기서도 역시 중요한 것은 말단의 하청업자의 역할이 아니고 이 징모업자의 구조를 누가 관리·통제하느냐 이다.

그리고 군이 직접 여성을 끌고 갈 필요가 없었다. 그건 조선이 이미 제국의 식민지였기 때문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일제는 3.1운동의 경험으로 헌병정치에서 문화정치라는 지배 형태를 변경할 수 밖에 없었다. 이 경험은 이후 일제의 식민지배에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징병제가 실시된 것은 일본의 패전 직전인 1944년부터이다. 즉 식민지 청년들에게 총을 쥐어 주었을 때 그 총부리가 어디로 향할지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조선은 제국의 식민지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함부로 할 수 있는 식민지는 아니었다. 그래서 함부로 군이 여성을 총부리를 앞세우고 끌고 갈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또 당시 한국에는 여성에 대한 이른바 '순결' 이데올로기가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었다. 이런 나라에서 군이 직접 여자를 끌고 간다? 그것도 전국적으로? 만약 이런 사태가 광범위하게 벌어지면 조선총독부는 조선을 지배하지 못했을 것이다.

또 군이 나서지 않아도 되는 조건이 갖춰진 측면도 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조선에서의 위안부 징모에 이미 이식되어 있던 공창제도의 매커니즘이 활용되었기 때문에, 여성들을 끌고 갈 업자들이 존재했다. 특히 1940년 이후에는 직업소개령이 개정되면서 이를 통해 국가총동원체제 하에서 국가가 징모업자를 편법으로 관리할 수도 있었다. 군이 뒤에 숨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는데, 굳이 조선 사람들의 반발을 사는 방식을 통해 위안부를 끌고 갈 필요가 있었을까? 즉, 식민지인 조선의 여성은 일본의 총칼이 없이도 끌고 갈 수 있는 대상이었다는 것이다.

징모에 있어서 식민지와 점령지에서의 방식에는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다. 이 차이점이야말로 제국주의 국가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얼마나 일상적 폭력이었는가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어쨌든 식민지 조선의 위안부와 점령지 여성은 모두 본인이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위안소에 끌려가서 성폭력 피해를 받았다는 본질적인 측면을 보면 동일한 피해자다.

무엇보다 반드시 지적되어야 할 점은 일본정부가 위안부들의 징모나 이송 과정에서 정부 및 군의 개입을 적극적으로 은폐하려 했던 정황이 당시에 이미 있었고 이는 사료에서 확인할 수 있다.

동지적 관계? 인간에 대한 이해 부족한 것 아닌가


▲ 충남대학교 국가전략연구소 윤명숙 전임연구원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박 교수의 저서에서 논란이 됐던 또 하나의 대목은 '일본군'과 '조선인 위안부'가 '동지적 관계'를 맺었다는 부분이다. 이들이 일본 제국의 황국신민으로서 동지적 관계였다는 것인데, 조선인 위안부가 일본군에게 '섹스'라는 서비스를 제공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던 환경에서 동지적 관계라는 말이 가능한 것인가?

윤명숙 : 우선 일본인과 조선·대만 사람은 평등하지 않았다. 물론 조선·대만이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제국의 영토였고 조선인이나 대만인은 일본제국의 국적을 갖고 있던 상황이라 이른바 '제국의 신민'이었던 것은 사실이나 모든 자격을 똑같이 부여받았던 것은 아니다. 동등했다면 식민지라고 부르지 않을테니까.

그럼에도 박 교수가 동지적 관계라는 표현을 쓴 것은 인식의 차이에 기반한 것이라고 본다. 위안부 문제를 제국의 시각에서 파악할 것인가, 아니면 식민지 피해자 입장에서 파악할 것이냐가 관건인데 박 교수는 전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박 교수의 이러한 인식은 누가 국가 폭력의 피해자인가를 보는 관점에서도 드러난다. 당시 똑같은 '취업 사기'라는 방식으로 A와 B라는 사람이 끌려갔다고 치자. A는 남경의 위안소로 끌려갔고 B는 만주의 유곽으로 끌려갔다고 하면, 우리가 지금 일반적으로 위안소에 끌려간 사람들만 피해자로 보고, 유곽으로 끌려간 여성들은 피해자로 보지 않는다. 제국의 시각으로 보니 위안소에만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시각 자체를 '식민지 피해자' 시점으로 가져오면 양쪽 다 피해자다.

이것은 당시의 국제법과 일본의 형법을 통해서도 증명이 가능한 사안이다. '매매춘'을 위해 사람을 국외로 이송하는 것은 당시 형법에도 위반되는 사항이며 위안부 피해가 인도에 반한 죄 등 당시 국제법에 저촉되는 위법한 것이었다.

따라서 박 교수는 '동지적 관계'를 증명하기 위해 제국의 개념을 이용하지만, 저는 '피해자 입장에서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해석하고 이해할 것인가'라는 관점에서 제국의 개념을 가져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시 제국이 가졌던 속성으로 인해 피해의 양상이 여러 형태로 나타났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는 것이다.

프레시안 : 박 교수는 일본군과 조선인 위안부가 힘든 상황 속에서 서로 감정을 공유했고, 사랑을 했고 심지어는 결혼을 약속하기도 했다는 피해자의 증언을 책에 기록했다. 동지적 관계가 아니라면 이런 정도의 친밀함을 갖기 힘들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나타낸 것 같은데?

윤명숙 : 개인의 경험은 백이면 백 다양하게 나올 수 있다. 그런 개인의 경험을 동지적 관계를 증명하기 위해 활용했다면, 죄송한 이야기지만 박 교수가 인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사람은 어떤 조건에 있더라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뭔가 위안이 될 만한 것을 찾을 수밖에 없지 않나?

피해자는 웃어서도, 좋은 일이 있어서도, 추억이 있어서도 안 된다고 상정하고 만약 그런 좋은 일이 있었다면 꼭 피해를 본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대단히 폭력적인 발상이다. 피해자라고 항상 우울한 삶을 살아야만 하나?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 어떤 이유를 대서든 살아가야 할 이유를 만들면서 버틴다. 그 안에서 결혼을 약속했든 사랑을 했든 다양한 인간 군상이 모습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문학을 전공했다는 분이 이런 인간의 모습을 이해하지 않고 피해자의 삶에는 '불행'만 있다는 기계적 사고가 어떻게 가능한지 되묻고 싶다.

이와 관련해서는 미군 기지촌에서 일하면서 <아메리카 타운 왕언니 죽기 오분 전까지 악을 쓰다>라는 책을 쓴 저자 김연자 씨의 저술을 참고해 볼 필요가 있다. 김 씨는 책에서 기지촌 생활이 너무 힘들었고, 이를 이겨내기 위해 자주 모여서 노래를 부르고 술을 마셨다고 회고했다. 사람의 삶이 이런 것이다.

위안부 피해자를 '민족의 순결한 딸'로 만든 것, 정대협이 아니라 한국 사회

프레시안 : 박유하 교수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이 위안부 피해자를 평화비(소녀상)로 표상되는 '민족의 순결한 딸' 이미지로 일원화했다고 비판한다. 이같은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윤명숙 : 그런 지적에 동의한다. 하지만 그런 지적을 정대협 자체에 대한 비판으로 가져가고 싶지는 않다.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공론화됐던 1990년대 초, 정대협이 이 문제를 '가해자 일본 대 피해자 조선 민족'이라는 구도로 이야기했다. 그런데 위안부 문제를 위의 구도로 이야기하지 않았다면 과연 한국 사회가 이 문제를 받아들였을까? 아마 '매춘부들이 돈 벌려고 일본을 갔구나'라고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것은 우리 사회의 문제이지, 정대협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도 소녀상이 곳곳에 퍼지는 것은 민족주의, 소녀, 순결 이데올로기가 포함된 것이 주목을 받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위안부로 끌려간 여성은 소녀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 기생이었던 여성도 있었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이런 분위기 속에서 어느 누가 "난 원래 기생이었다"라고 증언할 수 있었겠나. 그런 의미에서 이것은 한국 사회의 문제인 것이다. 우리가 성매매를 자발적인 것이라고, 피해를 받은 것이 아니라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지점은 한국 사회에서 위안부 문제를 볼 때 중요한 부분이다. 마치 성매매 여성이면 피해자가 아닌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사회적 구조, 즉 가난이나 복지 정책 부재 등으로 인해 성매매에 뛰어든 여성도 많다. 지금의 성매매 역시 구조로서 성매매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위안부 문제를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특히나 식민지 여성의 피해를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개인적으로 '위안부제도'라는 용어보다는 '위안소제도'라는 용어가 이 문제를 설명하는데 더 적합한 단어라고 생각한다. 위안부라고 하면 한 개인, 여성에 초점이 맞춰지는데 이 문제는 개인이 아니라 큰 틀의 구조에 초점을 맞춰서 인식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위안부 문제에서 성매매 여성과 순결한 소녀를 나누려고 하는 것, 이 부분에 대해 한국 사회 스스로도 반성해야 한다.

물론 친일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측면도 '민족의 순결한 딸'이라는 이미지를 표상화시키는 데 기여한 측면이 있다. 우리 내부의 친일을 제대로 청산했다면 굳이 민족을 강조할 필요가 있었을까?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민족을 앞세우는 것이다. 즉 위안부 문제에는 이러한 요소들이 다 얼키고 설켜있는 것이다.

결국 '정대협'이 평화비를 세움으로써, 소녀가 아닌 피해자들은 "내가 피해자다"라고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하게 됐다. 그러나 이는 한국 사회에서의 인식의 문제에서 비롯된 일이다. 여기에 문제제기를 해야 하는 것이다.


▲ 위안부 평화비 ⓒ연합뉴스

프레시안 : 정대협이 베트남전 당시 피해 입은 여성들에 대한 상담을 했던 활동 등에 비춰 보면, 단순히 민족주의적인 시각에만 입각했다고 보기 어렵지 않나?

윤명숙 : 정대협이 출범한 지 20년이 넘었다. 그 세월 동안 바뀌어 가는 과정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초기에는 민족주의적인 담론으로 운동을 했고 그 부분을 비판할 수는 있다. 하지만 20년 전체를 하나로 보고 지금까지도 정대협이 민족주의적이고 국수주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고 비판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고 생각한다. 초기에 그런 식의 운동이 진행됐다면, 왜 그랬고 이를 어떻게 극복했는지에 대해 한국 사회 전체 관점에서 바라봐야 정대협에 대한 비판이 발전적으로 사회 전체에 반영이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비난의 수준에 머무르게 되는 것이다.

위안부 문제, '어떻게' 해결할지가 중요하다

프레시안 : 위안부 문제를 어떤 관점으로 봐야 할지 우리 사회는 여전히 혼란스러운 것 같다. 위안부 문제는 '이거다'라고 정립할 수 있는 개념이 있나?

윤명숙 : 사람들은 명쾌한 답을 원하지만 위안부 문제를 그렇게 간단하게 정의하기는 힘들다. 민족차별문제, 여성차별문제, 계급문제 등등 다양한 차원에서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어떤 사회를 지향해 나갈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보면 이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이 좀 더 명확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사회적인 약자가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와중에도 본질은 놓치지 말아야 한다. 다각적으로 보는 것이 물론 중요하지만 문제의 본질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가장 본질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짚어야 어떤 해결이 가능한가를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를 통해 이 사회를 어떻게 바꿔갈 것인가에 최종적인 목적이 있다고 본다.

프레시안 : 그렇다면 위안부 문제의 본질이 무엇이라고 보는가?

윤명숙 : 국가 폭력, 즉 국가 범죄이다.
프레시안 : 다시 말하면 위안부가 아니라 위안소, 즉 개인이 아니라 구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인가?

윤명숙 : 그렇다. 그래야만 기지촌에 있는 여성이 왜 폭력을 받은 여성인지 이해가 되는 것이다. 개인에게만 초점이 맞춰지면 위안부 문제에 있어서도 업자와 포주의 책임만 부각될 수밖에 없다.

프레시안 : 구조의 문제로 보자면, 결국 당시 위안부를 만들라고 지시한 일본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근데 현재 일본 정권은 전혀 책임지려는 생각이 없는 것 같다. 문제가 계속 평행선으로만 내달리는 것 아닌가?

윤명숙 :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해결을 위해 무리하게 타협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법인지 묻고 싶다. 해결을 위한 해결이 아니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해결하지 못한다면 무엇이 한계였는지를 밝히고 이를 뚜렷하게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만 해도 그렇다. 정치적 타협을 했던 당시 협정으로 문제 해결은 더 어려워지지 않았나?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무리하게 정치적 타협을 추진하면 당시 협정을 되풀이하는 셈이 된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활발한 논의가 필요한 상황에서 일본은 절대로 강제 연행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로, 또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 국민 기금'을 만들었던 사람들의 노력을 인정해서 타협해야 한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면 우리는 역사로부터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문제를 해결하지 말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해결 그 자체보다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위안부 피해자들 개개인으로 보면 이들을 위해 빠른 시일 내로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이 문제가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사건인 것도 분명하다. 그래서 피해자가 아닌 사람들도 관심을 갖고 집중을 하고 고민을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무게를 둬야 한다.

또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가 어떻게 해결할지를 논의하는 장을 넓혔다는 데 나름의 의미도 있다고 본다. 지금 위안부 문제에 대한 관심과 주목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가져가야 한다.


▲ 충남대학교 국가전략연구소 윤명숙 전임연구원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일각에서는 <제국의 위안부>의 논리가 일본 우익과 별로 다를 바 없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실제 일본 우익에 이 책이 힘을 실어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윤명숙 : 우려의 지점이 잘못된 것 같다. 만약 일본이나 한국에서 우익이 큰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 않았다면 박유하 교수의 이야기가 도움이 된다한들 크게 신경 쓸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가 우려해야 하는 것은 위안부 문제를 인권 문제로 바라보지 않고, 이를 비하하거나 차별하는 사람들이 주류가 되는 상황이다.

즉, 위안부 문제를 인권의 측면에서 본다면 여기에 대한 인식이 공유되고 그 인식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이런 사람들이 주류가 돼야 한다고 본다.

프레시안 : 민족주의를 뛰어 넘어서,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져가야 할 사상적 무기 같은 것은 없을까? 물론 앞서 말씀하신대로 '민족의 순결한 딸'이라는 표상을 내세우지 않았다면 우리 사회에서 위안부 문제가 받아들여지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데 공감하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문제를 해결하기 힘들지 않나?

윤명숙 : 이 문제가 일본이 가해자고 한국이 피해자라는 식의 구조로만 이야기하면 풀리지 않는 것들이 있다. 베트남 전쟁에서 한국군이 성폭력을 일으킨 것이나 한국군이 한국 전쟁에서 위안부를 둔 것이나, 1970년대 미군 기지촌을 정부가 관리한 사실 등등을 봤을 때 민족 대 민족의 구도로는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 분명히 있다.

그래서 이 구도를 뛰어넘을 수 있는 한국과 일본, 또 그 외 국가의 시민 간 연대가 필요하다. 국가 단위로 잘리지 않는 시민 간의 연대를 넓혀 나가야 한다. 실제로 1990년대 일본에서 위안부 피해자들을 지지했던 시민들은 한국과 다 같이 연대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학자층, 운동층, 일반 시민 등 다양한 층위에서 이런 움직임이 있었다.

더불어서 정부와 시민 사회가 횡으로 연대할 수 있는 방안도 필요하다. 민족의 문제가 아니라, 특정 사안에 대해 권력과 민중, 시민 사회가 뜻을 같이해서 연대할 수 있는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프레시안 : 말씀하신대로 정부와 시민사회가 함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든다면 좀 더 해결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고 본다. 현재 한국 정부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국장급 협의도 하고 있는 중이다.

윤명숙 : 그런데 아쉬운 부분이 있다. 정부가 이 문제에서 책임있는 자세로 임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일본에서 고노 담화의 작성 경위를 검증하는 보고서가 나왔다. 이 보고서에서 일본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것을 집어넣고 불리한 것은 제외시켰다. 그런데 보고서의 내용보다 더 눈길이 갔던 부분은 일본이 정부가 나서서 이 보고서를 만들었다는 사실이었다.

이 보고서를 작성하는 사무국이 일본 내각 관방과 외무성에 있었다. 그리고 일본 정부는 보고서를 작성한 5명의 신분을 일시적으로 공무원으로 만들었다. 이는 곧 정부에서 이 문제를 주도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세계 여론이 지탄을 하고 있는 검증 결과조차 일본은 정부의 이름을 걸고 내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최근에 위안부 백서를 만들겠다고 했지만 백서는 말 그대로 백서일 뿐이다. 정부 보고서를 만들어야 한다. 한국 정부는 1992년 중간 보고서를 만든 이후로 지금까지 정부의 보고서가 나온 적이 없다.

제가 말하는 정부 보고서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국 정부 입장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보고서를 의미한다. 현재 여성가족부를 중심으로 용역을 줘서 백서를 만든다고 하던데, 이것은 정부가 책임을 지기 싫은 것 같다는 인상을 준다. 물론 보고서 만드는 데 민간 전문가 필요하다. 비전공자인 행정공무원이 어떻게 위안부 문제에 대한 보고서를 모두 챙길 수 있겠나? 하지만 그 보고서의 명의, 주체는 명확히 정부가 돼야 한다. 그래야 정확한 한국 정부의 입장이라고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도 내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한국정부가 이렇게 책임있는 자세로 임하는 것 자체가 피해자들에게는 곧 명예회복이요, 정의가 실현되는 방식이자 치유가 되는 길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일본군 위안부 논쟁 기획>

■ 일본군 위안부' 논쟁·① 박유하 교수 인터뷰 : "투사 소녀? 위안부 할머니도 욕망 가진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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